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놈 - 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
매트 리들리 지음, 하영미 외 옮김 / 김영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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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공부를 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나는 '비교적' 과학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관심의 이유는 지적 호기심, 혹은 지적 허영심, 쉽게 말하면 '알고 싶은 게 많아서' 이고, 어렵게 말하면 내가 물질 중심의 사고관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이 모든 이유들을 한마디로 하면 '알고싶어서'다.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는 것.

올해에는 특히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소식들이 많았다. 내 호기심을 자극한 첫번째 것은 인간게놈지도가 완성됐다는 것. 인간게놈지도를 완성시킨 것은 두 집단인데, 하나는 '모험(벤처)적인 과학자' 크레이그 벤터가 이끄는 셀레라 제노믹스라는 '기업'이고, 또 하나는 '공리적인 과학자' 존 설스턴이 이끄는 HGP(인간게놈프로젝트)라는 단체다.

호기심을 부추긴 두 번째는 '광우병'이다. 신문 지상을 장식하는 프라이온이라는 이상하기 짝이없는 단백질, '변형프로이츠펠트 야코프병'이라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질병의 뉴스를 수시로 듣다보니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매트 리들리의 <게놈>에는 '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아주 재미있고, 잘 쓰여진 책이다. 알다시피 인간의 염색체는 23쌍인데 그 중 성염색체를 제외한 22쌍의 염색체마다 지능, 학습, 우생학, 자유의지 따위의 주제를 결부시켜서 인간-유전자-환경의 문제를 설명한다.

영국 텔레그라프지의 과학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는 리들리는 정말 쉽고도 흥미진진하게 우리 유전자의 속성과, 그것들이 갖고 있는 의미와, 그 귀염둥이들에 대한 탐구의 역사를 설명한다. 리들리라는 유전자덩어리가 얘기한 것을 딸기라는 다른 개성을 가진 유전자덩어리가 해석한바에 따르면, 전자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결정론을 거부하지 말라. 인간들은 지난 세기의 전반기에 나치스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과민반응의 결과, '유전학적 결정론'을 극단적으로 거부해왔다. 환경결정론에 기대어 '부모 탓, 교육 탓, 사회제도 탓'을 하면서도 희한하리만치 유전적 결정론을 거부해왔는데, 우리가 거부할 것은 '결정론'이 아니라 '숙명론'이다.

리들리의 비유 하나. 솥에 국을 끓이면서 비소를 넣으면 독이 되지만 그렇다고 요리하는 행위 자체를 독약 취급하면 안 된다. '요리사가 쓰면 식칼, 살인범이 쓰면 흉기' 식으로 '도구 무책임론'을 주장하는 것 같기도 한데, 나는 기본적으로 리들리의 생각에 동의한다. 과학만능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은데, 그렇다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동차니 세탁기니 보일러니 하는 것들도 모두 포기해야 되지 않느냔 말이다.

어쨌거나 인류는 그동안-적어도 한 200년 전부터는- 모르는 것들을 알아내기 위해, 특히 과학의 영역에서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애를 써왔다. '게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유전자가 갖고 있는 의미와 그것들의 기능, 생성과정을 알기 위해 똑똑한 과학자들이 얼마나 수고를 해왔나 하는 것이다. 인간은 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다. 나는 그 성과를 고맙게 생각하고, 그것들을 좋은 일에 자꾸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우병이나 헌팅턴병에 대한 연구과정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내 유전자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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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차 대여행 1 - 독일 아름드리 어린이 문학 8
미카엘 엔데 지음, 선우미정 옮김 / 길벗어린이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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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봤던 <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Jim Knopf und Lukas der Lokomotivefhrer)>가 다시 출간됐다는 것은 나에게는 '복음'이나 다름없는 소식이었다.
엔데는 <모모>나 <끝없는 이야기>로 아주 유명하지만 이상하게도 <짐 크노프>는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운이 좋아서였는지, 엔데의 첫 작품인 <짐 크노프>를 먼저 읽었다. 1부는 원제 그대로 <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였고, 2부는 <짐 크노프와 13인의 악당>이었는데 모두 두 권씩으로 돼 있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몇번을 들춰가며 보고, 삽화를 들여다보고, 머리와 가슴과 손과 간과 내장에까지 꼭꼭 간직해놨다. 그 뒤로 <모모>도 보고 <끝없는 이야기>도 봤는데 둘 다 아주 재미있었지만 <짐 크노프>만큼은 못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책을 보니, 제목에서부터 의역을 해서인지 내가 생각했던 느낌이 나지를 않았다. '알퐁소 12시15분전 임금님'은 그냥 '12시15분전 임금님'으로 돼 있고(나는 전자가 훨씬 멋있다고 생각한다) , 명백하게 중국을 상징하는 것이 분명한 리씨 공주의 나라는 '색동나라'로 돼 있다.
외국어를 되도록 안 쓰는 것도 좋지만,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절대로,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고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땅이름이건 사람이름이건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데...더우기 판타지 소설에서 이름을 다 바꿔버리면 어떡하냐구...

내가 봤던 옛날 그 책은 보라색의 얇은 표지에, 당시로서도 굉장히 엉성한 편집이었다. 번역은 아마도 독일문학 번역가로서 제일 오래된 축에 속하는 차경아씨가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판본은 우리 집 책꽂이에서 밖에는 본 적이 없다. 왜 거기에 그 책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그 책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만 아는' 소설이었다.
나는 대학에 들어가서까지 엔데의 책을 봤는데, <마법학교>라든가 하는 별볼일 없는 책가지는 지금도 갖고 있다. 그렇지만 대학시절에는 어쩐지 좀 시들해졌다. 이유는 여러가지였을 것이다. 이미 유명한 작품들은 다 번역된 뒤라서 나중에 출간된 것들은 비교적 소품 혹은 습작 수준에 불과한 것들 뿐이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다. 겉멋이 한껏 들려 있던 대학생의 눈에 시큰둥하게 보인 탓도 있을 것이고.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은 <마법의 술>로 기억되는데, 책 앞머리의 소개글이 참 웃겼다. 천사와 악마, 선과 악의 대결은 판타지의 기본 구조다. 그런데 서평을 썼던 우리나라의 어떤 이는 이 동화책을 가리켜서 '공산주의라는 악에 대항에 맞서 싸우는 민주주의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희한뻔뻔한 분석을 붙여놨다.

독일(서독) 사람인 엔데가 정말로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려는' 문화투사의 사명감을 갖고 썼는지, 아니면 우리나라의 어떤 무식이가 오바를 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엔데의 책을 여러권 읽으면서도 '공산주의 대 민주주의의 싸움'이라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냄새는 한번도 맡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튼 그 서평 때문에 곰팡이 낀 기분으로 책장을 들춰야 했던 <마법의 술> 이후로 나는 엔데를 '끊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 속에서 <짐 크노프>는 '꼭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책' 목록의 우선순위를 항상 차지하고 있었다.

농담따먹기처럼 종종 인용되곤 했던 '자석으로 만든 영구기관', 조그만 섬나라에서 시작해 바다밑 대륙과 동방박사 이야기로 이어지는 조밀한 구조, 그리고 '어떤 동물과도 닮지 않은 것이 용(龍)이야'라고 했던 그 이야기, 엄마 기관차 엠마와 어린 기관차 몰리... 안타깝게도 이번에 나온 책은 어린이용으로 돼 있어서 그 때 그 책 그 감동을 다시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제대로 된 <짐 크노프>를 꼭 다시 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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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트마 간디 - Gandhi
요게시 차다 지음, 정영목 옮김 / 한길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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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트마 간디>. 이름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인물이다. 책을 읽는 사이사이, '읽고 나면 글로 남기고 싶은 감상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마지막장을 덮고 난 지금 오히려 내 머리속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내가 최근 세운 계획 중의 하나는 이 사람에 대해 '이해'를 해본다는 것도 들어있었다. 850쪽이 넘는 긴 전기를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사실 의무감을 가지고 책장을 넘겼었다. 지난해 인도史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간디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지만, 사실 내가 '생각'할 거리들이 별로 없었다. 이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단편적인 몇가지 어휘들, '비폭력' '스와라지' '스와데시' 같은 것들 뿐이었으니까.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책을 읽었다. 재미있어서 책장을 마구 넘긴 적도 있었고, 대충대충 훑어넘긴 부분도 있었다. 책의 절반까지 오는 동안 내가 받았던 느낌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비폭력, 그러나 '무저항'은 아니다. 오히려 철두철미한 저항이되, 그 방식은 완전한 '비폭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나의 오른 뺨을 치면 왼뺨도 대주어라.
인도인 요게시 차다가 쓴 이 전기는 저자의 설명대로, 평전 형식으로 돼 있다. 연대기 순으로 기술되어 있어 간디의 드러난 행적은 쉽게 알수가 있다. 또 자료를 충실하게 언급하고 간디 주변 인물들-네루 진나 파텔 같은 정치가들-의 성격과 취향까지 생생하게 묘사해놓은 것은 큰 장점이다.

그런데도 나는 간디라는 인물을 이해할 수 없었고, 다 읽고 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금욕과 채식에 대한 무지막지한 집착, 성욕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 도대체가 '정치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정치행보들. 브라마차리아(완전무결, 욕망의 완전한 절제)를 위한 '동침 실험'(간디는 자신이 성욕을 완벽히 제어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기 위해 여제자들은 물론, 손녀와도 한 이불을 덮고 벗은 몸으로 잠을 잤다)이나 양의학을 모두 부정한 것, 단식에 매달리는 것 등등.
종교인, 사상가, 철학자로서가 아닌 정치가로서의 간디는 요즘 사람 혹은 인도인이 아닌 사람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수 밖에 없는 노선도 많이 걸었던 모양이다. 영국이 약할 때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이런 걸 '고양이 쥐 생각'이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악어의 눈물'이라 할 수도 없고. 쥐가 고양이 생각해준 거라고 해야 하나?

영국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영국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줘야 한다, 그러니 영국을 위해 참전을 하자. 간디는 실제로 이런 주장을 했었다고 한다. 또 2차 대전 중에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히틀러의 탄압을 몸으로 받으라, 가스실로 보낸다면 가스실로 가라, 죽인다면 죽어라'라는 글을 썼고, 남아공의 감옥에 갇혀있었을 때에는 영국인 총독을 위해 신발을 만들어 출옥 뒤 선물을 했다.
그러나 책의 3분의2정도를 읽었을 때, '이해할 수 있든 없든 이 사람을 존경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리를 위해(진리에는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이 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나아가는 사람. 언제나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 영적인 기운과 범접할 수 없는 인격으로 결국은 주변을 감복시키는 사람. 무언가를 위해 100% 헌신하는 사람은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다(너무 극단적인 얘기인가?)

책 자체의 섬유질은 치밀한데, 간디가 어째서 그같은 사상을 갖게 됐는가 하는 부분은 설명이 부족하다. 어찌 보면 그것은 저자가 인도인이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인도인이 아닌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힌두교의 정서와 문화, 역사적 맥락이 쉽게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열정을 가지고 투신하는 사람'을 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무리를 해서라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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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unny Baby 1
김지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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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주 무서운 얘기 하나 해줄까? 내 선배 부인 얘긴데, 실화야. 쌍둥이를 낳고 두달만에 임신이 됐는데 또 쌍둥이였대. 무더운 여름인데 집에 에어컨이 없었던 거야. 두번째 쌍둥이가 태어나니까 남편의 눈길이 싸늘해지더래. 집안은 네 아이로 와글와글. 이 누나의 친정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시어머니는 와병중. 그런데 하필 옆집이 공사중이라 여름에 창문도 못 열어놓고, 방 두개짜리 좁은 집에서...'

남편이랑, 아내랑 여름밤 에어컨 바람 시원하게 틀어놓고 마루에 드러누워 나누는 납량특집 엽기괴담의 내용입니다.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쌍둥이 남자아기들을 키우는 종민이와 수진이, 아직 학생티를 벗지 못한 '어린' 부부에게는 임신, 출산, 더위가 그야말로 납량특집이지요. 간담 서늘해지는 '쌍둥이 괴담'을 듣고 잔 다음날, 수진이는 감기에 걸려 오한에 시달립니다.

마이 퍼니 베이비. '웃기는 우리 애들' 정도로 번역하면 될까요? 청춘남녀의 사랑과 결혼을 그린 '마이 퍼니 레이디'의 후속편이라고 하는데 전편은 아직 못 봤습니다.
만화가 김지윤은 아기를 낳아본 여자가 틀림없습니다. 임신, 출산, 육아의 일들을 어쩜 그렇게 우스우면서도 리얼하게 그려놨는지.

'오빠(남편), 나만큼 배 많이 나온 여자 봤어?' '아니, 못 봤어'. 유난히 배가 많이 불렀다는 말을 들었던 저로서는, 이해하고도 남는 대화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배가 많이 나왔나 하는 작고도 신기한 고민. 수진이의 질문 이면에 담긴 감정까지 그대로 전이가 되더군요. 수진의 질문에 답하는 종민의 머리 위에는 생각풍선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데 저 배가 들어가기는 들어갈까...' 어쩜 제 남편도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요.

너무 재미있습니다. 왜 재미있냐면, '사실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아기와 나, 아따아따, 아기는 외계인 등등 아기가 나오는 만화들(주로 일본만화들)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코믹진지애정어린 만화는 처음입니다. 요즘 만화들을 보면 대학생 고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 초등학생들이 등장해서 연애한다고 설치던데(?) 결혼까지 한 주부, 애기낳고 대학 졸업해서 직장 취직해서 겪는 일들을 소재로 삼아 심금을 웃기는 명작으로 만들어놓다니.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다 찾아봐야겠습니다. 아기 키우는 주부라면 기필코 읽어야할 필독서 명단에 올려놔도 될 것 같습니다. 아기 키우는 아빠들도 물론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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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제국 - 서양인의 마음속에 비친 중국 이산의 책 13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이산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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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제국>. 서양이 중국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 금세기 이전까지 여러 차례의 접촉(주로 정복과 관련있는)을 통해 형성된 중국의 모습은 바로 저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의 중국사학자 조너선 스펜스의 접근 방법은 늘 독특하면서도 재미있습니다. <현대 중국을 찾아서>는 정통 역사책 글쓰기를 보여주는 반면 또다른 저술인 <강희제>는 황제의 회고록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양쪽 모두 아주 훌륭합니다.

<칸의 제국>은 마르코 폴로에서부터 보르헤스까지 서양인들이 중국에 대해 적어놓은 텍스트들을 꼼꼼이 분석해서 '서양인의 마음 속에 비친 중국'을 설명합니다. 마르코 폴로 이후 서유럽의 탐험가들과 예수회 선교사들, 중국을 방문한 여성 관찰자들,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을 지켜본 에드가 스노 등을 통해 서양인들의 '중국관'을 살펴보는 거죠.
또한 '시누와제리'로 표현되는 프랑스의 이른바 '이국정서', 차이나타운으로 대표되는 미국내 중국인 소사이어티 등에 대해서도 찬찬히 뒤를 밟아갑니다.

사실 우리는 중국과 역사적으로 밀접하다못해 찰싹 붙어 있어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정작 '중국관'에 있어서는 그다지 정리되지 못한 상태인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 중국을 중국이라고 부르지 않고 '중공'이라고 불렀던 것만 떠올려봐도 알 수 있죠. 그래서 '어느날 갑자기' 중국이란 이름을 다시 쓰게 됐을 때 생소하고 신비스런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역사시간에 그렇게 맣이 들었던 이름인데도 말입니다.

'쿠빌라이'로 상징되는 정복자, 화려한 도자기와 정원, 차와 전족 같은 중세의 이미지, 마오쩌둥과 대장정에 대한 환상과 뒤이은 비판, 그리고 20세기 후반 이후 미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Chinaphobia 까지, 중국에 대한 서양인들의 생각은 극단과 극단 사이에서 겹치고 구부러지고 흔들립니다. 그 '중첩과 왜곡의 역사'를 좇아가는 스펜스의 발걸음은 진지하면서도 경쾌하달까요, 한문장 한문장 때로는 시처럼 때로는 소설처럼 흥미를 자아냅니다.
이 책이 더욱 값진 것은, '중국관의 역사'를 찾는 과정에서 폴로에서 보르헤스로 이어지는 서양의 지성사까지 섭렵할 수 있게 해놨다는 점입니다. 골드스미스, 마크 트웨인, 마르크스와 에즈라 파운드, 몽테스키외 등등 쟁쟁한 인물들이 모두 중국에 대해 한 보자기씩 벌려놓은 이야기들을 줄줄 풀어놨습니다.

일단 책은 재미있게 읽었는데...앞서도 말했지만 우리의 중국관이라는 문제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내 화교 탄압에서부터 조선족 문제까지- 우리도 가리봉동 '연변타운'을 포함하는 중국관의 문제와 우리 스스로의 역사인식을 다시 세워야 하는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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