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우리는 한 침대에서 같이 자고 함께 일상을 나누는 사람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우리 자신에 관해 아는 것보다도 훨씬 덜 알 수 있을 뿐이다. 카트리네는 인정하기 쉽지 않았지만 사실 우리가 주위 사람들에게 받는 인상이 딱 그렇다. 인상.

"여섯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안 돼요. 새로운 심리학 연구를 보니까 여섯 시간이 되기 전에 외상 경험을 돌아보면 장기적으로 외상에 시달릴 위험이 커진대요."

"네 엄마가 이런 걸 좋아했어." 해리가 말했다. "우리 둘이 얘기하는 걸 듣는 거."

"책이나 뜨개질거리를 가져와서 우리 옆에 앉았지. 대화를 끊지도, 대화에 끼어들려고 하지도 않았어. 사실은 우리 얘기를 듣지도 않았어. 그냥 그 소리가 좋았다더라. 네 엄마 인생의 남자들 소리라면서."

"아빠랑 엄마요. 방으로 자러 가서 방문을 살짝 열어놓고 두 분이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둘이 조용조용 얘기했고, 이미 많은 얘기를 나누어 서로를 잘 아는 느낌. 새로 덧붙일 말이라고는 여기저기 간간이 들어갈 중요한 단어뿐이었어요. 그런데도 아빠는 엄마를 웃겼어요. 더없이 안전한 소리, 잠이 잘 오는 소리였어요."

그녀는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적게 묻는 습관을 들였다.

상체를 어떻게 써야 하고 팔을 똑바로 펴고 팔이 아니라 복근의 힘으로 노를 저으라고 말씀해주시던 기억. 가볍게 노를 저으며 억지로 힘주지 않고 리듬을 찾아야만 배가 순탄하게 물살을 가르며 적은 힘으로도 빠르게 나갈 수 있다던 말씀. 엉덩이로 벤치 중앙에 균형을 잡고 앉아야 한다던 말씀. 균형이 전부라던 말씀. 노를 보지 말고 배가 지나온 자리에 눈을 고정해야 하고, 지나온 흔적이 앞으로 어디로 향할지 보여준다던 말씀.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마저도 앞으로 벌어질 일에 관해 매우 적게 알려줄 뿐이라고 덧붙였다. 모든 건 바로 다음번 노질에 의해 결정된다면서. 할아버지는 주머니 시계를 꺼내고 우리가 물가로 돌아가면 우리의 여정을 출발점에서 도착점까지 하나의 연속선으로 보일 거라고 말했다. 목적과 방향이 있는 이야기. 우리는 그 이야기가 여기에, 다른 어디도 아닌 여기에 있는 것처럼 기억하고, 배가 물가에 닿게 하려고 의도한다. 하지만 도착점과 처음 의도한 목적지는 전혀 다르다.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 현재 위치에 이르러서 여기가 우리가 가려던 곳이거나 적어도 가려는 길 위에 있다고 믿으면 그런대로 위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은 오류에 빠지기 쉬워서 우리가 얼마나 똑똑한지 말해주는 다정한 엄마처럼 우리의 노 젓는 행위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전체 이야기에 논리적이고 의도된 요소로 딱 들어맞는다고 말해준다. 경로에서 이탈했을 수도 있고 더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인생은 그저 서툴고 어설프게 노 저어 가는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상태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썩 기분 좋을 리가 없으므로, 누구나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이야기를 다시 쓰고 싶어한다. 그래서 성공한 듯 보이는 사람들에게 인생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면 대개 현재의 삶이 어릴 때부터 꿈꿔온(유일한) 꿈이고 현재 어느 분야에서 성공했든 그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이 원래부터 꿈이었다고 말한다. 진심일 수도 있다. 다만 그 밖의 모든 꿈을, 길러지지 않고 시들다 사라져버린 꿈을 잊었을 뿐

그리고 그들에게 조언해주기를. 일부는 도움이 되고 일부는 잊히거나 무시당할 걸 알기를. 자부심과 연민이 묘하게 섞여 가슴이 벅차고 목이 메기를. 아이가 자기보다 더 나아서 생기는 자부심. 그 아이들이 지나온 고통보다 앞으로 다가올 고통이 더 크기에, 그 아이들이 누군가는, 그들 자신이든 적어도 할아버지는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안다고 믿으며 노를 젓는 모습에서 일어나는 연민.

"흔히 희생양은 무고할 거라고 오해해요." 요한이 말했다. "희생양의 목적은 무고한 데 있는 게 아니라 그가 한 짓이든 아니든 책임을 떠안는다는 데 있죠.

성민은 카스파로브 앞에 쭈그리고 앉아 두 손을 맞대고 비비면서 늙은 개의 지친 눈을 보았다.
"네가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어."
카스파로브가 낑낑거리고 꿈틀대자 성민이 개를 안고 그들의 궂은 운명을 향해 꾸역꾸역 다리를 건넜다.

그곳은 차가웠다. 무서웠다. 그리고 외로웠다. 하지만 다른 것도 있었다. 조용했다. 무척이나 평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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