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동물들이 다 자라면 적어도 몇 종류의 살충제에 직접적으로 중독될 위험성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그렇다고 안심할 정도는 아니다. 굴과 조개의 소화기관을 비롯한 각종 조직에는 이런 유독성물질들이 축적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런 굴과 조개를 통째로, 가끔은 날로 먹기도 한다.

우리는 농장과 삼림에 뿌려진 살충제가 상당수, 아니 아마도 모든 주요 강을 따라 바다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화학약품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또 그 총량은 얼마나 되는지는 알지 못하며, 지금으로서는 바다로 흘러들어 희석되어버린 물질을 밝혀낼 수 있는 좋은 검사 방법도 없는 상태다.

더 강력한 독성을 지닌 약제를 만드는 데 매년 지출하는 비용의 아주 일부분만이라도 건설적인 연구비로 전환할 수 있다면, 이런 화학물질들을 더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고 또 그런 독극물이 수로에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쯤이면 세상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충분히 깨닫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요구하게 될까?

한 영국 생태학자의 말처럼 ‘놀라운 죽음의 비’가 지구 표면에 내리고 있다

한때 독극물은 해골과 엇갈린 뼈가 그려진 용기에 담겨 있었고, "부득이하게 사용할 때에는 극도로 주의해야 하며 사용 목적 이외의 대상에는 절대 접촉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도 함께 표기되곤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새로운 유기 살충제가 개발되고 비행기들이 남아돌자, 이런 경고는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잊히고 말았다.

현재 사용되는 독극물은 예전 그 어떤 것보다 위험한데 놀랍게도 공중에서 무차별적으로 살포되고 있다. 그리고 구제 목표인 곤충이나 식물뿐만이 아니라 화학약품이 뿌려진 지역에 사는 인간마저도 예기치 못한 재앙처럼 독극물과 접촉하게 되었다. 숲과 경작지만이 아니라 마을과 도시에도 유독물질이 살포되고 있는 것이다.

외래종인 이 곤충들이 미국에 소개된 지는 오래되었지만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철학에 힘입어 농무부의 방제 관련 부서는 갑자기 매우 과격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나방을 전파시킨 주요 매개체는 바람이었다.

나방들은 알 껍질 안에서 겨울을 난다.

(‘박멸’은 한 종을 분포 범위 내에서 완전히 사멸시키거나 없애버리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 계획은 연속적으로 실패했고, 농무부는 같은 지역에서 같은 종을 ‘박멸’하겠다고 두세 번 되풀이해서 공표해야 했다.)

광활한 지역에 대한 방제가 일상화하자 환경보호론자들은 점차 동요하기 시작했고, 1957년 300만 에이커에 대해 살충제를 살포하는 계획이 발표되자 그 저항은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주 정부와 연방 정부의 농무부 담당자들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이런 불평을 무시하고 말았다.

롱아일랜드 지역 주민들이 제기한 소송은 살충제의 대량 살포에 대한 일반인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은 개인의 재산권을 무시하는 방제 당국의 권위와 압력에 경계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내용이 지역 위생국에 보고되었음에도 오염된 우유의 시장 유통을 금지하는 훈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소비자 보호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5월이 되었는데도 뜰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니 너무 비참했다."

매미나방 퇴치 계획은 여러 면에서 무책임했다.

이 기간에 방역 당국은 롱아일랜드에서 걱정스러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매미나방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매미나방을 영원히 없애려던 농무부는 이 일로 대중의 신뢰와 호의를 잃었을 뿐 아니라 상당히 값비싼 비용을 치르고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치명적인 위력을 지닌 화학약품의 개발과 함께 불개미에 대한 정부의 태도도 갑작스럽게 변했다.

"미국 농무부가 실시하는 광범위한 해충구제 계획이 늘어남에 따라 미국의 살충제 제조업체들은 노다지를 캔 것처럼 보였다."

이 계획은 충분치 못한 준비와 서투른 시행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며 해충 방제에 관한 극히 해로운 실험인 동시에 막대한 비용과 다른 동물들의 죽음, 농무부에 대한 신뢰 추락이라는 값비싼 희생을 치르게 한 실험이었다. 이런 일에 엄청난 정부 예산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몇몇 곤충학자는 불개미의 경우 먹이가 풍부해지면서 활동 형태도 변하기 때문에 몇 십 년 전의 관찰은 현재에 이르러 별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가끔 개미에게 물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몇 백만 에이커의 땅에 독극물을 뿌려대는 행위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아이들이 물리는 상황을 예방하려면 그저 개인적으로 개미집을 없애면 된다.

이에 대해 미국 각 주의 자연보호 관련 부서, 연방 정부의 자연보호 관계 당국, 생태학자, 심지어 곤충학자들까지 당시 농무부장관이던 에즈라 벤슨(Ezra Benson)에게 긴급 항의서를 보냈다. 최소한 헵타클로르와 디엘드린이 야생동물과 가축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불개미 퇴치를 위한 살충제 적정량이 밝혀질 때까지만이라도 계획을 연기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항의는 무시되었고 1958년 살충제가 뿌려졌다. 첫해에 100만 에이커에 약제가 살포되었다. 결국 살충제 관련 연구는 죽은 동물을 해부하며 수행될 수밖에 없었다.

이 연구들에 따르면 살충제가 뿌려진 지역에서 몇몇 야생동물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가금류, 가축, 애완동물도 죽었다. 농무부는 이런 피해의 증거를 과장되고 오도된 것이라고 무시해버렸다.

하지만 진실은 속속 등장했다. 텍사스 주의 하딘 카운티에서는 화학약품 살포 후 주머니쥐, 아르마딜로, 너구리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살충제를 뿌린 지 2년 뒤 겨울에는 아예 이런 동물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이 지역에 남아 있던 몇몇 너구리의 조직에서는 화학물질 잔류물이 발견되었다.

"농약을 살포한 사람들에게 심하게 화를 냈다"며 코탬 박사는 이렇게 적었다. "그 농부는 농약 때문에 죽은 소 19마리를 파묻거나 폐기처분해야 했다. 게다가 서너 마리의 소가 비슷한 종류의 농약 살포로 더 죽었다. 태어나서 먹은 것이라고는 어미 소의 젖밖에 없는 송아지들도 죽어갔다고 한다."

"만약 이 송아지들이 어미젖을 먹고 유독물질에 중독되었다면 그 지역 착유장에서 수거한 우유를 마시는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또 농작물에 뿌려진 화학물질이 오래도록 남아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여기서 제안한 기간이 적합한지도 의아스럽다.

간단히 말해서, 농무부는 살충제를 살포하면서 이미 발표된 기초적인 사실조차 살펴보지 않았고, 알고 있다고 해도 그 결과를 무시했다.

"이 방제 사업은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서둘러 고안되었고 형편없이 실행되었으며 책임을 공공 기관과 개별 기관에게 전가해버린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주 정부와 연방 정부가 실시한 불개미 방제 사업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루이지애나 주에서는 이 사업이 시작되었을 때보다 훨씬 더 넓은 농경지가 피해를 입고 있다."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은 살충제의 대규모 살포만은 아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소규모이지만 매일 또는 매년 지속적으로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일이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마침내 단단한 바위에 구멍을 뚫는 것처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위험한 화학물질과 접촉하다 보면 결국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세상에서 완전히 고립된 사람을 제외하고 이런 오염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평범한 시민이라면 우아한 판매 기술과 얼굴 없는 설득자에게 속아 넘어가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죽음의 물질을 인식할 수 없게 된다. 아마 자신이 이런 물질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잘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 약국에서 약을 살 때에도 ‘독극물 장부’에 서명을 해야 하는데 상점에 걸어 들어가 훨씬 더 치명적인 성분의 물질을 구할 때에는 아무런 질문도 받지 않는다.

바야흐로 심각한 독극물 시대가 왔다고 할 수 있다.

화학물질에 관한 기초 지식이 없어도, 인근 슈퍼마켓을 몇 분만 돌아다니면 아무리 대담한 소비자라도 깜짝 놀랄 것이다.

살충제 관련 코너에 커다란 해골과 엇갈린 뼈다귀 표시가 그려져 있다면 소비자는 적어도 이곳이 독극물과 관련된 물건을 다룬다는 사실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살충제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모습으로 소비자를 찾아온다.

통로 건너편에는 피클과 올리브가 놓여 있고 옆 칸에는 각종 목욕용품과 세탁용 비누가 즐비한 가운데 살충제들은 높이 쌓여 진열된다. 아이들의 손이 쉽게 닿는 유리용기 속에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 만일 어린아이나 부주의한 어른이 이 살충제를 건드려 떨어뜨리기라도 한다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화학물질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

위험은 구매자의 집에까지 이어진다.

DDD가 들어 있는 나방 제거제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압력을 받거나 고온이나 불길에 노출되면 폭발할 수 있다"는 경고가 적혀 있다. 부엌을 비롯해 가정에서 사용하는 살충제에는 클로르데인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의 수석 약리학자는 클로르데인을 뿌린 집에서 생활하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부엌에서 사용하는 유독물질은 매우 호감 가는 용기에 담겨 있으며, 사용하기도 쉽다. 흰색 또는 기호에 따라 여러 가지 색을 입힌 부엌용 선반 벽지는 한 면뿐 아니라 양면에 모두 살충 성분이 묻어 있다. 살충제 제조업자들은 소비자들이 스스로 해충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DIY 안내책자를 만들어 배포한다. 쉽게 손이 닿지 않는 구석, 캐비닛의 갈라진 틈에도 버튼을 누르듯 손쉽게 디엘드린을 뿌릴 수 있다.

지갑에 넣고 다니거나 해변, 골프장, 낚시터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포켓용 살충제 분사기 광고를 보면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곤충들을 물리칠 수 있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살충제와 함께 살아가는 셈이다. 잠자리에 들 때에도 디엘드린으로 방충 처리한 담요를 덮으니 말이다.

새로운 원예기구가 계속 쏟아져나와 잔디밭이나 정원에 유독물질을 살포하는 일이 훨씬 쉬워졌고, 유독물질과 접촉하는 횟수 역시 늘어났다. 예를 들어 호스의 끝에 살충제 용기를 매달아 마치 정원에 물을 뿌리듯 클로르데인이나 디엘드린 같은 위험물질을 살포하기도 한다. 이런 장치는 그 호스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만 해로운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에게도 피해를 입힌다. 〈뉴욕타임스〉는 원예 면에서 "특별한 안전장치가 없다면 이러한 유독물질이 수관을 따라 식수원으로 유입될 수 있다"는 경고문을 반드시 기재하려고 노력한다.

정원사가 어떤 일을 당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열성적 원예애호가인 한 의사의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그는 잔디밭에 매주 DDT와 말라티온을 규칙적으로 뿌렸다. 수동식 분사기나 호스에 부착하는 분사 도구를 사용했다. 그 과정에서 피부와 옷에 살충제가 묻곤 했다. 이런 일이 1년쯤 계속되던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검사 결과 지방층에서 23ppm의 DDT가 검출되었다. 심각한 뇌손상이 일어났는데 진료를 맡은 의사는 그의 뇌손상이 영구적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체중이 줄고 심각한 피로감에 시달렸으며 근력 약화를 겪게 되었는데, 이는 말라티온 중독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증상이 너무 심각해 그는 더 이상 의사로 일할 수 없게 되었다.

공구상이나 원예용품점에서 볼 수 있는 살충제 설명서에는 이런 물질을 다루거나 뿌릴 때 생기는 위험에 관해 아무런 말도 없다. 대신 아버지와 아들이 잔디밭에 살충제 뿌릴 준비를 하고, 어린아이들은 개와 함께 잔디밭에서 뒹굴고 있는 행복한 가족이 등장할 뿐이다.

미국 공중위생국의 연구팀은 일반 식당과 여러 기관의 구내식당에서 많은 분석 시료를 수집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음식에서 DDT가 검출되었다. 과학자들은 "DDT가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일과 채소에는 잔류농약이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농약은 씻어도 잘 없어지지 않는데, 유일한 해결책은 양상추나 양배추처럼 겉잎을 떼어내거나 칼로 벗겨내는 등 껍질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조리를 한다고 해도 이런 농약은 파괴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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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자연이 실험 데이터처럼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을까요?"16

그 답은 1926년에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본Max Born이 파격적인 양자 패러다임을 제안함으로써 ‘그렇다yes’로 판명되었다.

그가 제시한 처방전을 그대로 따라가 보니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수학적 구조가 완벽하게 작동했다.

그동안 경험에 근거하여 임시변통으로 대충 설명하거나 아예 설명조차 불가능했던 실험 데이터들이 수학적 분석을 통해 이해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이다.

원자의 에너지가 최소일 때에는 그 어떤 전자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하지 않는다.

n번째 층의 한계 수용 개수는 2n2이다.

원자는 특유의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으며, 바로 이 강박증 때문에 모든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원자는 어떻게든 그 층을 텅 비우거나 꽉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원자는 전기적 평형을 이루기 위해 요구되는 전자의 수가 각 층의 정족수의 총합과 일치하지 않는다.

어차피 물 분자는 전체적으로 중성인데. 내부의 음전하가 산소 쪽으로 조금 치우쳤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 미세한 불균형이 없었다면 생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하를 띤 물질이 물속에 오래 잠겨 있으면 물 분자의 양끝이 전하 갈퀴처럼 작용하여 물질을 갈가리 찢어 놓는 것이다.

세포의 내부는 거대한 화학 공장을 방불케 한다.

"물은 생명의 물질이자 생명의 기반이며, 모든 매개체의 어머니다. 물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 지구의 생명체는 원래 바다에서 살다가, 피부에 물을 저장하는 방법을 개발한 후에야 육지로 진출할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도 물과 함께 살고 있다. 다만, 바깥에 있던 물을 몸 안으로 가져온 것뿐이다."

지금까지 수집된 증거에 의하면 모든 생명체의 기원은 하나의 공통 조상으로 수렴한다.

세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정보를 저장하고 활용하는 방법은 생명체의 종류와 상관없이 거의 동일하다. 두 번째 특징은 에너지와 관련되어 있다. 즉, 모든 생명체에서 세포가 에너지를 입수하고, 저장하고, 활용하는 방법도 거의 동일하다. 그토록 다양한 지구 생명체들이 이런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하나의 조상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다.

토끼의 움직임은 직설보다 은유적 표현이 더 효과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하드웨어 패러다임은 생명체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개념이다. 토끼는 감각 기관을 이용하여 주변 환경으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것을 신경 컴퓨터(두뇌)로 분석한 후 신경계를 통해 명령(정보가 담긴 신호)을 하달하여 특정 행동(토끼풀 뜯어먹기,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 뛰어넘기 등)을 수행한다. 토끼의 모든 행동은 몸속에 흐르는 복잡한 지시 사항들이 일련의 내부 처리 과정을 거쳐 나타난 결과다. 즉, 토끼는 생물학적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갖고 있다. 그러나 돌멩이에게는 이런 것이 단 하나도 없다.
토끼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로 들어가면 작은 규모에서 이와 비슷한 구조가 나타난다. 세포가 수행하는 기능의 대부분은 화학 반응을 제어, 촉진하고, 중요한 물질을 운반하고, 세포의 형태와 움직임을 제어하는 단백질 분자를 통해 실행되고 있다.

150개의 아미노산이 사슬처럼 연결된 경우, 가능한 배열의 수는 약 10195가지다. 얼마나 큰 수인지 잘 모르겠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라. 10195는 우주에 존재하는 입자의 수보다 훨씬 많다!

한 무리의 원숭이들이 수십 년 동안 키보드 위를 아무리 열심히 뛰어다녀도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라는 문장이 입력되지 않는 것처럼, 아미노산이 무작위로 결합한다면 생명체에게 필요한 단백질은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생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게놈genome*이 세계적인 위인들과 거의 비슷하다니 어깨가 으쓱해지겠지만, 최고의 악당들과도 비슷하다는 뜻이므로 그리 흐뭇해할 일은 아니다.

즉,단백질을 생산하는 공정은 생명체의 종류와 상관없이 모두 동일하다.25

첫째, DNA에 담긴 암호를 알면 세포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개념이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DNA의 한 부분이 주어지면 세포의 업무를 지시하는 명령서를 읽을 수 있다. 무생물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정교한 시스템이다. 둘째, 유전자 암호를 직접 보면 그것이 모든 생명체의 보편적 특징임을 알 수 있다. 해초의 DNA건 소포클레스Sophocles*의 DNA건, 모든 DNA 분자에는 단백질 생성에 필요한 정보가 똑같은 방식으로 암호화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정보에 존재하는 통일성이다.

생명이 진행되는 과정은 증기가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과정보다 훨씬 복잡하여, 에너지를 적재적소에 공급하는 정교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생명체는 연료를 태워서 발생한 에너지를 세포의 요구에 맞춰 규칙적으로,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저장, 배분하고 있다.

생명체가 에너지를 추출하고 배분하는 방법은 종種에 상관없이 모두 동일하다.2

생명이 에너지를 처리하는 과정의 핵심은 산화 환원 반응redox reaction이다. 그다지 매력적인 이름은 아니지만, 전형적인 사례(불에 타는 장작)를 들어 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장작이 탈 때 나무에 함유된 탄소와 수소는 자신이 갖고 있던 전자를 공기 중의 산소에게 내주면서(앞서 말한 대로, 산소는 항상 전자를 애타게 찾고 있다) 서로 결합하여 물과 이산화탄소가 되고, 이 과정에서 에너지를 방출한다(그래서 불은 뜨겁다!). 산소가 전자를 포획했을 때, 흔히 ‘환원되었다reduced’고 말한다(전자를 향한 산소의 갈망이 누그러들었다reduced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산소에게 전자를 양도한 탄소와 수소는 ‘산화되었다oxidized’고 한다. 이 둘을 합쳐서 부른 것이 바로 산화 환원 반응이다(환원을 뜻하는 ‘reduction’의 ‘red’와 산화를 뜻하는 ‘oxidation’의 ‘ox’를 붙여서 ‘redox’가 된 것이다).

모든 원자들 중에서 전자에 대한 집착이 가장 강한 산소는 제일 아래층에서 기다리다가 전자가 도착하면 단단히 끌어안으면서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쥐어 짜내고, 이것으로 에너지 추출 과정은 막을 내리게 된다.

동물은 전자를 음식에서 얻고, 식물은 물에서 얻는다.

알베르트 센트죄르지는 "모든 생명 현상은 최후의 쉼터를 찾아가는 전자의 여정"이라고 했다.

이렇게 독특한 에너지 추출법이 왜, 그리고 어떻게 지구 생명체의 전매 특허가 되었을까? 아무도 알 수 없다.

생명이 에너지를 취하는 방법에 통일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자명하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40억 년 전에 최초로 등장했던 단세포생물의 직계후손이기 때문이다.

배터리에는 ‘기회만 주어지면 사용자가 선택한 전기 기구에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헌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전자 집단의 에너지가 저장되어 있다.

살아 있는 세포의 배터리도 이와 비슷하다. 일상적인 배터리와 다른 점은 전자 대신 양성자가 저장되어 있다는 것인데, 양성자들 사이에도 전기적 척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작동 원리는 거의 같다.

세포의 생물학적 배터리는 크기만 작을 뿐이지, 결코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평범한 세포 1개가 1초 동안 정상 기능을 유지하려면 약 1천만 개의 ATP 분자가 필요하다.

우리 몸은 수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1초 사이에 무려 1억×1조 개(1020개)의 ATP 분자가 소모되는 셈이다.

당신이 제아무리 속독의 대가라고 해도, 이 한 문장을 읽는 동안 당신의 몸은 5억×1조 개의 ATP 분자를 생산했다. 그리고 방금 3억×1조 개가 추가되었다.

우리의 목적상 자세한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모든 생명체들이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 동일한 메커니즘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에너지 공급과 DNA 암호에 이런 통일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다.

아인슈타인은 생전에 자연의 힘을 하나의 논리로 설명하는 통일이론을 꿈꾸었고, 요즘 물리학자들은 모든 물질과 시공간을 하나로 합치는 훨씬 큰 통일이론을 구상하고 있다.

생명을 탐구하다 보면 이해가 깊어질수록 의문도 많아진다.

앉은자리에서 곧바로 설득되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것을 보면, 진화론은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이론 같기도 하다.

다윈은 두 가지 가설에 기초하여 이 문제의 답을 찾았다. 첫째, 생명체가 번식을 통해 낳은 자손은 유전적 특징이 부모와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다윈은 이것을 "생명체는 후대로 갈수록 수정修訂, modification된다."고 표현했다. 둘째, 자원에 한계가 있는 세상에서는 개체들 사이의 경쟁을 피할 길이 없다. 생물학적으로 수정된 후손은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 그다음 후손을 낳을 확률이 높아지고, 생존에 유리한 특질도 후손에게 전수된다.

사람들이 다윈의 진화론을 믿는 이유는 과학자들이 긴 세월에 걸친 생명의 변화 과정을 끈질기게 추적하여 유리한 형질을 획득한 종이 끝까지 살아남았음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다윈은 생명체의 수정된 형질이 후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명시하지 않았다. 부모는 어떻게 자신의 유전 형질을 후손에게 물려주는가? 그리고 전달 과정에서 형질의 일부가 수정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가정했던 특별한 쌍에 유전 물질의 복제 메커니즘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눈을 피해 가지 못했다."

자연에는 100% 완벽한 과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수정은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의 413쪽에 딱 하나 있는 오타처럼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두 개체의 유전 물질이 섞인 채로 복제되면 다양성이 향상되고, 이런 식으로 여러 세대를 거치면 생존력과 번식력이 높아진다(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간단히 말해서, 생명은 물리학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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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콘은 수십억 년에 걸친 지질학적 변형에도 살아남을 정도로 단단하기 때문에, 지구의 역사를 간직한 타임캡슐 역할을 한다.

지르콘에 함유된 불순물이 젊은 지구의 환경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적도 부위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것이 충돌의 후유증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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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들리라는 기대와 달리 해충은 살충제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해 가을, 죽은 물고기가 옐로스톤 강에서 대거 발견되자 낚시꾼들과 몬태나 주의 어업·수렵 담당자는 크게 놀랐다. 약 90마일(약 145킬로미터)의 하천 유역이 오염되었는데, 겨우 300야드(약 274미터)의 강기슭을 따라 황색송어·백송어·서커 등 죽어가는 물고기 600여 마리가 발견되었다. 송어의 먹이인 수중곤충도 자취를 감췄다.

생리학적으로 스트레스 상태에 있을 때(사람이든 물고기이든) 유기체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저장된 지방을 이용하며, 이런 작용으로 인해 지방조직 내에 축적된 DDT가 혈액 속으로 스며나와 치명적인 영향을 발휘하게 된다.

삼림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물고기를 살리는 방법이 분명히 존재한다. 모든 강이 죽음의 강으로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포자기적인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대안들을 좀더 폭넓게 활용해야 하며 지식과 자원을 총동원하여 새로운 대안을 개발해나가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해충을 없애는 데 화학약품 살포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며, 또한 최선의 방법도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낚시꾼들이 좋아하고 저녁 식탁에 자주 오르는 개복치와 농어도 포함되었는데 이런 물고기의 몸속에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었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사람들이 이런 화학물질을 극소량이라도 섭취할 경우 매우 위험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동물 중 상당수는 매우 한정된 지역에서 살기 때문에 쉽게 멸종될 수 있다."

특이한 질병의 징후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단지 죽기 전에 이상한 행동을 보였고, 아가미가 이상하리만치 짙은 암적색으로 변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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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145
윌라 캐더 지음, 윤명옥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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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책을 다시 생각해도 ‘아름답다‘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각각의 챕터를 읽을 때 머릿속에는 다양하게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졌다. 마지막 부분을 향할 때는 아주 좋은 친구들과 슬픈 작별을 하며 떠나보내는 것 같았다. 그 친구들이 생각나면 다시 펼쳐서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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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09 21: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너무 좋아해요. 윌라 캐더의 작품들은 다 아름다운거 같아요 ^^

라로 2022-05-10 17:34   좋아요 1 | URL
저도요!! 새파랑님이 좋아하시는 책 저도 대부분 좋아하는 책이에요!! 제가 읽지 못한 책이 있어서 그렇지만.^^;;
윌라 캐더의 작품들은 아름답고 평화로워서 넘 좋아요. 문장도 그렇고. 나의 안토니아 영문으로 읽고 너무 좋았거든요. 이 책도 다음엔 영문으로 읽어보려고요. 문장에 대한 리뷰가 많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