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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를 수 있는 권리 - 개정판
폴 라파르그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맑스의 둘째 사위인 폴 라파르그가 1883년 옥중에서 쓴 책이다. 새물결에서 펴낸 한국어판은 역자서문과 조셉 야블론스키의 영어판 서문, 1883년 저자 서문, 라파르그에 대한 프레드 톰슨의 전기적 에세이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제껏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라' '노동은 신성하다' 등 '노동神'의 이데올로기에 둘러싸여 노동만이 지상과제인 양 억눌려 살아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진정으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여가라는 역설을 강조하고 있다. 일견 맑스의 노동가치론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주장은 그러나 묵과할 수 없는 진실을 담고 있다. 그 진실은 역자 서문에 쓰여 있듯, 라파르그가 이 책을 펴낸 시기보다 1백년도 더 지난 뒤인 2000년을 살고 있는 우리가 '일 중독 이데올로기'에 파묻혀 살고 있다는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노동이, 노동을 매개로 하는 산업자본주의가, 상표와 이미지라는 현대적인 수단을 동원해 우리의 업무 시간은 물론 일상생활과 가족까지 지배하고 있는 현실 말이다.
한국은 최근 IMF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다. 그 대가는 현대 한국이 경험해 온 그 어떤 경제적 사건보다도 잔혹했다. 임금인상은 억제됐고 세금은 올랐고, 말 그대로 노동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구조조정이라는 세련된 명분 하에 실업의 공포가 온 국민을 짓눌렀다. 지금, 이 판국에(!) 이 책은 현대의 노동자들이 잊고 있는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현란하고 화려한 어투와 과거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모든 자유인들은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는 독특한 역사해석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노동'이라는 말이 우리 머리 속에 불러일으키는 관념에 충격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 중독' '워커홀릭' 등의 단어를 마치 추구해야 할 신성한 것인양 여기게 만드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