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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시티 - 죽은 자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되는 시티!
케빈 브록마이어 지음, 김현우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평점 :
로라, 시티
― 죽은 자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되는 곳
“천재적인 상상력과 직관, 그리고 마음을 감싸는 부드러움으로 가득한 소설” ―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
<오 헨리 문학상>을 수상하고 <뉴요커>에 첫 장을 게재하자마자 영화화된 매력적인 소설이라는 『로라, 시티』.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있는 기사를 읽고 나서는 왜 첫 장이 게재되자마자 영화화 계약이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한 마디로 독특한 설정이 매력적인 소설이다.(설정만 읽고도 흥미롭다는 생각이 번쩍 들면서 무조건 읽고 싶어졌다. 아마 영화 계약도 이런 연유일 것이다.) 죽은 사람들이 가게 되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는 매혹적이며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과연 어떤 모습이고, 어떤 세상이며 또한 거기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게다가 난 언젠가 꿈에서 이 소설과 비슷한 내용의 꿈을 꾼 적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글로 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하나의 장편 소설이 나와서 흥미로우면서도 내가 가지고 있던 소재 하나가 사라진 듯하여 아쉽기도 했다. 아무튼 간에 이 매력적인 설정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리라 생각한다.
이 작품은 죽은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세계가 바이러스로 인해 멸망한 미래를 그림으로써 두 가지 이야기를 교차하며 진행하고 있다. 이는 소설의 재미를 배로 늘려주는 요소다.
전 세계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져 단 한 명의 생존자 ‘로라’만 남기고 전부 죽는다. ‘로라’는 코카콜라 홍보를 위해 남극에 파견된 세 명의 연구원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죽음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도시에 수만 명이 건너온다. 그곳은 천국도 지옥도 아니다. 죽은 이가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멸망한 세계, 두 번째 삶이 시작되는 도시 등 매력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보다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 소재이다. 이 작품은 엄청난 음모나 스릴러적 요소 또한 극적인 반전 같은 것은 없으나, 두 세계를 교차하면서 사람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들에 대해서 감수성 어린 문체로 따뜻하게 적어나간다. 전체적으로 문체는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이고, 읽는 데 큰 무리가 없어 흡인력이 있다. 죽은 이후의 세계를 다루고, 또 바이러스로 인해 멸망한 세계를 그리는데도 독자가 공감을 느끼는 데 어렵지 않다. 남극에 대한 묘사도 훌륭하고 사실성이 있으며, 죽은 이후의 세계도 신비로우면서도 현실감 있게 그려진다. 그럴 법한 세계들을 그려진 것은 그만큼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서 쓰고 독자를 제대로 설득했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이야기가 완벽하게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예정된 결말 때문인지, 밋밋한 캐릭터들 때문인지 전체적인 이야기는 심심한 면이 없잖아 있다. 커다란 갈등이 없고 교차 편집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면이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어느 방향으로든 극적으로 나아갈 수 있었지만 작가는 극단적인 전개가 아닌 안정적으로 이야기를 갈무리한다. 밝혀지는 음모에 대한 진실도 독자에게 어떤 느낌도 전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상상력과 작가의 스토리텔러로서의 재능이 일정 이상의 재미를 주며 이야기의 힘을 실어준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이를 기억하고 있다면, 가슴에 품고 있다면 완전히 죽지 않은 것이라는 말이 그 동안 많이 있었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또 다른 공간은 바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사람들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리고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이 사라졌을 때, 그들이 다시 어디로 가는지는 이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독자의 상상 속에 맡겨두고 이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 들어 있는 어떤 부드러운 감성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때 죽었던 형을 추억하고, 지구에 살아있을 때는 하지 못했던 일을 해보게 되고, 끝이 예정되어 있는 세계인 두 번째 삶에서도 사랑을 하고.
기발한 상상력과 안정적인 문장들, 따스한 인간들과 그들이 추억하는 기억들,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비로운 결말을 가진 소설이다. 만점을 줄 수는 없겠지만, 쉽게 남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할 만한 소설이다. 충분히 만족하게 읽었고, 생각할 여지도 많이 주는 글이었다. 삶과 죽음 어딘가에 대한 세계에 묘사와 바이러스로 인해 남극에서 홀로 살아남은 로라의 여정은 계속 이야기의 흥미를 자극했다.
남극에 간 이후에 세계가 바이러스로 멸망해버렸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 혼자 남아 다른 생존자를 찾아 나선 로라의 여정이 있다. 그리고 죽는 순간 다른 세계에서 눈을 뜬 시티의 주민들이 있다. 『로라, 시티』를 펼치는 순간, 당신은 또 다른 세계에서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다. 귓가에서 끊임없이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는 세계가.
그 얼음 뭉치를 보고 있으면 거대한 행성을 감고 있는 고리가 떠올랐다.
그럼 자신은 거대한 행성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마 토성일 것이다.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물 아래로 내려가면 우물 입구 모양의 동그란 하늘 주변에 햇빛이 사라져 대낮에도 쇠못의 머리처럼 반짝이는 별자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 반대도 사실이어서 우물의 입구 같은 틈으로 올려다보면 한밤에도 태양이 불타오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크레바스 틈을 올려다보았을 때 보이는 것은 조금 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 별자리와 넓게 펼쳐진 오로라뿐이었다.
― 『로라, 시티』, 케빈 브록마이어, 마음산책, 2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