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의 계보 - 마쓰모토 세이초 미스터리 논픽션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때로 소설은 현실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말을 한다. 삼풍백화점이나, 9·11 사건만 봐도 현실은 픽션보다 끔찍하다. 지금도 한 권의 미스터리 속에서 논리 정연한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보다, 신문에 보도되는 식인 사건이나, 토막 사건이 더욱 무자비하고 섬뜩하다. 그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에 더 피부에 와닿으며 소설 속 세계처럼 개연성을 갖추고 벌어지는 게 아니라 무작위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이 이토록 부서지기 쉬운 세계라는 것을 매일 보도되는 사건 사고 기사들 속에서 인지할 수 있다.
 여기, 어떤 미스터리 소설보다 더 선연하게 가슴을 죄어오는 사건들을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가 쓴 논픽션 [미스터리의 계보](마쓰모토 세이초, 북스피어, 2012년 5월)다. 제목만 보고서는 마치 추리 소설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인 것 같지만, 막상 페이지를 넘기면 이 책에 담긴 충격적인 내용에 압도되고 말 것이다.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작가는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세밀하게 파고든다. 얼핏 단순한 사건 보고서가 될 것 같지만, 작가의 시선은 정교하기 때문에 사건의 이면까지도 들여다본다. 거기서 우리는 픽션이 아닌 논픽션에서 얻을 수 있는 뛰어난 현장감과 재미를 얻을 수 있다. 그저 신문 기사로 봤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군, 이라고 넘겼을 사건들이 그 안에 인간의 심리나 사건 발생의 과정들을 하나씩 추적해 나가면서 인간의 본질까지 드러내는 것이다. 단순히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건 속에서 인간의 추악하고도 혐오스러운 면, 어리석은면을 샅샅이 훑고 분석하는 것에 흥미를 가진 독자라면 이 책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 책에는 마쓰모토 세이초가 유전적 기질이나 사회적 압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범죄들을 상세히 살피고 있다. [미스터리의 계보]는 1967년 8월 11일부터 1968년 4월 5일까지 <주간 요미우리>에 연재된 것을 묶었다고 한다. 단행본을 출간할 때는 연재했던 {탈옥}과 {여름밤의 연속 살인}은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져서 제외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 두 개의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그만큼 이 책이 내 혼을 빼앗아갈 정도로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했다는 소리다.
 첫 번째 실린 이야기는 {전골을 먹는 여자}다. 처음에는 이 책의 성격조차 제대로 짐작하지 못하고 읽기 때문에 시종 어리둥절한 상태로 읽었다. 그런데 담담한 듯한 문장으로 사건을 서술해서 처음에는 무심한 시선으로 나 역시 사건을 바라보게 되는데, 읽다보면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지는 지점이 있다. 그 전까지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느낄 수 없었으나, 첫 번째 사건의 핵심에 다가가면서 서늘한 공포를 느낀 것이다.(바로 여자가 "먹었어"라고 말하는 시점에서)
 일상에서 엿보이는 비일상적인 사건이 온몸을 드러낼 때, 독자는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니. 이 책은 섣불리 소설처럼 심리를 재단하거나 사건을 정리하지 않는다. 계속 사실이나 보고, 기록 등을 제시하면서 사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사실로써 판단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독자는 범인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유추해 나가게 된다. 이 책이 놀라운 것은 세심하게 기록을 살펴봄으로써 심리의 대한 이해를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저 범인이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짓고 넘겨버리기 일쑤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그 심리나 동인을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다. 이 책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마치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어보는 것과 같다. 사건 기록을 읽고, 현장을 방문하고, 당시 사람들의 증언을 듣는 작업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는 것이다.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지적 흥미를 느끼는 동시에 인위적인 추리 소설 속 사건과 다른 피부로 와닿는 섬뜩한 일상 속의 공포와 마주친다. 그 안에는 우리가 알지 못 했던, 알려고 하지 않았던 기이한 속내를 감춘 사람이 있다.
 다시 첫 번째 이야기, {전골을 먹는 여자}로 돌아가자.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일본에서 일어난 의붓딸 살해와 그 의붓딸의 인육을 먹은 사건을 다룬 것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육이란 끔찍한 비극이며, 용납될 수 없는 금기다. 보통 소설 속에서는 잘 다루기 힘든 엽기적인 사건이며, 논픽션으로 다룬다고 하더라도 그 끔찍함 때문에 감정적이 되거나 제대로 묘사하지 않고 넘어가기 쉬울 것 같은 사건이다. 그러나 마쓰모토 세이초는 로봇인양 차가운 시선으로, 담담하게 사건을 복기한다. 바둑에서 한 번 두었던 판을 복기하면서 얻는 것은 몇 판을 새로 두는 것보다 크다. 자신의 심리와 상대의 심리를 다시 한 번 반추할 수 있고, 가지 않았던 경로를 살펴보며 시선을 확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바로 그러한 복기가 내내 일어난다. 그 복기는 무미건조한 느낌이나, 그럼으로써 오히려 사건의 본질에 도달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두 사람의 진범}이다. 사형제도가 과연 완벽한지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하나의 사건에 두 사람의 진범이 등장하며 독자를 혼란속으로 빠트린다. 당시에도 이 사건은 복잡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바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두 범인의 증언과 증거품을 보여주며 두 사람이 모두 각각 범인처럼 보이게 만든다. 한편, 완벽히 범인이라고 지목하기에는 각자 이상한 점 모두 갖고 있다. 이로써는 도저히 누가 진범인지 알 수 없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구성 능력은 단순히 사건만 제시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논픽션에 맞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에도 대본과 구성이 있고,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추는 법이다. 이 글은 특히 그런 구조가 잘 짜여 있다.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독자들은 범인을 추리하게 된다. 그런데 도무지 감을 잡기가 힘들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일까. 하나의 사건에 두 명의 범인이 있을 수는 없다. 여자는 살해당했고 단독범의 소행이다. 두 남자 중 누구일까. 진술은 둘 다 타당한 지점과 미심쩍은 지점이 똑같이 존재한다. 증거는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지금이라면 놀라운 과학기술이 단번에 밝혀내겠지만, 그 시절에는 그게 불가능했다. 범인의 진술이나 증거 물품, 당시 기사, 재판 기록을 가지고도 이렇게 흥미로운 구성을 짤 수 있다니.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놀랍다. 첫 번째 사건은 그 비참함에 가슴이 아렸다면, 두 번째 사건은 머리를 혼란케 하는 사건을 제시하면서 결국 그 시대의 범죄 수사의 그림자를 드러낸다. 이 글은 다시 시작에서 질문한 것으로 돌아간다. 사법부는 과연 완벽한가. 어쩐지 읽는 내내 영화 [살인의 추억]이 떠오르는 글이었다. 읽어보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결국 국적을 불문하고 그러한 권력의 문제점들은 존재했다. 그렇다면, 이 사건과 달리 잘못 처벌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사형제도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 글을 읽고 나면 생각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이야기는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이다. 이 이야기는 앞의 두 이야기를 가볍게 뛰어넘는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며 그만큼 믿기 힘들다. 고립된 산간 마을에서 폐병에 걸린 한 남자가 마을 사람 수십 명을 몇 시간 내에 살해한 사건이다. 시마다 소지의 [용와정 살인사건](시마다 소지, 도서출판두드림, 2008년 3월)과 요코미조 세이시의 [팔묘촌](요코미조 세이시, 시공사, 2006년 8월)에 영향을 준 실화. 그러나 과연 소설이 이 실화의 압도적인 사실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마쓰모토 세이초는 당시 일본 산간 마을의 특수한 배경부터 설명한다. 고립된 산간 마을의 문란한 성 풍속을 숙지 하지 않으면 사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범인인 '도이 무쓰오'에 대한 설명을 읽을 수록 이런 사람이 정말 그런 일을 벌인 것인가. 어째서라는 물음이 마구 생겨난다. 그런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사람들의 증언과 주변 정황을 세심하게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서술함으로써 도이 무쓰오의 속마음까지 구축해 버린다. 그야말로 마음을 형성하는 작업이다.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끔찍하고 처절한 사건이다. 사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조되는 흥분. 마쓰모토 세이초의 건조한 문체로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몰입된다. 이 책이 단지 사건의 선전성에 집중했다면 그리 놀랍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사건만이 아니라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제도, 나아가 국가와 중일 전쟁까지 끌어들인다. 모든 요소가 결합되어 나온 것이 사건이지, 한 사람의 정신 이상이 강력 범죄를 만든 것은 아니다. 마쓰모토 세이초도 서술하는 내내 도이 무쓰오의 정신은 멀쩡했다고 말한다. 그는 정신 이상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하룻밤 사이의 삼 십명의 사람들을 무참히 죽였다. 그 과정은 영상이었다면 눈을 감아버릴 만큼 끔찍했다. 이 잔인성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이 책을 추천하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지만, 이런 잔인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잔인함보다 그 잔인함 속에 있는 인간을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라면, 우리 주변의 범죄들에 대해서 좀더 내밀한 시선을 갖추고 싶다면 이 책은 제격일 것이다.
 이 책에서 읽은 충격적이고 잔혹한 장면이나, 책에서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 등은 최대한 언급을 회피하려고 노력한 리뷰다. 그만큼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관심이 가는 분들은 직접 책을 읽고 확인해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논픽션에 관심이 없던 독자라도, 이런 논픽션이 있을 수 있구나,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책을 읽었을 때,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리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책 역시 자발적으로 리뷰를 쓰고 싶게 만드는 책 중에 하나였다. 소설을 뛰어넘는 현실의 범죄, 그 안에는 인간들이 있다. 바로 우리들이 있다. 그걸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독자들은 어서 빨리 서점으로 달려가거나,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 버튼을 누르기를 추천한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독서일 것이며, 마쓰모토 세이초의 진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는 그의 소설 [짐승의 길](마쓰모토 세이초, 북스피어, 2012년 2월)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미스터리의 계보]를 읽고 나서야 작가의 역량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짐승의 길]은 이 작가의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이 책은 논리적인 추리와 피 튀기는 사건의 근원, 우리 일상에 도사리고 있는 심리적인 공포 그 자체를 마쓰모토 세이초의 눈으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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