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 줌파 라히리의 첫 산문집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는 탄생기 부터가 좀 이색적이다. 그녀는 이십여년전 떠난 이탈리아 여행에서 그들의 말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마치 새로운 세상에 봉착해 버린 듯 사랑하게 된 모양이다. 그 이래 말을 배우고 급기야 이주를 강행할 만큼의 열의로서 살아왔다. 이러한 주요한 시간들이 이 책에 담긴 내용인 것이다.
이미 명성을 얻을 대로 얻은 작가의 이력으로 완전히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모국어가 아닌 조금은 더딜 수밖에 없는 실력으로 굳이 글쓰기를 해야만 한 이유들은 그 자체만으로 굉장한 모험처럼 들린다. 아마 그녀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즐거운 마음으로 첫 산문집을 완성해 내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는 진즉에 읽어보고 싶었지만 작가의 단편소설 정도라도 접해 본적이 없어서 산문으로 먼저 대면하게 되는 것이 어떨지 묘한 기대가 든다. 사실 영어로 썼든 이탈리아어로 썼든 번역되어 읽는 우리는 그 미묘한 차이와 매력을 알도리가 없다는 게 조금은 아쉬울 따름이다.
‘까칠하게 말할 것’이라는 말에 긍정의 끄덕임이 이면서도, 일면 태도는 즉 그 내용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면을 생각해보면 호의로서의 태도가 조금은 더 낫지 싶고, 이래저래 아리송해지고 만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까칠하게’라는 함의에는 세련되고 그럴 듯한 설득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는 건 자명한 핵심이다. 소통의 기술로서 좀 더 나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하고 오해 없이 이해받을 만한 원활한 대화법이 어떻게 발현될 수 있을지 연마해야 하는 것이다. 비슷하게 연상되는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철학과 조언들과는 어떤 부분에 차별화를 기대할 수 있을지 기대되기도 한다.
시를 거의 읽지 않아지는 것도 문제지만 남의 나라의 시는 더구나 읽는 일이 없다보니 현존하는 시인에 대한 정보가 현저히 낮다. 그러나 일본의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는 그 명성을 들어본 바 있고 방한했던 기억이 희미하게나마 있어 주의를 끈다.
물론 아는 바가 전혀 없다시피 한건 마찬가지인데 어린이를 위한 동화, 시를 쓴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시세계가 궁금해졌다.
여든이 넘는 작가의 이력으로 숱한 시론과 세계관이 이 책에 고스란히 전해졌을 생각을 해보면 참으로 귀한 공부가 될 것 같다. 시어가 번역될 때 온전히 전해지지는 않을 아쉬움들이 산문으로나마 설명되어 이해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배수아작가를 떠올리면 어떤 촘촘하고 내밀한 세계가 연상되고, 그렇기 때문에 미묘하게 올라오는 고요가 더해져 강한 개성이 느껴지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의 작품을 음악회로 비유한다면 긴 인터미션을 가져야 할 것 같은 그런 연주를 기대할 만 하다.
그렇지만 실상 작가의 작품들은 끊임없이 세상과 대면하며 전해져 오는 자신만의 울림들로 충실하다. 쉽게 말해서 하나의 작품이 또 탄생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들일 작가처럼 보이지만 그 정반대의 인상을 주는 작가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의 성실성이 매번 의외이고 감탄스러웠다.
이번 책을 보니, 몽골에 다녀온 모양인데 무척이나 동적이면서도 시적인 산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분명 또한번 거듭나게 했을 그 장소의 풍경과 생각들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그의 소설만큼이나 산문에서의 매력도 풍겨오는 다부진 인상처럼 명징한 인상이 있다. 몇 권의 산문들은 스테디셀러의 목록에 오를 만큼 꾸준한 공감과 동의를 얻고 있는데 이 책은 지난 글들과 새로 쓴 글을 묶어 새로 펴낸 것이다. 여전히 살아 나가야만 하는 삶의 거울들이 실려있다.
사실 그의 어떤 일면의 생각은 때론 반론을 제기하고 싶어질 정도로 맞지 않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을 향해 소리 높여 이야기하는 태도로서의 용기는 온전하게 힘을 발휘해주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힘겹게 펜으로 밀고 나아가는 작가 김훈을, 그리고 그가 그려내는 여러 삶을 응원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