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는 대공황 이래 최악의 침체기에 취업 시장에 들어왔다. 빚을 짊어진 채 재산을 모을 수 없는 상태로, 급여가 낮고 발전 가능성도 없는 일자리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부모, 조부모, 심지어 손위 형제들마저 누렸던 재정적 안정에 결코 다다르지 못했다."

얼마나 열심히 일했든, 얼마나 오래 일했든, 얼마나 몸 바쳐 일했든, 얼마나마음을 썼든 이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우리를 위해 준비된 로드맵이???가다 보면,바로 여기에 도착할 거라고 약속했던???어떻게 이 지경까지 잘못될 수 있는지, 얼마나 외롭고 황망한 길인지 알아버렸으니까.

우리는 일자리가, 혹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회사가, 오래갈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언제든 빚더미의 폭풍에 집어삼켜질 거란 두려움 속에 산다. 우리는 출산과 육아에서,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에서, 삶의 재정 문제에서, 일종의 평형 상태를 유지하고자 고투하다가 결국 나가떨어지고 만다. 그렇게 우리는 불안정에 길들여졌다.

밀레니얼, 특히 백인 중산층 밀레니얼은 자신이 불안정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서사를 믿지 못하게끔 길러졌다. 앞선 세대처럼 우리도 능력주의와 예외주의를 먹고 자랐다. 우리 모두는 각자 흘러넘치는 잠재력을 품고 있으며, 그 잠재력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건 오로지 노력과 전념뿐이라고 믿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현재 인생에서 어떤 지위에 있든, 결국엔 안정성을 쟁취할 거라고 믿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오래전부터 이미 밀레니얼 세대는 이 서사가 얼마나 공허하고 심히 환상적인지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동료들에게,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사설과 자기계발서에서 이 판타지를 계속 들려주는 이유도 이해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그만두면 망가진 게 아메리칸드림뿐만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라는 걸 인정하는 셈이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백인, 중산층, 시민권자라는 특권 없이 살아온 사람들에겐 새로울 것 하나 없는 말이다.

미국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이제야 자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평생 이 사실을 알고 한탄해 온 사람들도 있다.

팬데믹의 한가운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코로나19가 위대한 정리자라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코로나19는 당신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누가 중요한지, 무엇이 필요고 무엇이 욕구인지, 누가 남을 생각하고 누가 자기 생각만 하는지 명확하게 정리해 주었다.

우리의 일터는 전에도 시궁창이었고 불안정했다. 지금은더욱더 시궁창이고 불안정하다. 육아는 이전에도 피로했지만 지금은 더 피로한 일처럼, 완벽하기란 아예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진다. 끝없이 일해야 한다는 느낌, 24시간 내내 터져 나오는 뉴스들이 내면을 질식시킨다는 느낌, 지칠 대로 지쳐 진정한 여가나 휴식, 혹은 그 비슷한 것에도 접근할 수 없는 느낌 또한 그러하다. 다가올 몇 년 동안 우리가 겪을 코로나19의 여파에도 밀레니얼 세대와 번아웃의 관계, 연료를 지피는 불안정은 변함없을 것이다. 그나마의 변화라면, 번아웃이 우리 세대의 정체성에 더 깊게 뿌리내린다는 점 정도겠지.

앞서 이야기한 느낌들에 대해 행동을 취하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조건은 딱 하나다. 반박 불가능한 중심점. 단지 반성에 머무르지 않고, 이번 팬데믹이 우리에게 준 명확한 사실들과 그 뒤에 남을 잔해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일상을 디자인할, 새로운 삶의 방식을 건설할 기회다. 문자 그대로의 유토피아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일과 개인적 가치와 이윤 동기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 우리 각각이 의미 있는 사람이라는,실제로 필수적이며 보살핌과 보호를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급진적인 생각이다.

우리는 우리의 업무 역량 때문이 아니라, 단지 우리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다. 만일 당신이 이 생각을 너무 과격하다고 여긴다면, 나는 어떻게 당신이 타인에게 관심을 갖도록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 팬데믹이 우리에게 보여준 대단히 중요하고도 명확한 사실은, 망가지고 실패한 게 단지 하나의 세대가 아니라는 거다. 망가진 건 체제 자체다.

기억이 닿는 한, 나는 거의 쉼 없이 일해 왔다. 대학원생으로 시작해 교수를 거쳐, 저널리스트로서 2016년과 2017년 내내 미국 내의 정치 후보자들을 따라다니며 기삿거리를 찾았고, 어떤 날들은 하루에 수천 단어를 썼다. 지난 11월에는 텍사스 총기 난사 사건 생존자들을 인터뷰한 뒤, 유타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일주일을 보내며 일부다처제에서 도망쳐 나온 여성 수십 명의 사연을 들었다. 내 일은 매우 중요했으며 무척 즐겁기도 했다. 제대로 된 휴식을 갖는 일이 힘들게 느껴졌던 이유다. 게다가 선거가 끝나고 조금 쉬지 않았던가. 그때 재충전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편집자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눈물을 참느라 애써야 한다는 사실은? 그거야 내 일과는 아무 상관없었다.

그 당시의 나는 사실상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다. 수면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마사지와 얼굴 관리도 받았는데, 나쁘진 않았지만 그 효과는 놀라울 정도로 잠깐이었다. 독서는 얼마간 도움이 되었지만 가장 흥미가 당기는 책들은 정치와 관련된 것이어서, 애당초 나를 피로하게 만든 근원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 중에 새로운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그게 벌써 몇 달째였다. 자러 가야겠다는 마음만 먹어도 책임감 있는 어른이 소파에서 일어나 침대로 가기 위해 밟아야 할 단계들이 떠올랐다. 휴가는 아무런 감명이 없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해야 할 일’ 목록에서 해치워야 하는 또 하나의 일거리로 느껴졌을 뿐이다. 친구들과의 만남을 아주 꺼리는 동시에 갈망했지만, 뉴욕에서 몬태나로 옮겨온 뒤엔 시간을 들여 새 친구를 만드는 일 자체를 거부했다. 나는 무감각해지고 둔감해졌으며, 모든 것이 밋밋하게 느껴졌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나는 100퍼센트 번아웃이었다.

나는 번아웃이 감기처럼 걸렸다가 낫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번아웃 상태라는 걸 까맣게 몰랐던 이유다. 나는 몇 달째 잉걸불 상태로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그중 진짜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없었다. 대체로 일상을 잘 유지하는 데 필요한 단조로운 잡일들에 불과했으니까. 그렇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부엌 칼을 갈거나, 제일 좋아하는 부츠의 굽을 교체하거나, 내 반려견을 지자체에 등록하기 위한 서류 작업 같은 것들을 해낼 수 없었다.

내 방구석에는 친구에게 보내려고 구입한 선물이 몇 달째 방치되어 있었고, 조리대에는 반납하면 적지 않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콘택트렌즈 영수증과 자료가 놓여 있었다. 품이 많이 들고 만족감은 적은 이런 잡일들이 전부 해결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어른 되기adulting(부모의 영역에 속한다고 여겼던 일들을 스스로 해내는 것에 대해 두려움 또는 해냈다는 뿌듯함을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의 일상적 스트레스에 관한 글들이었다. 어떤 글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대의 밀레니얼은 대체로 성년기를 존재의 상태가 아니라 행동의 연속으로 여긴다. 그리하여 ‘어른 되기’는 동사가 되었다." 어른 되기의 일부는 할 일 목록 맨 끝의 일들까지도 처리하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어른 되기, 나아가 ‘해야 할 일’ 목록을 완료하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현대 세상에서 사는 일이 그 어떤 시대보다도 쉬운 동시에헤아릴 수 없이 복잡해서다.

우리에겐 매일 해야만 하는 일들의 목록이,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가 제일 먼저 할당되어야 하는 영역이 있다. 정신적 에너지는 유한하다. 아닌 척하려고 애쓰다 보면, 그때 번아웃이 찾아온다.

나는 왜 계속 일했을까? 직업을 갖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였다. 직업을 얻은 뒤에도 쉬지 않고 일한 까닭은 뭘까? 얻은 직업을 잃을까 봐 두려웠다. 노동자로서의 내 가치와 인간으로서의 내 가치가 아주 곤란할 지경으로 뒤엉킨 시기였다. 나는불안정함이라는 느낌을???내가 지금껏 노력을 쏟아온 목표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느낌을???떨칠 수 없었다. 노력하기만 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어릴 적부터 믿어온 생각과 화합시킬 수도 없었다.

나는 왜 크리스마스에 학위 논문을 쓰면서 기분이 좋았는가?

지금까지는 내 인생이 그저 이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인생을 묘사하기 위한 언어를 그러모으고 있다.

번아웃은 1974년 정신과 의사 허버트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에 의해 과로의 결과로 신체적 혹은 정신적 붕괴를 겪는 환자들에게 처음으로 진단되었다.1 번아웃과 탈진exhaustion은 관련이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다른 범주에 속한다. 탈진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르는 걸 의미한다. 번아웃은 그 지점에서 며칠 동안, 몇 주 동안, 또는 몇 년 동안 더 나아가라고 스스로 몰아붙이는 걸 의미한다.

번아웃의 한복판에서는 고단한 과제에 뒤따르기 마련인 성취감이 영영 오지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해야 할 일들로 납작해진 인생이다.

우리 시대의 번아웃은 그 강도와 만연함의 격이 아예 다르다. 소매업에 종사하며 변덕스러운 스케줄 속에서도 짬을 내어 우버 택시를 몰고, 어떻게든 아이 맡길 데를 찾아야 하는 사람들이 번아웃에 빠진다.

고급 케이터링 점심 식사와 무료 세탁 서비스를 누리며 통근에 70분을 쓰는 스타트업 종사자도 번아웃에 빠진다.

강의 4개를 연속으로 수업하고 식권을 지원받아 끼니를 해결하면서, 종신 교수직으로 이어질 만한 일자리를 잡기 위해 논문 제출에 애쓰는 학자도 번아웃에 빠진다.

건강보험이나 유급 휴가 없이 스스로 정한 스케줄에 따라 일하는 프리랜서도 번아웃에 빠진다.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못한 만성적인 직장 스트레스에서 기인한 직업적 현상"으로 세계보건기구로부터 공식 인정받았다.

번아웃은 우리 시대의 상태다.

학자금 대출을 갚아나가면서 자녀를 위한 저축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 하늘 높이 치솟는 집값과 양육비, 의료보험료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체계적으로 살아보려 아무리 열심히 애써도, 이미 빠듯한 살림살이에 허리띠를 더 졸라매려 노력해도, 성년기에 주어지리라 기약했던 안정은 찾아올 기미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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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우리는 한 침대에서 같이 자고 함께 일상을 나누는 사람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우리 자신에 관해 아는 것보다도 훨씬 덜 알 수 있을 뿐이다. 카트리네는 인정하기 쉽지 않았지만 사실 우리가 주위 사람들에게 받는 인상이 딱 그렇다. 인상.

"여섯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안 돼요. 새로운 심리학 연구를 보니까 여섯 시간이 되기 전에 외상 경험을 돌아보면 장기적으로 외상에 시달릴 위험이 커진대요."

"네 엄마가 이런 걸 좋아했어." 해리가 말했다. "우리 둘이 얘기하는 걸 듣는 거."

"책이나 뜨개질거리를 가져와서 우리 옆에 앉았지. 대화를 끊지도, 대화에 끼어들려고 하지도 않았어. 사실은 우리 얘기를 듣지도 않았어. 그냥 그 소리가 좋았다더라. 네 엄마 인생의 남자들 소리라면서."

"아빠랑 엄마요. 방으로 자러 가서 방문을 살짝 열어놓고 두 분이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둘이 조용조용 얘기했고, 이미 많은 얘기를 나누어 서로를 잘 아는 느낌. 새로 덧붙일 말이라고는 여기저기 간간이 들어갈 중요한 단어뿐이었어요. 그런데도 아빠는 엄마를 웃겼어요. 더없이 안전한 소리, 잠이 잘 오는 소리였어요."

그녀는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적게 묻는 습관을 들였다.

상체를 어떻게 써야 하고 팔을 똑바로 펴고 팔이 아니라 복근의 힘으로 노를 저으라고 말씀해주시던 기억. 가볍게 노를 저으며 억지로 힘주지 않고 리듬을 찾아야만 배가 순탄하게 물살을 가르며 적은 힘으로도 빠르게 나갈 수 있다던 말씀. 엉덩이로 벤치 중앙에 균형을 잡고 앉아야 한다던 말씀. 균형이 전부라던 말씀. 노를 보지 말고 배가 지나온 자리에 눈을 고정해야 하고, 지나온 흔적이 앞으로 어디로 향할지 보여준다던 말씀.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마저도 앞으로 벌어질 일에 관해 매우 적게 알려줄 뿐이라고 덧붙였다. 모든 건 바로 다음번 노질에 의해 결정된다면서. 할아버지는 주머니 시계를 꺼내고 우리가 물가로 돌아가면 우리의 여정을 출발점에서 도착점까지 하나의 연속선으로 보일 거라고 말했다. 목적과 방향이 있는 이야기. 우리는 그 이야기가 여기에, 다른 어디도 아닌 여기에 있는 것처럼 기억하고, 배가 물가에 닿게 하려고 의도한다. 하지만 도착점과 처음 의도한 목적지는 전혀 다르다.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 현재 위치에 이르러서 여기가 우리가 가려던 곳이거나 적어도 가려는 길 위에 있다고 믿으면 그런대로 위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은 오류에 빠지기 쉬워서 우리가 얼마나 똑똑한지 말해주는 다정한 엄마처럼 우리의 노 젓는 행위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전체 이야기에 논리적이고 의도된 요소로 딱 들어맞는다고 말해준다. 경로에서 이탈했을 수도 있고 더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인생은 그저 서툴고 어설프게 노 저어 가는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상태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썩 기분 좋을 리가 없으므로, 누구나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이야기를 다시 쓰고 싶어한다. 그래서 성공한 듯 보이는 사람들에게 인생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면 대개 현재의 삶이 어릴 때부터 꿈꿔온(유일한) 꿈이고 현재 어느 분야에서 성공했든 그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이 원래부터 꿈이었다고 말한다. 진심일 수도 있다. 다만 그 밖의 모든 꿈을, 길러지지 않고 시들다 사라져버린 꿈을 잊었을 뿐

그리고 그들에게 조언해주기를. 일부는 도움이 되고 일부는 잊히거나 무시당할 걸 알기를. 자부심과 연민이 묘하게 섞여 가슴이 벅차고 목이 메기를. 아이가 자기보다 더 나아서 생기는 자부심. 그 아이들이 지나온 고통보다 앞으로 다가올 고통이 더 크기에, 그 아이들이 누군가는, 그들 자신이든 적어도 할아버지는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안다고 믿으며 노를 젓는 모습에서 일어나는 연민.

"흔히 희생양은 무고할 거라고 오해해요." 요한이 말했다. "희생양의 목적은 무고한 데 있는 게 아니라 그가 한 짓이든 아니든 책임을 떠안는다는 데 있죠.

성민은 카스파로브 앞에 쭈그리고 앉아 두 손을 맞대고 비비면서 늙은 개의 지친 눈을 보았다.
"네가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어."
카스파로브가 낑낑거리고 꿈틀대자 성민이 개를 안고 그들의 궂은 운명을 향해 꾸역꾸역 다리를 건넜다.

그곳은 차가웠다. 무서웠다. 그리고 외로웠다. 하지만 다른 것도 있었다. 조용했다. 무척이나 평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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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위스테인은 얼마나 더 시간을 끌 수 있을지 생각했다. 시간을 끄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산다는 게 결국 그거 아닌가?

외위스테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단념하기로 했다. 사실 그는 온갖 고문을 당하고 나서야 진실을 털어놓는 사람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어차피 모두가 지는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하이힐에 스키니 바지에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연구소에는 혼자 있었지만 꼭 파티에 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해리는 그녀의 다른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알렉산드라 스투르드자는 인생은 짧으니 늘 최선의 모습을 유지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흔한 현상이었다. 성공, 풍족한 생활, 나이, 이 모든 것이 분노로 가득 찬 인간조차 타협하게 한 것이다. 해리 역시 온화하고 친절해졌다. 거의 사교적인 인간이 되었다. 사랑하는 여인과 원만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며 행복하게 길들여졌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젠장, 누구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완벽했다.

해리는 살인사건 수사관으로 25년간 일하면서 사건의 경위는 거의 언제나 처음 언뜻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걸 배웠다.
하지만 동기는 거의 언제나 처음 보이는 그대로 단순하고 자명했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고착된다.

이 여자 저 여자 자고 다니는 남자, 도둑놈, 술꾼, 살인자. 우리는 같은 죄를 되풀이해 저지르면서 하느님에게든 다른 누군가에게든 자기 자신에게든 용서를 구한다. 그래서 페테르 링달은 전 부인 안드레아 클리치코바를 살해한 방식대로 라켈 페우케를 죽였다.

"다만?" 해리는 레코드판들 사이를 들여다보았다. 알렉산드라가 무슨 말을 할지 알았다. 이제 산사태를 경고하는 돌덩이가 굴러떨어지지 않았다. 산사태가 이미 시작되었다. 산 전체가 무너졌다.

에우로라가 어릴 때 아빠는 어디서나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그 꿈에 대한 프로이트식 해석은요?" 해리가 물었다.
"살을 빼야 한다는 거."

"트러플 살라미랑 구석기시대의 그뤼예르 치즈?"

해리는 남에게 쉽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도움을 구할 때는 정말로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스톨레는 경험상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 새로운 경험에 열려 있고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최면에 잘 걸린다고 추정했다. 반면에 공학과 관련된 직업군은 최면에 잘 걸리지 않았다. 따라서 차를 마시면서 백일몽에 잘 빠지는 부류가 아닌 살인사건 수사관 해리 홀레가 최면에 걸리기는 어려울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톨레는 해리가 유명한 성격검사를 하지 않아도 한 가지 측면에서 유난히 높은 점수를 받을 거라고 짐작했다. 바로 상상력이다.

해리의 숨결이 골랐다. 잠든 사람처럼.

앞의 질문에는, 그러니까 라켈의 이름을 말할 때는 그런 게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다른 식으로 말해보니, 그러니까 그가 가진 전부를 파괴했을지 물어보니 전혀 불가능해 보이진 않았다. 게다가 그가 아는 바로는, 살면서 배운 바로는, 사실이 직감을 능가했다. 직감은 온갖 생각의 모음일 뿐이라 단 하나의 결정적 사실로 무너질 수 있다

인생에서 한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이자, 서로 깊이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자라난 이야기이자, 사랑이 실제로 존재하고 존재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는 삶의 이야기를 잃을 이유가 없었다.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사건은 항상 처음 생각한 것보다 복잡하지만 동기는 단순하고 명료했다.

가장 흔한 혈액형이지, 해리가 속으로 답했다. 노르웨이 인구의 48퍼센트가 A형이다. 동전 던지기 확률 정도일 뿐,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런데 지금은 의미가 있었다. 그가 이미(핀네의 주사위처럼) 동전 던지기로 판단하기로 마음먹었으므로.

노르웨이 여자 챔피언은 패자와 자지 않는다. 더욱이 그녀보다 머리 절반은 작은 데다 이제는 유도 매트에 쓰러트릴 수도 있을 것 같은 남자와는. 이게 진화가 굴러가는 방식이다.

계산을 마치고 일어서면서 저 멀리 바람이 휘몰아치는 황량한 풍경을 보았다. 그 풍경이 어찌나 낯선지, 불과 하루 전에 반대편에서 달려올 때와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지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마치 이국의 사막처럼 보였다. 겉으로는 사람 하나 없어 보이지만, 움푹 들어간 어딘가에서 적들이 지켜보고 있을지 몰랐다.

그는 살인사건을 수사하며 무수한 시신을 보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인지, 남에게 목숨이 끊긴 사람인지 판단해야 했다. 불확실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무리 잔혹한 수단을 선택해서 죽었든, 현장이 어지럽고 선혈이 낭자하든, 자살에는 대개 단순하고 외로운 구석이 있었다. 결심, 행위, 소통의 부재. 그리고 복잡한 법의학적 문제를 거의 남기지 않는다. 자살 현장은 고요한 편이다. 그렇다고 자살 현장이 그에게 아무 말도 들려주지 않는 건 아니었다. 사실은 말을 해주었다. 다만 여러 목소리와 충돌의 불협화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가(특히 좋은 날이나 특히 나쁜 날에) 들을 수 있는 내면의 독백만 들렸다. 그때마다 그는 자살을 하나의 선택지로 여겼다. 무대에서 퇴장하는 방법. 쥐가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는 경로.

가장 일반적인 자살 동기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유아적 동기(세상에 대한 복수, ‘이제 나한테 미안할 거야’)부터 자기혐오, 수치심, 고통, 죄책감, 상실감, 온갖 ‘자잘한’ 동기, 자살을 위안이나 위로로 여기는 경우까지. 탈출 경로를 찾던 건 아니지만 단지 퇴로가 있는 걸 알고 싶은 사람들. 사람들이 대도시에 사는 이유가 대도시에는 오페라부터 스트립클럽까지 평생 이용하지 않을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인 것처럼. 살아 있다는 것, 산다는 것의 폐소공포를 막기 위한 장치들. 그러다 술이든 약이든 실연의 아픔이든 금전적 문제로든 삶의 중심을 잃어버린 순간 결정을 내리고 술을 한 잔 더 마시거나 바텐더를 때리는 행위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위안을 찾아간다는 생각밖에 없으므로.

미소가 눈가까지 닿을 정도로 웃고 마침내 빛이 고르게 퍼져서 그녀가 태양처럼 빛나고 그들이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해서 사진을 다시 찍어야 했던 기억.

교수형당할 놈은 물에 빠져 죽지 않는다.
왜 갑자기 이 속담이 떠올랐는지 몰랐다.

당뉘는 가끔 그런 꿈을 꾸었다. 언젠가 제자 하나가(한 명이면 족하다) 전화해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꿈. 어휘와 문법 그리고 언어 세계의 기초적인 영양분 이상의 세계를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꿈. 당뉘의 영어 수업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영감을 얻은 어떤 제자가 전화해주는 꿈. 그 뭔가로 인해 스스로 뭔가를 창조할 수 있었다고 말해주는 꿈.

성민과 카트리네는 그의 BMW 그란 쿠페의 앞자리에 탔다. 그는 연료비를 많이 지원해주는 크리포스의 차량 대신 손해를 감수하면서 본인 차를 몰았다. 아버지가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인생이 짧으니 좋은 차를 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목격자가 본래 믿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이 농간을 부리고 인간의 감각이 생각만큼 믿을 만하진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성민은 정확한 문구가 기억나지 않는 척 말했다. 경험상 그가 기억력이 좋고 사람의 마음을 잘 읽고 추론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을 들키면 상대가 긴장하고 대화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올레 빈테르가 그저 그런 수사관이고 유난히 약한 리더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누구에게도 해본 적이 없다. 빈테르가 물러터졌다는 뜻이 아니라, 그 반대로 고리타분하고 권위적이고 고집스러운 자라서 약한 지도자라는 뜻이다. 빈테르는 틀린 걸 틀렸다고 인정하고 젊은 생각을 하는 젊은 수사관들에게 책임을 위임해야 하는 걸 받아들일 만큼 자존감이 굳건하지 않았다. 그냥 젊은 게 아니라 더 똑똑한 수사관들에게 말이다. 하지만 성민은 크리포스에서 이런 의견을 가진 사람이 그밖에 없는 걸 알기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엘란 마드센은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뒷이야기를 듣고 싶어 안달 난 게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다 들어줄 수 있다는 걸, 안전하고 무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주려 했다. 흥미 때문도 아니고 파격적인 얘기를 듣고 싶어 조바심치는 것도 아니며 재미난 이야기에 집착하는 것도 아닌 척했다. 하지만 이번 예약, 이번 치료, 이번 대화를 기다려온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마드센은 로아르 보르를 보았다. 그의 경험으로 보면 사람의 얼굴과 표정과 몸짓에서는 답을 알 수 없었다. 이런 건 주로 학습된 행동이다. 사실은 사람들의 말에 답이 있다. 지금 그는 대답하지 못할 질문을 받았다. 노골적이지 않게, 솔직하지 않게 대답하지 못할 질문. 마드센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 여자도 스위스인이었어요. 안톤은 아름다운 여자를 좋아하니, 물론 그 여자도 아름다웠죠. 지적이고. 매너도 완벽하고. 좋은 집안 출신이고. 스위스는 아직 그런 게 중요한 나라거든요. 그런데 그중에 최악은 소니아가 착하기까지 했다는 거예요. 열의와 용기와 사랑으로 일에 뛰어드는, 진실로 호감을 주는 사람이었어요. 사망자와 중상자가 많이 들어온 날이면 소니아가 자다가 우는 소리가 자주 들렸어요.

그런 말을 들어주고 위로하면서 소니아를 더욱더 미워했어요. 소니아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라서. 마드센, 이상하지 않아요?"

이 도시는 빛을 제대로 받은 순간에는 아찔하게 아름다워 보이다가도 이내 한없이 평범해 보여서 눈에 띄지 않고 못생겨 보이기까지 하는 여자와 닮았다. 하지만 이 순간, 이렇게 이른 새벽 시간에 평범한 노르웨이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의 오슬로는 그녀의 독차지였다. 훔친 시간을 함께 나누는 비밀 연인처럼 느껴졌다. 아직 낯설고 흥분하게 하는 사람과의 조우였다.

알렉산드라는 5월을 원했다. 그녀는 알았다. 5월 같은 남자와 함께일 때면, 그러니까 따스하고 온화하고 요구하는 건 다 적절한 정도로 들어주는 남자와 함께일 때면, 그녀가 제멋대로 굴면서 점점 더 요구하다가 결국 6월과 함께 배신하거나 심지어는 좀처럼 믿음이 가지 않는 7월과 함께 떠나버린다는 것을. 8월처럼 머리가 약간 세고 결혼해서 가정도 있는 괜찮은 어른 남자는 어떨까? 그래, 그런 사람이라면 기꺼이 만났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11월을 사랑한 걸까? 음울하고 어둡고 비에 푹 젖고 더 어두워질 것만 같은 남자, 너무나도 조용해서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거나 반대로 미친 듯이 우르릉거리는 가을 폭풍으로 지붕을 날려버릴 것 같은 남자. 물론, 그 남자는 예고도 없이 따스하고 화창한 날로 결국 더 소중하게 느끼게 해주면서 건물 몇 채가 서 있는 기묘하게 아름답고 황폐한 폐허의 풍경을 드러낼 것이다. 기반암처럼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아 11월의 마지막 날까지 그대로 서 있을 걸 알기에, 알렉산드라가(더 기댈 곳이 없을 때) 이따금 피신하는 곳.

흠. 알렉산드라는 그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키가 크다. 헬스장에 다닌다. 지나치게 많이는 아니고 모든 면에서 비율이 잘 잡혀 있다. 외모를 꾸미는 노력의 가치를 이해하면서 운동 그 자체를 즐긴다. 그녀처럼. 눈동자가 갈색이다, 당연히. 서른이 조금 넘었을까? 반지는 없다. 크리포스. 그러고 보니 여자 둘이 그 이름을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아시아와 노르웨이가 묘하게 섞인 이름. 그를 아직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게 이상했다.

당신은 우두머리 수컷이야. 가려던 곳에 이르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그리로 가는 중인 사람. 그녀처럼.

사실 흥미로운 물건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만 흥미로웠다.

알리세는 짜증 섞인 투로 걱정할 거 없다고 했다.
"당신의 비밀은 나한테는 안전해요." 알리세가 말했다.
바로 이 말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나보다 나은 누군가가 늘 거울을 들고 있어서 내가 날 싫어하게 만드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소유하는지가 중요한 사람들이므로. 그리고 모든 것을 잃으면 우리도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리는 생각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고 그 생각을 떨쳐냈다.

비에른이 그렇게 생겨먹어서? 음악과 영화를 지나치게 많이 아는 투실투실하고 허여멀겋고 무해한 과학수사관이고, 몇 년 더 지나면 음악과 영화를 더 많이 아는 뚱뚱하고 허여멀겋고 무해한 과학수사관이 될 남자. 언젠가부터 라스타파리안 모자 대신 플랫캡을 쓰고 플란넬 셔츠를 많이 산 남자. 이런 건 개인의 선택이라고 믿는 남자. 이런 것들이 한 개인의 성장에 관해, 그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인식에 관해 뭔가를 말해준다고, 그리고 모든 사람은 누구나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남자. 그러다 본 이베어 콘서트에서 그와 판박이인 수천의 관객을 보고 그도 결국 하나의 집단에 속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쨌든(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집단에 속하는 것을 죽기보다 혐오하는 사람들의 집단. 그는 힙스터였다.

그는 힙스터이면서도 힙스터를 혐오하고 특히 남자 힙스터를 질색했다. 몽환적인 이상주의로 자연과 독창성과 진정성을 탐닉하는 작자들. 통나무집에 살면서 먹거리를 기르거나 사냥하는 나무꾼처럼 보이고 싶어하지만 결국에는 현대의 삶이 자신의 남성성을 모조리 빼앗아가고 무력감만 남겨놨다고 여기는 과잉보호받는 어린 소년에 불과한 힙스터들에게는 어딘가 모르게 허황되고 남자답지 못한 구석이 있었다.

힙스터는 사회적, 직업적 성취에 대한 결핍을 보상하려고 문화적 우월성을 내세운다고.

사실은 오슬로 서쪽 출신 정치인이 공장에서 선거운동을 하면서 넥타이를 풀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며 연설문에 ‘하겠습니다’를 최대한 많이 집어넣는 정도로만 정직한 사람인가?

엔드레가 웃음을 터트리면서 무슨 동지라도 되는 양 동정 어린 손길로 비에른의 어깨를 잡으며 주위 친구들에게 작당하듯 씩 웃었다. 모두가 참여하지만 비에른만 규칙을 모르는 게임이라도 하듯이.

싸움에서 이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최대한 위협적으로 먼저 주먹을 날리는 것이다. 그러면 열에 아홉은 곧바로 싸움이 끝난다.

1980년대에 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가 한 주장에 따르면 무의식은 우리가 비밀로 간직하고 싶어하는 정보를 무심결에 말하지 못하게 하려고 끊임없이 확인한다. 하지만 비밀이 무의식에서 튀어나오면 뇌의 의식 영역에 알려서 뇌가 비밀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그때부터 실수로 진실이 새어 나오는 건 시간문제다.

칼은 없고 펜과 수다스러운 입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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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언니 마리
이노우에 유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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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루훈ゆるふん‘ 이라는 별명을 갖은 요네하라 마리의 여동생 유리가 이 책을 완성해 주어서 우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어떤 사람이 읽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책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어떻게 읽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역시 요네하라 마리는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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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자면 작가가 되고부턴 언니의 패션도 바뀌었다. 일의 변화 때문도 있겠지만 개를 키우기 시작한 것도 영향이 있는 듯하다. 같이 산책을 가거나 놀아줄 수 있도록 운동화를 신고 운동복처럼 편한 옷으로 지내게 되었다.

우피치 미술관의 보티첼리 방에 들어섰을 때였다. 마리가 침을 꿀꺽 삼키는 것이 느껴졌다. <비너스의 탄생>을 보면서 "이게 르네상스로구나!"라고 했다.

베로나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의 집에 갔다. 몇 번이나 간 적이 있는 나는 밑에서 기다렸더니, 마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베란다에서 양 팔을 펼치며 "오오, 로미오, 로미오"를 외쳐 다른 관광객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마리는 사람을 잘 사귀지 못했다. 한번 맘에 들면 단숨에 거리를 좁혔고, 당연히 시간이 지나면 상대방의 싫은 곳이 눈에 띄고 그러면 또 금방 식는다. 아마도 여행을 준비할 무렵 M씨와의 관계는 좋았으리라. 그러나 이탈리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싫증나 있었나 보다. 모처럼 마리가 찾아와주었지만 나는 껄끄러운 두 사람 사이에서 녹초가 되었다. 수개월 뒤 내가 귀국했을 때는 결국 M씨를 만나지 못했다.

일류 요리를 추구하던 나는 유럽의 고급문화를 배워야 했다. 고급 레스토랑 예절도 알아야 했고, 고급 음식점에 이상한 옷차림으로 갈 수도 없다. 살 수 있고 없고를 떠나 명품에도 흥미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탈리아 명품은 정말 매력적이다. 명품가게를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다. 마리는 그런 나를 경박하게 여겼다.

"상류의 맨 꼭대기를 모르면 아래의 것도 못 만들어. 후지산의 높이가 있으니 산자락이 있는 거잖아"라고 반론하고 싶지만 일일이 반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류 음악을 들어도 일류 회화를 봐도 이런 말을 듣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류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좋은 식기를 사면 ‘사치’가 되어버린다. 어쩔 수 없이 돈이 드니까. 그렇지만 역시 ‘사치는 멋있다’.

일본으로 돌아와서 얼마 동안은 어느 식당에 가도 내가 만드는 게 더 맛있다고 여기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몇 년쯤 지나 이탈리안 붐이 일자, 일본의 이탈리아 식당 수준이 눈부시게 향상되었다. 동생을 생각해주는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마리도 여러 곳에 가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싶다.

카운터만 있는 수타면 가게를 생각해냈다. ‘가베노아나’라는 파스타 전문점이 몇 년 전부터 인기 있던 참이다. 수타면이라면 삶는 시간이 더 짧겠지. 미리 소스를 만들어놓고 면을 뽑아두면 라면집처럼 손님에게 빨리 요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토마토소스, 미트소스, 크림소스 등을 단골 메뉴로 정해두고 그날그날 바뀌는 메뉴가 몇 있으면 되겠다 싶었다. 그다지 성가시지도 않을 것 같다.

날마다 책장을 지나다니며 본 『소공자』 『소공녀』며 『레미제라블』 등의 책표지 글자는 확실히 생각나는데 나는 단지 그 표지만을 기억할 뿐이다. 마리는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이 전집을 독파했다.

피아노 걸상 높이 조절용으로 전에 쓰던 사람이 놓고 간 두툼하고 커다란 네크라소프의 책도 전 주인과 마찬가지로 나는 엉덩이 밑에 깔았을 뿐이지만 마리는 제대로 읽고 팬이 되어 훗날 대학 졸업논문으로도 모자라 대학원 연구 주제까지 이 19세기 러시아 시인으로 잡았다.

언니를 독서광으로 만든 결정적인 요인은 소비에트 학교였다. 우선 저학년 동안은 모든 수업이 국어뿐이다.

학교에서는 러시아가 자랑하는 시인, 문호의 문장을 되도록 많이 외우도록 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과목도 여러 가지로 나뉘어 늘어나지만 시와 함께 뛰어난 산문 구절을 암송해야 하는 것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학예회 등의 프로그램에는 반드시 낭독이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반납할 때면 사서 선생님께 어떤 내용이었는지 간략하게 설명해야 한다. 책을 대충 읽어서는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다. 전체의 틀을 알고 그것을 간략하게 정리해 다른 이도 알아듣도록 들려준다. 이 훈련이 마리의 논리성을 키웠고 원래 뛰어나던 이야기꾼 능력을 한층 높여주게 된 것 같다.

일본의 학교도 독서감상문 따위는 그만두면 좋으련만. 아이들이 책을 읽고 어떻게 느꼈는지를 써본들 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지도, 책이 좋아지지도 않아 보인다. 더구나 남에게 제 마음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은 책 읽기 싫은 마음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소비에트 학교에서는 책을 자주 선물한다. 예를 들어 체육대회에서 상을 받는다거나 무슨 성적이 좋았다거나, 일본이었다면 상장이나 기념품이 나올 장면에서 소설이나 시집을 선물 받았다. 귀국하기 위해 학교를 떠날 때도 책을 받았다. 내가 받은 책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었다. 이 책을 계기로 나는 일본으로 돌아와서 디킨스를 탐독했고 팬이 되었다.
일본에만 있었더라면 마리의 독서도 그렇게까지 깊어지지 않았을 것이요 독서의 폭도 그리 넓어지지 않았으리라.

귀국 뒤 아버지는 요요기에 있던 일소 도서관에 우리를 데려가서 러시아어 책을 빌릴 수 있도록 수속했다. 우리는 일본어가 많이 서툴러서 한동안 책을 읽는 것도 러시아어 쪽이 이해하기 쉬웠고, 우리 둘이 말할 때도 러시아어가 편했다. 게다가 이제 만나지 못하게 된 친구들 생각 때문도 있다. 다들 이 책을 읽었겠지 하고 상상하면서 러시아, 소비에트 작가들의 책을 읽었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 19세기 문호뿐 아니라, 동시대 소련의 SF, 아동소설 등 아무튼 도서관에 있는 것을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두 주일에 3권인가 삼 주에 4권인가를 빌릴 수 있었으나 마리는 언제나 꽉꽉 채웠고 모자라면 내 몫까지 빌렸다.

아버지는 진보초에 있는 러시아 도서 전문점인 나우카 서점에도 데려갔다. 여기서 러시아 과학잡지 <나우카 이 지즈뉴과학과 생활>의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부류의 잡지로 과학에 대한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많이 실려 있었다. 마리의 에세이는 사실은 이 잡지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 꽤 있다.

어느 작가를 읽기 시작하면 그 작가의 작품을 구할 수 있는 한 몽땅 읽었고, 일본인이든 외국인이든 전집을 낼 정도의 유명 작가들 작품은 모조리 읽어댔다.

책을 읽느라 밤도 자주 새웠다. 방을 함께 썼으니 밤늦게까지 불을 켜고 꼼지락거린다. 일찍 자고 싶은 동생은 이 무렵 언니와 자주 싸웠다.

마리는 ‘하루에 7권’ 읽는다며 호언장담하고 다녔는지 정말이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많았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점에서는 남편도 지지 않았다.

히사시 씨가 기증한 책으로 고향 야마가타 현 가와니시 마을에 ‘지필당遲筆堂 문고’라는 도서관이 세워졌다. 히사시 씨 사후에 보낸 책을 합하면 장서는 22만 권이 넘는다. 작업을 위해 스스로 산 것도 있지만, 아는 저자나 출판사에서 보내오는 책도 가득해 책장에 고스란히 꽂혀 있던 책도 많다. 그래도 장서 가운데 80퍼센트는 책장을 넘긴 흔적이 있고 그 20퍼센트 이상에는 메모며 책갈피 등 열심히 읽은 흔적이 있다.

이노우에 히사시는 말한다.

내 장서는 20만 권쯤 있다고 한다. 과연 하루 30권 정도로 책을 읽고 있으니 그 정도 될지 모르겠다. 바쁜데도 책을 많이 읽는다는 소리를 듣지만 나만의 독서법이 있다. 물론 한 권 한 권 꼼꼼히 읽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책에서 뭔가를 찾으려 할 때는 우선 차례를 읽고 그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파악한다. 일본 학자들은 대개 결론을 맨 마지막에 쓰고 있으니 우선 뒤쪽부터 본다. 여기서 생각했던 것이 적혀 있지 않다면 그 책은 전반부도 별다른 게 없다고 내 멋대로 생각한다. 반대로 일부를 읽어보고 재미있으면 전체를 읽는다.

한 번 읽고 마음에 남는 책은 반드시 표지 뒤에 나만의 색인 같은 것을 써 다이제스트를 만든다. 이렇게 맘에 들어 열심히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는 책과 적당히 휘리릭 읽어버리는 책으로 나뉜다.

하루 3, 40권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대나무 공예 장인이 많고 많은 대나무 속에서 어떤 감촉으로, 이 재료는 이렇게 만들어봐야겠다고 직관적으로 영감이 떠오르는 것처럼 이는 하나의 직업적인 훈련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책에서 얻은 것을 일단 몸에 넣어 연표를 만들거나 여러 가지 시행해봄으로써 내 지식의 원천이 되어 쓰는 작업으로 연결된다. 몸속으로 들어온 여러 정보가 모여서 지식이 되고 그 지식이 모여 이번에는 지혜를 만든다.
?『깊은 내용을 재미있게?창작의 원점』PHP, 2011

22만 권 중 20퍼센트 이상 책에 메모나 갈피가 끼여 있다는 것은 책을 모으기 시작해 약 50년으로 잡으면남편 이노우에 히사시 씨는 2010년에 향년 75세로 영면 하루 평균 3권의 책을 읽으면서 메모했다는 계산이다. 따라서 언니가 하루 7권 읽었다는 것도 훑어본 책까지 포함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얘기다.

덧붙이면 마리는 걸어서 삼 분 거리 생선집에 고양이 찬거리를 사러 갈 때도 가방에 사전이며 그때 읽고 있던 책을 넣어 다녔다. 늘 그리도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녔으니 어깨 결림이 나을 새가 없었다.

미야베 미유키도 마리보다 먼저 관심을 가졌더랬다. 이건 자랑.

언니는 맘에 드는 책이 있으면 내게 전화를 걸어온다. 그리고 온 정열을 다해 권한다. 언니가 쓴 서평을 읽노라면 전화 걸어올 때의 그 상기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도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마리에게 권했다. 어른이 되어 우리 자매가 나눈 대화의 화제는 음식 아니면 책, 연극, 영화 정도다.

이 점에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마음이 통했다. 재미있다고 느낀 점, 마음에 드는 표현도(대개는 웃기는 곳이지만) 같았다. 마리가 작고한 지 이미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좋은 책을 만나면 ‘아, 마리는 이 책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 싶어 언니의 평론이 그립다.

2015년에 출간된 줌파 라히리의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마음산책, 2015를 마리는 어떻게 읽었을까. 벵갈어에 둘러싸여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영어로 교육을 받아 영어로 글을 써 세계적 작가가 되었으며 어른이 되고 나서 공부를 시작해서 정말 좋아하지만 아직은 완벽하지 못한 이탈리아어로 쓴 책이다.책에는 이탈리아어로 쓴 짧은 소설 2편도 실려 있다. 이 행위와 작품에 대한 언니의 평론을 읽고 싶다.

2006년 5월, 만 쉰여섯 살이 된 지 얼마 뒤 마리는 영면했다.

대략적인 구성도 히사시 씨가 잡아주었다. 더욱이 마리의 스물세 권 저서 하나하나에 해설도 붙여주었다. 지필당 문고 담당자도 나도 첫 작업이라 모르는 것도 많아 겨우 전시 형태를 갖춰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 기적 같고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흐른다.

그래도 이 작업으로 나는 큰 도움을 받았다. 가족을 잃게 되면 아무래도 병으로 고생하던 시기의 후회스러운 일만 떠오르게 된다. 전시회를 위해 마리의 생애를 어릴 적부터 쭉 돌아보면서 즐거웠던 일, 싸웠던 일, 우스웠던 일 등등 내가 아는 언니의 여러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서 기뻤다.

다시마에 해당하는 단어가 원래 러시아어에 없다 보니 통조림에는 ‘바다의 양배추’라고 표기되어 있다.

『미식견문록』에서 가장 공들여 쓴 꼭지는 「진짜 할바를 찾아서」가 아닐까. 여기서 마리는 ‘할바’라는 과자를 소개했다. 공들인 증거로 시청자의 요청이 많아 언니가 작고한 지 7년이 지난 2013년 가을, 동서고금의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과자를 재현하는 NHK 방송국 교육채널 프로그램 <그레텔의 아궁이>에서 이 할바를 다루었다.

언니는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하기 위해 여동생은 못 먹어본 걸로 적었으나 실은 먹었더랬다. 이라가 모두에게 맛보여 준 것은 여름 캠프의 탁구대 옆이었다. 상세하게 장소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나도 이 맛에 까무러치게 매료당했기 때문이다. 입안에서 솔솔 녹아내리는 것이 라쿠간 같기도 하지만 좀 더 찐득하고 달고 기름지다.

"온 세계를 다니며 취재하셨는데 당신이 가장 맛있다고 느낀 음식은 뭐죠?" 하고 물으니 ‘할바’라는 답이 돌아왔다. 조리사학교의 그 누구도 할바를 몰랐으니 나는 으쓱했다.

그 일이 있은 뒤 할바가 먹고 싶어 견딜 수 없어진 나는 각국 요리 책 레시피를 뒤져 찾게 되면 노트에 옮겨 적어가며 몇 번이나 만들어봤다.
그러나 아무래도 잘 안 된다. 고도의 기술이 있어야만 비로소 만들 수 있는 과자이니만큼 기술자로서 특별한 수련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언니의 에세이를 읽고 알게 되었다.
훗날 요리 교실 학생들이 그리스에 다녀온다기에 지나가는 말로 혹시 할바를 찾거든 좀 사다 달라고 했더니 진짜로 찾아 가져왔다. 물론 마리에게도 나누어주었다. 그 이래로 터키나 그리스에 가는 사람이 있으면 부탁하기로 했다.
그런데 언니가 쓴 에세이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다루어진 덕에 할바는 조금 유명해져 이젠 인터넷으로도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
문장의 힘으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싶도록 만들다니, 마리, 대단해!

그녀와는 마리가 영면했을 때 전화한 이래였으니 9년 만이다. 편지에는, "마리의 열혈 팬이라는 젊은 한국인 아가씨가 베오그라드까지 날 찾아왔더라. 마리 책이 영어나 러시아어로 나왔다면 나도 읽을 테니 보내줘"라고 쓰여 있다. 언니 책은 영어, 러시아어로는 나오지 않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어 애독자도 많다. 지금은 대만에서도 번역이 시작되고 있다.

야스나의 편지에 이어 이번에는 11월, 독일에 살고 있는 리차를 만나고 왔다는 일본 독자로부터 메일이 왔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이 여학생은 마리의 모든 점이 좋다며 『프라하의 소녀시대』에 등장하는 세 명의 그 뒤가 궁금해 유럽까지 확인하러 다녀왔다고 했다. 이 우연이 큰 힘이 되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마리가 쓴 말, 작품이 널리 읽혀 다른 사람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고 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추억을 씀으로써 마리가 말하는 말의 힘(히사시 씨는 ‘앞으로 꼬꾸라지듯 맥진한다’라고 표현했지만)의 비밀을 푸는 실마리로 삼아보려고 생각했다.

인간은 누구나 제 틀 안에서는 개성적이요 재미있다. 그러나 모든 이가 그 틀을 깨고 나와 자신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리에게는 틀이란 게 없었다. 그 요인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언니는 타고난 에너지로 정신을 자유롭게 활짝 열어젖히고 살았다. 그 결과로 약간의 곤란함도 즐거움도 함께 받아들였다. 덕분에 주위에도 불똥이 튀는 일이 있었지만 그조차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리워진다.

야스나, 리차가 내 등을 밀어주어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끝을 볼 수 있을지 불안했다. 어린 시절 나는 뭔가 시작하면 처음에는 열심이지만 도중에 싫증이 나거나 귀찮아져서 내팽개치곤 했다. 소비에트 학교 시절, 공작 시간에 천으로 보조가방을 만들어 자기 이름을 실로 수놓아야 했는데, 수업 시간에 완성을 못하면 숙제로나마 끝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내 이름 ‘유리’의 ‘유ㄹ’에서 싫증이 나 자수를 그만두어버렸다.

어머니는 "유ㄹ에서 끝내다니 얘는 정말 유루훈ゆるふん, 옛날 일본 팬티인 훈도시를 헐겁게 맨다는 뜻으로 긴장감 없이 맺고 끊는 게 약한 사람에게 쓰임이네"라며 이름의 마지막 철자의 자수를 거들어 끝내주셨다. 이후 내가 뭔가를 도중에 그만두면 가족들은 ‘유루훈 유리짱’이라 불렀다.

어른이 되어 그런 점은 좀 나아졌겠지 싶지만 역시나 장롱 속에는 뜨다 만 스웨터가 몇 벌이나 잠자고 있다.

익숙지 않은 일에 매달려 있는 동안, 장을 보거나 저녁을 지어주는 등 삼시세끼를 맡아준 아들 사스케에게 우리 집 이야기를 쓴 이 책을 바친다.

유리에게 많이 의지했던 마리의 모습이다. 사실 맏이 특유의, 사랑하지만 어머니와 조금 껄끄러웠던 모녀관계며 여러 모로 완급조절을 해주는 유리의 자리가 많이 허전했던 것 같다.

입에 풀칠하려고 어쩔 수 없이 시작한 통역 일이지만 일거리도 별로 없었으니 평생 이 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마리는 30대 중반까지도 고민했다 한다. 대학원을 나와서 거의 10년이나 번민한 셈이다.

유명한 작가 이노우에 히사시는 처형 마리에 대해 일본 문화사상 처음으로 통역론을 확립했고, 진실에 대해선 성실하게, 정의에 대해선 솔직하게, 힘 있는 것에는 신랄하게, 이에 더해 엄청 재미있는 작가라고 평했다.

서로 이끌리는 사람들은 영혼의 유전자에 어떤 자력이 있나 보다. 그리고 독자와 작가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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