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 상 - 스티븐 킹 단편집 밀리언셀러 클럽 100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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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 상 -




  단편 이야기가 잊혀진 예술은 아니지만, 소멸의 구덩이에 곤두박질칠 순서로 따진다면 시보다 오히려 더 가깝다는 데 전 재산을 걸겠다. 1986년이라는 아득한 옛 시절에 최초의 단편소설집을 팔 때에 도 이미 시장의 마모 현상을 한탄했었다. 싸구려 잡지는 온데간데없고 다이제스트 판은 축 늘어졌으며(《선데이 이브닝 포스트》같은) 주간지들도 죽어가고 있었다. 그 후 몇 해 동안 내가 본 것이라고는 단편 소설 시장의 위축뿐이었다. 오, 신이여. 힘없는 잡지들을 굽어 살피소서! 젊은 작가들이 선집에나마 낄 가능성은 그곳뿐이옵니다! 신이여. (2001년 탄저병 위기에서도 꿋꿋이) 잡동사니 원고들을 읽고 있던 편집자들에게 복을 주소서! 오, 신이여. 독창적인 단편선집에 기회를 부여하는 출판업자들을 칭송하소서!




― 『모든 일이 결국 벌어진다 상』, 스티븐 킹, 황금가지, 12쪽




  밀리언셀러클럽 101번째 책으로 출간된 스티븐 킹의 단편집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상』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바로 이 스티븐 킹이 쓴 서문이었다. 한국보다 당연히 시장이 클 것이라고 생각되는, 그리고 실제로 더 많은 잡지들이 존재하고 작가 층이 있는 미국에서도 단편은 장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축소되고 있는 시장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한국에서는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많이 팔리는 단편 수상집이라는 문구가 있듯이, 주류문학 쪽이 단편 중심이었고, 최근 들어 장편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에 반해, 국내 장르소설은 주로 장편 위주였으며 장르 단편은 발표할 곳을 찾기 힘들었다. 최근 들어서야 몇 개의 잡지가(HAPPY SF, 판타스틱, 파우스트, 미래경 등) 생겨났고 웹진 등에서 장르 단편을 발표할 공간이 생겨났으며,(환상문학웹진 거울, 크로스로드 등) 스티븐 킹이 출판업자들을 칭송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칭송받을 만한 몇몇 출판사들이 ― 꾸준히 공포소설, 추리소설, 환상소설 단편집을 내는 황금가지나, 또 장르 단편을 출간한 시작, 해토 ― 단편집을 출간하면서 소기의 성과를 얻고 있다. 이로 인해 가능성 있는 신예 작가들이 기성 작가들과 함께 출간을 하며 여러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고 독자들 역시 여러 가능성 있는 작가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대표적으로 SF단편집인 웹진 크로스로드의 기획으로 출간되는 단편집들이 있다. 이영도, 듀나 등의 기성작가 뿐만 아니라 신예작가들의 단편도 함께 출간하는 SF 단편집을 3권 째 출간했다.) 어디나 절충이 필요하다. 주류문학이 지나치게 단편 중심에서 이제야 장편 소설 시장을 활성화하고 있다면 반대로 장르문학은 장편 중심 시장 속에서도 연이은 장르 단편집의 출간으로 다양한 작가들이 발굴되고 또 실력을 기르는 계기가 되면서 추후에 좋은 작가와 작품을 기대해볼 수 있게 되었다.(그렇기에 장르 단편이 나오면 곧바로 구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4호 부검실




정신은 말짱하지만 몸이 마비된 코트렐은 그만 사망 판정을 받고 부검실에 끌려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정신을 말짱한데 몸이 마비되어 부검실에 온다는 상황 설정이 독특하고 신선하며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극적인 공포를 가져다 준다. 이 작품은 이번에 밀리언셀러클럽 100권 돌파 기념 파티에서 연극 무대로 먼저 접했다. 책으로 읽고 느낀 것은 연극이 상당히 각색을 잘해서 옮겼다는 점이었다. 이야기를 전부 다 알고 읽는 것이기 때문에 원작을 어떤 식으로 옮기고 수정했는지 확인하는 수준에 머무른 독서가 되고 말았다. 아무튼 어떤 형식으로든 처음 접하게 되면, 호기심을 자극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재미있는 발상이며 흥미로운 이야기임은 틀림없다.




검은 정장의 악마




이 단편은 오 헨리 문학상을 수상한 단편이었다. 그렇다고 큰 기대를 하고 읽을 만한 어떤 심도 깊은 이야기나 뛰어난 구성이 있는 단편은 아니다. 스티븐 킹이 후기에 적었듯이 미국의 ‘설화’를 읽는 기분이었다. 마침 최근에 한국구비문학대계라는 각 지역 노인분들에게 설화를 채록하여 묶은 책을 읽었는데, 이 역시 한 노인이 어린 시절 낚시를 하러 갔다가 악마를 만난 이야기를 회고조로 담고 있어서 그 동일한 형식 등이 재미있었다. 현실에 ‘악마’의 직접적인 등장이라는 초현실을 몰입이 갈 정도로 묘사하는 솜씨가 뛰어나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자살을 앞 둔 남자가 자신이 수집한 낙서들을 보며 여러 가지 걱정을 하는 이야기. 화장실에 적힌 낙서들이 주요 소재로 쓰인 소품이다. 화장실에 적힌 낙서들을 가지고 한 편의 단편을 완성할 수 있다는 점이 멋지게 생각되는 글이었다. 계속 한 남자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글이기 때문에 단순하고 단조로운 느낌의 글이지만, 잠언처럼 빛나는 몇몇 문장들은 인상적이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확정 짓지 않는 결말 역시 좋았다. 부디 그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잭 해밀턴의 죽음




1930년대 유명한 갱스터 존 딜린저와 그 일당들의 이야기다. 최근 같은 인물들을 다룬 조니 뎁과 크리스챤 베일이 주연한 『퍼블릭 에너미』를 봤는데, 존 딜린저에 대해서 자세히 찾아보지 않아도 스티븐 킹의 단편을 읽고 갔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과는 다른 감상을 느낄 수 있었던 듯하다. 영화와 이미지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영화를 보면서도 계속 스티븐 킹의 이 단편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작품의 가장 근사한 점은 일대기가 밝혀진 존 딜린저 일당의 행방이 묘연한 며칠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빛난 부분이었고, 이렇게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우리가 알 수 없는 시간대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다.




죽음의 방




남미의 어느 조사실에 갇힌 남자 이야기. 전기 고문을 당하고 죽음에 위협 속에서 굉장히 몰입감을 가지고 읽었던 작품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단번에 역전이 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방 안에서 벌어진 이야기까지는 긴장감이 살아있어서 재미있었다. 상황이 긴박하고 주인공의 생사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고, 비록 상황을 역전시켰다고 하더라도 언제 바깥에서 문이 열리고 주인공을 잡기 위해 들어올지 모른다는 점이 긴장을 유지시켰다. 그러나 문을 열고 나간 이후로부터는 지나치게 편안하게 전개되어서 약간은 맥이 빠졌다. 약간 더 끝까지 긴장을 주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단편이기도 했다.




엘루리아의 어린 수녀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또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다. 처음 스티븐 킹의 대작 판타지 장편 소설 『다크 타워』의 외전이라는 문구를 읽었을 때는 그리 기대치가 높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떤 작품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단편의 완결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 『다크 타워』의 내용을 어느 정도 숙지해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단편의 내용은 『다크 타워』의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되기 전을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많은 배경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단편으로서의 완성도도 매우 높기 때문에 흥미로운 구성을 따라 읽다가 마지막에는 깊은 여운도 남는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잘 그러졌고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잘 되어서 흡인력이 높았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못했고 마지막까지 인상 깊게 읽은 글이었다. 아직 읽지 않은『다크 타워』의 기대치를 무한정 높인 단편이기도 했다.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 남자가 어떤 단체에게 제의를 받는다. 그 단체는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 딩크의 능력을 사용하는 대가로 편의와 금전적 보상을 제공한다. 이 단편은 놀랍게도 스티븐 킹이 어느 날, 한 남자가 하수구에 동전을 버리는 단 하나의 미지를 떠올리고 기억했다가 그걸 토대로 쓴 단편이다. 단 하나의 이미지에서 이만한 분량의 단편 소설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표제작으로 선정된 작품이지만 이 작품이 가장 이 단편집에서 좋은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초능력이라는 소재가 갖고 있는 매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대로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아쉬웠던 점은 전체적으로 예상 범위대로 진행되는 이야기였다. 이 작품은 할리우드에서 영화화 하여 올해 안에 개봉 예정작이라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 영상화 했을지 기대된다. 영화로라면 무궁무진한 각색의 여지가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단편집이라는 특성 상 아쉬운 단편도 있었지만, 충분히 만족감을 주는 단편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독서가 되었다. 사실 실망할 거란 예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스티븐 킹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다양한 소재를 스티븐 킹 식으로 비틀고 재해석하여 쓴 8편의 단편들이 매번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기분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 기쁘다. 아직 6편의 단편이 수록된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하』가 남아 있다. 여기에는 또 어떤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누구라도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상』을 읽고 하권만 읽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벗어날 수 없다. 당연하다. 그렇게 되어 있다. 스티븐 킹의 글을 읽게 되는 것은 말이다.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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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8-22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미국은 오히려 단편시장이 훨 적군요.국내에 비해서 이러 저러한 잡지들이 많아서 단편 시장이 꽤 큰줄 알았는데요.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twinpix 2009-08-23 01:12   좋아요 0 | URL
국내 순수문학 쪽이 확실히 이상하게 단편 중심이라고 하죠. 예전에 기사를 보면 프랑스던가 그쪽에서는(장르는 아니었지만) 단편은 거의 쓰지를 않는다고 하고요.(문단에서 장편으로 가야한다고 이야기 나올 때 나왔던 기사였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