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Alice in Wonderland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후일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난 이 영화가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의 영화 버전인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야 깨닫게 됐다. 이 영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를 경유한 그 후속편이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이 영화는 1991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들었던 『피터 팬(Peter Pan)』의 속편격인 <후크(Hook)>의 경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2. 성장담 

   원작에서는 앨리스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제대로 된 원작을 읽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가 읽은 판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린 소녀의 백일몽같은 이야기에 굳이 시대상황을 넣을 이유는 없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훌쩍 커버린 앨리스(미아 와시코우스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가 다루는 시대는 빅토리아 시대다. 이 기간에 영국에선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수많은 식민지를 점령했다. 귀족들의 권위를 나타내는 수많은 격식과 그 이면에 드러나는 난삽한 모습들이 앨리스의 눈앞에 펼쳐진다. 그녀 역시 관심없는 남자와의 청혼으로 자신의 인생을 저당잡힐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숨막힐듯한 세상에서 그녀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영화는 현실에서 머뭇거리는 앨리스를 부쩍 자라게 할 장을 마련한다. 현실에서는 자신이 결혼할 상대를 결정할 수 조차 없는, 시대의 분위기에 짓눌린 피동적인 소녀이지만, 원더랜드에 들어가고 나서는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을 한다. "이건 꿈이야. 꿈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3. 신경쇠약 직전의

   처음 원작을 접했을 때 '이상한 나라'에 사는 존재들에 대한 느낌은 '맛이 갔다'는 느낌이었다. 모두들 비이성적인 행동과 말을 해대는 말 그대로 '이상한' 존재들. 하지만, 팀 버튼이 그린 이상한 나라(영화에서는 '원더랜드'와 '언더랜드'를 혼용하며 사용하고 있다)의 존재들은 맛이 갔거나 미쳤다기 보다는 '히스테리컬'하게 보인다. 영화상에서 보여지는 내용이 붉은 여왕(헬레나 본햄 카터)이 하얀 여왕(앤 해서웨이)을 물리치고 공포 정치를 펼치는 것이라 그런지 앨리스가 처음 만난 하얀토끼나 쌍둥이 형제들의 모습이나, 모자 장수(조니 뎁)와 그 일당들에 대한 묘사는 '분노' 때문에 정신이 홱 가버렸거나, 갑자기 들이닥치는 '공습'때문인지 '신경쇠약 직전'의 모습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는 전쟁에 대한 '공포'가 깃들여 있고, 이 나라의 존재들은 그 공포에 거의 정신이 나가 있는 상태다. 

 

4. 기시감(旣視感, Déjà Vu) 

   팀 버튼의 영화를 계속 봐왔던 사람들이라면, 영화를 보면서 익숙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통로의 나무는 <크리스마스의 악몽>과 <슬리피 할로우>에서 본 나무와 같다. 하트 기사(크리스핀 글로버)의 등장은 <슬리피 할로우>의 호스맨이 생각나고, 모자 장수의 마지막 춤은 <비틀 쥬스>의 비틀 쥬스를 연상시키며. 하얀 여왕은 <슬리피 할로우>의 아보카드의 모친(리사 마리)이 떠오른다. 시종일관 "목을 베라"는 붉은 여왕의 명령은 <비틀 쥬스>, <크리스마스의 악몽>, <화성침공>, <슬리피 할로우>, <스위니 토드>의 '잘린 목'들이 연상되고, 아버지에 대한 이해는 <빅 피쉬>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떠오른다(물론 이것도 그가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나타난 것이다. 이전까지 그의 영화에서 '아버지'란 존재는 부재 혹은 제거의 대상이었으니까). 이런 익숙한 이미지들의 나열로 영화는 루이스 캐럴의 비전과 팀 버튼의 비전이 합쳐지는 결과를 낳는다. 이 결과가 훌륭한지는 모르겠다. 새롭다기 보다는, 너무 '안전하게' 익숙하다고 할까? 조금 더 팀 버튼스럽게 밀고 나갈수도 있겠지만, 엄청난 제작비와 전연령 등급의 제한은 그에게도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했을 것이다.

 

5. 붉은 여왕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앨리스도, 모자 장수도 아닌, 붉은 여왕이다. 그녀의 대사는 그리 많지 않은데, 그나마도 "목을 베라(Off the head)!"는 말 뿐이다. 하지만, 이 짧은 말 속에서 붉은 여왕의 도도함, 냉혹함, 우아함, 행복감등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목을 베라(Off the head)!"는 말보다 "저들의 목을 베라(Off the heads)!"라고 말할 때 그녀의 행복지수가 조금 더 상승함을 느꼈다면, 그걸 받아들이는 내가 이상한 걸까? 

 

6. 『나니아 연대기』를 경유한 성장담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재바워키와 싸운 용감한 기사는 앨리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 기사를 앨리스로 만들었다. 앨리스는 재바워키와 싸움으로써 원더랜드의 판세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현실 세계에서 가상 세계로 들어가 그 세계의 변화에 일조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나니아 연대기』에서 접했던 내용이다. 얼핏보면 뜨악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앨리스의 성장담이라는 내용면에선 잘 각색한 부분으로 느껴진다. 그녀는 이 싸움으로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선택에 따르는 것'이란 간단하지만 실천하기 힘든 명제를 온몸으로 체득하니까. 원더랜드에 평화를 가져온 앨리스는 이제 진짜 '원더 랜드'로 모험을 떠날 것이다. 

 

7. 달콤쌉싸름한 결말

   현실로 돌아온 앨리스는 자신을 짓누르는 영국을 벗어나 '원더 랜드'로의 모험을 떠난다. 그녀의 목적지는 '중국'이다. 그녀는 중국에 가서 어떤 무역을 할까? 그녀가 아편전쟁에 연루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만, 역사는 이미 기록되었다. 현실의 앨리스는 자신의 꿈을 펼치지만, 그녀의 무대는 '원더 랜드'로 시작해 '엠파이어'에서 끝낼 것이다. 이 영화가 마냥 달콤하지만은 까닭이다. 이런 결말도 '팀 버튼'스럽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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