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홀랜드 드라이브 - Mulholland D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들어가며 

   이런 영화가 있다. 초반 5분만 보더라도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맺을지가 훤히 보이는 영화가 있는 반면, 몇 번을 보더라도 처음 본 것처럼 새롭고, 중간에 이야기의 끈을 놓치게 하는 영화가 있다. 전자는 인생을 갉아먹히는 듯한 불쾌한 느낌이 드는 반면, 후자는 인생이 뭔가 의미있고 풍요롭게 느껴지는 힘이 있다. 누구에게나 영화는 제각각이지만, 내게는 그렇다. 그리고 그 후자의 영화에는 데이빗 린치의 영화가 포함되어 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이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DR.)>에 대해 이야기 해본다면, 난 이 영화를 2003년에 비디오 테이프로 처음 봤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데이빗 린치를 좋아하지 않았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게 도대체 뭔가" 싶을 정도로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에 영화의 결말을 2분 남겨두고 비디오를 껐다. 물론 그 당시엔 영화가 2분 남았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식겁'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2007년 잡지 <FILM 2.0> 정기구독 경품으로 이 영화를 받아 다시 감상했고, 2009년에 다시 한 번, 그리고 2010년 2월 17일 (마침내)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봤다.  

   총 4번을 봤지만, 여전히 정리가 안 되는 영화다. 그렇다고 그냥 '의미 없음'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단서(clue)들이 뒤죽박죽 난무하며 "제발 나를 해석해줘"라고 이야기하는 희안한 영화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냥 의식의 흐름에 맞겨야 하는 영화를 무리하게 해석하려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의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도전해 볼만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 감히 글을 써본다. 

 

 

2. 파일럿(Pilot) 

   이 영화의 시작은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 <트윈 픽스(Twin Peaks)>로 데이빗과 애증의 관계에 있는 ABC TV가 무슨 생각에선지(아마도 <트윈 픽스>의 영광을 다시 한 번?) 데이빗에게 TV 드라마를 맡겼다. 데이빗은 나오미 와츠(Naomi Watts)와 로라 엘레나 헤링(Laura Elena Harring)을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하고 그만의 독특한 드라마를 찍었다. 결말은 다음 편의 연결을 위해 당연히 '열린 결말'이었다. 그런데 ABC 중역들이 이 파일럿을 보고(데이빗의 말에 따르면, 일요일 새벽 6시, 집에서 골프를 하면서 VCR로 봤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도통 알 수 없다"며 여러 트집을 잡았고(그 중 하나는 여주인공인 나오미와 로라의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데이빗은 그들의 요구에 맞추어 약 300여개의 편집본을 만들었지만(그는 그 300여개의 테이프가 편집의 리듬을 무시한 부끄러운 결과물이라 했다) 결국엔 방송되지 못하고 폐기처분 당했다. 

   그렇게 잊혀졌던 작품이었는데, 어느날 밤, 우연히 '아름다운' 이야기가 떠오른 데이빗은 자신이 찍어놓은 이 파일럿에 이 이야기를 접목해 한 편의 영화로 만들기로 하고 유니버셜과 카날 플러스를 설득해 마침내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이것이 <멀홀랜드 드라이브>다. 

   굳이 이렇게 제작 과정을 세세하게(그렇지 않다. 진짜 이야기는 훨씬 길다) 밝힌 이유는, 이 영화의 태생이 원래는 반쪽짜리 영화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 영화를 한 편의 독립된 작품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절반의 파일럿과 절반의 다른 영화로 볼 것인지에 따라 영화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혼란을 유발하는 듯한 장면이 영화 곳곳에 숨어 있다. 

 

 

3. 이야기 

   선형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비선형적인 이야기라 정리가 될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 번 요약해본다.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거칠게 보자면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3-1. 전반부 

  검은 머리의 여인(로라 헤링)이 검정색 리무진을 타고 가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사고를 당한다. 사고를 당하기 전 운전석의 남자가 그녀를 죽이려 했으나, 끔찍한 사고 덕분에 그녀 혼자 살아남고 그녀는 시가지로 내려온다. 충격과 상처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그녀는, 빨간 머리의 여자가 자신의 아파트를 비우는 것을 보고 그 집에 숨는다. 그와 동시에 낙천적이고 생기가 넘치는 배우 지망생 베티 엘름(나오미 와츠)이 그 아파트에 도착하고 검은 머리의 여인을 발견한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기억이 안나, <길다>포스터에 적힌 리타 헤이우드의 이름을 보고 자신이 '리타'라고 얘기한다. 베티는 리타의 기억을 찾는 것을 돕기로 하고, 무언가 단서를 찾기 위해 그녀의 가방을 열어본다. 가방엔 엄청난 돈과 파란 열쇠가 있다. 

 

   한 남자가 선셋대로에 있는 윙키스라는 음식점에서 그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에게 자신의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는 자신의 악몽에서 끔찍한 사람을 봤으며, 그저 그게 꿈이기를 기대하며 그 장소를 확인하자고 한다. 그런데 꿈에서 본 일들이 그대로 벌어지고, 끔찍한 형상의 사람을 보자, 그는 공포에질려 쓰러지고 만다. 

 

   서툴어 보이는 해결사(킬러?)가 그날 끔찍한 차사고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 사람을 죽이고 전화번호부를 훔친다. 그는 떠나면서 실수로 두 사람을 더 죽인다. 그리고 그는 동료와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며, '검정 머리를 한 좀 나이든' 새로 온 창녀가 있는지를 탐문하고 다닌다.   

 

   영화 감독 아담 케셔(저스틴 테록스)는 자신이 감독하는 영화에 카밀라 로즈(멜리사 조지)라는 여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라는 압력을 받는다. 요구를 거부한 아담이 집에 도착하자 그의 아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고 있었고, 그는 집에서 쫓겨난다. 호텔에서 머무는 중, 그는 자신이 파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카우보이'라는 미스터리한 사람을 만난다. 카우보이는 카밀라 로즈를 주연으로 영화를 찍으라는 말을 하고, 잘 행동하면 자신을 한 번 보겠지만, 잘못 행동하면 자신을 두 번 볼 거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베티와 리타는 리타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차량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들은 윙키스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리타가 주문을 받는 웨이트리스의 명찰에 적힌 이름 '다이앤'을 보고 '다이앤 셀윈'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낸다. 그들은 전화번호부에서 다이앤의 이름을 찾아내 전화를 걸지만, 그녀는 받지 않는다.  

 

   베티는 밥 부커가 감독할 영화 오디션을 보고 엄청난 찬사를 받는다. 그 자리에 있던 캐스팅 감독이 그녀를 아담이 감독하는 영화 <실비아 노쓰 이야기(The Sylvia North Story)> 세트장에 데려간다. 세트장에선 카밀라 로즈의 오디션이 진행되는 중이었고, 아담은 "이 여자에요"란 말을 한다. 그 말과 동시에 베티와 아담은 서로 끌리는 듯이 쳐다보고, 베티는 약속이 있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베티와 리타는 다이앤 셀윈의 집에 찾아 갔으나 그녀는 응답하지 않는다. 그녀의 집에 몰래 들어간 베티와 리타는 죽은 다이앤의 시체를 발견한다. 공포에 질린 리타는 집에 돌아와 머리를 자르고, 베티는 그런 그녀에게 금발 가발을 씌운다. 그날 밤 그들은 서로 사랑을 나누고, 베티는 리타에게 사랑한다고 한다.   

 

   새벽 2시 리타가 갑자기 일어나 베티와 함께 실렌시오 극장으로 간다. 그곳은 퍼포먼스 극장이고, 사회자는 '모든 음악은 녹음되었으며, 모든 것은 환상'이라고 얘기한다. 퍼포먼스가 시작하고, 한 여인이 노래를 부르는 도중 쓰러지지만 노래는 계속 흘러나온다. 순간 베티는 그녀의 지갑에서 파란 상자를 찾아낸다. 집에 도착해서 리타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파란 열쇠를 꺼내고 베티를 부르나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리타가 홀로 열쇠를 꽂아 상자를 열자, 상자는 갑자기 떨어지고 사라진다. 

 

 

3-2. 후반부 - 혹은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이야기 

   상자가 떨어지자, 앞서 떠났던 빨간 머리의 여인이 방에 들어와 방 주위를 둘러보지만, 방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화면 전환. '카우보이'가 다이앤 셀윈의 방에 들어와서 "이봐, 아가씨. 일어날 시간이야."라고 얘기한다. 두 번의 화면 전환 후, 다이앤 셀윈(나오미 와츠-베티)이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녀는 외롭고 우울한 실패한 여배우고, 성공한 여배우 카밀라 로즈(로라 엘레나 헤링-검정 머리 여자/ 리타)와 사랑에 빠졌지만, 카밀라는 다이앤을 거부한다. 

  

   카밀라의 초대로 다이앤은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있는 아담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한다. 아담은 성공한 감독으로, 카밀라와 사랑에 빠졌다. 리무진은 집에 도착하기 전에 멈추고, 갑자기 나타난 카밀라가 다이앤을 지름길로 인도하며 에스코트 한다. 저녁을 먹는 동안, 다이앤은 자신이 이모가 돌아가신 후, 배우가 되기 위해 캐나다에서 헐리우드로 왔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실비아 노쓰 스토리> 오디션 장에서 카밀라를 처음 만나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그 때 다른 여인(멜리사 조지- 카밀라 로즈)이 카밀라에게 속삭이고 키스를 하며 다이앤을 쳐다본다. 질투와 분노에 몸서리치는 다이앤. 그 때 아담과 카밀라가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서 서로 킬킬거리고, 화면은 갑자기 선셋대로 윙키스 레스토랑으로 바뀐다.  

 

   다이앤은 그곳에서 해결사(청부업자)를 만나고 있다. 그녀는 카밀라 로즈의 사진과 돈을 주며 살인을 의뢰한다. 그 때 웨이트리스가 주문을 받는데, 그녀의 이름은 '베티'다. 해결사는 자신이 일을 끝내면 파란 열쇠를 찾으라고 이야기한다. 다이앤을 고개를 들어 보니, 카운터에 악몽을 꿨다는 사내가 서 있었다.  

 

   화면은 그녀의 집으로 바뀌고, 파란 열쇠가 보인다. 그녀는 자신을 죽이려는 노부부의 환각에 몸서리치며 서랍의 권총을 꺼내 침대에서 자살한다. 

 

 

4. 전반부 - 실제 벌어진 일, 후반부 - 베티의 꿈

   파일럿이 제작된 순서대로 전반부의 이야기를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로 보고, 후반부 부분을 베티의 '환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다이앤의 시체를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온 후, 베티와 리타가 사랑을 나눈 후, 리타가 자면서 "실렌시오."라고 말을하는 장면부터 영화 끝까지를 얘기한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정확하게 대구가 되어 있다. 리타가 "실렌시오"라고 얘기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영화의 끝, 실렌시오 극장에 앉아 있는 한 관객이 "실렌시오"라고 얘기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그러니까 이 "실렌시오" 이야기는 자기 완결성을 가진 이야기다.  

 

"실렌시오"로 시작해 "실렌시오"로 끝난다

 

사회자가 파란 조명과 연기가 올라오면서 사라지고 공연이 시작된다. 다이앤이 자살하고 파란 조명과 연기가 올라오면서 사라진다. 그 다음 장면은 "실렌시오"극장의 텅빈 객석으로 바뀐다.

 

   리타의 기억의 단서인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다이앤 셀윈, 그리고 다이앤이 죽은 것을 확인했을 때 리타의 반응, 리타와 사랑에 빠진 베티 등 리타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을 겪은 베티가, 자신이 오늘 겪었던, 밥 부커 감독의 연기 오디션, <실비아 노쓰 스토리>의 오디션과 아담 케셔, 카밀라 로즈를 보고온 기억이 꿈에서 재구성되어 벌어지는 일로 볼 수 있다. 말이 안돼지만,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다. 꿈에는 논리가 없는 법이니까. 

   그런데 이렇게 간단하게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전반부가 현실이고 후반부가 베티의 꿈이라면, 현실에서 벌어난 베티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어떻게 베티의 꿈에서 아귀가 맞게 벌어질 수 있을까? 분명히 전반부는 전지적 시점인데, 후반부는 1인칭 시점이다. 그렇기에 또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5. 전반부 - 환상, 후반부 - 사실 

   영화가 시작한 후, 크레딧이 오르기 전에 두 장면이 나온다. 하나는 댄서들이 지르박 춤을 추면서 베티의 얼굴이 나오는 것이고, 그리고 한 여인(아마도 다이앤으로 추정되는)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흐느끼는(혹은 무언가를 흡입하는) 소리가 들린다. 앞선 해석은 이 두 장면을 빼놓았는데, 이 장면이 들어가면 영화의 이야기 구성이 달라지게 된다. 이 장면에서부터 영화가 시작했으니까. 이렇게 놓고 보면, 앞서 풀리지 않았던 실마리가 해소된다.

다이앤은 윙키스 레스토랑에서 '베티'라는 이름을 보고 환상에서 자신의 이름과 베티를 바꿔치기 한다. 

 

 

현실에서 카밀라와 사랑에 빠지는 성공한 감독 아담 케셔는 다이앤의 환상에서는 카밀라의 캐스팅을 거부한다. 그런 그가 집에 가니, 아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고 있다. 환상속에서 다이앤은 아담에게 그녀만의 방식으로 복수한다. 

 

다이앤이 카밀라를 만난 것은 <실비아 노쓰 스토리> 오디션 장이었다. 다이앤은 주인공을 원했으나, 감독은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고, 그 역은 카밀라에게 돌아갔다. 그렇기에 다이앤의 환상속에선 어떤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영화의 캐스팅(특히 여주인공)을 결정케 했다. 

 

카밀라를 죽여달라는 청부를 하는 다이앤은 이 사람이 영 미덥잖게 보인다. 그녀의 환상속에서 그는 어설픈 킬러로 나와 일을 처리한다. 

 

살인을 청부하는 다이앤이 윙키스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한 사내가 무섭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이 사내는 다이앤의 환상 속에서 악몽을 꾸는 남자로 분한다.

 

   후반부의 시간은 다소 꼬여있다. 처음 다이앤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카밀라가 죽어있을 때이다. 경찰이 그녀를 찾아왔다는 이웃의 말에,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는 계속 과거의 회상장면을 보여준다. 후반부가 과거의 회상장면이라는 것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피아노 모양의 재털이'와 킬러가 준 '파란 열쇠'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정리해본다면, "카밀라에게 차인 다이앤이 청부해서 그녀를 죽이고, 약에 취해 환각을 경험한 다이앤은 죄책감으로 자살을 한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즉, "사실 → 환상 → 사실"의 순으로 영화를 꼬아놔서 보여준 셈이다. 

   그런데 또 이렇게만 해석할 수 없다. 이 영화가 1인칭 시점의 영화라면, 다이앤이 죽고 난 후 나오는 "실렌시오"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군더더기라고 여긴다면, 영화 앞부분의 장면도 군더더기라고 볼 수 있다. 

 

 

6. 전부 현실 

   다른 사람의 영화에서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데이빗 린치의 영화라면 그것도 가능한 해석이다. 파란 상자를 돌리자마자 갑자기 세계가 돌아가고 각자 자아는 사라지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 데이빗은 이미 이런 이야기를 <로스트 하이웨이(Lost Highway)>에서 비슷하게나마 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파란 상자와 파란 열쇠가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할텐데, 데이빗 린치는 그의 저서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에서 그것들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난 상자와 열쇠가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ㅡ.ㅡ;;;) 

 

 

 

7. 전부 환상

   차라리 이렇게 보는 게 속편할지 모르겠다. 꿈에는 논리가 없으니까. 

 

 

8. This Magic Moment 

   영화의 해석과는 별개로,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는 사람을 빨려들게 하는 마법같은 순간이 있다. 가짜가 진짜같이 느껴지는 '마법'같은 순간인데, 이 영화에서는 (영화의 내용과는 별개로) 두 번 그런 장면이 나온다.  

 

 

   베티가 리타와 함께 집에서 오디션 연습을 하는 장면은 충분히 가짜스럽다. 그런데, 같은 오디션 장면인데도, 베티가 배우와 연기를 하는 모습은 마치 '진짜 상황'인 것처럼 몰입하는 힘이 있다. 가짜가 진짜처럼 보이는 힘은 '영화'라는 매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정말 중요하고 인상적인 장면인데, 극장 상영 시에는 잘렸다. 영화가 끝나고 꽤 많은 사람들이 분개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렌시오 클럽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는 립싱크다. "밴드는 없습니다. 오케스트라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녹음된 것입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고 한 여인이 나와 노래를 부른다. 그녀의 노래는 정말로 아름답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던 중 그녀는 갑자기 쓰러지지만, 노래는 계속 흘러나온다. 그 자체가 가짜인줄을 아는데도, 관객들(우리들)은 눈물을 흘리는 감동을 느낀다. 어쩌면 데이빗은 영화라는 매체가 순 가짜 투성이지만, 그 순간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9. 마무리 

   어쩌면 이 영화는 "내 인생의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유희나 퍼즐이 아닌, 영화라는 '매체'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 영화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볼 때마다 달라지는 희안한 영화. 데이빗의 영화는 내게 있어서 그렇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uknowho 2010-02-19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심층적이면서 다양한 해석과 설명이 가득한 리뷰,고맙네요.
이 영화 보고 이렇게 정리하느라 머리깨나 멍하셨을 듯!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우선 리타가 파란박스에 키를 넣기 까지가 현실입니다.
그리고 후반부는 전반부의 베티(나오미 왓츠)의 환상같은 상상부분이죠.
베티가 나름대로 전반부의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게 후반부인거죠.
첫번째,어떻게 리타가 사고를 당했나?
두번째,리타와 함께 찾아갔던 다이앤은 어떻게 죽은 것인가?
이 두가지에 대한 답을 베티가 상상했던 게 아닐까...
전반부에 리타의 실체를 살짝 언급했던 부분이
어설픈 킬러가 거리의 창녀한테 탐문했던 부분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베티의 상상과 달리 리타는 "검은머리의 나이든 창녀"였던 게 아닐까...
반면에 전반부가 환상이고 후반부가 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과할 정도로 화려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환상에 가깝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또한 전반부에 베티가 만난 인물들이 후반부에 다른 인물들로 차용되었다는 게
후반부가 환상일 가능성에 힘을 실어줍니다.
예를 들어, 영화 감독의 경우 리타와 사랑에 빠지는 연적으로,
맨션 관리인 코코는 감독의 어머니로, 오디션 구경할 때 봤던 낙점 여배우
카밀라 로즈는 리타의 숨겨진 연인으로 등장하고
리타가 차 사고를 당한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파티가 열리는 위치로 차용됩니다.
마치 베티가 주연과 각본, 감독을 해서 완성해낸 한편의 영화라고나 할까요...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후반부가 픽션의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건
이미 전반부에서 등장 인물들과 그 관계의 설정이 관객들에게 더 현실적으로
확정된 후에 후반부를 접하게 되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훌륭합니다.
우선 영화를 보고난 후, 누구라도 머리를 굴리게 만드는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어이가다 보면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어떤 접점을 만나게 됩니다.
한마디로,이 영화는 독립된 전반부와 후반부가 각각 분리되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수많은 연결고리들로 이어지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케 합니다.
첫번째,킬러가 갖고 있어야할 가방속 현금과 열쇠를 어떻게 리타가 갖고 왔을까?
가방속에 리타의 신분증이나 어떤 소지품도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그 가방이 리타보다는 킬러의 소유일 가능성이 더 커보입니다.
그렇게 보면,후반부의 베티의 추리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전반부와 이어지게 되는 거죠.
두번째,전반부에 엄한 사람 2명을 잡으면서까지 킬러가 손에 넣으려고 했던 전화번호부가 후반부에 베티와 윙키스에서 접선하는 씬속 테이블에 놓여있습니다.
저는 과연 그 전화번호부가 왜 그리 중요했을까?
영화를 수차 보면서 그안에 과연 어떤 정보가 있는 것인지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는데
그게 전날밤 리타의 차 사고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 역시 어떤 면에서 후반부와 상통하는거죠.
그 외에도 "숨은 그림 찾기"나 "수수께끼"처럼,
이 영화에는 전반부와 후반부가 현실과 환상의 충돌로 빚어지는 면면이 숨어있을 거라는
(감히)짐작-머리의 용량 한계로 다 찾아 내지는 못하고-만으로도 재미와 매력이 가득한 영화로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데이빗 린치의 영화는 늘 흥미롭습니다.
뭔지 모를 섬뜩함이 우리의 일상과 밀접해있음을 그가 보여줄 때면 더더욱 감탄스러운 소름이 돋는 법입니다.
리타가 박스에 키를 넣으려고 옷장에서 상자함을 꺼내기 전에는 베티가 서있다가
리타가 돌아서서 상자함을 침대에 놓을 때 이미 베티가 화면에 사라진 걸 보고
일순간 뜨악했습니다. 그리고 여지없이 리타가 베티를 부르며 찾더군요.
(이 장면에서 촐싹맞게도 저는 베티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
리타의 상상으로 표출된 무의식의 또다른 자아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해봤습니다.)
여튼, 어떻게 그런 미묘한 느낌을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줄 수 있는 건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 데이빗 린치 이야기의 특성상 그럴 수도 있겠지만 놀라운 장면이었습니다.
또한 베티가 공항에서 따뜻하게 헤어졌던 노부부를 리무진에서 웃는 장면에서는 전혀 상반된 어떤 악마성을 느끼게 해주었던 것도 감독의 독특한 재주로 꼽고 싶습니다.
저역시,실렌시오 클럽의 무대는 감독이 갖는 영화에 대한 생각을 대변해주는 듯 합니다.
모든 게 실황이 아닌 녹음임에도 눈물 짓게 할 수 있는 영화의 힘(?)이
데이빗 린치의 미스터리 영화에선 눈물 짓게 하는 힘이 머리 쓰게 하는 힘으로 변환 되는 게 아닐까 싶네요.
또한 이번 상영시 극장에서 삭제했던 베티가 오디션 보는 장면도
어떤면에선 영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감독의 의도가 내포되 보입니다.
비록 연습 상대인 리타의 어설픈 연기도 이유일 수 있지만 그 보단 영화란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똑같은 인물과 대사도 180도 바뀔 수 있는 변이성을 가진, 마치 생물과 같은 존재로 보고 싶은 감독의 의미를 표현한 게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내 영화를 제대로" 봐주길 바란다는 "추신" 같은 장면을 편집했다는 데
이번 극장상영의 아쉬움을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Seong 2010-02-22 09:15   좋아요 0 | URL
어리석은 글에 현명한 글을 남겨주셔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데이빗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찾기 힘든데, 이렇게 친히 긴 글을 남겨주시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
어떻게 보아도 무방한 영화를 만든 것 같아요. 반복되는 '교집합' 부분을 중심으로 영화를 해석하고 싶지만, '여집합'부분이 또 나름 영화로써 작동을 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본 사람이 알아서 스스로 받아들이는 영화' 데이빗의 영화는 그런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novio 2010-02-25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빗 린치 감독의 작품이라면 굉장히 어려운 영화겠네요. 그리고 이번 리뷰글은 무척 생활 속의 일상도 함께 담겨 있는 정겨운 글이네요. 즐감했습니다. ^^

Seong 2010-02-26 11:34   좋아요 0 | URL
독특한 영화일뿐,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