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is nothing out of theordinary, even if we think it is; evenif we idealise it, celebrate it inpoetry, sentimentalise it in coyvalentines. Love happens to justabout everyone; it is like measles orthe diseases of childhood; it is aspredictable as the losing of milkteeth, or the breaking of a boy‘svoice. It may visit us at any time, inour youth but also when we aremuch older and believe we arebeyond its reach; but we are not. Ithas been described as a toothache, amadness, a divine intoxication-metaphors that reflect the disturbingeffect it has on our lives.

It may bring surprise, joy, despair and,
occasionally, perfect happiness.

But for each person who is madehappy by love, there will be manyfor whom it turns out to be a causeof regret. That is because it can be

If it were not for the train journeyon that day, these four would neverhave met. Journeys may be likethat, may bring together people whowould otherwise never have knownof each other‘s existence. In thatrespect, long journeys havesomething in common with militaryservice or boarding school, or eventhe shared experience of somenatural disaster. Such things bringus into contact with people wewould never have encountered butfor the sharing of danger orunhapp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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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우정은 주고받는 과정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사랑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서로 좋다는 것, 나만 좋으면 안된다는 것, 즉 호혜성이다.

내게 사랑에 관한 최고의 정의는 ‘서로 시간을 합치는 것’이다.

둘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산산이 흩어졌을 시간을 합치고 합쳐서 우리가 만나지 못했더라면 시도하지 못했을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면, 그 관계 안에서 각자가 더 분발할 수 있다면, 각자가 세월이 흐를수록(옛날이 좋았어,가 아니라) 더욱 새로워질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후회 없이 축하할 수 있을 것이다.

"너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내가 아닐 거야."

어쨌든 사랑하는 사람들은 동시대에 태어나야만 하고 만나야만 한다.

살아 있으되 죽은 것처럼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으면서 훈수만 두고 품평만 하고 해석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 손은 주머니에 넣고, 주머니에서 손가락만 튕기면서. 물론 더 나쁜 경우도 있다. 자기를 위해 남의 손을 더럽히는 사람들이 그렇다.

개구리 앞에서 꿈쩍도 않고 서 있는 인간의 모습도 등장한다. "내가 움직이면 개구리가 놀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명이 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시야의 확장이다. 그 자신을 다른 생물들에게 투사하는 것 말이다. 이것은 인류의 고독하고 장대한 힘이며 확장의 궁극적인 전형이다."

"사람은 정말 변할 수 있을까?"
"응, 믿어. 단 조건이 있어. 애써 피했던 질문을 다시 만나기로 마음먹으면……"
내가 내 말에 책임져야 할 순간을 맞은 것이다.

『아연 소년들』은 전쟁터에서 죽어 아연관에 담겨온 소년 병사들을 말한다. 그 소년들은 죽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련에서 9학년에 다니던 아이들이었다. 죽어갈 때는 하나같이 "엄마"를 불렀다. 책 속에는 아프간에 파병되었던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 목소리는 자신이 겪은 일을 표현할 말을 찾는 데 고통을 겪는다.

타인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는 것에도 질문을 던져야 하나? 우리가 진실에 그토록 무관심하다면 그 많은 글과 뉴스, 이야기들은 다 무엇인가?

우리가 비극을 대하는 태도는 이렇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어,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나한테 뭐 그런 일이 생기겠어? 하지만 누가 알아? 다행히 나는 그런 일을 겪지 않았어…… 안타깝게도 타인과 나의 간극은 이렇게나 크다. 타인의 불행 앞에서 느끼는 이상한 안도감, 그 일을 내가 겪지 않았다는, 입 밖으로는 내지 못할 기쁨이 있고 가까운 사람의 죽음 앞에서조차(특히 내가 부러워하던 사람이라면) 기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비극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이룬 성취는 우리를 쓸쓸하게 하기도 한다.

"세상이 그렇지 뭐. 억울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야? 밖에 나가봐, 억울한 사람 널려 있어."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보편성을 끌어들인다.)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진실하냐와 상관없이 우리에게는 잔인한 면이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타인의 아픔을 조롱하기까지 한다. 타인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도 빈약하기 짝이 없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진다.

대체 누가 이렇게 미운 한국말을 만든 것인가? 돈을 말하면서 우리 마음은 너무 가난해졌다. 욕망은 전혀 관용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슬픈 사람을 공격하면서 자신의 힘을 확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일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은밀한 두려움이 되어간다.

멸시하면서 멸시당할까 두려워한다. 공격하면서 치유를 말한다.

찰스 부코스키의 말처럼 우리는 폭탄과 지옥과 수치를 함께 안고 살고 있다

시몬느 베이유는 불행한 인간에 대해 깊은 주의를 갖고 무슨 힘든 일이라도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는 힘을 가졌는가에 인간다움의 자격이 달려 있다고 했지만 나도 숱하게 인색하게 내 마음을 나눠주곤 한다.

오늘 내가 타인에게 나눠주기를 아까워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니, 내가 그토록 공감받고 이해받기를 원했던 사람에게 끝내 그것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어지럽힌다.

우리는 한 사람을 얼마든지 축소한다.
그 순간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아! 알겠어! 그래서 그랬군!"
비로소 ‘공감대’가 형성된다.
쿤데라는 바로 이런 모습을 보고 폭소를 터뜨렸다. 어리석음을 참을 수 없어서 터뜨리는 웃음. 그는 한 사람의 개성, 정체성, 가치, 이것들을 파괴하여 무의미한 획일성으로 만드는 것이 악마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에 대한 존중은 한 사람을 하나의 원인으로, 당위로 환원시키지 않는 것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기 위해 편리한 방편 뒤로 숨어든 사람의 시선이다.

내가 타인을 정당하게 대하지 못한다면 무슨 근거로 나 자신을 정당하게 평가해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도 다른 사람이 피상적인 시선으로만 본다면 슬프고 화나지 않는가?

인간은 어떤 일을 겪든 겪은 일에 대항해서 자기 정체성을 지킬 수 있을까? 아니면 다시는 회복 불가능하게 될까?

당해보지 않고도 아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

도스또옙스끼의 삶은 가난, 간질, 아내와 아이의 죽음, 끝없이 고통스러웠지만 그에게는 그 짐을 피하려는 열정이 아니라 자신의 짐만으로도 무거운데 다른 가난하고 비참한 전 인류의 짐을 짊어지려는 열정이 있었다. 그에게는 삶의 고통, 그것이 보이고 들리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피눈물로부터 온 인류를 위한 미래의 인간형을 만들려고 했다. 그는 피눈물을 흘리지만 부드럽게 말한다. ‘아이야, 러시아에서 너는 고운 꽃이 될 여유가 없다. 러시아에서 너는 우엉이나 민들레가 되어야 해.’

영혼은 변함없이 혼란이고 모순이고 경멸할 만한 것이지만 매우 심오한 것일 수 있다. 소설에서 그는 진실한 말은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 진실한 말은 이렇게 주어진다. ‘우리는 풍요로움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괴로움과 부족함으로 글을 쓴다.’ 우리의 말도, 목소리도 그렇게 다가오고 주어진다.

워즈워스의 말대로 알지도 못하고 지껄이는 자들이 성급하게 인간을 악하다고 단정한다 해도 우리의 사랑으로 장관이 펼쳐지고 사랑이 사라지면 우리는 먼지와 같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말에는 형용사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견디는 사랑, 버티는 사랑, 관대한 사랑, 퍼주는 사랑, 파격적인 사랑, 셈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사랑, 초연한 사랑이 필요하다.

보르헤스의 말대로 우리 각자는 고통을 느끼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다. 우리 각자는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다.

헤르만 헤세는 고통은 자기에게만 무겁고 자기만이 뚫을 수 있는 그림자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라고 했는데 실제로 나의 많은 고통이 그랬다.

너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이냐, 너 자신에게 일어나길 원하는 일이 무엇이냐, 나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원하고 있느냐, 타인을 볼 때 무엇을 제일 먼저 보느냐, 무엇을 보기에 타인은 행복할 것이라고 혹은 불행할 것이라고 느끼느냐?

그녀의 열정, 출구를 찾지 못해 고통받는 진실한 마음이 진부한 행복관과 만났기 때문에 어리석어지고 말았고 열정도 거짓 열정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위기의 순간마다 한번도 새로운 모습을 보이질 못했다. 그래서 나보꼬프는 그녀의 잘못은 간통이 아니라 진부함이라고 했다.

열정, 행복이라 하면 다 좋은 것인 줄로만 알고 살다가 그때 처음 어리석은 열정, 진부한 행복관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돌발적으로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돌아보면서 새로운 남자, 새로운 여자, 새로운 직업, 대체물을 찾을 것이 아니라 행복관을, 사랑관을, 꿈을, 욕망을 바꾸어야만 한다는 것을 아주 신선한 충격 속에서 알게 되었다.

뻬소아는 신들이 부디 내 꿈을 다른 것으로 바꿔주시길, 그러나 꿈을 꾸는 능력만은 남겨주시길!이라고 말했는데 『마담 보바리』를 읽은 내 마음이 딱 그랬다. 마담 보바리는 휘트먼이 말한 것처럼 내 눈에서 눈곱을 씼어주었다.

우리는 너무 별로인 곳도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성』의 주제는 측량기사는 성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는 게 아니라 측량기사와는 딱 반대로 살라는 것이다. 측량기사가 결코 하지 않은 일을 하라. 즉 당신이 갇혀 있는 마음의 성에서 탈출하라.

슬라보예 지젝은 당신의 지옥을 옮겨라!라고 했다. 직시해야 하는 것은 현실만은 아니다. 내 마음 저 아래서 은밀히 나를 움직이는 환상도 직시해야만 했다. 내가 그것을 직시하려고 했을 때, 그럴 필요도 없이 나는 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안똔 체호프가 말한 대로 나는 뭐 대단한 일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하찮은 웅덩이, 피상성, 속물성 때문에 괴로웠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안똔 체호프가 알려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의 답을 찾는 것은 스스로의 도덕성을 찾는 것과도 같다.

리어 왕은 최악의 상황을 출발점으로 삼으려고 했다. 오르떼가 이 가세뜨는 왜 고통을 두려워하지? 위기는 변화인데……라고 반문했다. 예이츠는 위기의 순간을 자아를 형성하는 기회로 삼았다.

우리는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가장 자유로울 수도 있다.

보르헤스는 60일 이내에 무슨 일인가 벌어지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했다. 세상은 실재하는 것이 분명한데 왜 이렇게 우리의 발을 걸려 넘어뜨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카프카는 익사하지 않도록 고개를 들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의 고통은 나에게만 너무 무겁고 남에게는 너무 가볍다고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계속해서 비틀거리며 쓰러지고 추스르고 일어나서 다시 나아가려고 시도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일생 동안 한 일이라고 했다.

존 버저는 사랑은 상처로부터의 일시적 구원, 행복은 불행으로부터의 일시적 면제라고 했다.

싸뮈엘 베께뜨는 그나마 재치 있는 대화를 할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쉼보르스카는 삶이 뜻대로 안될 때 그때 영혼이 생긴다고 했다.

슬라보예 지젝은 자신이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그런 고통이 세상에 없어야 하므로 다른 사람 누구도, 아무도 고통을 겪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정한 사람들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묻지 않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않으면 안되는가?’라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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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지 몰래 숨어들어 온
근심, 걱정 때문에
겨우내 몸살이 심했습니다

3월의 바람 속에
보이지 않게 꽃을 피우는
당신이 계시기에
아직은 시린 햇볕으로
희망을 짜는
나의 오늘
당신을 만나는 길엔
늘상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살아 있기에 바람이 좋고
바람이 좋아 살아 있는 세상

3월의 바람




필까 말까
아직도 망설이는
꽃의 문을 열고 싶어
바람이 부네

열까 말까
망설이며
굳게 닫힌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싶어
바람이 부네

쌀쌀하고도
어여쁜 3월의 바람
바람과 함께
나도 다시 일어서야지
앞으로 나아가야지

이번 일을 겪으면서 우리가 다 함께 절감하는 것은 그 누구도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서로를 돌보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 말은 따뜻하게 행동은 성실하게 공동선을 향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몫을 다할 때만 우리의 일상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거나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르지 않으면서 곧잘 짜증과 푸념으로 우울을 전염시키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이 고난의 시기도 결국은 지나갈 것이라믿습니다. 우리 모두 희망으로 일어서라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3월의 연둣빛 바람이 재촉하는 속삭임을 들으며 가만히 두 손 모읍니다.

자꾸만 가까이
기대고 싶어 하지만
서로의 거리를 두어야
잘 보이고
침묵을 잘해야
할 말이 떠오릅니다

남의 말을
듣고 또 듣는 것이
사랑의 방법입니다
침묵 속에 기다리는 것이
지혜의 발견입니다

아파도 슬퍼도
쉽게 울지 않고
견디고 또 견디는 것이
기도의 완성입니다

나무가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할 말이 많을까 싶습니다. 겉으로 중심을 잡기 위해선 안으로 많이 아팠다고, 뿌리를 깊이 내리기 위해선 눈물겨운 참을성을 키워야 했다고, 싱싱한 푸른 잎사귀를 달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긴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침묵과 인내와 기다림의 덕목을 잘 키우면 어느 날 지혜의 열매가 달리고 하늘 향한 환희심과 설렘으로 삶이 온통 기쁨으로 출렁이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고, 사랑의 승리자가 되려면 끝까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말을 줄이고 듣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고고백하는 나무!

고독과 친해질수록 하늘도 잘 보이고 옆 사람들의 마음도 잘 헤아릴 수 있다고 넌지시 일러주는 나무!

누굴 대신해 아파줄 수도 없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무력함 속에서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아픔과 슬픔을 공유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일 겁니다.

해야 할 일 뒤로 미루고
하고 싶은 것만 골라 하고
기분에 따라
우선순위를 잘도 바꾸면서
늘 시간이 없다고 성화이네

자신의 아픔에 빠져 있느라 다른 이의 더 큰 아픔은 눈에 들어오질 않고 그를 깊이 이해하려 들지 않은 순간들이 문득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성인들의 삶을 본받는 이타적인 삶에 대하여 배우지만, 일상의 삶에서 마주하는 제 모습은 늘 자기중심적이고 편협할 때가 많습니다.

다산의 말




"남이 어려울 때
자기는 베풀지 않으면서
남이 먼저 은혜를 베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의 오만한 근성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전번에 이리저리 도와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게 하는구나!’ 하는 소리를 한마디라도
입 밖에 내뱉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말이 한 번이라도
입 밖에 나오면 지난날 쌓아놓은 공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되어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기껏 좋은 일 선한 일 하고도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여
향기를 달아나게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나라고 고백하는 사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푸른 기침 소리

참된 겸손이란 자신이 어떤 선한 일을 하고도 요란하게 생색을 내거나 보답을 받으려 하지 않고 성경에 나오는 착한 종과 같이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루카 17, 10) 하는 담백한 태도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살다 보면 자신의 어떤 수고나 선행에 대해 누가 몰라주면 서운해하고 그걸 마음속에만 담아두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미성숙한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가까운 이들에겐 그서운함을 지나치게 솔직하게 말하고 나서 스스로 무안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평소에 수녀님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챙기는 것에 비하면 나는 별로 챙김을 받지 못해 서운할 때가 있어요’라고 말을 했다면, 요즘은 설령 서운하더라도 침묵하는 연습을 조금씩 하다 보니 평화가 찾아옵니다.

가정에서든 수도원에서든 상대에게 무엇을 바라고 하는 비교급의 말은 종종 좋은 관계를 그르치는 걸림돌이 됩니다.

남이 잘한 것에 대해서는 ‘덕분입니다’ 하고,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제 탓입니다’ 하고, 선한 일을 했을 때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이지요’ 하는 그런 마음으로 다산 정약용의 말을 명심하고 실천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무심했던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새로운 발견에눈뜨는 기쁨! 이 기쁨이야말로 우리가 계속 갈고닦아 가야 할 덕목이 아닐는지요.

아무리 선하게 살아보려 애를 써도 미운 사람이 더 많아지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이 무력증에 빠져 삶 자체가 우울하다는 이들에게 저는 종종 이렇게 답신을 적어 보냅니다. 독서, 음악 감상, 여행 같은 것 못지않게 즐거울 수 있는 자신만의 취미를 계발해서 길들여 보라고! 삶이 지루하고 힘들게 여겨질수록 아름다운 순간들을 발견하고 음미해 보기, 고운 말을 찾아서 활용해 보기, 주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알아차리고 챙겨주기, 누가 시키는 사소한 부탁도 잊지 않고 충실히 기억하는 심부름꾼 되기 등등, 사랑과 관심의 눈길을 조금만 더 밖으로 돌리면 어느새 밝고 명랑한 기운을 차츰 되찾을 수 있으니 꼭 한번 실천해 보라고 말입니다.

일상의 길 위에서 정말 죽을힘을 다해 사랑하고, 죽을힘을 다해 용서하고, 죽을힘을 다해 기도한 적이 있는가 반성하곤 합니다. 매일의삶에서 작은 사랑과 기쁨을 만드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예민함에서 아주 조금만 이타적인 예민함으로 건너가는 용기일 것입니다.

1) ?공동체 안에서 우정의 평화를 깨뜨리는 험담이나 뒷담화의 악습을 삼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화를 위한 중간 역할이 필요할 땐 지혜롭고 용기 있게 대처하자.

3) ?나라를 다스리는 이들의 어떤 행동이나 방침에 대해 더러 못마땅해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순 있지만 무심결에라도 내가 사는 나라를 함부로 비하하거나 저주하는 부정적 언어를 사용하지 말도록 하자.

나만의 여름 나기 수련법 몇 가지를 적어봅니다. 첫째, 실제로 수영은 못 가도 독서의 바다에 깊이 빠지기, 둘째, 덥다는 푸념이 습관적으로 나올 적마다 태양을 예찬하며 옆 사람에게 덕담 하나씩 건네기, 셋째, 누가 마음 상하는 말을 하면 너무 더워서 본의 아니게짜증을 내는 거니 그만의 향기를 찾아내고 기억하며 좋은 마음으로 참아내기 등 구체적인 실습을 시작하려 합니다.

‘꽃처럼 일어서라.’ ‘마음이여 일어서라.’ 오늘은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매일을 살아가는 일이 너무 버거우니 수녀님의 글씨로 힘내라 한마디만 써 보내주세요"라는 편지를 보낸 어느 독자에게도 다시 힘내라고, 한 송이 꽃으로 일어서라고 말해야겠습니다. 거짓말처럼 통증이 멎고 나니 비 온 뒤의 맑고 밝은 햇빛이 마음에도 스며들어 ‘누굴 좀 도와줄 일이 없나?’ 하고 사소하지만 뜻깊은 애덕의 행동을 하고 싶은 열망이 저를 재촉하니 행복합니다.

삶의 정원을
순간마다 충실히 가꾸라는 것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새겨듣고
웬만한 일은 다 용서할 수 있는
넓은 사랑을 키워가라는 것

활활 타오르는 뜨거움은 아니라도 좋아요
그저 물과 같이 담백하고 은근한 우정을
세상에 사는 동안 잘 가꾸려 애쓰다 보면
어느새 큰 사랑이 된다는 것
오늘도 잊지 마세요. 그럼 다음에 또……

마지막 입원을 앞두고 제게 우리가 공동으로 외우는 기도문의 어떤 구절이 번역이라 그런지 어색하게 느껴지니 꼭 수정해 주길 바란다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떠난 우리 수녀님, 스스로 가난과 침묵과 겸손의 삶을 표양으로 보여주신 수녀님답게 너무도 소박하고 간소하게 치러지는 장례식을 보면서 새삼 더 존경스럽고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그분의 유품을 복도에 전시하는데 라틴어로 성경을 정교하게 필사한 큰 노트 다섯 권과 당신의 맘에 드는 글들을 스크랩하여 보관한 몇 가지가 전부였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보다 그것들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진정한 부자가 된다"

1) 차츰 개인의 물건을 줄여나간다.
2) 노년의 고통을 인간 완성을 위한 선물로 받아들인다.
3) 혼자서 즐기는 습관을 들인다.
4) (내면의 고요를 위하여) 외출을 삼간다.
5) 타인으로부터 오는 마음의 위안을 끊는다.
6) ?자신의 죽음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도록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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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은 모든 계급 구분에 종지부를 찍고 다시는 이 끔찍한 질서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가장 커다란 꿈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 감정을 숨겨야 해. 폴을 위해서. 그 아이에게 고향이 될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어. 설사 내가 아라키스를 미처 죽기도 전에 도착한 지옥 같은 곳으로 생각하더라도 그 아이는 이곳에서 정을 붙일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해. 여기에도 분명히 뭔가가 있을 거야.’

자기 연민이 파도처럼 일었지만, 그는 진저리를 치며 즉시 거부해 버렸다.

나의 허파가 떨어져 내리는 모래를 지나 불어온
시간의 공기를 맛본다…….

그는 언제나 태평했으며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보라, 사막의 거친 나귀처럼 나는 나의 임무를 위해 나아가노라.’"
그는 다시 한번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더니 몸을 돌려 성큼성큼 방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할렉은 언제나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의 머리는 노래와 인용문과 꽃처럼 화려한 문구 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하코넨과 상대할 때가 되면 그는 암살자의 가슴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지휘관은 항상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해. 아무리 아슬아슬한 상황에서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부하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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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길이든 정확하게 끝까지 따라가 버리면 어디에도 이를 수 없다. 산이 산이라는 것을 확인하려면 조금만 올라가야 한다. 산꼭대기에서는 산을 볼 수 없다.’
? 이룰란 공주의 『무앗딥: 가족 회고록』

"‘오, 인간이여! 여기에 신의 사랑스러운 창조물이 있다. 그 앞에 서서 그대의 지고의 친구가 준 완벽한 것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

우리가 원하는 것이 가까이 있으면 방종에 빠지기 쉽다는 교훈 말입니다. 그 길에는 위험이 놓여 있습니다.

"너 하와트를 믿지 않는 거니?" 그녀가 물었다.
"아뇨. 하지만 아저씨도 이제 나이가 들었고…… 일도 너무 많으니까요. 우리가 아저씨의 짐을 좀 덜어줄 수도 있을 거예요."
"그건 하와트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고 그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뿐이야. 그가 이 얘기를 듣고 나면 길 잃은 벌레 한 마리도 관저로 마음대로 들어오지 못할 거다. 아마 너무 수치스러워서……."

"그래, 나의 어떤 점이 네 아버지의 마음에 들지 않는데?"
"어머니가 아버지 말에 반박하는 거요."
"넌 네 아버지가 아냐,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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