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9 #시라는별 32

무말랭이 
- 김상순 

똑 눈 온 거 겉제? 
달밤에 살짝 나와서 보면 
누가 디라서 뿌려 놓은 눈이라. 
달밤에는 냄새도 희미해져서 
누가 봐도 소복소복 눈이라. 

허, 엄마가 시를 읊소. 

시가 뭐꼬? 

엄마가 방금 읊은, 그런 게 시요. 

내사 그런 건 모르고. 
소복소복 눈이 쌓이모 
너그가 강생이메로 구불다가 
낯이 빨개가 방에 들오면 
눈에 묻어 온 산 냄새가 
온 방에 퍼지디라. 

엄마 진짜 잘한다. 

그러면 이 시 좀 갖고 가라이. 
짐치매로 치대서 삭혀서 묵든지 
더 말리서 물 낋일 때 넣어 무라. 


다리서 : 바람에 날려 알곡을 가려서 
강생이메로 : 강아지처럼 
짐치매로 : 김치처럼 


어미 김상순이 입으로 내뱉는 말들은 아들 홍정욱에게 언제나 시로 들렸다. 어미가 툭툭 뱉어내는 시어들 속에는 어미가 살아오는 동안 ˝생짜배기로 몸에 익힌 세상 이치˝와 어미 ˝몸속에 통째로 녹아든 삶의 골짝골짝˝(8쪽)이 깃들어 있었다. 어미만큼은 아니지만 아들도 살아보니 무어라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쓸쓸함과 서러움이 매운 고추 삼킨 마냥 입천장을 얼얼하게 데우는 날이 무시로 찾아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날이면 슬쩍슬쩍 펼쳐 보고 싶어, 그런 날이면 그냥 안겨 보고 싶어 어미의 말들을 받아적기 시작했다.

어미 얼굴 한 번 더 보고 옮겨 쓰고, 어미 소리 한 번 더 듣고 옮겨 쓰기를 거듭하는 아들을 보고 늙은 어미가 말한다. 

˝너만 듣고 말지, 말 같지도 않을 것을 어디다 알린다 말이고? 참 별일을 다 한다. 남사스럽게 . . . . . . 
내가 살면서 배운 거는 이것뿐이다. /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 숭본다.˝(150쪽) 

김상순이 구술하고 홍정욱이 옮겨 쓴 <<살아 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남들이 숭본다(흉본다)며 아서라, 말어라 라고 한 어미의 말조차 아들 홍정욱은 그대로 받아썼다. 이 아들은 불효자일까. 그런데 책을 읽어 보니 내가 김상순의 자식이었어도 어미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의 가락들을 잡아다 오선지에 옮겨 그리고 싶겠더라. 구수하고 쫀득하고 재미지고 살가웁다.

안도현 시인은 안도현의 문장들 <<고백>> 5부 ‘시적인 순간‘에 대해 이런 문장을 썼다. 

˝시에서 묘사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는 대상의 현상을 생생하게 그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묘사의 생생함이 대상의 본질에 이르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묘사를 통해 대상과 시적 화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201)

김상순은 묘사, 대상, 현상, 시적 화자 등등의 어려운 말들은 아마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소복이 쌓여 있는 무말랭이들이 달빛을 만나면 누군가 밤사이 뿌려 놓고 간 눈가루가 되고, 눈 쌓인 벌판을 마구 뒹굴던 아이들이 방에 들어오면 ˝눈에 묻어 온 산 냄새가˝ 온 방에 퍼진다고 하는 표현이 묘사가 아니고 무엇일까. ‘무말랭이‘와 ‘눈‘이라는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는 생생한 묘사가 아니고 무엇일까. ​

김상순의 시들은 삭혀 묵고, 끓여 묵기 참 좋다. 온몸 구석구석이 시큰해지고 따스해진다. 


홍정욱 작가가 딸이라 내멋대로 착각했네요. 수정했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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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29 11: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짐치매로 치대서 삭혀서 묵든지
더 말리서 물 낋일 때 넣어 무라.
.....................
눈에 묻어 온 산 냄새]
묘사에 감탄!
풍경이 그려지고 사물의 형상이 시야에 들어오고
향기가 느껴지는
4월 마지막 목요일시!
읽고 또 읽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04-29 12:57   좋아요 3 | URL
그죠. 이런 분들의 말씀 들으면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삶에서 배운 것들이 진짜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읽고 또 읽으려구요. 이 분 시는 소리 내 읽었을 때 그 맛이 더 진해지네요.^^

새파랑 2021-04-29 12: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엄청 구수한 느낌의 시네요. 어머니 시인 너무 감각적임. ‘눈에 묻어 온 산 냄새‘라니~!!

행복한책읽기 2021-04-29 12:59   좋아요 3 | URL
배운 감각이 아니고 삶이 준 감각이겠죠. 김치 익듯 몸에 밴 감각 같아요. 절대 배울 수 없는데, 배우고 싶은 감각^^

희선 2021-05-03 0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니 말을 받아 적은 시 이정록 시인도 썼더군요(《어머니 학교》 그 책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런 사람 더 있을 거예요 김용택 시인도 어머니 말씀을 많이 적었던 것 같습니다 산문으로 본 듯합니다 김용택 부인이 시어머니 말씀을 적었다던가 시인은 어머니가 만드는 걸까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5-04 00:44   좋아요 0 | URL
오호. <어머니 학교> 냉큼 검색하겠슴요. 희선님도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처럼 연상 작용으로 책들이 툭툭 튀어나오네요. 시인은 . . . 어머니 덕을 보는 듯합니다.^^
 
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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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8 뭔가 해보고 죽자고! 

알라알라북사랑님이 올린 글 보고 '내게 필요한 책'이라는 느낌이 확 들어 도서관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게 만든 책. 느낌은 정확했다.
여든 개의 여름과 일흔 다섯 개의 여름을 본(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표현 같다) 늙은 언니들이 어찌나 맘에 쏙 드는지 'ㅈㄴ 멋있어,' 'ㄱ 멋있어' 라고 마구마구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알래스카의 윤여정 같은 걸크러쉬 언니들. 
고려장을 당하듯 부족민들에게 버림 받기 전의 이 언니들의 모습은 딱 뒷방 노인네들이었다. "끊임없이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쑤시다고 불평을" 하고 "자신들이 늙고 약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언제나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17쪽) 
늙어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여겨져, 아니 그보다 거추장스런 짐짝으로 여겨져 부족민들은 두 여인만 남겨 놓고 떠났다. 그것은 죽음을 선고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생각지도 못한 투지가 솟아오르기도 한다지. 일흔다섯 개의 여름을 본 '사(별이라는 뜻)'는 이대로 주저앉고 싶지 않아, 주저앉을 수 없어 하는 마음이 솟구쳐 여든 개의 여름을 본 '칙디야크(박새라는 뜻)'에게 뜻밖의 다부진 제안을 한다.
"친구야.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고.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게 아니란 말이야."(29쪽) 
그리하여 예전보다 더한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알래스카에서 두 노인의 겨울나기 투쟁이 이어진다. 생존투쟁은 지난날의 기술을 기억해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모닥불 피우기, 작나무를 네 조각으로 잘라 가죽끈과 연결해 눈신발 만들기, 올가미와 토끼 덫 만들기, 다람쥐 사냥하기, 가슴팍에 가죽끈을 묶어 썰매 끌기, 연어 껍질로 말린 물고기 담을 주머니 만들기 등등등. 두 여인은 자신들이 지팡이 없이 여러 마일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그러나 . . . . . .그들의 몸은 노쇠하다. 잠을 자고 난 아침이면 몸뚱이가 천근만근이고 두들겨 맞은 듯 여기저기 쑤시고 결리는 것을 넘어 통증이 뼛속 구석구석 파고든다. 누운 이 자리서 몸을 까딱하지 않고 그만 딱, 눈을 감아 버리고만 싶다. 그러면 딱, 행복할 것만 같다. 
그런데 . . . . . . 이제 그만 생의 끈을 놓아도 되겠다 싶은 순간 찾아든 절박한 소피 마려움.  
"그녀는(칙디야크) 그 욕구를 무시하려 애썼지만, 방광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끙 소리를 내며 그녀는 소변을 참았다. 금방이라도 오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겁에 질린 그녀는 튕겨지듯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깜짝 놀라는 친구의 시선을 받으며 버드나무로 다가갔다."(68쪽)
사느냐 죽느냐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하게 만든 것은 위대한 사상도, 중대한 결심도 아닌 고작 생리적 현상이었다. 방광의 묵직함은 팔순 노인의 뻣뻣한 몸뚱이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이 장면은 읽는 순간에도, 글로 옮겨 쓰는 순간에도 큭큭거리는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의 최고 명장면!!!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겨울을 무사히 넘긴 두 늙은 여인은 다시는 맛보지 못할 줄 알았던 인생의 감미로운 순간을 음미한다. 나중에 자신들의 부족민들을 만나 함께 지내게 된 후로도 지나친 도움을 사양하고 "새로 발견한 독립성"(161쪽)을 끝까지 즐기며 산다.  
만나면 얼싸안고 싶은 이 늙은 언니들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첫째, 무조건 몸을 움직여야 해. 둘째, 친구를 곁에 두어야 해. 부지런히 수다를 떨어야 해.' 두 언니 덕에 좀 살 것 같다. ^^  늙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우울이 몰려드는 이들에게 읽기를 권한다. 


알래스카 아타바스칸족 토박이인 저자 벨마 월리스가 들려주는 엄마 이야기도 참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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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28 11: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친구야.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고.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게 아니란 말이야]
오늘의 밑줄 쫘악~५✍⋆*
사느냐 죽느냐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하게 만든 것은 위대한 사상도, 중대한 결심도 아닌 ㅎㅎㅎ
SO피 마렵소 ㅎㅎㅎ
우와 이책 매력적임
알래스카의 두여인의 생존!생로 불사의 스토리
이런책 발굴하신 북사랑님도 멋지고
재치 만점 행복한 책읽기님
리뷰도 재미 만점!!

행복한책읽기 2021-04-28 13:21   좋아요 2 | URL
네. 이 늙은 언니들 넘 멋져서 감동이었어요. 현대판 고려장 당하기 전까지 열나 움직여!!!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아 근데 pc로 썼더니, 북플에서 문단 나누기가 전혀 안 되어 있군요. 꺼이~~~~

얄라알라 2021-05-01 0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행복한 책읽기 님께서 올려주신 이 멋진 리뷰를 5월에 읽다니요! (그래봤자 이틀 지각)

˝알래스카의 윤여정˝ 키야!!! 카피라이터하셨음, 최고연봉 받으실듯.

콕, 딱, 집어 표현해주셨네요

만족스럽게 읽으셨다니, 괜히 뿌듯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02 12:59   좋아요 0 | URL
이런!! 이 멋진 댓글을 이제야 발견하다니 ㅋ 지두 이틀 지각. ㅋㅋ 두 언니들 느무느무 좋았어요. 저자가 쓴 원주민 이야기 더 읽고프던데 번역된 책이 이것뿐이더라고요. 아쉽아쉽. 숨어 있는 책들 계속 공유해주세용~~~^^

2021-05-01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02 13:05   좋아요 3 | URL
저는 이 언니들의 생존투쟁을 보고 아무리 풍족해도 봉양받는 삶을 거부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할일 없을 때 투덜이 할머니들이었잖아요. 자신들이 고생고생해 모은 넉넉한 식량을 부족민들에게 나눠줄 때 이 언니들의 당당한 모습이 얼마나 짜릿하던지. 중요한건 물질이었어!!! 라고 결론내리게 되었다는^^;;; 저희 엄니가 일을 딱 놓은 그 순간부터 급속도로 늙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일의 귀함을 알아요. 저는 이 언니들처럼 때로 힘들게, 때로 즐겁게 일하다 죽을라구요 ㅋㅋ

얄라알라 2021-05-02 1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올 초, 방태산 화타라는 분이 쓰신 건강 에세이 5권 읽고 배운 걸 한 줄로 요약하라면, ˝걸을 힘 있다면 걷고 일해라.˝였어요^^ 행복한 책읽기님의 댓글보니 새삼, 그말이 정녕 맞는가벼.^^ 이런 생각 드네요^^
 
어제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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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어제>>를 몇 시간만에 다 읽었다. 이로써 한국에 출간된 이 작가의 책은 다 읽은 셈.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워낙 강렬해 이후 세 작품에선 큰 감흥을 못 느꼈다. 순서를 달리 읽었다면 느낌이 달랐을까. 아무튼, 크리스토프는 자신의 첫 작품을 능가하는 작품을 쓰지 못하는 것에 자괴감은 느끼지 않았을까.

<<어제>>를 읽으면서 왠지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지망생이자 공장노동자인 주인공 토비아스 호르바츠가 내게는 작가의 분신처럼 보였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사춘기 소년 같고 답답하기만 한 호르바츠가 대체 어떤 답을 찾을지 궁금해하며 읽었는데, 마지막 문장에서, 아! 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어제는 내내 무척 아름다웠다. 숲속의 음악, 내 머리칼 사이와 너의 내민 두 손 속의 바람, 그리고 태양이 있었기 때문에." 

소설에 들어가기 전 문장이다. 지나간 시간들은 왜 아름다워 보일까. <<어제>>에 묘사된 오늘은 전혀, 조금도, 눈꼽만치도 아름답지 않다. 인생이 너~~~~무 구질구질해 보인다. 망명자들의 삶이 다 그러했을까만, 어쨌든 읽는 내내 고구마를 삼키는 마냥 목이 멨다. 꺽꺽. 

이 책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들은 이것이었다.

베리는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죽었음이 판명되었다. / 로베르는 욕조에서 동맥을 끊고 죽었다. / 알베르는 "너희는 내 똥이나 먹어라"라고 우리말로 적은 쪽지를 남기고 목매달아 죽었다. / 마그다는 감자와 당근 껍질을 까고 나서 바닥에 앉아 가스벨브를 열고 오븐에 머리를 밀어넣은 채 죽었다. (60-61쪽) 

이들의 죽음은 과연 자살 시도의 결과였을까. 그보다는 "저는 다만 쉬고 싶었을 뿐입니다."(17쪽) 라는 주인공의 말처럼, 더는 이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은 피곤함 그리고 무력감의 결과 같았다. 

헝가리 혁명의 여파를 피해 스물한 살의 나이로 갓난아이를 안고 국경을 넘은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2011년 스위스 뇌샤텔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76세였다. 


이제 나에게는 희망이라곤 거의 없다. 전에는 그것을 찾아서 끊임없이 이동했다. 나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을? 나도 몰랐다. 그러나 인생은 있는 그대로의 것,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인생은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이어야 했고 나는 그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찾아다녔다. / 나는 이제 기다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방안에서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바깥세상에는 그럴듯한 어떤 인생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 P41

저녁에 공장을 나서면 장을 보고 저녁 먹을 시간밖에 없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공장에 나오려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내가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자문한다. - P47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무엇이든 해보려고 시도했다. 무력감이 감정 중에 제일 무서운 것이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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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27 12: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신기하네요 저는 방금 ‘문맹‘ 리뷰 썼는데 ㅎㅎ 전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만큼은 아니어도 ‘어제‘도 나름 좋았었어요, 근데 ‘거짓말‘이 워낙 엄청나서 ^^ 책읽기님의 기분이 뭔지 알거 같아요~

행복한책읽기 2021-04-28 09:42   좋아요 3 | URL
ㅋ 맞아요. 거의 같은 시간대에 리뷰를 올린 듯했죠. 저도 <어제> 나쁘지 않아요. 근데 요즘 좀 우울 모드라 책을 읽는 동안 주인공이랑 같이 다운돼 미치는 줄 알았슴요.^^;;;

미미 2021-04-27 13: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강렬함에 있어선 <존재의 세가지..>가 최고인듯. 각 작품 어떤 순서로 쓰였는지 찾아봐야 겠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04-28 09:43   좋아요 3 | URL
그럼 지는 미미님이 찾아봐 주는 순서 낼름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ㅎㅎㅎ

초딩 2021-04-27 20: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존재의 세가지
그것을 넘을 작품을 쓸 필요도 없을 만큼
그 책은 충분히 강렬한 것 같습니다 ㅎㅎ
어제는 그래도 보고는 싶네요 :-)

행복한책읽기 2021-04-28 09:45   좋아요 3 | URL
초딩님. 우문현답이심요. ‘뛰어넘을 작품을 쓸 필요도 없을 만큼 충분히 강렬하다‘에 오른손 번쩍!! ^^ 크리스토프 작품은 국내 출간된 게 몇 권 없으니 무조건 다 읽는 걸루다 ^^

붕붕툐툐 2021-04-27 22: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냥 기대를 놓고 읽어야겠어요. 그럴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작가잖아요~😉

행복한책읽기 2021-04-28 09:49   좋아요 3 | URL
맞아요 맞아요. 충분히 매력적인 작가에요. 저는 이분이 그 많은 일 겪고도 저 나이까지 살아내신 것에 감탄했어요. 어쩌면 어린아이 같기만 한 문체를 고수한 것은, 늦게 배운 외국어로 쓰는 탓도 있겠지만 마주하기 힘든 사건들과 거리 두기를 하고 싶어서이기도 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20210426 #시라는별 31 

비켜준다는 것 
- 안도현 

둥글레 새싹이 
새싹의 대가리 힘으로 
땅을 뚫고 밖으로 고개를 내민 게 아니다 

땅이 제 몸 거죽을 열어 비켜주었으므로 
저렇드키, 저렇드키 
연두가 태어난 것 

땅이 비켜준 자리 
누구도 구멍이라 말하지 않는데 
둥글레는 미안해서 초록을 펼쳐 가린다


안도현 시인의 <<북항>>에 들어 있는 시다. 얼어붙어 땅이 따스한 기운에 속살을 들썩이는 초봄에 올렸으면 더 좋았을 시다. 둥글레 새싹이 ˝땅을 뚫고 밖으로 고개를 내민˝ 것은 ˝땅이 제 몸 거죽을 열어˝ 길을 터 주었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나는 이 시를 이렇게 읽었다. 밀어올리는 힘과 열어주는 힘이 만나 ˝연두˝를 태어나게 하고 ˝초록˝을 키웠다고. 두 힘이 합쳐져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했다고. 순우리말로 본다는 뜻의 봄을 열어보였다고.

며칠 전 책의 날이 결혼기념일이었다. 내가 열어준 길 따라 자기네 힘 닿는 데까지 대가리를 밀어올려 내 몸 거죽을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온 우리집 두 연두는 파릇파릇한 초록이 되었다. 내게 난 구멍을, 요즘 들어 바람 숭숭 드는 그 구멍을 두 초록이 따로또같이 바람 들지 않게 자신들의 푸름으로 가려준다. 물론 이따금씩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네 바퀴로 굴러가는 가족 자동차의 앞바퀴 두 개가 점점 닳고 있다는 것. 뒷바퀴 두 개에 자리를 비켜줄 날이 언제고 도래하리라는 것. 그렇다 해도 아직은, 언제나 봄날 같기만 한 아이들이어서 내게는 봄이 조금 더 오래 머물겠구나.

둥글레의 어린 새싹은 나물을 해먹기도 한단다. 신선과 선녀가 먹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게 해준다고. 새싹은 이미 먹기 글렀으니 둥글레차라도 마셔 볼까.(첫 사진)

내가 찍은 사진은 광대나물과 꽃잔디다. 광대가 분장을 한 꽃 같다 해서 광대나물이고 꽃이 땅을 뒤덮듯이 피는 꽃이라 꽃잔디 혹은 지편 패랭이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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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26 06: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조금 지난 결혼기념을 축하드려요 ^^ 땅이 제 몸을 열어 길을 터 주었다는 시각은 너무 신선하고 좋네요. 봄을 열어준 거라니~

행복한책읽기 2021-04-27 12:46   좋아요 1 | URL
고마워요~~~~ 그죠. 시인의 감각은 정말 다르다는 걸 또 느꼈어요.^^

붕붕툐툐 2021-04-26 23: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결혼기념일 축하드려요~ 좋은 날 결혼하셨네요!
둥글레가 저렇게 생겼는지 처음 알았어요!!
꽃이름을 잘 아는 사람들 참 부러워요!!

행복한책읽기 2021-04-27 12:48   좋아요 2 | URL
툐툐님 고마워요. 저도 꽃이름 전혀 몰라요. 산책 하다 보니 봄이라 야생화들이 자꾸 올라와서 식물앱에 이름 물어보고 구글이나 네이버에 검색해요.^^

scott 2021-04-26 23: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책읽기님에 어여쁜 새싹 둘!에게
사랑을 ˛ε♡з¸
점점 닳고 있는 행복한 책읽기님 자동차 앞바퀴에
안전 핀을 Ƹ̵Ӝ̵Ʒ
4월 만물의 화려함이 화알짝
행복한 책읽기님
가정에 웃음꽃이 만발 하기를 바래요 !!
💐

행복한책읽기 2021-04-27 12:50   좋아요 3 | URL
와우. 안전핀!!! scott님 감솨. 당분간 잘 굴러가게 되었네요. scott님 덕에 웃음꽃 만발하겠음.^^

희선 2021-04-27 0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싹이 땅을 뚫고 나온다고만 생각했는데 땅이 비켜주기도 하는 거였군요 아기도 엄마가 밀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 나오려고 한다늘 말 본 적 있어요 아기도 나오느라 고생하겠지요 그런 아이들이 많이 자라서 좋고 그런 모습을 지켜봐서 좋을 듯합니다 책의 날 언제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뜻있는 날이 결혼기념일이어서 좋으시겠습니다 지났지만 축하합니다 앞으로도 네 식구 건강하게 즐겁게 사시기 바랍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4-27 12:52   좋아요 2 | URL
고마워요 희선님. 결혼기념일은 맛난 거 먹은 날로 기억될 듯요. 사실 늘 사는 거라 기념일이 뭐 대수인가 싶답니다.^^;;; 희선님도 건강하게, 즐겁게 지내면 좋겠어요.^^
 
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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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닌》만큼은 아니지만 황정은 글은 역시 좋다. 폐부를 찌르는 것이 여전하다. 아무리 붙어사는 가족이어도 그 속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속속들이 모르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다만 다가갈 뿐. 곁에 있을 뿐.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그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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