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겐지 이야기
아기 다다시 지음 / 서울문화사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도쿄 겐지 이야기


  - 짧고 씁쓸한 이야기


  아기 타다시는 만화의 원작자로 유명하다. 그가 스토리를 쓴 만화로는 『신의 물방울』, 『소년탐정 김전일』, 『탐정학원Q』, 『겟백커스』 등 다수의 인기 만화들이 있다. 이 작가가 쓴 모든 만화를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 중 몇 개는 꽤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서울문화에서 출간한 아기 타다시가 쓴 『도쿄 겐지 이야기』는 유명 만화 원작자의 작품이라고 하여 특별한 기대를 하지는 않고 봤다. 아무리 만화 원작자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소설가로서의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신인 작가의 작품을 본다는 기분으로 읽었고, 그렇게 기대치를 낮춘 것이 도움이 된 듯하다. 일단 작품 색깔부터 그의 유명한 작품인 『소년탐정 김전일』이나 『탐정학원Q』와는 다르다. 본격적인 사건과 추리가 있는 미스터리 만화의 원작자가 쓴 소설이나, 이 작품은 미스터리보다는 독특한 감성이 주가 되는 작품이다. 치밀한 두뇌싸움을 기대하고 읽어서는 안 된다. 이 작품에 미스터리라고 할 것은 그리 없으며 추리할 요소도 적다. 그저 주위에 항상 죽음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한 소녀의 감성을 따라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 작품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쓰여 있어서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고 큼직한 사건들이 다를 뿐, 시간대가 긴밀하게 연속되어 있어서 하나의 책을 읽는 듯한 인상이 있고, 소녀가 품고 있는 비밀이 마지막에 밝혀진다는 점에서 완결성을 띠고 있다.

  출판사의 홍보자료를 보면, 독특한 문장과 실험적인 형식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독특한 문장들이 눈에 띄는 작품은 아니다. 읽으면서 문장이 눈에 띄긴 하는데 그 이유는 밀도가 높지 않고 문장들이 하나의 문단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보통 일본 라이트노벨 쪽에서 잘 읽히는 가벼운 문체를 추구하는 터라 자주 보이는 문체인데 확실히 잘 읽히고 독특한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사실 이 소설은 전체적인 분량이나 문체, 미스터리가 약하다는 점에서 라이트노벨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표지가 『다중인격탐정 사이코』로 잘 알려진 만화가 타지마 쇼우이기도 하고.) 주인공인 히카루의 감성도 그런 문체가 반 이상은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인 히카루를 빼고는 눈에 띄는 캐릭터는 많지 않다. 토우야는 거의 모든 것을 아는 듯이 행동하고 있지만 그 속내를 많이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등장도 짧은 편이다. 결국 캐릭터의 매력은 ‘겐지’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히카루라는 소녀에게 있으며,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이야기에 힘을 불어넣는 것도 전적으로 히카루에게 달려 있다.

  히카루는 어릴 적에 부모가 강도로 죽고, 친한 친구도 죽으면서 자기 주변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저주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친한 친구였던 유나가 히카루라는 이름 때문에 ‘겐지’라는 별명을 붙인 후부터 죽음의 저주가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한 편 이 소설의 첫 사건은 잘못 보내진 문자로 인해 친구가 된 아게하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여기서 히카루는 싱크로나이시티(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우연의 일치, 어떤 억압을 받았을 때 합리적이지 못하고 우연한 것에 끌리는 무의식적인 현상)를 경험한다. 이후, 다른 사건들에서도 히카루는 싱크로나이시티를 느끼며 죽음이 일어나는 것을 예지한다.

  현실적인 추리가 아니라 싱크로나이시티라는 것이 주가 된다는 것과 짧은 에피소드 형식이기 때문에 사건의 진상이 쉽게 밝혀지긴 하지만 이 소설의 미스터리도 나름대로 읽는 재미를 전해준다. 개인적으로 「ACT4. 냉혈의 론도」 편은 가장 인상적이고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기도 했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생각한 것은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과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이 연관된다는 점에서 츠츠이 야스타카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수록된 「악몽」 같은 단편이 떠오르기도 한다. 분량이 많지 않고 문장도 평이해서 빨리 읽을 수 있는 소설이며, 미스터리가 적당히 들어가면서도 매 사건마다 여러 죽음이 나오는 씁쓸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어둡고 한없이 차분한 느낌이다. 충격적인 전개도 감정의 분출도 극적인 반전도 없다. 어두운 과거와 죽음이 교차하고, 또 살아가는 ‘겐지’라는 별명을 가진 한 소녀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이 어둠 속 소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어떤 죽음들과 결말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한 번쯤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무언가가 시작하려 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기다리는 것뿐.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아게하의 주소를 휴대전화에서 지우고, 메일 착신도 '거부'로 해두었다.

  108명을 등록해둔 주소록은 한 명이 지워져서 107명이 되었다.

  동시에 내 마음속에서, 작은 벌레 같은 것이 기어 나와 소리 없이 날아서 사라져버렸다.


  - 『도쿄 겐지 이야기』, 아기 타다시, 서울문화사,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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