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 죽겠다'에 내리는 처방, '잠시 한걸음 멈추고...'
정작 무엇에 그리 바쁜지도 모르면서 "바빠 죽겠다"가 입에 붙었었다. 가게서 집으로 오고 가며 '가게일 틈틈이 아이들', '집안일 틈틈이 가게일'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며 어린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안 바쁘면 그게 더 이상할 거야. 그런데 일을 가진 엄마들이 많은 것처럼 가게와 집만 오고 가면 그냥 바쁘고 말텐데 스스로 저것이 궁금하고, 이것도 하고 싶은 촉수 높은 호기심이 문제다.
'느릿느릿 달팽이'를 들여다보면 느린 자신에 비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세상에 대한 촉수를 자주 내민다. 바라보고 있다가 장난기가 발동하여 '툭~!' 손으로 건드리면 재빨리 접어 넣는 순간 다시 촉수를 내민다. 달팽이의 촉수에서 나의 호기심, 스스로 조급해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내 스스로 바쁜 걸 만들고 자처하고 정신없이 살아내며 '바빠 죽겠다'인 것이지 그 바쁜 만큼 이룸이 많거나 작은 이룸 하나 내세울 것 없는 것이다.
나는 매일, 매순간 무엇에 그리 바쁜가. 어느 날 누가 나에게 나로서는 섭섭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섭섭하다고 말하며 돌아서고 보니 그 사람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탓할 것이었다. 남들에게 이름 한 번 더 남기자고 바쁘게 움직이는 한동안 스스로의 마음 속 이야기는 방치되어 있었다. 무엇에 그리 들떠 있었던지, 스스로 자책하며 돌아보는 지난날은 씁쓸하다. 그러나 덕분에 바쁘게 내달리던 생활에 쉼표 하나 잠시 찍어 본다.
'바빠 죽겠다'와, 잠시라도 손에서 책이나 일을 놓으면 퇴보하는 것처럼 조급해지기 일쑤인 자신에게 잠시 쉬어 볼 것을 처방하는 마음으로 선택하여 읽은 것이 김병익 산문집 <게으른 산책자의 변명>이다.
호흡이 다소 느리다. 느린 호흡으로 바라보니 나의 호흡은 그간 너무 숨 가쁘고 거칠었으며 가다듬을 틈조차 없어 걸러지지도 않기 예사로 하였다는 것을 본다. 남을 탓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늘 자신에게 있다.
느린 호흡, 김병익 산문집은 편안한 글들이다
<게으른 산책자의 변명>은 젊은 날에 한 출판사를 이끌며, 혹은 글을 쓰며 열심히 살아낸 한 언론인의 산문집으로 휴일 날, '아점(늦은 아침과 이른 점심)'을 먹고 커피까지 한잔 타들고 펼쳐들어 읽기 시작하였는데, 이 책은 나처럼 매사에 조급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한가로운 휴일에 읽으면 바쁘다는 변명으로 잊고 살았던 것들을 제대로 돌아보게 하는 책이란 생각이다.
저자 '김병익'은 1975년 도서출판 '문학과 지성사'를 창간하여 수많은 책을 만들어 내는데 젊은 날을 바쳤다. 2000년에 25년 넘게 열정을 바치던 출판사(문학과 지성사)의 대표자리를 후배에게 넘겨주고 이젠 은퇴자로서, 이미 젊은 날을 열정으로 살아 온 사람으로 다시 새로운 삶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나 지난날을 돌아보는 글들이 이 <게으른 산책자의 변명>의 글들이다. 문학과 지성사의 책들을 통하여 많은 것을 얻은 독자들이라면 그 책들을 만들어 낸 사람이 지난날을 돌아보는 글들을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은퇴 후, <동서문학>과 <동아일보>에 '김병익 칼럼'이란 제목으로 연재했던 가벼운 에세이들이나 미발표의 글 몇 편을 묶었다. 동아일보를 통하여 이미 읽었던 글들도 보이지만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다시 만나는 느낌이나 반가움은 또 다르다. 이제는 바쁘게 달리는 것에서 스스로 물러나 가볍게 산책하면서 삶을 돌아보고 깊이 있는 삶에 한 발 딛게 하는 그런 글들이다. 자~ 바쁨을 잠시 접고 느리게, 느리게 머물러 보자.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첫 번째 장 <길들이기>의 글들은 삼십여 년간 머물던 연신내 땅집(저자 스스로 개인 주택을 이렇게 말함)에서 얼떨결에 일산 신도시 복합 주상아파트로 이사하는 과정을 적은 '헌 것 버리기'부터 시작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사 이야기지만 이 글을 통하여 저자의 삶과, 일을 놓고 난 후 새로운 삶에 적응해가는 마음가짐이나 과정을 볼 수 있다. 휴일에 세수 안하고 얼마든 뒹굴어도 마음 편안한 것처럼 편안한 글들이다.
이사를 가기 위해 헌것을 버린다. 누구에게 소용되는 것이 있으면 넘겨주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린다. 버리기, 남에게 아낌없이 주기, 하나씩 개별적으로 넘겨주는가 하면 수백 권의 책을 한꺼번에 실어 대학 도서관에 기증한다. 그러면서 저자가 얻는 것은 이제는 젊음을 보냈지만 정년의 나이에 다시 새로운 삶에 스스로를 길들여 살아가는 것이다. 살 집을 옮기면서 몸도 새로운 도시로 가지만 글들에서, 일에서 물러난 노년의 삶, 그 새로운 길에 대한 심정을 읽는다.
젊은 날 달리는 차 안에서마저 바쁘고 달려가기에 조급해야 했다면 이제는 한가로이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작은 깨달음을 구한다. 바쁘게 달리면서 못 보았던 것들이 이젠 비로소 보인다. 그래서 고리를 물고 다시 이어지는 글들은 '물러나있음을 누리기', '느리게 살기', '자전거타기', '디지털 익히기', '사람-읽기의 즐거움' 등 아홉 편의 신변잡기적인 글들은 글쓴이를 솔직하고 가깝게 느껴지게 한다.
두 번째 장의 글들은 타인들, 혹은 다른 존재들과 그 소통을 위한 길트기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리하여 저자가 이 땅의 지식인으로서 바라보고 판단하는 냉철한 비판의 글도 많이 보인다. 소득의 불균형과 격차가 날로 심해지는 지금 이 사회를 저자는 타인에 대한 정상적인 소통 대신 자신의 입장과 이익만 앞세우다 보니, 혹은 자신을 보호하는 방편으로 타인을 향하여 문을 닫아버린 '자폐증'적인 병으로 간주하여 이렇게 말한다.
"나의 이익만 눈앞의 목표로 설정되어 있지 너와 내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이익, 너와 나를 뛰어 넘는 공동체적 이익에 대한 고려는 거의 하지 않고 있기에 오늘의 우리가 이처럼 혼란스럽고, 토머스 홉스의 말처럼 만인이 만인에 대해 이리가 되는 상태에 빠졌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집단과 집단, 지역과 지역, 세대와 세대, 너와 나 사이에는 처지와 생각을 바꾸어 배려하는 '역지사지'의 사유법이 개입되지 않고 있다."-<'우왕좌왕'에서 '역지사지'로> 중에서
세 번째 주제 글들은 문단에서, 혹은 책을 만드는 출판인으로서 오래 머무는 동안 인정과 지성을 나누었던 사람들과의 이야기인데 같은 출판인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도서출판 범우사' 윤형두 사장에 대한 글이나 예술적인 책의 기준, 그 잣대를 읽을 수 있다. 하루하루 조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잠시 쉬어가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이 책과, 이 책의 저자를 우선 만나 볼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의 글이 본문에 나온다.
"낚시꾼인 소설가 홍성원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며 생각을 하고 정리를 한다는 말을 부인하면서, 사실은 찌만 바라보며 물고기와 씨름을 하는 데 신경을 쓰기 때문에 머리가 텅 비고 생각들을 지우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내가 느리게 걷는 산보를 해보고서야 그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릿속의 이런저런 것들을 비워내고 내면을 맑게 청소하는 일이 사실은 끊임없이 반추하고 뒤집고 다시 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글을 써야 할 때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정하게 되는 대부분의 기회를 바로 이런 게으른 산책길에서 얻어내곤 했었다"-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