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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내내 낮잠을 자다가 전날 쉬지 않고 하루 종일 섬 여기저기를 쏘다녔더니 피곤했나봅니다. 일찍 잠이 들었는데, 조금 열어놓은 커튼 사이로 창이 환해지면서 눈이 떠졌어요.
방안에서 바라본 일출입니다.



일찍 일어난 김에 아침 해변을 보러 갈까요?







11월 아침인데도, 물이 별로 차지 않습니다. 



피라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옛항구엘 내려가서



이런 배를 타고 네아 카메니 분화구 투어를 갑니다.



절벽에 난 동굴에 문과 벽을 덧지은 건물들이 인상적입니다.





다시 배를 타고 유황유천으로 가는데, 세상에나, 온천에서 150미터쯤 떨어진 곳에 배를 세우고는, 여기서부터 헤엄쳐 가랍니다.

"여기는 깊이가 10미터 되고요, 물은 차요. 저기로 가면 따듯해요"

배에 60명쯤 탔던 듯한데, 10명쯤 헤엄쳐갔지요.





다시 피라로 돌아오는 길에는, 케이블카를 타거나, 걸어올라가거나, 노새를 타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당나귀가 아니라 노새더군요. (분화구 투어 길에 만난 캐나다 사람한테서, 말과 당나귀와 노새의 차이를 들었습니다. 놀라운 가축의 세계.)





늦은 오후부터 다시 바람이 불더니, 새벽에 크레타로 가는 배가 취소되어서, 다음날 비행기로 돌아왔습니다. (11월부터 3월까지 크레타로 가는 배는 일주일에 두번밖에 없고, 비행기는 아주 없어져버립니다.) 크레타의 크놋소스를 보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우니, 다음에 꼭 다시가야지 합니다.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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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사람 2007-11-2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도 죽기 전에 꼭 에게 해를 여행하고야 말리라!!!!

말과 당나귀와 노새의 차이를 몰랐단 말야?
[메밀꽃 필 무렵] 배울 때 국어선생님이 안 가르쳐 주셨어?
그 허생원의 늙은 노새 때문에 배웠는데~~~ ^^;;
 

첫날 밤부터 바람이 심하게 불더니 다음날 일어나보니 밤새 비행기와 페리가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섬을 떠나야 할 사람들 발이 묶여서 호텔이 복작복작합니다. 피라 시내에 나갔더니 가게들도 거의 다 문을 닫았습니다.



바람이 심해 배가 항구에 들어오지 못하고 서 있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쥬얼리샵에 가서 귀고리를 하나 사면서,
 
이런 날이 잦으니? 이런 날엔 뭘 할 수 있니?

등등 물어보다가

이런 날 다니긴 어딜 다녀, 집에 쳐박혀 있어야지... 어쩌구...  와인 한잔 줄까?

이래서, 마시다보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한잔 더 얻어마시고, 돌아와서 책을 조금 읽다가는 오후 내내 잠들어 버렸어요. 일어나보니 늦은 저녁,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겠고, 어제 사다놓은 오렌지와, 가방에 컵라면이 있기를 다행입니다. 

그런데도 다음날은 거짓말처럼 맑아져, 아침을 먹자마자 차를 빌려서 섬 여기저기를 돌아보기로 합니다. 첫날 이아의 노을을 보러 갈 때도 그랬고 섬 구석구석 가고 싶은데 여정을 뽑아보니, 버스가 한시간에 한대 꼴로 있어서 아무래도 불편할 것 같더군요.



이왕 렌트하는 거, 독일차를 빌리고 싶었는데 수동밖에 없습니다. 오토매틱은 전부 "키아"이거나 "현다이"라는군요. 렌트할 때는 역시 다른 걸 몰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조금 더 비싸기는 했지만, 꾸역꾸역 한국차가 아닌 걸 찾아서 빌린 게 일본차, 이거.





다시, 이아 가는 길에.







바다를 볼 수 있는 찻집은 그저께의 그 집만 문을 열었어요. 웨이터가 알아보고 반가워하네요. 카푸치노를 한 잔 마시면서 수다를 떱니다.





어제 폭풍으로 날아가고 망가진 게 많다고, 파라솔이 날아다닌 해프닝을 한참 이야기합니다. 이아는 예쁘지만 텅 빈 것 같다 하니, 10월까지로 시즌이 끝나면 비즈니스의 절반은 문을 닫고 내륙으로 가버린답니다. 11월이 지나면 섬에서 농사를 짓거나 주민 상대로 사업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게 문을 닫는답니다.



아무디 항구에서 올려다본 이아.



할아버지들이 어제밤에 굴러내린 돌덩이를 치우고 있습니다.



까마리 비치에서 점심을 먹고.



화산석으로 된 해변이라 까맣습니다.





자꾸 길을 잃어버립니다. 길이 구불구불하니 지도가 별로 도움이 안되고. 뻔한 데를 찾아가는데 표지판은 왜 있다 없다 하는 걸까요? (저녁에 식당에서 궁시렁거렸더니, 어제 폭풍으로 표지판들도 많이 쓰러져버렸다는군요.)



길찾기를 포기하고 아무렇게나 갔더니, 처음에 가려고 했던 페리사 비치가 나왔습니다.







화장실을 쓸 겸, 어느 식당에 들어가 커피 한잔 시켜 마시고 일어나는 길에 안쪽 테이블에서 자꾸 와서 앉으라 합니다. 속을 채운 버섯이랑 무슨 자잘한 생선이랑, 그리스 음식 맛 좀 보라고.

어디서 왔니? (이 질문 아주 지겹습니다)
아, 내 아는 누구가 코리아 가봤는데 좋다더라,
우리는 이아에 산다. 언제 산토리니 왔니? 이아 가봤어? 좋지?
피르고스의 카스텔리는 봤니? 그거 좋은데, 꼭 보러 가려무나. 
와인도 마실래?

아뇨, 운전하고 있어서 못마셔요.

아저씨는 이미 와인에 취해서 기분이 몹시 좋으시네요 --괜찮아 괜찮아, 마셔,
아줌마는 --운전하고 있으면 당연히 안되지, 권하지 말아요,

나는 내버려두고 이제 둘이 내가 와인을 마시네 마네로 옥신각신합니다.

노을은 다시 이아에 가서 보고 싶었는데, 아까 이아 찻집에 웨이터가 "또 올거지?" 묻길래 "아마 그럴거야" 라고 대답했는데, 또 길을 잃어서, 피르고스에 가려고 했던 건 아니고, 결국 피르고스의 카스텔리에서 해 지는 것을 바라봅니다.











피르고스 언덕에서는 멀리 피라, 더 멀리로 이아가 내려다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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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7-11-19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드뎌 돌아온 건가?
사진만 봐도 눈이 시원하네.
지도나 표지판이 문제가 아니라, 니가 원래 길치 아니냐? ㅋㅋ

좋은사람 2007-11-20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까마리 비치는 까만 모래라서 까마리 비치인 거야? ㅋㅋ
이리저리 길을 잃고 헤매도 가려고 했던 곳이 나오고,
그렇지 않더라도 좋은 풍경을 볼 수 있으니 헤맨 게 속상하진 않겠네.
 

오후 3시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를 떠나 산토리니 섬으로 가는 페리입니다.





4인실을 예약해서 어느 모녀와 캐빈을 함께 쓰게 되었습니다. 말이 안 통하니 눈 마주치면 웃고만 말았는데, 저녁 먹을 때쯤 되니 할머니 부시럭 부시럭 샌드위치를 꺼내더니 반을 잘라 권합니다. 

"괜찮아요. 갑판에 올라가서 사먹을까 해요. 모자라지 않으세요?"

그제야 서로 영어가 통하는 줄 알아서, 딸이 말을 옮겨줍니다.

"충분해요. 우리랑 나눠 먹어요."

어디로 가느냐, 어디서 왔니, 아, 산토리니 좋은 데지, 재밌게 놀다 가렴, 담엔 우리 사는 섬에도 들러 보려무나 (이름이 너무 어려워서 기억하질 못하겠어요. ㅠㅠ) 이야기를 하고, 오렌지와 젤리도 얻어 먹었습니다.

공항에서 책갈피라도 사올걸... 맛있다, 고맙다는 말만 하고 답례로 아무것도 드릴 게 없네요. 저보다 먼저 한밤중에 내렸는데, 잠결에 인사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동틀 무렵 산토리니 아티니오스 항구 도착.
항구가 칼데라 안쪽에 면해 있는 셈이라 차로 10분 넘게 절벽을 거슬러 올라가야 마을이 나옵니다. 호텔 주인이 "KIM" 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픽업을 나와 있었어요.








피라 시내의 광장이라는 것이 이렇게 쪼만합니다.



아침을 먹고 들어와 한잠 자고, 여행사에 가서 나흘 뒤에 크레타로 가는 배를 예약하고, 이아의 노을을 보러 갑니다.





 



















정말이지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입니다.
노을지고 찻집에서 산토리니 와인을 한 잔 마시고 돌아왔습니다. 화산토에서 자란 포도로 만들어 독특하고 맛있습니다.

저녁은 호텔 근처의 식당에서 권한 싱싱한 한치구이. 역시 맛있었어요. (맥반석구이 오징어로 저녁을 먹었달까... ㅎㅎ) 와인을 jar 에 담아 내오고 작은 유리컵을 줍니다. 동네 사람들은 집에서 와인을 만들어 이렇게 마신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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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사람 2007-11-20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부러워~~. 잘 놀고 왔어? 사진 참 좋다.
 

근래 본 영화 :
공포물을 못 보니까 참말로 볼 것 없다. 여름 극장은 심심하고 무섭다. 포스터들만 봐도 섬뜩.
시간을 달리는 소녀, 캐리비언의 해적, 해리포터와 불사조기사단, 나누와 실라의 모험-- 이 최근에 본 영화의 전부이고 그러고보니 CGV 한곳만 갔네.... 
일본인디필름 페스티벌의 몇 개 표시만 해놓고는, 종로도 압구정도 멀고 귀찮아서 말았다.

이제 봐야지 하는 영화는, 스타더스트와 심슨가족.

TV 시리즈 심슨가족은, 상당히 미국적인 것들을 미국적이지 않은 화법으로 보여주거나, 미국적이지 않은 것들을 미국적인 화법으로 보여주는 것이 매력, 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적이다" "미국적이지 않다" 는 건 상당히 모호한 개념이고... 심슨가족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말고는 분류도 잘 되지 않는... 계속 미끄러지고 빠져나가는 기호이다.

심슨가족은 미국의 현대 가족과 이웃들을 희화하고 풍자하는가 하면, 가족간의 사랑, 우정 같은 가치들은 거침없는 풍자 속에서도 따듯하게 (신파적 감동은 아니고) 담아낸다. 풍자의 수위나 메세지가 애매해서이도 하지만, FOX 랑은 참 안어울리는데 싶다가도, FOX 가 할만도 하지, 라고 끄덕이게도 되고.

어쨌거나 심슨가족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귀여운 프로모션을 한다. 심슨가족이 사는 마을 스프링필드에 인도 이민인 라푸가 운영하는 Kwik E Mart 편의점이 있는데,



실제로 Kwik E Mart 가 미국에 11개, 캐나다에 1개 생겼다. 7-Eleven 을 바꾸어서.

Burbank, California 의 Kwik E Mart


편의점에... 줄서서 들어간다.







들어가면 심슨가족의 캐릭터들이 여기저기 있고, 보통의 편의점 물건들과 함께, 호머가 좋아하는 야채 없는 핫도그며, 심슨가족에만 나오는 상품들 --크러스티오 씨리얼, 버즈 콜라, 스퀴시, 핑크 도넛-- 도 판다. 하늘색 스퀴시는 어째 독극물 같고, 핑크 도넛도 정상적인 사람이 먹게 생기지는 않았는데, 엄청 잘 팔린다. 오는 사람마다 핑크 도넛 6개들이 박스 두세개씩 사가더라.
나는 바트가 좋아하는 Radioactive Man 코믹북과 젤리를 사왔다.



귀여운 홍보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핑크 도넛 팔리는 수준으로 봐서는 영화와는 별개로 그것만으로도 돈 많이 벌겠다. 현실과 비현실도 모호해지는, 심슨다운, 유쾌한 경험. 

덤으로 이번 여행의 사진들도 여기에.  



San Diego La Jolla 해변


기가 강하게 방출되는 Vortex가 네 군데나 있다는, 붉은 바위의 도시 - 세도나, 아리조나





해저물녁의 그랜드캐년



저녁 햇살이 비치면 계곡의 바위색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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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0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 심슨 ㅠㅠ.
너무 보고 싶어요. 미국에 계신가보죠? 와 사진으로나마 구경잘했습니다. 감사드려요.
추천!

urblue 2007-08-21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슨가족 재미있더라만, 끝나고 나면 좀 허무하다. 문제 해결이 하나도 안 된 상태로 갑자기 해피엔딩 분위기라 말이지.
사진 멋지다. 그랜드캐년에서 돌쪼가리라도 하나 주워다 주지. 흑흑.

merced 2007-08-23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이님,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urblue님, 저어기... 돌쪼가리를 원할 줄은...
 

여행기는 대체로 감상적이며 일상적인 것도 특이하고 대단히 좋거나 나쁜 것으로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에서 뒤적거려본 많은 여행기가 그러하고, 그도 그럴 것이 여행은 설렘과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반하며 여행자에게는 일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야 아무려면 어때, 하지만 짜증이 날 때는 책이 호들갑 감상 일색인 경우 -- 바라보는 풍경마저 쓸쓸하고 외롭다거나, 현지인과 잠시 나눈 몇마디에 많이 감동받고 대단한 인연인 척 한다거나, 화려한 낮거리의 이면에 빈민가의 풍경이 가슴을 저민다거나 (어딜 가도 그렇지 않나요? 당신이 사는 곳의 대조적인 사람살이를 들여다보고 그렇게 가슴아파한 적이 있나요? 라고 쏘아주고 싶다) -- 그런데 웬만한 여행기가 이러고보니 여행서는 인터넷 서점에서 고르기가 무섭고, 반대로 좋은 여행기를 읽으면 많이 반갑다. 예를 들면:

느린희망, 유재현 지음, 그린비, 2006

사색기행,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4

에세이 온 아메리카, 이윤기 지음, 월간에세이, 1997

 

김영하의 여행자 - 하이델베르크 (아트북스)는 반가운, 재미있는 책이다. 책은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조금을 곁들인 단편소설과, 하이델베르크의 이런저런 풍경 사진들과, 그 사진들을 찍은 카메라에 대한 에세이.

1. Short Story 밀회

작가가 소설가니까 소설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 없으면 실망이지.
주인공(=화자)은 하이델베르크에 간 "여행자"이다. 첫 세장을 읽는 동안은 어? 이것도 에세이인가 했었다. 화자의 시선이 좀 이상하다 싶더니 결말에 이르면 숨이 턱 막힌다. 바로 첫페이지로 돌아와 두 번 읽게 되는, 가슴이 미어지는 이야기.

홍콩 같은 데서 쇼핑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일주일씩 잘 놀고 오는 친구가 있다. 친구는 "여행한다" 가 아니라 거기서 "살아보는" 거라고 한다. 나는 "거기서 밥벌이를 하지 않고 일주일 후건 한달 후건 돌아갈 집이 있는 경우에는 거기서 산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아. 여전히 이방인의 여행일 뿐이지" 라고 말했었다.

서사-플롯의 호흡이 좋은 소설가이고보니 거기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욕심내지 않을까 별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작가가 하이델베르크를 짧게 여행했는데, 사는 사람인 척 이야기를 썼다면 다음 시리즈는 안 읽었을 것이다. (허구라고 해서 삶의 무게를 가벼이 재거나 현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앞으로의 시리즈에도 계속 재미있는 "여행자"의 이야기가 있기를 바란다.

2. Eyes Wide Shots in Heidelberg 내가 만난 하이델베르크

하이델베르크의 전경을, 도시의 대표적인 풍경을 담은 사진들이 아니고, 카페에 앉아서 한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고성에 오르고 상점을 기웃거리는 여행자의 눈이 가닿은 이런저런 풍경이다. 방금 읽은 소설의 사진 버전이라 해도 좋다.  

3. Essay 콘탁스G1과 장 보드리야르

사진기와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즐거울지도 모르겠다. 8개의 카메라로 8개의 다른 도시를 담는다 한다. 사진기와 별로 친하지 않은 나는, 여행 자체에 대해 쓴 세번째 파트가 좀 더 길었으면 좋겠지만.


이 책을 읽고 하이델베르크에 가고 싶은가 하면, 그건 아니다. 하이델베르크에 간대도 나는 "죽음을 생각하기에 좋은 곳"과는 다른 생각을 할 것이고, 무서우니까 공동묘지는 절대로 안 간다. 소설가 김영하의 팬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여행자>를 좋아한다. 여행자니까 할 수 있는 말들 볼 수 있는 것들을, 여행자의 한계를 넘지 않고, 독특한 구성으로 맛있게 풀어낸 책.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하이델베르크를 둥실 떠다니다 온 것 같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 몰래 빌려온 것만 같은,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모두가 가본 도쿄, 나도 가고 친구들도 가서 들은 이야기도 본 사진도 많은 도쿄, 거기서 <여행자>는 무슨 색다른 이야기를 할까, 다음 책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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