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개의 붓
구한나리 지음 / 문학수첩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2012년 제4회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 수상작인 [아홉 개의 붓]이 출간되었다. [아홉 개의 붓]을 쓴 작가는 국내 유일의 《환상문학웹진 거울》(http://mirror.pe.kr)의 필진으로 이전 부터 '아홉 개의 붓' 이야기를 연작 단편으로 시간의 잔상 게시판에 올려왔다. 따라서 수상하기 전부터 거울에 올라온 '아홉 개의 붓'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는데, 처음에 받았던 인상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당시 중세 배경의 판타지 소설만 주로 읽어오다가 동양풍의 판타지 소설은 낯설면서도 신선했기 때문이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세계관이었다. 순우리말의 짜인 세계의 모습과 천인, 상인, 비인이라는 독특한 계층 구조. 그로 인해 벌어지는 갈등을 진짜 있을 법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어색한 설정이 아니라 정말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세계처럼 느끼게 만드는 데 성공한 글이었다. 국내에도 이런 차별화된 동양풍 판타지 소설이 있다는 게 흥미로운 한편, 웹진 거울의 인지도가 적은 탓에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접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그런데 이 작품의 이름을 다시 보게 된 것은 바로 제1회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 심사평이었다. 거기에는 본선까지 올라갔으나, 완성도로 인해 수상하지 않았음이 나와 있었다. 옴니버스 형식의 글이었기 때문에 장편소설의 완성도를 갖추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고,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로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러고 2회와 3회가 지나 4회에서 수상을 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고 무척이나 반가웠다. 드디어 이 작품이 책으로 묶여 나올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고대 한국을 배경으로 한 세계관의 매력

 책으로 출간된 수상작 [아홉 개의 붓]은 역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 세계관에 있다. 판타지 소설은 세계관에 주제의식을 함축해서 전달할 수 있는 장르다. 작가가 설정한 세계관에 작가의 의도와 메시지가 담겨 독자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독자는 세계관부터 작가와 마주하게 된다. [아홉 개의 붓]은 '아홉 감'이 만든 아홉 개의 붓을 찾으러 떠나는 여정을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은 심사평에서 언급된 것처럼 토속적 환상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고대 한국을 배경으로 했다는 것을 누구나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물론 실제 역사 속 고대한국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차원에서 이런 배경의 세계가 있지 않을까 싶게 공들인 묘사 속에서 세계 하나가 구축되어 있다. 이 작품의 매력은 바로 이 한국 고유의 환상적인 세계관이라는 느낌에서 주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순우리말을 적극 사용해 고대의 설화처럼 느껴지게 한 부분은 이 소설에서 주목할 만한 장점이다. 친근한 느낌이 드는 판타지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이런 배경의 판타지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던 독자들에게는 이 책은 매우 반가운 작품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 세계관은 아홉 감이 만든 세 종족이 살고 있다. 천인, 상인, 비인이 그 종족인데, 천인은 날개와 오랜 수명을 가진 종족이고, 상인은 우리와 같은 인간 종족이다. 비인은 머리에 뿔이 달렸고 인간보다 오랜 수명을 가졌다. 인간은 수명이 적은 대신 셋 중 가장 뛰어난 번식력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도식은 중세 배경의 판타지 소설에서 나온 엘프 같은 종족과 오크 같은 종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외양의 차이를 최대한 적게 둠으로써 이들의 갈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천인은 날개, 비인은 뿔이지만 날개는 숨길 수 있고, 뿔 역시 두건으로 가릴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 속의 종족 간의 갈등은 인종차별이나, 계급 간의 차별을 더 강하게 연상시킨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종족이 자기보다 더 뛰어난 종족을 노예로 부리거나 돌로 쳐서 죽이는 강렬한 설정은 현실의 다양한 갈등과 차별 문제를 직접적으로 은유하는 느낌이다. 그 때문에 이 소설을 더욱 현실감 있게 읽게 되는 것이다. 피부색이 다른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외모에서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함에도 인도의 카스트 계급이나, 조선의 양반과 노비의 계급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이 세계의 차별은 부조리하게 느껴지고 그 때문에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런 계층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보기드문 강렬한 인상을 주는 지점이 있다. 특히, 첫 에피소드부터 강한데, 마을 사람들에게 비인이라는 점이 밝혀져서 상인인 아내가 돌에 맞아 죽는 부분은 그 잔혹함이 눈길을 확 끌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이 내내 가지고 가는 화두를 처음부터 강렬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판타지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에 걸맞게 환상적인 요소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바로 제목이 말하고 있는 '아홉 개의 붓'이다. 이 소설에서는 강력한 마법이나 도술 같은 환상적인 요소가 다양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대신 '아홉 개의 붓'이라는 환상적인 장치 하나만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이 점이 이 소설의 또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환상적인 장치가 난무하면 독자는 오히려 소설에서 현실감을 느끼기 힘들다. 모든 게 환상적인 장치로 해결될 가능성이 있으며, 어떤 위기에도 공감을 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아홉 개의 붓' 외에는 특이한 주술적인 장치를 배제함으로써 환상적인 도구를 절제하고 있다. 또한, 사건의 해결도 '아홉 개의 붓'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해결하는 게 아니라 '한'을 대화로 푸는 것처럼 도구가 아닌 행동이나 대화로 해결함으로써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특이한 마법 도구(Artifacter)나 주술, 마법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다른 판타지 소설과 달리, '붓'을 사용한 해결 방식을 절제함으로써 이야기가 단순한 구조로 치닫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만약 매번 '붓'으로 사건을 해결했다면 이야기는 지나치게 단순해지고, 독자를 지루함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주인공들의 내면 변화나 성장을 느끼기도 어려웠을 것이며, 이야기나 인물이 '붓'에게 먹혔을 위험도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붓'은 최소한의 장치로만 등장하며 나머지는 인물에 집중하고 있다. 이 점이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호수 속에 사는 인물들

 인물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기이한게 젊은 여성과 소녀, 청년과 사내가 등장하는데, 이들 뿐만 아니라 들리는 마을에 등장하는 사람들이나, 적으로 나오는 '나그네'까지 일관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이는 오랜 시간 쓰고 퇴고한 문체의 힘이기도 할 테고, 작가가 인물을 그리는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잔잔한 문체만큼이나 인물들은 차분하고 대체로 선하게 나온다. 악랄한 행동을 하는 상인(인간)은 심성이 악한 문제 이전에 어리석기 때문인 것처럼 비친다. 이런 방식으로 그려진 인물들은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과장되거나 기호적으로 그려진 인물들이 적다는 것은 장점이다. 크게 거부감을 주는 인물이 없었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주인공 일행은 애정을 느끼게 했고, 도무지 납득할 수 없을 만큼 사악하고 답답한 인물들은 찾아보기 힘들어 읽기에 수월했다. 그러나 인물들의 변별점이 잘 드러나지 않아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은 한편으로는 단점으로 느껴졌다. 누가 대사를 하는지도 헷갈릴 정도로 비슷한 엑스트라급 인물들이 많았고, 악역을 맡은 혹은 자기 욕망대로 행동하는 인물들은 무미건조했고, 의지나 충동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작가가 소설 전체를 장악하는 느낌이면서 한편으로는 그게 인물의 개성을 빼앗고, 플롯을 약화시킨 느낌이었다. 인물들이 좀더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했다면, 강렬한 대사와 행동으로 자기 욕망을 드러내고 더 처절하고 잔혹한 상황 속에 인물들을 풀어주었다면 훨씬 다채롭고 강렬한 서사가 진행되지 않았을까.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호수에 사는 물고기들의 움직임은 고요하다. 때로 독자는 폭풍우 치는 바다를 보고 싶기도 한 것이다. 그 안에서 거센 물살에 버티거나 쓸려나가는 물고기를 들여다보고 싶기도 한 것이다. 이 소설은 공력이 느껴지는 정적이고 고요한 문체와 인물들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처절한 싸움이 아니라 사건의 진상을 듣고 한을 풀어주고 조화를 이루려는 보기드문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서사를 본 적이 없는 독자로써는 신선한 충격이고 독특한 분위기에 한껏 취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조금은 서사가 더 강렬해져도 좋았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도 느꼈다.

 인물의 성장, 붓의 의미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반비반상인 '갈'이다. '갈'은 반비반상이기 때문에 뿔이 돋아나 있었지만, 천인의 도움으로 뿔을 없애고 '아홉 개의 붓'을 모아 세 계층이 조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곧 재찬, 아리, 시겸과 만나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일종의 모험 파티를 이루는 것이다. 이 넷의 성격은 구분되어 있긴 하지만 개성이 약해서 심심한 구석이 있다. 장르소설에서 캐릭터의 개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인물의 매력치가 전부 약한 감이 있다. 넷은 비슷비슷하게 얌전하고 착하다. 따라서 내부 갈등이 일어날 요소가 거의 없으며 소설에서도 작은 말다툼 한 두번 빼고는 별다른 갈등이 없다. 다만, 얌전한 인물들을 내세운만큼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인 갈의 내면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처음 여행을 떠날 때 '갈'은 단지 아홉 개의 붓을 모으면 세상을 조화롭게 만들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떠났다. 그러나 여러 마을을 거치고 다양한 경험을 쌓고, 붓을 모으게 되면서 내면에서 분명한 변화를 겪는다. 이는 다른 세 사람도 마찬가지다. 소소한 변화라 눈치 채기 힘든 인물도 있지만,(합류가 늦은 '시겸'의 캐릭터는 조명 받을 기회가 적은 느낌이다.) 넷은 분명 여행 초기보다 내면이 단단해지고 결속력이 생겼다. 눈에 띄는 액션과 큰 변화와 무력의 상승을 바라는 독자들에게는 외부적으로 별다른 변화를 찾기 힘든 인물의 성장이 와닿지 않을 것이나, 내면의 변화에 집중하는 독자들에게는 결국 이 여정이 이들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깨닫고 미소를 짓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열린 결말로 끝나는 마지막이 크게 아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세상은 단번에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강력한 붓의 힘으로 위기를 해결하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홉 개의 붓이 다 모인다고 해서 갑자기 세상이 격변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임을 읽는 도중에도 눈치 챌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어떤 강력한 힘으로 세상을 변혁하는 게 아니라, 내면의 변화,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점진적으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모든 일이 판타지 세계 속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 현실에 투영해서 볼 수 있게 만든다. 이 부분에서 이 소설은 현실성을 획득한다. 붓에 깃든 힘이 중요한 게 아니라, 붓에 깃든 남을 위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 누군가를 간절히 생각하고 만드는 모든 것이 곧 붓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전한다.

 리뷰를 마치며

 이 소설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 즉 [아홉 개의 붓]의 고유성은 매력적이다. 이 소설이 갖고 있는 최대의 장점일 것이다. 차분하고 정제된 문장으로 풀어지는 이야기들은 급박하지 않다. '붓'에 의한 기묘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이들은 '붓'의 본질에 다가간다. 삼인(천인, 상인, 비인)이 떨어져 있는 세계를 바꾸려는 모험은 정적이면서 정해진 행로를 걸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이들은 또 다른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이야 말로 진짜 모험이자 힘들고 거친 여정이 될 것이다. 내면의 성장을 겪고, 자기자신과 마주치기 위해서 붓을 모으게 되었다면, 이제 그 붓을 세상에 퍼뜨리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류원에 뜻에 의해서 붓을 모으기 시작한 '갈'은 자기 스스로 붓을 모은 이유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건 독자 역시 공감하게 되는 확신이다. 그로 인해 이들의 다음 모험의 필요성 역시 깨닫게 된다. 모험이 이제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는 갈의 여행은 막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갈의 그림이 제대로 그려진 장면은 적었다. 갈의 그림은 미완성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갈은 제대로 된 진짜 그림을 그리는 여정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그 그림을 눈으로 볼 순 없다. 그렇지만 분명 그림이 이번에는 완성되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것으로 충분한 게 아닐까. 이들의 새로운 모험이 붓에 부여된 목적 이상으로 활약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 것만으로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녹스앤룩스 NOX & LUX 2012.7.8 - Vol.3
녹스앤룩스 편집부 엮음 / 녹스앤룩스(잡지)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통합 장르 잡지 [녹스앤룩스] 3호가 나왔다. 7월에 나온 [녹스앤룩스]는 장르 문화의 최신 트렌드, 업계 동향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서브컬쳐 관련 잡지이다. 장르 소설, 라이트노벨, 그래픽노블 등 다양한 서브컬쳐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미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고 1, 2호에 이어 3호까지 구입을 해보았을 것이다. 아직 몇 호 나오지 않는 잡지이기 때문에 초반부터 지금까지 코너나 편집에서 아쉬운 점은 눈에 띄지만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다음호가 기대되는 잡지이기도 하다. 이번 3호에도 2호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느꼈던 도트가 보이던 현상이 없이 깔끔하게 나온 점이 눈에 띄었다. 또한, 1, 2호에 비해 표지에 주목할 만한 기사를 표기해줘서 훨씬 독자를 배려하고 있다. 표지만 보고도 이 잡지가 이번 호에 어떤 재미있는 기사가 실려있는지 알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더욱더 잡지다워진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표지를 넘기면 잡지답게 여러 광고들이 나온다. 국내 유일 서브컬쳐 전문샵 “샤보텐스토어” 가게 광고부터,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소재별 앤솔러지 [세상의 재시작까지 11년]이나 SF 전문 잡지인 [미래경] 봄호의 광고도 실려 있다. [녹스앤룩스]의 인지도가 더 높아지고 독자수가 늘어나서 더 다양한 광고가 실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에는 목차가 실렸는데, 이 역시 예전 호들에 비해 훨씬 깔끔하고 보기 편하게 편집되어 있었다.

 각 코너별 감상은 다음과 같다.


 {Read off}에는 판타지 단편집인 마고 래너건의 [블랙 주스]가 소개되어 있다. 평소 접하기 힘든 이런 환상소설 단편집을 트렌드 잡지답게 소개해주는 점은 이 잡지의 장점일 것이다. 키워드로 ‘환상소설, 단편집, 레이 브래드버리’를 꼽고 있고, 짧으면서도 이 소설이 전체적으로 어떤 느낌이며 어떤 소설들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지 알려주어서 선택에 큰 도움이 된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소설들을 떠올리게 하고, 로저 젤라즈니의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를 닮은 무드도 안고 있다는 설명이나, 환상문학웹진 거울에 올라오는 작품들, 경계소설, 문학적 환상소설의 스타일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설명은 이 소설에 큰 흥미를 갖게 한다.

 {Lable Travel} 코너에는 [SF&판타지 도서관]을 다루고 있다. 사당동에서 홍대 주변으로 이전한 만큼 독자들에게 새로운 공간을 소개해주는 좋은 기사였다. SF&판타지 도서관이 사당에서 이전을 하면서 공간이 넓어지고 문화공간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정보를 전달해준다. 6월부터 장르문학 강좌를 시작하고, 장르영화 상영회를 진행하는 등 활발하게 다양한 문화 행사를 진행하는 SF&판타지 도서관은 앞으로도 여러 장르 활동의 중심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Media Day} 코너의 기사는 “덕업 일치의 미학 : 에반게리온 세대, 사회에 출사표를 던지다”이다. 이 기사는 바로 앱스토어에서 만화포털 서비스를 열고 있는 인디켓 대표와 다양한 캐릭터 상품을 파는 사보텐하우스와 사보텐스토어의 대표를 인터뷰해 작성한 기사이다. 1990년대 중반에 학창시절을 보낸 일명 에반게리온 세대가 이후에 서브컬쳐 기업을 꾸리고, 또한, 에반게리온 세대가 사회인이 되어 구매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이런 회사들이 있는지 몰랐던 독자들에게도 좋은 정보가 될 수 있고, 또한, 자신이 즐기던 서브컬쳐 문화를 사업을 발전시킨 모습과 거기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긍정적 사례를 소개하는 것은 흥미롭고 유익했다. 사보텐 같은 곳이 단순히 구매 대행이나 오리지널 상품 뿐만 아니라 기업들과의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작업도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려주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일깨워준다.

 {Life Style} 코너에서는 <질러라!> 코너를 통해 국내에서 구매할 수 있는 다양한 캐릭터 상품과 동인의 제작물들을 소개한다고 한다. 앞 기사와 바로 연결되어 사보텐스토어에서 파는 다양한 캐릭터 상품 정보를 볼 수 있었다.

 {Character} 코너에서는 1호의 ‘저승차사’와 2호의 ‘우렁각시’에 이어 ‘구미호’를 다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구미호’는 각종 애니메이션과 만화, 소설에서 단골로 나오는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그러나 진짜 한국의 구미호의 모습은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기도 하다. 이 기사는 이야기 형태로 그런 잘 알려지지 않은 구미호 전승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LUX NOVEL}에는 3회 째 연재 중인 라이트노벨 [사념과 향로와 연옥의 창]이 실려 있다. 전편의 작은 에피소드에 비해 이번에는 소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다. 매회 일정한 분량 안에서 이야기를 끝내는 만큼, 다른 소설들과 일대일로 비교하기는 어렵기는 하지만, 연재물이라고 해도 이 소설에서 보여지는 몇몇 아쉬운 점들을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다. 장르소설은 뛰어난 묘사적 문체로 인간 내면을 탐구하거나, 사회 문제나 역사 의식을 갖고 소설을 풀어나가지는 않는 편이다. 그보다는 매력적인 세계관과 설정, 캐릭터, 극적인 갈등 중심으로 독자를 매료시킨다. 그런데 이 소설이 3회를 이어오면서 꾸준히 받은 인상은 밋밋하고 무미건조하다는 것이다. 일단 세계관의 매력을 독자에게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다른 소설들과 차별화된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독자들이 그 세계관에 얼마나 매력을 느끼는 지가 중요하다. 세계관이 매력을 얻으려면, 다양한 층을 쌓아서 독자가 그 세계관에 대해서 궁금증을 느끼게 할 필요성이 있다. 즉, 세계에 대한 신비를 느끼게 하고, 탐구하려는 욕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나오는 세계관은 몇몇 낯선 설정들이 대사나 설명으로 언급되긴 하지만 아무런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마술사 오펜}을 생각해보면, ‘드래곤’을 신들에게서 마법을 훔쳐낸 7종족, 상세계법칙(시스템 이그드라실), 그 관리자이자 법칙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신들, 흑마술사 양성 기관인 상아탑 등 독특하고 매력적인 세계관 때문에 소설에 빨려든다. 뛰어난 플롯으로 독자들의 감탄을 이끌어내지 않더라도, 매력적인 인물들이 잔뜩 나오지 않더라도 세계관이 그 소설의 기반이 될 수도 있을 테지만, 이 소설에서 보여지는 세계관의 모습은 그림자 속에 파묻힌 듯이 보이고, 손에 잡히지 않으며 독자에게 매력적인 형태로 선보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점이 계속 발목을 잡고, 인물들 역시 단면적인 모습만 가지고 있어서 살아있기 보다는 기호로만 존재하는 듯하고, 인형처럼 보일 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처럼 단 하나의 강력한 설정, ‘이매진 브레이커’라는 것을 인물에게 주어서 그것을 통해 사건을 풀어나가는 식도 아니다.([월희]의 ‘직사의 마안’ 같은 능력도 아니고 스즈미야 하루히 같은 능력도 아니다.) 수많은 라이트노벨들이 독특한 세계관 안에서 주인공에게 하나의 포인트를 주고 매력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단순히 최강의 강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단점도 내포하고 있지만, 얼마든지 상쇄해나갈 매력을 가진 설정을 부여하면서 이야기를 살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냥 낯선 용어들 다 제거하고 설정들 조금만 수정하면 아무 인물이나 나와서 엑소시스트 하고 끝나는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줄거리 요약과 소설 본편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은 심각한 것이다.) 이야기가 전복되는 엄청난 반전의 연속인 플롯을 가진 것도 아니고, 독특한 말투와 사고관을 가져서 등장이나 만담만으로 즐거운 것도 아니고, 세계관과 설정이 매력적이어서 그것만 감상하는 재미를 가진 것도 아니다. 보여지지 않은 설정 안에는 수많은 매력적인 세계관과 설정, 인물, 사건이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로는 너무나 단순한 이야기와 단순한 인물들이 예측되고 관심이 안 가는 단순한 대사와 생각을 나눈다. 이 세계관이 수직적 구조인지, 수평적 구조인지, 관리하는 자들이 있는지, 주인공의 좌표는 어디인지가 파악되지 않는다. 주인공의 능력의 변별성도 잘 드러나지 않고, 그 위력과 세계 안에서의 중요성도 잘 와닿지 않는다. 조금만 더 은근히 세계관의 신비한 지점과 캐릭터의 매력을 설정한다면, 독자들은 알아서 세계관의 빈 구석을 메우려고 할 테고, 주인공이 세계관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파악하고 그 위에 있을 사람들, 라이벌들 또 주인공이 세계관 안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내고 꿰어 맞추고 기대할 것이다. 독자들이 열광할 매력 포인트가 없는 소설은 결국 관심을 끌기가 힘들다. 권투선수가 모든 기술에 능할 필요가 없듯이 하나의 주특기와 숨겨둔 비장의 카드가 소설 속에서 매력적으로 구축되기를 기대해본다.

 {Culture Scope} 코너는 “주목하자! 게임 속 OST”라는 기사이다. 사실 평소에 게임 OST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그렇게 신경을 쓰는 편도 아니지만, 재미있게 읽은 기사였다. 국내 온라인게임의 OST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기사다. RF온라인, 라그나로그2 온라인, SUN, 아이온, 사이퍼즈의 OST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대부분 잘 모르는 OST 이야기라 재미있게 읽었다.

 {Professional} 코너는 “덕으로 먹고살기 : 사보텐하우스 한경철 대표” 라는 인터뷰가 실려 있다. 앞서 {Media Day}에서 “덕업일치의 미학”에서 다룬 기사에서 인터뷰만 다시 실은 느낌이다. 왜 이걸 두 기사로 분리했는지, 그냥 하나로 연속으로 합쳐 나오는 게 편집상 나을 테고 독자도 혼란스럽지 않을 텐데, 조금 당황스러웠다.

 {Interview} 코너에는 “이미지 시대의 스토리텔러 – 홍정훈”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비상하는 매], [더 로그], [월야환담], [발틴사가] 등 다양한 판타지 소설을 쓴 작가의 인터뷰라 처음 잡지를 구입할 때부터 가장 기대한 기사였다. 최근 라이트노벨인 [기신전기 던브링어]를 출간한 터라 녹스앤룩스에서 인터뷰하는 게 매우 잘 어울려 보였다. 내용은 녹스앤룩스 지면 상의 한계일 수 있겠지만, 분량에서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작품에 대한 깊은 질문이나 독특한 질문들이 더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New Project} 코너는 “기신전기 던브링어 편집 노트”이다. 어떤 작품의 편집 이야기를 듣기란 쉬운 게 아니다. 녹스앤룩스라는 잡지가 가지는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이야기가 실린다는 것이다. 역시 트렌드를 다루는 얇은 격 월간지인만큼 상세한 내용을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기신전기 던브링어]가 어떤 식으로 편집되었는지 들어볼 수 있는 기사였다.

 {Collaboration}에는 “불량마녀”라는 글이 실렸다. 말하는 고양이와 계약한 불량한 소녀의 이야기인데, 동화적인 느낌이 나는 작품으로 그만큼 예측이 가능한 대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전체적으로 심심한 편이다. 이야기의 끝에는 7월 15일부터 인디켓에서 정기 연재된다고 적혀 있다. 녹스앤룩스 편집자 현서/푸른꽃과 일러스트레이터 단비의 앱소설 프로젝트라고 하는데, 잡지만 볼 때는 이점이 설명되어 있지 않아서 아쉬웠다. 항상 느끼지만 녹스앤룩스는 지나친 심플을 추구하는 탓인지 설명이 부족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Collaboration} 두 번째 글과 그림 콜라보레이션은 “사심 많은 고양이”다. 1호에 이어 실린 고양이 만화인데,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푹 빠질만한 따스하고 달달한 그림의 이야기다. 그린이는 녹스앤룩스에 연재되는 [영생]의 일러스트를 그리고 웹진 거울 필진이기도 한 이정명님이다.

 {Graphicnovel} 코너는 1, 2호에 극찬을 받은 [Alice Next Door]가 안타깝게 휴재를 하고 같은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흐린 장미의 도시”를 편집부가 각색/기획한 스핀오프 원고가 실렸다. 그림이 적고 글씨 위주인 글이라 쉽게 읽히지 않고, 내용도 재미있지 않고 예측대로 흘러갔지만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서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었다. 좀 아쉬움이 많았던 프롤로그였다.

 {Classic Inside}에는 “<은하영웅전설> 즐겁게 읽기”가 실렸다. 1호에는 “샌드맨”을 조명했었는데, 이렇게 많은 권수가 완결까지 다 국내에 소개되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효과적인 소개를 하는 코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출간된지 시간이 흘렀더라도 독자들에게 계속 재조명을 받아야 하는 책들을 소개해주는 코너로 유익하게 독자들에게 다가가면 좋을 것 같았다.

 {Golden Apple}에는 “동서양의 가면 영웅 : <조로> vs <각시탈> 혹은 조로탈”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동서양의 가면 영웅으로 쾌걸 조로와 각시탈을 비교한 글인데 역시 흥미롭게 잘 읽은 기사였다. 녹스앤룩스 지면이 아니면 읽을 수 없는 성질의 글일 것이다. 최근 드라마로 방영된 각시탈과 애니메이션과 영화 등으로 많이 알려진 조로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여겼다.

 {NOX NOVEL} 마지막으로 3호에도 계속 연재 중인 웹진 거울 필진이기도 한 정도경의 “영생”이 실려있었다. “영생”의 장점은 국내 장르소설에서도 보기 드문 독특한 동양 설화 같은 느낌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아예 [왜란종결자] 같은 조선을 배경으로 한 환상소설이나 혹은 제4회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수상한 구한나리의 [아홉 개의 붓] 같이 고대 동양을 배경으로 한 토속적 배경의 환상소설과도 다르다. 이 외에도 여러 동양 판타지가 있었지만, [영생]이 보여주는 구비설화와 같은 느낌은 희귀한 것이고, 이 소설의 매력은 거기에서 뿜어져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연재물의 한계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씩 이야기가 전개되다보니 독자가 전체 이야기의 얼개를 파악하기가 힘들어 답답함을 느끼고 전개가 느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전개가 느리다는 점은 1호에 연재 때 예측한 방향이 3호에서 드러났을 때, 예측이 맞은 게 실망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시간을 끌수록 독자는 더 나은 것을 바라게 되나, 소설은 독자의 예상대로 흘러가면 김이 빠지는 것이다. 또한 구조상 이야기와 현실의 병렬로 진행되는데,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두 파트의 문장이나 문체의 느낌이 너무 달라서 당혹스럽기도 하며, 다른 두 사람이 썼다고 해도 믿겨질 정도로 퀄리티가 차이가 나게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 속 과거 이야기는 설화적 느낌 덕분인지 몰라도 어휘 선택이나 옛스러움 때문에 품격이 있는 편이나, 현실로 넘어가면 자꾸만 바빠서 이야기를 중단하는 형태가 너무 동일하게 패턴으로 나타나서 독자가 지치고 장식적으로 느껴지고, 작위적인 느낌마저 너무 강렬히 전달되어서 흥을 깨트려버린다. 실제 바빠서 간다기 보다는 작가가 실로 여기서 이야기를 중단하고 다음에 해야지, 라는 의도가 눈에 빤히 보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격이 떨어지고 재미가 없어진다고 할까. 이렇게 병렬 구조를 취할 경우에 보통 듣는 이야기가 차라리 하나의 이야기만 쭉 가는 게 낫다고들 하는데 그건 그만큼 병렬 구조를 취할 때 문체까지 달라져버리면 그 간극을 메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3호가 진행되도록 이야기의 진행 속도가 다르다는 점도 이런 간극을 더욱 벌리고 있다. 과거 이야기 파트는 제법 스토리가 흘러가고 바뀌는 게 많지만 현실은 마치 고정된 시간처럼 별다른 인물들의 액션도 없고 진행사항도 거의 없기 때문에 답답하다. 그래서 더욱 불필요하게 느껴지고 과거가 본편이고 현실은 부산물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야기의 저울이 한쪽에 쏠려있는 느낌이라 독자가 불편한 느낌을 갖게 된다.(이야기가 병렬식이라도 [탐그루]처럼 소설 속 이야기와 현실이 동일한 사건 전개 속도를 가진다면, 독자는 어색함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좋은 구성이라고 느낄 것이다.)
 물론 아직 초반부일 수도 있고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이런 단점은 금세 상쇄가 되고 오히려 후반부에 갈수록 힘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이런 구성 자체가 단점으로 느껴지고 전체 이야기의 모습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지금으로써는 매력적인 부분을 더 부각시키지 못하고 부조화로 인해 소설의 매력이 오히려 죽어가고 있지 않나 싶은 느낌을 받는다.


 리뷰를 마치며

 전체적으로 1호나 2호에 비해서 편집이 더 세련되진 점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띄어쓰기가 잘못된 점이 곳곳에서 보이고 아직 글자가 눈에 잘 안 들어오는 편집이라거나 설명들이 부족한 지점들 코너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자주 변하는 점 등은 아쉬웠다. 계속 변하고 발전하는 잡지인만큼 다음 호에는 더 나은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현재도 녹스앤룩스는 국내에서 유일한 서브컬쳐 전반을 다루는 격월간지이지만, 점점 더 발전하고 안정되어서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인식되고, 국내 최고의 서브컬쳐 잡지로 자리매김을 하기를 바라면서 이만 글을 마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12-09-14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오랫만에 글을 올리시는것 같네요^^

twinpix 2012-09-17 10:34   좋아요 0 | URL
앗, 그런가요. 여러 가지 할일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금융 부식 열도 2
다카스기 료 지음, 이윤정 옮김 / 펄프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따라서 나는 대중 문예와는 다른 소설 작법이 있고 그것이 예술 소설, 문단 소설을 의미한다면, 대중 문예는 그 밖의 일체, 즉 과학 소설, 목적 소설, 역사 소설, 소년·소녀 소설, 탐정 소설 등 모든 것을 포함하여 대중이라는 글자의 뜻 그대로 정의해도 된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대중 문예의 정의를 내린다면,
 '대중 문예란 표현을 평이하게 하고 흥미를 중심으로 하되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 또는 거기에 인생에 대한 해설과 인간 생활상의 문제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 나오키 산주고, [나오키의 대중 문학 강의]. 북스피어, 2011년 9월


 민음사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었다. '펄프'라는 직접적인 브랜드명이 말해주듯, 흔히 펄프 소설이라고 불리는 대중적인 소설을 내놓는 브랜드다. 일본에는 문고본이, 미국에는 페이퍼백이 값싼 펄프 소설들을 대중들에게 보급했지만, 국내에는 양장본이 더 많이 팔리고 몇몇 페이퍼백 시도는 실패하곤 했다.(페이퍼백 형식으로 출간한다고 해서 제작비를 많이 아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페이퍼백으로 출간한 만큼 많이 팔리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박리다매를 실현할 수 없는 한국 시장의 문제점.) 그런데도 이렇게 새로운 브랜드로 페이퍼백이 시도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또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이 얻기를 기대한다.
 [금융부식열도]는 국내에서 보기드문 경제를 다룬 소설이다. 대중소설이라는 말에 걸맞게 쉽고 평이한 문체로 쓰였고, 사건 전개에 집중해서 가독성이 높다.(물론 가끔씩 나오는 상황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거나 보여주는 기사글들은 가독성이 높지 않다.)
 일본의 거품 경제는 유명한 것이나, 일본 경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피부에 잘 와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은 거품 경제가 끝날 무렵 일본 은행에서 일하는 직원을 주인공으로 삼아 일본의 거품 경제의 문제점과 은행의 부정부패와 책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주인공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만들고, 결말까지 게속 활약하게 함으로써 독자가 흥미진진하게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이 소설은 나오키 산주고 말한 대중 문예의 정의에 잘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표현은 평이하여 잘 읽히고, 어마어마한 돈이 왔다갔다 하고 음모가 있고 이에 맞서는 주인공이 있어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또한, 그러면서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삶을 있음직하게 보여주면서 삶의 고찰을 하게 만드는 의미까지 품고 있다.
 이 소설은 경제소설이라는 특이한, 개성있는 테마를 다루고 있는 만큼, 독서 시장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잘 맞을 것 같은 소설이다. 특히, 3, 40대 남성 직장인에게 이 소설은 잘 어울릴 것 같은 이유는 주인공이 남자이고, 직장 생활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아마 금융권에서 일하는 독자라면 흥미가 배가될 것이다. 물론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고 흡인력도 있고 구성도 좋기 때문에 앞에서도 말했듯 대중소설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작품이고 따라서 독자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만족스럽게 읽을 만한 소설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주인공은 갑자기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부서는 누가 들어도 힘든 부서이고, 좌천의 성격을 띄고 있다. 주인공이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입사 동기가 말하길, 특별한 임무를 맡기기 위한 인사이며, 1년만 고생하면 더 높은 승진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주인공은 입사 동기의 말에도 우울함을 떨칠 수 없지만, 회사에서 차차기 은행장으로 유력한 비서역을 만나고 어쩔 수 없이 임무를 맡도록 한다. 그 임무란 회장의 맏딸이 이혼을 하고 정체불명의 남자와 혼인하겠다고 나섰으며, 그 남자는 융자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회장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접근한 것이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야쿠자와 연관된 남자는 아닌지, 정체를 파악하라는 임무를 주인공은 맡게 된다.
 마치 첩보물처럼 비밀 임무를 맡게 되고, 악역을 상대하며 올바른 의견을 개진하지만 관료주의에 폐해로 부정 융자에 휘말려들어간 주인공의 사정이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고, 이 사건을 계기로 계속 연달아 사건이 터지면서 독자를 숨가쁘게 몰아간다.
 주인공을 우연히 사건에 휘말리게 만들고, 그로 인해 게속 연결된 사건이 벌어지면서 마지막까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구성이 뛰어나다는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 게다가 모든 게 실제로 벌어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치밀한 자료조사가 돋보이는 책이다. 은행 내부나 일본의 거품 경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 정리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일본 은행에 직접 일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런 현장감은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거품 경제 시기를 전혀 모르던 독자라도 이 작품을 읽으면 그 시대를 체험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현실감을 잘 살린 것이다.
 인물도 매력있게 잘 설정되어 있다. 여러 인물이 나오지만 헷갈리지 않을 정도로 다들 개성이 있고, 특히 정의롭고 결단력이 있는 주인공의 성격이 마음에 든다.
 보기 드문 완성도 있는 경제소설이라는 점에서, 2권이나 되지만 하루만에 읽어 제낄 수 있는 괜찮은 킬링 타임용 소설이라는 점에서 추천할 만한 소설이다. 시간을 빠르게 가게 할 필요가 있거나, 피서지에 가서 읽을 만한 대중소설을 찾았다면 [금융부식열도]는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닉 -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마음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 『은닉』은 ‘거짓’의 백과사전이다. 거짓의 온갖 양상이 망라된다. 대표적으로 ‘위장’, 또‘허풍’. 그 밖에 등재된 항목들 없는 주제에, 있는 것처럼 꾸며 상대를 현혹시키기. 엄연히 있으면서 없는 척하기. 있는지 없는지 확신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불안하게 만드는 요령. 시늉, 연막, 연극, 성동격서, 은폐, 은신 및 변신, 미끼로 유인, 가면, 배신해놓고 시침 떼기, 이중스파이, 함정, 꼭두각시, 매복, 위증, 칼을 숨긴 주머니, 음성변조, 억지웃음, 은근히 떠보기, 거울, 가상현실, 흥정, 환각, 조각난 진실의 몇 가지 파편들, 소문, 꿈. 그리고 어쩌면 사랑. ――― 영화감독 박찬욱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은희경의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창비, 2007년 4월) 해설에서 "'은희경'은 하나의 장르다."라고 정의내렸다. 은희경만의 문법이 있다는 수사랄까. 나는 신형철의 말을 빌려서 "'배명훈'은 하나의 장르다."라고 정의내리고 싶다. 그는 문단 소설의 관습에도 장르 소설의 관습에도 구애받지 않으며 그 경계에서 자유롭게 외줄타기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줄타기가 배명훈만의 문법을 보여주고 독특한 감성과 재미를 만들어낸다.
 배명훈의 전작들 역시 특이하고 새로운 감각의 소설들이었다. [타워](오멜라스, 2009년 6월), [안녕, 인공존재!](북하우스, 2010년 6월), [끼익끼익의 아주 중대한 임무](이병량 그림, 킨더랜드, 2011년 4월), [신의 궤도](문학동네, 2011년 8월)까지 보여지는 작품의 흐름은 유사한 작가를 찾아내기도 힘들뿐더러, 비슷한 느낌의 작품들을 꼽기도 힘들었다. 작가만의 색채가 새롭고 강렬한 것이다. 아주 새로운 이야기나, 새로운 문장들은 아닐지라도, 새로운 감각이라는 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계간 문학동네에 발표한 첫 번째 단편 {안녕, 인공존재!}가 곧바로 제1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받은 심사평에서 그러한 평가를 찾을 수 있다. 소설가 신경숙은 "다른 별에서 써가지고 온 것 같은 서사의 신선함"을, 윤대녕은 "독창적이고 참신하다. 전혀 새로운 감각의 작가"라고 말했다. 이제 그가 두 번째로 펴낸 [은닉](북하우스, 2012년 6월)을 살펴보자. 여전히 그의 작품은 기존 작품군에 포함시키기 힘든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비슷한 작가를 찾아보기 힘든 배명훈만의 문법과 색채로 무장하고 있다. [은닉]을 읽으면서 받은 첫 번째 느낌은 바로 이것이다. 배명훈은 하나의 장르라는 것.

 [은닉]은 어떤 작품인가?

 배명훈의 장편 소설 [은닉]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이런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야말로 그 이름이 장르로 불리기에 적합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장르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만의 문법이 또다른 형태의 장르로 보이기도 하는 작가라면, 많은 작품을 쏟아내며 그 작품에서 독특한 개성이 묻어나야 할 것이다. [은닉]은 기존의 배명훈의 작품들에서 보였던 여러 특성들이 집합되어 있고, 배명훈의 문법으로 쓰인 장편소설이다. 그러면서도 바로 전작인 첫 번째 장편소설 [신의 궤도]의 전혀 성향이 다른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이며 주인공의 성별 그리고 주제 의식, 다루는 소재까지 전부 다르다. 작가의 양면을 보는 기분이다. 그런데 그 양면이 다채로우며 서로 상호보완하면서도 변별점을 지니고 있어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연방은 종종 죽음을 대량생산한다. 그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다만 가끔, 아주 소량의 죽음을 주문생산해야 할 때가 있는데, 세상 모든 정부가 그 주문을 다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또한 분업 없이 수작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일을 해낼 재래식 기술자를 어느 나라나 다 보유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연방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그들 중 하나다. 분업으로 은폐되지 않은 생생한 죽음을 날것 그대로 다루어야 하는 직업.(15~16쪽)


 [은닉]의 이야기는 이렇다. 주인공은 조직에 속한 킬러다. 바로 첩보물이 연상될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은경이라는 여자가 나오고, 연방이 나오고, 전략무기가 나오고 마음과 마음이 얽힌다.
 주인공은 11년차 킬러로 11년차 킬러에게는 1년의 휴가가 주어진다. 이 안식년은 단순히 편하게 노는 게 아니라 앞으로 킬러로 계속 살아갈지, 아니면 은퇴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시기이다. 이 중요한 시기에 특별한 임무가 주어진다. 추리극 [랑케의 결백]을 보고 감상만 말하면 된다는 것. 그러나 이 단순해 보이는 지령은 휴가 기간에 주어졌다는 점만으로도 불길한 사건을 암시한다.

 내 눈에 비친 은경이. 그건 사랑이 아니라 경이로움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그 나이가 될 때까지 내 눈에 비친 것들 중 가장 경이로운 존재. 그 전까지 봐오던 세상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뀌는 경계. 그 경계에 서 있는 이정표 같은 사람. 처음부터 아예 몰랐으면 모를까, 그런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도저히 그쪽으로 가지 않을 수 없는 삶의 새로운 단계.
 그러니까 그 마음은 사랑이든 뭐든 다른 이름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걸 원래 의미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은경이. 은경이라는 이름 그 자체. 그뿐이었다.(31쪽)


 주인공이 [랑케의 결백]에서 보는 것은 숙청된 권력자의 딸 은경이다. 배명훈의 독자라면 배명훈이라는 장르에서 매번 주인공을 맞는 ‘은경’이라는 캐릭터가 반가울 것이다. 작가는 매번 ‘은경’의 이름을 등장시킴으로써 ‘은경’이라는 이름이 배명훈 장르에서 상징을 가지도록 했다. 이 소설에서 ‘은경’은 많은 등장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은경’의 비중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필시 배명훈의 소설을 다 따라서 읽은 독자가 누리는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이것은 마치 이기호 작가의 소설에서 매번 ‘시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주인공을 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 역시 ‘시봉’이라는 이름에 다양한 의미가 쌓이게 된다.)
 여기서 ‘은경’이 하는 역할은 단순하다. 바로 추리극 안에서 시체 연기를 하는 것이다. 상황 역시 ‘은경’은 죽은 듯이 시체처럼 지내야 하는 것과 맞아떨어진다. 소설인 이렇듯 하나의 현상을 한 가지가 아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게 겹치는 상황을 많이 만든다. 그것이 이 소설이 빠른 전개 중에서도 다양한 층위로 소설을 읽을 수 있게 만드는 힘이다. 작가의 구성이 여러 겹으로 소설을 구성했음을 알 수 있게 만들고, 독자는 여러 사실을 유추해냄으로써 이 소설에 흥미를 느낀다. 은경이라는 캐릭터는 이 소설에서 많이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주인공의 동기이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자 인물들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많이 등장시키지 않음으로써 신비를 덧씌우고 캐릭터성을 드러낸다. 여기에 물론 독자로써 인물에 감정이입이나 해석을 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계속 설명하는 방식의 문장으로도 이 소설의 독특한 반복하며 리듬감을 주는 문체의 힘으로 독자를 납득시키고 어느 정도 설득하면서 은경의 존재를 주입시킨다. 이 점이 개인적으로는 꽤 놀라운 점이었다.
 죽음을 배달하는 휴가를 맞은 주인공 킬러는 은경을 보는 순간, 이 지령이 역시 특별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은경이 죽음의 위기에 놓여 있고, 자신의 판단이 그것을 결정할 것을 깨달은 것이다. 주인공은 은경을 살리기로 결심하고 거짓된 판단을 내놓으며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리고 연방에 의해 죽었다고 알려진 천재 정보분석가 조은수를 소환한다. 그것은 진짜 조은수일까 죽은 조은수일까. 천재는 죽고 그가 만든 인공 정보 분석 기계의 음성인 것일까. 아니면 악마의 속삭임일까. 소설은 여기서부터 끓기 시작한다. 이제 이야기는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흐름 속으로 빠져든다. 주인공의 휴가는 끝났다. 이제 다시 살인의 무대에 입장한다. 은경의 시체 연기는 현실로 이루어질 것인가. 주인공은 이제 어디로 갈 수 있는가. 조은수는 어떻게 주인공과 은경을 도울 것인가. 그의 목적은 무엇인가. 또, 그들을 둘러싼 조직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진짜와 가짜가 섞인다. 이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수많은 가짜 속에 은닉된 진짜를 찾는 것. 동시에 서로에게 감춘, 은닉한 마음이 드러난다. 현실의 사건과 내면의 마음은 모두 은닉되어 있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몇 겹의 거짓이 찢겨나간다.
 [은닉]은 결국 배명훈이 들여다본 마음의 공식, 감추려고 하나 영원히 감출 수 없으며 드러나는 진실들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을 단순히 첩보물이 아니라 여러 독특한 과학적인 장치와 정보전을 통해 내밀한 마음 속과 복잡한 현실을 드러내는 기이한 소설로 그려낸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도대체 누가 이런 스타일의 작품을 또 쓸 수 있겠는가. 이런 발상, 이런 문체, 이런 속도감, 이런 이야기, 이런 인물, 이런 대사, 이런 문장은 모조리 배명훈만의 독특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기 때문에 이 참신한 감각, 처음 맞보는 발상과 스토리텔링에 감동하고 순수하게 즐거움을 느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놀라운 흡인력의 비결, 빠른 속도감과 독특한 문체

 [은닉]이라는 작품을 읽으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감상은 속도감이 빠르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물의 묘사에 집중해서 배경과 인물을 천천히 그려나가는 작품이 있고, 추리나 스릴러 같은 장르 소설에서는 주위 배경보다 사건 전개에 초점을 맞춰서 빠른 전개를 이어나가는 작품이 있다. [은닉]은 킬러나, 스파이, 전략 무기 등을 소재로한 작품으로 첩보나 스릴러 장르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전개에 집중해서 속도감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나, 일반적인 스릴러 소설의 전개 속도를 생각해봐도 이 소설이 두 세배는 더 빠른 느낌이다. 이는 일부 독자에게는 내용 파악이 힘들어 단점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독자들에게는 빠른 속도감에서 느껴지는 쾌감 때문에 이 작품을 더 좋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소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 속도감이 즐거운 쪽이었다. 물론 빠른 전개가 연속이다보니 사건이 지나치게 가볍고, 전체적으로 붕뜬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담담하면서도 리듬감 있는 문체를 구현하여 소설 전체를 하나로 묶는다. 읊조리는 듯한 소설 전체가 하나의 독백인 듯한 느낌인데, 그 느낌이 소설 한 권을 지배하고 있다. 독특한 문체의 힘으로 소설을 긴밀하게 묶어놨고 독자가 혼란을 느끼거나, 지루함을 느끼거나, 너무 가볍게 느낄 여지를 없앴다. 빠른 속도감과 리듬감 있는 문체로 소설 한 권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좋았고, 그 힘에 이끌려서 정신없이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마치 멈출 수 없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면 신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빨리 끝난다는 느낌을 받기 쉬운 것처럼, 이 소설 역시 마구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어느새 끝나 있다.
 이 소설의 방식은 일단 정보를 먼저 주지 않는다. 주인공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을 중간중간 툭툭 던져서 독자를 안내한다. 따라서 독자는 대사에서 정보를 조합해 사건을 그려야 한다. 연방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은경은 어떤 여자인지, 조은수는 어떤 인물인지 상황과 대사로 유추해내야 한다. 이것이 또다른 재미를 주면서 또한 설명 없이 빠르게 전개해나가기 때문에 이 소설의 그 독특한 속도감을 형성한다. 너무 간결하게 생략하고 넘어가는 부분들, 지나치게 묘사와 설명 없이 오직 전개만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숨쉬기 힘든 부분도 분명 있고, 아쉬운 부분도 있다. 인물들에게 깊이 몰입할 여지도 공감할 구석도 적은 편이다. 이는 개인적으로 [은닉]에서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나, 그 대신 이 소설만의 호흡, 리듬, 속도감을 즐길 수 있었다. 계속 주인공은 고뇌하고 질문을 던진다. 자기 자신에게, 남들에게 묻고 또 묻는다. 그렇게 끊임없이 질문과 답변이 반복된다. 이런 빠른 전개와 계속 의문을 제시하고 해결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기 때문에 이전에 못 보았던 독특한 형태의 소설이 완성되었다. 이 독특성을 즐기는 것도 이 소설의 재미이다. 오로지 진실만을, 사건의 모든 진상을 파악하려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끝없이 달려 나가는 이 소설의 속도는 흥미롭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 내면의 속도일 것이다.

 
 또다른 배명훈 월드

 바로 전에 발표한 장편 [신의 궤도]는 기존에 배명훈이 발표한 여러 단편들의 집합처럼 느껴진 면이 있었다. 즉, 여러 단편들을 포함한 배명훈 세계가 존재한다는 느낌이 있고, [신의 궤도]라는 장편은 그 세계를 가장 큰 스케일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궤도]를 읽고 약간 우려를 한 것도 사실이다. 이 작품에서 그 동안 조금씩 단편으로 보여주었던 배명훈 세계의 모든 모습이 한 번에 드러난 것은 아닐까. 배명훈 작가의 궤도가 [신의 궤도]로 정점을 찍었다면, 그 위로 올라가거나 다른 방향으로 궤도를 트는 일은 없는 게 아닐까. 그러나 [은닉]은 이러한 우려를 단번에 씻기는 작품이다. 작가는 얼마든지 더 높이 상승하거나, 혹은 다른 궤도로 비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작품으로 증명하고 있다. [신의 궤도]는 배명훈 세계의 모든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니었다. [은닉]을 읽고 나서야 그 동안 배명훈이 발표한 몇 십편의 단편을 [신의 궤도]가 다 포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배명훈 세계는 아직도 넓고 미개척지도 얼마든지 더 있으리라. 그 때문에 그 다양한 가능성의 실체를 읽는 듯해서 즐거웠다.
 [은닉]에서 느껴지는 배명훈의 단편들은 다음과 같다. {마탄강 유역}, {인섹트 플라이트}, {초록연필}, {얼굴이 커졌어요}, {스마트D} 등등. [은닉]에서 '악마'의 존재가 언급될 때는 자연스레 {마탄강 유역}이 떠올랐다. 판타지 단편인 {마탄강 유역}에서는 '악마'의 존재는 물론 창병이 '창'으로 직선을 그리는 것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이점 역시 [은닉]에서도 보다 자세하고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된다. 초소형 비행물체가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역시 같은 소재를 다룬 단편 {인섹트 플라이트}가 떠오른다. 주인공이 킬러라는 설정은 단편 {얼굴이 커졌어요}를 떠올리게 하고, 모든 전자 정보를 감시하고 영향을 끼치는 설정 등에서 {스마트D}의 향기를 느낀다. {스마트D}나 {변신합체 리바이어던} 등에서 보이는 배명훈의 문법, 무한대로 펼쳐지는 것들과 한 점으로 수렴되는 것. 아직 펼쳐지지 않은 배명훈 세계는 이토록 넓었고 편린처럼 흩어져 있던 단편들이 합쳐져 장편을 이루는 순간, 광활하고도 복잡한 새로운 서사가 구축되는 모습은 근사했다. 배명훈의 단편들을 따라 읽었던 독자라면 [신의 궤도]나 [은닉]을 읽는 순간, 그 단편들이 합쳐지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감탄하고 매료될 것이다.

 매력적인 설정, 디코이, 정보전

 전작 [신의 궤도]에서 '냉동', '복제인간', '세대우주선', '인공지능' 등 SF 클리셰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면, 이번 [은닉]에서는 '정보전', 초소형 비행물체, 디코이, 시신경과 무의식이 대화하는 장치2) 등 전작과 궤를 달리하는 소재들이 사용되었다. 킬러와 조직과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기존 첩보물을 중심으로 하여, 현대적인 장치들을 변주하여 사용하여 참신함을 얹은 작품이다. 이런 장치들은 신선하고 재미있는 요소이다. 조은수로 대변되는 천재의 몇 수를 먼저 읽는 능력, 수많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는 능력 등은 마치 인간을 뛰어넘은 존재로 보이게 하고, 소설의 신비감을 주면서 한편으로는 최근에 출간된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다카노 가즈아키, 황금가지, 2012년 6월)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제노사이드]에서 초월종이 벌이는 정보전이 [은닉]에서는 조은수나 악마를 통해 이루어지는 느낌이다. 일본 소설에서 [제노사이드]에 정보전이 묘사되었다면, 한국 소설에서는 배명훈의 [은닉]에서 정보전이 묘사되었다고 할까. 일본 소설에 나온 정보전의 한국의 대답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 재미있었다.

 “너는 네 취향이 네 것 같지? 세상이 네 머릿속에 그런 착각을 집어넣은 줄도 모르고. 아무튼 말이야, 투입되는 데이터만 충분하면, 음악 취향이나 옷 고르는 패턴 같은 건 물론이고, 어떤 현장요원이 누구를 죽일 때 어떤 칼을 어느 각도로 집어넣는 걸 선호하는지까지 알아낼 수 있어. 너도 예외는 아니야. 무슨 말인지 알겠냐? 행동만 예측하는 게 아니라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고. 네 내면에 대한 심오한 분석 따위는 아예 시도해볼 필요조차 없이 말이야.”(61쪽)


 또한,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소재는 정보전을 이루는 주축인 '디코이'(Decoy)다. 디코이란 "사냥에서 들새나 들짐승을 사정거리 안으로 유인하기 위하여 만든 모형새"를 말한다. 한마디로 미끼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체스의 전술 중 하나이기도 하며, 적 어뢰 요격 및 적 교란용 무기의 명칭으로 쓰이기도 하는 단어다. 이 작품에서는 '디코이'란 현대 사회에서 한 인간의 모든 것을 추적하고 파악할 수 있는 상황에서 추적에 혼란을 주기 위한 미끼 정보를 말한다. 지금도 우리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자신의 아이디로 접속해 모든 사용 내역을 일일이 확인할 수 있다. 그걸 통해서 무엇을 알아낼 수 있을까. 이 소설에서는 "문제는 취향이야. 그건 절대 숨길 수 없거든."이라는 말을 통해 수많은 취향을 통해 그 사람을 규정하고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사고, 무엇을 먹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무슨 책을 읽는지, 어떤 사이트에 접속하는지, 어떤 사진을 보는지, 어떤 영상을 보는지 파악된다면 그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하고 어떤 사고를 하는지까지 취향을 통해 그 사람을 다시 재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정보를 완전히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수많은 가짜 미끼를 정보망에 뿌려서 거짓된 구성을 만들도록 하는 것을 '디코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숨길 수 없다면 역으로 수많은 디코이를 뿌려서 자신을 숨긴다. 이 디코이란 설정이 소설의 매력을 부여한다. 눈에 보이지 않은 정보망 속에서 자신의 분신이 돌아다니는 광경은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악마

 단편 {마탄강 유역}이나 {초록 연필}을 보듯이 배명훈 작가의 작품에서는 '악마'라는 키워드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소설에서 '악마'라는 단어를 본 순간, 역시 배명훈 세계의 작품이라는 느낌과 앞에서도 말했듯 [신의 궤도]에서 나오지 않은 키워드가 많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나오는 악마는 초자연적인 악마 그 본연의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기계적인 정체성을 가진 인공지능을 가리키는 말도 아니다. 인간 유전자 근원에 각인된 악마를 현대 신경망 기술로 소환하여 막강한 정보전의 전략 무기로 화한 것을 말한다. 이는 배명훈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다. 작품의 주요 소재를 환상이나 신비로만 남기는 게 아니라 과학이 뒷받침된 환영으로 만든다. 이는 다시 앞서 말한 줄타기를 떠올리게 한다. 소설은 인간 내면의 악마를 형상화한 상징이나 은유를 그리는 한편,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물리적인 실체를 지니고 있다. 경계에 서서 양쪽의 해석이 모두 가능한 것이다. 이는 이미 이전의 단편인 {안녕, 인공존재!}에서 '인공존재'의 폭발이 주류소설과 SF의 독서 프로토콜 간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1) '악마' 역시 독서 프로토콜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 사이의 마음 그 속에 자리잡은 악마. 또 다른 인격이라는 주제는 오래되었으나, 유전자 속에 내재된 악마를 소환해내는 방식이 흥미롭다. 시신경에 장착한 물건이 인간의 무의식과 소통을 한다는 것. 그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대화 속에서 창출되는 정보집합체의 존재. 이런 발상을 떠올리고 그 내면을 파고드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은유이자 실체인 [은닉]이 탄생한 것이다. 물리적인 실체를 가지면서도 은유로써 작용하는 악마는 이 소설의 가장 결정적일 때 등장하여 등장인물을 혼란으로 빠트린다. 그러면서 등장인물의 내적 갈등은 곧 세계의 갈등으로 발전한다. 내면의 세계가 곧 현실 세계와 겹치는데, 이런 점 역시 이 소설의 매력으로 꼽을 수 있다.
 이 소설은 전체가 디코이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많은 디코이들이 난무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그러면서 각종 장치들이나 상황들이 별다른 설명없이 제시되는데 이점 역시 배명훈 작가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조직들의 상황이나 여러 과학적인 장치들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몇 권에 달하는 지루한 내용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수많은 논문들을 바탕으로 한 장치라고 할지라도 [타워]처럼 과학적 설명을 늘어놓는 대신 능청스럽게 상황과 배경만을 제시한다. 많은 독자들이 이야기에 집중하고 인물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치인 것이다.
 은닉은 마음에 관한 소설이다. 광활한 우주나 몇 백 만년의 세월을 관통하는 작품은 아니다. 그런데 마음에 관한 소설이라고 반드시 스케일이 작을까.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고 해서 그 작품의 스케일이 정해지는 것일까. [은닉]은 그렇지 않다고 증명한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사람의 내면은 어찌보면 우주와 동일한 크기를 지녔다. 그 내면의 소우주와 현실의 우주를 겹치는데 성공한 소설이 바로 [은닉]이다. 내면의 우주가 기울여지자, 세상이 기울여지는 소설이다. 내면이 검은색으로 물들면 바로 세상이 검은색으로 물든다. 이 내면과 세상을 일치시키는 방식이 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신의 궤도]는 독자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나, 지구가 아닌 다른 휴양 행성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수많은 인류는 소멸하거나 진화하여 존재들은 유기체에 머물지 않고 행성 그 자체가 된 세상이다. 그 세상의 스케일과 지성을 머리로 가볍게 파악하는 것과 실체를 느끼는 것은 차이가 있다. [신의 궤도]는 면밀히 따져보면 그 복잡하고 다층적인 세계관을 단번에 받아들이기에는 버거운 작품이다. 반대로 [은닉]은 지구에서 먼 미래가 아닌 근미래에 벌어지는 작품이기 때문에 소화가 어렵지 않다.(그러나 물론 [은닉] 역시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가면 무의식과 내면의 소우주가 더 넓고 받아들이기 벅찰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인셉션](Inception, 2010), 애니메이션 [파프리카](Paprika, 2006)나 로저 젤라즈니의 {형성하는 자}([드림 마스터], 행복한책읽기, 2010년 1월)에서 기계를 매개체로 하여 꿈과 무의식의 세계로 침전한다면, 이 소설에서는 무의식과 그 속의 악마를 이 현실 세계에 덧씌운다. 무의식의 차원을 현실의 차원으로 투영하면서 더욱 많은 것을 드러낸다. 빙산 속을 파고드는 게 아니라 빙산의 조각과 배를 부딪쳐 배를 산산조각 내는 것이다. 이렇게 어떤 지역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현상을 통해서 그것을 형상화하는 과정이 탁월한 소설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이 소설이 끊임없이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소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한 사람의 마음의 파장이 세계의 파장으로 겹쳐지는 것을 보면서, 그 충격을 함께 겪는 것이다. 이 소설이 끝까지 독백 형식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사건들을 보여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주인공의 개성을 획득하면서 구성과 문체의 힘으로 인물 간의 관계와 의식의 이끌림을 보여준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한 동안 여운에 정신이 혼미한 소설이었다. 그것이 결코 빠른 속도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차츰 모습을 드러낸 그 악마가 마침내 내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섯 개의 이름을 가진 악마를 만나기 위해 오늘도 소설을 읽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악마는 스스로 악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어떤 천사는 혹시 자신이 바로 그 악마가 아닐까 평생을 고뇌한다.”





1) 자, 그러면 이런 질문은 어떨까? 주류소설(Mainstream Fiction: MF)과 SF(Science Fiction)는 과연 무엇이 다른가? 다름 아닌 ‘독서 프로토콜(protocol)’의 차이다. 작품의 내용이 아니라 작품을 읽고 쓰는 방식이 다르다는 말이다. 어떤 소설가가 “그녀의 세계가 폭발했다”는 문장을 썼다고 치자. 주류소설의 독자들은 ‘그녀는 격렬한 감정의 폭발을 경험했다’고 읽을 것이다. 그러나 SF 독자들은 ‘그녀가 살고 있는 행성이나 거주지(우주선 등)가 폭발했다’고 읽을 것이다(SF 평론가 김상훈이, 작가이자 평론가인 새뮤얼 R. 딜레이니가 제시한 예를 들어 설명한 것이다). 그러니까 배명훈의 소설은 SF와 주류소설이 거느린, 아니 그것들을 이루게 하는 독서 프로토콜이 합류하는 지점에 놓인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그의 소설이 ‘그녀의 세계가 폭발했다.’고 이야기할 때, 우리는 주인공이 겪는 사랑의 심리적 내면 폭발과 더불어 우주선이나 행성의 물리적 외적 폭발을 함께 상상해 볼 수 있다. 주류소설에 익숙해진 독자라면 이 점을 염두에 두도록 하자. 배명훈 소설을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노대원, “배명훈 소설집, 『안녕, 인공존재!』”, 2010년 8월 16일, 창비문학블로그, http://blog.changbi.com/lit/?p=1226
2) 시신경에 관한 부분에서 피터 와츠의 [블라인드 사이트]의 대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시각이란 건 거의 대부분 거짓이야." 커닝햄이 말을 이었다. "실제로 볼 수 있는 건 눈이 초점을 맞춘 부분의 고해상도 영상 몇 조각이지. 그걸 뺀 나머지는 그냥 뿌연 배경일 뿐이야. 빛과 움직임 정도지. 움직임이 생기면 초점이 옮겨 가. 그리고…… 눈이 항상 가늘게 떨린다는 거 알아? 그걸 단속운동이라고 불러. 대상의 움직임이 너무 빠르면 뇌가 그걸 하나로 통합하지 못하고 그 결과 눈이 잠깐씩 작동을 멈추는 거야. 그럼 영상이 흐려지지. 그럴 경우 눈은 별개로 나뉜 정지 영상만을 보내는 거야. 뇌가 공백을 메우고 이어 붙여서…… 머릿속에다가 연속된 환각을 만들지."
 커닝햄이 몸을 돌려서 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정말로 놀라운 건 뭔지 알아? 그 틈새를 타서 뭔가가 움직인다면 뇌가 그걸…… 무시한다는 사실이야. 못 보는 거지." (피터 와츠, [블라인드 사이트], 이지북, 384~3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스터리의 계보 - 마쓰모토 세이초 미스터리 논픽션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때로 소설은 현실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말을 한다. 삼풍백화점이나, 9·11 사건만 봐도 현실은 픽션보다 끔찍하다. 지금도 한 권의 미스터리 속에서 논리 정연한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보다, 신문에 보도되는 식인 사건이나, 토막 사건이 더욱 무자비하고 섬뜩하다. 그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에 더 피부에 와닿으며 소설 속 세계처럼 개연성을 갖추고 벌어지는 게 아니라 무작위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이 이토록 부서지기 쉬운 세계라는 것을 매일 보도되는 사건 사고 기사들 속에서 인지할 수 있다.
 여기, 어떤 미스터리 소설보다 더 선연하게 가슴을 죄어오는 사건들을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가 쓴 논픽션 [미스터리의 계보](마쓰모토 세이초, 북스피어, 2012년 5월)다. 제목만 보고서는 마치 추리 소설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인 것 같지만, 막상 페이지를 넘기면 이 책에 담긴 충격적인 내용에 압도되고 말 것이다.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작가는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세밀하게 파고든다. 얼핏 단순한 사건 보고서가 될 것 같지만, 작가의 시선은 정교하기 때문에 사건의 이면까지도 들여다본다. 거기서 우리는 픽션이 아닌 논픽션에서 얻을 수 있는 뛰어난 현장감과 재미를 얻을 수 있다. 그저 신문 기사로 봤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군, 이라고 넘겼을 사건들이 그 안에 인간의 심리나 사건 발생의 과정들을 하나씩 추적해 나가면서 인간의 본질까지 드러내는 것이다. 단순히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건 속에서 인간의 추악하고도 혐오스러운 면, 어리석은면을 샅샅이 훑고 분석하는 것에 흥미를 가진 독자라면 이 책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 책에는 마쓰모토 세이초가 유전적 기질이나 사회적 압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범죄들을 상세히 살피고 있다. [미스터리의 계보]는 1967년 8월 11일부터 1968년 4월 5일까지 <주간 요미우리>에 연재된 것을 묶었다고 한다. 단행본을 출간할 때는 연재했던 {탈옥}과 {여름밤의 연속 살인}은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져서 제외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 두 개의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그만큼 이 책이 내 혼을 빼앗아갈 정도로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했다는 소리다.
 첫 번째 실린 이야기는 {전골을 먹는 여자}다. 처음에는 이 책의 성격조차 제대로 짐작하지 못하고 읽기 때문에 시종 어리둥절한 상태로 읽었다. 그런데 담담한 듯한 문장으로 사건을 서술해서 처음에는 무심한 시선으로 나 역시 사건을 바라보게 되는데, 읽다보면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지는 지점이 있다. 그 전까지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느낄 수 없었으나, 첫 번째 사건의 핵심에 다가가면서 서늘한 공포를 느낀 것이다.(바로 여자가 "먹었어"라고 말하는 시점에서)
 일상에서 엿보이는 비일상적인 사건이 온몸을 드러낼 때, 독자는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니. 이 책은 섣불리 소설처럼 심리를 재단하거나 사건을 정리하지 않는다. 계속 사실이나 보고, 기록 등을 제시하면서 사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사실로써 판단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독자는 범인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유추해 나가게 된다. 이 책이 놀라운 것은 세심하게 기록을 살펴봄으로써 심리의 대한 이해를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저 범인이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짓고 넘겨버리기 일쑤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그 심리나 동인을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다. 이 책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마치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어보는 것과 같다. 사건 기록을 읽고, 현장을 방문하고, 당시 사람들의 증언을 듣는 작업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는 것이다.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지적 흥미를 느끼는 동시에 인위적인 추리 소설 속 사건과 다른 피부로 와닿는 섬뜩한 일상 속의 공포와 마주친다. 그 안에는 우리가 알지 못 했던, 알려고 하지 않았던 기이한 속내를 감춘 사람이 있다.
 다시 첫 번째 이야기, {전골을 먹는 여자}로 돌아가자.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일본에서 일어난 의붓딸 살해와 그 의붓딸의 인육을 먹은 사건을 다룬 것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육이란 끔찍한 비극이며, 용납될 수 없는 금기다. 보통 소설 속에서는 잘 다루기 힘든 엽기적인 사건이며, 논픽션으로 다룬다고 하더라도 그 끔찍함 때문에 감정적이 되거나 제대로 묘사하지 않고 넘어가기 쉬울 것 같은 사건이다. 그러나 마쓰모토 세이초는 로봇인양 차가운 시선으로, 담담하게 사건을 복기한다. 바둑에서 한 번 두었던 판을 복기하면서 얻는 것은 몇 판을 새로 두는 것보다 크다. 자신의 심리와 상대의 심리를 다시 한 번 반추할 수 있고, 가지 않았던 경로를 살펴보며 시선을 확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바로 그러한 복기가 내내 일어난다. 그 복기는 무미건조한 느낌이나, 그럼으로써 오히려 사건의 본질에 도달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두 사람의 진범}이다. 사형제도가 과연 완벽한지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하나의 사건에 두 사람의 진범이 등장하며 독자를 혼란속으로 빠트린다. 당시에도 이 사건은 복잡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바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두 범인의 증언과 증거품을 보여주며 두 사람이 모두 각각 범인처럼 보이게 만든다. 한편, 완벽히 범인이라고 지목하기에는 각자 이상한 점 모두 갖고 있다. 이로써는 도저히 누가 진범인지 알 수 없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구성 능력은 단순히 사건만 제시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논픽션에 맞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에도 대본과 구성이 있고,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추는 법이다. 이 글은 특히 그런 구조가 잘 짜여 있다.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독자들은 범인을 추리하게 된다. 그런데 도무지 감을 잡기가 힘들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일까. 하나의 사건에 두 명의 범인이 있을 수는 없다. 여자는 살해당했고 단독범의 소행이다. 두 남자 중 누구일까. 진술은 둘 다 타당한 지점과 미심쩍은 지점이 똑같이 존재한다. 증거는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놀라운 과학기술이 단번에 밝혀내겠지만, 그 시절에는 그게 불가능했다. 범인의 진술이나 증거 물품, 당시 기사, 재판 기록을 가지고도 이렇게 흥미로운 구성을 짤 수 있다니.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놀랍다. 첫 번째 사건은 그 비참함에 가슴이 아렸다면, 두 번째 사건은 머리를 혼란케 하는 사건을 제시하면서 결국 그 시대의 범죄 수사의 그림자를 드러낸다. 이 글은 다시 시작에서 질문한 것으로 돌아간다. 사법부는 과연 완벽한가. 어쩐지 읽는 내내 영화 [살인의 추억]이 떠오르는 글이었다. 읽어보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결국 국적을 불문하고 그러한 권력의 문제점들은 존재했다. 그렇다면, 이 사건과 달리 잘못 처벌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사형제도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 글을 읽고 나면 생각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이야기는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이다. 이 이야기는 앞의 두 이야기를 가볍게 뛰어넘는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며 그만큼 믿기 힘들다. 고립된 산간 마을에서 폐병에 걸린 한 남자가 마을 사람 수십 명을 몇 시간 내에 살해한 사건이다. 시마다 소지의 [용와정 살인사건](시마다 소지, 도서출판두드림, 2008년 3월)과 요코미조 세이시의 [팔묘촌](요코미조 세이시, 시공사, 2006년 8월)에 영향을 준 실화. 그러나 과연 소설이 이 실화의 압도적인 사실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마쓰모토 세이초는 당시 일본 산간 마을의 특수한 배경부터 설명한다. 고립된 산간 마을의 문란한 성 풍속을 숙지 하지 않으면 사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범인인 '도이 무쓰오'에 대한 설명을 읽을 수록 이런 사람이 정말 그런 일을 벌인 것인가. 어째서라는 물음이 마구 생겨난다. 그런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사람들의 증언과 주변 정황을 세심하게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서술함으로써 도이 무쓰오의 속마음까지 구축해 버린다. 그야말로 마음을 형성하는 작업이다.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끔찍하고 처절한 사건이다. 사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조되는 흥분. 마쓰모토 세이초의 건조한 문체로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몰입된다. 이 책이 단지 사건의 선전성에 집중했다면 그리 놀랍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사건만이 아니라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제도, 나아가 국가와 중일 전쟁까지 끌어들인다. 모든 요소가 결합되어 나온 것이 사건이지, 한 사람의 정신 이상이 강력 범죄를 만든 것은 아니다. 마쓰모토 세이초도 서술하는 내내 도이 무쓰오의 정신은 멀쩡했다고 말한다. 그는 정신 이상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하룻밤 사이의 삼 십명의 사람들을 무참히 죽였다. 그 과정은 영상이었다면 눈을 감아버릴 만큼 끔찍했다. 이 잔인성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이 책을 추천하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지만, 이런 잔인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잔인함보다 그 잔인함 속에 있는 인간을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라면, 우리 주변의 범죄들에 대해서 좀더 내밀한 시선을 갖추고 싶다면 이 책은 제격일 것이다.
 이 책에서 읽은 충격적이고 잔혹한 장면이나, 책에서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 등은 최대한 언급을 회피하려고 노력한 리뷰다. 그만큼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관심이 가는 분들은 직접 책을 읽고 확인해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논픽션에 관심이 없던 독자라도, 이런 논픽션이 있을 수 있구나,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책을 읽었을 때,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리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책 역시 자발적으로 리뷰를 쓰고 싶게 만드는 책 중에 하나였다. 소설을 뛰어넘는 현실의 범죄, 그 안에는 인간들이 있다. 바로 우리들이 있다. 그걸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독자들은 어서 빨리 서점으로 달려가거나,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 버튼을 누르기를 추천한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독서일 것이며, 마쓰모토 세이초의 진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는 그의 소설 [짐승의 길](마쓰모토 세이초, 북스피어, 2012년 2월)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미스터리의 계보]를 읽고 나서야 작가의 역량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짐승의 길]은 이 작가의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이 책은 논리적인 추리와 피 튀기는 사건의 근원, 우리 일상에 도사리고 있는 심리적인 공포 그 자체를 마쓰모토 세이초의 눈으로 읽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