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위스테인은 얼마나 더 시간을 끌 수 있을지 생각했다. 시간을 끄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산다는 게 결국 그거 아닌가?

외위스테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단념하기로 했다. 사실 그는 온갖 고문을 당하고 나서야 진실을 털어놓는 사람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어차피 모두가 지는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하이힐에 스키니 바지에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연구소에는 혼자 있었지만 꼭 파티에 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해리는 그녀의 다른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알렉산드라 스투르드자는 인생은 짧으니 늘 최선의 모습을 유지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흔한 현상이었다. 성공, 풍족한 생활, 나이, 이 모든 것이 분노로 가득 찬 인간조차 타협하게 한 것이다. 해리 역시 온화하고 친절해졌다. 거의 사교적인 인간이 되었다. 사랑하는 여인과 원만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며 행복하게 길들여졌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젠장, 누구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완벽했다.

해리는 살인사건 수사관으로 25년간 일하면서 사건의 경위는 거의 언제나 처음 언뜻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걸 배웠다.
하지만 동기는 거의 언제나 처음 보이는 그대로 단순하고 자명했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고착된다.

이 여자 저 여자 자고 다니는 남자, 도둑놈, 술꾼, 살인자. 우리는 같은 죄를 되풀이해 저지르면서 하느님에게든 다른 누군가에게든 자기 자신에게든 용서를 구한다. 그래서 페테르 링달은 전 부인 안드레아 클리치코바를 살해한 방식대로 라켈 페우케를 죽였다.

"다만?" 해리는 레코드판들 사이를 들여다보았다. 알렉산드라가 무슨 말을 할지 알았다. 이제 산사태를 경고하는 돌덩이가 굴러떨어지지 않았다. 산사태가 이미 시작되었다. 산 전체가 무너졌다.

에우로라가 어릴 때 아빠는 어디서나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그 꿈에 대한 프로이트식 해석은요?" 해리가 물었다.
"살을 빼야 한다는 거."

"트러플 살라미랑 구석기시대의 그뤼예르 치즈?"

해리는 남에게 쉽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도움을 구할 때는 정말로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스톨레는 경험상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 새로운 경험에 열려 있고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최면에 잘 걸린다고 추정했다. 반면에 공학과 관련된 직업군은 최면에 잘 걸리지 않았다. 따라서 차를 마시면서 백일몽에 잘 빠지는 부류가 아닌 살인사건 수사관 해리 홀레가 최면에 걸리기는 어려울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톨레는 해리가 유명한 성격검사를 하지 않아도 한 가지 측면에서 유난히 높은 점수를 받을 거라고 짐작했다. 바로 상상력이다.

해리의 숨결이 골랐다. 잠든 사람처럼.

앞의 질문에는, 그러니까 라켈의 이름을 말할 때는 그런 게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다른 식으로 말해보니, 그러니까 그가 가진 전부를 파괴했을지 물어보니 전혀 불가능해 보이진 않았다. 게다가 그가 아는 바로는, 살면서 배운 바로는, 사실이 직감을 능가했다. 직감은 온갖 생각의 모음일 뿐이라 단 하나의 결정적 사실로 무너질 수 있다

인생에서 한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이자, 서로 깊이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자라난 이야기이자, 사랑이 실제로 존재하고 존재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는 삶의 이야기를 잃을 이유가 없었다.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사건은 항상 처음 생각한 것보다 복잡하지만 동기는 단순하고 명료했다.

가장 흔한 혈액형이지, 해리가 속으로 답했다. 노르웨이 인구의 48퍼센트가 A형이다. 동전 던지기 확률 정도일 뿐, 아무 의미도 없다. 그런데 지금은 의미가 있었다. 그가 이미(핀네의 주사위처럼) 동전 던지기로 판단하기로 마음먹었으므로.

노르웨이 여자 챔피언은 패자와 자지 않는다. 더욱이 그녀보다 머리 절반은 작은 데다 이제는 유도 매트에 쓰러트릴 수도 있을 것 같은 남자와는. 이게 진화가 굴러가는 방식이다.

계산을 마치고 일어서면서 저 멀리 바람이 휘몰아치는 황량한 풍경을 보았다. 그 풍경이 어찌나 낯선지, 불과 하루 전에 반대편에서 달려올 때와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지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마치 이국의 사막처럼 보였다. 겉으로는 사람 하나 없어 보이지만, 움푹 들어간 어딘가에서 적들이 지켜보고 있을지 몰랐다.

그는 살인사건을 수사하며 무수한 시신을 보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인지, 남에게 목숨이 끊긴 사람인지 판단해야 했다. 불확실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무리 잔혹한 수단을 선택해서 죽었든, 현장이 어지럽고 선혈이 낭자하든, 자살에는 대개 단순하고 외로운 구석이 있었다. 결심, 행위, 소통의 부재. 그리고 복잡한 법의학적 문제를 거의 남기지 않는다. 자살 현장은 고요한 편이다. 그렇다고 자살 현장이 그에게 아무 말도 들려주지 않는 건 아니었다. 사실은 말을 해주었다. 다만 여러 목소리와 충돌의 불협화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가(특히 좋은 날이나 특히 나쁜 날에) 들을 수 있는 내면의 독백만 들렸다. 그때마다 그는 자살을 하나의 선택지로 여겼다. 무대에서 퇴장하는 방법. 쥐가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는 경로.

가장 일반적인 자살 동기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유아적 동기(세상에 대한 복수, ‘이제 나한테 미안할 거야’)부터 자기혐오, 수치심, 고통, 죄책감, 상실감, 온갖 ‘자잘한’ 동기, 자살을 위안이나 위로로 여기는 경우까지. 탈출 경로를 찾던 건 아니지만 단지 퇴로가 있는 걸 알고 싶은 사람들. 사람들이 대도시에 사는 이유가 대도시에는 오페라부터 스트립클럽까지 평생 이용하지 않을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인 것처럼. 살아 있다는 것, 산다는 것의 폐소공포를 막기 위한 장치들. 그러다 술이든 약이든 실연의 아픔이든 금전적 문제로든 삶의 중심을 잃어버린 순간 결정을 내리고 술을 한 잔 더 마시거나 바텐더를 때리는 행위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위안을 찾아간다는 생각밖에 없으므로.

미소가 눈가까지 닿을 정도로 웃고 마침내 빛이 고르게 퍼져서 그녀가 태양처럼 빛나고 그들이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해서 사진을 다시 찍어야 했던 기억.

교수형당할 놈은 물에 빠져 죽지 않는다.
왜 갑자기 이 속담이 떠올랐는지 몰랐다.

당뉘는 가끔 그런 꿈을 꾸었다. 언젠가 제자 하나가(한 명이면 족하다) 전화해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꿈. 어휘와 문법 그리고 언어 세계의 기초적인 영양분 이상의 세계를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꿈. 당뉘의 영어 수업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영감을 얻은 어떤 제자가 전화해주는 꿈. 그 뭔가로 인해 스스로 뭔가를 창조할 수 있었다고 말해주는 꿈.

성민과 카트리네는 그의 BMW 그란 쿠페의 앞자리에 탔다. 그는 연료비를 많이 지원해주는 크리포스의 차량 대신 손해를 감수하면서 본인 차를 몰았다. 아버지가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인생이 짧으니 좋은 차를 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목격자가 본래 믿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이 농간을 부리고 인간의 감각이 생각만큼 믿을 만하진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성민은 정확한 문구가 기억나지 않는 척 말했다. 경험상 그가 기억력이 좋고 사람의 마음을 잘 읽고 추론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을 들키면 상대가 긴장하고 대화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올레 빈테르가 그저 그런 수사관이고 유난히 약한 리더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누구에게도 해본 적이 없다. 빈테르가 물러터졌다는 뜻이 아니라, 그 반대로 고리타분하고 권위적이고 고집스러운 자라서 약한 지도자라는 뜻이다. 빈테르는 틀린 걸 틀렸다고 인정하고 젊은 생각을 하는 젊은 수사관들에게 책임을 위임해야 하는 걸 받아들일 만큼 자존감이 굳건하지 않았다. 그냥 젊은 게 아니라 더 똑똑한 수사관들에게 말이다. 하지만 성민은 크리포스에서 이런 의견을 가진 사람이 그밖에 없는 걸 알기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엘란 마드센은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뒷이야기를 듣고 싶어 안달 난 게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다 들어줄 수 있다는 걸, 안전하고 무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주려 했다. 흥미 때문도 아니고 파격적인 얘기를 듣고 싶어 조바심치는 것도 아니며 재미난 이야기에 집착하는 것도 아닌 척했다. 하지만 이번 예약, 이번 치료, 이번 대화를 기다려온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마드센은 로아르 보르를 보았다. 그의 경험으로 보면 사람의 얼굴과 표정과 몸짓에서는 답을 알 수 없었다. 이런 건 주로 학습된 행동이다. 사실은 사람들의 말에 답이 있다. 지금 그는 대답하지 못할 질문을 받았다. 노골적이지 않게, 솔직하지 않게 대답하지 못할 질문. 마드센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 여자도 스위스인이었어요. 안톤은 아름다운 여자를 좋아하니, 물론 그 여자도 아름다웠죠. 지적이고. 매너도 완벽하고. 좋은 집안 출신이고. 스위스는 아직 그런 게 중요한 나라거든요. 그런데 그중에 최악은 소니아가 착하기까지 했다는 거예요. 열의와 용기와 사랑으로 일에 뛰어드는, 진실로 호감을 주는 사람이었어요. 사망자와 중상자가 많이 들어온 날이면 소니아가 자다가 우는 소리가 자주 들렸어요.

그런 말을 들어주고 위로하면서 소니아를 더욱더 미워했어요. 소니아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이라서. 마드센, 이상하지 않아요?"

이 도시는 빛을 제대로 받은 순간에는 아찔하게 아름다워 보이다가도 이내 한없이 평범해 보여서 눈에 띄지 않고 못생겨 보이기까지 하는 여자와 닮았다. 하지만 이 순간, 이렇게 이른 새벽 시간에 평범한 노르웨이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의 오슬로는 그녀의 독차지였다. 훔친 시간을 함께 나누는 비밀 연인처럼 느껴졌다. 아직 낯설고 흥분하게 하는 사람과의 조우였다.

알렉산드라는 5월을 원했다. 그녀는 알았다. 5월 같은 남자와 함께일 때면, 그러니까 따스하고 온화하고 요구하는 건 다 적절한 정도로 들어주는 남자와 함께일 때면, 그녀가 제멋대로 굴면서 점점 더 요구하다가 결국 6월과 함께 배신하거나 심지어는 좀처럼 믿음이 가지 않는 7월과 함께 떠나버린다는 것을. 8월처럼 머리가 약간 세고 결혼해서 가정도 있는 괜찮은 어른 남자는 어떨까? 그래, 그런 사람이라면 기꺼이 만났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11월을 사랑한 걸까? 음울하고 어둡고 비에 푹 젖고 더 어두워질 것만 같은 남자, 너무나도 조용해서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거나 반대로 미친 듯이 우르릉거리는 가을 폭풍으로 지붕을 날려버릴 것 같은 남자. 물론, 그 남자는 예고도 없이 따스하고 화창한 날로 결국 더 소중하게 느끼게 해주면서 건물 몇 채가 서 있는 기묘하게 아름답고 황폐한 폐허의 풍경을 드러낼 것이다. 기반암처럼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아 11월의 마지막 날까지 그대로 서 있을 걸 알기에, 알렉산드라가(더 기댈 곳이 없을 때) 이따금 피신하는 곳.

흠. 알렉산드라는 그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키가 크다. 헬스장에 다닌다. 지나치게 많이는 아니고 모든 면에서 비율이 잘 잡혀 있다. 외모를 꾸미는 노력의 가치를 이해하면서 운동 그 자체를 즐긴다. 그녀처럼. 눈동자가 갈색이다, 당연히. 서른이 조금 넘었을까? 반지는 없다. 크리포스. 그러고 보니 여자 둘이 그 이름을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아시아와 노르웨이가 묘하게 섞인 이름. 그를 아직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게 이상했다.

당신은 우두머리 수컷이야. 가려던 곳에 이르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그리로 가는 중인 사람. 그녀처럼.

사실 흥미로운 물건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만 흥미로웠다.

알리세는 짜증 섞인 투로 걱정할 거 없다고 했다.
"당신의 비밀은 나한테는 안전해요." 알리세가 말했다.
바로 이 말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나보다 나은 누군가가 늘 거울을 들고 있어서 내가 날 싫어하게 만드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소유하는지가 중요한 사람들이므로. 그리고 모든 것을 잃으면 우리도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리는 생각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고 그 생각을 떨쳐냈다.

비에른이 그렇게 생겨먹어서? 음악과 영화를 지나치게 많이 아는 투실투실하고 허여멀겋고 무해한 과학수사관이고, 몇 년 더 지나면 음악과 영화를 더 많이 아는 뚱뚱하고 허여멀겋고 무해한 과학수사관이 될 남자. 언젠가부터 라스타파리안 모자 대신 플랫캡을 쓰고 플란넬 셔츠를 많이 산 남자. 이런 건 개인의 선택이라고 믿는 남자. 이런 것들이 한 개인의 성장에 관해, 그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인식에 관해 뭔가를 말해준다고, 그리고 모든 사람은 누구나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남자. 그러다 본 이베어 콘서트에서 그와 판박이인 수천의 관객을 보고 그도 결국 하나의 집단에 속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쨌든(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집단에 속하는 것을 죽기보다 혐오하는 사람들의 집단. 그는 힙스터였다.

그는 힙스터이면서도 힙스터를 혐오하고 특히 남자 힙스터를 질색했다. 몽환적인 이상주의로 자연과 독창성과 진정성을 탐닉하는 작자들. 통나무집에 살면서 먹거리를 기르거나 사냥하는 나무꾼처럼 보이고 싶어하지만 결국에는 현대의 삶이 자신의 남성성을 모조리 빼앗아가고 무력감만 남겨놨다고 여기는 과잉보호받는 어린 소년에 불과한 힙스터들에게는 어딘가 모르게 허황되고 남자답지 못한 구석이 있었다.

힙스터는 사회적, 직업적 성취에 대한 결핍을 보상하려고 문화적 우월성을 내세운다고.

사실은 오슬로 서쪽 출신 정치인이 공장에서 선거운동을 하면서 넥타이를 풀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며 연설문에 ‘하겠습니다’를 최대한 많이 집어넣는 정도로만 정직한 사람인가?

엔드레가 웃음을 터트리면서 무슨 동지라도 되는 양 동정 어린 손길로 비에른의 어깨를 잡으며 주위 친구들에게 작당하듯 씩 웃었다. 모두가 참여하지만 비에른만 규칙을 모르는 게임이라도 하듯이.

싸움에서 이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최대한 위협적으로 먼저 주먹을 날리는 것이다. 그러면 열에 아홉은 곧바로 싸움이 끝난다.

1980년대에 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가 한 주장에 따르면 무의식은 우리가 비밀로 간직하고 싶어하는 정보를 무심결에 말하지 못하게 하려고 끊임없이 확인한다. 하지만 비밀이 무의식에서 튀어나오면 뇌의 의식 영역에 알려서 뇌가 비밀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그때부터 실수로 진실이 새어 나오는 건 시간문제다.

칼은 없고 펜과 수다스러운 입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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