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때 요긴한 사람이 메이테이 선생으로, 이야기가 끊겼을 때, 멋쩍을 때, 잠이 쏟아질 때, 난처할 때, 그 어느 때나 반드시 옆에서 튀어나온다.
제수씨처럼 딱히 마음을 주지도 받지도 않은 구샤미에게 시집와서 평생 사랑이 뭔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의심스러운 것도 당연하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결혼이란 위험한 거야. 결혼 직전에 뜻밖의 허물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니까. 간게쓰 군도 그렇게 동경하거나 멍한 채 혼자 전전긍긍하지만 말고 차분하게 유리알이나 가는 게 좋을 걸세.
"정말 그러네. 지난번에 뮈세14의 희곡을 읽었더니 거기에 나오는 한 인물이 로마 시인의 시를 인용하여 이런 말을 하더군. ‘날개보다 가벼운 것은 먼지다. 먼지보다 가벼운 것은 바람이다. 바람보다 가벼운 것은 여자다. 여자보다 가벼운 것은 무(無)다.’ 핵심을 찌르는 말 아닌가. 여자들은 정말 어쩔 수가 없다니까."
14 루이 샤를 알프레드 드 뮈세(Louis Charles Alfred de Musset, 1810~1857). 프랑스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 여기서 말하는 희곡은 「바르브리느(Barberine)」(1835)다.
여느 때와 달리 주인이 동의하며 힘주어 묘한 말을 했다. "여자가 가벼우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남자가 무거운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요." "무겁다니, 무슨 말이야?" "무겁다는 건 그냥 무겁다는 것이지요. 당신처럼 말이에요." "내가 왜 무거워?" "무겁잖아요." 묘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메이테이 선생은 재미있다는 듯 듣고 있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렇게 흥분하여 서로를 공격하는 점이 부부의 진상인지도 모르지. 아무래도 옛날 부부들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네."
"옛날에는 남편에게 말대답을 한 여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벙어리를 아내로 삼는 것과 같은 일이라서 나 같은 사람은 전혀 고맙지 않네. 역시 제수씨처럼, 당신은 무겁잖아요, 라든가 하는 말을 들어보고 싶네. 어차피 아내를 둘 거라면, 가끔씩 싸움이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심심해서 어찌 살겠나. 우리 어머니 같은 경우는 아버지 앞에서 ‘예’와 ‘알았어요’라는 말만 하고 살았지. 그렇게 20년이나 같이 살면서 절에 갈 때 말고는 외출한 적이 없다고 하니,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하긴 그 덕분에 조상 대대로의 계명은 모조리 외우고 있지. 남녀 간의 교제도 그렇다네. 내가 어릴 때는 간게쓰 군처럼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과 합주를 한다거나 텔레파시를 주고받아 몽롱체(朦朧?)15로 만나거나 하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했지."
그 지배인은 진베라는 사람인데, 늘 사흘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은 얼굴로 계산대에 앉아 있네.
그런데 인간만사 새옹지마, 칠전팔기, 설상가상이라고 그 비밀이 결국 들통이 났고, 나라의 법도를 어겼다는 이유로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아테네의 여자들이 모두 연서하여 탄원서를 냈단 말이거든. 그러니 당시의 관리도 냉담하게 처리할 수 없었지. 결국 무죄로 방면되었고, 그때부터는 아무리 여자라도 산파 영업을 할 수 있다는 포고령까지 나왔으니 경사스러운 해결을 맞게 된 셈이지." "별걸 다 알고 있네요. 감탄스러워요." "예, 대개의 것들은 알고 있지요. 모르는 것은 자신이 바보라는 것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렴풋이는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도후 군까지 왔으니 주인집에 들락거리는 기인들이 모조리 망라되었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최소한 나의 무료함을 달래주기에 충분한 머릿수는 채워졌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부족하다고 하면 배부른 소리다. 운 나쁘게 다른 집에 살게 되었다면 평생 인간 중에 이런 선생들이 있다는 걸 모른 채 죽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구샤미 선생 문하의 고양이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귀인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어, 주인은 물론이고 메이테이 선생, 간게쓰 군이나 도후 군 등 넓은 도쿄에서도 그다지 예를 찾아보기 힘든 일당백 호걸들의 행동거지를 드러누워 볼 수 있는 것은 나에게는 천재일우의 영광이다. 덕분에 이렇게 더운데도 털옷을 뒤집어쓰고 있는 괴로움도 잊고 재미있게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어차피 이 정도만 모이면 예사로 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며 장지문 뒤에서 삼가 지켜보고 있었다.
도후 군의 몸에서 보통 사람다운 곳은 그저 어깨에서 허리까지뿐이다.
"자네가 창작한 거라면 재미있겠네만, 어떤 건가?" "희곡이지." 간게쓰 군이 매우 당당하게 나오자 아니나 다를까 세 사람은 아연하여 약속이라도 한 듯 간게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불합리한 일을 아무렇게나 말하는데도, 전혀 무리한 일로 들리지 않습니다."
10년 전의 시 세계와 오늘날의 시 세계는 몰라볼 정도로 변했으니까요. 요즘 시는 드러누워 읽거나 정거장에서 읽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은 본인조차 질문을 받으면 답변이 궁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인스피레이션23만으로 쓰기 때문에 시인은 그 외에는 아무런 책임도 없습니다. 주석이나 뜻풀이는 학자들이 하는 일이고, 저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요. 얼마 전에도 소세키(送籍)라는 제 친구가 「하룻밤(一夜)」24이라는 단편을 썼는데, 누가 읽어도 몽롱하고 종잡을 수가 없어서 당사자를 만나, 대체 주장하는 게 뭐냐고 자세히 물어봤습니다만, 본인도 그런 건 모른다며 상대해주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런 부분이 시인의 특징이 아닐까 합니다."
"시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묘한 사람이군." 주인이 이렇게 말하자 메이테이 선생은 소세키에 대해 간단히 이렇게 정리했다. "바보인 거지." 도후 군은 이것만으로는 아직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소세키는 우리 친구들 중에서도 예외입니다만, 제 시도 아무쪼록 그런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주의해야 할 부분은, 쓰디쓴 이 세상과 달콤한 입맞춤을 대구로 표현한 것이 제가 고심한 부분입니다."
"도후 군의 작품도 봤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쓴 단문을 읽을 테니 비평 좀 해주게." 적이 진지한 모습이었다. "천연거사의 묘비명이라면 이미 두세 번 들었네." "거, 좀 조용히 있게. 도후 군, 이건 그리 자신 있는 글은 아니네만, 좌중의 흥을 돋우기 위한 것이니 들어주게." "꼭 듣고 싶습니다." "이왕 하는 것이니 간게쓰 군도 들어주게." "이왕 하는 게 아니라도 듣겠습니다. 긴 건 아니겠지요?" "기껏해야 60자 정도라네." 구샤미 선생은 드디어 손수 지은 명문을 읽기 시작했다.
옛날부터 여성 친구가 없는 사람이 훌륭한 시를 짓는 경우는 없다고 하네.
이런 때 요긴한 사람이 메이테이 선생으로, 이야기가 끊겼을 때, 멋쩍을 때, 잠이 쏟아질 때, 난처할 때, 그 어느 때나 반드시 옆에서 튀어나온다.
제수씨처럼 딱히 마음을 주지도 받지도 않은 구샤미에게 시집와서 평생 사랑이 뭔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의심스러운 것도 당연하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결혼이란 위험한 거야. 결혼 직전에 뜻밖의 허물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니까. 간게쓰 군도 그렇게 동경하거나 멍한 채 혼자 전전긍긍하지만 말고 차분하게 유리알이나 가는 게 좋을 걸세.
"정말 그러네. 지난번에 뮈세14의 희곡을 읽었더니 거기에 나오는 한 인물이 로마 시인의 시를 인용하여 이런 말을 하더군. ‘날개보다 가벼운 것은 먼지다. 먼지보다 가벼운 것은 바람이다. 바람보다 가벼운 것은 여자다. 여자보다 가벼운 것은 무(無)다.’ 핵심을 찌르는 말 아닌가. 여자들은 정말 어쩔 수가 없다니까."
14 루이 샤를 알프레드 드 뮈세(Louis Charles Alfred de Musset, 1810~1857). 프랑스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 여기서 말하는 희곡은 「바르브리느(Barberine)」(1835)다.
여느 때와 달리 주인이 동의하며 힘주어 묘한 말을 했다. "여자가 가벼우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남자가 무거운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요." "무겁다니, 무슨 말이야?" "무겁다는 건 그냥 무겁다는 것이지요. 당신처럼 말이에요." "내가 왜 무거워?" "무겁잖아요." 묘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메이테이 선생은 재미있다는 듯 듣고 있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렇게 흥분하여 서로를 공격하는 점이 부부의 진상인지도 모르지. 아무래도 옛날 부부들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네."
"옛날에는 남편에게 말대답을 한 여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벙어리를 아내로 삼는 것과 같은 일이라서 나 같은 사람은 전혀 고맙지 않네. 역시 제수씨처럼, 당신은 무겁잖아요, 라든가 하는 말을 들어보고 싶네. 어차피 아내를 둘 거라면, 가끔씩 싸움이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심심해서 어찌 살겠나. 우리 어머니 같은 경우는 아버지 앞에서 ‘예’와 ‘알았어요’라는 말만 하고 살았지. 그렇게 20년이나 같이 살면서 절에 갈 때 말고는 외출한 적이 없다고 하니,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하긴 그 덕분에 조상 대대로의 계명은 모조리 외우고 있지. 남녀 간의 교제도 그렇다네. 내가 어릴 때는 간게쓰 군처럼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과 합주를 한다거나 텔레파시를 주고받아 몽롱체(朦朧?)15로 만나거나 하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했지."
그 지배인은 진베라는 사람인데, 늘 사흘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은 얼굴로 계산대에 앉아 있네.
그런데 인간만사 새옹지마, 칠전팔기, 설상가상이라고 그 비밀이 결국 들통이 났고, 나라의 법도를 어겼다는 이유로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아테네의 여자들이 모두 연서하여 탄원서를 냈단 말이거든. 그러니 당시의 관리도 냉담하게 처리할 수 없었지. 결국 무죄로 방면되었고, 그때부터는 아무리 여자라도 산파 영업을 할 수 있다는 포고령까지 나왔으니 경사스러운 해결을 맞게 된 셈이지." "별걸 다 알고 있네요. 감탄스러워요." "예, 대개의 것들은 알고 있지요. 모르는 것은 자신이 바보라는 것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렴풋이는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도후 군까지 왔으니 주인집에 들락거리는 기인들이 모조리 망라되었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최소한 나의 무료함을 달래주기에 충분한 머릿수는 채워졌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부족하다고 하면 배부른 소리다. 운 나쁘게 다른 집에 살게 되었다면 평생 인간 중에 이런 선생들이 있다는 걸 모른 채 죽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구샤미 선생 문하의 고양이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귀인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어, 주인은 물론이고 메이테이 선생, 간게쓰 군이나 도후 군 등 넓은 도쿄에서도 그다지 예를 찾아보기 힘든 일당백 호걸들의 행동거지를 드러누워 볼 수 있는 것은 나에게는 천재일우의 영광이다. 덕분에 이렇게 더운데도 털옷을 뒤집어쓰고 있는 괴로움도 잊고 재미있게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어차피 이 정도만 모이면 예사로 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며 장지문 뒤에서 삼가 지켜보고 있었다.
도후 군의 몸에서 보통 사람다운 곳은 그저 어깨에서 허리까지뿐이다.
"자네가 창작한 거라면 재미있겠네만, 어떤 건가?" "희곡이지." 간게쓰 군이 매우 당당하게 나오자 아니나 다를까 세 사람은 아연하여 약속이라도 한 듯 간게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불합리한 일을 아무렇게나 말하는데도, 전혀 무리한 일로 들리지 않습니다."
10년 전의 시 세계와 오늘날의 시 세계는 몰라볼 정도로 변했으니까요. 요즘 시는 드러누워 읽거나 정거장에서 읽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은 본인조차 질문을 받으면 답변이 궁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인스피레이션23만으로 쓰기 때문에 시인은 그 외에는 아무런 책임도 없습니다. 주석이나 뜻풀이는 학자들이 하는 일이고, 저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요. 얼마 전에도 소세키(送籍)라는 제 친구가 「하룻밤(一夜)」24이라는 단편을 썼는데, 누가 읽어도 몽롱하고 종잡을 수가 없어서 당사자를 만나, 대체 주장하는 게 뭐냐고 자세히 물어봤습니다만, 본인도 그런 건 모른다며 상대해주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런 부분이 시인의 특징이 아닐까 합니다."
"시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묘한 사람이군." 주인이 이렇게 말하자 메이테이 선생은 소세키에 대해 간단히 이렇게 정리했다. "바보인 거지." 도후 군은 이것만으로는 아직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소세키는 우리 친구들 중에서도 예외입니다만, 제 시도 아무쪼록 그런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주의해야 할 부분은, 쓰디쓴 이 세상과 달콤한 입맞춤을 대구로 표현한 것이 제가 고심한 부분입니다."
"도후 군의 작품도 봤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쓴 단문을 읽을 테니 비평 좀 해주게." 적이 진지한 모습이었다. "천연거사의 묘비명이라면 이미 두세 번 들었네." "거, 좀 조용히 있게. 도후 군, 이건 그리 자신 있는 글은 아니네만, 좌중의 흥을 돋우기 위한 것이니 들어주게." "꼭 듣고 싶습니다." "이왕 하는 것이니 간게쓰 군도 들어주게." "이왕 하는 게 아니라도 듣겠습니다. 긴 건 아니겠지요?" "기껏해야 60자 정도라네." 구샤미 선생은 드디어 손수 지은 명문을 읽기 시작했다.
옛날부터 여성 친구가 없는 사람이 훌륭한 시를 짓는 경우는 없다고 하네.
나는 요즘 들어 운동을 시작했다. 고양이인 주제에 무슨 운동이냐며 시건방지다고 무조건 비웃으며 욕부터 해대는 놈들에게 좀 물어보겠는데, 그러는 인간들도 바로 얼마 전까지 운동이 뭔지도 모른 채 먹고 자는 걸 천직으로 알고 있지 않았는가.
팔짱을 끼고 엉덩이가 썩어 문드러지도록 방석에 앉아 있는 것을 남자의 명예라 여기고 우쭐거리며 살아온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수명은 인간의 2분의 1,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한 마리의 고양이로 충분히 성장하는 것으로 추론하건대, 인간의 세월과 고양이의 세월을 같은 비율로 계산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주인의 셋째 딸은 세는 나이로 올해 세 살이라고 하는데, 지식의 발달에서 보면 기가 막히게 느리다. 우는 일과 요에 지도 그리는 일, 그리고 젖 먹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 세상을 걱정하고 시대에 분개하는 나 같은 고양이에 비하면 정말 미덥지가 못하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그 정도의 일은 충분히 알고 있다. 첫째로 해수욕이 왜 약이 되는가 하면, 잠깐 해안에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렇게 넓은 곳에 물고기가 몇 마리나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중 한 마리도 병에 걸려 의사의 진료를 받은 적이 없다. 다들 건강하게 헤엄치고 있다. 병에 걸리면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된다. 죽으면 반드시 뜬다. 그러니 물고기가 죽으면 ‘떠올랐다’고 말하고, 새가 죽으면 ‘떨어졌다’고 말하며 인간이 죽으면 ‘떠났다’고 하는 것이다. 인도양을 횡단하여 서양에 간 사람에게, 자네, 물고기가 죽는 걸 본 적이 있나, 하고 물어보는 게 좋다. 누구든 아니라고 답할 게 뻔하다.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다. 메이지 유신 전의 일본인이 해수욕의 효능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죽은 것처럼 오늘날의 고양이는 아직껏 나체로 바닷물에 뛰어들 기회를 얻지 못했다. 서둘다가는 오히려 실패하기 십상이다.
고양이가 죽었다는 말 대신 고양이가 떠올랐다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될 때까지는 쉽게 해수욕을 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20세기인 오늘날 운동을 하지 않으면 영락없이 빈민 같고 평판도 좋지 않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운동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고, 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여유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옛날에는 운동을 하면 천하다고 비웃음을 샀지만 지금은 운동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천한 존재로 간주된다.
세상 사람들의 평가는 때와 장소에 따라 우리 고양이의 눈동자처럼 변한다.
사물에는 양면이 있고 양 끝이 있다. 양 끝을 뒤집어 흑백을 백흑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융통성이다.
사마귀라 해도 꽤 씩씩해서 상대의 역량을 모를 때는 저항할 기세를 보이니 재미있다.
치켜든 머리를 오른쪽 앞발로 살짝 건드린다. 치켜든 목은 부드러워서 맥없이 옆으로 휘어진다. 이때 사마귀의 표정이 굉장히 흥미롭다. 이런!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원래 사마귀 날개는 긴 목에 어울리게 아주 가늘고 길게 생겼는데, 듣자 하니 그저 장식용일 뿐 인간의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처럼 전혀 쓸 데가 없다고 한다.
손바닥을 뒤집으면 비, 다시 뒤집으면 눈이라더니 이렇게 인간의 마음이란 쉽게 변한다.
인간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법칙 제1조는 이런 것이라고 한다. 모름지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동안에는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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