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
김이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황금가지)

  ― 한국 환상 문학은 어디까지 왔는가

  한국 환상문학 단편의 시작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이 출간되었다. 이름 그대로 한국 작가들이 쓴 환상 문학 단편이다. 그동안 한국 장르 문학은 단편이 설 자리가 없었다. 단편을 꾸준히 씀으로써 장편을 쓸 역량을 발전시키기에는 단편을 발표할 만한 지면이 존재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 장르 월간지 『판타스틱』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 전까지 단편을 개제할 곳은 그나마 5년 동안 꾸준히 유지된 환상문학웹진 《거울》(http://mirror.pe.kr) 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년 간 무료로 운영되는 웹진이 여태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오히려 작가진을 늘리고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고 이제는 다양한 책을 출간했다는 사실은 무척 놀랍다. 그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매년 환상문학웹진 《거울》은 동인 형식으로 한 해를 결산하는 4권의 중단편선을 발간했으며 가연(박애진), 은림, Fool(박성환), JXK160, ida(김보영) 등의 개인 단편선을 출간했다. 또한, 소재별 중단편선으로는 흡혈귀 단편선인 『혈중환상농도 13%』와 외계인 단편선 『제15종 근접조우』, 그리고 고양이 단편선 『달과 아홉 냥』을 출간했다. 이처럼 환상문학웹진 거울은 활발하게 창작되고 출판되며 독자에게 관심을 받는 장편과 달리 척박하기 그지없는 국내 장르 단편 시장에서 꾸준히 제 역할을 지켜냈다. 마침내 그 성과가 모이고 모인 결과, 황금가지에서 정식으로 환상문학웹진 《거울》 기획 단편선이 출간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5년 동안 환상문학웹진 《거울》이 쌓아온 역량을 많은 독자들에게 직접 선보이는 자리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이번에 출간된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이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전부를 담고 있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그 동안 끊임없이 매 달 합평회를 갖고, 창작을 하면서 이룬 성과를 어느 정도 보여주는 기회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아직 소식을 못 들은 독자나, 혹은 들었어도 구입을 망설이는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가이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써보았다. 혹은 이미 읽은 독자들에게는 같은 독자로서 감상을 나누는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럼 이제 열 편의 환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미소녀 대통령

  김이환 - 대학 졸업후 본격적으로 글쓰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2004년 장편소설 『에비터젠의 유령』을 발표하며 이름을 알렸다. 2007년에는 새로운 스타일의 환상 장편소설 『양말 줍는 소년』을 출간하며 화제가 되었다. 《거울》에는 콜린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발표하고 있으며 개인 블로그에 독립영화 리뷰를 쓰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경호원이 갑자기 허리 숙여 인사했다. 나는 그가 허리를 숙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대통령을 보았다.
  여고생 교복을 입은 예쁜 문근영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문근영 대통령이에요.”


  예전에 문근영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쳤을 무렵, 디씨인사이드 사이트 등에서 문근영 대통령이라는 사진이 올라오곤 했다. ‘귀여운 국민 여동생이 대통령이라면?’ 상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사진들이 많았는데, 이 단편은 거기서 착상을 얻은 소설이다.
  일단 이 기발한 발상 때문에 처음에는 재미있는 느낌을 받는 단편이다. 2007년 겨울 출간하여 널리 호평을 받았던 『양말 줍는 소년』의 저자인 김이환이 쓴 이 단편은 한국의 대통령이 문근영인 평행 세계로 가게 된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양말 줍는 소년』에서도 환상의 나라의 이름이 현실 세계의 유명인들이라는 착상이 재미있었는데, 이 단편 역시 그런 점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맛이 느껴진다고 할까?
  다만, 이 작품이 단편으로서 충분히 구조적인 완성도와 재미를 갖추었냐고 묻는다면 약간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하나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즉, ‘낯설게 하기’나 은유로 소설이 쓰이지 않고 주제를 그대로 캐릭터 간의 대사와 서술로 직접 말하는 것은 김이 빠지게 되고 글의 깊이를 줄이고 독자가 상상하고 추측하는 재미를 없앤다. 좀 더 숨기고 다양한 생각할 여지와 독자가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 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가령, ‘롤리타의 조종사’ 같은 용어만 해도, 출간작에 실리기 전 웹진 《거울》에서는 ‘마리아의 아들’이었다. 앞의 용어보다 훨씬 수수께끼 같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다양한 상상을 할 여지를 준다.) 두 번째는 구조적인 완결성의 문제인데, 하나의 완결된 단편이 아니라 장편 소설의 프롤로그로 읽히는 면이 있다. 열린 엔딩을 의도하고는 있지만, 그 보다는 중간에 끊긴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작가는 이 글을 장편으로 개작하기도 했다.(작가 홈페이지에서 grovenor.cafe24.com 감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이 작가의 최고 작품은 『양말 줍는 소년』이다. 앞으로 노블레스 클럽으로 나올 장편 소설도 기대 중에 있다.

  크레바스 보험사

  김주영 - 하이텔 과학소설 동호회에서 옴니버스 장편소설 『나호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거울》 2호에 「크레바스 보험사」를 발표하며 시간의 잔상 필진으로 합류했다.
  장편소설 『열 번째 세계』가 제2회 황금드래곤 문학상에서 가작을 수상하며 출간되었다. 또한 『나호 이야기』 중 엄선된 에피소드들을 묶어 『그의 이름은 나호라 한다』를 출간했으며, 전자책으로 단편집 『노래하는 늪』을 출간하기도 했다.


  “어머나, 그런 소리 마세요.”
  직원이 고개를 살짝 흔들며 말했다.
  “우리는 고객님의 보험료가 그렇게나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의무를 이행했어요. 지금까지 그 많은 사고에서 살아남은 것이 운이라고 믿고 계신 건 아니시죠?”


  이 소설은 약간은 가벼운 이야기고 진부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기대치가 높은 독자에게는 실망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단편선에 선정한 것은 기획후기에 나온 대로 판타지를 거의 접해 본 적이 없는 독자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고를 것이라는 기획 의도 때문일 것이다. 또한 흔히들 말하는 ‘장르 판타지’와는 다른 작품을 고르기 위한 의도대로 이 작품은 현대를 다루고 있다.
  그런 까닭에 환상문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편하게 읽기 좋은 소설이겠으나, 이미 장르 소설을 오래 읽은 독자들에게는 평범한 소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상한 보험이 존재하고 그로 인한 환상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들은 누구나 쉽게 상상이 가능한 범위 내의 이야기이며 그동안 많이 이야기 되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MBC에서 오래전 방영했던 ‘테마게임’을 연상케 하는 단편이기도 하며, 일본의 ‘기묘한 이야기’ 같은 시리즈물과 유사한 식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편하게 읽을 수 있고 흡인력은 좋은 편이다. 현재 웹진 《거울》에서 김주영 작가의 시간의 잔상 게시판을 보면 「옥션」이라는 단편이 있는데 이 단편 역시 「크레바스 보험사」와 유사한 형식의 소설이다. 이 작가의 단편을 살펴보면 이렇듯 「크레바스 보험사」나 「옥션」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는 하나 어디선가 본 듯한 진부한 소재를 가지고 쓴 단편들이 있고(단순하게 신기한 소재만 풀어놓기 때문에 아쉽고 가벼운 작품들. 소품 같은 느낌.) 「다른 방식의 진화」나 「찬란한 눈동자들의 강림」, 「반격」 같은 무게감 있고 새로운 상상력의 작품들이 있다. 아무튼 간에 장르 독자들에게는 작품 선정이 조금 아쉬운 경우라고 하겠다. 환상문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이 단편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마산 앞바다

  정소연 - 환상문학웹진 《거울》 창간호에 번역 필진으로 합류, 19호에 「입적」을 발표하고부터 시간의 잔상에도 참여하고 있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어둠의 속도』, 『언더월드 : 그린북』 등을 번역했으며 인문․사회학적 주제를 다루는 SF에 관심이 많다.
  제2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만화 부문에서 스토리를 담당한 「우주류」로 가작을, 제48회 서울 대학교 대학문학상에서 「마산 앞바다」로 가작을 수상했다. 《Happy SF》 제2호에 「앨리스와 티타임」을, 창비 청소년 문고 중 SF 소설집인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창비)에 「비거스렁이」를 수록했다.


  아무리 교과서에 나오는 자연현상이라 해도, 출렁이는 청록색 물 위로 기억 속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모습을 실제로 처음 마주하는 충격은 결코 작지 않다. 마산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무엇이냐 물으면, 열에 여덟아홉은 알고 지내던 사람의 얼굴을 마산 앞바다에서 또렷이 보았던 때라 답하리라.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단편은 ‘마산’이라는 지리적 위치가 중점이 된 단편이다. 여기는 ‘마산’이나 ‘한국’이 존재하는 우리와 같은 세계이면서도 죽은 자들의 얼굴이 바다 위 ‘림보’라는 공간에 나타나는 평행 세계이다. 특히 마산 앞바다는 한국에 있는 유일한 림보일 뿐 아니라 그 상태가 안정적이고 선명도가 높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으로 나와 있다. 따라서 관광지일 뿐 아니라 축구 경기장이 세워지고, 아시안 게임을 굳이 마산에서 열기도 한다. 림보를 드러나게 하는 것은 바닷물이나 망자들이 아니라 그 곁에 살아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는 분명 세계적인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으리라.(특별한 관광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럴 법한 설정이랄까.) 예전에 웹상에서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오른 글은 주류문학에서 활동하는 작가인 박형서의 「노란 육교」였다. 두 소설 다 공통점이 있다면 죽은 이들의 모습이 사후에 물리적으로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지점에서 말이다. 마찬가지로 관광지처럼 사람이 몰리는 것도 유사하다. 「노란 육교」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이 같은 위치가 발생하는데 죽은 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게 포착된다. 춘천 등에서는 구경꾼들이 자전거 행렬을 방해하지 않도록 횡단보도 대신 육교를 설치했고 눈에 띄도록 샛노랗게 칠한다. 둘 다 같은 소재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마산 앞바다」는 여성 화자를 중심으로 심리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 세밀한 필체로 감수성 어린 글을 적어나가고 있고(이 작가의 장점이랄까.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에 실린 「비거스렁이」 역시 그런 점이 돋보이는 글이었다.) ‘죽은 이의 모습이 사후에도 보이는 세계’라는 설정에 치중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 내면의 다른 문제와 결부시킨 소설이다. 따라서 두 소재의 결합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독자와 부자연스럽게 느끼는 독자의 감상이 다르게 나타날만한 소설이었다.(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으며 따라서 처음 읽는 독자들을 위해서 더 이상의 내용 언급을 하지 않는다.) 「노란 육교」는 3인칭으로 쓰여 졌고 이런 현상에 의해서 발생될만한 다양한 사건들을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다. 즉, 한 명을 중심으로 한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또 인류가 어떤 식으로 반응을 보였으며 결국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마다 같은 소재를 어떤 식으로 쓰는지 비교해볼 수 있어서 흥미로운 단편이기도 했다.

  문신

  박애진 - 엽기발랄한 상상력이 빛나는 한 소녀의 성장기 「왜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지?」로 제1회 이매진 단편 공모전에서 판타지 부문을 수상했다. 《거울》 창간호에 중편 『아도니스』를 발표하며 시간의 잔상 필진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전자책으로 중편소설 『아도니스』와 단편선 『신체의 조합』을 출간했다.
  《엄마는 생각쟁이》에 「만 원」을 게재했으며, 단편집 『누군가를 만났어』에 「선물」외 4편을 수록했다.


  “벌은 준다고 죄가 없어지지는 않잖아요. 자기가 어떤 죄를 지은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 틈에 가서 살면 그만이고요. 하지만 얼굴에 새긴 죄는 없어지지 않아요. 누구나 그 사람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아니까 그 사람에 대해서는 뭘 조심하면 되는지 알 수 있죠.”

  여행자들이 있다. 그들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기묘한 풍습과 이야기를 듣고 영주에게 글을 써 보낸다. 여행기로 먹고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 여행자가 다다른 곳은 바로 죄를 문신으로 새기는 곳이었다. 눈에 보이는 곳부터 문신을 새기기 때문에 처음에는 가벼운 죄를 지어야 한다는 그곳의 이야기가 독특하게 다가왔다. 과연 내가 그곳에 산다면 죄를 얼마나 지을까, 온 몸을 도배하게 될까. 그런 의문부터 어떠한 죄들부터 새길 것인가, 하는 순서의 문제까지. 이 소설은 이런 문신을 새기는 곳에 대한 이야기와 주인공인 여행자의 삶을 함께 이야기 하고 있다.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돌아다녀야 하는 여행자의 삶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소설이었고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었다. 환상문학이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여행가는 근사하게 다른 세계로 이끌어주었고 여행에 동참시켜 주었다. 이 여행자의 다른 여행지를 둘러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윌리엄 준 씨의 보고서

  백서현 - 1999년 무렵부터 중․장편들을 써왔다. 환상서고, 딤비 등의 창작 커뮤니티들에서 활동한 바 있으며 현재는 《거울》과 지면상으로만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2001년 『환상서고』에 「스위티 숍」을 실으며 장르에 입문했으며, 2007년 장편소설 『데이 브레이커』를 출간했다. 《거울》 57호에 「윌리엄 준 씨의 보고서」를 발표하며 시간의 잔상 필진으로 합류했다.


  “누구냐고? 네가 매번 그 심술궂은 입으로 중얼거리는 이지! 나 외의 누가 네 그 쓸모없는 투덜거림을 들을까? 누가, 누가, 누가 말이냐? 윌리엄, 윌리엄…… 정말 모르겠어? 이 요정은 없다고 믿는 꼬마야!”

  이 글은 요정 의사 연작 시리즈의 한 편이다. 연작이지만 다른 단편들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이 요정 의사 시리즈의 핵심은 아일랜드 요정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구성과 ‘요정의사’가 가지고 있는 매력에 있다. 어떻게 보면 귀여운 동화 같은 느낌의 글들이며,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좋아할만한 이야기들이다. 커다란 반전이나 치밀한 구성이 주가 되는 단편이라기보다는 달달한 사탕 같은 잘 구은 계란쿠키 같은 느낌의 단편인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가장 드러난 점은 2001년에 출간되었던 환상문학 단편집인 『환상서고』에 실렸던 「스위티 숍」에 있다. 이 단편에서는 ‘요정의사’에 대한 설명부터 다양한 정보가 언급되어 있고, 이 단편을 읽고 이번에 「윌리엄 준 씨의 보고서」를 읽는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기도 하다.

  아일랜드(Ireland).
  영국, 아니 대브리튼섬과 북아일랜드의 연합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의 일부였으나,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온 외딴 섬. 오랜 옛날부터 자신들의 동반자였던 거대한 또 하나의 섬을 거부한 곳.
  켈트의 피를 잇고, 아직도 그들만의 피를 간직하고 있는 폐쇄적인 땅. 그곳의 이름은, 어쩐지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어떻게 말해야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 섬에 살고 있는 존재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은밀한 비밀인 것을…….
  아일랜드(Ireland), 그것은 기독교라 불리는 종교에 밀려 버린 오래된 옛 신들이 머무는 섬. 비록 퇴락했다곤 하나, 바다 건너 어딘가에 존재하는 요정의 나라 ‘타르 나 노이(Tir―Na―N―Og)’에서 영원히 사는 자들이 있는 오래되고 기나긴 세월의 잔재가 구석까지 파고들어 있는 그런 곳.
  이제는 옛 신의 자취마저 없고, 기계의 문명이 들어서 피폐되어가는 땅들이 더 많은 수도 더블린과 달리, 아직까지 슬리고 지방에는 기계들이 들어올 낌새 따위는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 땅을 지키는 요정들이 그것을 싫어해서 아닐까. ― 『환상서고』, 「스위티 숍」, 드림필드, 백서현, 71~72쪽

  4) 요정 의사(Fairy Doctors) : 마녀와 반대되는 존재. 요정의 무리들을 친구로 두고, 타고난 힘을 지니고 있는 이들. 약초에 능하고 요정들의 장난을 고치는 역할을 한다. 요정을 볼 수 있으며, 주로 이들은 체인징 칠드런(Changing Children, 뒤바뀐 아이)으로 요정의 세계에서 7년 간 살고 온 아이들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말이 적어지며, 요정들이 출몰하는 장소를 맴돈다. 결국 이들은 시인이 되거나 위대한 문학가 혹은 요정 의사가 되어 요정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된다.(아일랜드의 위대한 시인들과 문학가들은 모두 리난 시이의 노예이거나, 요정의 사랑을 받은 이들이었다.) ― 『환상서고』, 「스위티 숍」, 드림필드, 백서현, 79쪽


  한 편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볼 수 있는 밝고 따뜻한 이야기다. 잔잔한 웃음을 머금고 귀엽고 어리숙한 인물들과 요정들을 지켜보는 재미라고 할까. 또한, 기획의도에 부합하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단편 중에 하나이기도 하기 때문에 선정된 것으로 보인다.

  서로 가다

  이수현 - 제4회 한국판타지문학상에서 장편 『패러노말 마스터』가 우수상을 수상하며 출간한 바 있으며 《거울》 창간호부터 필진으로 참여해 왔다. 번역가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역서로는 어슐러 K. 르귄의 헤인 연작 『빼앗긴 자들』, 『로캐넌의 세계』, 『유배 행성』, 『환영의 도시』 외에 『크립토노미콘』, 『디스크월드』, 『유리 속 소녀』 등이 있다.


  북쪽. 얼음처럼 차가운 것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나라. 밤의 어둠이 훨씬 일찍 찾아와 늦게까지 머물러 있는 나라. 그곳에서 바다를 건너 서쪽에는 섬이 하나 있었고, 거기서 더 서쪽에 작은 섬이 또 하나, 그리고 그곳에서 계속 서쪽으로 가면, 추운 바다 위에 흰 섬이 있다는 것이다. 흰 섬. 관세음보살이 있다는 보타락가산. 관세음보살의 아버지 아미타불이 다스리는 서방정토.

  이 단편은 13~14세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며 공을 많이 들인 게 느껴질 정도로 섬세하게 잘 묘사되어 있다. 이 글은 약간 난해할 수 있고 쉽게 읽히거나 단순한 구조는 아니나 흡인력이 있고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주인공이 극한의 상황에까지 추구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독자 역시 계속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이 단편선 내에서도 가장 묵직한 글 중에 하나였고, 이야기에 몰입감이 있었으며 우직한 여정과 마지막에 구조 등에서 압도되는 느낌을 받은 글이었다. 단편에서 이토록 장황한 여정과 고난 그리고 그것을 압축하고 몰아치는 느낌이 훌륭했고 글의 무게감이 마음에 들었던 글이다. 웹진 《거울》에 실은 작가의 다른 단편 중에서 추천할 만한 작품은 또 다른 색을 가진 작품들인 「불량 애완용」과 「쓰레기나라의 왕」 등이다.

  할머니 나무

  은림 - 제1회 황금드래곤 문학상에서 여성과 치매에 대한 글쓴이의 따뜻한 시각을 느낄 수 있는 「할머니 나무」로 단편 부문을, 제2회 황금드래곤 문학상에서 「할티노」로 중편 부문을 수상했다. 단편집 『윈드 드리머』에 「샨 데 크레안」을, 『환상서고』에 「Sistory」를 수록한 바 있다. 2008년 《크로스로드》에 「환상진화가」를 실었으며, 환상문학웹진 《거울》에서 활동 중이다.


  나는 아주 자그마하고 색다른 비밀 한 가지를 갖고 있다.
  그건 내가 곧 나무가 될 것이라는 거다.
  내 어머니와, 할머니, 또 먼먼 할머니처럼.


  한국에서 가장 멋진 환상문학 단편을 쓰는 작가를 꼽아보라면 은림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황금드래곤문학상 단편과 중편을 수상하고 지금까지 이 책을 포함해서 세 개의 단편집에 모두 단편을 실은 것처럼, 은림은 그 동안 꾸준히 환상문학 단편을 써왔고 계속 발전해왔다. 최근에 발표한 단편들은 문장이나 구성, 완성도에 있어서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실린 단편은 작가의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잔잔한 작품이라 평이할 수 있으나 황금드래곤 문학상 수상작다운 면모를 가진 작품이다. 처음 황금드래곤 문학상이 시작 될 때 언젠가 황금드래곤 문학상 단편들을 모아 단편집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이제야 「할머니 나무」가 종이에 인쇄됐다. 하지만 이번 단편선이 웹진 《거울》의 모든 것이 아니듯, 작가의 감동적인 작가의 단편은 많이 있다. 다음에 나올 단편선에 또 멋진 단편을 기대해본다.(이처럼 이번 단편선에서는 기획의도 때문인지 몇몇 작가들은 초기작이 실렸다.) 나는 예전에 이미 읽은 작품이라 이번에는 읽지 않았지만 처음 읽는 독자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초록연필

  배명훈 - 2004년 「테러리스트」로 제46회 서울대학교 대학문학상 단편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이듬해 「Smart D」로 제2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단편 부문에 당선됐다. 단편집 『누군가를 만났어』에 표제작 외 4편을 수록했으며, 《Happy SF》 제2호에 「스윙 바이」, 『2006 과학소설 창작문예 수상작품집』에 「모」,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에 「엄마의 설명력」을 수록했으며, 《크로스로드》 2007년 11월호에 「조개를 읽어요」를, 월간 《판타스틱》 2007년 7월호에 「우주로 날아간 마도로스」, 12월호에 「인섹트 플라이트」, 2008년 4월호에는 「바이센테니얼 챈슬러」를 수록했다. 《거울》 30호에 「다이어트」를 발표하며 시간의 잔상 필진으로 합류했다.


  아무래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신은 왜 하필 악마가 부활하는 날 당일에 살아있을지 아닐지도 모르는 자에게 임무를 맡겼을까. 그걸로 충분하다는 뜻이었을까. 그렇다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이 완전히 다 꺼져버리기 전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박성환, 김보영 등의 작가들과 함께 한국 창작 SF의 희망인 작가. 재미있는 글을 쓸 줄 아는 작가이고, 무엇보다도 매 달 한 편씩 글을 쓴다는 성실성이 돋보이는 작가다. 이미 많은 팬들과 평론가들에게 인정받았으며, 다양한 곳에 작품을 발표했다. 제2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단편 부문을 수상한 「스마트D」의 경우 바로 어떤 사람이 과학기술 창작문예에 응모하기 위해 글을 쓰면서 ‘D'자가 저작권에 걸려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바탕으로 한 단편인데, 심사위원에게 메일로 상황을 설명하면서 긴박감을 조성하는 솜씨가 훌륭했으며 이야기의 몰입도가 상당했던 단편이었다. 이렇듯 뛰어난 흡인력과 안정적인 문장, 기발한 발상 등으로 기대가 되었던 이 작가는 이후에도 웹진 《거울》에 「다이어트」, 「매뉴얼」, 「밀실은 공습 임무 중」 같이 SF, 판타지를 넘나드는 재기 있고 멋진 단편들을 써냈고,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창비, 박상준 엮음, 듀나 外, 2007년 11월)에는 지동설이 아닌 천동설을 주장하는 엄마와 바로 엄마의 설명력에 긴가민가하게 되는 화자, 가족사와 반전 등이 얽혀서 감동을 주는 「엄마의 설명력」 등을 발표했다. 기본이 탄탄한 문장과 깔끔한 구성, 독특한 발상 등이 눈에 띄는 작가로 특히 능청스럽고도 빠져들게 되는 입담이 뛰어난 작가다. 이번에 실린 「초록연필」은 작가의 그런 장점들이 많이 엿보이는 작품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단편 중 하나이다. 한 개 당 오 천 만원이나 하는 명품 연필이 있고, 그 연필이 사라진 것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 볼펜이나 연필 등 필기류가 너무나 쉽게 언제 사라졌는지도 알 수 없게 잃어버린 경험이 많을 것이다.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곧 거대한 스케일로 확대된다. 어느 샌가 사라져버리는 필기류에게 이런 사연이 있었다니! 이 작가의 글은 대개 재미있고 색다르고 멋지다. 역시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오직 읽으라는 말 밖에.

  콘도르 날개

  곽재식 - 《거울》 24호에 「달과 육백만 달러」가 독자 우수 단편으로 선정되면서 《거울》 필진으로 합류했다. 이공계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날카로운 풍자와 위트가 섞인 작품을 발표해왔다. 《거울》 32호에 발표한, 연구원들의 뼈아픈 현실을 그린 「판소리 수궁가 중에서 토끼의 아리아 : 맥주의 마음」이 MBC 베스트극장에서 「토끼의 아리아」라는 제목으로 드라마화 된 바 있다.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했으니까, 목에 깁스라도 두르고 다니면 어때? 그럼?”
  “그런 짓 하면, 그런 짓이 운명을 자초한다니까. 운명이니 예언이니 하는 영화에 그런 거 많이 나오잖아. 아마 목에 깁스를 두르면, 그 깁스 풀려고 하는 날 깁스 자르는 톱날에 다쳐 죽을걸.”
  “그러면 깁스가 아니라, 경호원이라도 고용하면?”
  “그러면 그 고용한 경호원이 배반하는 바람에 죽을 거야. 콘도르 눈동자와 콘도르 발톱 영화에 나와 있는 그 일들은 무조건 그대로 일어난다니까.”


  웹진 《거울》에 작가 소개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이공계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날카로운 풍자와 위트가 섞인 작품을 발표하는, 명실공히 거울의 가장 재미있는 작가 중 하나이다.” 이 말 그대로 작가 곽재식은 명실공히 거울의 가장 재미있는 작가 중 한 명이며 특히 친근하게 읽히면서 위트가 섞인 문체는 아무리 긴 분량이라도 끝까지 읽게 만드는 마력을 가졌다. 이번에 수록된 「콘도르 날개」는 예전에 웹진 《거울》 42호에 발표한 「콘도르 날개」와 제목이 같지만 다른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웹진 《거울》에 실렸던 「콘도르 날개」도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었다. 아주 오래된 웹으로 하는 게임을 발견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아직 안 읽었다면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텍스트로 진행되는 머드 게임의 일종인데 프로그램을 짜서 자동으로 돌려놓으니 늑대를 몇 십만 잡고 늑대왕이 되었다는 설정이나, 게임 서버가 다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소박하게 느껴지면서도 왠지 즐거웠던 작품이었다.)
  일단 이번 단편은 「콘도르 눈동자와 예언대소동」이라는 영화를 잠결에 보면서 그 영화대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도 작가 특유의 문체는 그대로라 즐겁게 읽히고 추억의 「아웃런」 자동차 게임의 언급이나 B급 영화의 향취 등도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기묘하게만 느껴지지만, 나중에 영화 속 일들이 전부 현실로 일어나면서 주인공은 자기가 죽을 운명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웹상에 올라온 작가의 설명을 읽어보면 분량이 지나치게 많아 감정 묘사 등이 삭제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흥미로운 설정 때문에 감정의 기복에 상관없이 쭉 재미있게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만큼 이야기가 워낙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써졌다고 할까? 마지막에 해결 방법이나 구성 등에 있어서는 작가가 의도한 기법이 있고 또 이것저것 생각나는 것이 있지만, 아직 안 읽은 독자들을 위해서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이 작가의 글을 처음 읽는다면, 웹진 《거울》에 올라온 다른 글들 역시 재미있게 읽을 테니 강력 추천한다. 「최악의 레이싱」, 「박시은 특급」, 「콘도르 날개」, 「흡혈귀의 여러 측면」, 「황야의 무직자」 등 뛰어난 재미를 가진 작품이 많다. 한 번 읽으면 순식간에 끝까지 읽게 될 것이고, 다음 글을 클릭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몽중몽

  김보영 - 2004년 제1회 과학기술 창작문예에서 「촉각의 경험」으로 중편 부문을 수상했다. 2006년 《크로스로드》에 「땅 밑에」를 게재했으며, 『얼터너티브 드림』 단편집에 참여하였다. 2005년 전자책 『멀리 가는 이야기』를 출간했고, 2006년 단편집 『누군가를 만났어』에 「종의 기원」과 연작 단편 「미래로 가는 사람들」 4편을, 같은 해 《Happy SF》 제2호에 「진화신화」를, 『2006 과학기술 창작문예 수상작품집』에 「우수한 유전자」를,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에 「마지막 늑대」를 수록했다.
  《거울》 19호에 반전과 역설의 묘미를 보여주는 SF 단편소설 「우수한 유전자」를 게재하며 필진으로 합류했다. 현재 웹진 《거울》에서는 김보영 작가의 초기작들을 모은 SF 중단편집 『멀리 가는 이야기』를 판매하고 있다.


  “그저께 물에 빠졌지.”
  “어떻게 알아?”
  “어제는 옥상에서 뛰어내렸고.”
  “어떻게 알지?”
  “왜 자살했는지 기억나?”
  “모르겠어. 언제나 죽는 것으로 끝나. 아니, 이전에도 언제나 죽는 것으로 끝났는데 이제야 그걸 알게 된 것도 같아. 꿈이 날이 갈수록 생생해지고 있어. 이젠 뭐가 꿈이고 현실인지도 헷갈려.”


  이 글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때로 꿈속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굉장히 몽환적인 글이다.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서사보다는 독자를 꿈 속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드는 환상적인 글이다. 이 단편집에 실려 있는 「서로 가다」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읽는 순간, 압도되는 느낌을 받은 글이었고 묵직하고 혼란스럽고 몽롱한 글이었다. 꿈이라는 소재에 대해서 이토록 집요하게 파고들어가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했고, 그만큼 많은 자료조사와 오랜 시간을 들여서 쓴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근사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게 환상문학이라고 할 수도 있는 작품일 것이다. 불친절한 글이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단편선은 그만큼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세계를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지 않을까 싶다. 웹에서 읽을 때는 어지러운 느낌까지 받았는데, 나중에 다시 시간을 내서 지면으로 천천히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때론 이런 글이 있다. 두고 다시 되새겨보고 싶은 글이.

  리뷰를 마치며

  그동안 환상문학 단편선은 명상에서 나온 『윈드 드리머』와 드림필드에서 나온 『환상서고』 정도 밖에 없었다. 단편을 구독하는 독자층은 거의 없었고, 단편을 창작하는 사람도 없었다. 2001년 『환상서고』가 출간된 지 7년이 지난 2008년이 되어서 황금가지에서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이 나왔다. 그리고 또 웅진씽크빅의 문학 임프린트인 시작에서 같은 제목의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이 나왔다. 그 사이 웹진 《거울》이 만들어져 온라인 상에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할 공간이 되어주었고, 학산문화사에서 무크지 『파우스트』가 나왔으며 장르 월간지 『판타스틱』은 1년이 넘게 잡지를 출간하고 있다. 또한, 세 작가의 단편집인 『누군가를 만났어』, 무협 단편집 『진산 무협 단편집』,  SF 단편집인 『얼터너티브 드림』,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공포 소설 단편집인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1권과 2권,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한국 스릴러문학 단편선』 등등 다양한 장르 단편집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주류문학이 장편 문학상을 확대하고 장편 소설을 활성화 시킬 때, 장르문학도 장편만 출간되는 형태에서 벗어나 단편선을 출간하며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황금가지와 시작 모두 각각 다양한 장르 단편집을 이번에 그치는 게 아니라 몇 년 동안 꾸준히 내겠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그 동안 장편 중심인 장르문학이 단편을 품에 안고 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작가의 역량을 키우고 좋은 작가를 발굴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장르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효과도 발휘할 것이다.
  다시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으로 돌아와서, 이 단편집이 각각의 수상경력이나 기대치에 비해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단편집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선정 기준이나 수록된 작가진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은 7년 만에 나온 여러 작가들의 환상문학 단편집이며,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딛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두 번째 단편집과 세 번째 단편집이 나올수록 더 다양한 작가와 더 많은 이야기들, 완성도 높은 작품들도 기대해 볼만하다. 한국 환상문학은 그동안 기형적이다 싶을 정도로 장편만 출간될 뿐, 단편이 나올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장르 단편 역시 빛을 볼게 되었다. 이것이 전환점이 되어 더욱 한국 장르 문학이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싶다. 그리고 한국 환상 문학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싶은 독자나, 앞으로 한국 환상 문학의 도약을 바라는 독자라면 지금 나오는 장르 단편집들을 한 권씩 구독하기를 바란다. 단편집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부담이 없이 한 권이라는 것에 있지 않겠는가. 단 한 권으로 실력 있고 가능성이 넘치는 작가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고, 마음에 드는 작가를 발견할 수 있다. 짧은 분량에 밀도 높은 단편들을 읽으면서 멋진 환상들을 체험해 볼 수 있고,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십년의 시간이 흐른다면 이 단편집은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실렸던 작가들이 십년 후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을 지 그 동안 얼마나 멋진 작품들을 선보일지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저 막연하게 기대할 뿐이다. 그 기대에 동참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여기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의 세계에 빠져보기를 바란다. 이야기가 주는 환상, 그 속에 담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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