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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평점 :
한 때 아르바이트의 일환으로 동화를 양적으로 많이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간에 얻은 게 좀 많다. 국내외 훌륭한 작품들로만 선별해 읽어서였을 수도 있지만, 무얼 읽든 자체만으로 완전한 기쁨일 수 있던 적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워낙 어릴 때는 책 자체에 흥미를 갖던 어린이도 아니었지만, 설사 읽은 기억이 있는 작품이라도 다시 보니 확실히 다른 게 보였고 사실상 처음 읽는 듯이 모든 게 새롭고 훌륭해 보였다.
갖던 편견을 버리게 된 것, 거의 모든 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든 것들은 아동문학이 문학 안에서 갖는 어떤 중요한 지점들을 복기하게 해주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난 지금 여전히 동화를 읽는 어른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헤아려 보니 한창 읽던 시기 이후 동화를 많대 봤자 열권 미만 정도로 읽은 정도인 게 다일까.
물론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 사람이라도 부러 동화를 찾아 읽는다던가 하는 일은 흔치 않을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발견의 기쁨인 듯이 몰입하고 열광하기까지 했던 내가 다시 한 장르를 통째로 망각해 버렸다면 한심하기 짝이 없을 일이다.
굳이 변명이라고 한다면 지금 당장의 삶과는 좀 먼, 괴리감이란 말로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서적 고요를 안겨주던 이야기들이 그런 식의 이유로 어느새 잠재워져서 여간하면 일지 못할 영역으로 즉 관심 밖 세상으로 영 밀려나 버린 것이다.
소설, 에세이, 인문학, 과학, 예술, 잡지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자 노력하면서도 왜 유독 아동문학은 배제되고 마는 것일까. 아동문학이 다른 장르와의 경쟁에서 뒤쳐진다는 것은 비단 내 개인적 취향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아동문학계가 안은 문제 중에서 이러한 외면의 아쉬움이 분명 존재하리란 생각이 든다.
조심스럽게 생각해보면 이는 아동문학을 통해 보여주려는 어른들의 어떤 특정한 면 때문에 다양화의 실패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말하자면, ‘어린이들에게 무조건 아름답고 창의적이며 옳고 좋은 면만을 부각시켜서 보여주려는 어른들의 태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과연 긍정만이 좋은 어린이로 성장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거의 모든 아동 문학에서의 결과는 세상의 소외를 말할 때조차도 양쪽 어떤 면이든 아름다운 면만을 비추는 비약이 있다.
물론 좋은 것만 보이고 싶은 부모들의 순진한 배려 때문이겠지만 정작 어린이들의 마음은 어떤가. 직접 쓴 시나 일기를 들여다보면 싫은 것, 불만투성이들로 그들의 눈이 이미 세상을 그리 아름답게만 보지 않다는 걸 어른들은 모르지 않는다.
어른이 생각하는 막연히 이상적인 것들만 작정하고 보여줘도 어린이의 마음에는 참으로 다양한 감정들이 돋아나 이러저러한 잣대로 판단된다. 한없이 좋고 긍정적이고 희망 찬 세상 보다는 보다 더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데 큰 방점을 두어야 광의적 태도로 접근할 수 있다. 분명 아이들도 이면의 두려움, 불안, 부정성, 슬픔 등 행복이 아닌 귀결의 이야기도 힘들게 부딪힐 힘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세상이 한없이 아름다운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종종 불행이나 아쉬움의 감정, 슬프게 끝나는 작품도 있지만 그런 책들은 넓게 읽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좀 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아동문학이 만들어진다면 또 그만큼 남녀노소 사랑받을 만한 이유는 충분해질 것이다.
서한집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을 읽으니 아동문학에 대한 여러 문제들이 떠오르면서 좀 더 확장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과 평론가 이오덕 선생이 편지로 나눈 30년의 우정은 참으로 위대한 인간의 면을 다해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두 분이 살아 계실 적만큼은 아동문학의 발전을 위해 진심을 다하는 노력이 찬란하던 시기였노라고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두 사람의 태도는 속물주의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아이들이 동화를 읽게 되기를 희망하고 삶의 현명함을 가지도록 인도하는 진정한 선생의 모습이었다.
아동에게 아동문학은 과연 왜 필요한가? 그것은 우리가 어른이 되어도 결코 잃지 말아야할 인간의 근본을 가르치기 위함은 아닐까.
부모는 좋은 책에 내재된 삶의 아름다움과 가치들을 가장 이상적 삶이라고 가르치지만 정작 그 아이가 커서 가치적 삶을 살고자 한다면 과연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부모는 몇이나 될까. 동화 속과는 상반된 삶을 지향하고 쫓게 된 어른들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그러한 삶이 이상적 가치에 불과한 것이라 꾸짖는 일 뿐일 것이다. 전혀 상반된 가치의 불균형으로 아동문학은 너무 무구하다는 편견 속에, 현실의 괴리를 안은 점점 도태된 장르로 치부돼 버린 것 같다. 옳고 가치 있는 일이 어리고 순진할 때야 믿고 따르는 일이라는 것은 비겁한 어른이 되고만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 책에서 나눈 이오덕, 권정생 선생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느낄 수 있던 점은 과연 어른이 되어서도 웬만한 유혹에 굴하지 않으며 강직한 믿음을 밀고 나가는 힘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진정 아이들이 꾸려갈 사회가 타인을 배려하고, 보이지 않는 소중한 가치를 실천하며, 희망을 갖는 어른으로 살게 되기를 몸소 보여주는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두 사람의 사소하고도 진실한 배려나,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눔, 이러한 진정한 미덕은 참으로 위대했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유언대로의 그 가치들도 다양한 방편으로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돌아보면 권정생 선생의 작품은 남녀노소 모두 동화를 사랑했던 유일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언제고 삶의 의미를 새삼 복기하고 싶어질 때, 다시 꺼내 읽어보게 될 것 같은 따뜻한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