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 - 인류 최후의 에덴동산, 아마존 오디세이
정승희 지음.사진 / 사군자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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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목표는 십수 년 전 일본 취재진이 스쳐간 부족마다 걸려있는 '이찌반라면' 봉지를 모두 삼양라면으로 바꾸어 놓는 것, 물론 그러한 과정에는 세계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우리의 라면을 그곳 부족들과 함께 나눠 먹는 신성한 의식이 필요하다. 한국 사람이 뉴욕의 타임스퀘어 중앙에서 LG나 삼성로고를 발견했을 때 큰 감동을 느낀다고들 하는데, 그것이 오지에서 내가 남긴 우리나라 라면봉지를 발견하는 감동보다 더할까." - 책속에서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사군자)는 KBS 다큐오락프로그램인 <도전 지구탐험대>의 카메라기자로 유명한 정승희씨가 지난 10년간 아마존 여러 부족을 취재한 그 뒷이야기를 책으로 묶은 것. 10년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2005년) 10월 30일 500회를 마지막으로 종영되었다. (촬영 도중 연이은 사고로 폐지 결정)
 
지금은 인디오들 사이에 워낙 유명한 그를 '충(chung)'이라고 부르고, '꼬레아'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처음 얼마간은 일본을 뜻하는 '하뽄!'이라고 했다고. 1970년대 NHK가 아마존을 취재하면서 취재 보답으로 당시 4000∼5000불 하는 일본제 야마하 모터보트를 선물하면서 그들에게 하뽄이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기둥에 달린 삼양라면 봉지. 라면 봉지는 크기로 보나 밀봉으로 보나 인디오들에게 무척 유용하게 쓰인단다. 작은 열매나 코카차를 걸어두기에 좋고, 바퀴벌레의 침입을 막아 낼 수 있는 쓰임새 많은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

일본인만 보았던 그들이라 처음에는 동양인은 모두 하뽄으로만 알고 있던 그들이 라면을 함께 먹으면서 우리나라에 대해 이야기해주면, 두 나라의 역사 차이는 몰라도 '꼬레아'와 '하뽄'이 분명 다르다는 것을 인정. 그 다음 날 어김없이 전날 끓여 먹은 개수만큼의 라면봉지가 기둥에 이(사진)처럼 걸린다고 한다. 10년 동안의 취재, 이제는 삼양라면 봉지가 워낙 많이 걸려있다고….

라면봉지를 꽁꽁 여며 싸맨, 셀 수도 없는 끈을 보면서 오래전 시골 할머니들의 고쟁이 속에 꽁꽁 들어있던 세월에 절은 순박한 쌈짓돈을 떠올렸다. 끈으로 수십 번 칭칭 동여매서 필요하여 꺼낼 때, 또 그 많은 끈을 풀어내야 하지만 결코 조바심내지 않을 인디오들의 생활. 원터치 뚜껑으로 길든 우리가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인내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존 인디오들의 삶과 사랑, 아마존에 중독되다

개미를 입에 넣고 와작하고 씹으면 꼭 오렌지 주스를 먹는 것 같은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인디오들은 깨끗한 나뭇잎이나 촌띠나무 속을 먹고 사는 곤충들은 아주 질 좋은 단백질 공급원으로 생각한다. 특히 이 '모호이'는 먼 길을 갈 때마다 나뭇잎에 10마리씩 나란히 싸서 끈으로 딱 묶어 도시락으로 가져간다. 애벌레 중 제일 큰 것이 '모뻬이'다. 거의 15센티쯤 되는 소시지 크기인데 내가 알기로는 세상에서 제일 큰 애벌레다 - 책속에서

언젠가 KBS <도전 지구탐험대>에서 인디오들의 애벌레 이야기를 인상 깊게 본적이 있는데 책으로 다시 만나니 반갑다. 인디오들이 간식으로 즐겨 먹는 애벌레는 '모호이'와 '모뻬이'만이 아닌 여러 가지.

여행지에서 먹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훌륭한 테마가 된다. 이 책에서 만나는 아마존 여러 부족들의 먹을거리 이야기는 우리가 텔레비전 등을 통하여 만날 수 있는 먹을거리들과 그 차원부터가 다르다.

애벌레를 먹는 소녀가 무척 행복해 보이고 건강해 보인다. 그래서 그럴까? 나도 아마존에 가면 저자처럼 인디오들과 어울려 애벌레들을 먹을 수 있을 것 같고, 저자처럼 서울 한복판에서 애벌레 맛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쉽게 단정하고 말았다.

인디오들의 훌륭한 간식거리인 여러 가지 애벌레들, 악어, 아마존 강의 명물인 육식물고기, 메추리알만 한 말벌의 알, 만주오까나무 이야기 등, 인디오들의 건강한 먹을거리 이야기도 풍성했다. 발암 물질 걱정, 식품첨가물이나 항생제 걱정, 광우병이나 조류독감 등 음식 하나 마음대로 안심하고 먹기 어려운 우리들의 먹을거리보다 훨씬 건강해 보인다고 할까?

앞서 <지리교사들 남미와 만나다>(푸른길)란 책에서 문명인들이 아마존에 침입하여 저지른 만행에 대해 워낙 인상 깊게 읽어서인지 그 내용이 쉽게 잊혀 지지 않고 있는데,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날 침입자들이 남긴 상처와 지금도 자원을 노리는 문명이란 검은 손으로 신음하고 있는 아마존이 아프고 안타깝다.

아마존 어디에서든 북부, 남부 구분없이 고무로 만든 공놀이를 즐기는데, 이 고무공을 만드는 고무액은 인디오들에게 '하얀 피'로 불린다. 수많은 인디오들의 목숨을 앗아간, 아마존을 황폐하게 한 대표적인 것 중 그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난날 문명인들은 고무나무 액을 차지하기 위하여 짐승보다 못한 만행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아마존의 여러 부족 남자들을 끌어다가 고무액을 채집하면서 먹이지도, 재우지도 않았고, 게으르다고 채찍질을 하면서 일만 시켰기 때문에 많은 인디오들이 죽었다. 고무나무 1톤에 인디오 7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심심할 때 몽둥이로 인디오의 머리를 부수면서 놀기도 했다나.

하지만 이것만이 아니다. 젊은 여자들을 가두어 놓고 부지런한 일꾼을 만들겠다며 여자들이 임신할 때까지 강간했단다. 아들이 태어나면 고무나무 액을 긁을 노예로 쓰고, 딸이 태어나면 아무 곳에나 던져 버렸다. 이때 여러 명의 여자가 탈출해 여자들만의 부족들이 생겨났다. 200년 넘게 여자들만으로 아나콘다까지 잡으며 살아가는 야르보족이 이렇게 생겨났다.

침입자들은 고무나무만이 아니라 카카오 등을 채집하면서도 인디오들을 착취했는데, 건축재로 쓰인 밀페소나무 벌목에도 많은 인디오들이 착취했다. 밀페소나무 한그루에 인디오 한 명이 죽어갔고, 그 대신 정복자들 집에는 대들보 하나가 세워졌다고 한다.

문명을 가속하는데 지대한 발전을 하게 한 타이어의 역사는 인디오들의 아픈 역사다. 이 책에서 만나는 문명의 이기와 횡포가 씁쓸하다. 우리가 한때 '미개인'이라고도 불렀던 아마존 인디오들에게 문명이 어떻게 스며들어 어떤 상처와 어둠을 남겼는지,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이 문명인들에 의해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아마존이여 영원 하라!' 빌고 또 빌어 본다

또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아마존을 취재하는 조건으로 10만불을 요구하는 '후나이(아마존 외부인 감시단?)'에게 "배 째!"라면서 드러눕고, 결국 500불로 협상, 그러고도 20불을 자존심 값으로 빼고 주는 등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아마존 오지 여러 부족을 취재한 그 뒷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다.

몸을 가장 아름다운 옷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옷을 입고 살지 않는(심지어는 그곳까지 드러내놓고 사는) 지구 최후의 에덴동산이라 불리는 곳에서 사는 싱구족, 아마존의 신비 분홍 돌고래, 청바지도 뚫을 정도로 강한 모기인 헤헨, 열이 많은 사람만 골라 초죽음을 만드는 털진드기와의 전쟁, 메이나꾸 부족의 엄청난 바퀴벌레의 역사 등 이색적인 이야기들이 생생하고 흥미롭다. 삶과 죽음이 녹아있는 그들의 축제나 성인식도 인상 깊다.

저자는 10년 동안 100회 넘게 아마존을 취재했다. 아마존에 갔다 올 때마다 가져간 팬티 10여장을 모두 인디오들에게 나누어 주고 결국 입은 팬티까지 벗어주고 노팬티로 돌아오는 사연을 들려주는데 재미있고 뭉클하였다. 저자의 말처럼 속옷을 나누어 입는 사이가 어디 보통 사이인가. 아마존과 속옷을 나누어 입는 특별한 사이인 저자는 아마존을 안타까워한다.

지금 아마존의 여러 부족들이 갈림길에 서 있다. 싱구족이나 야르보족처럼 자연 속에서 건강하고 밝게 살 것인가? 아니면, 문명의 껍질을 입고 도시 노동자로 살 것인가? 지금처럼 문명과 자연의 언저리에서 어정쩡하게 살아갈 것인가? 인디오들에게 이런 고민과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행복을 보장하는 듯 밝은 웃음 속에 감추고 있는 어둡고 포악한 문명이다. 인디오들이 사라져야 문명인들이 아마존의 풍성한 자원을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아마존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저자처럼 아마존이 영원하길 간절히 바랬다. 비록 책으로 만나는 아마존이었지만 인간이 꿈꿀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낙원을 생생하게 만났기 때문이다.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인간이 꿈꾸어야 하는 진정한 행복의 낙원 말이다.

"아마존이여 영원 하라! 빌고 또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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