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자연이 실험 데이터처럼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을까요?"16

그 답은 1926년에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본Max Born이 파격적인 양자 패러다임을 제안함으로써 ‘그렇다yes’로 판명되었다.

그가 제시한 처방전을 그대로 따라가 보니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수학적 구조가 완벽하게 작동했다.

그동안 경험에 근거하여 임시변통으로 대충 설명하거나 아예 설명조차 불가능했던 실험 데이터들이 수학적 분석을 통해 이해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이다.

원자의 에너지가 최소일 때에는 그 어떤 전자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하지 않는다.

n번째 층의 한계 수용 개수는 2n2이다.

원자는 특유의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으며, 바로 이 강박증 때문에 모든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원자는 어떻게든 그 층을 텅 비우거나 꽉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원자는 전기적 평형을 이루기 위해 요구되는 전자의 수가 각 층의 정족수의 총합과 일치하지 않는다.

어차피 물 분자는 전체적으로 중성인데. 내부의 음전하가 산소 쪽으로 조금 치우쳤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 미세한 불균형이 없었다면 생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하를 띤 물질이 물속에 오래 잠겨 있으면 물 분자의 양끝이 전하 갈퀴처럼 작용하여 물질을 갈가리 찢어 놓는 것이다.

세포의 내부는 거대한 화학 공장을 방불케 한다.

"물은 생명의 물질이자 생명의 기반이며, 모든 매개체의 어머니다. 물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 지구의 생명체는 원래 바다에서 살다가, 피부에 물을 저장하는 방법을 개발한 후에야 육지로 진출할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도 물과 함께 살고 있다. 다만, 바깥에 있던 물을 몸 안으로 가져온 것뿐이다."

지금까지 수집된 증거에 의하면 모든 생명체의 기원은 하나의 공통 조상으로 수렴한다.

세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정보를 저장하고 활용하는 방법은 생명체의 종류와 상관없이 거의 동일하다. 두 번째 특징은 에너지와 관련되어 있다. 즉, 모든 생명체에서 세포가 에너지를 입수하고, 저장하고, 활용하는 방법도 거의 동일하다. 그토록 다양한 지구 생명체들이 이런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하나의 조상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다.

토끼의 움직임은 직설보다 은유적 표현이 더 효과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하드웨어 패러다임은 생명체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개념이다. 토끼는 감각 기관을 이용하여 주변 환경으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것을 신경 컴퓨터(두뇌)로 분석한 후 신경계를 통해 명령(정보가 담긴 신호)을 하달하여 특정 행동(토끼풀 뜯어먹기,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 뛰어넘기 등)을 수행한다. 토끼의 모든 행동은 몸속에 흐르는 복잡한 지시 사항들이 일련의 내부 처리 과정을 거쳐 나타난 결과다. 즉, 토끼는 생물학적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갖고 있다. 그러나 돌멩이에게는 이런 것이 단 하나도 없다.
토끼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로 들어가면 작은 규모에서 이와 비슷한 구조가 나타난다. 세포가 수행하는 기능의 대부분은 화학 반응을 제어, 촉진하고, 중요한 물질을 운반하고, 세포의 형태와 움직임을 제어하는 단백질 분자를 통해 실행되고 있다.

150개의 아미노산이 사슬처럼 연결된 경우, 가능한 배열의 수는 약 10195가지다. 얼마나 큰 수인지 잘 모르겠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라. 10195는 우주에 존재하는 입자의 수보다 훨씬 많다!

한 무리의 원숭이들이 수십 년 동안 키보드 위를 아무리 열심히 뛰어다녀도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라는 문장이 입력되지 않는 것처럼, 아미노산이 무작위로 결합한다면 생명체에게 필요한 단백질은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생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게놈genome*이 세계적인 위인들과 거의 비슷하다니 어깨가 으쓱해지겠지만, 최고의 악당들과도 비슷하다는 뜻이므로 그리 흐뭇해할 일은 아니다.

즉,단백질을 생산하는 공정은 생명체의 종류와 상관없이 모두 동일하다.25

첫째, DNA에 담긴 암호를 알면 세포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개념이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DNA의 한 부분이 주어지면 세포의 업무를 지시하는 명령서를 읽을 수 있다. 무생물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정교한 시스템이다. 둘째, 유전자 암호를 직접 보면 그것이 모든 생명체의 보편적 특징임을 알 수 있다. 해초의 DNA건 소포클레스Sophocles*의 DNA건, 모든 DNA 분자에는 단백질 생성에 필요한 정보가 똑같은 방식으로 암호화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정보에 존재하는 통일성이다.

생명이 진행되는 과정은 증기가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과정보다 훨씬 복잡하여, 에너지를 적재적소에 공급하는 정교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생명체는 연료를 태워서 발생한 에너지를 세포의 요구에 맞춰 규칙적으로,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저장, 배분하고 있다.

생명체가 에너지를 추출하고 배분하는 방법은 종種에 상관없이 모두 동일하다.2

생명이 에너지를 처리하는 과정의 핵심은 산화 환원 반응redox reaction이다. 그다지 매력적인 이름은 아니지만, 전형적인 사례(불에 타는 장작)를 들어 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장작이 탈 때 나무에 함유된 탄소와 수소는 자신이 갖고 있던 전자를 공기 중의 산소에게 내주면서(앞서 말한 대로, 산소는 항상 전자를 애타게 찾고 있다) 서로 결합하여 물과 이산화탄소가 되고, 이 과정에서 에너지를 방출한다(그래서 불은 뜨겁다!). 산소가 전자를 포획했을 때, 흔히 ‘환원되었다reduced’고 말한다(전자를 향한 산소의 갈망이 누그러들었다reduced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산소에게 전자를 양도한 탄소와 수소는 ‘산화되었다oxidized’고 한다. 이 둘을 합쳐서 부른 것이 바로 산화 환원 반응이다(환원을 뜻하는 ‘reduction’의 ‘red’와 산화를 뜻하는 ‘oxidation’의 ‘ox’를 붙여서 ‘redox’가 된 것이다).

모든 원자들 중에서 전자에 대한 집착이 가장 강한 산소는 제일 아래층에서 기다리다가 전자가 도착하면 단단히 끌어안으면서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쥐어 짜내고, 이것으로 에너지 추출 과정은 막을 내리게 된다.

동물은 전자를 음식에서 얻고, 식물은 물에서 얻는다.

알베르트 센트죄르지는 "모든 생명 현상은 최후의 쉼터를 찾아가는 전자의 여정"이라고 했다.

이렇게 독특한 에너지 추출법이 왜, 그리고 어떻게 지구 생명체의 전매 특허가 되었을까? 아무도 알 수 없다.

생명이 에너지를 취하는 방법에 통일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자명하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40억 년 전에 최초로 등장했던 단세포생물의 직계후손이기 때문이다.

배터리에는 ‘기회만 주어지면 사용자가 선택한 전기 기구에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헌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전자 집단의 에너지가 저장되어 있다.

살아 있는 세포의 배터리도 이와 비슷하다. 일상적인 배터리와 다른 점은 전자 대신 양성자가 저장되어 있다는 것인데, 양성자들 사이에도 전기적 척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작동 원리는 거의 같다.

세포의 생물학적 배터리는 크기만 작을 뿐이지, 결코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평범한 세포 1개가 1초 동안 정상 기능을 유지하려면 약 1천만 개의 ATP 분자가 필요하다.

우리 몸은 수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1초 사이에 무려 1억×1조 개(1020개)의 ATP 분자가 소모되는 셈이다.

당신이 제아무리 속독의 대가라고 해도, 이 한 문장을 읽는 동안 당신의 몸은 5억×1조 개의 ATP 분자를 생산했다. 그리고 방금 3억×1조 개가 추가되었다.

우리의 목적상 자세한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모든 생명체들이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 동일한 메커니즘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에너지 공급과 DNA 암호에 이런 통일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다.

아인슈타인은 생전에 자연의 힘을 하나의 논리로 설명하는 통일이론을 꿈꾸었고, 요즘 물리학자들은 모든 물질과 시공간을 하나로 합치는 훨씬 큰 통일이론을 구상하고 있다.

생명을 탐구하다 보면 이해가 깊어질수록 의문도 많아진다.

앉은자리에서 곧바로 설득되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것을 보면, 진화론은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이론 같기도 하다.

다윈은 두 가지 가설에 기초하여 이 문제의 답을 찾았다. 첫째, 생명체가 번식을 통해 낳은 자손은 유전적 특징이 부모와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다윈은 이것을 "생명체는 후대로 갈수록 수정修訂, modification된다."고 표현했다. 둘째, 자원에 한계가 있는 세상에서는 개체들 사이의 경쟁을 피할 길이 없다. 생물학적으로 수정된 후손은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 그다음 후손을 낳을 확률이 높아지고, 생존에 유리한 특질도 후손에게 전수된다.

사람들이 다윈의 진화론을 믿는 이유는 과학자들이 긴 세월에 걸친 생명의 변화 과정을 끈질기게 추적하여 유리한 형질을 획득한 종이 끝까지 살아남았음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다윈은 생명체의 수정된 형질이 후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명시하지 않았다. 부모는 어떻게 자신의 유전 형질을 후손에게 물려주는가? 그리고 전달 과정에서 형질의 일부가 수정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가정했던 특별한 쌍에 유전 물질의 복제 메커니즘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눈을 피해 가지 못했다."

자연에는 100% 완벽한 과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수정은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의 413쪽에 딱 하나 있는 오타처럼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두 개체의 유전 물질이 섞인 채로 복제되면 다양성이 향상되고, 이런 식으로 여러 세대를 거치면 생존력과 번식력이 높아진다(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간단히 말해서, 생명은 물리학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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