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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의 거장,르네 마그리트전
전시개요
서울시립미술관은 벨기에 왕립미술관과 공동으로 벨기에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이자 초현실주의의 거장인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대규모 회고전을 2006년 12월부터 2007년 4월 까지 총 103일 간에 걸쳐 개최한다. 1898년 벨기에에서 출생한 마그리트는 1967년 작고하기까지 자신만의 독자적인 초현실주의 세계를 창조하였고, 미술 뿐 아니라 다양한 대중문화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친 20세기 미술계의 거장 중 한 사람이다.
3년 여 간의 준비 기간 끝에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는 벨기에 왕립미술관과 마그리트 재단을 비롯해 뉴욕, 런던 등 해외 유명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마그리트의 걸작들과 세계 저명 컬렉터들의 소장품이 대거 출품되며, 초기작부터 작고 직전에 제작된 말년 작에 이르기까지 마그리트의 예술세계 전반에 걸친 대표작들이 두루 소개되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마그리트 회고전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2007년 가을 벨기에 왕립미술관 내에 개관하는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의 완공 이전에 마련되는 이례적인 대규모 해외 전시로, 마그리트 미술관 개관 이후에는 접하기 힘들지 모를 마그리트의 마지막 대규모 해외 전시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빛의 제국> <회귀> <신뢰> 등을 비롯한 마그리트의 유화 대표작 70여점과 과슈, 드로잉, 판화 50여점 등 총 120여점에 달하는 회화 작품과 사진, 희귀 영상작업 및 친필 서신 150여점 등 총 270여점에 달하는 다양한 작품과 자료들이 소개되어 마그리트의 삶과 예술을 다각도로 이해할 수 있는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 한국에 오다!
3년 동안 숙성된 국내 최대의 전시가 될 것 서울시립미술관은 르네 마그리트의 예술적 전모를 살필 수 있는 대규모 회고전을 벨기에 왕립미술관과 공동으로 개최한다. 지난 3년여에 걸친 준비 끝에 마련된 국내 최초의 이번 전시는 브뤼셀의 벨기에 왕립미술관, 마그리트 재단은 물론, 뉴욕, 런던 등 해외 유명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마그리트의 걸작과 전 세계 저명 컬렉터들의 비장품을 대거 포함하는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최대 규모의 전시가 될 것이다.
진정한 마그리트 컬렉션, 작품가 6,000억
“빛의 제국”,“회귀”,“신뢰”등 유화, 과슈, 드로잉을 포함하는 회화 120여점과 친필 서신, 사진 등 총 270 여점에 달하는 마그리트의 주옥 같은 작품들이 희귀 영상자료들과 함께 소개되는 이번 한국에서의 회고전에는 지난 2006년 여름, 프랑스 파리의 마이욜 미술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던 마그리트의 드로잉전과 역시 비슷한 시기에 파리의 유럽 사진미술관에서 열렸던 마그리트의 사진전에 소개되었던 작품들이 대부분 출품된다. 특히 함께 소개되는 영상작업의 경우, 그가 10대 때에 탐닉했던 에드거 알란 포우나 로버트 스티븐슨 원작의 판타지영화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마지막 해외 나들이
이번 회고전은 마그리트가 그의 작품에서 집요하게 차용ㆍ인용해온 사과, 돌, 새, 중절모, 벨, 담배 파이프, 여인의 특정 신체 부위 등과 함께 우리에게 몇몇 주요 회화작품 위주로 알려져 있는 마그리트와 그의 작품세계를 종합적,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벨기에 왕립미술관이 2007년 가을 왕립미술관내에 개관하는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의 완공 이전에 이례적으로 해외에 마그리트의 소장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전용 미술관 개관 이후에는 아마도 접하기 힘들지 모를 마그리트의 마지막 대규모 해외 나들이가 될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는 누구인가?
“나는 나의 과거를 싫어하고 다른 누구의 과거도 싫어한다. 나는 체념, 인내, 직업적 영웅주의, 의무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운 감정을 혐오한다. 나는 또한 장식미술, 민속학, 광고, 발표하는 목소리, 공기역학, 보이스카우트, 방충제 냄새, 순간의 사건, 술 취한 사람들도 싫어한다.” -마그리트-
‘그는 특히 미술가라는 이름을 거부하면서 자신은 ‘생각하는’사람이며 다른 이들이 음악이나 글로 생각을 나누듯이 자신은 회화를 통하여 사고를 교류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수잔 개블럭‘르네 마그리트’ 제1장 중-
벨기에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는 흔히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라 일컬어진다.
20대 초반 벨기에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르네 마그리트는 초기 한때 입체주의와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1926년부터 1930년까지 파리에 체류하며 살바도르 달리와 후앙 미로, 시인 폴 엘뤼아르 등 여러 초현실주의 화가, 시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마그리트는 당대의 초현실주의자들이 주로 탐닉했던 자동기술법이나 꿈의 세계에 대한 편집증적 탐구와는 다르게, 현실의 신비 등에 관심을 보이면서 그만의 독자적인 초현실주의적 태도라 할 수 있는 시적(詩的)이미지를 창조해 나간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 보여 지는 것처럼 논리를 뒤집는 이미지의 반란과 배신, 상식의 틀을 깨는 마그리트의 예술적 도전은 언제나 새롭고도 매혹적이며,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면서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화법으로 초현실주의 화가로서의 그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해주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독특한 시적인 창조 작업은 일상의 물체들을 화면 속에 기묘하게 병치시키거나 매력적으로 결합하는 방법에 있었다. 밤의 신비나 꿈의 세계,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혹은 그 경계에 존재하는 어떤 환상들을 주요 모티프로 활용하여, 모호한 표현으로 일관하지만, 화면 속 대상들은 그와는 반대로 매우 사실적으로 정확히 묘사되어 있는 점이 이채롭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일상적 소재에 대한 기발한 발상으로 실재와 이미지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에게 관습적 사고의 거부와 시적 비전을 제시하며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현실 속의 모든 것들에 대해 질문과 의문을 던진다. 이로써 우리가 확신하는 일상 사물에 대한 고정된 시선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그 만의 독특한 조형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마그리트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의 작품은 아무런 의미도 감추고 있지 않은 가시적인 이미지라 할 수 있지만, 그의 조형세계는 인간 정신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 기성과 현실의 경직된 질서 체계를 정확하고 세밀한 이미지를 통해 회화적으로 꼬집고 뒤집는 기묘하고도 야릇한, 비평적인 예술창작이다. 이러한 점에서 마그리트는 광적인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시도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냉혹함을 보이는 비개성적 초현실주의자이지만, 그 의도에 있어서는 마그리트 역시 초현실주의와 궤를 함께 하고 있음을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예술세계
1898년 벨기에에서 출생한 마그리트는 1916년부터 브뤼셀의 아카데미 데 보자르(Academie des Beaux-Arts)에서 수학하면서 미술공부를 시작하였고, 이후 10여 년간 입체주의와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제작한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 경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창조해 나가기 시작했고, 1927년부터 3년 간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과의 교류를 위해 파리에 머물기도 했다.
1924년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인 앙드레 브르통의「제1차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기점으로 결성된 초현실주의는 제 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촉발된 다다이즘(Dadaism)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성과 합리주의로 대변되는 서구문명 전반에 대한 반역을 꿈꾸었던 예술 운동이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함으로써 이성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 상상력의 세계를 회복시키고 인간정신을 해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사용해 거의 추상에 가까운 작품을 제작했던 것과 달리 마그리트는 사과, 돌, 새, 벨, 담배 파이프 등 우리에게 친숙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모순 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들을 동일한 화폭에 결합시키거나, 어떤 오브제를 전혀 엉뚱한 환경에 위치시켜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을 이용한 작품들을 주로 선보였다.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 기법은 어떤 사물을 원래 있던 환경에서 떼어내 엉뚱한 곳에 갖다놓는 ‘고립’, 독수리를 돌의 재질처럼 변형시키는 식으로 사물이 가진 성질 가운데 하나를 바꾸는 ‘변경’, 성채와 나무 밑 둥을 결합하는 식의 ‘사물의 잡종화’, 산 속의 거대한 유리잔처럼 작은 사물을 엄청난 크기로 확대하는 식의 ‘크기의 변화’,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두 사물을 나란히 붙여놓는 ‘이상한 만남’, 두 사물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 하는 ‘이미지의 중첩’,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사물이 한 그림 안에 존재하는 ‘패러독스’ 등의 방법으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1940년대에 들어서 마그리트는 기존의 작업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양식의 작업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인상주의 시기와 바슈(vache) 시기의 작업이 그것이다. 인상주의 작가, 특히 르누아르의 영향을 반영하는 주제와 화려한 색채, 표현적인 붓 터치로 특징지어 지는 마그리트의 인상주의 시기 작품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했던 시기의 불안감과 억압적 상황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된다. 바슈 시기는 1947년 단 2주에 걸친 예외적인 실험으로 프랑스의 야수주의에 대한 영향과 동시에 풍자를 반영하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인상주의 시기와 바슈 시기를 제외하면 마그리트의 작업은 1930년대 초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주제와 이미지(오브제의 데페이즈망, 단어의 사용, 인간의 조건, 중절모를 쓴 남자)가 평생의 작업에 걸쳐 다양하게 변주되어 등장한다고 할 수 있다.
오브제의 데페이즈망 뿐 아니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로 대표되는 말과 사물의 관계를 다룬 작품들, 현실의 3차원 공간과 캔버스 위의 2차원 공간 간의 모순을 다룬 ’인간의 조건‘ 등 마그리트의 예술은 우리의 상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기발한 발상, 관습적 사고의 거부,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시적인 조형성 등은 초현실주의자로서의 마그리트의 면모이다. 그러나 초현실주의가 꿈과 무의식, 욕망의 세계에 보다 경도되었던 것에 비해 마그리트의 작품은 철저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논리적이며 철학적인 근거를 가진다. 실제로 철학에 조예가 깊었고, 화가라는 이름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던 마그리트는 철학자처럼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작가였다.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림, 상식을 뒤엎는 창의적인 사고를 자극하는 그의 그림은 시대를 초월하고 동·서양의 구분을 넘어 음악(비틀즈의 음악과 애플 레코드 사의 사과모양 로고), 영화(매트릭스 시리즈), 문학(김영하의 <빛의 제국>), 교육(대학 입시 논술 고사 문제 및 어린이용 창의력 교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여전히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면모가 바로 마그리트를 초현실주의의 거장에서 더 나아가 20세기 미술의 거장으로 칭하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마그리트의 대표적인 회화 작품 뿐 아니라 2006년 여름 프랑스 파리의 마이욜 미술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던 마그리트의 드로잉전과 역시 비슷한 시기에 파리의 유럽 사진미술관에서 열렸던 마그리트의 사진전에 소개되었던 사진 및 영상작업 등이 대부분 소개되어, 마그리트의 삶과 예술을 다채롭게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나의 그림을 상징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작품의 진정한 본질을 무시하는 것이다...... 회화를 접하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의미를 찾게 된다...... 사람들은 편안해지기 위하여 의지할만한 것을 원한다.......상징적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본질적인 시적 요소와 이미지의 신비함을 간과하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신비감을 감지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떨쳐버리고 싶어 할 것이다. 그들은 두려워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라고 물음으로써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만약 신비함을 거부하지 않는다면 완전히 다른 반응을 할 것이다. 다른 것을 묻게 될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
‘그의 작품에 관한 연구는 완벽한 지적 능력을 요하는 경향이 있어서 미술가의 미적, 회화적 관심사라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자의 탐구의 대상이다. 무미건조하고 사실적인 그의 양식은 종종 비회화적이고 아카데믹하다고 묘사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명확한 사고를 보여 주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마그리트의 회화는 생각을 눈에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 사고는 관념이 아닌 이미지와 함께 나간다. 이러한 회화의 의미는 기존의 어떠한 문학적인 설명이나 해석으로도 설명되지 않지만, 우리의 상식적인 믿음을 끊임없이 연구, 분석하고 존재의 모순을 조정하기 위하여 애쓴 철학자의 기질을 나타낸다.’
-수지 개블릭, 『르네 마그리트』
<홈페이지 발췌 http://www.renemagritt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