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전 Z 밀리언셀러 클럽 84
맥스 브룩스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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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Z

World War Z

맥스 브룩스, 황금가지, 2008년 6월

 

 좀비와 인간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영화나 만화, 소설에서 등장하는 좀비들을 보면 한번쯤 그런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좀비들의 놀라운 전염성과 맹목적인 공격성, 그리고 생존자들이 벌이는 세계적인 전쟁. 황금가지 밀리언셀러클럽에서 출간된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Z]는 바로 세계 좀비 대전을 다룬 소설이다. ‘좀비’라는 존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당연히 이미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좀비라는 소재에 거부감이 없음에도 아직 안 읽어본 사람을 위해서 책을 소개하자면, 이 책은 한 두 사람의 입장에서 전쟁을 세세하게 그리는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은 소재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매우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바로 전쟁 발발 이후, 한 기자가 전쟁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을 인터뷰한 형식이다. 일종의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대한 것과 달라서 당황하기도 했다. 좀비들과의 긴박한 전쟁 모습을 감상하게 될 줄 알았는데, 전쟁 이후 생존자들을 인터뷰한 형식이라니. 처음에 재미가 있을지 의심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처음에 몇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이야기에 빨려들었다. 능청스럽게 실제 세계 좀비 대전이 발발했다는 설정에서 벌어지는 인터뷰들은 작가의 상세한 조사가 빛을 발해서 그럴듯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었다. 소설이 설정이나 고증이 탄탄할 경우 황당한 이야기를 꺼내들어도 현실성을 띠는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이 그러했다. 밀리터리 지식과 세계 각국의 사정 등을 세세하게 조사하고(남한과 북한의 정세도 등장한다. 한국 독자라 어색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이외에도 각국 정세가 그대로 드러난 부분들은 방대하다고 말할 분량이다.) 집필했기 때문에 독자들도 그럴싸하게 느끼고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정도의 현실성을 띠지 않는다면 먼저 독자가 몰입해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나갈 마음가짐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 소설은 그 독특한 인터뷰 형식으로 책을 구성했기 때문에 자칫하면 지루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었으나, 읽어나가면서 그런 걱정도 금세 사라졌다. 일단 인물의 배치를 적절하게 해서 처음 좀비가 나타나고 전염되게 된 경위를 알 수 있는 인터뷰어가 앞에 있고 이후에도 사건의 시간 순서대로 인물들을 배치해서 하나의 큰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읽어나갈 수 있었다. 즉, 인터뷰를 모은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스토리가 읽히면서 집중이 되고 분산되는 느낌이 없었다. 게다가 한 명의 인터뷰마다 강렬한 이미지와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들어 있고, 짧은 단편을 여러 개 읽는 것처럼 각각의 기승전결을 가진 스토리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아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일종의 옴니버스 소설을 읽는 것처럼 각각 인물들의 이야기 안에도 사건과 스토리가 존재하고 재미있게 읽으면서 다음 인터뷰를 읽으면 또한 전체 큰 스토리가 파악되고 따라가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형식인 것이다. 그렇기에 끝 부분에서 등장하는 가장 큰 피해자인 자연에 대한 언급에서는 뭉클함을 느꼈다.

 이 소설은 과거에 실제 좀비 전쟁이 있었던 것 같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아마존 등에서 많은 호평을 받은 소설인데, 그만큼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좀비 전쟁이 일어날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사례를 모은 느낌이었다. 지구의 좀비 전쟁이 벌어졌을 때, 우주정거장에 있던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핵잠수함을 타고 도피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 집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던 히키코모리는 어떻게 행동했을지 그려냈다. 좀비라는 새로운 형태의 재난에 대처하는 각국 인간들의 대응책들을 한 눈에 훑어볼 수 있다는 건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실성을 가지고 있어서 실제로 중국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장기 매매 등으로 퍼져 나가고 마침내 지구 전역에 퍼져서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는 일이 가능할 것 같았다. 또 인터뷰라는 형식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이 겪은 일들을 진술할 때마다 머릿속에 선명한 이미지로 떠올랐다. 몰입이 잘 된 요인이었다.


▲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가 제작을 맡고 [퀀텀 오브 솔러스](Quantum of Solace, 2008)의 마크 포스터 감독이 촬영하는 [세계대전Z](World War Z, 2010)의 컨셉아트.
  


 이 소설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와 브래드 피트가 영화 판권 경쟁을 벌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브래드 피트가 영화화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극적인 사건들이 많고 괜찮은 스토리를 가진 인물들이 다수 나오기 때문에 각색만 잘하면 정말 근사한 좀비 영화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군대와 좀비들의 격전은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고, 인간이 좀비가 되길 바라는 퀴즐링, 가짜 좀비 백신 이야기, 창 독트린, 끝까지 라디오 방송을 한 사람들, 심해를 걷는 좀비의 이미지, 차에 갇힌 채 좀비가 된 사람들까지 경악스런 장면이나, 인간 본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부분들이 있었다.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결국 생존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 책이 후일담이라는 사실. 셀 수도 없이 많은 인간이 좀비가 되어서 절체절명의 상황이 되어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실제로도 그럴 수 있을까? 많은 의문이 남는 책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절망에 맞서 끝내 승리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자신을 희생하며 싸워나간 사람들의 기록이기 때문에, 가상의 이야기일지라도 큰 울림을 지닌 소설이었다. 소설부터 영화까지 많이 다룬 좀비라는 소재이지만, 이 책은 형식의 변화를 통해서 또 방대한 조사와 고증을 통해서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만들어냈다. 누구도 쉽게 다룰 엄두를 내지 않은 좀비 전쟁을 그려냈고 인터뷰 형식으로 현장감을 살리고 인간의 어리석음과 고위층에 대한 풍자를 비롯해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그려낸 소설이었다. 좀비 소설이지만 이처럼 유머와 따스한 시선이 섞인 책이라 불쾌하지 않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좀비에 대한 큰 거부감이 없다면 재미있는 소설로서 [세계대전Z]를 읽는 것이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물론 좀비를 좋아한다면 놓칠 수 없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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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9-08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긴 했는데 다큐같은 내용이라 좀 딱딱한 느낌이지요^^

twinpix 2009-09-08 11:09   좋아요 0 | URL
한 권 전체가 같은 형식이라 나중에 확실히 지치는 감이 있지만, 일단 좋은 시도였고 다른 소설들과 차별성을 얻는데도 성공했고 인터뷰 형식이 주는 여러가지 현실감이라든지 독특한 감성을 잘 전해주는 괜찮은 좀비소설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두꺼운 책 한권을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쓴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기도 하고 말이죠.
 
엑사바이트 밀리언셀러 클럽 102
하토리 마스미 지음, 김미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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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엑사바이트

― IT 스릴러? 기록과 타임머신

  윈도우가 아닌 MS-DOS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게임을 하나 하기 위해서도 CONFIG.SYS와 AUTOEXEC.BAT 파일을 수정하며 기본 메모리인 640KB 안에서 수정을 하느라고 고생을 했었다.(기본 메모리를 고작 640KB로 정해놓았던 빌 게이츠를 얼마나 원망했던지.) 그러나 1MB를 다운 받는 것에도 몇 분이 걸리는 시절도 뛰어넘어 하드가 1GB면 여유로웠던 시절도 넘어 이제는 하드디스크 용량이 1테라에 달하는 세상이 되었다. 1GB의 커다란 하드디스크가 아닌 손가락 크기만한 USB에 16GB도 담고 다니는 세상이다.

  앞으로도 저장 장치의 용량은 계속 발전할 테고 그로 인해 우리는 더욱 많은 기록들을 저장할 수 있게 된다. 지금도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싸이월드나 블로그 등에 올리면서 매 순간이 기록되는 중이다.

  하로리 마스미의 소설 『엑사바이트』는 지금보다 더 저장용량이 발전된 세계를 그리고 있다.(10억 기가바이트) 현재 테라바이트 하드 디스크까지 사용하는 상황에서 그 이상의 용량인 페타바이트까지 넘어선 용량이 사용되는 세계이다. 그러면 세상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개인의 삶을 통째로 영상으로 기록할 수 있게 된다. 만약 모든 사람의 삶이 기록된다면 그것은 과거를 전부 살펴볼 수 있는 과거를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타임머신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따라서 이 소설의 발상만 읽고도 테드 창이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강연했던 아이작 아시모프의 「죽은 과거」와 거대 기억장치와 검색기술의 발전을 연결한 이야기가 자동으로 떠올랐다. 책 본문에서도 역시 타임머신이라고 할 수 있다는 대사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를 표현하고 싶어하고 기록을 남기고 싶어한다. 미래에 자신의 생애를 전부 기록할 수 있는게 보편화된 세상이라면 나 역시 당연히 그 기술을 이용하고 싶다. 이 소설은 서기 2025년 ‘비저블 유닛’이라는 기계가 사용되는 세계이다. 안면 부착형 소형 카메라로 패션의 형태처럼 ‘비저블 유닛’을 붙이고 자기가 보는 것을 모두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주인공은 이 비저블 유닛을 이용해서 방송을 하는 TV 프로듀서다. 그런 그에게 ‘엑사바이트’라는 회사를 이끄는 여자가 나타나 인류의 인생을 한데 모은 ‘실시간 세계사 프로젝트’의 기획을 말한다.

  일단 소재부터가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특히 나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고 여러 행사나 사건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자신의 생애를 전부 기록할 수 있는 장치는 어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이 장치가 적용된 세계의 모습은 세세한 부분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읽어나갔다. 그야말로 배경 설정만으로도 눈이 즐거운 소설이었다.

  물론 이 소설은 이 장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소설이 아니라, 이 장치를 둘러싸고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인이 엮인 스릴러 소설이다. 그만큼 등장인물들이 절묘하게 엮이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숨가쁜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다. 단번에 읽을 만큼 빠르게 읽히는 소설이며 충분히 흥미로운 소설이다. 소재도 독특하고 관심이 가지만, 이 소재로 인해 이야기되는 것들도 충분히 있음직하고 재미있다. 분명 이런 ‘비저블 유닛’이 있다면, 그 정보들을 모으고 총합하여 ‘실시간 세계사’를 만들고 싶은 욕망은 쉽게 가질만하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이 ‘비저블 유닛’을 두고 정부와 다국적 기업 또 개인이 서로 대립하면서 스릴러 소설의 암투를 제대로 그리고 있다. 비저블 유닛은 분명 좋은 일에만 사용되지 않을 것이고 수많은 문제점과 악용될 여지가 있다. 이 소설은 그런 점들을 놓치지 않고 다루면서 읽는 독자 역시 기술에 발전에 따른 대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수많은 CCTV들이 우리를 감시하고 보호하고 있지만 한편, 개인의 사생활 문제 등을 야기시키는 것처럼 기술은 장단점을 고루 갖고 있고 우리는 이를 항상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뒷부분이 급 전개이고 지나치게 대화로만 모든 사건이 설명되고 해결되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런 단점을 덮을 만한 흥미로운 소재와 구성이 매력적인 IT 스릴러였다. 디지털로 기억을 저장하는 소재에 관심이 간다면, 또는 지금 이 시점에 나올 수밖에 없는 이 최첨단 IT 스릴러에 관심이 간다면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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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9-08-24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끔찍해요. 몽땅 다 저장이라니. 인간에게 망각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데. @,@

twinpix 2009-08-26 19:44   좋아요 0 | URL
그런 다양한 논의가 들어 있어서 더 재미있는 소설이었어요.^^

카스피 2009-08-24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일종의 근미래 소설 같군요.재미있겠는데요^^

twinpix 2009-08-26 19:45   좋아요 0 | URL
네, 괜찮더라고요. 소재가 확실히 가장 매력적이더군요. 너무 근미래라서 좀 어색해 보이기도 했어요. 마지막에는 약간 일본 작가라는 느낌이 나는 뭔가 괴기적인 부분들은 아쉽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재미있었어요.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 상 - 스티븐 킹 단편집 밀리언셀러 클럽 100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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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 상 -




  단편 이야기가 잊혀진 예술은 아니지만, 소멸의 구덩이에 곤두박질칠 순서로 따진다면 시보다 오히려 더 가깝다는 데 전 재산을 걸겠다. 1986년이라는 아득한 옛 시절에 최초의 단편소설집을 팔 때에 도 이미 시장의 마모 현상을 한탄했었다. 싸구려 잡지는 온데간데없고 다이제스트 판은 축 늘어졌으며(《선데이 이브닝 포스트》같은) 주간지들도 죽어가고 있었다. 그 후 몇 해 동안 내가 본 것이라고는 단편 소설 시장의 위축뿐이었다. 오, 신이여. 힘없는 잡지들을 굽어 살피소서! 젊은 작가들이 선집에나마 낄 가능성은 그곳뿐이옵니다! 신이여. (2001년 탄저병 위기에서도 꿋꿋이) 잡동사니 원고들을 읽고 있던 편집자들에게 복을 주소서! 오, 신이여. 독창적인 단편선집에 기회를 부여하는 출판업자들을 칭송하소서!




― 『모든 일이 결국 벌어진다 상』, 스티븐 킹, 황금가지, 12쪽




  밀리언셀러클럽 101번째 책으로 출간된 스티븐 킹의 단편집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상』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바로 이 스티븐 킹이 쓴 서문이었다. 한국보다 당연히 시장이 클 것이라고 생각되는, 그리고 실제로 더 많은 잡지들이 존재하고 작가 층이 있는 미국에서도 단편은 장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축소되고 있는 시장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한국에서는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많이 팔리는 단편 수상집이라는 문구가 있듯이, 주류문학 쪽이 단편 중심이었고, 최근 들어 장편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에 반해, 국내 장르소설은 주로 장편 위주였으며 장르 단편은 발표할 곳을 찾기 힘들었다. 최근 들어서야 몇 개의 잡지가(HAPPY SF, 판타스틱, 파우스트, 미래경 등) 생겨났고 웹진 등에서 장르 단편을 발표할 공간이 생겨났으며,(환상문학웹진 거울, 크로스로드 등) 스티븐 킹이 출판업자들을 칭송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칭송받을 만한 몇몇 출판사들이 ― 꾸준히 공포소설, 추리소설, 환상소설 단편집을 내는 황금가지나, 또 장르 단편을 출간한 시작, 해토 ― 단편집을 출간하면서 소기의 성과를 얻고 있다. 이로 인해 가능성 있는 신예 작가들이 기성 작가들과 함께 출간을 하며 여러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고 독자들 역시 여러 가능성 있는 작가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대표적으로 SF단편집인 웹진 크로스로드의 기획으로 출간되는 단편집들이 있다. 이영도, 듀나 등의 기성작가 뿐만 아니라 신예작가들의 단편도 함께 출간하는 SF 단편집을 3권 째 출간했다.) 어디나 절충이 필요하다. 주류문학이 지나치게 단편 중심에서 이제야 장편 소설 시장을 활성화하고 있다면 반대로 장르문학은 장편 중심 시장 속에서도 연이은 장르 단편집의 출간으로 다양한 작가들이 발굴되고 또 실력을 기르는 계기가 되면서 추후에 좋은 작가와 작품을 기대해볼 수 있게 되었다.(그렇기에 장르 단편이 나오면 곧바로 구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4호 부검실




정신은 말짱하지만 몸이 마비된 코트렐은 그만 사망 판정을 받고 부검실에 끌려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정신을 말짱한데 몸이 마비되어 부검실에 온다는 상황 설정이 독특하고 신선하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극적인 공포를 가져다 준다. 이 작품은 이번에 밀리언셀러클럽 100권 돌파 기념 파티에서 연극 무대로 먼저 접했다. 책으로 읽고 느낀 것은 연극이 상당히 각색을 잘해서 옮겼다는 점이었다. 이야기를 전부 다 알고 읽는 것이기 때문에 원작을 어떤 식으로 옮기고 수정했는지 확인하는 수준에 머무른 독서가 되고 말았다. 아무튼 어떤 형식으로든 처음 접하게 되면, 호기심을 자극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재미있는 발상이며 흥미로운 이야기임은 틀림없다.




검은 정장의 악마




이 단편은 오 헨리 문학상을 수상한 단편이었다. 그렇다고 큰 기대를 하고 읽을 만한 어떤 심도 깊은 이야기나 뛰어난 구성이 있는 단편은 아니다. 스티븐 킹이 후기에 적었듯이 미국의 ‘설화’를 읽는 기분이었다. 마침 최근에 한국구비문학대계라는 각 지역 노인분들에게 설화를 채록하여 묶은 책을 읽었는데, 이 역시 한 노인이 어린 시절 낚시를 하러 갔다가 악마를 만난 이야기를 회고조로 담고 있어서 그 동일한 형식 등이 재미있었다. 현실에 ‘악마’의 직접적인 등장이라는 초현실을 몰입이 갈 정도로 묘사하는 솜씨가 뛰어나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자살을 앞 둔 남자가 자신이 수집한 낙서들을 보며 여러 가지 걱정을 하는 이야기. 화장실에 적힌 낙서들이 주요 소재로 쓰인 소품이다. 화장실에 적힌 낙서들을 가지고 한 편의 단편을 완성할 수 있다는 점이 멋지게 생각되는 글이었다. 계속 한 남자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글이기 때문에 단순하고 단조로운 느낌의 글이지만, 잠언처럼 빛나는 몇몇 문장들은 인상적이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확정 짓지 않는 결말 역시 좋았다. 부디 그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잭 해밀턴의 죽음




1930년대 유명한 갱스터 존 딜린저와 그 일당들의 이야기다. 최근 같은 인물들을 다룬 조니 뎁과 크리스챤 베일이 주연한 『퍼블릭 에너미』를 봤는데, 존 딜린저에 대해서 자세히 찾아보지 않아도 스티븐 킹의 단편을 읽고 갔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과는 다른 감상을 느낄 수 있었던 듯하다. 영화와 이미지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영화를 보면서도 계속 스티븐 킹의 이 단편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작품의 가장 근사한 점은 일대기가 밝혀진 존 딜린저 일당의 행방이 묘연한 며칠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빛난 부분이었고, 이렇게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우리가 알 수 없는 시간대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다.




죽음의 방




남미의 어느 조사실에 갇힌 남자 이야기. 전기 고문을 당하고 죽음에 위협 속에서 굉장히 몰입감을 가지고 읽었던 작품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단번에 역전이 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방 안에서 벌어진 이야기까지는 긴장감이 살아있어서 재미있었다. 상황이 긴박하고 주인공의 생사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고, 비록 상황을 역전시켰다고 하더라도 언제 바깥에서 문이 열리고 주인공을 잡기 위해 들어올지 모른다는 점이 긴장을 유지시켰다. 그러나 문을 열고 나간 이후로부터는 지나치게 편안하게 전개되어서 약간은 맥이 빠졌다. 약간 더 끝까지 긴장을 주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단편이기도 했다.




엘루리아의 어린 수녀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또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다. 처음 스티븐 킹의 대작 판타지 장편 소설 『다크 타워』의 외전이라는 문구를 읽었을 때는 그리 기대치가 높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떤 작품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단편의 완결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 『다크 타워』의 내용을 어느 정도 숙지해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단편의 내용은 『다크 타워』의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되기 전을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많은 배경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단편으로서의 완성도도 매우 높기 때문에 흥미로운 구성을 따라 읽다가 마지막에는 깊은 여운도 남는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잘 그러졌고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잘 되어서 흡인력이 높았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못했고 마지막까지 인상 깊게 읽은 글이었다. 아직 읽지 않은『다크 타워』의 기대치를 무한정 높인 단편이기도 했다.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 남자가 어떤 단체에게 제의를 받는다. 그 단체는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 딩크의 능력을 사용하는 대가로 편의와 금전적 보상을 제공한다. 이 단편은 놀랍게도 스티븐 킹이 어느 날, 한 남자가 하수구에 동전을 버리는 단 하나의 미지를 떠올리고 기억했다가 그걸 토대로 쓴 단편이다. 단 하나의 이미지에서 이만한 분량의 단편 소설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표제작으로 선정된 작품이지만 이 작품이 가장 이 단편집에서 좋은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초능력이라는 소재가 갖고 있는 매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대로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아쉬웠던 점은 전체적으로 예상 범위대로 진행되는 이야기였다. 이 작품은 할리우드에서 영화화 하여 올해 안에 개봉 예정작이라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 영상화 했을지 기대된다. 영화로라면 무궁무진한 각색의 여지가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단편집이라는 특성 상 아쉬운 단편도 있었지만, 충분히 만족감을 주는 단편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독서가 되었다. 사실 실망할 거란 예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스티븐 킹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다양한 소재를 스티븐 킹 식으로 비틀고 재해석하여 쓴 8편의 단편들이 매번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기분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 기쁘다. 아직 6편의 단편이 수록된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하』가 남아 있다. 여기에는 또 어떤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누구라도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상』을 읽고 하권만 읽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벗어날 수 없다. 당연하다. 그렇게 되어 있다. 스티븐 킹의 글을 읽게 되는 것은 말이다.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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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8-22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미국은 오히려 단편시장이 훨 적군요.국내에 비해서 이러 저러한 잡지들이 많아서 단편 시장이 꽤 큰줄 알았는데요.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twinpix 2009-08-23 01:12   좋아요 0 | URL
국내 순수문학 쪽이 확실히 이상하게 단편 중심이라고 하죠. 예전에 기사를 보면 프랑스던가 그쪽에서는(장르는 아니었지만) 단편은 거의 쓰지를 않는다고 하고요.(문단에서 장편으로 가야한다고 이야기 나올 때 나왔던 기사였던 듯.)
 
먼 곳의 바다 Nobless Club 16
민소영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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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의 바다




  노블레스클럽의 열 여섯 번째 출간된 책은 『먼 곳의 바다』입니다. 작가는 PC통신 시절부터 연재를 해서 지금까지 꾸준히 출간을 해온 작가입니다. 『검은 숲의 은자』를 시작으로, 『폭풍의 탑』, 『겨울성의 열쇠』, 『홍염의 성좌』, 『북천의 사슬』, 『적야의 일족』 등의 장편 소설을 출간했으며, 노블레스클럽에서 나온 단편집 『꿈을 걷다』에 단편 「꽃배마지」를 수록했습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첫 단권으로 출간된 장편소설입니다. 그러나 이미 수십 권의 소설을 써온 작가답게 안정감 있는 소설입니다. 문장도 단아하고 인물도 개성 있게 그려졌으며 무엇보다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구성이 눈이 가는 작품입니다. 단권임에도 생각보다 많은 인물이 나오며 처음에는 이들이 전부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쉽게 몰입이 되지 않습니다. 누가 주인공이고, 도대체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지 감이 오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소설의 재미는 그 인물들이 하나씩 스쳐가고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퍼즐을 맞추듯 조각들이 맞으면서 전체의 그림이 어렴풋이 보이게 되자,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같은 재미를 주기 위해서는 캐릭터들의 형상화를 잘 해야 하겠죠. 이 소설에는 정감이 가는 캐릭터들이 많이 나옵니다. 게다가 매사에 쿨하게 대응하면서 매력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사건 하나하나 일비일회 하면서 길게 늘어뜨리거나 신파적으로 흐르는 부분이 없습니다. 담담하게 진행되는 이야기 방식이 깔끔한 느낌을 주는 소설입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현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현실의 이면에 있는 환상을 다룬 점도 좋았습니다. 환상의 매력 중 하나는 이렇게 우리가 사는 세계 속에 숨겨진 면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다른 공간에 진입할 수 있는 능력은 머릿속에서 멋진 영상으로 떠오른 장면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이공간의 느낌이 나는 섬, 신비한 존재들도 환상의 매력을 잘 살리고 있었습니다.

  학원물이라고 정의내릴 수는 없겠지만, 학교 모습이나 학생들 간의 이야기 비중이 상당히 높은데 이 점도 제가 좋아하는 부분들이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로 제대로 권수도 많은 학원물을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캐릭터들이 매력적이어서 그런지 다른 학생들도 추가된, 그래서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고 싶기도 했습니다.

  노블레스클럽에서 나온 책 중에 몇 권을 빼고 대부분 다 읽었는데 그 중에서 만족스러운 책 중 하나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털털한 캐릭터들이 매력적이었네요. 문장도 안정적이고 구성도 매력적이고요. 노블레스클럽 중 최근에 나온 책들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주저없이 추천할 만한 책이었습니다. 일상 속에 숨겨진 환상은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는지, 먼 곳의 바다, 섬에는 무엇이 있는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단절과 그 극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담고 있습니다. 책을 펼치면 누군가에 대한 기억, 안타까움, 엇갈림 그리고 황량한 마음이 인적이 드문 섬으로, 먼 곳의 바다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시종일관 꿋꿋하게 좌절하지 않는 인물들이 만나면서 연을 맺고 마침내 치유하고 회복하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읽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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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자들의 탄생
고경오 지음 / 반디출판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위대한 자들의 탄생




  ――― 한국형 스릴러, 눈을 뗄 수 없는 음모론의 판타지




  [위대한 자들의 탄생]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믄 스릴러 장르의 소설이다. 스릴러라면 일단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빠른 전개와 긴장감이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충분히 합격점을 받을만하다. 한 번 책장을 펼치면 지루한 구석 없이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영상 세대에 맞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흡인력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 전개는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매력 요소이다.

  사실 처음에 발단만 봤을 때는 우려가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바코드가 찍혀 있는 소녀라는 이미지는 진부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진부한 장면들이 곳곳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새로운 소설이라는 느낌을 주는데, 그 이유는 동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나, 음모론을 극한까지 밀고 나간 점 그리고 온갖 소재들을 한곳에 몰아넣고 섞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띠고 있다. 즉, 이 소설의 소개문 중 하나인 “2009년 이 땅의 뜨거운 이슈를 재구성한 하이브리드 소설.”이라는 명칭이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인 것이다. 정치 사회적인 요소와 스릴러 적인 요소, 오타쿠를 등장시켜 서브컬쳐 이야기까지 결합시킨 소설이다.

  이 소설의 첫 번째 매력인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은 새로운 독서 경험을 체험하게 한다. 2008년 7월에 신(新) 1918형 독감, 일명 살인 돼지 독감이 퍼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곳곳에서 ‘노무현’, ‘김대중’, ‘이명박’이나 ‘참여정부’ 등 지금 이 시점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인물들이 언급되면서 독특한 정서를 전달한다. 재미를 주는 부분들이기도 하고 흥미를 끄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런 부분들은 단순한 재미뿐만 아니라 소설의 주제의식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필연적인 부분이기도 한데, 전체적으로 2008년 7월부터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들 이면에 이런 음모들이 존재했으며 이런 이해관계와 배경이 있다는 사실을 끝까지 밀고나간 소설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음모론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소에 음모론을 즐기거나, 거부감이 없는 독자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너무 노골적이라 유쾌한 풍자극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소설은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모성’ 같은 장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만큼 강렬하고 가슴 앞은 장면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워낙 빠른 이야기 전개 때문에 현 세태를 비꼬는 블랙 코미디로 읽히는 글이기도 하다.(오타쿠인 주인공 기호의 존재 또한 그런 점을 부각시킨다. 전투 속 애니메이션 주제곡을 배경음악으로 듣는 장면들은 기묘한 느낌과 독특한 재미를 주는 요소이다.) 처절한 전투 장면도 진지하기보다는 허무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고 전체적인 이야기 전개가 부조리한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지루한 구석 없이 발 빠르게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단숨에 읽어 내리게 하는 흡인력을 갖고 있는 소설이다. 음모론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부터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던가. 이 소설은 그런 음모론들을 적절하게 끌어들이고 결합하고 밀어붙임으로써 독자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이야기에 빨려들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소재들과 전혀 새롭지 않은 음모론들이지만, 이런 것들을 적절하게 결합시키는 솜씨는 매우 훌륭하다. 거침없이 전개되는 이야기와 곳곳에 배치된 설명들은 독자를 어느 정도 납득하며 개연성을 부여하면서 이야기의 흥미를 놓치지 않게 만들고 있다. 인물들은 아주 매력적이거나 입체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어느 정도 개성을 보이는데 성공하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국가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초법적인 기업들의 연합, 전 세계 상위 1% 초인류 엘리트 신종족, 스포츠․연예 등 미디어 산업 전반에 끼치는 비밀 조직의 영향력, 돼지 독감의 전파 등등은 하나하나는 새롭지 않지만 결합함으로써 낯선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소설이다.

  영상으로 잘 그려지는 소설이라 영화로 제작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소설이었다. 실제로 글자보다 영상으로 보아야 더 흥미롭고 재미있을 만한 장면들도 몇 개 있었다. 후반 들어서 전투씬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씬들은 아무래도 텍스트에서는 박력을 느끼기 힘들고 긴장감도 덜하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인데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새로운 소설의 탄생이자 새로운 작가의 탄생이 아닐까. 첫 번째 작품치고는 하려는 이야기를 과감히 쏟아 붓는 솜씨가 능숙하다. 오타쿠인 기호 같은 캐릭터는 신선하고 음모론 이야기에서 독특한 개성을 주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다다른 결말은 조금 빠르고 순식간에 하이라이트만 전개되는 듯해서 아쉬움도 느껴졌지만 마지막 엔딩은 결국 단번에 크나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해도 점차적으로 세상이 바꿔지리란 기대를 심어줌으로써 여운을 남긴다.

  한 번에 읽어 내릴 수 있는 뛰어난 흡인력의 소설을 찾는 독자나, 신자유주의와 돼지 독감, 세상의 이면에 숨겨진 음모론을 즐기는 사람, 독특한 새로운 유형의 스릴러 소설을 찾는 독자라면 이 소설이 제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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