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
임락경 지음 / 삼인 / 200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이야기 어떠실지 모르겠는데. 십수 년 전에나 유신 시절에는 세상에 나올 엄두조차 못 먹었을 그런 내용들 아닐까요. 말하자면 빨갱이로 몰리거나, 죽어도 열두 번은 죽다 살아났을 그런 이야기들 아닐까..."

"그렇지요. 그나마 지금처럼 언론이 이만큼이라도 자유로워졌으니 감히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요.'풍경소리'라는 곳에 몇 년간 기고했던 글인데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가에 따라 책으로 낼 수 있다 없다'라고 우리들은 말하기도 했습니다."
- 저자와의 짧은 전화 인터뷰 중에서

<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은 제목만으로는 낭만과 아련한 향수의 노래들 같다. 지난 날 많은 사람들에게 불려졌던 노래들을 추억하며 쓴 글이지 싶었다. 전원에 묻혀 사는 사람이 옛날을 추억하는 노래들이려니... 그러나 그 예상은 단단히 빗나갔다.

어떤 노래들일까. 목록을 더듬어 보며 '이건 잘못 선택한 거야'라며 후회했다. 그러나 머릿글부터 급격하게 빠져 들고 있었다.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 '이런 소재로 이렇게 훌륭한 책이 될 수 있구나!' '혹시라도 누가 몇 권을 슬쩍 들고 갈지 모르니까 이 책만큼은 나만 아는 곳에 미리 숨겨 두어야겠구나!'라면서 책과 그 책을 쓴 임락경을 만나게 됐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결코 뱃속이 편하지 않다.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면 불편할 사람이 많을 듯하다. 말로만 '애국 하네' '환경보호네' '우리 모두 더불어 잘살아 보세'라고 떠벌리며 사는 사람들이 우선 그 축에 들겠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된 역사 인식과 시대적 오류로 졸지에 위인의 반열에 든 사람들이 살아온 날을 더 이상 자부하지 못하리라. 그뿐인가! 그 후손들은 응당 부끄러워하며 역사바로잡기에 더 앞장서야 할 것이다.

<권불십년> 편에 '이박사찬가'와 '이 대통령 찬가'가 있다. 영웅 대통령에게 빌붙어서 앞날이 창창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찬가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이다. 민심이야 굶주리든 말든 영웅 대통령 생일상 앞에서 굽실거리며 또 칭송하여 불렀다. 이런 세태를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1. 왔네 왔네 해방 왔네 망명 갔던 이 박사가 일제탄압 물리치고 조국 광복 이룩코져 중국 미국 건너가서 해방 싣고 돌아 왔네 얼씨구 좋다 지화자 좋다- <이박사찬가>

1956년도에 어떤 충(忠) 무엇(犬)이 지어 국민 학교에 보급한 노래다. 노래를 가르치신 선생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좀 어색해 하면서 맘에 없는 것 같으면서 위엄 있게, 이박사의 노래가 아니고 찬가(讚歌)라는 대목을 강조하면서 가르치셨다. 4.19혁명이 지나도록 전국에 보급되었다. 여학생들은 고무줄놀이하면서 부르고... 스스로 없어져 아쉬운 마음도 있고, 역사는 역사라서 적어본다.

- '이박사 찬가에 대하여'

2. 우리나라 대한 나라 독립을 위해 일생을 한결같이 몸 바쳐 오신 고마우신 이 대통령 우리 대통령 그 이름 길이길이 빛내오리다 - <이 대통령찬가>

사방의 날 1960년 3월 15일, 이른바 3.15 부정선거 기념일이다. 역시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로 기억된다... 그러다가 휴일로 정해야 되겠기에 1956년경으로 생각되는데, 갑자기 3월 15일을 사방의 날이라 정하고 정식 공휴일로 정했다... 여학생들은 생일상 앞에서 대통령찬가를 불러야 했다. 대통령이 지방 어느 도시로 행차하시거나 무슨 기념일 때나 행사때 나타나시면 여고생들은 이 노래를 불러야 했다. 오래 가지는 않고 2~3년 부르다 4.19 때 없어진 노래인지라 기억하는 이가 없어, 그 이름 길이길이 빛내고자 이렇게 적는다. 어느 충견이 지으셨는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어 나가는 동안 자칭 '촌놈 임락경'의 이야기가 어떤 애국자의 말보다 곧으며 떳떳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침없는 말과 자유분방한 이야기는 진솔하고 호소력이 있었으며 더 아프게 다가왔다.

누가 이미 묻혀 버린 아프고 치욕스러운 노래들을 채록하길 원할 것이며, 앞날을 살아가는 희망의 씨앗으로 다시 심을 수 있으랴. 그것도 뼈 있는 일침으로 말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노래들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대부분 낯선 곡들이다. 하지만 지금도 노래방에서 더러 불려지는 <댄서의 순정>이나 비교적 많이 알려진 <단장의 미아리 고개> 같은 노래들도 있다. 또한 농촌에서 계몽적인 운동에 자주 불렸거나 군대에서 자주 불려졌던 노래들도 하나의 주제로 묶어 들려 준다.

어린 시절 언니가 불러 자연스레 알게 됐던 <달 따러 가자> <뚝딱 뚝딱 해는 저문다> 같은 노래도 있다.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부르는 <새 나라의 어린이> 같은 노래도 있다.

잊혀지다가 저자에 의해 기록되고 있는 노래들은 아픈 세대들의 귓전에 쟁쟁하던 곡들이 많다. 이런 저런 금지도 많고 계몽도 많았던 그때 그 시절에 많이 불려졌던 곡들이며, 어쨌든 불러야만 했던 곡들이다. 설움 대신 부르던 노래들이었고 부끄럽게 불러야 했던 노래들이었다.

노래마다 담겨 있는 사연들은 왜 그리 아픈지 모르겠다. 민초라는 이름이 왜 그렇게 억울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또 왜 그리 많은지... 거침없이 들려 주는 노래 이야기들을 따라 우리가 살아 온 부끄럽고 아픈 역사를 다시 읽는다. 민초들의 사회사를 다시 읽는다.

'해방가'로 시작하여 '수정가'로 끝나는 72편의 노래들을 이제 새삼 모두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도 가물가물한 노래들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이제 새삼 다시 부른다고 억울한 맺힘이 치유될 턱도 없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젠 이쯤에서 한 번 알았으면 하는 노래 그 이상의 이야기들이다.

야사(野史). 야사만의 걸죽한 분위기나 화통한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썩 만족할 수 있을 법하다. 이 한 권으로 야사적인 특별하고 남다른 그 맛을 흠벅 맛보았다고나 할까.

이 한 편의 글로 이 책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린다는 것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예로 든 것처럼 정치적인 목적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남편을 전선에 보낸 아내의 이야기나 험한 세상 살아내야 하는 여인의 이야기 등 서러운 이야기들이 더 많다. 그야말로 대부분 '민'자 돌림들의 설움에 지친 눈빛의 노래들이다.

▲ 양봉을 해서 철따라 꿀을 딴다. 이곳은 추워서 벌들이 겨울나기가 힘들다(책 속 사진 설명).
ⓒ2005 삼인

강의가 끝나고 대학 1학년 학생이 첫 질문에 선생님은 왜 눈이 작으냐고 묻는다. 내 답변은 이랬다.

"눈이 작으니까 눈꺼풀 열고 닫는 데 기력이 적게 소모되고, 눈알 굴리는 데 윤활유가 적게 먹고, 먼지나 티가 적게 들어가고, 눈병이 나면 안약을 다른 사람 두 방울 넣을 때 한 방울만 넣어도 되고, 총 쏠 때 한 눈 안 감아도 되고, 세상 구경 다하고 죽으려면 남보다 배는 오래 살 수 있다."


▲ 지금까지 즐겁게 살았으나 앞으로는 기쁘게 살고 싶다(책 속 사진 설명).
ⓒ2005 삼인

책을 읽어나가는 중간에 저자가 참 궁금했다. 그야말로 꼭 인터뷰하고 싶은 마음에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궁금한 것 우선 몇 가지를 물어 보았다. 좀 더 나은 날 인터뷰를 하자는 약속도 잡으면서... 책을 모두 읽고 나니 뒷부분 <인생가>와 <설움에 지쳤던 눈빛이 보여요> 편에 좀 더 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 모두 72편인데, 전 잘 모르는 노래들이지만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노래 이상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책도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요. 앞으로 계획은 없으신가요?
저자: "원래 계획 잡았던 곡 중에서 8곡을 덜어냈습니다. 책이 너무 두꺼워져서요. 두 번째도 앞으로는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책도 보는 사람이 있긴 있군요."

- 일반적인 노래에 대한 비슷한 책들은 좀 있었지만, 전 이런 노래, 이런 내용의 책은 처음입니다. 노래들마다 덧붙여 들려 주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의 역사, 민초들의 설움을 많이 보았습니다. 가장 알리고 곡은 어떤 곡인지요.
저자: "첫 번째 <달 따러 가자>에 보면 '이 세상 어딘가엔'이 있지요? 그 곡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제가 늘 이상으로 두고 있는 것들을 담고 있는 노래지요. 그 곡을 가장 앞세우고 싶습니다."

- 책에 보면 사회 전반에 대한 올곧은 이야기, 사회공동체 간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나 역사적 주체성의 글들이 많은데 그래도 아쉽거나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저자: "제가 하고 있는 일이 환경 생태계에 관한 것들인데 생각보다 많이 담아내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 책의 첫 곡이자 머릿글로 앞세우는 곡은 '해방가'이고 마무리 글과 마지막 곡은 '수정가'다. 역사는 역사라서,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록했다고 한다. 그 기록의 글들의 빛깔은 가닥가닥 아프고 서럽기 이를 데 없지만 저자가 바라는 것은 이 사회에 대한 희망이다.

또 아픈 시대를 살아 낸 우리 민족의 저력을 말하고 싶어한다. 말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불우한 사람들과 제대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책은 물론 저자와의 짧은 인터뷰는 두고 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 우리 집은 우리 식구들이 손수 짓는다(책 속 사진 설명).
ⓒ2005 삼인

저자 임락경은 스스로 '국민학교만 나왔지만 대학 나온 사람들과 토론해 보는 것이 소원'이라 하는데 현재 상지대학교 초빙교수로 그 소원 하나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틈틈이 글을 쓰면서 강연도 다닌다. 지난날 간첩이나 간첩 비슷한 걸로 지목되어 자주 고문도 받았으며 늘 감시의 인물에 속하기도 했다.

거주 지역에서 환경에 대한 여러 가지 감투와 함께 농사일이나 아픈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을 알리는 일을 더 좋아하는 목사 임락경은 정신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안식처에서 그들을 위해 일하며 그들 서른 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 커피와 다방의 사회사, 인사 갈마들 총서 1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오두진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커피 한 잔 드릴까요?"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는 커피와 다방이 우리 사회에서 진화해 온 과정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간 우리가 흔히 볼 수 없었던 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비교적 자세하고 쉽게 커피를 둘러싼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는 데 이 책의 의미가 있다 하겠다.

우리 나라는 커피콩 한 알 나지 않는데도 세계에서 커피를 많이 마시는 나라의 그룹에 든다. 또한 커피 소비국 13위며, 우리의 커피냉동건조기술은 기술개발국가인 미국보다 우수한 것으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저자가 표현하는 것처럼 '기형적인 인스턴트커피 발전국가'로 연간 8만 톤의 원두를 수입하며, 이중 90~95%는 인스턴트커피로 가공된다고 한다.

많은 소비와 함께 놀라운 가공기술은 그만큼 커피가 우리 생활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는 중요한 증거다. 기호품이면서 '국민음료'로 등극한 이 커피는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의 기분에, 커뮤니티에 깊숙이 관여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도 손님에게 선뜻 말한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우리에게 커피는 무엇이며,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

이 책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사회 전반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 혹은 앞으로 더 알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커피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커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숨겨진 우리 근대사를 풍성하게 접할 수 있다. 커피를 둘러싼 이야기가 이렇게 많았나 싶을 만큼 흥미롭다.

커피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1890년대 들어왔으며, 고종은 커피마니아, 말하자면 커피 중독자였다. 은둔의 나라에 커피는 개명국의 상징으로 들어와 사랑받기 시작하여 한때 '찬사'의 대상이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민간에서 커피는 보약의 개념인 양탕국으로 불려졌고, 힘들게 구한 커피를 가마솥에 끓여 잔치를 벌였을까.

'커피'와 '다방'은 암울한 일제시대에 최고 엘리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었고 슬픈 보헤미안들의 울분이기도 했다. 다방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예술인들이었다. 시인 이상은 다방 이름으로 종로경찰서를 조롱하기까지 하였다고 이 책은 쓰고 있다.

커피는 우리 나라 역사와 함께 여러 가지 모습으로 꾸준히 진화를 되풀이하면서 우리 삶에 배어들었다. 미군 주둔은 그 귀했던 커피가 민간인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서는 계기가 되기도.

박정희가 주도하는 5·16 군사정권은 각종 '금지'를 만들었는데 커피도 망국의 범인으로 지목돼 금지의 대상이 되었다. 아울러 이 책은 커피와 관련한 수많은 사회, 역사적 자취를 자세하면서도 쉽게 적어 나가고 있다.

책 내용을 바탕으로 위 사진을 설명하면, 커피와 함께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해 온 다방에 1970년대부터 뛰어난 미모의 얼굴마담이 생겼다. 이 얼굴마담의 미모와 역할에 따라 다방 매출이 큰 차이가 나서 다방 업주들은 이 얼굴마담 유치에 혈안이 될 정도였다. 1970년대는 다방이 발전한 시기여서 음악다방과 DJ가 생겨나기도 했으며 젊은 청춘들이 다방으로 급속히 몰려들었다. 음악다방과 DJ 출현은 우리 나라 대중음악사에도 깊숙한 관여를 하였다.

1984년 처음으로 안성기가 커피 광고에 출현하였다. 어떤 이미지, 어떤 분위기의 모델이 광고를 하는가에 따라 커피 브랜드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또한 어떤 모델이 광고를 하는가에 따라 커피 매출이 크게 달라졌다. 지금도 커피 회사마다 각각 내세우는 독자적인 분위기의 커피 광고를 유지하고 있다.

"커피 한 잔을 시켜두고 그대 오기를 기다려 봐도…"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이라는 노래는 젊은층의 커피문화를 대변하며, 단순한 커피 한 잔이 아니라 우리 나라 커피 역사의 한 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커피를 소재로 하는 노래는 많이 불려지고 있으며, 또한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을 커피 향기가 물씬 풍기는 노래로 자주 표현하고 있다.

1976년에 등장한 커피믹스. 다방커피에 익숙해진 한국인의 기호를 고려해 커피의 크림과 설탕을 적절히 배합해 내놓은 이 제품은 더운 물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간편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하며 커피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 손님이 오면 접대하려고 한 봉지 45원 하는 '커피믹스'를 한두 개 사들고 가던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고, 당시 한 봉지의 커피믹스는 70년대의 인정을 함축했다.

인정의 다른 편엔 낭만이 있었다. 77년 장계현이 부른 <나의 20년>에서 "커피를 알았고 낭만을 찾던 20살 시절에 나는 사랑 했네"라고 묘사되었듯이, 커피는 낭만의 상징이었다. - 제4장 <찻집의 고독>에서 '맥스웰 하우스 커피'로 -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로 이미지 광고에 성공한 캔커피는 91년 국내에 선보였다. 맥스웰 하우스의 캔커피는 다른 업체들까지 경쟁업체로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으며 휴대가 간편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는 시점이 되기도 하였다. 캔커피의 고급화, 컵커피, 병커피의 제품과 아울러 요즘에는 원유를 혼합한 고급제품이 많이 판매되고 있다.

자판기의 커피를 우리들은 '길다방 커피'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판기의 보급으로 커피는 더 깊숙이 일반인들에게 스며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자판기의 무분멸한 설치 보급은 중, 고등학생들을 커피 중독에 빠져들게도 하였다. 또한 이 과정에서 커피자판기 설치와 관련하여 일부 학교에서는 비리까지 생겨나 결국 학교에서 자판기가 모두 철거되는 일도 있었다.

커피 자판기 보급으로 커피가 서민에게 급속도로 보편화되면서, 처음에는 예술인들의 중요 터전이었고 이후 실직자와 사기꾼으로 북적이는 등 커피와 함께 성장해온 다방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한동안 티켓다방으로 사회의 문제점이 되기도 했지만, 일부는 젊은 취향에 맞추어 '커피전문점'으로 변하면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수용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후 스타벅스 같은 커피전문점이 세계에 급속히 번지면서 국내에도 상륙하여 번성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으레 스타벅스 같은 커피전문점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현상을 우려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커피와 관련한 80년대 이전의 일화를 자세히 다루는 대신, 최근에 커피를 둘러싸고 사회의 문제가 되었던 것들은 거의 말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이 책은 327개의 각주(책 페이지 내용 하단부에 곁들여 덧붙이는 설명이나 자료)를 성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사실 커피의 역사를 이 한 권의 책으로 모두 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일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1970년대 이전의 이야기는 높은 비중을 싣는 데 비해 2000년 이후의 커피 역사는 잠깐 다룰 뿐이다. 아래 덧붙인 각주를 통하여 더 알아 볼 수도 있다.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나가는 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지난 날 커피 역사까지 새삼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나라 어른들 중에서 커피와 관련한 추억 하나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또한 그 어떤 것보다 '커피 한 잔'에 대해서는 누구나 추억할 수 있으며 "커피란…이다"라고 정의도 쉽게 내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카카듀'? 해장커피, 톱밥커피는 무엇이고 꽁초커피는 무엇일까? 법정으로 간 커피자판기가 있었다는데? 화랑다방, 음악다방, 심야다방, 노땅다방, 음란다방의 차이점…. 누구나 목록만 펼쳐 들고서도 궁금할 내용들이 많다. 저자의 말처럼 커피 한 잔 마시며 읽고 말기에는 너무 많은 자료들이고, 좀 더 많은 커피이야기를 만나러 가는 길목 역할을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5-09-03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는 일보다 리뷰 읽는 일이 더 좋은 경우가 해당됩니다.^^

서연사랑 2005-09-0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다닐때 총학 출범식날은 학교 자판기 커피가 50원이었죠(평소에는 100원이다가)^^. 그 때 그 자판기 커피는 왜 그리 맛있던지.... 커피 이야기, 너무 재미있겠어요. 추천!

panda78 2005-09-04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리뷰입니다. 안 그래도 보관함에 넣어두고 있었는데 당장 사야겠네요. ^^
 
게으른 산책자의 변명
김병익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바빠 죽겠다'에 내리는 처방, '잠시 한걸음 멈추고...'

정작 무엇에 그리 바쁜지도 모르면서 "바빠 죽겠다"가 입에 붙었었다. 가게서 집으로 오고 가며 '가게일 틈틈이 아이들', '집안일 틈틈이 가게일'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며 어린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안 바쁘면 그게 더 이상할 거야. 그런데 일을 가진 엄마들이 많은 것처럼 가게와 집만 오고 가면 그냥 바쁘고 말텐데 스스로 저것이 궁금하고, 이것도 하고 싶은 촉수 높은 호기심이 문제다.

'느릿느릿 달팽이'를 들여다보면 느린 자신에 비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세상에 대한 촉수를 자주 내민다. 바라보고 있다가 장난기가 발동하여 '툭~!' 손으로 건드리면 재빨리 접어 넣는 순간 다시 촉수를 내민다. 달팽이의 촉수에서 나의 호기심, 스스로 조급해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내 스스로 바쁜 걸 만들고 자처하고 정신없이 살아내며 '바빠 죽겠다'인 것이지 그 바쁜 만큼 이룸이 많거나 작은 이룸 하나 내세울 것 없는 것이다.

나는 매일, 매순간 무엇에 그리 바쁜가. 어느 날 누가 나에게 나로서는 섭섭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섭섭하다고 말하며 돌아서고 보니 그 사람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탓할 것이었다. 남들에게 이름 한 번 더 남기자고 바쁘게 움직이는 한동안 스스로의 마음 속 이야기는 방치되어 있었다. 무엇에 그리 들떠 있었던지, 스스로 자책하며 돌아보는 지난날은 씁쓸하다. 그러나 덕분에 바쁘게 내달리던 생활에 쉼표 하나 잠시 찍어 본다.

'바빠 죽겠다'와, 잠시라도 손에서 책이나 일을 놓으면 퇴보하는 것처럼 조급해지기 일쑤인 자신에게 잠시 쉬어 볼 것을 처방하는 마음으로 선택하여 읽은 것이 김병익 산문집 <게으른 산책자의 변명>이다.

호흡이 다소 느리다. 느린 호흡으로 바라보니 나의 호흡은 그간 너무 숨 가쁘고 거칠었으며 가다듬을 틈조차 없어 걸러지지도 않기 예사로 하였다는 것을 본다. 남을 탓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늘 자신에게 있다.

느린 호흡, 김병익 산문집은 편안한 글들이다

<게으른 산책자의 변명>은 젊은 날에 한 출판사를 이끌며, 혹은 글을 쓰며 열심히 살아낸 한 언론인의 산문집으로 휴일 날, '아점(늦은 아침과 이른 점심)'을 먹고 커피까지 한잔 타들고 펼쳐들어 읽기 시작하였는데, 이 책은 나처럼 매사에 조급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한가로운 휴일에 읽으면 바쁘다는 변명으로 잊고 살았던 것들을 제대로 돌아보게 하는 책이란 생각이다.

저자 '김병익'은 1975년 도서출판 '문학과 지성사'를 창간하여 수많은 책을 만들어 내는데 젊은 날을 바쳤다. 2000년에 25년 넘게 열정을 바치던 출판사(문학과 지성사)의 대표자리를 후배에게 넘겨주고 이젠 은퇴자로서, 이미 젊은 날을 열정으로 살아 온 사람으로 다시 새로운 삶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나 지난날을 돌아보는 글들이 이 <게으른 산책자의 변명>의 글들이다. 문학과 지성사의 책들을 통하여 많은 것을 얻은 독자들이라면 그 책들을 만들어 낸 사람이 지난날을 돌아보는 글들을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은퇴 후, <동서문학>과 <동아일보>에 '김병익 칼럼'이란 제목으로 연재했던 가벼운 에세이들이나 미발표의 글 몇 편을 묶었다. 동아일보를 통하여 이미 읽었던 글들도 보이지만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다시 만나는 느낌이나 반가움은 또 다르다. 이제는 바쁘게 달리는 것에서 스스로 물러나 가볍게 산책하면서 삶을 돌아보고 깊이 있는 삶에 한 발 딛게 하는 그런 글들이다. 자~ 바쁨을 잠시 접고 느리게, 느리게 머물러 보자.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첫 번째 장 <길들이기>의 글들은 삼십여 년간 머물던 연신내 땅집(저자 스스로 개인 주택을 이렇게 말함)에서 얼떨결에 일산 신도시 복합 주상아파트로 이사하는 과정을 적은 '헌 것 버리기'부터 시작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사 이야기지만 이 글을 통하여 저자의 삶과, 일을 놓고 난 후 새로운 삶에 적응해가는 마음가짐이나 과정을 볼 수 있다. 휴일에 세수 안하고 얼마든 뒹굴어도 마음 편안한 것처럼 편안한 글들이다.

이사를 가기 위해 헌것을 버린다. 누구에게 소용되는 것이 있으면 넘겨주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린다. 버리기, 남에게 아낌없이 주기, 하나씩 개별적으로 넘겨주는가 하면 수백 권의 책을 한꺼번에 실어 대학 도서관에 기증한다. 그러면서 저자가 얻는 것은 이제는 젊음을 보냈지만 정년의 나이에 다시 새로운 삶에 스스로를 길들여 살아가는 것이다. 살 집을 옮기면서 몸도 새로운 도시로 가지만 글들에서, 일에서 물러난 노년의 삶, 그 새로운 길에 대한 심정을 읽는다.

젊은 날 달리는 차 안에서마저 바쁘고 달려가기에 조급해야 했다면 이제는 한가로이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작은 깨달음을 구한다. 바쁘게 달리면서 못 보았던 것들이 이젠 비로소 보인다. 그래서 고리를 물고 다시 이어지는 글들은 '물러나있음을 누리기', '느리게 살기', '자전거타기', '디지털 익히기', '사람-읽기의 즐거움' 등 아홉 편의 신변잡기적인 글들은 글쓴이를 솔직하고 가깝게 느껴지게 한다.

두 번째 장의 글들은 타인들, 혹은 다른 존재들과 그 소통을 위한 길트기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리하여 저자가 이 땅의 지식인으로서 바라보고 판단하는 냉철한 비판의 글도 많이 보인다. 소득의 불균형과 격차가 날로 심해지는 지금 이 사회를 저자는 타인에 대한 정상적인 소통 대신 자신의 입장과 이익만 앞세우다 보니, 혹은 자신을 보호하는 방편으로 타인을 향하여 문을 닫아버린 '자폐증'적인 병으로 간주하여 이렇게 말한다.

"나의 이익만 눈앞의 목표로 설정되어 있지 너와 내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이익, 너와 나를 뛰어 넘는 공동체적 이익에 대한 고려는 거의 하지 않고 있기에 오늘의 우리가 이처럼 혼란스럽고, 토머스 홉스의 말처럼 만인이 만인에 대해 이리가 되는 상태에 빠졌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집단과 집단, 지역과 지역, 세대와 세대, 너와 나 사이에는 처지와 생각을 바꾸어 배려하는 '역지사지'의 사유법이 개입되지 않고 있다."-<'우왕좌왕'에서 '역지사지'로> 중에서

세 번째 주제 글들은 문단에서, 혹은 책을 만드는 출판인으로서 오래 머무는 동안 인정과 지성을 나누었던 사람들과의 이야기인데 같은 출판인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도서출판 범우사' 윤형두 사장에 대한 글이나 예술적인 책의 기준, 그 잣대를 읽을 수 있다. 하루하루 조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잠시 쉬어가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이 책과, 이 책의 저자를 우선 만나 볼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의 글이 본문에 나온다.

"낚시꾼인 소설가 홍성원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며 생각을 하고 정리를 한다는 말을 부인하면서, 사실은 찌만 바라보며 물고기와 씨름을 하는 데 신경을 쓰기 때문에 머리가 텅 비고 생각들을 지우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내가 느리게 걷는 산보를 해보고서야 그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릿속의 이런저런 것들을 비워내고 내면을 맑게 청소하는 일이 사실은 끊임없이 반추하고 뒤집고 다시 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글을 써야 할 때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정하게 되는 대부분의 기회를 바로 이런 게으른 산책길에서 얻어내곤 했었다"-본문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 다밋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병원이나 제약회사는 공급자, 우리들은 다만 그 수요자일 뿐

"나는 '윌'을 먹는다. 헬리코박터를 없앤다는 요구르트 음료 말이다. '윌'을 먹는 이유는 내 친구인 홍혜걸이 텔레비전에 나와 먹으라고 권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그 음료가 악의 온상인 헬리코박터를 없애주기 때문이다. 그런 특수한 기능이 있으니 '윌'의 가격은 내가 좋아하는 바나나 우유보다 1천원 더 비싸다. …사실 내가 학교 다닐 무렵만 해도 헬리코박터가 나쁜 균이라는 얘기는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1994년, 헬리코박터는 위염과 위궤양, 심지어 위암까지 일으키는 나쁜 균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 거다.

우리나라 인구의 54.3%가 헬리코박터에게 감염되어있는데, 왜 극히 일부에게서만 위암이 발생하는 걸까?…" -'헬리코박터가 유죄인가' 중에서


또한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헬리코박터를 가지고 있고,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80~85%가 헬리코박터 보균자임에도 위암 발병률은 우리나라의 100분의 1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교수나 의사들은 위암의 주범으로 헬리코박터를 몰아붙인다. 사회에 떠도는 것처럼 정말 헬리코박터가 위암의 주범일까? 헬리코박터를 물리치는 것만이 위암으로부터 안전한 것일까?

비단 헬리코박터뿐이랴. 이 책으로 만나는 이야기들은 지나치게 건강에 민감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제약회사가 건강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고, 이런 걸 잘 알면서도 의사들이 묵인하거나 협력하는 실정을 저자는 근거 있는 자료 제시와 함께 낱낱이 들려준다. 솔직하고 시원하여 통쾌하지만 한편으로 제약회사의 이익에 좌지우지되는 소비자로서 환자라는 사실에 씁쓸해지기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세이의 법칙'을 적용하여 들려주는 이야기는 의사와 제약회사는 다른 직종처럼 이익을 먼저 앞세우는 공급자에 불과하고, 병원에 가든 약국에서 약을 사먹든 우리들은 소비자에 불과하다는 걸 씁쓸하게 받아 들여야 하는 좋은 예이다. 의사들이 제시하는 콜레스테롤이나 당뇨수치는 과연 절대적인 수치인가. 진실로 환자들을 염려한 양심적인 수치인가.

콜레스테롤이든, 당뇨든 정상수치라고 제시하는 수치에 10%만 더하거나 빼내면 조금 전까지 정상수치에 있던 사람들 중 몇 퍼센트는 고혈압 위험환자가 되고 당뇨위험수치에 들게 된다. 이걸 이용하여 제약회사는 어마어마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으며 이때 의사나 제약회사의 주요 고객인 우리들은 소비자에 불과하고 속된말로 '봉'인 것이다. 진실에 대하여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오래 보면 눈이 나빠진다는 게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보편적인 믿음과 어긋난다고 해서 꼭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병에는 귀천이 없다? 정말 그럴까?"

변비, 설사, 대머리, 치질….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쉽게 경험하는 것이면서 쉽게 드러내놓고 말하기 꺼리는 것들을 두 번째 장에서 말하고 있다. 이런 질환들은 우선 당장 생명을 위협하지 않지만, 그냥 방치하면 건강한 생활을 방해한다. 당연히 전문의에게 치료를 받아 삶의 질을 높여야 하는데 의사들이 먼저 전공을 꺼린다. 점잖지 못하다는 이유로. 그리하여 선뜻 치료하지 못하여 음지의 질환이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위와 간의 병에 대해서는 첨단과학을 이용한 치료법이 속속 등장하지만, 변비의 치료법은 예나 지금이나 '섬유질이 많은 음식'이고, 치질의 치료는 '뜨뜻한 물에 엉덩이를 담그는' 게 고작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음지의 질환을 천시하는 풍토, 과연 이대로 좋은가.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병에 귀천이 없는 건강사회를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었다."

이 음지의 질환에 대하여 일반인들이 누구나 쉽게 고민을 해결하고 떳떳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배려해주는 글들이 두 번째 장에 해당한다. 특히 많은 아이들이 누구나 당연히 거치는 '틱(Tic)'에 대한 의사들의 횡포를 들려주는가 하면, 변비에 관한 이야기 중에 변비를 줄이기 위한 변기형태에 대한 새로운 제안이나, 공중 화장실 사용시간 제한 같은 주장은 다소 엉뚱한 듯 하지만 획기적인 생각이라는 것에 박수를 보냈다.

'탈모 그 슬픔의 대안'에 관한 글은 탈모나 대머리에 대한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많아 특별한 줄긋기를 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탈모의 원인에 샴푸사용은 들어 있지 않다고 한다. 탈모와 관련하여 '유언비어 전쟁'이란 글을 보면 우리가 근거 없이 떠도는 말들에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맹신하여 잘못된 정보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음을 반성하게 한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버릴 내용이 하나도 없다는 게 개인적인 주장이다. 우리 몸의 질병에 대해 가려운 곳을 이렇게 속 시원히 긁어준 책이 언제 있었던가. 그간 우리가 이런 저런 증상에 대해 궁금하여 찾아보는 책들은 어려운 의학용어와 함께 증상과 치료법을 나열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어느 책에서나 볼 수 있는 내용들로서 읽고나도 미심쩍기는 여전하였었다. 그러나 이 책은 솔직하며 시원하다.

세 번째 장 <바른 생활을 하자>의 글들은 몇 번이고 참고하였으면 좋은 것들이다. 우리들에게 가장 많이 적용되면서 사회에서 가장 많은 관심으로 이야기 되지만 실상은 우리가 다소 잘못 알고 있는 것들로서 '건강한 삶'을 위하여 무엇보다 세 번째 장의 이야기들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우리 스스로 몸에 대한 주치의가 되어 건강하고 이성적인 삶을 위해 실천했으면 좋은 것들이다.

도대체 어떤 것들을 다루었기에? 궁금해 할 사람들을 위하여 열거해보면 이렇다.

"▲육식과 채식, 육식은 과연 해로운가 ▲ 암 예방 음식에는 어떤 것들이? ▲오랫동안 감기약으로 써 온 PPA와 광우병 ▲포경수술에 대한 진실, 포경수술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포경수술의 역사, 포경수술 이로운가? ▲최고 정력제는 두엄? 정력에 대한 진실과 정의 ▲콘돔만이 살길이다. 콘돔을 쓰자 ▲제왕절개 선진국 우리나라, 무엇이 문제인가 ▲ 늦게 자라는 아이, 성장클리닉에 가야 하나? ▲ 비타민, 제대로 알자. 비타민 보편적으로 꼭 먹어야 하나.

솔직한 사람이 좋듯 솔직한 책이 좋다

좋은 책의 조건중 하나로 "재미있는 책"을 꼭 말하고 싶다. 특히 이런 전문적인 분야의 내용으로 일반인을 독자로 한 '실용서'라면 깊으면서 실속 있는 정보 못지않게 흥미로워야 하지 않을까. 특히 실용서는 많이 읽는 것이 대수이랴. 한권을 통해서라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 참고삼기위해 밑줄을 많이 긋는 책. 정독을 하면서도 결코 지루하지 않다거나 나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사람처럼 내가 늘 알고 싶었는데 속 시원히 그 정보를 들려주는 책이었으면 더 좋겠다.

시원하고 솔직하여 만남이 유쾌한 사람처럼 속 시원한 책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하여 거듭 확인하였다. 요즘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을 꼭 읽어 볼 것을 권하곤 한다. 이 책은 제목부터 우선 재미있어서 읽어볼 것을 유혹하더니 두고두고 펼쳐보면서 참고삼았으면 좋을 이야기들을 솔직하고 시원하게, 그동안 가려워서 답답하였던 것들을 속 시원히 긁어주고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다른 사람에게까지 서슴지 않고 권하게 만드는 책이다.

하나가 예쁘면 다른 것은 덩달아 예쁘다고 문화적인 상식까지 인용하여 들려주는 것 또한 마음에 쏙 들어서 여간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마음으로 건강한 삶을 위한 훌륭한 주치의 같은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5-09-0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터님의 리뷴, 무슨 보고서 같아요^^

2005-09-06 0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녘 일상의 풍경
안해룡 지음, 리만근 사진 / 현실문화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밀짚모자를 쓴 노인이 꼴망태와 꼴을 메고, 한가로이 시골길을 가고 있다. 저 멀리 야트막한 산이 있고 노인 뒤에는 하얀 염소가 뒤따르고 있다. 벼는 쑥쑥 자라나 푸름을 더하고 있으며 작은 자갈이 구르는 한적한 비포장 도로에 지금이라도 버스 한대가 불쑥 나타나 먼지를 일으키고 달아날 듯 하다. 그럼 노인은 비켜서며 우리 쪽을 향해 설까?

북한의 일상을 담은 이 한 장의 사진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는가.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누군가 붙잡고, 묻고 싶다. 사진집을 펴기 전 이 표지를 보면서 산업, 문명이 덜 발달한 만큼 오염되지 않은 북한의 농촌 들녘을 생각했다. 또 말로만 들었던 친정 아버지의 고향 '함경남도 원산'을 막연히 떠올려 보았다.

▲ <북녘 일상의 풍경>표지 사진 '년로보장'
ⓒ2005 리만근
손가락 떨리는 강한 충격

"그럼 그렇지. 북한도 우리 농촌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칠순 친정 아버지께 실향의 세월은 얼마나 남아 있는 것일까? 하루라도 빨리 통일이 되어, 당신 소원대로 가고 싶을 때 가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인데, 간혹 우리에게 전해지는 탈북자들의 말처럼 죽을 만큼이야 되겠어?..." 이렇듯 막연한 기대감을을 가지고 사진집을 열었다.

<북녘 일상의 풍경>이란 사진집의 표지를 장식한 이 사진의 제목은 '년로보장'이다. 우리말로는 '정년퇴직'에 해당하는 순수 북한용어로 정년퇴직한 노인이 한가로운(?) 북한의 들녘을 걷는 모습이다. 북한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에 대한 호기심에 사진집을 구했지만 우리 농촌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에 다소 실망했다.

그러나 책머리에 밝힌 사진가 '리만근' '안해룡'의 긴 말도 읽지 않고 우선 호기심만으로 설렁설렁 넘겨보다가 손가락이 떨리는 강한 충격을 받았다. 더 할 말이 없었다. 더 느낄 감정조차 없었다. 다만 충격이었다. 사진집 속에 있는 사진들은 더러 보아왔던 우리의 1920년 1930년...동족상잔의 아픔, 그 피난민 시절의 모습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사진 설명을 따라, 혹은 사진마다 한쪽 귀퉁이에 새겨진 날짜는 11 6 '02...그러니까 2002년 11월 6일인가? 우리들의 뜨겁던 월드컵 함성, 붉은 물결. 물질적, 문화적으로 풍요 속에 있던 우리들의 붉은 함성이었다. 그해는.

그러나 우리의 한쪽은 더 모질게 살아내야 하는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쩜 저 노인은 친정 아버지의 어릴 적 동무일지도 모른다.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은 철저한 조직의 감시 속에서 살아 내 긴장되어 있고 자신의 남은 생을 보장해주는, 생명 줄이나 다름없는 염소를 묶은 끈을 바짝 거머쥐고 있다. 이 염소는 자신은 물론 온 가족에게 없으면 안 될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사유재산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 북한에서 최근 몇 년 전부터 염소를 개인재산으로 허용해주고 있다.(염소 외에 몇 가지를 최소한으로) 그리하여 능력이 있는 가정에서는 염소를 사서 키울 수 있으며, 새끼라도 낳는다면 대단한 재산증식이다. 젖을 짜서 식구들에게 먹일 수 있으며,급하게 돈이 필요한 경우에는 장시장에 내다 팔 수도 있다. 염소는 노인에게 그런 존재였다.

한가로움 뒤에 숨어있는 북한 실정 고스란히

다른 사진 한 장, 땔감을 둘러맨 사람이 어미염소 한 마리와 새끼 염소 두 마리를 데리고 집으로 가고 있다. 어미염소는 제 머리보다 크게 퉁퉁 불은 젖을 헝겊으로 꼭 싸매고 있다. 젖몸살이라도 난걸까? 아니, 아니다. 새끼 염소가 빨지 못하도록 꼭 싸맨 것이다. 새끼 염소가 빨아 먹어치우면 가족에게 줄 것이 없다. 염소에게는 매정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람이 살자면. <212페이지 사진, 염소젖싸개>

논 한 귀퉁이에 북한 주민들은 먹을 수 있는 '피'를 심고 거둬들여 식량이 바닥난 겨울에 '피죽'이나 '피 쌀'을 만들고 끓여 목숨을 연명한다. 식량이 부족한 북한 주민들에게 '피'는 버려진 잡초가 아니라 주린 배를 채워 목숨을 연명하는 소중한 곡식이 되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한 뼘의 크기, 잡초 한포기라도 자랄 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나 씨를 뿌린다. <128페이지, 피 수확/110 페이지, 뙈기밭 수수재배>

사진집의 표지 사진을 실제로 보면(A4 용지 크기에 가까움) 사진 한 장에 담고 있는 이야기가 많다. 능선보다는 계단식으로 밭을 개간해 한 톨이라도 더 거두어 들여야 하는 절박함과, 사람만큼 헐벗은 산일망정 귀한 땔감마련을 위해 오르내리는 헐벗은 사람들의 주린 배와 겨울바람 속에 드러난 맨살들이 보인다. 언뜻 한가로운 표지사진은 이런 북한의 실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사진 한장 한장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마음 아프다. 걸러지지 않은 현실 그대로를 고스란히 알려주는 그 모습들을 통해 헐벗은 북한 보통 주민들의 실정을 보며 마음이 한참 아팠다. 할 말은 없지만, 무언가 끝없이 나오려는 말들을 참고 참아야했다. 지나친 나의 감상일까? 감시의 눈을 피하여 한 사진가가 셔터를 눌러 우리에게 비로소 알려지고 있지만, 미처 다 담지 못한 숨은 현실은 또 오죽할까 싶다.

꾸며지지 않은 '북한 민중 다큐멘터리'

이 사진집은 90년 대 말부터 10여 년간 북한에 머물게 된 어느 사진가가 렌즈를 들이 댈 수 없는 상황에서 숨을 죽여 가며 수천 번 눌렀던 셔터, 그중에서 103점을 묶어 낸 것이다. 우리의 서민에 해당하는 북한의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비교적 다양하게 담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들 중 일부에 해당할 것이다. 미처 전해지지 못한 아픔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간 우리에게 알려진 북한의 자료들이 어떤 목적을 두고 제시된 선전용이었거나, 북한이 제시하는 일정 공간, 일정시간에 감시를 받으며 눌러진 셔터라면, 이 사진집 속에 있는 사진들은 발각되는 순간 생명까지 위험한 환경조건에서 조심스럽고 살벌하게 눌러진 셔터들이다. 그런 만큼 북한에서는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 '꾸며지지 않은 북녘 일상의 풍경, '북한의 민중 생활사 다큐멘터리'다.

북한의 민중들, 그 보통 사람들의 현실, 이제까지 어떤 곳에도 공개되지 않은 북한의 현실이 이 사진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혹시 이산이나 실향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세월은 한없이 흘렀건만 가슴 속에서는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고향을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사진집이 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겨울이면 추위에 떨고, 식량이 부족하여 굶주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혹은 그 때보다 더 헐벗은 산천을 보며 눈시울 적실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픈 마음에 차라리 외면하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김없이 우리의 한쪽이다. 우리들 대부분에게 정치보다는 살아가는 것들이 더 절실하듯 이들에게도 먹고 사는 것이 더 절실하다. 어떤 이데올로기를 떠나 우리들의 반쪽으로 우리들이 안아야만 한다.

리만근과 안해룡

▲ 북녘일상의 풍경
ⓒ리만근
리만근은 사진가다. 1990년 대 후반부터 수 년 동안 북한에 머무르면서 사진 촬영할 기회를 얻었다. 북한의 보통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일상을 꼼꼼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또 사진에 담겨 있는 세세한 정보들을 철저하게 확인하면서 메모했다. 그의 사진 작업은 남한 사람들에게 현재의 북한 모습을 정확하게 이해시키기 위한 그의 노력에서 나온 산물이다.(책 앞표지 안에서)

안해룡은 사진가이자 다큐멘터리 작가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재일동포 민족교육 문제에 관한 기록 작업을 10여 년이 넘게 계속해 오고 있다. 그의 작업은 한국과 일본의 잡지, 방송을 통해 소개되었다. 그는 리만근의 사진 작업 속에 담겨진 북한의 모습을 전하기 위해 리만근과 수차례 만나면서 그의 체험과 기록을 정리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책 앞표지 안에서)

이런 사진집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사진집은 그 특성상 일부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끌다 보니 어지간한 소신 없이는 출간이 힘든 현실이다. 게다가 이 사진집에 있는 사진 103점은 그동안 어디에도 공개된 적이 없는 북한 민중들의 모습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진 한 장마다 수많은 이야기가 나올 법 하다.

사진마다 촬영 장소, 촬영 년도, 북한 용어 그대로의 설명이 들어 있다. / 김현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