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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노블 ㅣ Nobless Club 6
노현진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데스노블
노블레스 클럽에서 나온 『데스노블』은 공포소설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분은 읽으면서 어디 얼마나 날 무섭게 하는지 두고 보자, 라는 식으로 기를 쓰고 읽는 분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면 역시 책의 재미를 잘 느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 뿐이 아니라 공포영화나 다른 장르의 영화도 기대를 하고 도전하는 식으로 읽으면 그 본연의 재미를 느끼기 힘들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공포라는 장르를 선택했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무서움을 주는 계열의 소설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물론 공포를 주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 전체적인 느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단 이 소설에서 눈에 띄는 점은 제목을 비롯한 소설의 소재입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처음에 인터넷에 연재되는 소설을 읽게 되는데 이 소설의 제목이 ‘데스노블’입니다. 주인공이 읽는 것을 독자 역시 소설 본문에 포함되어 같이 읽게 되고 한 편으로는 이 책 또한 하나의 ‘데스노블’이 됩니다. 이 점을 더 작품이 파고들면 훨씬 무서운 작품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초반에만 ‘선작’이라는 표현 등으로 현실감을 주고 이후에는 그런 요소가 적은 듯해서 아쉬웠습니다. 이 소설의 장점은 어떻게 보면 인터넷 연재물에서 오는 공포라는 신선한 소재에서 오는데, 소설이 곧 현실이 되는 공포는 소설 속 주인공만이 급격하게 체감하고 독자도 역시 같은 ‘데스노블’을 읽으면서도 독자 주위의 현실에까지 그 공포를 전달하지 못한 감이 있었습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이 소설에서는 안에 또다시 연재물이 포함되어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산만합니다. 워낙 여러 인물들이 나오고, 그에 따라 시점이 수시로 바뀌면서 독자가 혼란스러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기가 잘 되어 있어서 문장을 읽는 데 무리가 없고 비문이 없이 깔끔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흡인력 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444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문장의 호흡이 좋았다는 소리일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주는 공포는 전형적인 ‘귀신’에 의한 공포들이 주를 이룹니다. 거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주는 두려움과 고어적인 묘사들에서 나오는 불쾌감들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간간히 무섭다고 느낄 만한 장면들이 있고 불쾌하기 짝이 없고 섬뜩한 장면들도 꽤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지나치게 소설 전체가 반복되는 문장과 어휘가 많고 따라서 소설 전체적으로 반복에서 오는 따분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묘사 역시 아쉬운 부분인데 매번 새로운 강렬한 장면과 표현이 아니라 한 번 나왔던 것을 반복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특히 걸렸던 부분 중 하나는 주인공 ‘재원’이 공포에 질려 바지에 오줌을 싸는 장면이 있는데, 처음에는 그것이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주인공의 공포를 전달할 수 있었겠지만, 이후에 여러 차례 나오면서 식상하고 공포 전달에도 무감각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제는 ‘그 정도로 무섭구나’ 라는 감탄이 아니라, ‘뭐야 이 자식 또야?’ 라는 느낌이 강합니다.(게다가 나중에는 텀이 길지도 않아서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합니다.) 고어적인 장면도 처음에는 끔찍해, 라는 느낌이지만 반복되고 반복될수록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 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죠. 작가가 좀 더 반복의 수위 조절을 하고, 매번 새롭고 강렬한 표현을 찾아 사용했다면 글이 훨씬 좋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물론 악령의 주문 같은 경우는 반복되어야 하지만, 역시 횟수의 문제가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양이도 지나치게 자주 등장하여 나중에는 좋지 않게 작용합니다.)
캐릭터들은 제법 개성이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캐릭터의 매력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특히 어느 소설이나 주인공이 가장 중요한데 ‘재원’이라는 캐릭터는 그저 사건이 흘러가는 대로 끌려 다니는 수동적인 인물에 불과하고 오히려 다른 캐릭터들보다 개성도 없고 활약도 없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가 겪는 공포도 다른 캐릭터들보다 약하고 오히려 소설의 매력을 갉아먹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주인공이 사건에 휩쓸리기만 할 뿐, 어떤 절박함이나 목표 의식이 현저하게 없기 때문에 글의 긴장감이 없고 글이 중심을 잡지 못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현석 같은 캐릭터는 시한부라는 설정에서 여러 가지 시사 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제대로 못 살린 감이 있습니다. 한 장면에서만 시한부이기에 보이는 행동이 드러날 뿐, 다른 부분에서는 ‘이 캐릭터가 시한부였나’도 느끼지 못할 만큼 평범한 형사의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세희 같은 캐릭터도 독자들에게 사건을 정리하고 설명하는 역할, 제시된 단서들을 짚어주는 역할만 해서 아쉬운 감이 있었습니다. 결국 이야기의 본질에 닿지 못하고 주위를 빙빙 돌면서 유빈이라는 캐릭터와 함께 신화나 상징 같은 작가가 조사해서 독자들에게 자랑하고 설명하고 싶은 부분만 대사로 내뱉는 역할이라 오히려 캐릭터의 매력이 감소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준영의 캐릭터도 로봇처럼 편리하게 이용하는 도구로만 작용했고, 그럴 거면 도대체 등장할 필요가 어디에 있었나 싶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설정에서는 신선한 느낌을 받았는데, 결국 거기에서 그치고 말아서 아쉬웠습니다.
이 소설은 공포소설이면서 미스터리를 쫓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누가 데스노블을 쓰고 있는 것이며, 이 모든 사건의 이면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독자와 주인공들은 내내 사건에 당하면서 이야기를 추구해 나갑니다. 분량이 많기 때문에 또 사건들이 전부 충격적이기 때문에 사건의 진상에 대한 기대치는 끝도 없이 높아져만 갑니다. 이 경우 드러나는 진상이 그리 크지 않고 또 어떻게 보면 처음에 ‘데스노블’이 연재된다는 평범한 현실에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갑작스런 판타지적 설정을 그 근거로 드러내면서 맥이 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오히려 인터넷 문명과 연관될 수 있는 설정으로 구성을 했다면 더 좋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나오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과 문제들과 결부시킨 원한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게 인터넷을 통해 퍼진다는 설정에 더 잘 결합될 테고요. 이 소설은 두 개의 설정이 극명하게 갈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할 만한 ‘데스노블’을 쓰는 작가에 대해서는 무엇이 밝혀진다고 해도 별 감흥이 없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이 전혀 ‘데스노블’과 상관이 없기 때문에 누가 썼든, 그것을 알았든 달라지는 건 없기에 독자는 그런 것이 밝혀져도 재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몇몇 인물들에 얽힌 이야기는 앞에 잠시 제시되었지만, 전체적인 소설 구조는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공포에 쫓기다가 결국 이야기가 풀리는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갈등은 신선한 면이 있지만 전체적인 구성과 결말 등에서는 과거에 발표된 여러 공포소설들이 떠오르곤 하여 진부한 느낌이 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예전 공포소설들이 떠오른다고 해도 단순히 매력적인 패턴을 구현했다면 아쉬움이 남지 않겠지만, 이야기 전체적으로 구성의 묘미나 결말의 반전과 재미가 약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 책은 긴 분량을 매끄럽게 잘 써내려간 공포소설로 신선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고 독자에게 괜찮은 몰입감을 줍니다. 적당한 공포도 던져주고 미스터리의 궁금함을 이용하여 독자가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만듭니다. 캐릭터나 구성 등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산만한 내용을 탄탄한 문장으로 잘 이끌어가고 있고 읽고 나서 적당한 만족감을 주기도 합니다.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 있고, 그만큼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이야기라 아쉬운 부분도 많이 보인 글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남들에게 적극 권하지는 않겠지만,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할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