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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사바이트 ㅣ 밀리언셀러 클럽 102
하토리 마스미 지음, 김미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엑사바이트
― IT 스릴러? 기록과 타임머신
윈도우가 아닌 MS-DOS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게임을 하나 하기 위해서도 CONFIG.SYS와 AUTOEXEC.BAT 파일을 수정하며 기본 메모리인 640KB 안에서 수정을 하느라고 고생을 했었다.(기본 메모리를 고작 640KB로 정해놓았던 빌 게이츠를 얼마나 원망했던지.) 그러나 1MB를 다운 받는 것에도 몇 분이 걸리는 시절도 뛰어넘어 하드가 1GB면 여유로웠던 시절도 넘어 이제는 하드디스크 용량이 1테라에 달하는 세상이 되었다. 1GB의 커다란 하드디스크가 아닌 손가락 크기만한 USB에 16GB도 담고 다니는 세상이다.
앞으로도 저장 장치의 용량은 계속 발전할 테고 그로 인해 우리는 더욱 많은 기록들을 저장할 수 있게 된다. 지금도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싸이월드나 블로그 등에 올리면서 매 순간이 기록되는 중이다.
하로리 마스미의 소설 『엑사바이트』는 지금보다 더 저장용량이 발전된 세계를 그리고 있다.(10억 기가바이트) 현재 테라바이트 하드 디스크까지 사용하는 상황에서 그 이상의 용량인 페타바이트까지 넘어선 용량이 사용되는 세계이다. 그러면 세상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개인의 삶을 통째로 영상으로 기록할 수 있게 된다. 만약 모든 사람의 삶이 기록된다면 그것은 과거를 전부 살펴볼 수 있는 과거를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타임머신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따라서 이 소설의 발상만 읽고도 테드 창이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강연했던 아이작 아시모프의 「죽은 과거」와 거대 기억장치와 검색기술의 발전을 연결한 이야기가 자동으로 떠올랐다. 책 본문에서도 역시 타임머신이라고 할 수 있다는 대사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를 표현하고 싶어하고 기록을 남기고 싶어한다. 미래에 자신의 생애를 전부 기록할 수 있는게 보편화된 세상이라면 나 역시 당연히 그 기술을 이용하고 싶다. 이 소설은 서기 2025년 ‘비저블 유닛’이라는 기계가 사용되는 세계이다. 안면 부착형 소형 카메라로 패션의 형태처럼 ‘비저블 유닛’을 붙이고 자기가 보는 것을 모두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주인공은 이 비저블 유닛을 이용해서 방송을 하는 TV 프로듀서다. 그런 그에게 ‘엑사바이트’라는 회사를 이끄는 여자가 나타나 인류의 인생을 한데 모은 ‘실시간 세계사 프로젝트’의 기획을 말한다.
일단 소재부터가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특히 나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고 여러 행사나 사건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자신의 생애를 전부 기록할 수 있는 장치는 어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이 장치가 적용된 세계의 모습은 세세한 부분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읽어나갔다. 그야말로 배경 설정만으로도 눈이 즐거운 소설이었다.
물론 이 소설은 이 장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소설이 아니라, 이 장치를 둘러싸고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인이 엮인 스릴러 소설이다. 그만큼 등장인물들이 절묘하게 엮이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숨가쁜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다. 단번에 읽을 만큼 빠르게 읽히는 소설이며 충분히 흥미로운 소설이다. 소재도 독특하고 관심이 가지만, 이 소재로 인해 이야기되는 것들도 충분히 있음직하고 재미있다. 분명 이런 ‘비저블 유닛’이 있다면, 그 정보들을 모으고 총합하여 ‘실시간 세계사’를 만들고 싶은 욕망은 쉽게 가질만하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이 ‘비저블 유닛’을 두고 정부와 다국적 기업 또 개인이 서로 대립하면서 스릴러 소설의 암투를 제대로 그리고 있다. 비저블 유닛은 분명 좋은 일에만 사용되지 않을 것이고 수많은 문제점과 악용될 여지가 있다. 이 소설은 그런 점들을 놓치지 않고 다루면서 읽는 독자 역시 기술에 발전에 따른 대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수많은 CCTV들이 우리를 감시하고 보호하고 있지만 한편, 개인의 사생활 문제 등을 야기시키는 것처럼 기술은 장단점을 고루 갖고 있고 우리는 이를 항상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뒷부분이 급 전개이고 지나치게 대화로만 모든 사건이 설명되고 해결되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런 단점을 덮을 만한 흥미로운 소재와 구성이 매력적인 IT 스릴러였다. 디지털로 기억을 저장하는 소재에 관심이 간다면, 또는 지금 이 시점에 나올 수밖에 없는 이 최첨단 IT 스릴러에 관심이 간다면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