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냐님이 달아주신 댓글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cardiac monitor에는 보인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제 일을 가니까 내게 주어진 환자는 10번 방 환자 한 명. 그 의미는 응급실이나 다른 유닛에서 중증의 환자가 발생하면 내가 그 환자를 받게 된다는 의미. 그래서 나는 나름 내가 받은 환자에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다 하려고 분주했다.. 그런데 옆 방인 11번 방에 환자 옆에 가족들이 빙 둘러앉아 있거나 서 있는 모습이 어두운 병실에 검은 하르방처럼 보였다. 가족들의 눈은 다 환자를 향하고 있었다.


11번 방 환자는 코로나 환자로 코로나 증세가 심해져서 내가 있는 중환자실에 왔는데 77세의 할아버지다. 그 할아버지가 입원한 지 5일째 되던 날 내가 그 할아버지와 다른 환자를 돌봤는데, 나에게 그 할아버지를 인계했던 간호사가 하는 말이, 할아버지가 대변을 침대에서 누고 싶지 않아서 음식을 거부하고, 매일 우리가 CHG bath라고 부르는 것을 거부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많은 환자가 할아버지처럼 의식이 있는 상태로 입원한 적도 많고,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훨씬 적은 (20대) 사람도 침대에서 대변을 보면 간호사들이 치워주고, CHG bath도 해주고 가운도 매일 갈아입히고 했는데 할아버지는 정말 다른 사람보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걸까? 자존심이 강했던 걸까?


의사가 변비약 같은 것을 오더 해도 거부하던 할아버지도 가끔 대변을 침대에서 누시긴 했는데 그런 경우는 대부분 남자 간호사가 간호를 할 때였다. 정말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서 우리끼리 정신력이 대단하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 간호사들이 꽤 많은데 (이유는 힘이 세니까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서;;;) 그중에 내가 슈퍼 P***이라고 부르는 간호사가 있는데 그는 중환자실 간호사는 아니지만 float nurse라고 정해진 유닛 없이 환자의 센서스에 따라서 그 유닛으로 가서 일을 하는 한마디로 만능간호사 같은 사람인데 그 간호사가 일하는 날 슈퍼 P가 CHG bath(이건 말만 목욕이 들어간 것;;;)가 아닌 침대 목욕을 시켜드리고 모든 시트를 다 치우고,, 정말 대단했다는.


암튼 그럴 정도로 자신이 결심한 일은 변경하는 법이 없는 할아버지라서 처음 간호를 맡았던 간호사는 할아버지에게 코비드 백신을 맞았는지 물어보지 않고도 맞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 할아버지지만, 할아버지의 자녀들은 할아버지를 극진하게 사랑하는 것을 잘 보여줬다. 지난주에는 할아버지의 방이 분홍색, 빨간색, 하얀색의 발렌타인데이 카드 색으로 온통 장식이 되어있었다. 병원 규칙만 아니면 할아버지 방을 잔뜩 장식한 수많은 하트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을 정도,, 이제는 내 기억에만 남아 있지만.


내 환자의 병실이 할아버지 병실 바로 옆이라서 나는 내 컴퓨터를 할아버지 방과 내 환자의 방 중간에 세워 차팅을 하고 있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할아버지 방의 모니터를 올려다봤었다. 처음 환자들 인계를 받고 환자를 돌보기 시작할 때 모니터에서 보이던 할아버지의 SpO2가 78%였다. 마음이 아팠다. 78%면 정상을 한참 밑도는 수치니까. 일을 하다가 볼 때마다 수치는 내려가 있었고, 할아버지의 혈압도 함께 내려가고 심장 박동의 숫자도 하나씩 줄어들고 있었다. 


결국, Spo2가 0이 되던 순간,, 그 순간이 정말 삶과 죽음의 경계인지는 모르지만, 모든 모니터의 숫자가 "0"이 되던 순간이 기억난다. 몇 초간 아무 생각이 안 나던,,,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겨우 두 번 정도 간호한 것이 전부고, 내 이름을 한 번에 기억하셨다는 것과 선택적으로 몇몇 간호는 거부하셨기 때문에 다른 환자들에 비해 해드린 것도 별로 없는데 마지막엔 "고맙다"고 하셨고 내가 또 당신을 돌봐주기 바라는 양 언제 또 오냐고 물으셨는데... 굿바이......... Now you are gone. I pray for your departed soul!
















String Quartet No. 14 in D Minor, D. 810 "Death and the Maiden": I. Allegro moder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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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02-12 22:02   좋아요 4 | URL
백신을 안 맞고 오미크론 코로나 인 거세요? 아니면 델타 코로나여서 돌아가신 건가요?
울 아버지도 돌아가실 때까지 혼자 기어서 화장실을 쓰셨어요. 우리가 울면서 부축해드리겠다고해도 완강히 거부 하셨는데… 저 할아버지 글 읽으면서 아빠 생각 나네요!!

라로 2022-02-13 16:40   좋아요 2 | URL
저희는 일단 환자가 코비드 판정이 나면 그것이 델타인지 오미크론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데 할아버지 입원 시기를 봤을 때 델타에 가까우신 것 같아요. 연말에 코비드 환자 급증 했다가 지금은 한 사람도 없네요. 센서스가 다시 줄어들었어요.ㅎㅎㅎ 이 변화가 넘 극심한 듯,, 에효
암튼, 아버님께서 그런 분이셨군요!! 저희 엄마도 그랬는데... 저도 기억의집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엄마 생각 나요...

2022-02-12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3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4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22-02-13 16:01   좋아요 3 | URL
😭😭
라로님!!
삶과 죽음의 경계의 순간들!!ㅜㅜ
한 번씩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가겠어요.
스트레스 관리, 멘탈 관리가 필수이시겠습니다.
관리 비법 중 하나가 독서 이신 거죠?^^

라로 2022-02-13 16:51   좋아요 2 | URL
삶과 죽음의 순간들을 자주 보는 건 아니라서,,
그런데 요즘 거의 매일 한 분씩 돌아가시네요,,,ㅠㅠ
저희야 뭐 스트레스랄 것이 있나요,, 가족분들이 힘드시죠,,
그래도 일이니 스트레스를 받긴 해요.ㅠㅠ
관리 비법 중 하나는 알라딘에 이렇게 주절거리는 거고
독서 조금, 가족들,, 쇼핑,,^^;;;;
책나무님도 힘드신 일이나 고민, 결정해야 하는 것 등등 많으실텐데
알라딘이 스트레스 해소해 주는 곳이길 바래요.
우리 같이 슬기롭게 재밌게 지내요!!^^

psyche 2022-02-13 09:52   좋아요 3 | URL
모니터에서 숫자가 점점 내려가다가 0이 되는 순간.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는 그 순간을 직접 목격하실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들 거 같아요.
정말 병원에서 일하는 분들 정말 대단하세요. 라로님 지치지 마시고!!

라로 2022-02-13 16:39   좋아요 2 | URL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코로나 시기는
많은 것 같아요. 작년도 이맘때 많은 분들이
할아버지처럼 버티시다가 돌아가셨거든요.
저희도 거의 매일 한 두 분씩 돌아가시다가
할아버지가 마지막 코비드 환자로 돌아가셨어요...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죽음도 직업으로 받아들여야 하니까...

바람돌이 2022-02-13 17:22   좋아요 2 | URL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은 여러가지일듯요. 저 할아버님은 아마도 그런 부분에서 더 민감하게 자신을 지키고 싶지 않으셨을까싶어요. 마지막까지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자 애쓰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었으므로 훌륭한 생의 마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누구든 죽음의 순간은 먹먹해지네요. 라로님 매일 맛난거 많이 드시고 즐거운 일 많이 하셔야 할듯요. 일이라 하더라도 누군간의 마지막을 보게 된다는 것은 역시 마음의 상처가 쌓이는 일 같아요.

라로 2022-02-14 18:12   좋아요 1 | URL
네, 할아버지도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 싶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기관삽입을 하시면 좀 더 오래 사셨을 수도 있는데 그것도 거부하셨거든요. 그래도 가족들이 할아버지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맞아요, 모든 죽음은 평등하고 먹먹하고 그렇네요,,, 많이 배우고 있어요.^^;; 네, 저도 즐거운 일 찾아서 더 많이 하려고 하는데 요즘 공사다망 해서 모임도 많고 일도 많고, 학교도 그렇고,, 학교가 끝나야 맘이 좀 가벼워 질 것 같아요. 매주 퀴즈가 있어서 진짜 진이 빠지네요. 선생님들 왜 그렇게 퀴즈를 좋아하시는 겁미꽈???ㅎㅎㅎㅎㅎㅎㅎ

레삭매냐 2022-02-13 22:34   좋아요 3 | URL
라로님의 글을 보면서 이번에
는 왠지...

우리네 삶이 모두 디지털라이즈
된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0 = death, out of existence
1 = life, keep going as usual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네요.

라로 2022-02-14 18:14   좋아요 2 | URL
그렇네요!! 예리하신 관찰이세요.
디지털화 되어 가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무시 못하는 것 같아요.
저 같아도 제 손으로 맥박을 짚어 볼 생각을 안 하고
모니터에 나온 숫자에 의지하니...

암튼 매냐님,
만나서 너무 새삼 반갑고요,
우리 좀 오래 1에서 머물어요.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