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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쉬타르의 문 1
랄프 이사우 지음, 유혜자 옮김 / 맑은소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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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베를린의 고대사 박물관에서 어느날 바빌론의 황금상이 사라진다. 쌍둥이 남매 제시카와 올리버는 자신들의 아버지가 도둑으로 몰리고 있다는것을 알게 되지만 아버지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어찌된 일인지 아버지에 대한 기억조차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 때부터 제시카는 베를린에서, 그리고 올리버는 잃어버린 기억들의 세계인 '크바씨나'에서 아버지를 찾는 모험을 벌인다. 모험 끝에 성서에 나오는 악의 제왕이자 바빌론이 지배자였던 '크세사노'가 사람들의 기억을 빼앗아 크바씨나와 인간세상 모두의 지배자가 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사건을 풀어가는 실마리는고대 히브리와 바빌론의 옛 문헌과 경전, 건축물 등에 숨어 있다. 결국 두 사람은 각각의 세계에서 수수께끼를 짜맞춰가면서 사람들이 쉽게 잊어버리곤 하는 기억들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 기억들은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들이기도 하다.
크세사노가 인간들의 기억을 빼앗는 과정이 현실의 베를린에서는 나치즘의 과오와 그로 인한 희생자들을 의도적으로 역사에서 지우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작가가 얘기하는 것은, 그렇게 과거를 잊는다면 또다시 망각의 틈을 비집고 독재자가 나타날 것이며 역사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인간이 잊어서는 안될 기억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문학적으로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재미가 있고 메시지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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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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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가 진지하면서도 경쾌하고, 따뜻하다. 바나나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해체되어가는 자아의 문제, 가족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따뜻한 시선과 희망을 잃지 않는다. 읽는 동안 왠지 마음이 잠시 아파지고, 다 읽고나면 따뜻한 무언가가 상처를 덮어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음이 아파지는건 소설의 줄거리가 슬퍼서가 아니라,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상처가 우리 모두가 하나씩 갖고 있는 오래되고 감춰진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작가 스스로 '시간과 치유, 숙명과 운명에 대한 소설'이라고 후기에 밝혔듯이 갈라진 것과 흩어진 것, 부서진 것들의 치유를 주제로 하고 있다. 사람의 심리나 행동은 언제나 '상투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얼핏 제멋대로인 것 같은 일탈 속에도 희망만 있다면, 결국 본질은 같은 것이 아닐까.
6개의 단편들 모두 재미있다. 또 6개의 단편들이 일관된 흐름과 정서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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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를 수 있는 권리 - 개정판
폴 라파르그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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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둘째 사위인 폴 라파르그가 1883년 옥중에서 쓴 책이다. 새물결에서 펴낸 한국어판은 역자서문과 조셉 야블론스키의 영어판 서문, 1883년 저자 서문, 라파르그에 대한 프레드 톰슨의 전기적 에세이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제껏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라' '노동은 신성하다' 등 '노동神'의 이데올로기에 둘러싸여 노동만이 지상과제인 양 억눌려 살아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진정으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여가라는 역설을 강조하고 있다. 일견 맑스의 노동가치론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주장은 그러나 묵과할 수 없는 진실을 담고 있다. 그 진실은 역자 서문에 쓰여 있듯, 라파르그가 이 책을 펴낸 시기보다 1백년도 더 지난 뒤인 2000년을 살고 있는 우리가 '일 중독 이데올로기'에 파묻혀 살고 있다는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노동이, 노동을 매개로 하는 산업자본주의가, 상표와 이미지라는 현대적인 수단을 동원해 우리의 업무 시간은 물론 일상생활과 가족까지 지배하고 있는 현실 말이다.
한국은 최근 IMF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다. 그 대가는 현대 한국이 경험해 온 그 어떤 경제적 사건보다도 잔혹했다. 임금인상은 억제됐고 세금은 올랐고, 말 그대로 노동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구조조정이라는 세련된 명분 하에 실업의 공포가 온 국민을 짓눌렀다. 지금, 이 판국에(!) 이 책은 현대의 노동자들이 잊고 있는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현란하고 화려한 어투와 과거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모든 자유인들은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는 독특한 역사해석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노동'이라는 말이 우리 머리 속에 불러일으키는 관념에 충격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 중독' '워커홀릭' 등의 단어를 마치 추구해야 할 신성한 것인양 여기게 만드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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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5-03-25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도 이 책 읽었군...
 
자유주의 이후 당대총서 7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강문구 옮김 / 당대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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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나 앨빈 토플러 류의 '자본주의 미래학' 서적을 읽다보면 어느새 갈증이 느껴진다. 이 책은 화려한 수사 속에서 빠져버린 진보에 대한 갈망, 진보적 미래전망에 대한 갈망을 해소시켜주는 책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89년 구 소련의 몰락으로 공식 판명된 사회주의의 몰락-후쿠야마의 표현을 빌자면 '역사의 종언-은 바로 근대 세계를 지배해온 자유주의의 몰락이라는 것이다. 보수주의-자유주의-사회주의는 현상적으로는 갈등관계인 것처럼 비쳐졌지만 실제로는 프랑스 혁명 이후 계속된 '위험한 계급'들의 준동을 막아보려는 장치들이었다는 해석이 새롭다. 이들 사상의 패키지는 본질적으로 '국가발전'이라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유럽 68혁명은 이 자유주의 패키지의 허구성, 특히 구 좌파운동의 허구성을 낱낱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의 종말을 보여준 극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또한 20세기 전반을 장악한 미국 헤게모니의 균열과 자본주의의 경제주기가 장기적으로 하강국면을 맞은 상황에서 불거져나온 것이었다.

68년 지식인들의 눈에 포착된 미국 헤게모니의 균열은 이란의 호메이니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일으킨 도발로 굳어졌다. 저자가 이 두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은 아주 독특하다. 호메이니는 얄타협정 이후 고착화된 미-소의 세계분할지배를 거부하는 것이었으며, 후세인의 도발은 북-남의 본격적인 무력대결이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섣부른 낙관과 비관을 모두 거부하는 불확실성의 시대, 앞으로 약 반세기동안 벌어질 이 변화의 시기에 진보운동은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국가주의', '발전주의'와 절연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어떤 사회운동도 다른 사회운동의 우위에 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되며 다양하게 중첩되는 집단들이 서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집단적 해결책을 모색할 때라는 것.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려하는 이 시점에서 아직 추상적으로 느껴지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진보세력의 변혁전략과는 다른 틀로 사고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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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피리 1 - 마법의 돌
한스 벰만 지음, 이선희 옮김 / 씨엔씨미디어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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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귀'라는 소년이 이상한 돌을 손에 넣게 되고, 할아버지로부터 피리를 배우면서 세상을 여행합니다. 소설은 얼핏 중세 유럽의 시골을 배경으로 한 요정이야기 따위의 동화같으면서, 뒤집어보면 로드 무비식 성장소설의 전형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류의 단순한 성장소설은 아닙니다. 오히려 환상적인 소재들을 동원해 인간의 변화과정과 삶의 의미를 멋지게 은유해놓은 매력적인 '철학소설'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건, 왜 우리나라에는 일본에서 베껴온 듯한 에스에프 귀신얘기 말고, 이런 환타지소설이 없을까 하는 겁니다. 문학사에는 문외한인 제가 알기에도 유럽에는 '아서왕의 이야기'가 있었고, '니벨룽겐의 노래'도 있고, 드라큘라 얘기도 있고, 그런 것들이 현대에 와서는 대서양을 건너가서 '오즈의 마법사'라든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한층 젊어진 모습을 드러내고, 근래에는 해리 포터같은 마법 소년의 모험이야기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독자들을 매료시키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겐 왜 그런 환타지의 장르가 남아있지 않은지 궁금해졌습니다. 우리한테도 고대 건국신화의 명목으로 남아있는 알에서 태어난 왕자 이야기, 하백의 딸 이야기, 약간 미스테릭하고 컬트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금오신화, 어릴 때 만화영화로 재밌게 봤던 도깨비감투, 선녀와 나뭇꾼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근세에 들어와서 이런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나라'들이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요.

독일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의 환타지 장르는 어디로 갔을까 하는 거창한 고민까지 하게 된 건, '돌과 피리'가 해리 포터류의 동화와는 달리 독일의 자연을 소설속에 잘도 버무려놨기 때문입니다. 시대적 배경도, 지리적 배경도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소설을 읽다보면 상상속에 시퍼런 숲과 뒤틀린 나무들, 눈덮인 들판과 벼랑, 동굴속을 흐르는 개울물, 이끼로 덮인 호수 따위가 머리 속에 떠오릅니다.
저도 한번 상상을 해봤습니다. 딸기, 올빼미, 마녀, 도마뱀, 달팽이같은 다종다양한 '생물'들이 나오는 환타지소설을 머리속에 떠올리려 애썼는데, 잘 되지 않더군요. '마녀'니 '달팽이'니 '도마뱀'이니 하는 것은 이미 외국식 생각의 토양에서 나온 것이고, 딸기 또한 전래동화에서 본 적이 없죠. 제가 도시에만 살아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우리나라 자연을 한스 벰만처럼 멋있게 묘사할 문장들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제가 어려서부터 외국 문학을 읽고 자란 탓일 겁니다.
'우리의 뒷세대들도 우리나라 산천을 속속들이 보여주는듯한 재미난 환타지 소설들을 읽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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