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성정이 비슷한 것에서 일신의 편안함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바, 이를 변심이라느니 경박하다느니 배신이라고 하는 것은 좀 곤란하다. 이런 말을 지껄이며 남을 매도하는 자 중에는 융통성이 없고 궁상을 떠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다만 이 정도의 식견을 갖고 있는 나를 역시 털이 난 새끼 고양이쯤으로 여기고, 주인이 나에게 한 마디 인사말도 없이 수수경단을 제 것인 양 먹어치운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아직 사진도 찍어 보내지 않은 모양이다. 이것도 불평이라면 불평이지만, 주인은 주인이고 나는 나이니 서로 견해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주인은 붓을 들고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그럴듯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지 붓끝을 핥기 시작했다. 입술이 시커멓게 되었구나 하고 보고 있었더니, 이번에는 방금 쓴 글귀 아래에 조그맣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동그라미 안에 점 두 개를 찍어 눈을 그려 넣었다. 그 한가운데에 콧방울이 벌어진 코를 그리고, 한 일 자로 쭉 그어 입을 그렸다. 이래가지고는 문장도 아니고 하이쿠도 아니다. 주인도 정나미가 떨어졌는지 얼른 얼굴을 까맣게 칠해 지워버렸다. 주인은 다시 줄을 바꾸었다. 아마도 그는, 무턱대고 줄을 바꾸기만 하면 시(詩)든 찬(贊)이든 어(語)든 녹(錄)이든 뭐든 다 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천연거사는 공간을 연구하고 『논어』를 읽으며 군고구마를 먹고 콧물을 흘리는 사람이다.’

문장을 수염에서 비틀어 짜내 보여주리라는 얼굴로 맹렬히 비틀어 올렸다가 비틀어 내리고 있을 때, 거실에서 부인이 나와 주인 코앞에 바짝 다가앉았다.

주인은 점잔을 빼며 자신이 뽑아 든 코털을 천하에 신기한 것이라도 되는 양 바라보았다.

주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코털 하나하나를 정성껏 원고지 위에 심어놓았다. 코털에 모낭이 붙어 있는지 바늘을 세운 것처럼 똑바로 섰다. 주인은 뜻하지 않은 발견을 했다고 감탄한 모양인지 훅 불어보았다. 접착력이 강해 한 올도 날아가지 않는다.

주인은 다시 손가락을 쑤셔 넣어 코털을 쑥 뽑았다. 붉은 것, 검은 것 등 여러 색깔이 뒤섞인 가운데 새하얀 것이 하나 있었다. 아주 놀란 모습으로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던 주인은 코털을 손가락 끝으로 집은 채 아내의 얼굴 앞으로 쑥 내밀었다.

"이걸 좀 봐. 코털의 새치야."
주인은 무척 감동했다는 표정이었다. 거기에는 아내도 당해내지 못하고 웃으면서 거실로 돌아갔다.

메이테이 선생은 남의 집을 자기 집처럼 아는지 안내도 청하지 않고 서슴없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뿐 아니라 때로는 부엌문으로 훌쩍 들어서는 일도 있다. 걱정, 사양, 조심, 고생 따위는 세상에 나올 때 어딘가에 흘려버린 남자다.

"난 잠깐 실례하겠네. 곧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고양이하고 놀고 있게."
생각지도 않게 메이테이 선생의 접대를 맡게 되었으니 무뚝뚝하게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야옹야옹 하고 애교를 부리면서 선생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보았다.

"뒷발이 이렇게 늘어진 걸 보니 쥐를 잡기는 틀렸군…… 어떤가요? 제수씨, 이 고양이 쥐를 잡던가요?"
나만 가지고는 부족했다고 생각했는지 옆방의 안주인에게 말을 건넸다.
"쥐를 잡기는요? 떡국 먹고 춤이나 추지."

"역시 춤깨나 출 얼굴이네요. 제수씨, 이 고양이는 방심해서는 안 될 상이군요. 옛날 구사조시(草雙紙)4에 나오는 둔갑 잘하는 늙은 고양이5를 닮았어요."

"얼마 전만 해도, 갓난아기한테까지 먹였지 뭐예요……"
"잼을 말인가요?"
"아뇨. 무즙을요…… 아가, 아버지가 맛난 걸 줄 테니까, 이리 온, 하면서요. 어쩌다 애를 귀여워해주는구나 싶으면 꼭 그런 바보 같은 짓만 한다니까요. 2, 3일 전에는 둘째 딸아이를 안아서 옷장 위에 올려놓았지 뭐예요."

"저런. 그거야 정말 꿍꿍이가 너무 없었네요. 그래도 마음만은 악의가 없는 선량한 사람이지요."
"거기다가 마음까지 악의가 있다면 도저히 참을 수 없겠지요."
안주인은 기염을 토했다.

모르고 옷차림에도 관심이 없고 그저 수수한 가정에 적합한 사람이니까요."

6 ‘재채기’라는 뜻으로 주인의 이름이다.

"뭐, 특별한 도락은 없는데, 읽지도 않는 책만 무턱대고 사들여서요. 그것도 적당히 골라서 사들이면 좋을 텐데, 마루젠(丸善)7에 가서 멋대로 몇 권이나 가져와놓고는 월말이면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니까요.

"하지만 제수씨, 그렇게 책을 사서 마구 쌓아놓고 있으니까 남들한테 그나마 학자 소리라도 듣는 겁니다.

"여자란 아무튼 말이 많아 탈이라니까. 인간들도 이 고양이만큼 침묵을 지키면 좋을 텐데 말이야."

에도 중기의 하이쿠 시인 오시마 료타(大島寥太)의 하이쿠 "불끈 화가 치밀어 돌아오니 뜰의 버드나무인가(むっとしてもどれば庭の 柳かな)"를 비튼 것. 화가 나는 일이 있어 불끈한 마음으로 돌아오니 뜰의 버드나무가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고 있어 뭔가 배운 것 같다는 뜻이다.

"그 말에는 나도 찬성이네,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듯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웅숭깊어 보이고 좋지."
주인은 전에 없이 바로 메이테이 선생의 의견에 동조했다. 두 사람은 그리스어를 전혀 알지 못한다.

"또 그렇게 허풍을 떠는군. 자네는 본디 발칙한 사람이야."
"아하하하, 발칙한 게 아니라 부질없이 발랄하다고 해야겠지. 그것만은 좀 구별해줘야 하지 않겠나. 명예에 관한 일이니까."

원래 이 집 주인은 ‘박사’라든가 ‘대학교수’라든가 하면 아주 황송해하는 사람이지만, 묘하게도 사업가에 대한 존경심은 무척 낮았다. 사업가보다는 중학교 선생이 더 훌륭하다고 믿고 있었다. 비록 그렇게 믿고 있지 않더라도 융통성이 없는 성격이라 사업가나 부자들 덕을 보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체념하고 있었다.

비밀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군요. 아무리 숨긴다고 해도 어디에선가 꼭 드러나게 되니 말입니다.

"하지만 얼굴 갖고 험담하는 건 천박해요. 누군들 좋아서 그런 코를 갖고 태어나는 건 아닐 테니까요. 게다가 상대는 여성이잖아요. 너무 심해요.

옛날 이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은 아흔네 살에 대작을 완성했지. 소포클레스가 걸작을 내놓아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거의 백 살에 가까운 무렵이었지. 시모니데스는 여든 살에 아주 절묘한 시를 지었고. 나라고……"
"정말 어이가 없네요. 당신 같은 위장병 환자가 그렇게 오래 살 수 있겠어요?"
안주인은 주인의 수명까지 뻔히 예측하고 있었다.

"역시 세상 물정에 어두우시군."
주인은 자기보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크게 만족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곧 이렇게 물었다.

질이 안 좋아요. 얕은꾀로 짜낸 술수와 타고난 해학 취미를 혼동하면, 코미디의 신도 이 세상에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볼 줄 아는 안목 있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될 테니까요.

나는 고양이지만, 에픽테토스를 읽다가 책상 위에 내팽개칠 정도의 학자 집에서 기거하는 고양이인지라 세상에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바보스럽고 어리석은 고양이와는 차원이 좀 다르다. 이런 모험을 굳이 실행에 옮길 만한 의협심을 꼬리의 끝에 접어 넣어 소중하게 간직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평소에 간게쓰 군에게 특별히 은혜를 입은 일은 없지만, 이번 일은 그저 개인을 위해 혈기왕성하게 미쳐 날뛰는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공평을 선호하고 중용을 사랑하는 하늘의 뜻을 현실화하려는 장하고 아름다운 행동이다.

그러나 한 번 마음먹은 일을 중도에 포기하는 건, 소나기가 오나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먹구름이 이웃 지방으로 지나가버린 것처럼 어쩐지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성취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유쾌한 일이다.

대문으로 들어서서 그 건물을 바라보았는데, 그저 사람을 위압하기 위해 2층으로 무의미하게 우뚝 솟아 있는 것 말고는 아무런 기능도 없는 구조였다. 메이테이 선생이 말한 ‘진부함’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뭐라 말할 수 없어요. 그 선생은 책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아주 별난 사람이니까요. 우리 주인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두려워할지 모르지만, 가망 없어요. 제 자식의 나이도 모르는 인간이니까요."

고양이의 발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디를 걸어도 서툴게 소리를 내는 일이 없다. 하늘을 밟는 듯, 구름 속을 가는 듯, 물속에서 경(磬)30을 치는 듯, 동굴 속에서 슬(瑟)31을 타는 듯, 불교의 깊은 가르침을 말로 설명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는 것과 같다. 진부한 양관도 없고, 모범적인 부엌도 없고, 인력거꾼네 아주머니도, 하인도, 식모도, 따님도, 하녀도, 하나코 부인도, 부인의 남편도 물론 없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혀를 내밀고 꼬리를 흔들며 수염을 바짝 세워 유유히 돌아올 뿐이다.

특히 이런 방면에서 나는 일본에서 제일 능숙하다. ‘구사조시’에 나오는 네코마타라는 늙은 고양이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이 아닐까 스스로 의심해볼 정도다. 두꺼비의 이마에는 밤에도 빛나는 구슬이 있다고 하는데, 내 꼬리에는 모든 인간사는 물론이고, 만천하의 인간들을 업신여길 수 있는 집안 대대로 전해오는 묘약이 잔뜩 들어 있다.

스스로도 내 자신의 역량에 감탄했다. 이 역시 평소 소중히 여겨온 꼬리 덕이라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존경하는 꼬리 신(神)께 예배하고 고양이의 운이 영원하기를 기원하려고 잠깐 고개를 숙여보았으나 어쩐지 방향이 빗나간 것 같았다. 되도록 꼬리 쪽을 보고 세 번 절해야 한다. 꼬리 쪽을 보려고 몸을 돌리자 꼬리 역시 저절로 돌았다. 쫓아가려고 목을 비틀었더니 꼬리 역시 같은 간격을 두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과연 고양이는 천지를 세 치 혀 안에 품을 만큼의 영물이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꼬리를 쫓아 일곱 바퀴 반을 돌고 나니 피곤해서 그만두었다.

"지난번에 핀스케를 만났더니, 자기 학교에 기묘하게 생겨먹은 놈이 있다는 게야. 선생님 반차(番茶)는 영어로 뭐라고 합니까, 하고 어떤 학생이 물었는데 ‘반차’는 ‘새비지 티(savage tea)’33라고 아주 진지하게 대답한 일로 교원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다면서, 그런 교사 때문에 다른 교사들까지 피해를 본다고 아주 난처하다던데, 아마 바로 그놈일 게야."

33 야만인, 미개인을 의미하는 ‘반진(蕃人)’이라는 말에서 ‘반차(番茶, 질 낮은 엽차)’를 ‘savage tea(미개 차, 야만 차)’라고 한 것이다.

수염을 기른 게 괘씸하다면, 괘씸하지 않은 고양이는 이 세상에 한 마리도 없다.

여자는 계속 말하고 있지만 상대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으니, 아마도 소문으로 들은 전화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너한테 그렇게 잘 어울린다면, 내가 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 아냐."
"아마 잘 어울리실 거예요."
"어울릴 줄 알면서 왜 아무 말 않은 거야? 그러고서 시치미 뚝 떼고 그걸 달고 있다니, 정말 못돼 먹었네."

돌아와보니 깨끗한 집에서 갑자기 지저분한 곳으로 옮겨왔기 때문인지 양지 바른 산꼭대기에서 어둑어둑한 동굴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선생보다는 역시 사업가가 훌륭한 것 같았다. 나도 좀 이상하다 싶어 예의 꼬리를 통해 점을 쳐보았더니, 그 말이 맞다, 맞다, 하고 꼬리 끝으로 신탁을 내려주었다.

"조금은 했네. 제1구가 ‘이 얼굴에 코 제사’라는 걸세."
"다음 구절은?"
"다음이 ‘이 코에 신주(神酒)를 붓고’라네."
"그다음 구절은?"
"아직 거기까지밖에 짓지 못했네."
"재미있군요."
간게쓰 군은 히죽히죽 웃었다.
"그다음에 ‘구멍 두 개 어렴풋하네’라고 붙이면 어떻겠는가?"
메이테이 선생이 이내 그다음을 지었다. 그러자 간게쓰 군이 뒤를 이었다.
"‘속 깊어 털도 보이지 않고’는 어떨까요?"

선인들 중에서도 소크라테스, 골드스미스,43 새커리44 등의 코는 구조에서 보자면 흠잡을 데가 꽤 많겠지만, 그 흠잡을 데에 애교가 있습니다.코는 높아 고귀한 것이 아니라 기이해서 고귀하다 함은 그 때문이 아닐까요?

"아직도 코 얘기를 하고 있어. 정말 끈질긴 작자들이구나."

"당연하지. 결론 없는 연설은 디저트 없는 서양 요리 같은 거니까.

주인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는 아주 열심히 주장했다.
"그야, 물론이지. 그런 작자의 딸을 누가 데려간단 말인가? 간게쓰 군, 데려오면 안 되네!"
그 견해에 어느 정도 찬성의 뜻을 표하기 위해 나도 야옹야옹 두 번 울었다.

"안됐지만 아무리 잘난 척해봐야 집 안 호랑이지 뭐."
주인이 툇마루로 나가 그들에게 질세라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시끄러! 뭐야, 남의 담장 밑에 와서."
"우와하하하, 새비지 티다, 새비지 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