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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한가 1 - Seed Novel
나승규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해한가
당신은 사람을 사랑하십니까?
『해한가』는 디앤씨미디어의 라이트노벨 브랜드인 시드노벨에서 나온 소설로 현재 1권까지 출간되었다. 일단 이번에 『정의소녀환상』, 『GGG』 등과 함께 읽었는데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이었다. 우선 문장에서 다른 두 작품을 압도할 정도로 깔끔했다. 단아하고 정갈한 문체가 글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요인이었다.
일단 처음에 눈에 띄는 점이 안정된 문장력이라면 두 번째 눈에 띄는 점은 이 소설의 구성이었다. 한 사람의 시점이 아니라 중요한 세 명의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데 이 점이 글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어떻게 보면 단순할 수 있는 이야기를 퍼즐처럼 긴장감을 가지고 보게 만들었다.
세 명의 시점이 번갈아 갈 때마다 사용되는 방법은 [2007.12.24 06:12 PM 강남역 길거리, 소녀, 고등학생.] 식으로 시간과 장소와 주체를 언급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예전에 나우누리 환타지 동호회에서 연재되었던, 『엑시드맨』이 연상되기도 했다.(윈도우 창을 열듯이 위와 유사한 방식으로 인물의 시점을 바꿔나갔다.)
『해한가』는 단순히 퇴마 소설이 아니다. 장르도 전기 드라마 픽션이라고 소개하고 있고.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고 죽은 사람이 나오지만, 퇴마 소설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제목에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을까. ‘한’이라는 정서를 음악으로 푼다는 것. 차분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인물들이 얽혀가면서 소설의 재미를 더해간다. 세 명의 인물들, 아니 나아가서 다른 주변 인물들까지 개성이 살아있다. 작가가 소설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소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전체적인 재미를 주는 것이다.
이건 어떻게 보면 헤어졌던 남녀의 사랑이야기며, 한 여고생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갈등이 풀리고 잔잔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서 사람의 정을 느끼고 애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다른 라이트노벨 소설들에 비해 작가의 솜씨가 전체적으로 능숙한 느낌이 들고, 흠을 찾기 힘들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처음부터 구성이 잘 짜여져 있어서 완성된 퍼즐이라는 느낌이 들고 뒤에 있는 단편까지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완벽한 작품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점은 처음에 ‘해한가’가 언급한 캐릭터들이 결국 모인다는 점으로 이후의 다음 이야기들도 기대가 된다는 점이다. 최근에 읽은 한국 작가의 라이트 노벨 작품 중에서 다음 권이 가장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했다.
이 소설의 주요 인물은 크게 4명이다. 첫 번째로 사람의 감정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여고생 채민. 이 소설에서 가장 어린 주인공인만큼 가장 어리숙한 고민을 갖고 있는 소녀이다. 잔잔한 문체가 소녀의 심리를 더 잘 드러내며, 강렬한 클라이막스가 없는 이 작품 안에서 그나마 이 소녀의 내면 변화가 소설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사람의 감정을 맛으로 느낄 수 있는 천재의사 유천. 천재라는 설정은 어떻게 보면 고리타분한 점이 있다. 그럼에도 너무 뻔뻔한 것이 나름대로 개성을 살린 캐릭터였다. 다만,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이번 권에서는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끝없이 자책하고 술에 빠져드는 모습으로만 이번 권 내내 등장하기 때문에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사람의 감정을 소리로 들을 수 있는 여변호사 재영. 유천과 함께 티격태격하는 캐릭터로 도도하고 시원한 성격이지만 내면에는 따뜻한 마음이 있는 캐릭터다. 이렇게 세 사람은 그들의 오빠이자 후배이자 연인인 채수의 사고에 간접적으로 연관을 갖고 있고 모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이 소설의 1차적인 재미는 이들이 서로 스쳐가고 연관되고 만나게 되는 과정에 있다. 작가가 꽤나 신경 쓴 작품의 구성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제목을 장식하고 있는 ‘해한가’라는 캐릭터. 아쉽게도 이번 권에서는 그의 대한 게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독특한 사람이고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능력 또한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마지막에 장광설을 뱉을 뿐 제대로 된 활약을 하는 씬이 없다고 할까. 하지만 이 책이 1권에 불과하다고 볼 때, 앞으로 다음 권이 나올 수록 이 캐릭터의 진가가 보일 거라 생각한다. 지금은 그의 역할은 마치 기계장치의 신처럼 혹은 다른 라이트노벨인 부기팝처럼 마지막에 등장하여 갈등을 해소하는 단순한 면 밖에 갖고 있지를 못한다. 그가 좀더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개성을 부여받을 때 이 소설은 더욱 빛나게 될 거라 생각한다. 물론 그 점이 쉽지는 않겠지만. 적당한 신비감이 사라지면 캐릭터가 죽어버리는 수도 있으니. 아무튼 간에 앞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더 늘어나야 캐릭터의 매력이 더해지지 않을까 싶다. 현재로는 간간히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꽤 밝으면서도 엉뚱한 그러면서도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인상을 심어줬으니 말이다.
다 읽고 나서 잔잔한 이야기임에도 굉장히 몰입해서 읽고 감동을 받았다. 보통 라이트노벨은 이능력 배틀물이거나 혹은 학원물이 많은데 이 소설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조금만 어긋나도 굉장히 촌스러울 소설을 세련된 기법으로 잘 이끌어가고 있다고 할까. 작가 후기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이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소설을 쓰게 됐고, 앞으로 어떤 식의 이야기가 펼쳐질지 조금의 언급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고 기억하고 잊지 않는다는 것. 그 사람에게 못해준 것만 생각나고 그것이 한이 되는 것.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 잊혀진다는 것. 그런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독특한 색깔을 가진 작품이었고, 다음 이야기를 얼른 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1권은 사실상 프롤로그에 불과하지 않는가, 싶기도 한 것이 이제야 주요 인물 4명이 모이면서 끝났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기도 했다.
이제 보컬이 모여 하나의 밴드가 된 해한가. 누군가의 한을 풀어줄 해한가의 또 다른 음악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