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지 몰래 숨어들어 온
근심, 걱정 때문에
겨우내 몸살이 심했습니다

3월의 바람 속에
보이지 않게 꽃을 피우는
당신이 계시기에
아직은 시린 햇볕으로
희망을 짜는
나의 오늘
당신을 만나는 길엔
늘상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살아 있기에 바람이 좋고
바람이 좋아 살아 있는 세상

3월의 바람




필까 말까
아직도 망설이는
꽃의 문을 열고 싶어
바람이 부네

열까 말까
망설이며
굳게 닫힌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싶어
바람이 부네

쌀쌀하고도
어여쁜 3월의 바람
바람과 함께
나도 다시 일어서야지
앞으로 나아가야지

이번 일을 겪으면서 우리가 다 함께 절감하는 것은 그 누구도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서로를 돌보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 말은 따뜻하게 행동은 성실하게 공동선을 향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몫을 다할 때만 우리의 일상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거나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르지 않으면서 곧잘 짜증과 푸념으로 우울을 전염시키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이 고난의 시기도 결국은 지나갈 것이라믿습니다. 우리 모두 희망으로 일어서라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3월의 연둣빛 바람이 재촉하는 속삭임을 들으며 가만히 두 손 모읍니다.

자꾸만 가까이
기대고 싶어 하지만
서로의 거리를 두어야
잘 보이고
침묵을 잘해야
할 말이 떠오릅니다

남의 말을
듣고 또 듣는 것이
사랑의 방법입니다
침묵 속에 기다리는 것이
지혜의 발견입니다

아파도 슬퍼도
쉽게 울지 않고
견디고 또 견디는 것이
기도의 완성입니다

나무가 사람처럼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할 말이 많을까 싶습니다. 겉으로 중심을 잡기 위해선 안으로 많이 아팠다고, 뿌리를 깊이 내리기 위해선 눈물겨운 참을성을 키워야 했다고, 싱싱한 푸른 잎사귀를 달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긴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침묵과 인내와 기다림의 덕목을 잘 키우면 어느 날 지혜의 열매가 달리고 하늘 향한 환희심과 설렘으로 삶이 온통 기쁨으로 출렁이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고, 사랑의 승리자가 되려면 끝까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말을 줄이고 듣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고고백하는 나무!

고독과 친해질수록 하늘도 잘 보이고 옆 사람들의 마음도 잘 헤아릴 수 있다고 넌지시 일러주는 나무!

누굴 대신해 아파줄 수도 없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무력함 속에서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아픔과 슬픔을 공유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일 겁니다.

해야 할 일 뒤로 미루고
하고 싶은 것만 골라 하고
기분에 따라
우선순위를 잘도 바꾸면서
늘 시간이 없다고 성화이네

자신의 아픔에 빠져 있느라 다른 이의 더 큰 아픔은 눈에 들어오질 않고 그를 깊이 이해하려 들지 않은 순간들이 문득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성인들의 삶을 본받는 이타적인 삶에 대하여 배우지만, 일상의 삶에서 마주하는 제 모습은 늘 자기중심적이고 편협할 때가 많습니다.

다산의 말




"남이 어려울 때
자기는 베풀지 않으면서
남이 먼저 은혜를 베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의 오만한 근성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전번에 이리저리 도와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게 하는구나!’ 하는 소리를 한마디라도
입 밖에 내뱉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말이 한 번이라도
입 밖에 나오면 지난날 쌓아놓은 공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되어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기껏 좋은 일 선한 일 하고도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여
향기를 달아나게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나라고 고백하는 사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푸른 기침 소리

참된 겸손이란 자신이 어떤 선한 일을 하고도 요란하게 생색을 내거나 보답을 받으려 하지 않고 성경에 나오는 착한 종과 같이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루카 17, 10) 하는 담백한 태도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살다 보면 자신의 어떤 수고나 선행에 대해 누가 몰라주면 서운해하고 그걸 마음속에만 담아두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미성숙한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가까운 이들에겐 그서운함을 지나치게 솔직하게 말하고 나서 스스로 무안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평소에 수녀님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챙기는 것에 비하면 나는 별로 챙김을 받지 못해 서운할 때가 있어요’라고 말을 했다면, 요즘은 설령 서운하더라도 침묵하는 연습을 조금씩 하다 보니 평화가 찾아옵니다.

가정에서든 수도원에서든 상대에게 무엇을 바라고 하는 비교급의 말은 종종 좋은 관계를 그르치는 걸림돌이 됩니다.

남이 잘한 것에 대해서는 ‘덕분입니다’ 하고,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제 탓입니다’ 하고, 선한 일을 했을 때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이지요’ 하는 그런 마음으로 다산 정약용의 말을 명심하고 실천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무심했던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새로운 발견에눈뜨는 기쁨! 이 기쁨이야말로 우리가 계속 갈고닦아 가야 할 덕목이 아닐는지요.

아무리 선하게 살아보려 애를 써도 미운 사람이 더 많아지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이 무력증에 빠져 삶 자체가 우울하다는 이들에게 저는 종종 이렇게 답신을 적어 보냅니다. 독서, 음악 감상, 여행 같은 것 못지않게 즐거울 수 있는 자신만의 취미를 계발해서 길들여 보라고! 삶이 지루하고 힘들게 여겨질수록 아름다운 순간들을 발견하고 음미해 보기, 고운 말을 찾아서 활용해 보기, 주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알아차리고 챙겨주기, 누가 시키는 사소한 부탁도 잊지 않고 충실히 기억하는 심부름꾼 되기 등등, 사랑과 관심의 눈길을 조금만 더 밖으로 돌리면 어느새 밝고 명랑한 기운을 차츰 되찾을 수 있으니 꼭 한번 실천해 보라고 말입니다.

일상의 길 위에서 정말 죽을힘을 다해 사랑하고, 죽을힘을 다해 용서하고, 죽을힘을 다해 기도한 적이 있는가 반성하곤 합니다. 매일의삶에서 작은 사랑과 기쁨을 만드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예민함에서 아주 조금만 이타적인 예민함으로 건너가는 용기일 것입니다.

1) ?공동체 안에서 우정의 평화를 깨뜨리는 험담이나 뒷담화의 악습을 삼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화를 위한 중간 역할이 필요할 땐 지혜롭고 용기 있게 대처하자.

3) ?나라를 다스리는 이들의 어떤 행동이나 방침에 대해 더러 못마땅해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순 있지만 무심결에라도 내가 사는 나라를 함부로 비하하거나 저주하는 부정적 언어를 사용하지 말도록 하자.

나만의 여름 나기 수련법 몇 가지를 적어봅니다. 첫째, 실제로 수영은 못 가도 독서의 바다에 깊이 빠지기, 둘째, 덥다는 푸념이 습관적으로 나올 적마다 태양을 예찬하며 옆 사람에게 덕담 하나씩 건네기, 셋째, 누가 마음 상하는 말을 하면 너무 더워서 본의 아니게짜증을 내는 거니 그만의 향기를 찾아내고 기억하며 좋은 마음으로 참아내기 등 구체적인 실습을 시작하려 합니다.

‘꽃처럼 일어서라.’ ‘마음이여 일어서라.’ 오늘은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매일을 살아가는 일이 너무 버거우니 수녀님의 글씨로 힘내라 한마디만 써 보내주세요"라는 편지를 보낸 어느 독자에게도 다시 힘내라고, 한 송이 꽃으로 일어서라고 말해야겠습니다. 거짓말처럼 통증이 멎고 나니 비 온 뒤의 맑고 밝은 햇빛이 마음에도 스며들어 ‘누굴 좀 도와줄 일이 없나?’ 하고 사소하지만 뜻깊은 애덕의 행동을 하고 싶은 열망이 저를 재촉하니 행복합니다.

삶의 정원을
순간마다 충실히 가꾸라는 것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새겨듣고
웬만한 일은 다 용서할 수 있는
넓은 사랑을 키워가라는 것

활활 타오르는 뜨거움은 아니라도 좋아요
그저 물과 같이 담백하고 은근한 우정을
세상에 사는 동안 잘 가꾸려 애쓰다 보면
어느새 큰 사랑이 된다는 것
오늘도 잊지 마세요. 그럼 다음에 또……

마지막 입원을 앞두고 제게 우리가 공동으로 외우는 기도문의 어떤 구절이 번역이라 그런지 어색하게 느껴지니 꼭 수정해 주길 바란다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떠난 우리 수녀님, 스스로 가난과 침묵과 겸손의 삶을 표양으로 보여주신 수녀님답게 너무도 소박하고 간소하게 치러지는 장례식을 보면서 새삼 더 존경스럽고 부럽기도 하였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그분의 유품을 복도에 전시하는데 라틴어로 성경을 정교하게 필사한 큰 노트 다섯 권과 당신의 맘에 드는 글들을 스크랩하여 보관한 몇 가지가 전부였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보다 그것들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진정한 부자가 된다"

1) 차츰 개인의 물건을 줄여나간다.
2) 노년의 고통을 인간 완성을 위한 선물로 받아들인다.
3) 혼자서 즐기는 습관을 들인다.
4) (내면의 고요를 위하여) 외출을 삼간다.
5) 타인으로부터 오는 마음의 위안을 끊는다.
6) ?자신의 죽음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도록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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