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 - Milk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카스트로 거리의 시장 

   하비 밀크에 관한 영화 <카스트로 거리의 시장>은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자본론>, 오손 웰즈 <로미오와 줄리엣> 등의 목록과 같이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의 "불가능 프로젝트"로 알려져왔다. 지금은 사라진 영화잡지 『KINO』 1997년 6월호에 보면 <16명 감독의 이루지 못한 꿈의 프로젝트>에 대한 특집 기사가 실렸는데, 그 중 한 페이지가 구스 반 산트의 영화에 할애됐다. 1997년에도 그는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10여년간의 세월을 고군분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2008년에 이르러서야 이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이 든다. 그가 이 영화를 끝으로 다시는 영화작업을 하지 않거나, 만들더라도 범작에 가까운 영화가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기우' 따위는 던져버리고 '지금'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구스 반 산트의 필생의 역작인 하비 밀크에 관한 영화 <밀크>는 20여년의 시간동안 숙성된 그 기대치에 맞게 나온 영화다. 

 

2. 실화 

   하비 밀크(Harvey Bernard Milk)는 1930년 5월에 태어났다. 뉴욕에 살던 회사를 그만두고 샌프란시스코로 옮긴다. 그 자신이 게이였던 그는 게이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시의회 선거에 뛰어든다. 3번의 낙선끝에 기적적으로 당선한 그는, 동성애자의 권리를 제한하려는 '6번 법안'을 막아낸다. 그러나 1978년 11월 동료 시의원 댄 화이트에게 저격 당해 생을 마감했다. 영화 <밀크>는 정치인 하비 밀크의 인생을 그렸으며 사실과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3. 정치인 

   하비의 모습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그는 정치와 대중이 어떤 속성을 가졌는지 정확히 파악한다. 그는 카스트로 거리의 동성애자들을 하나의 세력으로 규합하여 그들의 힘을 보여준다. 연대와 불매라는 강력한 힘을 발휘해 전체로서의 그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세력으로 규합한다. 시의원이 돼서도 그는 정치적 쇼맨쉽을 어김없이 발휘한다. 6번 법안의 조례가 통과하자 분노한 동성애자들의 행진을 교묘히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능력을 광고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정치적' 거짓말과 협박 또한 서슴없이 내뱉는다. '정치'라는 것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행위 아닌가? 그는 영락없는 정치인이다. 

 

4. 게이 스테레오 

   하비의 모습이나, 그의 주변을 가득 메운 게이들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게이'들의 모습이 나온다. 다른 감독이었다면, 이같은 묘사에 비판이 갈 수도 있었겠지만, 구스 반 산트 역시 '오래전에 드러낸' 게이 아닌가. 오히려 이런 스테레오 타입의 묘사는 그가 취재한 '실제 모습 그대로' 그렸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귀여운 남자들을 보면 음탕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하비의 모습이나, 그의 난삽한 사생활은 그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가 간디같은 인물이었다면, 우리는 그를 존경했을지언정, 이렇게 친근감있게 바라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 또한 지루했겠지. 

 

5. 희망과 삶

   이런 불완전한 사람이 정치로 역설하는 것은 의외로 소박하다. 소박하지만 당연한 것. 그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 말이 어디 한 번 제대로 실천된 적이 있었나? 기독교 원리주의의 시선으로 자신들과 다른 소수자들은 모두 '악의 세력(evil forces)'이라 거리낌없이 지껄이는 70년대 미국. 하비가 얘기한 것은 간단했다.  

   
 

지금은 게이들에 대한 탄압이지만, 내일이면 흑인, 장애인, 노인, 동양인의 문제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즉, 6번 법안과의 싸움은 '게이'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입니다. 희망이 없으면 ‘우리’는 무너집니다. 희망만 갖고는 살아갈 수 없지만 희망이 없으면 삶은 가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들에게 희망을 줘야 합니다.

 
   

  하비의 저 말은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타자를 몰아내는가. 우리들이 기를 쓰고 하루를 버텨내는 것도 저 타자에 속하지 않기 위해서, 힘있는 기득권에 속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것 아닌가. 하비의 말대로 "희망만 갖고는 살아갈 수 없지만 희망이 없으면 삶은 가치가 없다." 우리의 삶은 희망이 있는지, 가치가 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6. 촛불 

   그는 죽었다. 그는 죽었지만, 그가 죽음으로써, 그가 끊임없이 주장해왔던 동성애자 권리문제가 수면위로 급부상했다. 그가 죽은날 3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행진했다. 하비 밀크는 죽었지만, 그의 뜻을 간직한 3만명의 시민들은 또 다른 하비 밀크가 될 것이고, 그들은 그렇게 늘어날 것이다. 

   1978년 11월 27일의 촛불은 아직도 꺼지지 않고 제 몸을 태우며 빛을 내고 있다. 우리의 촛불 또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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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3-08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군요.
리뷰를 읽으면서 삶 자체가 파란만장 했겠구나 라고 느끼는 것은 저 만이 생각일까요?

Tomek 2010-03-08 18:28   좋아요 0 | URL
실제로 파란만장했지요. 그저 편하게 애인과 알콩달콩 살 수도 있었는데, 그 대책없는 낙천성과 분노가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