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일부러 생각해본 적 없는 '코 파기에 대한 호기심과 고민'이 <코 파기의 즐거움>이란 책제목을 보는 순간 불쑥 치밀어 올랐다.
코 파기에도 역사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코 파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코를 파내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코 파기 방법은? 효율적인 코 파기 방법이 있긴 있나? 코 파기가 교양적인가? 비교양적이며 지저분할 뿐인가? 코 파기는 콧구멍을 확실히 커지게 하는 일등공신? 정말, 코 파기와 코딱지로 책 한권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
이 호기심들은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배꼽 잡으면서, 끝내는 목이 쉰듯하고 눈물까지 눈 끝에 묻혀가기를 되풀이 하면서 속 시원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은근히 신경 쓰이는 코딱지를 빼내지 못하고 전전긍긍 답답해 하다가 순식간에 해결한 그 시원함이랄까?
책을 쓴 사람은 코딱지와 코 파기의 전문가 '롤랜드 플리켓'. 그는 손가락 하나로 누릴 수 있는 즐거운 해방감인 코 파기의 역사부터 들려준다. 6천 년 전 이집트 소년 왕 '투탕카멘'의 미라에서 발견된 아주 작은 코딱지 하나부터 추적해 나가는 지난 역사속의 코 파기의 기록들을 따라 가다보면 '장미전쟁-코딱지의 귀환'을 만나게 된다. 전혀 뜻밖의 세계사다.
장미전쟁까지 일으킨 코딱지의 발견?
1066년에 일어난 헤이스팅스전투(Battle of Hastings)가 문제라면 문제다. 이 전투가 일어나기 전, 상습적으로 코 파기를 즐기던 '헤럴드 왕'은 통치기간 중 웨섹스(Wessex)와 머시아(Mercia)지방에 코 파기 관습을 널리 퍼뜨린다. 덕분에 사람들은 코 파기가 지저분하거나 체면을 구긴다고 생각하지 않고 맘껏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코를 파다가 죽고 만다. 헤이스팅스전투를 지휘하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신경 쓰이는 코딱지를 해결하는 그 순간에 노르만디 궁수가 날린 화살에 급소를 맞고 만 것이다(바이외 태피스트리에 이 비운의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져 전한다고).
헤럴드왕의 죽음 덕분에 통치자가 된 '윌리엄 왕'은 공공장소에서의 코 파기를 금지하는 '코 파기 법령'을 내린다. 아울러 전투태세를 갖춘 병사들이 아예 코 파기 생각을 못하도록 쇠장갑을 개발하여 착용시키는 한편, 이 법을 어기는 자들을 사형하게 된다. 이런 억압적인 방법으로 이후 650년 동안 이 법령은 철저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200여 년 전부터 공을 세운 귀족들이 그 대가로 파티 같은 공공장소에서의 코 파기를 허용해달라고 요구해오고 있었고, 왕들은 어떻게든 요구를 묵살하고 있었다. 그러나 '존 왕'의 통치중인 1215년에 이 법령은 결국 폐지된다. 존 왕은 일정 규칙을 세워 귀족들의 권리를 인정해주었는데, 무엇보다도 존 왕 자신이 코 파기 마니아였다.
그러나 귀족들에게만 주어진 혜택일 뿐. 평민들은 이후 170년 동안 공공장소에서의 코 파기 자유를 얻지 못한다. 때문에 코 파기의 자유를 얻으려는 평민들의 목소리는 지방 곳곳에서 툭툭 불거진다. 하지만 힘없는 평민들의 권리주장은 번번이 무시당할 뿐. 급기야 1381년에 폭동으로 이어지고 '리처드 2'세의 명령으로 주모자 2명이 사형, 잠시 잠잠해진다.
그로부터 80여년이 지나 이 문제는 다시 도마 위에 오르면서 심한 정치적 갈등을 겪게 되는데 이때 코 파기를 반대하는 입장의 보수적인 사람들은 코 위에 하얀 덮개를, 공공장소에서의 코 파기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빨간 덮개를 코에 씌우고 20여년에 걸친 오랜 논쟁을 벌인다. '장미의 전쟁-코딱지의 귀환'에 대한 기록이다.
코 파기의 즐거움, 보다 떳떳하게! 보다 현명하게!
-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전 세계 편집자들을 뒤집어지게 한 바로 그 책!( 뒤표지에서) - 코 파기의 역사는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인기 있는 취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코 파기에 대한 책이 극히 적다는 사실은 놀랄만하다.(머리말) - 이 책은 코 파기의 즐거움, 그리고 유쾌함을 말해주고 있다. 작은걸 기대하고 들어 간 손가락에 생각 외로 큰 것이 걸렸을 때와 같은 통쾌함! 당신에게 코가 있다면 정독하고 따라해 볼 것을 권한다. 코가 있다면!(디시 인사이드 대표 김유식)
공공장소에서의 코 파기의 자유를 쟁취한 장미전쟁에 대한 이야기 다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세계 각국의 코 파기의 역사. 손가락 하나로 즐기는 자유지만 각 나라의 역사적 배경이나 관습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음이 흥미롭다.
코 파기, 코딱지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나? 싶을 만큼 코 파기 이야기들은 다양하게 펼쳐진다. 저자에 의하면 코 파기에도 규칙이 있고 효율적인 방법이 분명히 있다. 콧구멍이 커지지 않으면서 교양 있고 우아하게, 그리고 시원하게 빼내는 그런 방법 말이다.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코 파기에 대한 현명하고(?) 적절한 방법들은 유용할 듯하다. 직업에 따라 코 파기 횟수가 달라지고 별자리에 따라 코 파기나 코딱지에 대한 인식이 다른 만큼 역사 속 중요한 인물들 또한 저마다 습성이 다를 터. 저자가 한국인이었다면 '띠'에 따라 연구했을지도 모르겠다.
참, 사람들의 코의 형태는 24가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보편적인 방법은 11가지. 11가지 코 파기 기술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고집하는 것은 전통적인 풍차 돌리기. 설문에 의하면 자그마치 67%를 차지한다.
저자는 조언한다. "1973년에 '코딱지 빨리 파기대회'에서 죽은 사람도 있다. 경우에 따라 위험한 코 파기도 있다. 연주를 하거나 접착제를 만지는 동안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코 파기를 시도하지 마라.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 현명하게 즐기라"고.
오늘 날까지 전해지는 코 파기 노래모음이나 악보. 코 파기 관련 용어도 진지하다. <코 파기의 즐거움>은 코딱지와 코 파기가 주제. 언뜻 허무맹랑한 우스개 같은 이 이야기들은 너무 진지했다. 때로는 촌철살인까지 느껴지면서. 때문에 믿어야 할지 웃고 말아야 할지 수도 없이 망설이고 손끝까지 웃음기가 가득 배어 끝내 밑줄한줄 긋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코 파기는 전 인류, 전 세대가 가장 평등하고 빈번하게 즐겼을 법한 유쾌한 취미(지은이에 따르면, 책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코 파기 취미가들에 의하면)같다. 그것도 코와 손가락이 발생했을 때부터 시작된. 나는 왜 한 번도 코 파기의 역사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까? 왜 한 번도 심각하게 고민해 본적이 없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