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부식 열도 2
다카스기 료 지음, 이윤정 옮김 / 펄프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따라서 나는 대중 문예와는 다른 소설 작법이 있고 그것이 예술 소설, 문단 소설을 의미한다면, 대중 문예는 그 밖의 일체, 즉 과학 소설, 목적 소설, 역사 소설, 소년·소녀 소설, 탐정 소설 등 모든 것을 포함하여 대중이라는 글자의 뜻 그대로 정의해도 된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대중 문예의 정의를 내린다면,
 '대중 문예란 표현을 평이하게 하고 흥미를 중심으로 하되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 또는 거기에 인생에 대한 해설과 인간 생활상의 문제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 나오키 산주고, [나오키의 대중 문학 강의]. 북스피어, 2011년 9월


 민음사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었다. '펄프'라는 직접적인 브랜드명이 말해주듯, 흔히 펄프 소설이라고 불리는 대중적인 소설을 내놓는 브랜드다. 일본에는 문고본이, 미국에는 페이퍼백이 값싼 펄프 소설들을 대중들에게 보급했지만, 국내에는 양장본이 더 많이 팔리고 몇몇 페이퍼백 시도는 실패하곤 했다.(페이퍼백 형식으로 출간한다고 해서 제작비를 많이 아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페이퍼백으로 출간한 만큼 많이 팔리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박리다매를 실현할 수 없는 한국 시장의 문제점.) 그런데도 이렇게 새로운 브랜드로 페이퍼백이 시도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또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이 얻기를 기대한다.
 [금융부식열도]는 국내에서 보기드문 경제를 다룬 소설이다. 대중소설이라는 말에 걸맞게 쉽고 평이한 문체로 쓰였고, 사건 전개에 집중해서 가독성이 높다.(물론 가끔씩 나오는 상황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거나 보여주는 기사글들은 가독성이 높지 않다.)
 일본의 거품 경제는 유명한 것이나, 일본 경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피부에 잘 와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은 거품 경제가 끝날 무렵 일본 은행에서 일하는 직원을 주인공으로 삼아 일본의 거품 경제의 문제점과 은행의 부정부패와 책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주인공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만들고, 결말까지 게속 활약하게 함으로써 독자가 흥미진진하게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이 소설은 나오키 산주고 말한 대중 문예의 정의에 잘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표현은 평이하여 잘 읽히고, 어마어마한 돈이 왔다갔다 하고 음모가 있고 이에 맞서는 주인공이 있어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또한, 그러면서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삶을 있음직하게 보여주면서 삶의 고찰을 하게 만드는 의미까지 품고 있다.
 이 소설은 경제소설이라는 특이한, 개성있는 테마를 다루고 있는 만큼, 독서 시장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잘 맞을 것 같은 소설이다. 특히, 3, 40대 남성 직장인에게 이 소설은 잘 어울릴 것 같은 이유는 주인공이 남자이고, 직장 생활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아마 금융권에서 일하는 독자라면 흥미가 배가될 것이다. 물론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고 흡인력도 있고 구성도 좋기 때문에 앞에서도 말했듯 대중소설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작품이고 따라서 독자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만족스럽게 읽을 만한 소설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주인공은 갑자기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부서는 누가 들어도 힘든 부서이고, 좌천의 성격을 띄고 있다. 주인공이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입사 동기가 말하길, 특별한 임무를 맡기기 위한 인사이며, 1년만 고생하면 더 높은 승진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주인공은 입사 동기의 말에도 우울함을 떨칠 수 없지만, 회사에서 차차기 은행장으로 유력한 비서역을 만나고 어쩔 수 없이 임무를 맡도록 한다. 그 임무란 회장의 맏딸이 이혼을 하고 정체불명의 남자와 혼인하겠다고 나섰으며, 그 남자는 융자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회장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접근한 것이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야쿠자와 연관된 남자는 아닌지, 정체를 파악하라는 임무를 주인공은 맡게 된다.
 마치 첩보물처럼 비밀 임무를 맡게 되고, 악역을 상대하며 올바른 의견을 개진하지만 관료주의에 폐해로 부정 융자에 휘말려들어간 주인공의 사정이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고, 이 사건을 계기로 계속 연달아 사건이 터지면서 독자를 숨가쁘게 몰아간다.
 주인공을 우연히 사건에 휘말리게 만들고, 그로 인해 게속 연결된 사건이 벌어지면서 마지막까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구성이 뛰어나다는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 게다가 모든 게 실제로 벌어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치밀한 자료조사가 돋보이는 책이다. 은행 내부나 일본의 거품 경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 정리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일본 은행에 직접 일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런 현장감은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거품 경제 시기를 전혀 모르던 독자라도 이 작품을 읽으면 그 시대를 체험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현실감을 잘 살린 것이다.
 인물도 매력있게 잘 설정되어 있다. 여러 인물이 나오지만 헷갈리지 않을 정도로 다들 개성이 있고, 특히 정의롭고 결단력이 있는 주인공의 성격이 마음에 든다.
 보기 드문 완성도 있는 경제소설이라는 점에서, 2권이나 되지만 하루만에 읽어 제낄 수 있는 괜찮은 킬링 타임용 소설이라는 점에서 추천할 만한 소설이다. 시간을 빠르게 가게 할 필요가 있거나, 피서지에 가서 읽을 만한 대중소설을 찾았다면 [금융부식열도]는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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