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얄의 추천 4 - Seed Novel
오트슨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미얄의 추천 4권


  ― 최고의 임팩트


  오트슨 작가의 『미얄의 추천』은 디앤씨미디어의 한국 라이트노벨 브랜드인 시드노벨에서 나오는 소설입니다. 혹 라이트노벨에 관한 설명이 필요한 분은 복잡하고 긴만큼 위키디피아의 설명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아무튼 『미얄의 추천』은 한국 라이트노벨 브랜드로 처음에 나온 소설 라인업 중 한 편이었습니다.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가 30만 부가 넘게 팔리는 대박을 치면서 독자인 저도 한국 작가의 라이트노벨을 읽어보고 싶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읽은 것이 바로 이 『미얄의 추천』이었습니다. 『미얄의 추천』을 선택한 것은 역시 다른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인터넷에 연재되었던 『갑각 나비』 때문이었죠. 오트슨 작가는 기존에 출간작이 없는 신인 작가였지만, 온라인상에서는 『갑각 나비』로 주목을 받고 유명세를 가지고 있던 작가였습니다. 『갑각 나비』는 안정된 문장과 독특한 구성, 묘한 분위기와 설정 등 참신한 장르 소설이었고 많은 독자들에게 인정받고 사랑을 받은 작품이었습니다. 『갑각 나비』는 장마다 다른 구성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사전 형식으로 진행한다든가, 오래 전 게임북처럼 번호를 이동해가며 읽는 형식 등 놀라운 형식 실험이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트슨 작가가 라이트노벨을 시도한다는 것은 조금 의외였으나, 이미 『갑각 나비』에서 얻은 기대감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책을 구입했습니다.

  그렇게 처음 『미얄의 추천』을 읽었을 때는 감탄과 실망이 반반씩 섞였습니다. 일단, 감탄을 한 것은 라이트노벨의 속성을 작가가 정확히 꿰뚫고 썼다는 점입니다. 라이트 노벨은 캐릭터 소설이라 불릴 만큼 캐릭터성이 가장 중시되는 장르입니다. 『미얄의 추천』은 히로인인 ‘미얄’이라는 캐릭터의 확실한 개성 확립에 성공합니다. 여중학생에 뜬금없는 비유에 때론 독설과 거침없는 행동, 알 수 없는 신비주의, 막강한 능력, 이야기를 해결하는 기계장치 신의 역할까지. 그 외에도 초록 누님이라는 캐릭터나 주인공 민호의 캐릭터 등 주요 인물의 캐릭터 정립을 꽤나 깔끔하고 신속하게 끝냈습니다. 처음 써보는 라이트노벨을 그것도 오랜 준비기간을 가지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로 소화해내는 작가라니, 역시 대단하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죠. 한 편으로는 그러나 라이트노벨 장르에만 충실히 따른 작품이라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작가가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쓴다는 느낌도 왠지 모르게 들었고 그 동안의 라이트노벨에서 보인 특징들이 눈에 많이 띄는 것이 도리어 단점으로 느껴지기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 이상의 재미를 주었으므로 다음 권 역시 계속 구입하게 되었지요. 사실 3권 까지는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고 계속 조금씩 정보를 흘려주었지만 만족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원패턴으로 이야기가 진행된 감도 있었고(물론 3권에서 중간에 초록 누님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등 참신한 시도는 이어졌지만요.) 이런 식으로 가다간 이야기의 흥미가 점점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허나 국내에서 이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라이트노벨을 쓰는 작가도 흔치 않고 『갑각 나비』를 읽고 또 그의 단편들을 읽고 얻은 기대감은 항상 책을 구입하는데 어떤 망설임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4권은 앞의 권들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이야기이며 다른 내용을 담고 있고 또한 가장 큰 임팩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현재 여러 감상평들이 내용을 언급하면 재미가 떨어진다고 하는 말처럼, 이번 권은 아무 정보 없이 읽는 것이 좋습니다. 따라서 내용에 대한 이러저러한 감상 글은 쓰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번 권을 통해서 이야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고, 그 동안 조금씩 흘리던 정보를 대부분 알려주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이야기들과 앞으로 궁금한 것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번 권에서는 상당히 많은 정보를 제공해줍니다. 따라서 독자는 큰 만족감을 느끼고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책 분량도 380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두툼하고 진행되는 이야기도 상당히 많으며 반전이나 이야기도 꽤 흥미롭습니다.

  1년을 맞이한 『미얄의 추천』은 이제 어느 정도 정리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펼치려 하고 있습니다. 이번 독자 간담회에서 작가는 원래 3권 정도로 가볍게 쓸 작품이었는데, 워낙 반응이 좋아서 계속 제대로 해보겠다고 말했지요. 그건 필시 작가에게 『갑각 나비』라는 작품이 없었다면 초기에 그토록 큰 반응을 이끌어낼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또한 한 편으로 그 동안의 작품들은 『갑각 나비』에 어떻게 보면 짐을 지우고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4권을 통해서 작가는 새롭게 의욕을 내는 것 같습니다. 설정들을 풀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또 1년을 맞이하면서 좀 더 새로운 의욕을 내는 게 느껴지는 권이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이번 권에 뒷표지를 보면 이제 “갑각 나비”라는 글자는 사라지고 “귀재 오트슨이 전하는 전기고딕로망”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사실 독자의 마음으로는 언젠가 나오리라 생각하는 『갑각 나비』를 하염없이 기대하며 『미얄의 추천』을 그 공백 중에 읽는 기분이었는데, 이번 권에서 받은 임팩트로 좀 더 기다릴 수 있는 여력이 생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서, 이번 권에는 그 동안 1~3권이 진행되면서 언급되었던 말이나, 버릇, 사건 등에 숨겨진 이유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독자는 기존에 읽었던 책들과 연관시키면서 머릿속에서 퍼즐을 맞추게 되는데, 이것이 글의 재미를 주는 쾌감으로 다가옵니다. 이는 단편이라면 한 이야기 안에서 모두 소화해내야 하지만, 장편이라면 이런 식으로 여러 권을 통해서 연결되는 재미가 크죠. 이것을 ‘퍼즐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2006년에 학산문화사에서 나온 무크지 『파우스트』에서 나스 기노코 인터뷰 중에 나스 기노코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또, 아까 이야기했던 ‘퍼즐적 요소’에 관해서입니다만, 인간의 뇌는 받아들인 정보에 대해 최적화 작업을 합니다. 평소에 받아들인 여러 가지 정보를 늘 정리해 나가는 것이 인간의 뇌죠. 그런 면에서 생각하면, 제각각인 정보를 읽다가 마지막에 모든 게 정리가 되면 뇌가 기분 좋게 느끼게 될 겁니다. 그 자체만으로 순수하게요. ‘여태까지의 제각각이었던 정보는 이런 뜻이었구나’라며 인덱스에 붙여서 정리하게 되죠. 이게 기본적인, 인간의 공통적인 점 아닐까요?”(『파우스트』, 「나스 기노코 파워 인터뷰!」, p167)

  『미얄의 추천』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지나치게 ‘미얄’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에 기대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작품 제목부터 내용 전체를 장악하는 ‘미얄’이라는 캐릭터의 중요도 때문에 어쩔 수 없겠지만, 이번 4권처럼 이제는 이야기 자체가 힘을 발휘했으면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번 4권에서는 과거 사건들을 언급하면서 어리석은 비극, 유치한 희극 등으로 기존에 사건들을 스스로 지적하며 무마하고 있는데(이런 것은 물론 이번 권에서 그렇게 된 ‘이유’가 밝혀진다.) 앞으로는 스토리와 플롯으로도 이런 임팩트를 계속 준다면 더 즐거운 독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아마도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겠지만 이번 권에서는 얼굴도 못 비친 ‘초록’의 캐릭터도 더욱 강화되고 잘 살아나야 하겠죠.

  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로 근사하고 압도되는 느낌으로 즐겁게 읽었습니다. 어느 정도는 사건이 일단락되고 마무리되는 느낌도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다음 권이 기대가 되는 편이었습니다. 이미 여러 감상평들도 호평이 많군요. 3권까지 『미얄의 추천』을 읽은 독자라면 반드시 4권을 읽어야할 것입니다. 그럼 다음 미얄의 추천을 기대하며 이만 글을 접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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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8-08-12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윈픽스님 오랜만에 인사 드려요.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twinpix 2008-08-12 23:07   좋아요 0 | URL
앗, 안녕하세요!^^
축하 감사합니다. 리플 달아주신 덕분에 알게 되었어요!^^/
 
부엉이와 밤의 왕
코우교쿠 이즈키 지음, 김소연 옮김, 이소노 히로오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부엉이와 밤의 왕


  ―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


  『부엉이와 밤의 왕』은 제13회 전격소설대상의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즉, 수많은 경쟁을 뚫고 작품성과 재미를 인정받은 글이라는 소리다. 대상을 수상했다는 점과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구입을 고려하고 있었으나, 실제로 구입하게 된 것은 최근이었다. 단 권이라 구입하는 데 부담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꼭 읽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터넷에서 이 소설을 강력 추천하는 글들을 읽게 되었고 결국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야기는 생동감 있고, 캐릭터는 순수하고 강직했으며, 마지막에는 감동이 있는 멋진 이야기였다. 한 권 내에서 이 정도로 충족감을 주는 작품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올해 나온 NT노벨 중 가장 인상적인 책 중에 하나이며 국내 라이트노벨을 통틀어도 순위권에 들만큼 잘 쓰였고 우수한 작품일 것이다.

  지금까지 읽은 단 권짜리 라이트노벨은 대부분 만족을 주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은 상위에 들 정도로 만족을 주었다.

  한 소녀가 마물들이 산다는 숲으로 들어간다. 소녀는 특이하다. 자신을 ‘부엉이’라고 부른다. 인간이라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부엉이는 마물들이 사는 숲의 왕인, 밤의 왕을 만난다. 밤의 왕은 달의 눈동자를 가진 숲의 절대적인 지배자다. 소녀는 밤의 왕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리고 밤의 왕이 자신을 먹어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이 소설의 특징은 처음부터 설명이 아니라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소녀가 어떠한 일을 겪어서 숲에 들어가게 됐는지를 지루하게 설명하지 않고 일단 숲 속에 들어선 장면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독자는 더 이야기에 쉽게 몰입하고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도대체 이 소녀의 정체는 무엇이고 이 세계는 어떠한 세계인가. 처음에는 그것이 답답함을 줄 수도 있지만, 차근차근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곧 소녀의 정체, 소녀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밤의 왕’이 가지고 있는 과거도 알게 된다. 이야기는 인간들이 숲에 살고 있는 소녀를 알게 되면서, 소녀를 구하기 위해 마물들이 사는 숲으로 쳐들어오는 것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소녀는 숲 속에서 행복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멋대로 소녀의 행복을 재단하고 구하기 위해 나선다. 밤의 왕은 잡히고 소녀는 기억을 잃게 되는데…….

  이 소설은 뒤에 실린 해설처럼 평이한 문장으로 쓰인 동화 같다. 이야기도 짧고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이 전개되는 것도 아니다.(쉽게 보자면 ‘부엉이’와 ‘밤의 왕’의 ‘boy meets girl’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상세한 배경 설정이나 세계관은 필요하지 않다. 딱 필요한 몇 가지 내용만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인지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 단순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읽히고 끝내 감동까지 선사하는 이유는, 주인공들의 순수함, 끝없는 올곧음, 우직함 때문이다. 글에서 이런 캐릭터를 만나는 것은 반갑다. 현실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이기 때문일까? 그 어떤 풍파나 더러움에도 꾸밈없는 올곧음을 밀고 가는 캐릭터는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조금 어리석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순수하고 밝은 캐릭터. 이런 캐릭터는 어떤 상황에서도 빛을 발하고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만든다.

  이 책은 평소에 라이트노벨을 읽지 않던 독자에게도 쉽게 권할 수 있는 책이다. 또한 다양한 독자층에게 비슷한 감동을 줄 수 있기도 하다.

  밤의 새 ‘부엉이’가 전하는 감동적이고도 따뜻한 이야기를 읽고 싶은 독자라면, 여기 『부엉이와 밤의 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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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
김이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황금가지)

  ― 한국 환상 문학은 어디까지 왔는가

  한국 환상문학 단편의 시작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이 출간되었다. 이름 그대로 한국 작가들이 쓴 환상 문학 단편이다. 그동안 한국 장르 문학은 단편이 설 자리가 없었다. 단편을 꾸준히 씀으로써 장편을 쓸 역량을 발전시키기에는 단편을 발표할 만한 지면이 존재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 장르 월간지 『판타스틱』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 전까지 단편을 개제할 곳은 그나마 5년 동안 꾸준히 유지된 환상문학웹진 《거울》(http://mirror.pe.kr) 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년 간 무료로 운영되는 웹진이 여태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오히려 작가진을 늘리고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고 이제는 다양한 책을 출간했다는 사실은 무척 놀랍다. 그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매년 환상문학웹진 《거울》은 동인 형식으로 한 해를 결산하는 4권의 중단편선을 발간했으며 가연(박애진), 은림, Fool(박성환), JXK160, ida(김보영) 등의 개인 단편선을 출간했다. 또한, 소재별 중단편선으로는 흡혈귀 단편선인 『혈중환상농도 13%』와 외계인 단편선 『제15종 근접조우』, 그리고 고양이 단편선 『달과 아홉 냥』을 출간했다. 이처럼 환상문학웹진 거울은 활발하게 창작되고 출판되며 독자에게 관심을 받는 장편과 달리 척박하기 그지없는 국내 장르 단편 시장에서 꾸준히 제 역할을 지켜냈다. 마침내 그 성과가 모이고 모인 결과, 황금가지에서 정식으로 환상문학웹진 《거울》 기획 단편선이 출간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5년 동안 환상문학웹진 《거울》이 쌓아온 역량을 많은 독자들에게 직접 선보이는 자리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이번에 출간된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이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전부를 담고 있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그 동안 끊임없이 매 달 합평회를 갖고, 창작을 하면서 이룬 성과를 어느 정도 보여주는 기회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아직 소식을 못 들은 독자나, 혹은 들었어도 구입을 망설이는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가이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써보았다. 혹은 이미 읽은 독자들에게는 같은 독자로서 감상을 나누는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럼 이제 열 편의 환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미소녀 대통령

  김이환 - 대학 졸업후 본격적으로 글쓰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2004년 장편소설 『에비터젠의 유령』을 발표하며 이름을 알렸다. 2007년에는 새로운 스타일의 환상 장편소설 『양말 줍는 소년』을 출간하며 화제가 되었다. 《거울》에는 콜린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발표하고 있으며 개인 블로그에 독립영화 리뷰를 쓰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경호원이 갑자기 허리 숙여 인사했다. 나는 그가 허리를 숙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대통령을 보았다.
  여고생 교복을 입은 예쁜 문근영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문근영 대통령이에요.”


  예전에 문근영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쳤을 무렵, 디씨인사이드 사이트 등에서 문근영 대통령이라는 사진이 올라오곤 했다. ‘귀여운 국민 여동생이 대통령이라면?’ 상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사진들이 많았는데, 이 단편은 거기서 착상을 얻은 소설이다.
  일단 이 기발한 발상 때문에 처음에는 재미있는 느낌을 받는 단편이다. 2007년 겨울 출간하여 널리 호평을 받았던 『양말 줍는 소년』의 저자인 김이환이 쓴 이 단편은 한국의 대통령이 문근영인 평행 세계로 가게 된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양말 줍는 소년』에서도 환상의 나라의 이름이 현실 세계의 유명인들이라는 착상이 재미있었는데, 이 단편 역시 그런 점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맛이 느껴진다고 할까?
  다만, 이 작품이 단편으로서 충분히 구조적인 완성도와 재미를 갖추었냐고 묻는다면 약간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하나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즉, ‘낯설게 하기’나 은유로 소설이 쓰이지 않고 주제를 그대로 캐릭터 간의 대사와 서술로 직접 말하는 것은 김이 빠지게 되고 글의 깊이를 줄이고 독자가 상상하고 추측하는 재미를 없앤다. 좀 더 숨기고 다양한 생각할 여지와 독자가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 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가령, ‘롤리타의 조종사’ 같은 용어만 해도, 출간작에 실리기 전 웹진 《거울》에서는 ‘마리아의 아들’이었다. 앞의 용어보다 훨씬 수수께끼 같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다양한 상상을 할 여지를 준다.) 두 번째는 구조적인 완결성의 문제인데, 하나의 완결된 단편이 아니라 장편 소설의 프롤로그로 읽히는 면이 있다. 열린 엔딩을 의도하고는 있지만, 그 보다는 중간에 끊긴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작가는 이 글을 장편으로 개작하기도 했다.(작가 홈페이지에서 grovenor.cafe24.com 감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이 작가의 최고 작품은 『양말 줍는 소년』이다. 앞으로 노블레스 클럽으로 나올 장편 소설도 기대 중에 있다.

  크레바스 보험사

  김주영 - 하이텔 과학소설 동호회에서 옴니버스 장편소설 『나호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거울》 2호에 「크레바스 보험사」를 발표하며 시간의 잔상 필진으로 합류했다.
  장편소설 『열 번째 세계』가 제2회 황금드래곤 문학상에서 가작을 수상하며 출간되었다. 또한 『나호 이야기』 중 엄선된 에피소드들을 묶어 『그의 이름은 나호라 한다』를 출간했으며, 전자책으로 단편집 『노래하는 늪』을 출간하기도 했다.


  “어머나, 그런 소리 마세요.”
  직원이 고개를 살짝 흔들며 말했다.
  “우리는 고객님의 보험료가 그렇게나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의무를 이행했어요. 지금까지 그 많은 사고에서 살아남은 것이 운이라고 믿고 계신 건 아니시죠?”


  이 소설은 약간은 가벼운 이야기고 진부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기대치가 높은 독자에게는 실망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단편선에 선정한 것은 기획후기에 나온 대로 판타지를 거의 접해 본 적이 없는 독자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고를 것이라는 기획 의도 때문일 것이다. 또한 흔히들 말하는 ‘장르 판타지’와는 다른 작품을 고르기 위한 의도대로 이 작품은 현대를 다루고 있다.
  그런 까닭에 환상문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편하게 읽기 좋은 소설이겠으나, 이미 장르 소설을 오래 읽은 독자들에게는 평범한 소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상한 보험이 존재하고 그로 인한 환상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들은 누구나 쉽게 상상이 가능한 범위 내의 이야기이며 그동안 많이 이야기 되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MBC에서 오래전 방영했던 ‘테마게임’을 연상케 하는 단편이기도 하며, 일본의 ‘기묘한 이야기’ 같은 시리즈물과 유사한 식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편하게 읽을 수 있고 흡인력은 좋은 편이다. 현재 웹진 《거울》에서 김주영 작가의 시간의 잔상 게시판을 보면 「옥션」이라는 단편이 있는데 이 단편 역시 「크레바스 보험사」와 유사한 형식의 소설이다. 이 작가의 단편을 살펴보면 이렇듯 「크레바스 보험사」나 「옥션」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는 하나 어디선가 본 듯한 진부한 소재를 가지고 쓴 단편들이 있고(단순하게 신기한 소재만 풀어놓기 때문에 아쉽고 가벼운 작품들. 소품 같은 느낌.) 「다른 방식의 진화」나 「찬란한 눈동자들의 강림」, 「반격」 같은 무게감 있고 새로운 상상력의 작품들이 있다. 아무튼 간에 장르 독자들에게는 작품 선정이 조금 아쉬운 경우라고 하겠다. 환상문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이 단편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마산 앞바다

  정소연 - 환상문학웹진 《거울》 창간호에 번역 필진으로 합류, 19호에 「입적」을 발표하고부터 시간의 잔상에도 참여하고 있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어둠의 속도』, 『언더월드 : 그린북』 등을 번역했으며 인문․사회학적 주제를 다루는 SF에 관심이 많다.
  제2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만화 부문에서 스토리를 담당한 「우주류」로 가작을, 제48회 서울 대학교 대학문학상에서 「마산 앞바다」로 가작을 수상했다. 《Happy SF》 제2호에 「앨리스와 티타임」을, 창비 청소년 문고 중 SF 소설집인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창비)에 「비거스렁이」를 수록했다.


  아무리 교과서에 나오는 자연현상이라 해도, 출렁이는 청록색 물 위로 기억 속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모습을 실제로 처음 마주하는 충격은 결코 작지 않다. 마산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무엇이냐 물으면, 열에 여덟아홉은 알고 지내던 사람의 얼굴을 마산 앞바다에서 또렷이 보았던 때라 답하리라.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단편은 ‘마산’이라는 지리적 위치가 중점이 된 단편이다. 여기는 ‘마산’이나 ‘한국’이 존재하는 우리와 같은 세계이면서도 죽은 자들의 얼굴이 바다 위 ‘림보’라는 공간에 나타나는 평행 세계이다. 특히 마산 앞바다는 한국에 있는 유일한 림보일 뿐 아니라 그 상태가 안정적이고 선명도가 높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으로 나와 있다. 따라서 관광지일 뿐 아니라 축구 경기장이 세워지고, 아시안 게임을 굳이 마산에서 열기도 한다. 림보를 드러나게 하는 것은 바닷물이나 망자들이 아니라 그 곁에 살아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는 분명 세계적인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으리라.(특별한 관광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럴 법한 설정이랄까.) 예전에 웹상에서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오른 글은 주류문학에서 활동하는 작가인 박형서의 「노란 육교」였다. 두 소설 다 공통점이 있다면 죽은 이들의 모습이 사후에 물리적으로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지점에서 말이다. 마찬가지로 관광지처럼 사람이 몰리는 것도 유사하다. 「노란 육교」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이 같은 위치가 발생하는데 죽은 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게 포착된다. 춘천 등에서는 구경꾼들이 자전거 행렬을 방해하지 않도록 횡단보도 대신 육교를 설치했고 눈에 띄도록 샛노랗게 칠한다. 둘 다 같은 소재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마산 앞바다」는 여성 화자를 중심으로 심리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 세밀한 필체로 감수성 어린 글을 적어나가고 있고(이 작가의 장점이랄까.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에 실린 「비거스렁이」 역시 그런 점이 돋보이는 글이었다.) ‘죽은 이의 모습이 사후에도 보이는 세계’라는 설정에 치중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 내면의 다른 문제와 결부시킨 소설이다. 따라서 두 소재의 결합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독자와 부자연스럽게 느끼는 독자의 감상이 다르게 나타날만한 소설이었다.(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으며 따라서 처음 읽는 독자들을 위해서 더 이상의 내용 언급을 하지 않는다.) 「노란 육교」는 3인칭으로 쓰여 졌고 이런 현상에 의해서 발생될만한 다양한 사건들을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다. 즉, 한 명을 중심으로 한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또 인류가 어떤 식으로 반응을 보였으며 결국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마다 같은 소재를 어떤 식으로 쓰는지 비교해볼 수 있어서 흥미로운 단편이기도 했다.

  문신

  박애진 - 엽기발랄한 상상력이 빛나는 한 소녀의 성장기 「왜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지?」로 제1회 이매진 단편 공모전에서 판타지 부문을 수상했다. 《거울》 창간호에 중편 『아도니스』를 발표하며 시간의 잔상 필진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전자책으로 중편소설 『아도니스』와 단편선 『신체의 조합』을 출간했다.
  《엄마는 생각쟁이》에 「만 원」을 게재했으며, 단편집 『누군가를 만났어』에 「선물」외 4편을 수록했다.


  “벌은 준다고 죄가 없어지지는 않잖아요. 자기가 어떤 죄를 지은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 틈에 가서 살면 그만이고요. 하지만 얼굴에 새긴 죄는 없어지지 않아요. 누구나 그 사람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아니까 그 사람에 대해서는 뭘 조심하면 되는지 알 수 있죠.”

  여행자들이 있다. 그들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기묘한 풍습과 이야기를 듣고 영주에게 글을 써 보낸다. 여행기로 먹고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 여행자가 다다른 곳은 바로 죄를 문신으로 새기는 곳이었다. 눈에 보이는 곳부터 문신을 새기기 때문에 처음에는 가벼운 죄를 지어야 한다는 그곳의 이야기가 독특하게 다가왔다. 과연 내가 그곳에 산다면 죄를 얼마나 지을까, 온 몸을 도배하게 될까. 그런 의문부터 어떠한 죄들부터 새길 것인가, 하는 순서의 문제까지. 이 소설은 이런 문신을 새기는 곳에 대한 이야기와 주인공인 여행자의 삶을 함께 이야기 하고 있다.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돌아다녀야 하는 여행자의 삶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소설이었고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었다. 환상문학이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여행가는 근사하게 다른 세계로 이끌어주었고 여행에 동참시켜 주었다. 이 여행자의 다른 여행지를 둘러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윌리엄 준 씨의 보고서

  백서현 - 1999년 무렵부터 중․장편들을 써왔다. 환상서고, 딤비 등의 창작 커뮤니티들에서 활동한 바 있으며 현재는 《거울》과 지면상으로만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2001년 『환상서고』에 「스위티 숍」을 실으며 장르에 입문했으며, 2007년 장편소설 『데이 브레이커』를 출간했다. 《거울》 57호에 「윌리엄 준 씨의 보고서」를 발표하며 시간의 잔상 필진으로 합류했다.


  “누구냐고? 네가 매번 그 심술궂은 입으로 중얼거리는 이지! 나 외의 누가 네 그 쓸모없는 투덜거림을 들을까? 누가, 누가, 누가 말이냐? 윌리엄, 윌리엄…… 정말 모르겠어? 이 요정은 없다고 믿는 꼬마야!”

  이 글은 요정 의사 연작 시리즈의 한 편이다. 연작이지만 다른 단편들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이 요정 의사 시리즈의 핵심은 아일랜드 요정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구성과 ‘요정의사’가 가지고 있는 매력에 있다. 어떻게 보면 귀여운 동화 같은 느낌의 글들이며,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좋아할만한 이야기들이다. 커다란 반전이나 치밀한 구성이 주가 되는 단편이라기보다는 달달한 사탕 같은 잘 구은 계란쿠키 같은 느낌의 단편인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가장 드러난 점은 2001년에 출간되었던 환상문학 단편집인 『환상서고』에 실렸던 「스위티 숍」에 있다. 이 단편에서는 ‘요정의사’에 대한 설명부터 다양한 정보가 언급되어 있고, 이 단편을 읽고 이번에 「윌리엄 준 씨의 보고서」를 읽는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기도 하다.

  아일랜드(Ireland).
  영국, 아니 대브리튼섬과 북아일랜드의 연합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의 일부였으나,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온 외딴 섬. 오랜 옛날부터 자신들의 동반자였던 거대한 또 하나의 섬을 거부한 곳.
  켈트의 피를 잇고, 아직도 그들만의 피를 간직하고 있는 폐쇄적인 땅. 그곳의 이름은, 어쩐지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어떻게 말해야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 섬에 살고 있는 존재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은밀한 비밀인 것을…….
  아일랜드(Ireland), 그것은 기독교라 불리는 종교에 밀려 버린 오래된 옛 신들이 머무는 섬. 비록 퇴락했다곤 하나, 바다 건너 어딘가에 존재하는 요정의 나라 ‘타르 나 노이(Tir―Na―N―Og)’에서 영원히 사는 자들이 있는 오래되고 기나긴 세월의 잔재가 구석까지 파고들어 있는 그런 곳.
  이제는 옛 신의 자취마저 없고, 기계의 문명이 들어서 피폐되어가는 땅들이 더 많은 수도 더블린과 달리, 아직까지 슬리고 지방에는 기계들이 들어올 낌새 따위는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 땅을 지키는 요정들이 그것을 싫어해서 아닐까. ― 『환상서고』, 「스위티 숍」, 드림필드, 백서현, 71~72쪽

  4) 요정 의사(Fairy Doctors) : 마녀와 반대되는 존재. 요정의 무리들을 친구로 두고, 타고난 힘을 지니고 있는 이들. 약초에 능하고 요정들의 장난을 고치는 역할을 한다. 요정을 볼 수 있으며, 주로 이들은 체인징 칠드런(Changing Children, 뒤바뀐 아이)으로 요정의 세계에서 7년 간 살고 온 아이들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말이 적어지며, 요정들이 출몰하는 장소를 맴돈다. 결국 이들은 시인이 되거나 위대한 문학가 혹은 요정 의사가 되어 요정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된다.(아일랜드의 위대한 시인들과 문학가들은 모두 리난 시이의 노예이거나, 요정의 사랑을 받은 이들이었다.) ― 『환상서고』, 「스위티 숍」, 드림필드, 백서현, 79쪽


  한 편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볼 수 있는 밝고 따뜻한 이야기다. 잔잔한 웃음을 머금고 귀엽고 어리숙한 인물들과 요정들을 지켜보는 재미라고 할까. 또한, 기획의도에 부합하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단편 중에 하나이기도 하기 때문에 선정된 것으로 보인다.

  서로 가다

  이수현 - 제4회 한국판타지문학상에서 장편 『패러노말 마스터』가 우수상을 수상하며 출간한 바 있으며 《거울》 창간호부터 필진으로 참여해 왔다. 번역가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역서로는 어슐러 K. 르귄의 헤인 연작 『빼앗긴 자들』, 『로캐넌의 세계』, 『유배 행성』, 『환영의 도시』 외에 『크립토노미콘』, 『디스크월드』, 『유리 속 소녀』 등이 있다.


  북쪽. 얼음처럼 차가운 것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나라. 밤의 어둠이 훨씬 일찍 찾아와 늦게까지 머물러 있는 나라. 그곳에서 바다를 건너 서쪽에는 섬이 하나 있었고, 거기서 더 서쪽에 작은 섬이 또 하나, 그리고 그곳에서 계속 서쪽으로 가면, 추운 바다 위에 흰 섬이 있다는 것이다. 흰 섬. 관세음보살이 있다는 보타락가산. 관세음보살의 아버지 아미타불이 다스리는 서방정토.

  이 단편은 13~14세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며 공을 많이 들인 게 느껴질 정도로 섬세하게 잘 묘사되어 있다. 이 글은 약간 난해할 수 있고 쉽게 읽히거나 단순한 구조는 아니나 흡인력이 있고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주인공이 극한의 상황에까지 추구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독자 역시 계속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이 단편선 내에서도 가장 묵직한 글 중에 하나였고, 이야기에 몰입감이 있었으며 우직한 여정과 마지막에 구조 등에서 압도되는 느낌을 받은 글이었다. 단편에서 이토록 장황한 여정과 고난 그리고 그것을 압축하고 몰아치는 느낌이 훌륭했고 글의 무게감이 마음에 들었던 글이다. 웹진 《거울》에 실은 작가의 다른 단편 중에서 추천할 만한 작품은 또 다른 색을 가진 작품들인 「불량 애완용」과 「쓰레기나라의 왕」 등이다.

  할머니 나무

  은림 - 제1회 황금드래곤 문학상에서 여성과 치매에 대한 글쓴이의 따뜻한 시각을 느낄 수 있는 「할머니 나무」로 단편 부문을, 제2회 황금드래곤 문학상에서 「할티노」로 중편 부문을 수상했다. 단편집 『윈드 드리머』에 「샨 데 크레안」을, 『환상서고』에 「Sistory」를 수록한 바 있다. 2008년 《크로스로드》에 「환상진화가」를 실었으며,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 활동 중이다.


  나는 아주 자그마하고 색다른 비밀 한 가지를 갖고 있다.
  그건 내가 곧 나무가 될 것이라는 거다.
  내 어머니와, 할머니, 또 먼먼 할머니처럼.


  한국에서 가장 멋진 환상문학 단편을 쓰는 작가를 꼽아보라면 은림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황금드래곤문학상 단편과 중편을 수상하고 지금까지 이 책을 포함해서 세 개의 단편집에 모두 단편을 실은 것처럼, 은림은 그 동안 꾸준히 환상문학 단편을 써왔고 계속 발전해왔다. 최근에 발표한 단편들은 문장이나 구성, 완성도에 있어서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실린 단편은 작가의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잔잔한 작품이라 평이할 수 있으나 황금드래곤 문학상 수상작다운 면모를 가진 작품이다. 처음 황금드래곤 문학상이 시작 될 때 언젠가 황금드래곤 문학상 단편들을 모아 단편집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이제야 「할머니 나무」가 종이에 인쇄됐다. 하지만 이번 단편선이 웹진 《거울》의 모든 것이 아니듯, 작가의 감동적인 작가의 단편은 많이 있다. 다음에 나올 단편선에 또 멋진 단편을 기대해본다.(이처럼 이번 단편선에서는 기획의도 때문인지 몇몇 작가들은 초기작이 실렸다.) 나는 예전에 이미 읽은 작품이라 이번에는 읽지 않았지만 처음 읽는 독자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초록연필

  배명훈 - 2004년 「테러리스트」로 제46회 서울대학교 대학문학상 단편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이듬해 「Smart D」로 제2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단편 부문에 당선됐다. 단편집 『누군가를 만났어』에 표제작 외 4편을 수록했으며, 《Happy SF》 제2호에 「스윙 바이」, 『2006 과학소설 창작문예 수상작품집』에 「모」,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에 「엄마의 설명력」을 수록했으며, 《크로스로드》 2007년 11월호에 「조개를 읽어요」를, 월간 《판타스틱》 2007년 7월호에 「우주로 날아간 마도로스」, 12월호에 「인섹트 플라이트」, 2008년 4월호에는 「바이센테니얼 챈슬러」를 수록했다. 《거울》 30호에 「다이어트」를 발표하며 시간의 잔상 필진으로 합류했다.


  아무래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신은 왜 하필 악마가 부활하는 날 당일에 살아있을지 아닐지도 모르는 자에게 임무를 맡겼을까. 그걸로 충분하다는 뜻이었을까. 그렇다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이 완전히 다 꺼져버리기 전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박성환, 김보영 등의 작가들과 함께 한국 창작 SF의 희망인 작가. 재미있는 글을 쓸 줄 아는 작가이고, 무엇보다도 매 달 한 편씩 글을 쓴다는 성실성이 돋보이는 작가다. 이미 많은 팬들과 평론가들에게 인정받았으며, 다양한 곳에 작품을 발표했다. 제2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단편 부문을 수상한 「스마트D」의 경우 바로 어떤 사람이 과학기술 창작문예에 응모하기 위해 글을 쓰면서 ‘D'자가 저작권에 걸려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바탕으로 한 단편인데, 심사위원에게 메일로 상황을 설명하면서 긴박감을 조성하는 솜씨가 훌륭했으며 이야기의 몰입도가 상당했던 단편이었다. 이렇듯 뛰어난 흡인력과 안정적인 문장, 기발한 발상 등으로 기대가 되었던 이 작가는 이후에도 웹진 《거울》에 「다이어트」, 「매뉴얼」, 「밀실은 공습 임무 중」 같이 SF, 판타지를 넘나드는 재기 있고 멋진 단편들을 써냈고,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창비, 박상준 엮음, 듀나 外, 2007년 11월)에는 지동설이 아닌 천동설을 주장하는 엄마와 바로 엄마의 설명력에 긴가민가하게 되는 화자, 가족사와 반전 등이 얽혀서 감동을 주는 「엄마의 설명력」 등을 발표했다. 기본이 탄탄한 문장과 깔끔한 구성, 독특한 발상 등이 눈에 띄는 작가로 특히 능청스럽고도 빠져들게 되는 입담이 뛰어난 작가다. 이번에 실린 「초록연필」은 작가의 그런 장점들이 많이 엿보이는 작품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단편 중 하나이다. 한 개 당 오 천 만원이나 하는 명품 연필이 있고, 그 연필이 사라진 것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 볼펜이나 연필 등 필기류가 너무나 쉽게 언제 사라졌는지도 알 수 없게 잃어버린 경험이 많을 것이다.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곧 거대한 스케일로 확대된다. 어느 샌가 사라져버리는 필기류에게 이런 사연이 있었다니! 이 작가의 글은 대개 재미있고 색다르고 멋지다. 역시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오직 읽으라는 말 밖에.

  콘도르 날개

  곽재식 - 《거울》 24호에 「달과 육백만 달러」가 독자 우수 단편으로 선정되면서 《거울》 필진으로 합류했다. 이공계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날카로운 풍자와 위트가 섞인 작품을 발표해왔다. 《거울》 32호에 발표한, 연구원들의 뼈아픈 현실을 그린 「판소리 수궁가 중에서 토끼의 아리아 : 맥주의 마음」이 MBC 베스트극장에서 「토끼의 아리아」라는 제목으로 드라마화 된 바 있다.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했으니까, 목에 깁스라도 두르고 다니면 어때? 그럼?”
  “그런 짓 하면, 그런 짓이 운명을 자초한다니까. 운명이니 예언이니 하는 영화에 그런 거 많이 나오잖아. 아마 목에 깁스를 두르면, 그 깁스 풀려고 하는 날 깁스 자르는 톱날에 다쳐 죽을걸.”
  “그러면 깁스가 아니라, 경호원이라도 고용하면?”
  “그러면 그 고용한 경호원이 배반하는 바람에 죽을 거야. 콘도르 눈동자와 콘도르 발톱 영화에 나와 있는 그 일들은 무조건 그대로 일어난다니까.”


  웹진 《거울》에 작가 소개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이공계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날카로운 풍자와 위트가 섞인 작품을 발표하는, 명실공히 거울의 가장 재미있는 작가 중 하나이다.” 이 말 그대로 작가 곽재식은 명실공히 거울의 가장 재미있는 작가 중 한 명이며 특히 친근하게 읽히면서 위트가 섞인 문체는 아무리 긴 분량이라도 끝까지 읽게 만드는 마력을 가졌다. 이번에 수록된 「콘도르 날개」는 예전에 웹진 《거울》 42호에 발표한 「콘도르 날개」와 제목이 같지만 다른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웹진 《거울》에 실렸던 「콘도르 날개」도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었다. 아주 오래된 웹으로 하는 게임을 발견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아직 안 읽었다면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텍스트로 진행되는 머드 게임의 일종인데 프로그램을 짜서 자동으로 돌려놓으니 늑대를 몇 십만 잡고 늑대왕이 되었다는 설정이나, 게임 서버가 다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소박하게 느껴지면서도 왠지 즐거웠던 작품이었다.)
  일단 이번 단편은 「콘도르 눈동자와 예언대소동」이라는 영화를 잠결에 보면서 그 영화대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도 작가 특유의 문체는 그대로라 즐겁게 읽히고 추억의 「아웃런」 자동차 게임의 언급이나 B급 영화의 향취 등도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기묘하게만 느껴지지만, 나중에 영화 속 일들이 전부 현실로 일어나면서 주인공은 자기가 죽을 운명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웹상에 올라온 작가의 설명을 읽어보면 분량이 지나치게 많아 감정 묘사 등이 삭제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흥미로운 설정 때문에 감정의 기복에 상관없이 쭉 재미있게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만큼 이야기가 워낙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써졌다고 할까? 마지막에 해결 방법이나 구성 등에 있어서는 작가가 의도한 기법이 있고 또 이것저것 생각나는 것이 있지만, 아직 안 읽은 독자들을 위해서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이 작가의 글을 처음 읽는다면, 웹진 《거울》에 올라온 다른 글들 역시 재미있게 읽을 테니 강력 추천한다. 「최악의 레이싱」, 「박시은 특급」, 「콘도르 날개」, 「흡혈귀의 여러 측면」, 「황야의 무직자」 등 뛰어난 재미를 가진 작품이 많다. 한 번 읽으면 순식간에 끝까지 읽게 될 것이고, 다음 글을 클릭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몽중몽

  김보영 - 2004년 제1회 과학기술 창작문예에서 「촉각의 경험」으로 중편 부문을 수상했다. 2006년 《크로스로드》에 「땅 밑에」를 게재했으며, 『얼터너티브 드림』 단편집에 참여하였다. 2005년 전자책 『멀리 가는 이야기』를 출간했고, 2006년 단편집 『누군가를 만났어』에 「종의 기원」과 연작 단편 「미래로 가는 사람들」 4편을, 같은 해 《Happy SF》 제2호에 「진화신화」를, 『2006 과학기술 창작문예 수상작품집』에 「우수한 유전자」를,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에 「마지막 늑대」를 수록했다.
  《거울》 19호에 반전과 역설의 묘미를 보여주는 SF 단편소설 「우수한 유전자」를 게재하며 필진으로 합류했다. 현재 웹진 《거울》에서는 김보영 작가의 초기작들을 모은 SF 중단편집 『멀리 가는 이야기』를 판매하고 있다.


  “그저께 물에 빠졌지.”
  “어떻게 알아?”
  “어제는 옥상에서 뛰어내렸고.”
  “어떻게 알지?”
  “왜 자살했는지 기억나?”
  “모르겠어. 언제나 죽는 것으로 끝나. 아니, 이전에도 언제나 죽는 것으로 끝났는데 이제야 그걸 알게 된 것도 같아. 꿈이 날이 갈수록 생생해지고 있어. 이젠 뭐가 꿈이고 현실인지도 헷갈려.”


  이 글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때로 꿈속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굉장히 몽환적인 글이다.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서사보다는 독자를 꿈 속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드는 환상적인 글이다. 이 단편집에 실려 있는 「서로 가다」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읽는 순간, 압도되는 느낌을 받은 글이었고 묵직하고 혼란스럽고 몽롱한 글이었다. 꿈이라는 소재에 대해서 이토록 집요하게 파고들어가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했고, 그만큼 많은 자료조사와 오랜 시간을 들여서 쓴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근사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게 환상문학이라고 할 수도 있는 작품일 것이다. 불친절한 글이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단편선은 그만큼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세계를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지 않을까 싶다. 웹에서 읽을 때는 어지러운 느낌까지 받았는데, 나중에 다시 시간을 내서 지면으로 천천히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때론 이런 글이 있다. 두고 다시 되새겨보고 싶은 글이.

  리뷰를 마치며

  그동안 환상문학 단편선은 명상에서 나온 『윈드 드리머』와 드림필드에서 나온 『환상서고』 정도 밖에 없었다. 단편을 구독하는 독자층은 거의 없었고, 단편을 창작하는 사람도 없었다. 2001년 『환상서고』가 출간된 지 7년이 지난 2008년이 되어서 황금가지에서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이 나왔다. 그리고 또 웅진씽크빅의 문학 임프린트인 시작에서 같은 제목의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이 나왔다. 그 사이 웹진 《거울》이 만들어져 온라인 상에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할 공간이 되어주었고, 학산문화사에서 무크지 『파우스트』가 나왔으며 장르 월간지 『판타스틱』은 1년이 넘게 잡지를 출간하고 있다. 또한, 세 작가의 단편집인 『누군가를 만났어』, 무협 단편집 『진산 무협 단편집』,  SF 단편집인 『얼터너티브 드림』,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공포 소설 단편집인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1권과 2권,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한국 스릴러문학 단편선』 등등 다양한 장르 단편집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주류문학이 장편 문학상을 확대하고 장편 소설을 활성화 시킬 때, 장르문학도 장편만 출간되는 형태에서 벗어나 단편선을 출간하며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황금가지와 시작 모두 각각 다양한 장르 단편집을 이번에 그치는 게 아니라 몇 년 동안 꾸준히 내겠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그 동안 장편 중심인 장르문학이 단편을 품에 안고 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작가의 역량을 키우고 좋은 작가를 발굴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장르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효과도 발휘할 것이다.
  다시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으로 돌아와서, 이 단편집이 각각의 수상경력이나 기대치에 비해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단편집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선정 기준이나 수록된 작가진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은 7년 만에 나온 여러 작가들의 환상문학 단편집이며,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딛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두 번째 단편집과 세 번째 단편집이 나올수록 더 다양한 작가와 더 많은 이야기들, 완성도 높은 작품들도 기대해 볼만하다. 한국 환상문학은 그동안 기형적이다 싶을 정도로 장편만 출간될 뿐, 단편이 나올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장르 단편 역시 빛을 볼게 되었다. 이것이 전환점이 되어 더욱 한국 장르 문학이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싶다. 그리고 한국 환상 문학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싶은 독자나, 앞으로 한국 환상 문학의 도약을 바라는 독자라면 지금 나오는 장르 단편집들을 한 권씩 구독하기를 바란다. 단편집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부담이 없이 한 권이라는 것에 있지 않겠는가. 단 한 권으로 실력 있고 가능성이 넘치는 작가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고, 마음에 드는 작가를 발견할 수 있다. 짧은 분량에 밀도 높은 단편들을 읽으면서 멋진 환상들을 체험해 볼 수 있고,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십년의 시간이 흐른다면 이 단편집은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실렸던 작가들이 십년 후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을 지 그 동안 얼마나 멋진 작품들을 선보일지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저 막연하게 기대할 뿐이다. 그 기대에 동참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여기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의 세계에 빠져보기를 바란다. 이야기가 주는 환상, 그 속에 담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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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 10대를 위한 SF 단편집 창비청소년문학 5
송경아 외 지음, 박상준 엮음 / 창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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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잃어버린 재미를 찾아서

  창비에서 한국 SF소설집이 나왔다. 창비청소년문학 다섯 번째 시리즈로 나온 것이긴 하지만, SF 단편집이라니! 그것도 한국 SF 작가들의 단편집. 참으로 나오기 힘든 물건이 나온 것이다. 물론 최근에 황금가지에서 이영도를 비롯한 듀나, 복거일, 김보영, 고장원 등이 참여한 『얼터너티브 드림』이 출간 됐었다. 하지만 두 작품집을 읽고 만족도를 말한다면 개인적으로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만큼 더 적은 분량과 가격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만족스럽게 읽은 것이다. 
  또한 여기에 실린 작가들도 『얼터너티브 드림』에는 아마츄어라고 볼 수 있는 작가들의 단편이 실려 있어서 퀄리티가 들쭉날쭉 했다면, 이 작품집은 철저한 기획 하에 나온 작품집이라 오히려 전체적으로 읽는 재미가 균일한 작품집이 되었다.

  SF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 번쯤 구입해서 읽어봐야 할 책이다. 10대를 위한 청소년 책이라서 주저할 필요는 없다. 신경 쓴 작가도 있지만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쓴 작가들도 있고 그런 것을 감안하고 봐도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로 가득 찬 소설집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국 SF 단편 역량이 결집된 멋진 작품집 중 하나이다.

  마지막 늑대

  첫 번째 작가는 바로 김보영이다. 2004년 「촉각의 경험」으로 과학기술 창작문예 중편 부문에 당선되었고 공동 단편집인 『누군가를 만났어』(행복한 책읽기)에 「종의 기원」 외에 4편의 단편을 실었다. 황금가지에서 나온 『얼터너티브 드림』에도 단편 「땅 밑에」를 실었고, 『한국환상문학단편선』(황금가지)에서도 단편 「몽중몽」을 실었다.(  그 외에도 HAPPY SF 2호에 단편 「진화신화」를 실었으며 현재 웹진 거울에서 활동 중이다.)

  현재 한국 SF 작가 중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최근에 환상문학 웹진 거울에서 개인중단편집인 『멀리 가는 이야기』를 출간하기도 했다.

  「마지막 늑대」는 설정부터가 독특하고 흥미로운 소설이다. 지구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용족에게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인간들은 드래곤의 애완동물로 전락한다. 인간들과 드래곤 모두 지성을 갖고 있겠으나, 드래곤은 인간들의 지성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들은 서로 공유하는 감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드래곤이 지구를 지배한다는 설정은 극도로 비과학적이나, 여기서 파생되는 감각에 대한 고찰은 발상의 전환에 따른 경이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이 작품의 제목에서 말하는 ‘늑대’는 실제 늑대가 아니라 드래곤에게 사육당하지 않고 오히려 반기를 드는 인간을 지칭하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작가 김보영이 예전에 발표한 「종의 기원」과 그 외전, 또 「다섯 번째 감각」 등이 혼합된 작품으로 보이기도 한다.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환경과 감각의 문제를 꺼내놓은 점 등이 말이다.

  이 작품집의 처음을 장식하는 단편으로 훌륭했고, 전체를 통틀어서도 인상에 남는 작품 중 하나였다. 감수성 어린 문장들과 놀라운 발상의 전환 그리고 글을 읽는 재미를 모두 갖고 있는 단편이다.

  가말록의 탈출

  SF 작가이자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듀나의 작품이다. 공교롭게도 앞에 작품인 「마지막 늑대」와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는 인간 외에 다른 종에 관한  문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늑대」에서 인간은 용족의 애완동물로 전락해 버렸다면 「가말록의 탈출」은 라두라는 외계의 괴물들이 본능적으로 공을 보면 쫓는 ‘가녹’이라는 공놀이에 얽힌 단편이다. 즉 인간의 애완동물이 된 외계 생명체인 것이다.(게다가 생김새는 역시 용과 흡사하다.) 녀석들은 원래 가축이었고, 몇 천 년 전에 다른 누군가가 녀석들을 공놀이 하는 광대로 키운 거라고 한다. 원래 주인들은 멸망했거나 달아났고 지구에서 온 고고학자들이 가녹을 부활시킨 것이다.

  이야기는 가말록이라는 이름을 가진 라두가 갑작스런 사고로 탈출하게 되면서 진행된다. 흥미롭게 읽었고 마지막에는 씁쓸한 느낌도 받게 되는 단편이었다. 이런 식으로 외계 생명체를 놀이의 대상으로 본 글은 처음 읽어서인지 신선하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작가 박성환은 2004년 「레디메이드 보살」로 과학기술 창작문예 단편 부문에 당선되었다. 현재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제1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단편 부문을 수상하면서 처음 알게 된 작가이다. 종교와 과학을 접목시킨 단편 소설을 많이 써냈으며 현재 환상문학웹진 거울 등에서 읽을 수 있다. 최근에는 웹진 크로스로드에 단편 「꿈의 해석」을 실었다.

  신선하고 독특한 발상과 부드럽게 읽히는 문장, 유쾌한 문체를 잘 구사하는 작가이며 전반적으로 대부분의 작품들이 만족스럽다. 아직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일단 웹진 거울에 올라온 단편들부터 찾아 읽어도 좋을 것이다.

  표제작인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는 제목에서부터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요즘 아이들이 개념이 없다고 하는데 그것을 비꼰 것 같기도 하지 않은가. 내용 역시 사회 풍자적이면서도 SF적인 내용을 잘 담아냈다. 청소년들이 주인공인 단편인데, 외계인과 머리가 좋아지는 기계 등이 결합되면서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외계인들의 지구 정복 계획. 그것은 일단 학생들의 머릿속에 ‘어으’들을 내려 보내는 것으로 계획된다. ‘아론’들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아이’와 ‘어른’을 변용한 외계 종족의 명칭에서부터 우스꽝스러운 풍자의 느낌이 확연히 드는 작품이다.

  마무리도 제목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면서 근사하게 맺고 있다. 유쾌하게 한 번에 읽어 내린 작품 중 하나였다.

  엄마의 설명력

  SF작가 배명훈은 2005년 「스마트D」로 과학기술 창작문예 단편 부문에 당선되었고 공동 단편집 『누군가를 만났어』에 표제작 외 4편을 실었다. 최근 한국환상문학단편선(황금가지)에도 단편 「초록연필」을 실었고 그 외에도 장르월간지 판타스틱에 단편을 발표했다. 역시 주목받는 SF 작가 중 한명으로 참신한 발상과 흡인력 있는 글을 쓰는 작가이다. 2004년 「테러리스트」로 제46회 서울대학교 대학문학상 단편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Happy SF》 제2호에 「스윙 바이」, 『2006 과학소설 창작문예 수상작품집』에 「모」, 웹진 ≪크로스로드≫에 「조개를 읽어요」를 발표했다.

  배명훈 작가를 처음 접할 때 느낌은, 이 작가 어쩌면 이렇게도 능청스럽게 입담이 강할까, 였다. 그만큼 구렁이 담 너머 가듯 황당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뛰어났다. 특히 그 점이 강력히 부각된 작품이 바로 이 책에 실린 「엄마의 설명력」일 것이다.

  이 소설은 지동설이 아니라 천동설을 주장하는 엄마와 그 말에 긴가민가하는 딸을 다루고 있는데, 거기에 딸의 가정사부터 정부의 음모까지 얽혀 들어가면서 그야말로 독자의 혼을 빼놓는다. 독자마저 도저히 이 작가가 무엇을 진실로 말하고 있는지 헷갈릴 무렵에는 근사한 끝마무리까지 맺어서 멋진 감동까지 선사한다. 이 작가 정말 대단하다, 라고 느낀달까. 현재 가장 성실하게 웹진 ≪거울≫에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 이 작가의 작품에 계속 눈길이 가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소용돌이

  작가 송경아는 1994년 『상상』에 「청소년 가출협회」를 발표하며 등단한 작가이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성교가 두 인간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학적 고찰 중 사례 연구 부분인용』, 『책』, 『엘리베이터』, 장편소설 『아기 찾기』, 『테러리스트』등이 있다.   웹진 ≪크로스로드≫에 SF단편 「우리 사랑 이야기」를 발표했고 『제인 에어 납치사건』, 『무게 - 아틀라스와 헤라클레스』, 『철학자의 돌』, 『카르데니오 납치사건』, 『우주를 떠도는 집 라크라이트』, 『원더월드 레드북』, 『아내가 마법을 쓴다』, 『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 『사이버리아드』 등을 번역했다.

  「소용돌이」는 이 단편집에서 특이한 단편인데, 그 이유는 장르가 SF라기 보다는 환상문학이기 때문이다. 낡은 소재일 수 있는 ‘왕따’를 가지고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과 유령인 고모가 펼치는 이야기다. 한 편의 성장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꽤 몰입감 있게 잘 읽었다. 주인공과 고모가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은 따뜻하게 읽히고 유쾌하기도 했다. 작품의 구성상 안정적이고 잘 끝났지만 왠지 이어지는 뒷이야기가 있다면 읽고 싶은 소설이었다.

  개인적 동기

  작가 이지문은 2007년 『판타스틱』에 「내일의 꽃」을 연재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생명공학 계열을 전공하고 현재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개인적 동기」는 설정이나 소재가 전형적이어서 약간은 아쉬웠던 작품이다. 인간의 감정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다시 타인에게 재생할 수 있는 장치라는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제목에서부터 이 작품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인지 예상할 수 있다는 게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솜씨가 좋아서 흡인력이 뛰어나고 작가가 진부한 소재를 새롭게 변주하는 부분들은 인상적이었다. 또한 어떻게 보면 처음 SF를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이런 작품이 더 부담없이 잘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무난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그런 작품이었다.

  로스웰 주의보 

  작가 이현은 2004년 「기차, 언제나 빛을 향해 경적을 울리다」로 전태일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동화집 『짜장면 불어요!』, 청소년 소설 『우리들의 스캔들』, 장편동화 『장수 만세!』 등이 있다.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작가는 장르문학 쪽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아니라 청소년 문학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글이다. 따라서 글 역시 참신한 장르적인 글이라기보다는 약간은 진부한 글 쪽이 될 수밖에 없겠으나 예상외로 상당히 잘 쓴 글이어서 읽기에 좋았다. 이 글은 앞의 배명훈의 글처럼 남에게 이야기를 하는 듯한 글이라 흡인력이 좋다.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비정상이고 외계인을 직접 만난 자신이 정상이라고 시작하는 초반 부분은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정석이자면 역시 매력적인 방식이랄까.

  마지막 엔딩 처리도 좋았고 처음 SF를 접하는 청소년을 위한 단편으로는 훌륭했다고 본다.

  비거스렁이

 

  작가 정소연은 2004년 과학기술 창작문예에서 스토리를 담당한 「우주류」로 만화 부문 가작을 수상했다. 현재 SF소설가와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환상문학웹진 《거울》 창간호에 번역 필진으로 합류, 19호에 「입적」을 발표하고부터 시간의 잔상에 참여하고 있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어둠의 속도』, 『언더월드 : 그린북』 등을 번역했으며 인문․사회학적 주제를 다루는 SF에 관심이 많다.

  제48회 서울대학교 대학문학상에서 「마산 앞바다」로 가작을 수상했고, 이 작품은 이번에 출간된 한국환상문학단편선(황금가지)에 수록되었다. ≪Happy SF≫ 제2호에 「앨리스와 티타임」을 수록했다.

  「비거스렁이」라는 단편에서 제목의 뜻은 ‘비가 갠 뒤에 바람이 불고 시원해지는 일’이라고 한다. 특이한 제목만큼이나 내용이나 연출도 굉장히 섬세하고 인상적이었다. 사실 소재야 진부하기 그지없는 것일 수가 있는데 존재감이 엷은 소녀와 그것이 품고 있는 상징을 가진 글쓰기는 흔히 생각하기 쉬운 것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단편은 섬세한 묘사로 집요하게 끝까지 글을 밀고 나가면서 개성을 획득하고 감동을 만들어낸다. SF보다는 환상문학에 더 어울릴 것 같은 세계간의 틈이나 여러 세계들의 존재도 SF적으로 느껴졌고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감성에 잘 따라갈 수 있는 작품이었다. 미묘한 울림을 주는 잔잔하고도 힘이 있는 작품이라고 할까. 다만 마지막 끝맺음은 지나치게 상투적 혹은 개인적으로 좀 거부감이 드는 방식이라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 글이었다. 전체적으로 단편집이 소설 배치가 잘 되어 있다고 느꼈다.


  SF의 재미를 찾아서 

  SF소설을 접해보지 않았지만, 앞으로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은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또한 현재 청소년이라면 특히 더 좋은 책이 될 것은 분명하다. SF는 일단 무엇보다도 재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 외에도 다른 장르에서는 가질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나 현재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본다는 점 등이 뛰어난 장점이다. 9,000원 밖에 안 하는 돈으로 몇 시간 온갖 우주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꽤 매력적인 SF 단편집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들 역시 현재 SF에서 주목을 받고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가들이 다수 참가하여 현재 나온 웬만한 SF 소설집보다 더 만족하게 해준다. 혹시 제목 때문이나 청소년 문고라는 것 때문에 넘어갔던 독자가 있다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반드시 구입하기를 추천해 본다. 이 책은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책 중에 하나이다.

  여기에 실린 작가들 모두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써서 다음에는 더 멋진 소설집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두 그럴 능력을 갖고 있는 뛰어난 작가들만 모인 작품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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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한가 1 - Seed Novel
나승규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해한가

  당신은 사람을 사랑하십니까?

  『해한가』는 디앤씨미디어의 라이트노벨 브랜드인 시드노벨에서 나온 소설로 현재 1권까지 출간되었다. 일단 이번에 『정의소녀환상』, 『GGG』 등과 함께 읽었는데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이었다. 우선 문장에서 다른 두 작품을 압도할 정도로 깔끔했다. 단아하고 정갈한 문체가 글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요인이었다.

  일단 처음에 눈에 띄는 점이 안정된 문장력이라면 두 번째 눈에 띄는 점은 이 소설의 구성이었다. 한 사람의 시점이 아니라 중요한 세 명의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데 이 점이 글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어떻게 보면 단순할 수 있는 이야기를 퍼즐처럼 긴장감을 가지고 보게 만들었다.

  세 명의 시점이 번갈아 갈 때마다 사용되는 방법은 [2007.12.24 06:12 PM 강남역 길거리, 소녀, 고등학생.] 식으로 시간과 장소와 주체를 언급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예전에 나우누리 환타지 동호회에서 연재되었던, 『엑시드맨』이 연상되기도 했다.(윈도우 창을 열듯이 위와 유사한 방식으로 인물의 시점을 바꿔나갔다.)

  『해한가』는 단순히 퇴마 소설이 아니다. 장르도 전기 드라마 픽션이라고 소개하고 있고.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고 죽은 사람이 나오지만, 퇴마 소설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제목에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을까. ‘한’이라는 정서를 음악으로 푼다는 것. 차분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인물들이 얽혀가면서 소설의 재미를 더해간다. 세 명의 인물들, 아니 나아가서 다른 주변 인물들까지 개성이 살아있다. 작가가 소설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소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전체적인 재미를 주는 것이다.

  이건 어떻게 보면 헤어졌던 남녀의 사랑이야기며, 한 여고생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갈등이 풀리고 잔잔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서 사람의 정을 느끼고 애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다른 라이트노벨 소설들에 비해 작가의 솜씨가 전체적으로 능숙한 느낌이 들고, 흠을 찾기 힘들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처음부터 구성이 잘 짜여져 있어서 완성된 퍼즐이라는 느낌이 들고 뒤에 있는 단편까지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완벽한 작품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점은 처음에 ‘해한가’가 언급한 캐릭터들이 결국 모인다는 점으로 이후의 다음 이야기들도 기대가 된다는 점이다. 최근에 읽은 한국 작가의 라이트 노벨 작품 중에서 다음 권이 가장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했다.

  이 소설의 주요 인물은 크게 4명이다. 첫 번째로 사람의 감정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여고생 채민. 이 소설에서 가장 어린 주인공인만큼 가장 어리숙한 고민을 갖고 있는 소녀이다. 잔잔한 문체가 소녀의 심리를 더 잘 드러내며, 강렬한 클라이막스가 없는 이 작품 안에서 그나마 이 소녀의 내면 변화가 소설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사람의 감정을 맛으로 느낄 수 있는 천재의사 유천. 천재라는 설정은 어떻게 보면 고리타분한 점이 있다. 그럼에도 너무 뻔뻔한 것이 나름대로 개성을 살린 캐릭터였다. 다만,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이번 권에서는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끝없이 자책하고 술에 빠져드는 모습으로만 이번 권 내내 등장하기 때문에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사람의 감정을 소리로 들을 수 있는 여변호사 재영. 유천과 함께 티격태격하는 캐릭터로 도도하고 시원한 성격이지만 내면에는 따뜻한 마음이 있는 캐릭터다. 이렇게 세 사람은 그들의 오빠이자 후배이자 연인인 채수의 사고에 간접적으로 연관을 갖고 있고 모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이 소설의 1차적인 재미는 이들이 서로 스쳐가고 연관되고 만나게 되는 과정에 있다. 작가가 꽤나 신경 쓴 작품의 구성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제목을 장식하고 있는 ‘해한가’라는 캐릭터. 아쉽게도 이번 권에서는 그의 대한 게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독특한 사람이고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능력 또한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마지막에 장광설을 뱉을 뿐 제대로 된 활약을 하는 씬이 없다고 할까. 하지만 이 책이 1권에 불과하다고 볼 때, 앞으로 다음 권이 나올 수록 이 캐릭터의 진가가 보일 거라 생각한다. 지금은 그의 역할은 마치 기계장치의 신처럼 혹은 다른 라이트노벨인 부기팝처럼 마지막에 등장하여 갈등을 해소하는 단순한 면 밖에 갖고 있지를 못한다. 그가 좀더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개성을 부여받을 때 이 소설은 더욱 빛나게 될 거라 생각한다. 물론 그 점이 쉽지는 않겠지만. 적당한 신비감이 사라지면 캐릭터가 죽어버리는 수도 있으니. 아무튼 간에 앞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더 늘어나야 캐릭터의 매력이 더해지지 않을까 싶다. 현재로는 간간히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꽤 밝으면서도 엉뚱한 그러면서도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인상을 심어줬으니 말이다.

  다 읽고 나서 잔잔한 이야기임에도 굉장히 몰입해서 읽고 감동을 받았다. 보통 라이트노벨은 이능력 배틀물이거나 혹은 학원물이 많은데 이 소설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조금만 어긋나도 굉장히 촌스러울 소설을 세련된 기법으로 잘 이끌어가고 있다고 할까. 작가 후기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이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소설을 쓰게 됐고, 앞으로 어떤 식의 이야기가 펼쳐질지 조금의 언급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고 기억하고 잊지 않는다는 것. 그 사람에게 못해준 것만 생각나고 그것이 한이 되는 것.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 잊혀진다는 것. 그런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독특한 색깔을 가진 작품이었고, 다음 이야기를 얼른 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1권은 사실상 프롤로그에 불과하지 않는가, 싶기도 한 것이 이제야 주요 인물 4명이 모이면서 끝났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기도 했다.

  이제 보컬이 모여 하나의 밴드가 된 해한가. 누군가의 한을 풀어줄 해한가의 또 다른 음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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