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드릴까요?"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는 커피와 다방이 우리 사회에서 진화해 온 과정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간 우리가 흔히 볼 수 없었던 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비교적 자세하고 쉽게 커피를 둘러싼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는 데 이 책의 의미가 있다 하겠다.
우리 나라는 커피콩 한 알 나지 않는데도 세계에서 커피를 많이 마시는 나라의 그룹에 든다. 또한 커피 소비국 13위며, 우리의 커피냉동건조기술은 기술개발국가인 미국보다 우수한 것으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저자가 표현하는 것처럼 '기형적인 인스턴트커피 발전국가'로 연간 8만 톤의 원두를 수입하며, 이중 90~95%는 인스턴트커피로 가공된다고 한다.
많은 소비와 함께 놀라운 가공기술은 그만큼 커피가 우리 생활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는 중요한 증거다. 기호품이면서 '국민음료'로 등극한 이 커피는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의 기분에, 커뮤니티에 깊숙이 관여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도 손님에게 선뜻 말한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우리에게 커피는 무엇이며,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
이 책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사회 전반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 혹은 앞으로 더 알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커피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커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숨겨진 우리 근대사를 풍성하게 접할 수 있다. 커피를 둘러싼 이야기가 이렇게 많았나 싶을 만큼 흥미롭다.
커피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1890년대 들어왔으며, 고종은 커피마니아, 말하자면 커피 중독자였다. 은둔의 나라에 커피는 개명국의 상징으로 들어와 사랑받기 시작하여 한때 '찬사'의 대상이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민간에서 커피는 보약의 개념인 양탕국으로 불려졌고, 힘들게 구한 커피를 가마솥에 끓여 잔치를 벌였을까.
'커피'와 '다방'은 암울한 일제시대에 최고 엘리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었고 슬픈 보헤미안들의 울분이기도 했다. 다방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예술인들이었다. 시인 이상은 다방 이름으로 종로경찰서를 조롱하기까지 하였다고 이 책은 쓰고 있다.
커피는 우리 나라 역사와 함께 여러 가지 모습으로 꾸준히 진화를 되풀이하면서 우리 삶에 배어들었다. 미군 주둔은 그 귀했던 커피가 민간인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서는 계기가 되기도.
박정희가 주도하는 5·16 군사정권은 각종 '금지'를 만들었는데 커피도 망국의 범인으로 지목돼 금지의 대상이 되었다. 아울러 이 책은 커피와 관련한 수많은 사회, 역사적 자취를 자세하면서도 쉽게 적어 나가고 있다.
책 내용을 바탕으로 위 사진을 설명하면, 커피와 함께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해 온 다방에 1970년대부터 뛰어난 미모의 얼굴마담이 생겼다. 이 얼굴마담의 미모와 역할에 따라 다방 매출이 큰 차이가 나서 다방 업주들은 이 얼굴마담 유치에 혈안이 될 정도였다. 1970년대는 다방이 발전한 시기여서 음악다방과 DJ가 생겨나기도 했으며 젊은 청춘들이 다방으로 급속히 몰려들었다. 음악다방과 DJ 출현은 우리 나라 대중음악사에도 깊숙한 관여를 하였다.
1984년 처음으로 안성기가 커피 광고에 출현하였다. 어떤 이미지, 어떤 분위기의 모델이 광고를 하는가에 따라 커피 브랜드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또한 어떤 모델이 광고를 하는가에 따라 커피 매출이 크게 달라졌다. 지금도 커피 회사마다 각각 내세우는 독자적인 분위기의 커피 광고를 유지하고 있다.
"커피 한 잔을 시켜두고 그대 오기를 기다려 봐도…"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이라는 노래는 젊은층의 커피문화를 대변하며, 단순한 커피 한 잔이 아니라 우리 나라 커피 역사의 한 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커피를 소재로 하는 노래는 많이 불려지고 있으며, 또한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을 커피 향기가 물씬 풍기는 노래로 자주 표현하고 있다.
1976년에 등장한 커피믹스. 다방커피에 익숙해진 한국인의 기호를 고려해 커피의 크림과 설탕을 적절히 배합해 내놓은 이 제품은 더운 물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간편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하며 커피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 손님이 오면 접대하려고 한 봉지 45원 하는 '커피믹스'를 한두 개 사들고 가던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고, 당시 한 봉지의 커피믹스는 70년대의 인정을 함축했다.
인정의 다른 편엔 낭만이 있었다. 77년 장계현이 부른 <나의 20년>에서 "커피를 알았고 낭만을 찾던 20살 시절에 나는 사랑 했네"라고 묘사되었듯이, 커피는 낭만의 상징이었다. - 제4장 <찻집의 고독>에서 '맥스웰 하우스 커피'로 -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로 이미지 광고에 성공한 캔커피는 91년 국내에 선보였다. 맥스웰 하우스의 캔커피는 다른 업체들까지 경쟁업체로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으며 휴대가 간편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는 시점이 되기도 하였다. 캔커피의 고급화, 컵커피, 병커피의 제품과 아울러 요즘에는 원유를 혼합한 고급제품이 많이 판매되고 있다.
자판기의 커피를 우리들은 '길다방 커피'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판기의 보급으로 커피는 더 깊숙이 일반인들에게 스며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자판기의 무분멸한 설치 보급은 중, 고등학생들을 커피 중독에 빠져들게도 하였다. 또한 이 과정에서 커피자판기 설치와 관련하여 일부 학교에서는 비리까지 생겨나 결국 학교에서 자판기가 모두 철거되는 일도 있었다.
커피 자판기 보급으로 커피가 서민에게 급속도로 보편화되면서, 처음에는 예술인들의 중요 터전이었고 이후 실직자와 사기꾼으로 북적이는 등 커피와 함께 성장해온 다방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한동안 티켓다방으로 사회의 문제점이 되기도 했지만, 일부는 젊은 취향에 맞추어 '커피전문점'으로 변하면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수용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후 스타벅스 같은 커피전문점이 세계에 급속히 번지면서 국내에도 상륙하여 번성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으레 스타벅스 같은 커피전문점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현상을 우려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커피와 관련한 80년대 이전의 일화를 자세히 다루는 대신, 최근에 커피를 둘러싸고 사회의 문제가 되었던 것들은 거의 말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이 책은 327개의 각주(책 페이지 내용 하단부에 곁들여 덧붙이는 설명이나 자료)를 성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사실 커피의 역사를 이 한 권의 책으로 모두 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일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1970년대 이전의 이야기는 높은 비중을 싣는 데 비해 2000년 이후의 커피 역사는 잠깐 다룰 뿐이다. 아래 덧붙인 각주를 통하여 더 알아 볼 수도 있다.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나가는 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지난 날 커피 역사까지 새삼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나라 어른들 중에서 커피와 관련한 추억 하나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또한 그 어떤 것보다 '커피 한 잔'에 대해서는 누구나 추억할 수 있으며 "커피란…이다"라고 정의도 쉽게 내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카카듀'? 해장커피, 톱밥커피는 무엇이고 꽁초커피는 무엇일까? 법정으로 간 커피자판기가 있었다는데? 화랑다방, 음악다방, 심야다방, 노땅다방, 음란다방의 차이점…. 누구나 목록만 펼쳐 들고서도 궁금할 내용들이 많다. 저자의 말처럼 커피 한 잔 마시며 읽고 말기에는 너무 많은 자료들이고, 좀 더 많은 커피이야기를 만나러 가는 길목 역할을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