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향교회 1 - Seed Novel
이효원 지음, 고진호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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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망향교회

 

  ― 길을 잃어버린 소설

  시드노벨에서 나온 한국 작가의 라이트노벨 『망향교회』는 많이 회자되는 작품은 아니다. 그만큼 작품이 주목을 못 끌었고 충분한 완성도나 재미를 갖추지 못한 작품이라는 소리일 것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따로 구입한 것이 아니라 시드노벨 1주년 독자 간담회를 가서 무료로 받게 된 책이다. 읽고 나서 느낀 것은 일단 몇 개 읽어본 시드노벨 작품 중 작품의 흥미 면에서는 오히려 『정의소녀환상』보다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어떤 캐릭터에게도 감정 이입을 할 수 없고, 조금이라도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을 찾을 수 없다.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억지로 개성을 부여한 작위적인 느낌이 지나치게 강했다. 목사가 헤비메탈을 들고 쓴소리를 하고 다닌다고 폼이 생기고 캐릭터의 개성이 생기는 게 아니다. 여우 귀가 달린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귀여운 말투를 쓴다고 해서 캐릭터의 개성이 확립되고 독자가 애정을 느끼게 되진 않는다. 만약 그런 설정만으로 개성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작가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다.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모든 환경과 수많은 장면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버릇이나 그런 것은 부차적인 것이지, 그런 기호들이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은 기호만 떠다닐 뿐 살아 숨 쉬는 캐릭터는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캐릭터 중 한명일 여진은 독자에게 감정 이입을 할 만한 어떠한 요소도 없으며, 오히려 계속 어이없는 감정만 느끼게 만든다. 이는 이 소설의 스토리 자체가 맥이 없고 독자를 납득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캐릭터 역시 어떠한 매력도 발산시키지 못하고 생동감을 죽이는 요소일 것이다.

  이 책의 스토리는 상처를 입고 자살을 시도했던 여진이라는 여주인공과 이를 막은 유성현 목사의 이야기로 압축할 수 있다. 여기서 유성현 목사는 아무런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캐릭터 조성에 실패하고 있고, 여진은 오히려 모든 정보가 낱낱이 밝혀지는 와중에도 스토리가 설득력을 잃는 탓에 공감을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 여진이 입은 상처의 이유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독자가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스토리가 그럴싸하고 또한 진부함이 없어야 독자가 몰입할 수 있으나, 이 책에 나오는 스토리는 황당함을 연이어 보여줄 뿐이다. 게다가 이후에 여진의 행동도 전혀 설득력이 없다. 누군가 죽음에 처한 상황에서 여진이 보여주는 행동가 의사는 독자를 답답하게 하고 이야기의 흥미를 감소시킬 뿐이다. 이야기나 캐릭터가 전부 무너진 이 글에서 유성현 목사 역시 따로 놀고 있다. 헤비메탈을 배경으로 깔고 벌이는 전투씬은 이야기에 조화되지 못하고 따로 논다. 이런 액션이 왜 펼쳐지는가, 에 대한 그럴싸한 이유와 근거가 없다. 설사 이런 흑마법과 환수가 나오는 액션이 아니라 단순한 격투기로 바꿔도 아무 상관도 없을 것이다. 그저 폼을 잡기 위해서, 라이트노벨로 만들기 위해서 억지로 넣은 전투씬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배경으로 깔고 있는 헤비메탈의 가사들은 읽는 데 방해만 될 뿐이다. 적당히 넣었으면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전투씬을 헤비메탈 가사로 떼우고 있다. 『얼음나무 숲』이 글에서 가사도 없이 엄청난 묘사로 음악을 들리게 한 것처럼, 여기서도 적당한 언급과 묘사로 음악을 독자가 상상하고 들을 수 있게 만들어줬어야 했다. 네가 알아서 찾아 들어, 라고 외치는 듯이 무작정 가사만 적어놓고 끝내는 게 아니라.

  문장도 다른 시드노벨 작품들에 비해 기본기가 떨어진다.(이 책을 리뷰한 다른 분의 글을 보면 문장을 잔뜩 지적한 경우도 볼 수 있다.) 어색한 문장들 때문에 독자가 읽기 힘들고 부족한 묘사 때문에 작품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문장이 좋았으면 황당한 스토리라도 읽기가 그리 힘들지는 않았겠지만, 모든 점에서 문제점이 나타나면서 읽기가 꽤 힘든 소설이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와 캐릭터, 구성, 문체에서 어설픈 느낌이 강하고 이는 곧 작위적인 느낌을 전해준다. 주제의식도 약하고 진부하며 이야기 자체도 황당하기 짝이 없다. 근래 읽은 책 중에 가장 실망한 책이었고 2권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결코 손이 가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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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앤드 커맨더 1 오브리-머투린 시리즈 1
패트릭 오브라이언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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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스터 앤드 커맨더


  ― 망망대해 속으로 떠나는 모험!


  ‘망망대해’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을 재미있게 본 나로서는 해적, 선원, 배, 보물 등 사나이들이 망망대해 속에서 펼치는 화려한 모험들이 떠오른다. 영화는 끝이 났고, 바다는 멀기만 하다. 이럴 때 다시 바다 위에서 배를 타고 거친 풍랑을 겪어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책은 당신을 어디로든 데려다 줄 수 있다. 땅 속이든, 하늘 위든, 우주 끝이든. 그리고 이 책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바로 나폴레옹과 넬슨 제독이 살아 숨 쉬는 시대 속으로 당신을 데려갈 것이다.

  이 책은 “「20세기에 등장한 가장 뛰어난 역사 소설」 ― LA타임스”라 는 말처럼 나폴레옹 전쟁이 절정으로 치닫던 19세기 초를 배경으로 한 해양소설이다. ‘역사소설’이라는 말에 지레 겁을 먹거나 지루할 거라는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이 소설은 ‘역사’ 보다는 ‘모험’ 쪽에 더 비중을 둔 소설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치는 환상적인 모험이 책을 펼치자마자 독자들 앞에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19세기 유럽의 철학적, 정치적, 성적, 사회적 시대상을 작가가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다루고 있어서 절로 감탄이 나온다. 때론 이런 점들 때문에 읽기가 버거울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이나 이야기가 궁금하기 때문에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이 책의 작가인 패트릭 오브라이언은 영국 소설가이자 저명한 번역가이며 외국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작가라고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번 책을 통해 처음 소개되었다. 이 책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두 권으로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지만, 「오브리-머투린 시리즈」의 첫 권에 불가하며 전체 21권에 달하는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19세기 초반 시대상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어 실제 그 세계의 이야기를 엿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뛰어난 필력은 낯선 시대와 배경에 쉽게 몰입하게 해주고 작품 전체에 안정적인 힘을 실어준다. 한 마디로 제인 오스틴, 톨스토이와 비견되는 유명한 작가의 근사한 대표작인 것이다.

  오래 전 상당히 유명했던 게임인 <대항해시대>라는 바다와 배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이 있었다. 배를 구입하고 선원들을 모집하고 물건을 사서 다른 지역에 팔고, 때론 해전을 벌이는 게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든 느낌은 바로 그 게임을 글로 읽는 듯하다. 이 책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잭 오브리는 생애 처음 함장으로 발령이 난 해군 대위다. 그는 소피 호라는 배를 맡게 되나, 전임 함장이 소피 호의 유능한 선원들을 데리고 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그는 새로 선원들을 모으고 배를 재정비해서 바다로 나가야 한다. 여기서 그는 우연히 음악회에서 마주친 스티븐 머투린을 알게 되고 그를 자신의 배의 군의관으로 초빙한다. 그리고 이 둘은 우정을 나누며 온갖 모험을 앞으로 같이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는 당시 시대를 그대로 그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배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각 배마다 어떤 돛이 달렸고 어떤 기능을 하며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상당한 분량을 사용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책만 읽고도 당시 시대와 배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얻기에는 충분할 듯싶다. 책도 깔끔한 디자인에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느낌이 든다. 표지도 마음에 들고 책날개에 그려진 소피 호의 그림과 설명이라든가 부록으로 이미지들과 제공된 ‘돛의 명칭’, ‘풍향과 배의 이동’, ‘방위도표’, ‘거리 환산 도표’ 등은 매우 친절하게 느껴졌다.

  만약, 바다에 관심이 있거나 평소 해양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작품일 것이다. 이렇게 시대를 반영한 역사 소설이면서 마치 한 편의 판타지 소설을 읽는 것처럼 뛰어난 모험이 가미된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작품에 주 무대인 소피 호는 작은 군함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해적선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선원들은 상금을 노리고 잭 오브리 역시 상금과 명성을 위해 배를 나포하는 것에 집중한다.(처음에 받는 느낌은 완전 해적선이 따로 없구나, 였다.) 이 소설은 상당히 쉴 틈을 주지 않고 숨 가쁘게 전개되는데 이것이 이 소설을 지루하지 않게 하고 끊임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원동력이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이들은 끊임없이 상선이나 적선을 발견하고 전투를 벌이고 승리한다. 흥미진진한 모험이 연이어 펼쳐지고 중간 중간 캐릭터들의 묘사나 갈등도 잘 되어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다.

  이렇게 칭찬만 계속 늘어놓아도 끝이 없을 정도로 충분한 재미를 가진 멋진 소설이었지만,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번역은 전체적으로는 잘 되어 있는 편이었지만, 가끔씩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도 보이곤 했다. 조금 더 신경 써서 읽기 편하게 문장을 손봤으면 좋았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가뜩이나 낯선 지명들과 외국어들이 난무하여 주석이 많은 소설인데 문장까지 쉽게 읽히지 않아 몇 번씩 다시 읽는 문단들이 있었다. 또한 상황 전환이 너무 순식간에 한 두 문장으로만 진행되어 뜬금없다거나, 지금이 어디에 언제인지 상황 파악이 힘든 부분이 있기도 했다. 즉, 아주 매끄럽게 읽히는 책은 아니며 독자가 좀 더 신경을 쓰고 세심하게 읽어나가야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두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한 명은 함장인 잭 오브리이고 또 한 명은 군의관으로 활동하는 스티븐 머투린이다. 잭 오브리는 진취적이며 야심이 크고 지휘를 잘하는 유능한 함장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둔한 면도 있고 실수를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속물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보이는 캐릭터였다. 이런 다양한 면 때문에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이 『마스터 앤드 커맨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잭 오브리가 아니라 바로 스티븐 머투린이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존재는 어디서나 주목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미국 드라마 《로스트》에서 가장 주목 받는 존재 중 하나가 ‘의사’라는 직업이었듯이, 스티븐도 역시 ‘의사’라는 점 때문에 선원들에게 가장 환영 받는 존재이다. 물론 그는 의사이면서 잭 오브리와 함께 음악을 즐기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동식물을 연구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이런 이지적인 모습들 그대로 스티븐은 실수하는 모습보다는 오히려 잭 오브리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조언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부상당한 선원들을 의술로 구해내는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때로는 남들에게 비밀로 하는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멋 부리듯 혼자 시간을 갖기도 하는 등 거친 선원들 사이에서 독자들이 쉽게 감정 이입을 하며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의 다음 권이 궁금한 이유를 하나 찾자면 잭 오브리의 뒷이야기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스티븐의 뒷이야기가 궁금하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역자 후기를 보니 나중에는 영국 첩보원으로 활동한다고 하니 더욱 더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후기를 보니 이 『마스터 앤드 커맨더』가 나오기까지 2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전체 21권이라는 이 시리즈가 어느 세월에 다 나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푸른 바다 위 함선을 타고 역사 속 모험에 뛰어들고 싶다면, 이 책을 찾아 읽어라.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최고의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다. 바다를 동경하는 사람,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 모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해양 소설에 빠진 사람이라면 이 책은 필독서다. 거창한 모험은 아니지만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점점 발전하는 다양한 모험들과 우정과 용맹한 선원들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때론 유쾌한 부분들에서는 웃음이 나고, 긴박한 순간에는 같이 긴장하게 되고, 승리했을 때는 최상의 기분을 맛볼 수 있다. 감탄할 만한 소설이었고 충분히 잘 쓰인 우수한 작품이다. 이 「오브리―머투린 시리즈」 말고도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책 속에 바다와 모험이 있다. 소년들이여, 무엇을 망설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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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시티 - 죽은 자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되는 시티!
케빈 브록마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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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시티


  ― 죽은 자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되는 곳


  “천재적인 상상력과 직관, 그리고 마음을 감싸는 부드러움으로 가득한 소설” ―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


  <오 헨리 문학상>을 수상하고 <뉴요커>에 첫 장을 게재하자마자 영화화된 매력적인 소설이라는 『로라, 시티』.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있는 기사를 읽고 나서는 왜 첫 장이 게재되자마자 영화화 계약이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한 마디로 독특한 설정이 매력적인 소설이다.(설정만 읽고도 흥미롭다는 생각이 번쩍 들면서 무조건 읽고 싶어졌다. 아마 영화 계약도 이런 연유일 것이다.) 죽은 사람들이 가게 되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는 매혹적이며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과연 어떤 모습이고, 어떤 세상이며 또한 거기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게다가 난 언젠가 꿈에서 이 소설과 비슷한 내용의 꿈을 꾼 적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글로 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하나의 장편 소설이 나와서 흥미로우면서도 내가 가지고 있던 소재 하나가 사라진 듯하여 아쉽기도 했다. 아무튼 간에 이 매력적인 설정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리라 생각한다.

  이 작품은 죽은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세계가 바이러스로 인해 멸망한 미래를 그림으로써 두 가지 이야기를 교차하며 진행하고 있다. 이는 소설의 재미를 배로 늘려주는 요소다.

  전 세계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져 단 한 명의 생존자 ‘로라’만 남기고 전부 죽는다. ‘로라’는 코카콜라 홍보를 위해 남극에 파견된 세 명의 연구원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죽음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도시에 수만 명이 건너온다. 그곳은 천국도 지옥도 아니다. 죽은 이가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멸망한 세계, 두 번째 삶이 시작되는 도시 등 매력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보다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 소재이다. 이 작품은 엄청난 음모나 스릴러적 요소 또한 극적인 반전 같은 것은 없으나, 두 세계를 교차하면서 사람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들에 대해서 감수성 어린 문체로 따뜻하게 적어나간다. 전체적으로 문체는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이고, 읽는 데 큰 무리가 없어 흡인력이 있다. 죽은 이후의 세계를 다루고, 또 바이러스로 인해 멸망한 세계를 그리는데도 독자가 공감을 느끼는 데 어렵지 않다. 남극에 대한 묘사도 훌륭하고 사실성이 있으며, 죽은 이후의 세계도 신비로우면서도 현실감 있게 그려진다. 그럴 법한 세계들을 그려진 것은 그만큼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서 쓰고 독자를 제대로 설득했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이야기가 완벽하게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예정된 결말 때문인지, 밋밋한 캐릭터들 때문인지 전체적인 이야기는 심심한 면이 없잖아 있다. 커다란 갈등이 없고 교차 편집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면이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어느 방향으로든 극적으로 나아갈 수 있었지만 작가는 극단적인 전개가 아닌 안정적으로 이야기를 갈무리한다. 밝혀지는 음모에 대한 진실도 독자에게 어떤 느낌도 전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상상력과 작가의 스토리텔러로서의 재능이 일정 이상의 재미를 주며 이야기의 힘을 실어준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이를 기억하고 있다면, 가슴에 품고 있다면 완전히 죽지 않은 것이라는 말이 그 동안 많이 있었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또 다른 공간은 바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사람들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리고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이 사라졌을 때, 그들이 다시 어디로 가는지는 이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독자의 상상 속에 맡겨두고 이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 들어 있는 어떤 부드러운 감성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때 죽었던 형을 추억하고, 지구에 살아있을 때는 하지 못했던 일을 해보게 되고, 끝이 예정되어 있는 세계인 두 번째 삶에서도 사랑을 하고.

  기발한 상상력과 안정적인 문장들, 따스한 인간들과 그들이 추억하는 기억들,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비로운 결말을 가진 소설이다. 만점을 줄 수는 없겠지만, 쉽게 남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할 만한 소설이다. 충분히 만족하게 읽었고, 생각할 여지도 많이 주는 글이었다. 삶과 죽음 어딘가에 대한 세계에 묘사와 바이러스로 인해 남극에서 홀로 살아남은 로라의 여정은 계속 이야기의 흥미를 자극했다.

  남극에 간 이후에 세계가 바이러스로 멸망해버렸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 혼자 남아 다른 생존자를 찾아 나선 로라의 여정이 있다. 그리고 죽는 순간 다른 세계에서 눈을 뜬 시티의 주민들이 있다. 『로라, 시티』를 펼치는 순간, 당신은 또 다른 세계에서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다. 귓가에서 끊임없이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는 세계가.



  그 얼음 뭉치를 보고 있으면 거대한 행성을 감고 있는 고리가 떠올랐다.
  그럼 자신은 거대한 행성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마 토성일 것이다.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물 아래로 내려가면 우물 입구 모양의 동그란 하늘 주변에 햇빛이 사라져 대낮에도 쇠못의 머리처럼 반짝이는 별자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 반대도 사실이어서 우물의 입구 같은 틈으로 올려다보면 한밤에도 태양이 불타오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크레바스 틈을 올려다보았을 때 보이는 것은 조금 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 별자리와 넓게 펼쳐진 오로라뿐이었다.

  ― 『로라, 시티』, 케빈 브록마이어, 마음산책, 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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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겐지 이야기
아기 다다시 지음 / 서울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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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겐지 이야기


  - 짧고 씁쓸한 이야기


  아기 타다시는 만화의 원작자로 유명하다. 그가 스토리를 쓴 만화로는 『신의 물방울』, 『소년탐정 김전일』, 『탐정학원Q』, 『겟백커스』 등 다수의 인기 만화들이 있다. 이 작가가 쓴 모든 만화를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 중 몇 개는 꽤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서울문화에서 출간한 아기 타다시가 쓴 『도쿄 겐지 이야기』는 유명 만화 원작자의 작품이라고 하여 특별한 기대를 하지는 않고 봤다. 아무리 만화 원작자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소설가로서의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신인 작가의 작품을 본다는 기분으로 읽었고, 그렇게 기대치를 낮춘 것이 도움이 된 듯하다. 일단 작품 색깔부터 그의 유명한 작품인 『소년탐정 김전일』이나 『탐정학원Q』와는 다르다. 본격적인 사건과 추리가 있는 미스터리 만화의 원작자가 쓴 소설이나, 이 작품은 미스터리보다는 독특한 감성이 주가 되는 작품이다. 치밀한 두뇌싸움을 기대하고 읽어서는 안 된다. 이 작품에 미스터리라고 할 것은 그리 없으며 추리할 요소도 적다. 그저 주위에 항상 죽음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한 소녀의 감성을 따라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 작품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쓰여 있어서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고 큼직한 사건들이 다를 뿐, 시간대가 긴밀하게 연속되어 있어서 하나의 책을 읽는 듯한 인상이 있고, 소녀가 품고 있는 비밀이 마지막에 밝혀진다는 점에서 완결성을 띠고 있다.

  출판사의 홍보자료를 보면, 독특한 문장과 실험적인 형식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독특한 문장들이 눈에 띄는 작품은 아니다. 읽으면서 문장이 눈에 띄긴 하는데 그 이유는 밀도가 높지 않고 문장들이 하나의 문단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보통 일본 라이트노벨 쪽에서 잘 읽히는 가벼운 문체를 추구하는 터라 자주 보이는 문체인데 확실히 잘 읽히고 독특한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사실 이 소설은 전체적인 분량이나 문체, 미스터리가 약하다는 점에서 라이트노벨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표지가 『다중인격탐정 사이코』로 잘 알려진 만화가 타지마 쇼우이기도 하고.) 주인공인 히카루의 감성도 그런 문체가 반 이상은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인 히카루를 빼고는 눈에 띄는 캐릭터는 많지 않다. 토우야는 거의 모든 것을 아는 듯이 행동하고 있지만 그 속내를 많이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등장도 짧은 편이다. 결국 캐릭터의 매력은 ‘겐지’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히카루라는 소녀에게 있으며,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이야기에 힘을 불어넣는 것도 전적으로 히카루에게 달려 있다.

  히카루는 어릴 적에 부모가 강도로 죽고, 친한 친구도 죽으면서 자기 주변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저주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친한 친구였던 유나가 히카루라는 이름 때문에 ‘겐지’라는 별명을 붙인 후부터 죽음의 저주가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한 편 이 소설의 첫 사건은 잘못 보내진 문자로 인해 친구가 된 아게하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여기서 히카루는 싱크로나이시티(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우연의 일치, 어떤 억압을 받았을 때 합리적이지 못하고 우연한 것에 끌리는 무의식적인 현상)를 경험한다. 이후, 다른 사건들에서도 히카루는 싱크로나이시티를 느끼며 죽음이 일어나는 것을 예지한다.

  현실적인 추리가 아니라 싱크로나이시티라는 것이 주가 된다는 것과 짧은 에피소드 형식이기 때문에 사건의 진상이 쉽게 밝혀지긴 하지만 이 소설의 미스터리도 나름대로 읽는 재미를 전해준다. 개인적으로 「ACT4. 냉혈의 론도」 편은 가장 인상적이고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기도 했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생각한 것은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과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이 연관된다는 점에서 츠츠이 야스타카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수록된 「악몽」 같은 단편이 떠오르기도 한다. 분량이 많지 않고 문장도 평이해서 빨리 읽을 수 있는 소설이며, 미스터리가 적당히 들어가면서도 매 사건마다 여러 죽음이 나오는 씁쓸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어둡고 한없이 차분한 느낌이다. 충격적인 전개도 감정의 분출도 극적인 반전도 없다. 어두운 과거와 죽음이 교차하고, 또 살아가는 ‘겐지’라는 별명을 가진 한 소녀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이 어둠 속 소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어떤 죽음들과 결말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한 번쯤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무언가가 시작하려 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아게하의 주소를 휴대전화에서 지우고, 메일 착신도 '거부'로 해두었다.

  108명을 등록해둔 주소록은 한 명이 지워져서 107명이 되었다.

  동시에 내 마음속에서, 작은 벌레 같은 것이 기어 나와 소리 없이 날아서 사라져버렸다.


  - 『도쿄 겐지 이야기』, 아기 타다시, 서울문화사,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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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노블 Nobless Club 6
노현진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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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데스노블


  노블레스 클럽에서 나온 『데스노블』은 공포소설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분은 읽으면서 어디 얼마나 날 무섭게 하는지 두고 보자, 라는 식으로 기를 쓰고 읽는 분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면 역시 책의 재미를 잘 느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 뿐이 아니라 공포영화나 다른 장르의 영화도 기대를 하고 도전하는 식으로 읽으면 그 본연의 재미를 느끼기 힘들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공포라는 장르를 선택했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무서움을 주는 계열의 소설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물론 공포를 주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 전체적인 느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단 이 소설에서 눈에 띄는 점은 제목을 비롯한 소설의 소재입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처음에 인터넷에 연재되는 소설을 읽게 되는데 이 소설의 제목이 ‘데스노블’입니다. 주인공이 읽는 것을 독자 역시 소설 본문에 포함되어 같이 읽게 되고 한 편으로는 이 책 또한 하나의 ‘데스노블’이 됩니다. 이 점을 더 작품이 파고들면 훨씬 무서운 작품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초반에만 ‘선작’이라는 표현 등으로 현실감을 주고 이후에는 그런 요소가 적은 듯해서 아쉬웠습니다. 이 소설의 장점은 어떻게 보면 인터넷 연재물에서 오는 공포라는 신선한 소재에서 오는데, 소설이 곧 현실이 되는 공포는 소설 속 주인공만이 급격하게 체감하고 독자도 역시 같은 ‘데스노블’을 읽으면서도 독자 주위의 현실에까지 그 공포를 전달하지 못한 감이 있었습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이 소설에서는 안에 또다시 연재물이 포함되어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산만합니다. 워낙 여러 인물들이 나오고, 그에 따라 시점이 수시로 바뀌면서 독자가 혼란스러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기가 잘 되어 있어서 문장을 읽는 데 무리가 없고 비문이 없이 깔끔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흡인력 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444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문장의 호흡이 좋았다는 소리일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주는 공포는 전형적인 ‘귀신’에 의한 공포들이 주를 이룹니다. 거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주는 두려움과 고어적인 묘사들에서 나오는 불쾌감들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간간히 무섭다고 느낄 만한 장면들이 있고 불쾌하기 짝이 없고 섬뜩한 장면들도 꽤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지나치게 소설 전체가 반복되는 문장과 어휘가 많고 따라서 소설 전체적으로 반복에서 오는 따분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묘사 역시 아쉬운 부분인데 매번 새로운 강렬한 장면과 표현이 아니라 한 번 나왔던 것을 반복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특히 걸렸던 부분 중 하나는 주인공 ‘재원’이 공포에 질려 바지에 오줌을 싸는 장면이 있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주인공의 공포를 전달할 수 있었겠지만, 이후에 여러 차례 나오면서 식상하고 공포 전달에도 무감각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제는 ‘그 정도로 무섭구나’ 라는 감탄이 아니라, ‘뭐야 이 자식 또야?’ 라는 느낌이 강합니다.(게다가 나중에는 텀이 길지도 않아서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합니다.) 고어적인 장면도 처음에는 끔찍해, 라는 느낌이지만 반복되고 반복될수록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 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죠. 작가가 좀 더 반복의 수위 조절을 하고, 매번 새롭고 강렬한 표현을 찾아 사용했다면 글이 훨씬 좋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물론 악령의 주문 같은 경우는 반복되어야 하지만, 역시 횟수의 문제가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양이도 지나치게 자주 등장하여 나중에는 좋지 않게 작용합니다.)

  캐릭터들은 제법 개성이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캐릭터의 매력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특히 어느 소설이나 주인공이 가장 중요한데 ‘재원’이라는 캐릭터는 그저 사건이 흘러가는 대로 끌려 다니는 수동적인 인물에 불과하고 오히려 다른 캐릭터들보다 개성도 없고 활약도 없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가 겪는 공포도 다른 캐릭터들보다 약하고 오히려 소설의 매력을 갉아먹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주인공이 사건에 휩쓸리기만 할 뿐, 어떤 절박함이나 목표 의식이 현저하게 없기 때문에 글의 긴장감이 없고 글이 중심을 잡지 못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현석 같은 캐릭터는 시한부라는 설정에서 여러 가지 시사 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제대로 못 살린 감이 있습니다. 한 장면에서만 시한부이기에 보이는 행동이 드러날 뿐, 다른 부분에서는 ‘이 캐릭터가 시한부였나’도 느끼지 못할 만큼 평범한 형사의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세희 같은 캐릭터도 독자들에게 사건을 정리하고 설명하는 역할, 제시된 단서들을 짚어주는 역할만 해서 아쉬운 감이 있었습니다. 결국 이야기의 본질에 닿지 못하고 주위를 빙빙 돌면서 유빈이라는 캐릭터와 함께 신화나 상징 같은 작가가 조사해서 독자들에게 자랑하고 설명하고 싶은 부분만 대사로 내뱉는 역할이라 오히려 캐릭터의 매력이 감소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준영의 캐릭터도 로봇처럼 편리하게 이용하는 도구로만 작용했고, 그럴 거면 도대체 등장할 필요가 어디에 있었나 싶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설정에서는 신선한 느낌을 받았는데, 결국 거기에서 그치고 말아서 아쉬웠습니다.

  이 소설은 공포소설이면서 미스터리를 쫓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누가 데스노블을 쓰고 있는 것이며, 이 모든 사건의 이면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독자와 주인공들은 내내 사건에 당하면서 이야기를 추구해 나갑니다. 분량이 많기 때문에 또 사건들이 전부 충격적이기 때문에 사건의 진상에 대한 기대치는 끝도 없이 높아져만 갑니다. 이 경우 드러나는 진상이 그리 크지 않고 또 어떻게 보면 처음에 ‘데스노블’이 연재된다는 평범한 현실에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갑작스런 판타지적 설정을 그 근거로 드러내면서 맥이 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오히려 인터넷 문명과 연관될 수 있는 설정으로 구성을 했다면 더 좋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나오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과 문제들과 결부시킨 원한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게 인터넷을 통해 퍼진다는 설정에 더 잘 결합될 테고요. 이 소설은 두 개의 설정이 극명하게 갈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할 만한 ‘데스노블’을 쓰는 작가에 대해서는 무엇이 밝혀진다고 해도 별 감흥이 없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이 전혀 ‘데스노블’과 상관이 없기 때문에 누가 썼든, 그것을 알았든 달라지는 건 없기에 독자는 그런 것이 밝혀져도 재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몇몇 인물들에 얽힌 이야기는 앞에 잠시 제시되었지만, 전체적인 소설 구조는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공포에 쫓기다가 결국 이야기가 풀리는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갈등은 신선한 면이 있지만 전체적인 구성과 결말 등에서는 과거에 발표된 여러 공포소설들이 떠오르곤 하여 진부한 느낌이 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예전 공포소설들이 떠오른다고 해도 단순히 매력적인 패턴을 구현했다면 아쉬움이 남지 않겠지만, 이야기 전체적으로 구성의 묘미나 결말의 반전과 재미가 약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 책은 긴 분량을 매끄럽게 잘 써내려간 공포소설로 신선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고 독자에게 괜찮은 몰입감을 줍니다. 적당한 공포도 던져주고 미스터리의 궁금함을 이용하여 독자가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만듭니다. 캐릭터나 구성 등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산만한 내용을 탄탄한 문장으로 잘 이끌어가고 있고 읽고 나서 적당한 만족감을 주기도 합니다.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 있고, 그만큼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이야기라 아쉬운 부분도 많이 보인 글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남들에게 적극 권하지는 않겠지만,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할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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