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 - Mi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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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스트로 거리의 시장 

   하비 밀크에 관한 영화 <카스트로 거리의 시장>은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자본론>, 오손 웰즈 <로미오와 줄리엣> 등의 목록과 같이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의 "불가능 프로젝트"로 알려져왔다. 지금은 사라진 영화잡지 『KINO』 1997년 6월호에 보면 <16명 감독의 이루지 못한 꿈의 프로젝트>에 대한 특집 기사가 실렸는데, 그 중 한 페이지가 구스 반 산트의 영화에 할애됐다. 1997년에도 그는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10여년간의 세월을 고군분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2008년에 이르러서야 이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이 든다. 그가 이 영화를 끝으로 다시는 영화작업을 하지 않거나, 만들더라도 범작에 가까운 영화가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기우' 따위는 던져버리고 '지금'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구스 반 산트의 필생의 역작인 하비 밀크에 관한 영화 <밀크>는 20여년의 시간동안 숙성된 그 기대치에 맞게 나온 영화다. 

 

2. 실화 

   하비 밀크(Harvey Bernard Milk)는 1930년 5월에 태어났다. 뉴욕에 살던 회사를 그만두고 샌프란시스코로 옮긴다. 그 자신이 게이였던 그는 게이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시의회 선거에 뛰어든다. 3번의 낙선끝에 기적적으로 당선한 그는, 동성애자의 권리를 제한하려는 '6번 법안'을 막아낸다. 그러나 1978년 11월 동료 시의원 댄 화이트에게 저격 당해 생을 마감했다. 영화 <밀크>는 정치인 하비 밀크의 인생을 그렸으며 사실과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3. 정치인 

   하비의 모습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그는 정치와 대중이 어떤 속성을 가졌는지 정확히 파악한다. 그는 카스트로 거리의 동성애자들을 하나의 세력으로 규합하여 그들의 힘을 보여준다. 연대와 불매라는 강력한 힘을 발휘해 전체로서의 그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세력으로 규합한다. 시의원이 돼서도 그는 정치적 쇼맨쉽을 어김없이 발휘한다. 6번 법안의 조례가 통과하자 분노한 동성애자들의 행진을 교묘히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능력을 광고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정치적' 거짓말과 협박 또한 서슴없이 내뱉는다. '정치'라는 것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행위 아닌가? 그는 영락없는 정치인이다. 

 

4. 게이 스테레오 

   하비의 모습이나, 그의 주변을 가득 메운 게이들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게이'들의 모습이 나온다. 다른 감독이었다면, 이같은 묘사에 비판이 갈 수도 있었겠지만, 구스 반 산트 역시 '오래전에 드러낸' 게이 아닌가. 오히려 이런 스테레오 타입의 묘사는 그가 취재한 '실제 모습 그대로' 그렸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귀여운 남자들을 보면 음탕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하비의 모습이나, 그의 난삽한 사생활은 그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가 간디같은 인물이었다면, 우리는 그를 존경했을지언정, 이렇게 친근감있게 바라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 또한 지루했겠지. 

 

5. 희망과 삶

   이런 불완전한 사람이 정치로 역설하는 것은 의외로 소박하다. 소박하지만 당연한 것. 그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 말이 어디 한 번 제대로 실천된 적이 있었나? 기독교 원리주의의 시선으로 자신들과 다른 소수자들은 모두 '악의 세력(evil forces)'이라 거리낌없이 지껄이는 70년대 미국. 하비가 얘기한 것은 간단했다.  

   
 

지금은 게이들에 대한 탄압이지만, 내일이면 흑인, 장애인, 노인, 동양인의 문제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즉, 6번 법안과의 싸움은 '게이'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입니다. 희망이 없으면 ‘우리’는 무너집니다. 희망만 갖고는 살아갈 수 없지만 희망이 없으면 삶은 가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들에게 희망을 줘야 합니다.

 
   

  하비의 저 말은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타자를 몰아내는가. 우리들이 기를 쓰고 하루를 버텨내는 것도 저 타자에 속하지 않기 위해서, 힘있는 기득권에 속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것 아닌가. 하비의 말대로 "희망만 갖고는 살아갈 수 없지만 희망이 없으면 삶은 가치가 없다." 우리의 삶은 희망이 있는지, 가치가 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6. 촛불 

   그는 죽었다. 그는 죽었지만, 그가 죽음으로써, 그가 끊임없이 주장해왔던 동성애자 권리문제가 수면위로 급부상했다. 그가 죽은날 3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행진했다. 하비 밀크는 죽었지만, 그의 뜻을 간직한 3만명의 시민들은 또 다른 하비 밀크가 될 것이고, 그들은 그렇게 늘어날 것이다. 

   1978년 11월 27일의 촛불은 아직도 꺼지지 않고 제 몸을 태우며 빛을 내고 있다. 우리의 촛불 또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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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3-08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군요.
리뷰를 읽으면서 삶 자체가 파란만장 했겠구나 라고 느끼는 것은 저 만이 생각일까요?

Tomek 2010-03-08 18:28   좋아요 0 | URL
실제로 파란만장했지요. 그저 편하게 애인과 알콩달콩 살 수도 있었는데, 그 대책없는 낙천성과 분노가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Alice in Wonderland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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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일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난 이 영화가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의 영화 버전인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야 깨닫게 됐다. 이 영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를 경유한 그 후속편이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이 영화는 1991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들었던 『피터 팬(Peter Pan)』의 속편격인 <후크(Hook)>의 경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2. 성장담 

   원작에서는 앨리스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제대로 된 원작을 읽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가 읽은 판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린 소녀의 백일몽같은 이야기에 굳이 시대상황을 넣을 이유는 없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훌쩍 커버린 앨리스(미아 와시코우스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가 다루는 시대는 빅토리아 시대다. 이 기간에 영국에선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수많은 식민지를 점령했다. 귀족들의 권위를 나타내는 수많은 격식과 그 이면에 드러나는 난삽한 모습들이 앨리스의 눈앞에 펼쳐진다. 그녀 역시 관심없는 남자와의 청혼으로 자신의 인생을 저당잡힐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숨막힐듯한 세상에서 그녀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영화는 현실에서 머뭇거리는 앨리스를 부쩍 자라게 할 장을 마련한다. 현실에서는 자신이 결혼할 상대를 결정할 수 조차 없는, 시대의 분위기에 짓눌린 피동적인 소녀이지만, 원더랜드에 들어가고 나서는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을 한다. "이건 꿈이야. 꿈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3. 신경쇠약 직전의

   처음 원작을 접했을 때 '이상한 나라'에 사는 존재들에 대한 느낌은 '맛이 갔다'는 느낌이었다. 모두들 비이성적인 행동과 말을 해대는 말 그대로 '이상한' 존재들. 하지만, 팀 버튼이 그린 이상한 나라(영화에서는 '원더랜드'와 '언더랜드'를 혼용하며 사용하고 있다)의 존재들은 맛이 갔거나 미쳤다기 보다는 '히스테리컬'하게 보인다. 영화상에서 보여지는 내용이 붉은 여왕(헬레나 본햄 카터)이 하얀 여왕(앤 해서웨이)을 물리치고 공포 정치를 펼치는 것이라 그런지 앨리스가 처음 만난 하얀토끼나 쌍둥이 형제들의 모습이나, 모자 장수(조니 뎁)와 그 일당들에 대한 묘사는 '분노' 때문에 정신이 홱 가버렸거나, 갑자기 들이닥치는 '공습'때문인지 '신경쇠약 직전'의 모습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는 전쟁에 대한 '공포'가 깃들여 있고, 이 나라의 존재들은 그 공포에 거의 정신이 나가 있는 상태다. 

 

4. 기시감(旣視感, Déjà Vu) 

   팀 버튼의 영화를 계속 봐왔던 사람들이라면, 영화를 보면서 익숙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통로의 나무는 <크리스마스의 악몽>과 <슬리피 할로우>에서 본 나무와 같다. 하트 기사(크리스핀 글로버)의 등장은 <슬리피 할로우>의 호스맨이 생각나고, 모자 장수의 마지막 춤은 <비틀 쥬스>의 비틀 쥬스를 연상시키며. 하얀 여왕은 <슬리피 할로우>의 아보카드의 모친(리사 마리)이 떠오른다. 시종일관 "목을 베라"는 붉은 여왕의 명령은 <비틀 쥬스>, <크리스마스의 악몽>, <화성침공>, <슬리피 할로우>, <스위니 토드>의 '잘린 목'들이 연상되고, 아버지에 대한 이해는 <빅 피쉬>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떠오른다(물론 이것도 그가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나타난 것이다. 이전까지 그의 영화에서 '아버지'란 존재는 부재 혹은 제거의 대상이었으니까). 이런 익숙한 이미지들의 나열로 영화는 루이스 캐럴의 비전과 팀 버튼의 비전이 합쳐지는 결과를 낳는다. 이 결과가 훌륭한지는 모르겠다. 새롭다기 보다는, 너무 '안전하게' 익숙하다고 할까? 조금 더 팀 버튼스럽게 밀고 나갈수도 있겠지만, 엄청난 제작비와 전연령 등급의 제한은 그에게도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했을 것이다.

 

5. 붉은 여왕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앨리스도, 모자 장수도 아닌, 붉은 여왕이다. 그녀의 대사는 그리 많지 않은데, 그나마도 "목을 베라(Off the head)!"는 말 뿐이다. 하지만, 이 짧은 말 속에서 붉은 여왕의 도도함, 냉혹함, 우아함, 행복감등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목을 베라(Off the head)!"는 말보다 "저들의 목을 베라(Off the heads)!"라고 말할 때 그녀의 행복지수가 조금 더 상승함을 느꼈다면, 그걸 받아들이는 내가 이상한 걸까? 

 

6. 『나니아 연대기』를 경유한 성장담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재바워키와 싸운 용감한 기사는 앨리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기사를 앨리스로 만들었다. 앨리스는 재바워키와 싸움으로써 원더랜드의 판세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현실 세계에서 가상 세계로 들어가 그 세계의 변화에 일조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나니아 연대기』에서 접했던 내용이다. 얼핏보면 뜨악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앨리스의 성장담이라는 내용면에선 잘 각색한 부분으로 느껴진다. 그녀는 이 싸움으로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선택에 따르는 것'이란 간단하지만 실천하기 힘든 명제를 온몸으로 체득하니까. 원더랜드에 평화를 가져온 앨리스는 이제 진짜 '원더 랜드'로 모험을 떠날 것이다. 

 

7. 달콤쌉싸름한 결말

   현실로 돌아온 앨리스는 자신을 짓누르는 영국을 벗어나 '원더 랜드'로의 모험을 떠난다. 그녀의 목적지는 '중국'이다. 그녀는 중국에 가서 어떤 무역을 할까? 그녀가 아편전쟁에 연루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만, 역사는 이미 기록되었다. 현실의 앨리스는 자신의 꿈을 펼치지만, 그녀의 무대는 '원더 랜드'로 시작해 '엠파이어'에서 끝낼 것이다. 이 영화가 마냥 달콤하지만은 까닭이다. 이런 결말도 '팀 버튼'스럽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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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하지만 아름다운, 기쁜 우리 젊은날
젊은날의 초상 (HD텔레시네) - [할인행사]
곽지균 감독, 이혜숙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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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며 

   곽지균 감독의 <젊은날의 초상>을 2010년에 본다는 것은 이 영화가 개봉한 1991년에 보는 것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이문열 작가의 원작소설은 1981년에 출간됐지만, 이야기의 시대는 (정확히 지칭하지 않지만 미루어 짐작해보면) 1960년대 말이다. 동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버린 시절을 회한에 차 이야기한다. 그에 반해 영화는 80년대를 이야기한다. 1991년은 80년대를 '추억'하기에는 너무 빨랐고, 아직 그 부채도 청산하지 못한 시기였다. 오히려 200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1. 소설  

   소설 『젊은날의 초상』은 총 3부로 나뉘어 있으며 소설은 주인공의 심적 상태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1부「하구(河口)」에서 '나'는 철저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주변인물들을 관찰한다. 강진(江盡)이라는 지명처럼, 이곳은 낙동강 하류와 남해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이다. 강에 머무르지도 못하고 바다에 나아가지도 못하는 이도저도 못한 인생. '나'는 이곳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려고 하고, 검정고시와 대학입학은 그에게 하나의 목적이자 목표가 된다. 

   2부「우리 기쁜 젊은날」에서 '나'는 그토록 그리던 대학싱이 됐으나, 대학 역시 자신의 이상과 합치하지 못함을 느낀다. 문학에의 열정, 이성과의 연애, 치기어린 토론과 술자리 등 그 모든 것에 열정적으로 쏟아부었으나 내부에 자리잡은 허무함은 점점 더 커지기만 한다. 문학서클에서의 제적과 혜연과의 이별, 같이 다니던 동기 김형(金兄)의 사고사와 과 학우들과의 '악의 서린' 논쟁으로 '나'는 학교를 떠난다. 학교는 내 신분을 높이는 도구였을 뿐이지, 내 허무를 채워줄 목표는 되지 않았다.

   3부「그 해 겨울」에서 '나'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 시골 객주집 방우(머슴) 생활을 한다. 그곳에서 일하는 아가씨들과 지내다가 '나'는 문득 바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객주집을 나온다. 바다로 가는 도중 수상한 칼갈이 사내를 마주치지만, 별일 없이 지나간다. 우연히 먼 친척뻘되는 정님 누님을 만나고 그곳에서 하루밤을 지낸다. 추운 겨울, 동사할 뻔한 '나'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유언장을 쓴다. 그러다 다시 칼갈이 사내를 만나는데, 그는 누군가를 죽이러 바다에 간다고 했다. 바다에 도착하자 이 모든 방황은 내안에서 벌어지는 모순임을 깨닫고, '나'는 이 모든 방황을 멈추기로 결심한다. 내 옆에는 칼갈이 사내가 있었고, 사내 또한 복수를 포기하고 칼을 바다로 던진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늦겨울의 날씨는 풀리고 있었고, 곧 봄이 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는 '젊음'의 방황을 하지 않을 것이다.  

 

 

2. 영화 

   영화는 주인공 영훈(소설에서도 '영훈'이 주인공 이름이지만, 전체를 통틀어 딱 한 번 불리고 나머지는 '이형[李兄]'으로 불린다)이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과정을 제외한 프롤로그를 제외하면(약 5분정도의 길이로 그 사이에 크레딧이 올라온다) 크게 4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영훈의 대학 시절을 그리고 있고, 2부는 영훈의 고향 먼친척의 장례식, 3부는 영훈의 객주집 방우 생활, 4부는 겨울 여행을 그리고 있다. 소설과 서사를 비교해보자면, 「우리 가쁜 젊은날」과 「그 해 겨울」부분만을 다루고 있다. 소설과 다른 점이라면, 소설에서는 가볍게 지나갔던 여자들과의 관계를 영화에서는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80년대의 시대상황과 관찰자로만 머무는 영훈의 괴로움과 고뇌를 그리고 있다. 그의 고뇌와 방황은 현실도피처럼 보이지만, 곽지균 감독은 영훈의 방황을 '첫사랑에 대한 슬픔'으로 보이게 하고 있다.  

 

 

2-1. 대학 

   <대학>파트에서 영훈(정보석)은 동기인 하가(조재현)와 김형(이희도)과 늘 거의 같이 지낸다. 김형은 대학에 들어와서 짱돌을 들고 투쟁의 선봉에 섰지만, 그의 부모가 그를 억지로 군대에 보낸 후 지독한 허무주의에 빠졌다. 그의 부모는 그의 유학을 준비하고 약혼자까지 "미리 준비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자기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는 주변인의 삶을 걷는다. 그에 반해 하가는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와 영훈이 속해있는 문학 서클 또한, 투쟁과 민중에 귀속되어 있다. 영훈은 문학이 도구가 되는 현실을 견디지 못해 서클을 나온다. 어느날 술값을 마련하기 위해 영훈이 한 여학생에게 돈을 빌린다. 그녀의 이름은 혜연(옥소리)이고 영훈과 혜연은 서로 사귀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훈과 혜연은 서로 다른 계급과 가치관으로 서로 어긋나게 되고, 결국 헤어지고 만다. 삶의 허무를 견디지 못해 김 형은 학교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고, 시위에 앞장섰던 하가는 전경에 쫓기다가 김 형이 뛰어내린 그곳에서 "폭력경찰 물러가라"는 말을 하고 떨어져 죽는다. 그일이 있고 학교엔 휴교령이 내렸고, 영훈은 학교를 떠나 고향으로 간다. 

 

왼쪽부터 하가(조재현), 영훈(정보석), 김형(이희도). 소설에서 하가(河哥)와 김형은 주인공 '나'에 대해 별다른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이 아니었으나, 영화에서는 큰 영향을 끼친다. 다소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하가는 이상의 고민을, 김형은 현실의 고민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죽으면서 영훈은 더이상 학교에 있을 의미를 찾지 못한다. 

 

문학 써클에서 영훈이 탈퇴하는 이유는 소설과 거의 같다. 차이가 있다면, 소설에서는 개인적인 이유로 써클 회원들을 한껏 조롱하다가 쫓겨난 반면, 영화에서는 문학의 도구화에 반대하며 탈퇴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80년대 대학가 축제의 광경은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위 장면 오른쪽 앞부분에는 대학생들이 투쟁가를 부르고 있고, 그 뒤로는 축제에서 '퀸'으로 뽑힌 여학우들의 카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다. 낭만과 투쟁이 한데 어우러진 80년대 축제의 기이한 공존이다. 

 

학내 투쟁이 벌어지고 있던 때, 영훈은 창문 안 프레임 안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는 아직 현실의 모순에 대항하지도, 자기 내부의 모순에 대항하지도 않고 어정쩡하게 지켜보고만 있다.

 

혜연과의 만남은 영훈에게 있어 숨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었으나, 그 공간은 도피처 이상은 아니었다. 그들은 어린왕자와 여우의 관계처럼 서로를 길들이기를 바랐으나, 영훈의 과도한 참견과 남자로써의 알량한 자존심은 그들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 결국 몇 번의 분탕질로 그들의 관계는 더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이들의 사랑이 시작되기 전, 이상한 인서트 컷(플래시백)으로 인해 영훈과 혜연의 문제는 혹시 다른 여자때문이었는가 하는 여지를 남긴다. 그래서 앞으로 시작되는 영훈의 방황은 80년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대학생)이 가지는 이상과 현실의 고민이 아니라, 혹시 첫사랑에 대한 방황과 여정이 아닐까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게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인서트 컷의 비밀은 <고향>파트에서 밝혀진다.

 

 

2-2. 고향 

   <고향>파트는 소설에 전혀 없는 부분이다. 이문열 작가의 자전소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에서 차용한 부분인데, 이 부분은 <대학>에서 뜬금없이 나왔던 인서트 컷과, 후에 <겨울 여행>에서 정님(이혜숙)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영훈은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서 이상한 사내(전인택)를 보지만, 곧 잊어버린다. 영훈은 고향의 먼 친척뻘되는(아마도 종가집으로 추정)분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그는 그곳에서 어렸을 때부터 따랐던 정님 누님(이혜숙)을 만난다. 영훈은 정님을 짝사랑했으나, 정님은 학교의 국어선생님과 사랑에 빠졌고 영훈은 국어 선생님을 증오한다. 그 후 정님은 혼전임신으로 종가집에서 쫓겨났으나, 아버지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 하지만 문중 어른들은 정님을 쫓아내려하고, 그 와중에 정님은 영훈을 보고 황급히 달아난다. 장례가 끝나고 영훈은 고향을 떠난다. 

 

눈 앞에서 영훈은 정님을 놓친다. 정님이 영훈을 보고 놀라 달아난 것을 보면, 이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소나기』이후로 누구나 꿈꾸었던 비오는 날, 첫사랑과의 달콤한 한 때. 하지만, 영훈의 기억속에서 비는 정님과의 이별을 뜻하기도 한다. <대학>파트의 초반 인서트컷은 영훈이 정님을 잊지 못하고 계속 마음속에 묻어놓고 살아왔음을 설명한다. 

 

장례행렬의 깃발은 학내 투쟁의 깃발과 중첩된다. 영훈은 깃발을 올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든 죽음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장례는 김형과 하가의 죽음 또한 떠올리게 한다. 영훈은 그렇게 점점 허무주의에 빠진다. 

 

 

2-3. 객주집 

   이 부분은 소설 「그 해 겨울」에서 약 10여 페이지에 기술한 짧은 내용을 각색한 부분이다. 영화 전체로 따지자면 영훈의 개입이 가장 적은 부분이기도 하지만, 영화상으로는 가장 흥미롭고 에너제틱한 부분이다. 

   고향을 떠난 영훈은 객주집에 들어가 방우(머슴) 생활을 한다. 그곳에서 그는 '몸 팔고 술 따르는' 술집 여인들의 모습과 술을 마시러 오는 관료, 유지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영훈은 이곳에서 기차에서 봤던 이상한 사내를 다시 만난다. 그는 칼갈이(전인택)로 이곳 객주집에 잠시 들렀다. 영훈이 있는 마을은 댐이 건설될 예정으로 곧 수몰될 것이다. 그곳에 있는 여인들 중, 김양(방은진)과 윤양(배종옥)이 특히 영훈에게 관심을 보이나 영훈은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어느날, 술자리에서 모욕적인 요구를 받은 윤양이 손님들과 싸움을 벌이자 영훈이 윤양을 도와준다. 윤양은 영훈에게 더욱 관심을 보이고 그날밤 같이 잠을 잔다. 그 이후로 영훈은 객주집을 떠나고 윤양이 영훈을 쫓아간다. 그들은 길을 가는 도중 칼갈이 사내를 만난다.

 

김양(방은진)과 윤양(배종옥)의 예사롭지 않은 등장. 택시 운전사가 기어를 변속하는 도중에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는 이유로 이들은 싸움을 벌인다. 이들이 지금껏 '야생 고양이'같은 삶을 살아왔다는 장면이기도 하고, 부당한 일은 절대 그냥 넘기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윤양은 소설에서도 꽤 흥미로운 역할이었지만, 그 역할이 매우 축소되어 있어서 아쉽기 그지 없었다. 축소시킨 이유는 윤양의 이야기를 키우면 소설의 주제가 희석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기도 하고, 또 이문열 작가 스스로 여성을 심하게 '비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을 일관적으로 훓어보면 여성을 '무시'하는 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 윤양을 '살아있는' 캐릭터로 그렸다. 그 역할이 너무 커져 때로는 좀 버거울 때도 있지만, 이 캐릭터를 생동감있게 그려낸 일등공신은 윤양을 연기한 배종옥 씨다. 그녀는 이 영화로 1991년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 댐을 개발하는 관료와 지역 유지들이 술자리에서 술집 여인들에게 옷을 벗고 시중을 들라는 요구를 한다. 다들 머뭇거리고 있을 때 윤양이 나서서 이 부당함에 대해 저항한다. 그 중 점잖으신 면장나리가 "아버지뻘 되는 어른들한테 무슨 말버릇이냐"고 근엄하게 야단을 치자 윤양이 얘기한다. "아버지? 아버지 좋아하시네. 집에 가서 니들 딸년들 옷이나 벗기고 술이나 마셔!" 그 이후에 벌어지는 폭력에서 영훈이 들어와 윤양을 팬 관리를 잡는다. 그러자 윤양이 자신을 때린 관리를 노려보며 따귀를 때린다.  

이 장면은 학내 투쟁장면과 겹쳐진다. 하가(로 대표되는 지식인들)의 투쟁이나, 술집에서 몸 파는 술집 작부의 투쟁이나 모두 기성세대의 부당함에 저항하는 행동들이다. 그들의 투쟁은 모두 아버지 세대들에 대한 투쟁이다. 하가는 죽었지만, 윤양은 투쟁한다. 하가의 빈자리를 윤양이 채운다.

 

영훈이 꿈속에서 본 정님과 꿈에서 깨 현실에서 본 윤양. 영훈은 윤양과 자면서 자신의 첫사랑 정님이 (자신의) 학교 선생님과 자는 모습을 꿈꾼다. 윤양은 영훈을 사랑해서 그와 같이 자지만, 영훈은 아직 다른 여자를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후 영훈은 길을 떠난다. 

 

 

2-4. 겨울 여행 

   윤양과 영훈 그리고 칼갈이 사내(전인택)는 한동안 같이 걷는다. 그들은 칼갈이 사내의 소개로 근처 마을의 교회에 투숙한다. 그곳에서 영훈은 칼갈이 사내의 사연을 알게되고, 그가 자신의 조직을 배신한 사람을 죽이러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날밤 교회에 불이나고 윤양은 고아를 구한다. 갈림길에서 칼갈이 사내와 영훈은 헤어지고, 윤양은 교회에서 지내기로 한다. 그날밤 영훈은 빈 폐가에서 얼어죽을뻔 하지만, 영훈을 몰래 따라온 윤양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윤양은 영훈에게 "절대 죽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영훈은 한 마을에서 그토록 그리던 정님을 만난다. 정님은 영훈에게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이란 말을 한다. 정님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은 영훈은 눈밭을 헤메다 정신을 잃는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자 눈은 멎어있고 바다가 보인다. 영훈은 이제 이 모든 방황을 그만두고 돌아가리라 마음먹는다. 바다에 가니 칼갈이 사내가 앉아있었다. 그는 복수를 포기했다고 하고 칼을 던진다. 영훈 또한 약을 던지고 서울로 올라간다.

 

한동안 영화는 이들 셋의 로드무비가 된다. '출옥수와 술집 작부와 동행'이라는 설정은 이만희 감독의 <삼포 가는 길>의 오마주로 보이기도 한다(꼭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남자 둘 여자 하나의 설정은 영화에서 많이 봐 온 모습이기도 하다). 칼갈이 사내는 타의에 의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뺐겼다. 그는 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조직을 밀고한자를 죽이러 가는 길이다. 그 역시 영훈과 같이 자신의 내부에 자리잡은 미망을 없애기 위해 길을 걷는다. 대학에서 만났던 하가와 김형을 영훈은 길에서 다시 만난 셈이다. 교회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이들은 서로 제 갈길로 헤어진다. 윤양은 현실 세계에 남고 영훈과 칼갈이 사내는 자신의 미망을 없애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난다. 결국 김형과 영훈은 같은 고민을 지니고 살았던 것이다.  

 

바다로 가는 도중 영훈은 정님을 만난다. 소설에서 정님 역시 잠깐 스쳐지나는 인물이지만, '나'에게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게 치열한 정열"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소설에서는 정님의 남편은 도망간 것으로 나오고, 정님은 그를 잊지 못한다. 소설은 한창 내면적으로 피폐해진 '나'의 가학성으로 이 술자리를 잔인하게 밀어 부친다. 

          "누님 결혼하세요."
          "그럴까."
          "아이를 다섯만 낳으세요."
          "그럴까."
          "그리고 빨리 늙으세요."
          "그럴까."
          "그래서 때가 되면 죽으세요."
          "그럴까."
 

하지만 영화는 이 부분을 클라이맥스로 잡고 있다. 이 씬은 이 영화의 장점과 단점이 모두 들어있다. 장점은 정님과 영훈의 만남으로 영훈이 지금껏 가지고 있던 모든 고뇌와 방황이 해결되는 지점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트라우마처럼 각인되어 있던 정님과의 기억/추억을 해결함으로써 그의 내부에서 발생한 방황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단점은 지금까지 치열하게 끌고 온 외부 투쟁과 내부 투쟁의 고뇌를 멜로라는 공식으로 풀어버렸다는 점이다. 어쩌면 소설을 뛰어넘는 청춘의 혼란스런 방황과 갈등을 영화적으로 풀어낼 걸작이 나올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말았다. 보면 볼수록 아쉬운 씬이다. 

 

영훈은 결국 바다에 도착하고 자신의 미망을 버린다. 칼갈이 사내 역시 복수를 포기하고 자신의 미망을 버린다. 이들은 그들의 고뇌와 고통과 번민이 그들 내부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는다.  

 

  

3. 무리한 원작에 대한 예우

소설에서 한 에피소드를 차지하는 "금시계 사건"은 영화에서 짤막하게 보여진다. 영화에서 이 장면은 없어도 상관없는 장면이어서, 원작과의 관계를 위해 예우 차원에서 넣은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서 영훈, 하가, 김형과의 술자리 장면은 소설에서 <비용제> 에피소드를 차용한 것이다. 소설에서 프랑소와 비용의 시 「유언시」를 모티프로 해서 이들 셋은 맘에 들지 않는 상대들에게 유언시를 남긴다. 그리고 그런 비용을 위해 물건을 하나씩 훔쳐오기로 한다. 소설에서 '나'는  술을 훔쳐오려다 무리해 가겟집 주인에게 들키고 만다. 가겟집 주인은 대학생의 젊은 혈기라 생각하고 웃으면서 보내준다. 그들은 훔친 물건들을 다리 밑 거지들에게 주면서 "비용이 준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것이 비용제의 전말인데, 영화는 아무런 설명없이 물건을 훔쳐오고 "비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장면은 소설을 읽지 않으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지만, 영화상 굳이 필요한 장면도 아니다. 

 

 

4. 카메오 

영훈이 혜연과 헤어지는 계기를 만든 고급 자제분들의 파티장 장면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장군의 아들>에서 갓 데뷔한 신현준 씨와 김승우 씨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영훈의 첫사랑 정님을 뺏아간 연적 국어 선생님 또한 <장군의 아들>에 출연한 이일재 씨가 맡았다.  

 

 

5. 방황의 끝  

   영화의 끝. 영훈은 서울로 올라간다. 방황을 끝낸 영훈은 어떻게 살아갈까? 현실 투쟁의 삶으로 들어갈까? 아니면 이전처럼 술을 마시고 시를 읊고 사창가에 드나들며 '길들인' 여자친구를 사귀게 될까? 어떤 삶을 살더라도 그는 이제 방황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의 미망의 원인인 첫사랑과의 부채를 해결했으니까. 이 모든 방황의 근원이 결국 사랑이라니. 유치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게 '젊음' 아닌가?  

   어쩌면 이 영화는 개인 보다는 집단의 가치를 더 중시한 80년대를, 개인의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90년대의 시선으로 그린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너무 빨리 도착한 게 아닐까? 

 

 

 

6. 덧붙임 

   뜬금없지만, 하가(조재현)가 사창가에서 옷을 벗는 장면은 <나쁜 남자>의 한기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그가 포주를 연기할줄은 아마 그 자신도 몰랐겠지요. 

 

   짤방보이의 표정을 이 영화에서 딴 게 아닐까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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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3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3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3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3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0-03-04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우리나라 영화계를 이끈 분들의 젊은 시절 모습이 무척 새롭네요^^

Tomek 2010-03-05 09:20   좋아요 0 | URL
아마도 '젊음'이라는 시간을 봉인하기엔 영화라는 매체만큼 적절한 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
 
러블리 본즈 - The Lovely Bones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영화가 시작되면 사랑스러운(lovely) 아이의 모습이 화면에 비친다. 선물로 받은 사진기로 자신의 모습을 찍는 14살 소녀의 천진난만함. 행복한 가정. 태어나서 처음 느끼기 시작하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 한없이 아름답고 사랑스런 장면의 연속에서, 소녀는 이렇게 얘기한다. "내 이름은 수지 새먼. 1976년 12월 6일. 나는 살해당했다."   

 

 

   영화는 <베리 린든>처럼 아이의 죽음을 관객에게 미리 알려준다. '비극'이라는 드라마를 강조하지 않고, '운명'을 이야기한다. <러블리 본즈>는 수많은 '유아살해 영화(아, 정말 끔찍한 목록이다)'들과는 다른 방식을 취했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본 것이 영화에 독(毒)이 될지 득(得)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느낌은, 안 읽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에 만족했었다. 그러나 같이 영화를 본 아내를 비롯한 다수의 관객들은 '불쾌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영화의 만듦새에 대해 불평한 것이 아니라, 그 정서에 대해 불평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피터 잭슨의 실패작이 아니다. 단지 그가 만든 '유쾌하지 않은' 웰 메이드 영화다. 

   첫 사랑이 시작되려는 14살의 수지 새먼(시얼새 로넌)은 그의 이웃 조지 하비(스탠리 투치)에게 강간당하고 무참히 살해당한다. 그의 가족은 깊은 슬픔에 빠져 지내고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수지는 천국과 이승의 중간 세계에서 (In Between) 머물며 가족들을 바라보고, 그 세계에서 또래의 친구들을 사귀며 지낸다. 수지가 죽은지 1년이 다 되어갔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고, 어머니(레이첼 와이즈)는 집을 나가고 아버지(마크 왈버그)와 동생(로즈 맥키비)은 홀로 사는 이웃 하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두 세계를 보여준다. 하나는 수지가 머물고 있는 중간 세계, 다른 하나는 가족들과 살인자가 살고 있는 이승이다. 아마도 소설은 살아남은 가족들의 이야기로 진행하지 않았을까? 유령이 현실 세계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햄릿』에서처럼, 잠깐 비추는 정도일 뿐이니까. 이승에서는 혈육의 '부재'를 극복하고 위기를 봉합하는 가족의 모습이 보여지고, 중간 세계에서는 수지의 행복한 환상이 보여진다. 피터 잭슨은 이 이질적인 두 세계를 거의 동일하게 나누어 보여준다.   

 

 

   중간 세계에서의 환상은 그의 전작 <천상의 피조물들>이 생각날 정도로 탄성이 나오는 아찔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만큼의 감흥은 일어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천상의 피조물들>에서 환상이 현실 세계를 사는 소녀들이 꾼 꿈이었다면, <러블리 본즈>의 환상은 현실 세계에 없는, 유령의 환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환상장면이 불필요하거나,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난 그 장면이 그만큼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막,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설레임을 느끼는 소녀에게, (가족말고) 생애 첫 키스를 기대할 수 있었던 첫 데이트를 앞에 두고, 무참히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아이에게, 그 정도의 위로는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수지의 환상 장면은 내게 있어 "끔찍하게" 아름다웠다. 감탄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그 상황을 생각하며 탄식하게 만드는. 어쩌면 이 영화는 수지를 위한 피터 잭슨의 진혼곡이 아니었을까. 

   그에 반해 현실 장면은 굉장히 삐끄덕 거린다. 너무나도 쿨한 할머니(수잔 새런든)와 죽은 딸의 방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하고 기어이 떠나는 엄마, 집안일은 뒤로한 채 범인을 잡으려고 동분서주하는 아빠. 이들의 위기와 갈등은 (마침내) 살인범의 증거물을 찾아낸 동생이 집에 들어오기 직전에 봉합된다. 폭행에 깁스를 한 아버지와 다시 돌아온 엄마, 그들의 화해와 포옹으로 동생은 증거물을 (잠시) 내려 놓는다. 그렇게 산 가족들은 죽은 딸을 떠나보내고(혹은 망각하고) 살아간다. 이 장면에서 스필버그(제작자로 참여)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 것은 우연이었을까? 

   아마도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이 영화의 '결말부'일 것이다. 확실하게 복수를 하는 것도 아니고, 확실하게 화해를 하는 것도 아니고, 확실하게 망자의 원혼을 달래주는 것도 아닌, '어설픈 권선징악'은 동양 문화권 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확실히 '불쾌하게' 생각할 듯 하다. 영화로만 따진다면, 어떤 카타르시스도 느끼지 못하는 어정쩡한 결말이다. 하지만, 이런 '어정쩡한' 결말이 이 영화에 맞다고 생각한다. 확실하게(아니 시원하게) 복수했다면, 가족들은, 그리고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어떤 부채의식도 가지지 않고, "그래도 다행이야"라는 생각을 하며 곧 무참히 살해된 수지를 기억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수지가 우리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 "모두들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그 말을 가슴에 담고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랑스런 시체(the lovely bones)는 떠날 때에도 눈물을 짓게 만든다. 이 슬픔이, 이 느낌이 보편적인 감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덧붙임 

1. 위에 언급한 the lovely bones는 '사랑스런 시체'란 뜻이 아니고, '갑작스런 시련을 통해 점점 커지는 유대감'을 뜻한다고 합니다. 위키를 찾아보니 소설 후반부에 수지가 얘기하는 것에서 따왔다고 하더군요. 물론 영화에서도 언급됩니다.

"These were the lovely bones that had grown around my absence: the connections - sometimes tenuous, sometimes made at great cost, but often magnificent - that happened after I was gone."

2. 살인자 하비와 수지의 동생이 벌이는 서스펜스 장면은 사람을 옥죄게 하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주먹을 꼭 쥐고 "아, 쫌!!" 이라고 외쳐본 적은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3. 브라이언 이노의 음악은 언제 들어도 뭉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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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러블리 본즈' - 죄를 벌하는 것은 운명의 몫
    from Film life in Forest 2010-02-26 21:53 
    사실 나는 "영화 볼 때 남 얘기따위 듣지 않아!"라고 말하고 다니며 그럴려고 무진장 애쓰는 사람이다. 내가 영화를 고르고 영화를 볼 때 마인드는 어디까지나 내가 정한다는, 저 옛날 'X세대'적 마음을 가질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실 해외언론의 악평은 신경 안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자세히 읽지 않았다. 를 보고나니 저 옛날 볼 적이 생각났다. 가끔 남들은 다 싫다는데 나만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 <천년을..
 
 
전호인 2010-02-23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언뜻 보았는 데 슬픈영화로 기억합니다. 쩝

Tomek 2010-02-23 18:30   좋아요 0 | URL
내용으로만 따지면, 슬프고, 끔찍하고, 가슴아프고, 괴로운 이야기인데, 영화는 좀 다르게 나왔습니다.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시면 좋은 영화일 수 있지만, 이야기의 조화를 따지신다면 어정쩡한 영화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영화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카스피 2010-02-24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내용에 비해 보여주신 스틸컷은 무척 환상적이네요^^;;;

Tomek 2010-02-25 09:00   좋아요 0 | URL
끔찍한 장면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수지가 이승과 천국 사이의 세계에서 겪는 환상은 정말 탄성이 나올정도로 아름답지요. PG-13/15세 관람가 영화이니 그런 것은 당연하겠지요. ^.^;

고맙습니다.

김기범 2010-02-25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실명결고 말하지만 이영화는 장르의 정체성이 없는영화이다 이도저도 아니여서 흥행성 작품성에 모두 오명을 얻은영화 이런걸 개봉하는이유를 모르겟다

박종민 2010-03-11 0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등 모험 판타지 영화에 젖은 관객들이라면 소화하기 힘든 영화일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는 판타지의 범주에 속하기엔 느낌이 틀립니다. 분명 초현실주의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 영향을 받은듯 합니다. 이 영화는 이런 저런 기법이 들어차 있습니다. 등대를 비롯한 여러 상징체계 요소들이 등장합니다. 감독은 관객들은 상징과 은유 비유에 맘껏 다양한 해석을 내리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Tomek 2010-03-11 10:00   좋아요 0 | URL
피터 잭슨의 뉴질랜드 시절이 없었다면 뜨악할만한 작품이었겠지만, 그의 감수성이 아직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작품인 것 같습니다. 물론 거대자본과의 만남은 좀 삐걱거린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언제나 성공만 할 수는 없지요. 오히려 다음 영화가 기대됩니다.

고맙습니다. ^.^;
 
멀홀랜드 드라이브 - Mulholland D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들어가며 

   이런 영화가 있다. 초반 5분만 보더라도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맺을지가 훤히 보이는 영화가 있는 반면, 몇 번을 보더라도 처음 본 것처럼 새롭고, 중간에 이야기의 끈을 놓치게 하는 영화가 있다. 전자는 인생을 갉아먹히는 듯한 불쾌한 느낌이 드는 반면, 후자는 인생이 뭔가 의미있고 풍요롭게 느껴지는 힘이 있다. 누구에게나 영화는 제각각이지만, 내게는 그렇다. 그리고 그 후자의 영화에는 데이빗 린치의 영화가 포함되어 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이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DR.)>에 대해 이야기 해본다면, 난 이 영화를 2003년에 비디오 테이프로 처음 봤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데이빗 린치를 좋아하지 않았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게 도대체 뭔가" 싶을 정도로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에 영화의 결말을 2분 남겨두고 비디오를 껐다. 물론 그 당시엔 영화가 2분 남았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식겁'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2007년 잡지 <FILM 2.0> 정기구독 경품으로 이 영화를 받아 다시 감상했고, 2009년에 다시 한 번, 그리고 2010년 2월 17일 (마침내)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봤다.  

   총 4번을 봤지만, 여전히 정리가 안 되는 영화다. 그렇다고 그냥 '의미 없음'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단서(clue)들이 뒤죽박죽 난무하며 "제발 나를 해석해줘"라고 이야기하는 희안한 영화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냥 의식의 흐름에 맞겨야 하는 영화를 무리하게 해석하려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의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도전해 볼만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 감히 글을 써본다. 

 

 

2. 파일럿(Pilot) 

   이 영화의 시작은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 <트윈 픽스(Twin Peaks)>로 데이빗과 애증의 관계에 있는 ABC TV가 무슨 생각에선지(아마도 <트윈 픽스>의 영광을 다시 한 번?) 데이빗에게 TV 드라마를 맡겼다. 데이빗은 나오미 와츠(Naomi Watts)와 로라 엘레나 헤링(Laura Elena Harring)을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하고 그만의 독특한 드라마를 찍었다. 결말은 다음 편의 연결을 위해 당연히 '열린 결말'이었다. 그런데 ABC 중역들이 이 파일럿을 보고(데이빗의 말에 따르면, 일요일 새벽 6시, 집에서 골프를 하면서 VCR로 봤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도통 알 수 없다"며 여러 트집을 잡았고(그 중 하나는 여주인공인 나오미와 로라의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데이빗은 그들의 요구에 맞추어 약 300여개의 편집본을 만들었지만(그는 그 300여개의 테이프가 편집의 리듬을 무시한 부끄러운 결과물이라 했다) 결국엔 방송되지 못하고 폐기처분 당했다. 

   그렇게 잊혀졌던 작품이었는데, 어느날 밤, 우연히 '아름다운' 이야기가 떠오른 데이빗은 자신이 찍어놓은 이 파일럿에 이 이야기를 접목해 한 편의 영화로 만들기로 하고 유니버셜과 카날 플러스를 설득해 마침내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이것이 <멀홀랜드 드라이브>다. 

   굳이 이렇게 제작 과정을 세세하게(그렇지 않다. 진짜 이야기는 훨씬 길다) 밝힌 이유는, 이 영화의 태생이 원래는 반쪽짜리 영화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 영화를 한 편의 독립된 작품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절반의 파일럿과 절반의 다른 영화로 볼 것인지에 따라 영화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혼란을 유발하는 듯한 장면이 영화 곳곳에 숨어 있다. 

 

 

3. 이야기 

   선형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비선형적인 이야기라 정리가 될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 번 요약해본다.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거칠게 보자면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3-1. 전반부 

  검은 머리의 여인(로라 헤링)이 검정색 리무진을 타고 가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사고를 당한다. 사고를 당하기 전 운전석의 남자가 그녀를 죽이려 했으나, 끔찍한 사고 덕분에 그녀 혼자 살아남고 그녀는 시가지로 내려온다. 충격과 상처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그녀는, 빨간 머리의 여자가 자신의 아파트를 비우는 것을 보고 그 집에 숨는다. 그와 동시에 낙천적이고 생기가 넘치는 배우 지망생 베티 엘름(나오미 와츠)이 그 아파트에 도착하고 검은 머리의 여인을 발견한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기억이 안나, <길다>포스터에 적힌 리타 헤이우드의 이름을 보고 자신이 '리타'라고 얘기한다. 베티는 리타의 기억을 찾는 것을 돕기로 하고, 무언가 단서를 찾기 위해 그녀의 가방을 열어본다. 가방엔 엄청난 돈과 파란 열쇠가 있다. 

 

   한 남자가 선셋대로에 있는 윙키스라는 음식점에서 그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에게 자신의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는 자신의 악몽에서 끔찍한 사람을 봤으며, 그저 그게 꿈이기를 기대하며 그 장소를 확인하자고 한다. 그런데 꿈에서 본 일들이 그대로 벌어지고, 끔찍한 형상의 사람을 보자, 그는 공포에질려 쓰러지고 만다. 

 

   서툴어 보이는 해결사(킬러?)가 그날 끔찍한 차사고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 사람을 죽이고 전화번호부를 훔친다. 그는 떠나면서 실수로 두 사람을 더 죽인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며, '검정 머리를 한 좀 나이든' 새로 온 창녀가 있는지를 탐문하고 다닌다.   

 

   영화 감독 아담 케셔(저스틴 테록스)는 자신이 감독하는 영화에 카밀라 로즈(멜리사 조지)라는 여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라는 압력을 받는다. 요구를 거부한 아담이 집에 도착하자 그의 아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고 있었고, 그는 집에서 쫓겨난다. 호텔에서 머무는 중, 그는 자신이 파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카우보이'라는 미스터리한 사람을 만난다. 카우보이는 카밀라 로즈를 주연으로 영화를 찍으라는 말을 하고, 잘 행동하면 자신을 한 번 보겠지만, 잘못 행동하면 자신을 두 번 볼 거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베티와 리타는 리타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차량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들은 윙키스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리타가 주문을 받는 웨이트리스의 명찰에 적힌 이름 '다이앤'을 보고 '다이앤 셀윈'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낸다. 그들은 전화번호부에서 다이앤의 이름을 찾아내 전화를 걸지만, 그녀는 받지 않는다.  

 

   베티는 밥 부커가 감독할 영화 오디션을 보고 엄청난 찬사를 받는다. 그 자리에 있던 캐스팅 감독이 그녀를 아담이 감독하는 영화 <실비아 노쓰 이야기(The Sylvia North Story)> 세트장에 데려간다. 세트장에선 카밀라 로즈의 오디션이 진행되는 중이었고, 아담은 "이 여자에요"란 말을 한다. 그 말과 동시에 베티와 아담은 서로 끌리는 듯이 쳐다보고, 베티는 약속이 있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베티와 리타는 다이앤 셀윈의 집에 찾아 갔으나 그녀는 응답하지 않는다. 그녀의 집에 몰래 들어간 베티와 리타는 죽은 다이앤의 시체를 발견한다. 공포에 질린 리타는 집에 돌아와 머리를 자르고, 베티는 그런 그녀에게 금발 가발을 씌운다. 그날 밤 그들은 서로 사랑을 나누고, 베티는 리타에게 사랑한다고 한다.   

 

   새벽 2시 리타가 갑자기 일어나 베티와 함께 실렌시오 극장으로 간다. 그곳은 퍼포먼스 극장이고, 사회자는 '모든 음악은 녹음되었으며, 모든 것은 환상'이라고 얘기한다. 퍼포먼스가 시작하고, 한 여인이 노래를 부르는 도중 쓰러지지만 노래는 계속 흘러나온다. 순간 베티는 그녀의 지갑에서 파란 상자를 찾아낸다. 집에 도착해서 리타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파란 열쇠를 꺼내고 베티를 부르나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리타가 홀로 열쇠를 꽂아 상자를 열자, 상자는 갑자기 떨어지고 사라진다. 

 

 

3-2. 후반부 - 혹은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이야기 

   상자가 떨어지자, 앞서 떠났던 빨간 머리의 여인이 방에 들어와 방 주위를 둘러보지만, 방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화면 전환. '카우보이'가 다이앤 셀윈의 방에 들어와서 "이봐, 아가씨. 일어날 시간이야."라고 얘기한다. 두 번의 화면 전환 후, 다이앤 셀윈(나오미 와츠-베티)이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녀는 외롭고 우울한 실패한 여배우고, 성공한 여배우 카밀라 로즈(로라 엘레나 헤링-검정 머리 여자/ 리타)와 사랑에 빠졌지만, 카밀라는 다이앤을 거부한다. 

  

   카밀라의 초대로 다이앤은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있는 아담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한다. 아담은 성공한 감독으로, 카밀라와 사랑에 빠졌다. 리무진은 집에 도착하기 전에 멈추고, 갑자기 나타난 카밀라가 다이앤을 지름길로 인도하며 에스코트 한다. 저녁을 먹는 동안, 다이앤은 자신이 이모가 돌아가신 후, 배우가 되기 위해 캐나다에서 헐리우드로 왔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실비아 노쓰 스토리> 오디션 장에서 카밀라를 처음 만나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그 때 다른 여인(멜리사 조지- 카밀라 로즈)이 카밀라에게 속삭이고 키스를 하며 다이앤을 쳐다본다. 질투와 분노에 몸서리치는 다이앤. 그 때 아담과 카밀라가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서 서로 킬킬거리고, 화면은 갑자기 선셋대로 윙키스 레스토랑으로 바뀐다.  

 

   다이앤은 그곳에서 해결사(청부업자)를 만나고 있다. 그녀는 카밀라 로즈의 사진과 돈을 주며 살인을 의뢰한다. 그 때 웨이트리스가 주문을 받는데, 그녀의 이름은 '베티'다. 해결사는 자신이 일을 끝내면 파란 열쇠를 찾으라고 이야기한다. 다이앤을 고개를 들어 보니, 카운터에 악몽을 꿨다는 사내가 서 있었다.  

 

   화면은 그녀의 집으로 바뀌고, 파란 열쇠가 보인다. 그녀는 자신을 죽이려는 노부부의 환각에 몸서리치며 서랍의 권총을 꺼내 침대에서 자살한다. 

 

 

4. 전반부 - 실제 벌어진 일, 후반부 - 베티의 꿈

   파일럿이 제작된 순서대로 전반부의 이야기를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로 보고, 후반부 부분을 베티의 '환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다이앤의 시체를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온 후, 베티와 리타가 사랑을 나눈 후, 리타가 자면서 "실렌시오."라고 말을하는 장면부터 영화 끝까지를 얘기한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정확하게 대구가 되어 있다. 리타가 "실렌시오"라고 얘기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영화의 끝, 실렌시오 극장에 앉아 있는 한 관객이 "실렌시오"라고 얘기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그러니까 이 "실렌시오" 이야기는 자기 완결성을 가진 이야기다.  

 

"실렌시오"로 시작해 "실렌시오"로 끝난다

 

사회자가 파란 조명과 연기가 올라오면서 사라지고 공연이 시작된다. 다이앤이 자살하고 파란 조명과 연기가 올라오면서 사라진다. 그 다음 장면은 "실렌시오"극장의 텅빈 객석으로 바뀐다.

 

   리타의 기억의 단서인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다이앤 셀윈, 그리고 다이앤이 죽은 것을 확인했을 때 리타의 반응, 리타와 사랑에 빠진 베티 등 리타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을 겪은 베티가, 자신이 오늘 겪었던, 밥 부커 감독의 연기 오디션, <실비아 노쓰 스토리>의 오디션과 아담 케셔, 카밀라 로즈를 보고온 기억이 꿈에서 재구성되어 벌어지는 일로 볼 수 있다. 말이 안돼지만,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다. 꿈에는 논리가 없는 법이니까. 

   그런데 이렇게 간단하게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전반부가 현실이고 후반부가 베티의 꿈이라면, 현실에서 벌어난 베티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어떻게 베티의 꿈에서 아귀가 맞게 벌어질 수 있을까? 분명히 전반부는 전지적 시점인데, 후반부는 1인칭 시점이다. 그렇기에 또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5. 전반부 - 환상, 후반부 - 사실 

   영화가 시작한 후, 크레딧이 오르기 전에 두 장면이 나온다. 하나는 댄서들이 지르박 춤을 추면서 베티의 얼굴이 나오는 것이고, 그리고 한 여인(아마도 다이앤으로 추정되는)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흐느끼는(혹은 무언가를 흡입하는) 소리가 들린다. 앞선 해석은 이 두 장면을 빼놓았는데, 이 장면이 들어가면 영화의 이야기 구성이 달라지게 된다. 이 장면에서부터 영화가 시작했으니까. 이렇게 놓고 보면, 앞서 풀리지 않았던 실마리가 해소된다.

다이앤은 윙키스 레스토랑에서 '베티'라는 이름을 보고 환상에서 자신의 이름과 베티를 바꿔치기 한다. 

 

 

현실에서 카밀라와 사랑에 빠지는 성공한 감독 아담 케셔는 다이앤의 환상에서는 카밀라의 캐스팅을 거부한다. 그런 그가 집에 가니, 아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고 있다. 환상속에서 다이앤은 아담에게 그녀만의 방식으로 복수한다. 

 

다이앤이 카밀라를 만난 것은 <실비아 노쓰 스토리> 오디션 장이었다. 다이앤은 주인공을 원했으나, 감독은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고, 그 역은 카밀라에게 돌아갔다. 그렇기에 다이앤의 환상속에선 어떤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영화의 캐스팅(특히 여주인공)을 결정케 했다. 

 

카밀라를 죽여달라는 청부를 하는 다이앤은 이 사람이 영 미덥잖게 보인다. 그녀의 환상속에서 그는 어설픈 킬러로 나와 일을 처리한다. 

 

살인을 청부하는 다이앤이 윙키스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한 사내가 무섭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이 사내는 다이앤의 환상 속에서 악몽을 꾸는 남자로 분한다.

 

   후반부의 시간은 다소 꼬여있다. 처음 다이앤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카밀라가 죽어있을 때이다. 경찰이 그녀를 찾아왔다는 이웃의 말에,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는 계속 과거의 회상장면을 보여준다. 후반부가 과거의 회상장면이라는 것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피아노 모양의 재털이'와 킬러가 준 '파란 열쇠'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정리해본다면, "카밀라에게 차인 다이앤이 청부해서 그녀를 죽이고, 약에 취해 환각을 경험한 다이앤은 죄책감으로 자살을 한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즉, "사실 → 환상 → 사실"의 순으로 영화를 꼬아놔서 보여준 셈이다. 

   그런데 또 이렇게만 해석할 수 없다. 이 영화가 1인칭 시점의 영화라면, 다이앤이 죽고 난 후 나오는 "실렌시오"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군더더기라고 여긴다면, 영화 앞부분의 장면도 군더더기라고 볼 수 있다. 

 

 

6. 전부 현실 

   다른 사람의 영화에서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데이빗 린치의 영화라면 그것도 가능한 해석이다. 파란 상자를 돌리자마자 갑자기 세계가 돌아가고 각자 자아는 사라지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 데이빗은 이미 이런 이야기를 <로스트 하이웨이(Lost Highway)>에서 비슷하게나마 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파란 상자와 파란 열쇠가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할텐데, 데이빗 린치는 그의 저서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에서 그것들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난 상자와 열쇠가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ㅡ.ㅡ;;;) 

 

 

 

7. 전부 환상

   차라리 이렇게 보는 게 속편할지 모르겠다. 꿈에는 논리가 없으니까. 

 

 

8. This Magic Moment 

   영화의 해석과는 별개로,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는 사람을 빨려들게 하는 마법같은 순간이 있다. 가짜가 진짜같이 느껴지는 '마법'같은 순간인데, 이 영화에서는 (영화의 내용과는 별개로) 두 번 그런 장면이 나온다.  

 

 

   베티가 리타와 함께 집에서 오디션 연습을 하는 장면은 충분히 가짜스럽다. 그런데, 같은 오디션 장면인데도, 베티가 배우와 연기를 하는 모습은 마치 '진짜 상황'인 것처럼 몰입하는 힘이 있다. 가짜가 진짜처럼 보이는 힘은 '영화'라는 매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정말 중요하고 인상적인 장면인데, 극장 상영 시에는 잘렸다. 영화가 끝나고 꽤 많은 사람들이 분개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렌시오 클럽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는 립싱크다. "밴드는 없습니다. 오케스트라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녹음된 것입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고 한 여인이 나와 노래를 부른다. 그녀의 노래는 정말로 아름답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던 중 그녀는 갑자기 쓰러지지만, 노래는 계속 흘러나온다. 그 자체가 가짜인줄을 아는데도, 관객들(우리들)은 눈물을 흘리는 감동을 느낀다. 어쩌면 데이빗은 영화라는 매체가 순 가짜 투성이지만, 그 순간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9. 마무리 

   어쩌면 이 영화는 "내 인생의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유희나 퍼즐이 아닌, 영화라는 '매체'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 영화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볼 때마다 달라지는 희안한 영화. 데이빗의 영화는 내게 있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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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knowho 2010-02-19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심층적이면서 다양한 해석과 설명이 가득한 리뷰,고맙네요.
이 영화 보고 이렇게 정리하느라 머리깨나 멍하셨을 듯!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우선 리타가 파란박스에 키를 넣기 까지가 현실입니다.
그리고 후반부는 전반부의 베티(나오미 왓츠)의 환상같은 상상부분이죠.
베티가 나름대로 전반부의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게 후반부인거죠.
첫번째,어떻게 리타가 사고를 당했나?
두번째,리타와 함께 찾아갔던 다이앤은 어떻게 죽은 것인가?
이 두가지에 대한 답을 베티가 상상했던 게 아닐까...
전반부에 리타의 실체를 살짝 언급했던 부분이
어설픈 킬러가 거리의 창녀한테 탐문했던 부분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베티의 상상과 달리 리타는 "검은머리의 나이든 창녀"였던 게 아닐까...
반면에 전반부가 환상이고 후반부가 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과할 정도로 화려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환상에 가깝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또한 전반부에 베티가 만난 인물들이 후반부에 다른 인물들로 차용되었다는 게
후반부가 환상일 가능성에 힘을 실어줍니다.
예를 들어, 영화 감독의 경우 리타와 사랑에 빠지는 연적으로,
맨션 관리인 코코는 감독의 어머니로, 오디션 구경할 때 봤던 낙점 여배우
카밀라 로즈는 리타의 숨겨진 연인으로 등장하고
리타가 차 사고를 당한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파티가 열리는 위치로 차용됩니다.
마치 베티가 주연과 각본, 감독을 해서 완성해낸 한편의 영화라고나 할까요...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후반부가 픽션의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건
이미 전반부에서 등장 인물들과 그 관계의 설정이 관객들에게 더 현실적으로
확정된 후에 후반부를 접하게 되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훌륭합니다.
우선 영화를 보고난 후, 누구라도 머리를 굴리게 만드는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어이가다 보면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어떤 접점을 만나게 됩니다.
한마디로,이 영화는 독립된 전반부와 후반부가 각각 분리되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수많은 연결고리들로 이어지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케 합니다.
첫번째,킬러가 갖고 있어야할 가방속 현금과 열쇠를 어떻게 리타가 갖고 왔을까?
가방속에 리타의 신분증이나 어떤 소지품도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그 가방이 리타보다는 킬러의 소유일 가능성이 더 커보입니다.
그렇게 보면,후반부의 베티의 추리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전반부와 이어지게 되는 거죠.
두번째,전반부에 엄한 사람 2명을 잡으면서까지 킬러가 손에 넣으려고 했던 전화번호부가 후반부에 베티와 윙키스에서 접선하는 씬속 테이블에 놓여있습니다.
저는 과연 그 전화번호부가 왜 그리 중요했을까?
영화를 수차 보면서 그안에 과연 어떤 정보가 있는 것인지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는데
그게 전날밤 리타의 차 사고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 역시 어떤 면에서 후반부와 상통하는거죠.
그 외에도 "숨은 그림 찾기"나 "수수께끼"처럼,
이 영화에는 전반부와 후반부가 현실과 환상의 충돌로 빚어지는 면면이 숨어있을 거라는
(감히)짐작-머리의 용량 한계로 다 찾아 내지는 못하고-만으로도 재미와 매력이 가득한 영화로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데이빗 린치의 영화는 늘 흥미롭습니다.
뭔지 모를 섬뜩함이 우리의 일상과 밀접해있음을 그가 보여줄 때면 더더욱 감탄스러운 소름이 돋는 법입니다.
리타가 박스에 키를 넣으려고 옷장에서 상자함을 꺼내기 전에는 베티가 서있다가
리타가 돌아서서 상자함을 침대에 놓을 때 이미 베티가 화면에 사라진 걸 보고
일순간 뜨악했습니다. 그리고 여지없이 리타가 베티를 부르며 찾더군요.
(이 장면에서 촐싹맞게도 저는 베티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
리타의 상상으로 표출된 무의식의 또다른 자아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해봤습니다.)
여튼, 어떻게 그런 미묘한 느낌을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줄 수 있는 건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 데이빗 린치 이야기의 특성상 그럴 수도 있겠지만 놀라운 장면이었습니다.
또한 베티가 공항에서 따뜻하게 헤어졌던 노부부를 리무진에서 웃는 장면에서는 전혀 상반된 어떤 악마성을 느끼게 해주었던 것도 감독의 독특한 재주로 꼽고 싶습니다.
저역시,실렌시오 클럽의 무대는 감독이 갖는 영화에 대한 생각을 대변해주는 듯 합니다.
모든 게 실황이 아닌 녹음임에도 눈물 짓게 할 수 있는 영화의 힘(?)이
데이빗 린치의 미스터리 영화에선 눈물 짓게 하는 힘이 머리 쓰게 하는 힘으로 변환 되는 게 아닐까 싶네요.
또한 이번 상영시 극장에서 삭제했던 베티가 오디션 보는 장면도
어떤면에선 영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감독의 의도가 내포되 보입니다.
비록 연습 상대인 리타의 어설픈 연기도 이유일 수 있지만 그 보단 영화란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똑같은 인물과 대사도 180도 바뀔 수 있는 변이성을 가진, 마치 생물과 같은 존재로 보고 싶은 감독의 의미를 표현한 게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내 영화를 제대로" 봐주길 바란다는 "추신" 같은 장면을 편집했다는 데
이번 극장상영의 아쉬움을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Tomek 2010-02-22 09:15   좋아요 0 | URL
어리석은 글에 현명한 글을 남겨주셔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데이빗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찾기 힘든데, 이렇게 친히 긴 글을 남겨주시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
어떻게 보아도 무방한 영화를 만든 것 같아요. 반복되는 '교집합' 부분을 중심으로 영화를 해석하고 싶지만, '여집합'부분이 또 나름 영화로써 작동을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본 사람이 알아서 스스로 받아들이는 영화' 데이빗의 영화는 그런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novio 2010-02-25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빗 린치 감독의 작품이라면 굉장히 어려운 영화겠네요. 그리고 이번 리뷰글은 무척 생활 속의 일상도 함께 담겨 있는 정겨운 글이네요. 즐감했습니다. ^^

Tomek 2010-02-26 11:34   좋아요 0 | URL
독특한 영화일뿐,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