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때 요긴한 사람이 메이테이 선생으로, 이야기가 끊겼을 때, 멋쩍을 때, 잠이 쏟아질 때, 난처할 때, 그 어느 때나 반드시 옆에서 튀어나온다.

제수씨처럼 딱히 마음을 주지도 받지도 않은 구샤미에게 시집와서 평생 사랑이 뭔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의심스러운 것도 당연하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결혼이란 위험한 거야. 결혼 직전에 뜻밖의 허물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니까. 간게쓰 군도 그렇게 동경하거나 멍한 채 혼자 전전긍긍하지만 말고 차분하게 유리알이나 가는 게 좋을 걸세.

"정말 그러네. 지난번에 뮈세14의 희곡을 읽었더니 거기에 나오는 한 인물이 로마 시인의 시를 인용하여 이런 말을 하더군. ‘날개보다 가벼운 것은 먼지다. 먼지보다 가벼운 것은 바람이다. 바람보다 가벼운 것은 여자다. 여자보다 가벼운 것은 무(無)다.’ 핵심을 찌르는 말 아닌가. 여자들은 정말 어쩔 수가 없다니까."

14 루이 샤를 알프레드 드 뮈세(Louis Charles Alfred de Musset, 1810~1857). 프랑스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 여기서 말하는 희곡은 「바르브리느(Barberine)」(1835)다.

여느 때와 달리 주인이 동의하며 힘주어 묘한 말을 했다.
"여자가 가벼우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남자가 무거운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요."
"무겁다니, 무슨 말이야?"
"무겁다는 건 그냥 무겁다는 것이지요. 당신처럼 말이에요."
"내가 왜 무거워?"
"무겁잖아요."
묘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메이테이 선생은 재미있다는 듯 듣고 있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렇게 흥분하여 서로를 공격하는 점이 부부의 진상인지도 모르지. 아무래도 옛날 부부들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네."

"옛날에는 남편에게 말대답을 한 여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벙어리를 아내로 삼는 것과 같은 일이라서 나 같은 사람은 전혀 고맙지 않네. 역시 제수씨처럼, 당신은 무겁잖아요, 라든가 하는 말을 들어보고 싶네. 어차피 아내를 둘 거라면, 가끔씩 싸움이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심심해서 어찌 살겠나. 우리 어머니 같은 경우는 아버지 앞에서 ‘예’와 ‘알았어요’라는 말만 하고 살았지. 그렇게 20년이나 같이 살면서 절에 갈 때 말고는 외출한 적이 없다고 하니,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하긴 그 덕분에 조상 대대로의 계명은 모조리 외우고 있지. 남녀 간의 교제도 그렇다네. 내가 어릴 때는 간게쓰 군처럼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과 합주를 한다거나 텔레파시를 주고받아 몽롱체(朦朧?)15로 만나거나 하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했지."

그 지배인은 진베라는 사람인데, 늘 사흘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은 얼굴로 계산대에 앉아 있네.

그런데 인간만사 새옹지마, 칠전팔기, 설상가상이라고 그 비밀이 결국 들통이 났고, 나라의 법도를 어겼다는 이유로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아테네의 여자들이 모두 연서하여 탄원서를 냈단 말이거든. 그러니 당시의 관리도 냉담하게 처리할 수 없었지. 결국 무죄로 방면되었고, 그때부터는 아무리 여자라도 산파 영업을 할 수 있다는 포고령까지 나왔으니 경사스러운 해결을 맞게 된 셈이지."
"별걸 다 알고 있네요. 감탄스러워요."
"예, 대개의 것들은 알고 있지요. 모르는 것은 자신이 바보라는 것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렴풋이는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도후 군까지 왔으니 주인집에 들락거리는 기인들이 모조리 망라되었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최소한 나의 무료함을 달래주기에 충분한 머릿수는 채워졌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부족하다고 하면 배부른 소리다. 운 나쁘게 다른 집에 살게 되었다면 평생 인간 중에 이런 선생들이 있다는 걸 모른 채 죽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구샤미 선생 문하의 고양이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귀인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어, 주인은 물론이고 메이테이 선생, 간게쓰 군이나 도후 군 등 넓은 도쿄에서도 그다지 예를 찾아보기 힘든 일당백 호걸들의 행동거지를 드러누워 볼 수 있는 것은 나에게는 천재일우의 영광이다. 덕분에 이렇게 더운데도 털옷을 뒤집어쓰고 있는 괴로움도 잊고 재미있게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어차피 이 정도만 모이면 예사로 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며 장지문 뒤에서 삼가 지켜보고 있었다.

도후 군의 몸에서 보통 사람다운 곳은 그저 어깨에서 허리까지뿐이다.

"자네가 창작한 거라면 재미있겠네만, 어떤 건가?"
"희곡이지."
간게쓰 군이 매우 당당하게 나오자 아니나 다를까 세 사람은 아연하여 약속이라도 한 듯 간게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불합리한 일을 아무렇게나 말하는데도, 전혀 무리한 일로 들리지 않습니다."

10년 전의 시 세계와 오늘날의 시 세계는 몰라볼 정도로 변했으니까요. 요즘 시는 드러누워 읽거나 정거장에서 읽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은 본인조차 질문을 받으면 답변이 궁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인스피레이션23만으로 쓰기 때문에 시인은 그 외에는 아무런 책임도 없습니다. 주석이나 뜻풀이는 학자들이 하는 일이고, 저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요. 얼마 전에도 소세키(送籍)라는 제 친구가 「하룻밤(一夜)」24이라는 단편을 썼는데, 누가 읽어도 몽롱하고 종잡을 수가 없어서 당사자를 만나, 대체 주장하는 게 뭐냐고 자세히 물어봤습니다만, 본인도 그런 건 모른다며 상대해주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런 부분이 시인의 특징이 아닐까 합니다."

"시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묘한 사람이군."
주인이 이렇게 말하자 메이테이 선생은 소세키에 대해 간단히 이렇게 정리했다.
"바보인 거지."
도후 군은 이것만으로는 아직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소세키는 우리 친구들 중에서도 예외입니다만, 제 시도 아무쪼록 그런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주의해야 할 부분은, 쓰디쓴 이 세상과 달콤한 입맞춤을 대구로 표현한 것이 제가 고심한 부분입니다."

"도후 군의 작품도 봤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쓴 단문을 읽을 테니 비평 좀 해주게."
적이 진지한 모습이었다.
"천연거사의 묘비명이라면 이미 두세 번 들었네."
"거, 좀 조용히 있게. 도후 군, 이건 그리 자신 있는 글은 아니네만, 좌중의 흥을 돋우기 위한 것이니 들어주게."
"꼭 듣고 싶습니다."
"이왕 하는 것이니 간게쓰 군도 들어주게."
"이왕 하는 게 아니라도 듣겠습니다. 긴 건 아니겠지요?"
"기껏해야 60자 정도라네."
구샤미 선생은 드디어 손수 지은 명문을 읽기 시작했다.

옛날부터 여성 친구가 없는 사람이 훌륭한 시를 짓는 경우는 없다고 하네.

이런 때 요긴한 사람이 메이테이 선생으로, 이야기가 끊겼을 때, 멋쩍을 때, 잠이 쏟아질 때, 난처할 때, 그 어느 때나 반드시 옆에서 튀어나온다.

제수씨처럼 딱히 마음을 주지도 받지도 않은 구샤미에게 시집와서 평생 사랑이 뭔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의심스러운 것도 당연하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결혼이란 위험한 거야. 결혼 직전에 뜻밖의 허물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니까. 간게쓰 군도 그렇게 동경하거나 멍한 채 혼자 전전긍긍하지만 말고 차분하게 유리알이나 가는 게 좋을 걸세.

"정말 그러네. 지난번에 뮈세14의 희곡을 읽었더니 거기에 나오는 한 인물이 로마 시인의 시를 인용하여 이런 말을 하더군. ‘날개보다 가벼운 것은 먼지다. 먼지보다 가벼운 것은 바람이다. 바람보다 가벼운 것은 여자다. 여자보다 가벼운 것은 무(無)다.’ 핵심을 찌르는 말 아닌가. 여자들은 정말 어쩔 수가 없다니까."

14 루이 샤를 알프레드 드 뮈세(Louis Charles Alfred de Musset, 1810~1857). 프랑스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 여기서 말하는 희곡은 「바르브리느(Barberine)」(1835)다.

여느 때와 달리 주인이 동의하며 힘주어 묘한 말을 했다.
"여자가 가벼우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남자가 무거운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요."
"무겁다니, 무슨 말이야?"
"무겁다는 건 그냥 무겁다는 것이지요. 당신처럼 말이에요."
"내가 왜 무거워?"
"무겁잖아요."
묘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메이테이 선생은 재미있다는 듯 듣고 있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렇게 흥분하여 서로를 공격하는 점이 부부의 진상인지도 모르지. 아무래도 옛날 부부들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네."

"옛날에는 남편에게 말대답을 한 여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벙어리를 아내로 삼는 것과 같은 일이라서 나 같은 사람은 전혀 고맙지 않네. 역시 제수씨처럼, 당신은 무겁잖아요, 라든가 하는 말을 들어보고 싶네. 어차피 아내를 둘 거라면, 가끔씩 싸움이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심심해서 어찌 살겠나. 우리 어머니 같은 경우는 아버지 앞에서 ‘예’와 ‘알았어요’라는 말만 하고 살았지. 그렇게 20년이나 같이 살면서 절에 갈 때 말고는 외출한 적이 없다고 하니,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하긴 그 덕분에 조상 대대로의 계명은 모조리 외우고 있지. 남녀 간의 교제도 그렇다네. 내가 어릴 때는 간게쓰 군처럼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과 합주를 한다거나 텔레파시를 주고받아 몽롱체(朦朧?)15로 만나거나 하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했지."

그 지배인은 진베라는 사람인데, 늘 사흘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은 얼굴로 계산대에 앉아 있네.

그런데 인간만사 새옹지마, 칠전팔기, 설상가상이라고 그 비밀이 결국 들통이 났고, 나라의 법도를 어겼다는 이유로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아테네의 여자들이 모두 연서하여 탄원서를 냈단 말이거든. 그러니 당시의 관리도 냉담하게 처리할 수 없었지. 결국 무죄로 방면되었고, 그때부터는 아무리 여자라도 산파 영업을 할 수 있다는 포고령까지 나왔으니 경사스러운 해결을 맞게 된 셈이지."
"별걸 다 알고 있네요. 감탄스러워요."
"예, 대개의 것들은 알고 있지요. 모르는 것은 자신이 바보라는 것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렴풋이는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도후 군까지 왔으니 주인집에 들락거리는 기인들이 모조리 망라되었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최소한 나의 무료함을 달래주기에 충분한 머릿수는 채워졌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부족하다고 하면 배부른 소리다. 운 나쁘게 다른 집에 살게 되었다면 평생 인간 중에 이런 선생들이 있다는 걸 모른 채 죽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구샤미 선생 문하의 고양이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귀인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어, 주인은 물론이고 메이테이 선생, 간게쓰 군이나 도후 군 등 넓은 도쿄에서도 그다지 예를 찾아보기 힘든 일당백 호걸들의 행동거지를 드러누워 볼 수 있는 것은 나에게는 천재일우의 영광이다. 덕분에 이렇게 더운데도 털옷을 뒤집어쓰고 있는 괴로움도 잊고 재미있게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어차피 이 정도만 모이면 예사로 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며 장지문 뒤에서 삼가 지켜보고 있었다.

도후 군의 몸에서 보통 사람다운 곳은 그저 어깨에서 허리까지뿐이다.

"자네가 창작한 거라면 재미있겠네만, 어떤 건가?"
"희곡이지."
간게쓰 군이 매우 당당하게 나오자 아니나 다를까 세 사람은 아연하여 약속이라도 한 듯 간게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불합리한 일을 아무렇게나 말하는데도, 전혀 무리한 일로 들리지 않습니다."

10년 전의 시 세계와 오늘날의 시 세계는 몰라볼 정도로 변했으니까요. 요즘 시는 드러누워 읽거나 정거장에서 읽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은 본인조차 질문을 받으면 답변이 궁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인스피레이션23만으로 쓰기 때문에 시인은 그 외에는 아무런 책임도 없습니다. 주석이나 뜻풀이는 학자들이 하는 일이고, 저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요. 얼마 전에도 소세키(送籍)라는 제 친구가 「하룻밤(一夜)」24이라는 단편을 썼는데, 누가 읽어도 몽롱하고 종잡을 수가 없어서 당사자를 만나, 대체 주장하는 게 뭐냐고 자세히 물어봤습니다만, 본인도 그런 건 모른다며 상대해주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런 부분이 시인의 특징이 아닐까 합니다."

"시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묘한 사람이군."
주인이 이렇게 말하자 메이테이 선생은 소세키에 대해 간단히 이렇게 정리했다.
"바보인 거지."
도후 군은 이것만으로는 아직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소세키는 우리 친구들 중에서도 예외입니다만, 제 시도 아무쪼록 그런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주의해야 할 부분은, 쓰디쓴 이 세상과 달콤한 입맞춤을 대구로 표현한 것이 제가 고심한 부분입니다."

"도후 군의 작품도 봤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쓴 단문을 읽을 테니 비평 좀 해주게."
적이 진지한 모습이었다.
"천연거사의 묘비명이라면 이미 두세 번 들었네."
"거, 좀 조용히 있게. 도후 군, 이건 그리 자신 있는 글은 아니네만, 좌중의 흥을 돋우기 위한 것이니 들어주게."
"꼭 듣고 싶습니다."
"이왕 하는 것이니 간게쓰 군도 들어주게."
"이왕 하는 게 아니라도 듣겠습니다. 긴 건 아니겠지요?"
"기껏해야 60자 정도라네."
구샤미 선생은 드디어 손수 지은 명문을 읽기 시작했다.

옛날부터 여성 친구가 없는 사람이 훌륭한 시를 짓는 경우는 없다고 하네.

나는 요즘 들어 운동을 시작했다. 고양이인 주제에 무슨 운동이냐며 시건방지다고 무조건 비웃으며 욕부터 해대는 놈들에게 좀 물어보겠는데, 그러는 인간들도 바로 얼마 전까지 운동이 뭔지도 모른 채 먹고 자는 걸 천직으로 알고 있지 않았는가.

팔짱을 끼고 엉덩이가 썩어 문드러지도록 방석에 앉아 있는 것을 남자의 명예라 여기고 우쭐거리며 살아온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수명은 인간의 2분의 1,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한 마리의 고양이로 충분히 성장하는 것으로 추론하건대, 인간의 세월과 고양이의 세월을 같은 비율로 계산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주인의 셋째 딸은 세는 나이로 올해 세 살이라고 하는데, 지식의 발달에서 보면 기가 막히게 느리다. 우는 일과 요에 지도 그리는 일, 그리고 젖 먹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 세상을 걱정하고 시대에 분개하는 나 같은 고양이에 비하면 정말 미덥지가 못하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그 정도의 일은 충분히 알고 있다. 첫째로 해수욕이 왜 약이 되는가 하면, 잠깐 해안에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렇게 넓은 곳에 물고기가 몇 마리나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중 한 마리도 병에 걸려 의사의 진료를 받은 적이 없다. 다들 건강하게 헤엄치고 있다. 병에 걸리면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된다. 죽으면 반드시 뜬다. 그러니 물고기가 죽으면 ‘떠올랐다’고 말하고, 새가 죽으면 ‘떨어졌다’고 말하며 인간이 죽으면 ‘떠났다’고 하는 것이다. 인도양을 횡단하여 서양에 간 사람에게, 자네, 물고기가 죽는 걸 본 적이 있나, 하고 물어보는 게 좋다. 누구든 아니라고 답할 게 뻔하다.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다. 메이지 유신 전의 일본인이 해수욕의 효능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죽은 것처럼 오늘날의 고양이는 아직껏 나체로 바닷물에 뛰어들 기회를 얻지 못했다. 서둘다가는 오히려 실패하기 십상이다.

고양이가 죽었다는 말 대신 고양이가 떠올랐다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될 때까지는 쉽게 해수욕을 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20세기인 오늘날 운동을 하지 않으면 영락없이 빈민 같고 평판도 좋지 않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운동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고, 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여유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옛날에는 운동을 하면 천하다고 비웃음을 샀지만 지금은 운동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천한 존재로 간주된다.

세상 사람들의 평가는 때와 장소에 따라 우리 고양이의 눈동자처럼 변한다.

사물에는 양면이 있고 양 끝이 있다. 양 끝을 뒤집어 흑백을 백흑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융통성이다.

사마귀라 해도 꽤 씩씩해서 상대의 역량을 모를 때는 저항할 기세를 보이니 재미있다.

치켜든 머리를 오른쪽 앞발로 살짝 건드린다. 치켜든 목은 부드러워서 맥없이 옆으로 휘어진다. 이때 사마귀의 표정이 굉장히 흥미롭다. 이런!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원래 사마귀 날개는 긴 목에 어울리게 아주 가늘고 길게 생겼는데, 듣자 하니 그저 장식용일 뿐 인간의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처럼 전혀 쓸 데가 없다고 한다.

손바닥을 뒤집으면 비, 다시 뒤집으면 눈이라더니 이렇게 인간의 마음이란 쉽게 변한다.

인간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법칙 제1조는 이런 것이라고 한다.
모름지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동안에는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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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성정이 비슷한 것에서 일신의 편안함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바, 이를 변심이라느니 경박하다느니 배신이라고 하는 것은 좀 곤란하다. 이런 말을 지껄이며 남을 매도하는 자 중에는 융통성이 없고 궁상을 떠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다만 이 정도의 식견을 갖고 있는 나를 역시 털이 난 새끼 고양이쯤으로 여기고, 주인이 나에게 한 마디 인사말도 없이 수수경단을 제 것인 양 먹어치운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아직 사진도 찍어 보내지 않은 모양이다. 이것도 불평이라면 불평이지만, 주인은 주인이고 나는 나이니 서로 견해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주인은 붓을 들고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그럴듯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지 붓끝을 핥기 시작했다. 입술이 시커멓게 되었구나 하고 보고 있었더니, 이번에는 방금 쓴 글귀 아래에 조그맣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동그라미 안에 점 두 개를 찍어 눈을 그려 넣었다. 그 한가운데에 콧방울이 벌어진 코를 그리고, 한 일 자로 쭉 그어 입을 그렸다. 이래가지고는 문장도 아니고 하이쿠도 아니다. 주인도 정나미가 떨어졌는지 얼른 얼굴을 까맣게 칠해 지워버렸다. 주인은 다시 줄을 바꾸었다. 아마도 그는, 무턱대고 줄을 바꾸기만 하면 시(詩)든 찬(贊)이든 어(語)든 녹(錄)이든 뭐든 다 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천연거사는 공간을 연구하고 『논어』를 읽으며 군고구마를 먹고 콧물을 흘리는 사람이다.’

문장을 수염에서 비틀어 짜내 보여주리라는 얼굴로 맹렬히 비틀어 올렸다가 비틀어 내리고 있을 때, 거실에서 부인이 나와 주인 코앞에 바짝 다가앉았다.

주인은 점잔을 빼며 자신이 뽑아 든 코털을 천하에 신기한 것이라도 되는 양 바라보았다.

주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코털 하나하나를 정성껏 원고지 위에 심어놓았다. 코털에 모낭이 붙어 있는지 바늘을 세운 것처럼 똑바로 섰다. 주인은 뜻하지 않은 발견을 했다고 감탄한 모양인지 훅 불어보았다. 접착력이 강해 한 올도 날아가지 않는다.

주인은 다시 손가락을 쑤셔 넣어 코털을 쑥 뽑았다. 붉은 것, 검은 것 등 여러 색깔이 뒤섞인 가운데 새하얀 것이 하나 있었다. 아주 놀란 모습으로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던 주인은 코털을 손가락 끝으로 집은 채 아내의 얼굴 앞으로 쑥 내밀었다.

"이걸 좀 봐. 코털의 새치야."
주인은 무척 감동했다는 표정이었다. 거기에는 아내도 당해내지 못하고 웃으면서 거실로 돌아갔다.

메이테이 선생은 남의 집을 자기 집처럼 아는지 안내도 청하지 않고 서슴없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뿐 아니라 때로는 부엌문으로 훌쩍 들어서는 일도 있다. 걱정, 사양, 조심, 고생 따위는 세상에 나올 때 어딘가에 흘려버린 남자다.

"난 잠깐 실례하겠네. 곧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고양이하고 놀고 있게."
생각지도 않게 메이테이 선생의 접대를 맡게 되었으니 무뚝뚝하게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야옹야옹 하고 애교를 부리면서 선생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보았다.

"뒷발이 이렇게 늘어진 걸 보니 쥐를 잡기는 틀렸군…… 어떤가요? 제수씨, 이 고양이 쥐를 잡던가요?"
나만 가지고는 부족했다고 생각했는지 옆방의 안주인에게 말을 건넸다.
"쥐를 잡기는요? 떡국 먹고 춤이나 추지."

"역시 춤깨나 출 얼굴이네요. 제수씨, 이 고양이는 방심해서는 안 될 상이군요. 옛날 구사조시(草雙紙)4에 나오는 둔갑 잘하는 늙은 고양이5를 닮았어요."

"얼마 전만 해도, 갓난아기한테까지 먹였지 뭐예요……"
"잼을 말인가요?"
"아뇨. 무즙을요…… 아가, 아버지가 맛난 걸 줄 테니까, 이리 온, 하면서요. 어쩌다 애를 귀여워해주는구나 싶으면 꼭 그런 바보 같은 짓만 한다니까요. 2, 3일 전에는 둘째 딸아이를 안아서 옷장 위에 올려놓았지 뭐예요."

"저런. 그거야 정말 꿍꿍이가 너무 없었네요. 그래도 마음만은 악의가 없는 선량한 사람이지요."
"거기다가 마음까지 악의가 있다면 도저히 참을 수 없겠지요."
안주인은 기염을 토했다.

모르고 옷차림에도 관심이 없고 그저 수수한 가정에 적합한 사람이니까요."

6 ‘재채기’라는 뜻으로 주인의 이름이다.

"뭐, 특별한 도락은 없는데, 읽지도 않는 책만 무턱대고 사들여서요. 그것도 적당히 골라서 사들이면 좋을 텐데, 마루젠(丸善)7에 가서 멋대로 몇 권이나 가져와놓고는 월말이면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니까요.

"하지만 제수씨, 그렇게 책을 사서 마구 쌓아놓고 있으니까 남들한테 그나마 학자 소리라도 듣는 겁니다.

"여자란 아무튼 말이 많아 탈이라니까. 인간들도 이 고양이만큼 침묵을 지키면 좋을 텐데 말이야."

에도 중기의 하이쿠 시인 오시마 료타(大島寥太)의 하이쿠 "불끈 화가 치밀어 돌아오니 뜰의 버드나무인가(むっとしてもどれば庭の 柳かな)"를 비튼 것. 화가 나는 일이 있어 불끈한 마음으로 돌아오니 뜰의 버드나무가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고 있어 뭔가 배운 것 같다는 뜻이다.

"그 말에는 나도 찬성이네,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듯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웅숭깊어 보이고 좋지."
주인은 전에 없이 바로 메이테이 선생의 의견에 동조했다. 두 사람은 그리스어를 전혀 알지 못한다.

"또 그렇게 허풍을 떠는군. 자네는 본디 발칙한 사람이야."
"아하하하, 발칙한 게 아니라 부질없이 발랄하다고 해야겠지. 그것만은 좀 구별해줘야 하지 않겠나. 명예에 관한 일이니까."

원래 이 집 주인은 ‘박사’라든가 ‘대학교수’라든가 하면 아주 황송해하는 사람이지만, 묘하게도 사업가에 대한 존경심은 무척 낮았다. 사업가보다는 중학교 선생이 더 훌륭하다고 믿고 있었다. 비록 그렇게 믿고 있지 않더라도 융통성이 없는 성격이라 사업가나 부자들 덕을 보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체념하고 있었다.

비밀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군요. 아무리 숨긴다고 해도 어디에선가 꼭 드러나게 되니 말입니다.

"하지만 얼굴 갖고 험담하는 건 천박해요. 누군들 좋아서 그런 코를 갖고 태어나는 건 아닐 테니까요. 게다가 상대는 여성이잖아요. 너무 심해요.

옛날 이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은 아흔네 살에 대작을 완성했지. 소포클레스가 걸작을 내놓아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거의 백 살에 가까운 무렵이었지. 시모니데스는 여든 살에 아주 절묘한 시를 지었고. 나라고……"
"정말 어이가 없네요. 당신 같은 위장병 환자가 그렇게 오래 살 수 있겠어요?"
안주인은 주인의 수명까지 뻔히 예측하고 있었다.

"역시 세상 물정에 어두우시군."
주인은 자기보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크게 만족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곧 이렇게 물었다.

질이 안 좋아요. 얕은꾀로 짜낸 술수와 타고난 해학 취미를 혼동하면, 코미디의 신도 이 세상에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볼 줄 아는 안목 있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될 테니까요.

나는 고양이지만, 에픽테토스를 읽다가 책상 위에 내팽개칠 정도의 학자 집에서 기거하는 고양이인지라 세상에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바보스럽고 어리석은 고양이와는 차원이 좀 다르다. 이런 모험을 굳이 실행에 옮길 만한 의협심을 꼬리의 끝에 접어 넣어 소중하게 간직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평소에 간게쓰 군에게 특별히 은혜를 입은 일은 없지만, 이번 일은 그저 개인을 위해 혈기왕성하게 미쳐 날뛰는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공평을 선호하고 중용을 사랑하는 하늘의 뜻을 현실화하려는 장하고 아름다운 행동이다.

그러나 한 번 마음먹은 일을 중도에 포기하는 건, 소나기가 오나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먹구름이 이웃 지방으로 지나가버린 것처럼 어쩐지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성취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유쾌한 일이다.

대문으로 들어서서 그 건물을 바라보았는데, 그저 사람을 위압하기 위해 2층으로 무의미하게 우뚝 솟아 있는 것 말고는 아무런 기능도 없는 구조였다. 메이테이 선생이 말한 ‘진부함’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뭐라 말할 수 없어요. 그 선생은 책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아주 별난 사람이니까요. 우리 주인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두려워할지 모르지만, 가망 없어요. 제 자식의 나이도 모르는 인간이니까요."

고양이의 발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디를 걸어도 서툴게 소리를 내는 일이 없다. 하늘을 밟는 듯, 구름 속을 가는 듯, 물속에서 경(磬)30을 치는 듯, 동굴 속에서 슬(瑟)31을 타는 듯, 불교의 깊은 가르침을 말로 설명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는 것과 같다. 진부한 양관도 없고, 모범적인 부엌도 없고, 인력거꾼네 아주머니도, 하인도, 식모도, 따님도, 하녀도, 하나코 부인도, 부인의 남편도 물론 없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혀를 내밀고 꼬리를 흔들며 수염을 바짝 세워 유유히 돌아올 뿐이다.

특히 이런 방면에서 나는 일본에서 제일 능숙하다. ‘구사조시’에 나오는 네코마타라는 늙은 고양이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이 아닐까 스스로 의심해볼 정도다. 두꺼비의 이마에는 밤에도 빛나는 구슬이 있다고 하는데, 내 꼬리에는 모든 인간사는 물론이고, 만천하의 인간들을 업신여길 수 있는 집안 대대로 전해오는 묘약이 잔뜩 들어 있다.

스스로도 내 자신의 역량에 감탄했다. 이 역시 평소 소중히 여겨온 꼬리 덕이라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존경하는 꼬리 신(神)께 예배하고 고양이의 운이 영원하기를 기원하려고 잠깐 고개를 숙여보았으나 어쩐지 방향이 빗나간 것 같았다. 되도록 꼬리 쪽을 보고 세 번 절해야 한다. 꼬리 쪽을 보려고 몸을 돌리자 꼬리 역시 저절로 돌았다. 쫓아가려고 목을 비틀었더니 꼬리 역시 같은 간격을 두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과연 고양이는 천지를 세 치 혀 안에 품을 만큼의 영물이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꼬리를 쫓아 일곱 바퀴 반을 돌고 나니 피곤해서 그만두었다.

"지난번에 핀스케를 만났더니, 자기 학교에 기묘하게 생겨먹은 놈이 있다는 게야. 선생님 반차(番茶)는 영어로 뭐라고 합니까, 하고 어떤 학생이 물었는데 ‘반차’는 ‘새비지 티(savage tea)’33라고 아주 진지하게 대답한 일로 교원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다면서, 그런 교사 때문에 다른 교사들까지 피해를 본다고 아주 난처하다던데, 아마 바로 그놈일 게야."

33 야만인, 미개인을 의미하는 ‘반진(蕃人)’이라는 말에서 ‘반차(番茶, 질 낮은 엽차)’를 ‘savage tea(미개 차, 야만 차)’라고 한 것이다.

수염을 기른 게 괘씸하다면, 괘씸하지 않은 고양이는 이 세상에 한 마리도 없다.

여자는 계속 말하고 있지만 상대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으니, 아마도 소문으로 들은 전화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너한테 그렇게 잘 어울린다면, 내가 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 아냐."
"아마 잘 어울리실 거예요."
"어울릴 줄 알면서 왜 아무 말 않은 거야? 그러고서 시치미 뚝 떼고 그걸 달고 있다니, 정말 못돼 먹었네."

돌아와보니 깨끗한 집에서 갑자기 지저분한 곳으로 옮겨왔기 때문인지 양지 바른 산꼭대기에서 어둑어둑한 동굴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선생보다는 역시 사업가가 훌륭한 것 같았다. 나도 좀 이상하다 싶어 예의 꼬리를 통해 점을 쳐보았더니, 그 말이 맞다, 맞다, 하고 꼬리 끝으로 신탁을 내려주었다.

"조금은 했네. 제1구가 ‘이 얼굴에 코 제사’라는 걸세."
"다음 구절은?"
"다음이 ‘이 코에 신주(神酒)를 붓고’라네."
"그다음 구절은?"
"아직 거기까지밖에 짓지 못했네."
"재미있군요."
간게쓰 군은 히죽히죽 웃었다.
"그다음에 ‘구멍 두 개 어렴풋하네’라고 붙이면 어떻겠는가?"
메이테이 선생이 이내 그다음을 지었다. 그러자 간게쓰 군이 뒤를 이었다.
"‘속 깊어 털도 보이지 않고’는 어떨까요?"

선인들 중에서도 소크라테스, 골드스미스,43 새커리44 등의 코는 구조에서 보자면 흠잡을 데가 꽤 많겠지만, 그 흠잡을 데에 애교가 있습니다.코는 높아 고귀한 것이 아니라 기이해서 고귀하다 함은 그 때문이 아닐까요?

"아직도 코 얘기를 하고 있어. 정말 끈질긴 작자들이구나."

"당연하지. 결론 없는 연설은 디저트 없는 서양 요리 같은 거니까.

주인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는 아주 열심히 주장했다.
"그야, 물론이지. 그런 작자의 딸을 누가 데려간단 말인가? 간게쓰 군, 데려오면 안 되네!"
그 견해에 어느 정도 찬성의 뜻을 표하기 위해 나도 야옹야옹 두 번 울었다.

"안됐지만 아무리 잘난 척해봐야 집 안 호랑이지 뭐."
주인이 툇마루로 나가 그들에게 질세라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시끄러! 뭐야, 남의 담장 밑에 와서."
"우와하하하, 새비지 티다, 새비지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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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때 밝은 하늘색 옷을 입는 그는 매일 두 겹으로 누빈 흰 조끼를 입었다. 조끼 밑으로는 배[梨] 모양으로 튀어나온 배[腹]가 흔들거렸고 패물 달린 금시곗줄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역시 금으로 만든 담배 케이스에는 여자의 머리털이 가득 들어 있는 메달이 있어서 여복이 많아 죄를 지은 남자인 듯 보였다

그녀도 여느 사람들처럼 가까운 사람은 못 믿으면서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여는 그런 여자였다.

그들은 자기들과 관계가 없는 존경과 사랑을 불시에 얻고 싶어한다.

결국 친구나 이웃 사람들에게 아무런 선행을 베풀지 못하고, 태어날 때부터 이익에 골똘하는 부류들이 있다.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어서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속 좁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보케르 부인도 사건의 둘레에서 벗어나거나 사건의 원인을 밝히는 습관을 지니지 못했다.

그녀는 고리오 씨에 대해 품었던 친근감보다 더욱 강하게 그를 미워해야겠다는 감정을 필연적으로 느꼈다.

통이 작은 사람들이란 끊임없이 지저분한 짓으로 좋건 나쁘건 자기 감정에 만족하는 법이다.

그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절약에 익숙해 있었다.

속좁은 인간들이 지닌 가장 밉살스러운 버릇 중의 하나는 자신이 쩨쩨하니까 남도 쩨쩨할 것이라고 억측하는 것이다.

예순두 살이지만 마흔 살쯤으로밖에 안 보이던 이 훌륭한 제면업자는 뚱뚱하고 살이 쪘었다. 바보스럽지만 활달하며 경쾌한 걸음걸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웃음 속에 어떤 젊음이 깃들여 있었던 이 부르주아가 드디어는 얼빠지고 흐느적거리는 창백한 칠십대 노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처럼 활기 넘치던 그의 푸른 눈은 흐릿하고 잿빛이 돌았으며 창백해졌다. 눈물도 더 이상 흘리지 않았다. 붉은 그의 눈 가장자리는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그는 어떤 사람들에겐 두려움을, 어떤 사람에게는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젊은 의대생들은 그의 아랫입술이 밑으로 처진 것을 주시했다. 이들은 그의 안면 각도의 정점을 측정했으며 그에게 오랫동안 이것저것 캐물었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하자 이 영감이 크레틴 병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지나친 방탕 때문에 달팽이 같은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위대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자기 재능말고는 그 어떤 것도 믿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 생활을 하는 데에 여성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주목했고, 여성 후견인들을 정복하기 위해 갑자기 사교계에 나갈 생각을 했다.

키가 크고 몸매가 훌륭한 아나스타지 드 레스토 백작 부인은 파리에서 가장 날씬한 여인의 한 사람으로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

제멋대로 들떠 있는 이런 생각들은 미래의 환희를 마음껏 맛보게 해주었다.

밤을 새우려면 스무 살은 넘어야 한다.

"어제는 공작부인 집에서 행운에 들떠 있다가, 오늘 아침에는 어음 할인업자 집에서 기가 꺾이는 게, 바로 파리 여자들이지. 남편들이 고삐 풀린 그년들의 사치를 견뎌낼 수 없게 되면, 그년들은 몸을 팔지. 몸을 팔 줄 모르면, 자기 어머니 배를 갈라서 번쩍이는 돈을 찾으려고 하거든. 결국 그년들은 수없이 바람 피우거든. 환해, 환하고말고!"

동물학자들이 동물의 기원을 연구할 때 사용하는 ‘구성의 통일’이란 원리를 사용해서 거대한 매듭을 엮는다. 그는 이 원리를 이용해서 동물을 분류하듯이, 인간 사회를 엄격히 분류해 나간다.

이 공간에서 발자크는 생명의 생성 원리를 연구하고, 인간이 지닌 여러 가지 모습을 심리학적, 사회학적,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총체적으로 파악한다.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개 2,000여 명이 된다.

민중은 어디까지나 그의 소설 공간에서 배경에 불과하다. 발자크의 정치적 편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발자크는 자신의 소설에 어린이와 노동자와 장인(匠人)을 거의 등장시키지 않는다.

19세기 역사의 ‘비서’가 되려고 한 그가 이들을 빠뜨림으로써 스스로의 한계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 속한 당대와 그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눈앞에 있고, 자신이 직접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사회와 인간에게만 눈길을 쏟는다.

‘인간이 믿을 수 있고 믿어야만 하는 유일한 신화는 사회의 신화이며, 인간이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야 하는 유일한 현실은 사회적 관계의 현실이다. 발자크는 신화적인 것을 진실의 공간으로서, 그리고 사실적인 것을 현실의 시간으로서 서로에게 맞춰나간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소설가일 것이다.’

프랑스 문학에서 처음으로 ‘대시(dash)’를 문장 가운데에 사용하는 과감함을 보인다.

프랑스 말에서 금기로 되어 있는 철자법 바꾸기까지도 한다. 특히 「사촌 퐁스」에서 이 현상이 두드러진다.

플로베르는 그를 ‘무엇보다 얼간이처럼 무식하고, 골수까지 촌놈이며, 허리가 휠 정도로 사치에 빠진’ 작자라고 혹평한다.

이 작가에게는 자기 비판의 힘이 결여되어 있어서 독자를 놀라게 하고 압도할 성싶은 일이면 무엇이든지 거리낌 없이 해치울 용의가 있다는 것, 자제라든가 모든 일을 우아하고 재치 있게 대해 넘기는 저 18세기 문화의 유산이 그에게는 이미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 지나치게 꾸며대고 과장하는 극단적인 것에 한도가 없다는 것, 강조와 최상급 없이는 조금도 자기 심중에 있는 바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 항상 그럴싸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허풍을 치고 속임수를 부린다는 것, 그는 남에게 학자나 철학가의 인상을 보이려고 하는 순간에 구역질나는 사기꾼이 된다.’

흔히 발자크의 작품을 읽어내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의 작품에는 종교, 전설, 철학, 역사, 과학, 정치, 신비주의 등이 뒤섞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말로 옮기는 것도 만만하지가 않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불만스러운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쉬운 말로 옮기려고 했고, 문장 길이도 가능한 짧게 했다. 대화체도 대화자의 신분을 고려해서 그것에 걸맞게 옮기려 했다. 원전을 망가뜨리지 않는 틀 안에서 읽는 이의 접근이 쉽도록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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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처럼 문명의 마차는, 다른 사람들보다 물리치기 어렵고 바퀴가 돌지 못하게 막는 사람 때문에 지체될 것 같으면, 곧바로 그를 분쇄하고서 영광스런 전진을 계속하는 법이다.

뇌브 생트 주느비에브 거리는 이 이야기를 가장 적절하게 담을 수 있는 유일한 청동 액자와 같다.

‘네가 누구이건, 여기 너의 주인이 있다. 그는 너의 주인이고, 너의 주인이었고, 너의 주인이어야 하느니라.’

삼복 더위에도 호사스럽게 커피를 마실 수 있을 만큼 부자인 손님들이, 달걀이 그냥 익을 정도로 뜨거운 날씨에 이곳에 와서 커피 맛을 음미했다.

이 가구들이 얼마나 낡아터졌고 썩었는지, 흔들거리며 벌레 먹었는지, 한쪽 다리가 병신이고 쓸모없어 거의 빈사 상태에 빠져 있는지를 설명하려면 상세한 묘사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이야기 줄거리가 너무 늦게 나타나서 성질 급한 독자들은 작가를 용서하지 않을 터이다.

그곳에는 시적인 데라곤 전혀 없는 가난이 있다.

그 가난은 진흙이 묻지 않았다 해도 얼룩이 지고, 구멍이나 누더기가 없더라도 곧 썩어 넘어질 지경이다.

더구나 하숙인들 중의 누구도, 한 사람이 떠들어대는 불행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검증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각자의 처지에서 비롯한 불신 섞인 무관심을 서로에게 품고 있었다.

마음씨 좋은 이 여인은 보트랭만이 자기의 뚱뚱한 허리를 껴안을 만큼 팔이 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짓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의 풍모와 태도와 습관적 몸가짐을 미루어볼 때, 그는 귀족 출신임에 틀림없었다. 어려서부터 전통적이고 고상한 취미만을 배운 듯이 보였다.

행복했더라면 그녀는 더욱 아름다웠을 텐데. 왜냐하면 화장이 여성을 아름답게 꾸미듯이, 행복이란 여성의 시적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그는 불행과 더러움에 의해 돌아가는 이 사회에서 굴대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그래도 저런 사람도 필요하구나.’라고 말할 수 있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옷차림은 모두 이런 형편이었지만 그들의 뼈대는 견실했을 뿐만 아니라 모두 인생의 회오리바람을 이겨낸 튼튼한 체질이었다.

이 젊은 친구는 부모들이 자신에게 걸고 있는 기대를 이해했다. 그는 학문의 힘을 벌써 계산하고는 장차 이 사회를 움켜쥘 일인자가 되려고 준비하는 젊은이들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그녀가 이곳에 있는 풍경이란, 완벽한 안성맞춤인 셈이다.

간수 없는 감옥이란 있을 수 없듯이, 독자들은 이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빼놓고 다른 하나를 상상할 수 없다.

결국 이 하숙집이 그녀의 전부를 상징하듯이, 그녀의 모든 모습이 이 하숙집을 설명해 준다.

헐렁헐렁하고 무늬 없는 그녀의 단색 코르셋은 불행이 스며들고 이해타산이 웅크리고 있는 이 식당과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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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라는 단어는 눈물 짜는 문학이 성하던 시절에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제멋대로 거칠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말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다. 그런데도 여기에서 그 말을 사용해야겠다. 이 이야기가 이 단어 본래의 뜻대로 드라마틱하다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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