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탈리 아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남자들도 한번쯤은 여자들처럼 다뤄져봐야 합니다....... 다시 말해.......

왕은 머뭇거리더니 고개 숙이며 말한다.

...... 삽입당해봐야 한단 말입니다. 그러면 소유당하고, 채워지려는 욕구를 이해하겠지요. 여자가 배 속 깊은 곳에서 느낄 공허감과 버림받은 느낌을 말입니다.......

장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가 마음의 동요를 감추는 동안 왕은 그의 주위를 돌며 점점 더 원을 좁혀온다.

...... 하지만 반대로 여자들 역시 한번이라도, 분출하기 위해, 씨를 뿌리기 위해 힘이 솟구쳤다 시들고 사라지는 욕망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남자들은 그 욕망이 오래가지 않고, 거기 집착하지 않으며, 다중적이라는 걸 잘 알지요. 그렇잖습니까? 우리는 그런 욕망을 매번 느끼지만 여자들이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왕은 멀찍이 떨어지며 다시 정상적인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만약 두 성이 서로를 잘 안다면, 각 성이 잠깐이라도 상대 성의 입장에 서볼 수만 있다면, 이렇게 많은 비극과 불행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면 비극 작품도 없겠지요. 이건 안타까운 일이겠군요.



잠깐 출연한 태양왕 루이 14세.

애초에 페이트의 길가메시는 동성애자처럼 묘사되었고 은근 마초라서 저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임.

그러나 왕의 느낌이 강한 동작과 대사라서 짤 넣어봄.

주인공은 남주인공을 사귀었었다. 남주인공은 유부남이었고 시한부 인생이었으며 죽기 전에 본처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본처는 주인공에게 남주인공이 죽기 전에 남아달라고 끈질기게 간청하나 주인공은 그들을 뿌리친다. 현명한 선택이다. 그러나 자꾸 마음이 그들에게 향하자, 주인공은 자신을 첫사랑이 낙태를 하다 죽은 장 라신의 작품에서 나오는 여주인공 베레니스에 맞춘다. 이후로는 장 라신의 인생 이야기가 펼쳐진다.

10년 남짓 사귀었던 전 애인과 헤어지면서 내가 딱 그 생각했다. 그냥 죽어있는 게 낫지. 그래서 '넌 그냥 죽었다고 생각할거야'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상황에선 현명한 해결책이었다. 실연한 사람들은 끝까지 버티길 바란다. 당장은 싫겠지만 몸에 좋은 먹을거리가 따로 있듯이 정신건강에도 좋은 사람이 따로 있다니깐. 애초에 인생에서 그 인간만 있는 건 아니다. 살아보니 몇몇 더 나오더라고. 제본 상태상 보관이 용이하지 않아 이것도 소장하지 않고 경비실 아저씨께 드릴 예정이다. 책 소장하려는 분들은 참조하시길.


선생은 그리스도 이전에는 많은 작가들이 저속했으며, 그렇다고 위대하지 못할 건 없다고 대답했다. 내친 김에 그는 "pallida morte futura"라는 구절을 아용했다. (...) 프랑스어는 개가 이빨을 드러내듯 분절을 드러내고, 굵은 뼈마디를 드러낸다. 반면에 라틴어는 이음새를 감춘다. 그 생략 속에서 의미가 돋아나 몰려온다. 축축한 흙이 냄새를 발산하듯이.

다가오는 죽음 때문에 하얗게 질린, 하고 한 학생이 말한다.

아니지, 선생이 말한다.

다가오는 죽음에 창백한, 장이 제안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장 라신 희곡집에 이어 읽을 책을 많이 던져주는 이런 소설이 개인적으로 아주 좋다.

아이네이스 구절. 아이네이스는 디도 여왕이 다스리는 카르타고에 머무르게 되나 제우스의 명으로 디도를 떠나게 된다. 디도는 스스로 장작더미에 올라 생을 마감한다. 자살한 것이다. 그녀는 죽어가며 카르타고가 아이네이스가 훗날 건설할 나라와 원수가 되어 영원히 싸우게 될 것이라 저주한다. 장장 120년이 걸리는 포에니 전쟁은 로마 제국이 세워지기 전부터 예견된 것이다.

이 장면을 재연한 멜스메도 있다. 공식 장르는 블랙메탈이지만 판타지적 의미가 있다는 데서 나에겐 멜스메다.


Crusado Orchestra - ACT III. Pallida Morte Futura (youtube.com)


"Ibant obscuri sola nocte per umbram."

장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또렷한 목소리로 제안한다.

그들은 홀로 어두운 밤 속을 나아갔다.

아니야, 적절하지 않아. 베르길리우스는 정확히 그렇게 말한 게 아니야.

장은 큰소리로 다시 한 번 읽고 또 읽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열 번을 읽는다. 그는 이동하는 그림자들을,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형체들을 본다.

(...) 왜 프랑스어로는 언제나 단어가 늘어날까? 똑같이 치밀하고 밀도 높게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다시 시도한다.

그들은 시커먼 형체로 홀로인 밤 속을 나아갔다.

(...) 한 학생이 이의를 제기한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해 아무 의미없는 문장입니다. "홀로인 밤"이 무엇입니까?


아이네이스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구절. 모든 게 불확실한 아이네이스에게 한 쿠마이의 무녀가 호의를 갖고 그와 같이 지하 세계로 내려가며 로마 제국의 건설을 공식적으로 예견한다. 일행은 아이네이스에게 이를 입증시켜 주기 위해, 아이네이스의 죽은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데 이에 대한 첫 구절이라 할 수 있다. 유명한 문장이다.

뭐 언제나 그렇듯이 아이네이스는 결국 저승에서 아버지 안키세스를 만난다. 안키세스는 뼈의 문과 상아의 문을 소개하는데, 전자는 진실을 볼 수 있고 후자는 꿈을 볼 수 있다. 아이네이스와 무녀는 후자를 통해 저승에서 나가는데(그것도 그럴게 외노자들에게 빡센 국경수비 맡겨 로마 망하는 장면을 굳이 아이네이스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지요 ㅋㅋ), 이 구절에 대한 블랙메탈 아니 멜스메가 있다.


The Agonist - Gates Of Horn And Ivory (Lyrics)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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