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앙드레 말로 지음, 김붕구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조건을 구입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제목때문이었다.
인간의 조건, 인간이 되려는 조건이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때문에 존재하는가.
아마 이 책은 작년 12월쯤에 산 책인 것 같은데 한참 동물학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그에 반하여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을 알아보려했던 호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이 도착했을 때 나는 그 검소한 표지에 놀랬고, 코팅되어 있지 않은 옛스러운 종이에 놀랬으며, 또한 두께에 마지막으로 놀랬다. 책은 장장 500페이지에 가까운 소설이며, (최근에 이다지도 두꺼운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던가)게다가 더 경이로운 것은 그 중에 100여 페이지가 앙드레 말로 연구라는 번역가 김붕구 선생의 논문이 실려있었던 게다.
 

앙드레 말로는 소설보다 더욱 경이로운 인생을 산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드골의 흉금을 털어놓을 유일한 친구였다고 한다. 해서 드골이 대통령이 되면서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고 드골이 은퇴하면서 같이 사임을 했다. 대표작으로는 "왕도로 가는 길"과 "인간의 조건"이 있다. 번역자 김붕구 선생역시 서울대학교 불문과 교수로 재직을 하면서 불문학의 올곧은 학자의 풍모를 지니며 보들레르를 주로 연구했고 르나르의 "홍당무", 스탕달의 "적과 흑", 생 텍쥐베리의 "야간 비행"등을 번역했으며 "불문학 산고"등의 저서도 남겼다고 한다. 이 책은 지식공작소에서 2000년 초판을 2005년에 2판 4쇄로 펴낸 것인데, 다른 번역본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없는 모양이기도 하다) 지식공작소 버전은 김붕구 선생의 앙드레 말로 연구가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내용은 1927년 상하이쿠테타를 배경으로 한다. 쿠테타를 배경으로 한 만큼 테러리스트와 혁명가들이 등장하며 시대배경에 어울리는 자본가, 대학교수등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황폐하며 떠돌이고 외롭고 고독하다. 정상적인, 아니 보편적인 가정을 이룬 등장인물은 하나도 없으며, 모두가 때에 절은 옷을 입은 듯, 아니면 고독과 허무에 찌들은 얼굴표정을 했을 만한 인물들만이 등장한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있지만 그들은 적절하게 얽혀 있고 그리고 그 인물들의 캐릭터나 세부적 심리묘사 역시 탁월하다. 책을 잡고 내가 4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낸 상하이가 배경이라는 것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져셔 그 텁텁한 공기속에 식은 기름냄새가 가득한 바람이 뿌옇게 스모그가 낀 황푸강 위로 마구 불어오는 듯 했다. 책 앞머리에는 상하이 지도도 작게 들어있는데 소설의 배경이 되는 차베이(자뻬이)지역은 소설속의 묘사와 지금의 분위기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아직도 존재하는 아스토리얼(아스토리호텔이라고 나온다)호텔등 작가가 상하이를 언제 방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르포에 가까울 만큼 그 지역에 대한 연구역시 대단했던 것이 틀림없다.

 

소설은 내내 처절하다. 존엄성, 단지 인간의 존엄성 때문에 싸워야겠다는 사람들의 어깨는 모두 늘어져있고 어금니는 앙 다물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개인적인 어떤 희망도 따뜻함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로지 혁명 또는 투쟁, 설사 그 방법을 통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더라도 상관없다 하는 절실함이다. 이 것이 아니면 내 목숨은 필요없고 설령 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되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이미 죽음에 이른 어쩌면 한 번쯤 죽었다 살아난 한 맺힌 유령같은 인간들이 가득하다. 인생을 발목잡는 조건들, 가난, 육아, 가족, 자존심, 욕망등이 길거리에서 일어난 폭탄테러로 쌓여있는 시체들처럼 잔인한 모습으로 즐비하게 늘어져 있고 주인공들은 전멸한다. 그리고 다른 방향으로 떠나는 마지막 장면조차 그다지 희망적인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저 그렇게 살던 사람들이 다 죽었고 다른 곳에서는 아무일도 없이 자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만족스러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또 다르게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 마지막에 소설 속 한 인물이 말한다.

 

사람을 하나 만들려면 아홉달이 걸리지만 죽이는 건 하루면 족하다고 하지만, 한 사람이 완성되려면 60년이 걸리는데, 인간이 완성된 단계에 이르면 결국 죽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우리는 완성과 동시에 궤멸하는 존재인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죽음은 인간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건이라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접할 수 있는 프랑스 소설들은 대부분 200페이지 내외의 짤막한 소설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가벼운 불문학에 익숙해져서 <"아멜리 노통브"나 "알랭 드 보통"등> 앙드레 말로나 까뮈, 사르트르, 프루스트 따위의 존재조차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이제 다시 한 번 대작들을 만나야겠다.

 

2006. 10. 25.


테러 [terror]
[명사]
1 폭력을 써서 적이나 상대편을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 행위. ‘폭력’, ‘폭행’으로 순화.
2 <정치>=테러리즘.


 

테러리즘 :

폭력적인 공포정치 또는 암흑정치를 말하며, 일반적으로 테러(terror)라면 테러리즘을 뜻한다. 테러는 위협 ·폭력 ·살상 등의 끔찍한 수단을 수반하므로, 테러 ·테러리즘 ·테러리스트라는 말들은 사람들에게 공포와 전율을 느끼게 한다. 테러리즘에 대한 개념과 정의에는 시각과 관점에 따라 약간의 차이와 이견이 있어 왔다.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관점에 따라서는 테러리즘으로 규정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일반범죄로 취급하기도 하며, 다른 시각, 즉 특정집단에서는 애중적(愛衆的) ·애국적인 행동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따라서 테러리즘에 대한 견해는 합의적 정의를 기대하기 힘든 것으로, 테러리즘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주장이나 이론에 따라 설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1937년 국제연맹(League of Nation)에서 개최된 ‘테러리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회의’는 국제적 차원에서 테러리즘의 개념을 정의하고자 모인 첫 번째 시도였다. 그러나 참가국의 이해(害)가 엇갈려 안건은 채택되지 못하였다. 다만 이때 열린 회의에서 테러리즘을 ‘한 국가에 대하여 직접적인 범죄행위를 가하거나, 일반인이나 군중들의 마음속에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국가원수의 배우자에 대한 살상, 공공시설 파괴 등을 테러리즘에 포함시켰다. 테러리즘은 ‘정치적 목적이나 동기가 있으며, 폭력의 사용이나 위협이 따르고, 심리적 충격과 공포심을 일으키며, 소기의 목표나 요구를 관철시킨다’는 4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역사적으로 더듬어 보면 인류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구약성서 《창세기》 제4장을 보면, 인류의 시조 아담이 나온다. 그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큰아들은 카인, 작은아들은 아벨이다. 카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한 나머지 동생을 쳐죽였다. 이것이 인류사상 첫 번째 살인으로 기록되었으며, 학자에 따라서는 카인을 최초의 살인자이며 테러리스트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후 인류가 집단사회를 이루면서부터 테러리즘은 강한 자의 통솔도구, 공포정치의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다. 테러리즘이란 용어는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혁명정부의 주역이었던 J.마라, G.J.당통, 로베스피에르 등이 공화파 집권정부의 혁명과업 수행을 위하여 왕권복귀를 꾀하던 왕당파(王黨派)를 무자비하게 암살 ·고문 ·처형하는 등 공포정치를 자행하였던 사실(史實)에서 유래한다. 즉, 단순한 개인적인 암살이라든지 사적 단체에 의한 파괴 등이 아니고, 권력 자체에 의한 철저한 강력지배, 혹은 혁명단체에 의한 대규모의 반혁명에 대한 금압 등을 일컫는다. 프랑스에서는 자코뱅의 공포정치에 대한 1794년 이후의 테르미도르 반동, 1815년 혁명 후의 루이 왕조에 의한 보나파르트파에 대한 탄압, 1971년 파리 코뮌의 패배 후, 이들에게 가해진 베르사유파에 의한 대량학살 등은 백색 테러리즘의 예이다. 이에 대하여 앞서 예를 든 자코뱅의 강압지배는 적색 테러리즘이라 불리는데, 혁명을 추진하기 위한 강권정치, 반동파에 대한 탄압 등은 1917년의 러시아혁명에서도 자행되었다. 그리고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배확립의 과정, 독재정권 수립 후의 공산주의자 또는 유대인 등에 가해진 잔인한 박해도 테러리즘의 예이다. 이와 같이 테러리즘은 혁명 ·반혁명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현상이다.

 

오늘날 테러 공격 형태의 특성으로는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가장 고전적인 테러전술의 하나인 폭탄공격(bombing)이 있고, 항공기 납치가 주대상인 하이재킹(hijacking), 그리고 인질납치(hostage seizures)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국제 테러 조직〉 1968년 이후 테러 관여 집단수는 73개국 220여 개 조직에 이르며, 이들 집단의 인적 교류에서 연계된 이합집산(合集散) 추이까지 더하면 그 수는 300개를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상호협조 ·연계활동을 통해 능력을 강화하고 국가간에 이념과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에는 적대국에 대한 테러행위를 묵인, 또는 조장 ·방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⑴ 이슬람권의 테러조직:성전(聖戰)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 회교지하드(Al al Islam:Islamic Holy War Jihad)는 이란 회교정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과격단체로 아직도 정체가 분명하지 않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3년 4월 18일 베이루트 주재 미국 대사관을 폭탄트럭으로 공격, 미국인을 포함한 63명을 살해하면서부터이다. 이들은 1983년 10월 23일 레바논에 주둔하고 있는 미해병대 사령부와 프랑스군 사령부를 자살폭탄트럭으로 각각 동시에 공격하여 299명의 사상자가 나게 한 다음, 1984년 9월 19일 새로 옮긴 동베이루트의 미대사관에 자살폭탄트럭으로 돌진, 12명이 사망하고 60명이 부상하는 등 72명의 사상자를 발생시켜 위협적인 테러 그룹이 되었다. 또한 아부 니달 그룹으로 알려진 ‘검은 6월단’은 뮌헨 올림픽 선수촌 테러사건으로 유명해진 ‘검은 9월단’에서 분리, 성장한 테러 집단이다.

 

⑵ 유럽권의 테러조직:① 1910년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위하여 조직된 아일랜드공화군(IRA:Irish Republican Army)은 1969년 북아일랜드 분쟁 때 과격파 ·온건파로 분리되었다. 최근까지 테러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조직은 과격 아일랜드공화군이다. 이들은 살인 ·방화 ·폭파 등을 자행, 영국군과 자주 충돌하고 있다. ② 독일이 통일 되기 전, 미군의 서독 주둔에 반대하는 RZ(Revolutionary Cells) 그룹은 서베를린 근처의 미국 도서관에 폭탄공격을 가하는 등 반미 ·반NATO운동을 벌였다. 1980년대 후반에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신활주로공사 방해와, 중거리 미사일 설치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이 밖에 1세기 전에 일어났던 터키 정부의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학살사건을 잊지 못하는 아르메니아 해방군이 있다.

 

⑶ 분리주의 운동의 테러 조직:프랑스와 에스파냐 국경지역인 산 세바스티안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바스크 분리주의 그룹으로서, ETA(Euzkadi ta Azuktasuna:Basque Fatherland and Liberty), 바스크 분리주의 전사, 이라울차(Iraultza) 등이 있다. 모두 에스파냐에서 독립, 바스크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데 목표를 둔 그룹이다. 또 하나는 1981년 이래 미주지역에서 가장 위협적인 테러를 자행하고 있는 푸에르토리코 분리주의 그룹으로서, AFNL(Armed Forces of National Liberation)과 AFNR(Armed Forces of National Resistance)가 있다.

 

⑷ 기타 테러조직 단체:이상의 테러 조직 이외에도 각국에는 국제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테러 조직이 많다. 각국의 대표적인 테러 조직을 보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의 악시옹 디렉트 그룹(Action Directe Group), 팔레스타인의 M-15(May 15 Organization),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Mujaheddin), 터키의 인민해방군 TPLA(Turkish People’s Liberation Army), 콜롬비아의 M-19(April 19 Movement), 독일의 바더마인호프단(Baadermeinhof Gang), 이탈리아의 붉은여단(Brigate Rosse), 일본의 적군파(JRA:Japanese Red Army) 등이 있다.

 

상하이 쿠테타 :
국민당은 1926년 7월부터 장제스를 총사령관으로 한 국민혁명군을 조직하고 제국주의와 봉건군벌의 타도를 위해 북벌을 개시하여 남방지역의 군벌을 차례로 타도하였다. 공산당도 제1차 국공합작하에서 북벌을 혁명전쟁으로 발전시키는 정책으로 채택하여 노동자·농민 사이에 급속히 당세를 확대시켜 각지의 해방투쟁을 지도하였다.

1927년 3월 공산군이 난징[南京]을 점령하자 영국·미국·프랑스·이탈리아 및 일본의 함대에서 난징을 향해 일제히 무차별 포격을 가해 공산군 중심의 혁명전쟁 발전을 무력으로 저지하고 거액의 자금을 대주어 국민당 우파의 반공활동을 지원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우파의 실력자 장제스는 같은 해 4월 12일 상하이의 노동자 무장대와 상하이 총공회(總工會)를 해산시켰다. 이 사건은 국공합작을 결렬시키고, 공산당 세력을 구축하였으며, 장제스 정권을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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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 아이들의 언어 세계와 동화, 동시에 대하여
코르네이 추콥스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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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쓴 코르네이 추콥스키는 러시아 아동문학의 창시자로 불린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오래된 인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 때는 구소련이 막 태동을 할 때이며, 추콥스키는 막심고리키의 권유로 아동문학을 시작했다고 하니 정말 아동문학의 할아버지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셈이다.
추콥스키의 40년간의 연구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며, 이 책은 단순히 아동문학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어린이들의 언어와 그에서 발생한 문학적 토양 그리고 어른이 어린이들의 언어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매우 친절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아이들은 두 살쯤이 되면 말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과는 다르다.
말이라는 것은 언어 - 즉 뜻을 가진 단어들을 문법에 맞게 나열하여 의사를 전달한다는 매우 복잡한 의사소통행위이므로, 돌전아기가 옹알이를 하는 것과 아빠, 엄마,를 말할 줄 알게 되어 소리지르는 것은 말을 이해한다고 하기에 무리가 있다. 물론 아기들도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겠지만, 아직 언어체계에 대해서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시기를 두 살에서 다섯 살 까지, 스폰지처럼 말을 흡수하는 시기를 규정한다.
그리고 그 시기에 발전하는 아이들의 놀라운 언어능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시기에 아기들이 말을 배우는 것은 세계를 배우는 것과 다를 바 없고 언어를 이해함으로서 세상과 가까워지고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어른들의 생각으로 아기들은 매우 제 멋대로이고 아무것도 모를 것 같지만, 아기들만큼 규칙적인 것을 좋아하는 존재도 드물다. 아기들은 정확한 시간에 자고 정확한 시간에 젖을 먹고 밥을 먹고 놀고 한다. 자기 나름대로 생체 시간을 파악하고 백일쯤 되면 자기의 시간표를 짜기 시작한다. 엄마가 굳이 젖먹이는 시간이나 잠자는 시간 낮잠자는 시간을 규정해주지 않아도 아기는 알아서 자기 몸에 맞게 시간표를 만들어낸다. 그러면 어른들은 그 아기의 시간을 잘 조정해주거나 이해해주고 서포트해주면 될 일이다. 그런 아기들이 언어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도 바로 규칙의 발견이다.
어떤 언어든, 모든 언어는 규칙이 있다. 주어가 앞에 오고 뒤에 오고 하는 것들로 시작하여 언어는 규칙적이고 그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언어는 파괴된다. 아기들이 언어의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은 그 규칙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 규칙을 중심으로 유희를 하고 파괴를 한다는 것.
그리하여 현실세계에 접근하게 되고 현실세계를 이해하면서 반동적으로 아이들은 상상의 세계를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상상의 세계가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함으로 아이들은 현실과 허구를 구분해낸다는 것이다.

충격적이게도, 책에 따르면 동화책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이해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하긴 어떤 동화책은 아이에게 읽어주다가 흠칫 놀라게 되는데, 뭐 대강 이런 거다.
늑대는 어린 양을 잡아먹었어요, 늑대가 할머니를 덥썩 집어 삼켰어요. 라는 내용.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래동화에는 분명히 그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댓가가 있을 것이다. 문학전문가가 아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 뭔가가. 그러나 섣부른 어른들은 어 - 이것은 잔인하다 이것은 비교육적이다 이것은 어린이를 몽환의 세계로만 인도한다. 라고 판단하고 차단시켜 버리는 것이다.

 

옛말 그른 거 하나 없다는 속담이 바로 이런 데에 적용되는 것이다.
내려오는 전래동요, 전래동화, 놀이민요등에는 다 까닭이 있다는 것.
추콥스키는 엉망진창 시, 전래동요등의 매력을 한껏 파헤쳐준다.
그리하여, 어른들이 정말 아이들과 얼마나 얼마나 많이 다른가를 강조해준다.

 

아직 아이의 동화책을 전집으로 사지 않았는데, 전집으로 살 것인가 단행본으로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정말 중요한 길잡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놀이와 리듬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리고 아이들에게 동시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지, 그리고 한 참 말을 배우는 아이들의 꼬치꼬치 캐묻는 습관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에 대해서, 어떤 책을 골라 읽혀야 할지까지 결정하게 해준다. 물론 이 책은 가이드 북이나 육아서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구체적으로 일러주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잘 읽어보면 어떻게 아동문학에 접근해야 할 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2006.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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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이가 만 3세가 됩니다. 지금은 놀이방을 다니고 있는데, 하루종일 두는 것이 아무래도 걸리고, 더이상 직장을 다니지 않기 때문에 반일반 유치원/놀이학교/놀이방으로 돌려볼까 하고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근처 구립 어린이집/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병설은 203년전에 대기를 올려놓지 않으면 아예 꿈도 꾸지 말라길래 새로 생긴 곳들을 주로 알아봤어요.   

저희가 사는 곳은 관악구 신림동.재개발로 옛 동네를 밀어내고 새로 구축된 아파트 단지입니다. 근처의 유치원 및 교육기관을 알아봤습니다.

XXX 유치원 (정부허가가 난 유치원) - 아파트 단지 내  

5세반 (아이는는 4세인데, 생일이 빨라서 (3월 25일) 5세반에 낑껴넣어줄 수 있다고 함) - 유치원 4세반은 있지도 않음
보유시간 : 아침 9시 반 - 오후 2시

입학금 200,000원
가방및 체육복 44,000원
급식비 및 특활교육비 (6개월) 840,000원
매달 교육비 250,000원
1개월 평균 410,333원
(특활 : 철학교육, 영어교육 - 중점강화)
1년 4,923,996원  

+연장보육(오후 4시까지) 할 경우 월 150,000원 추가.  

종일반의 경우 얼마가 추가되는 지 물어보지도 않았음.

XX영재놀이학교 (놀이학교의 경우 어린이집으로 인가를 받거나 학원으로 인가를 받아서 변형운영하는 형태 : 여기는 학원인가로 변형한 듯) - 아파트 단지 내
보육시간 : 9시 30분 - 2시

늦은 5세반 (여기는 5세도 빠른 5세와 늦은 5세로 분류해서 교육)

입학금 120,000원
분기별 특별활동및 재료비 250,000원
매달 교육비 350,000원
(특별활동 : 오르다, 가베, 하바, 국악교육, 영어교육, 영어요리)
1개월 평균 430,666원
1년 5,167,992원

 

XX유아놀이학교 (여기는 어린이집으로 인가 받아 놀이학교로 변형운영) - 금천구에 소재 

보육시간 오전 10:00 - 오후 1:40 (그 중 밥 먹는 시간 1시간)

4세 반

입학금 50,000원
물품비 100,000원 (체육복, 가방, 보조가방)
영어교재비 수영장 관리비 6개월 70,000원
보육교육비 278,000원
특별활동비 198,000원
교복비 90,000원
우유값 따로 월 평균 10,000원 가량
월 평균 517,666원 

년 6,211,992원

_여기는 차량운행비 및 기타 행사비용/사진값은 추가로 더 내야함 

여기는 차량을 타고 운행해야 하는데, 난곡지역에서 금천구 시흥동까지의 길이 오르막 내리막이 매우 심합니다. 상담교사에게 아이들의 차량 안전문제는 어떻게 되느냐 했더니 지입차량이라 유아 전용 버스가 아니고, 어린 아이들인 경우 안전벨트가 오히려 더 방해가 되거나 사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기사님들이 다 잘라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군요. 기사님과 보육교사 1명이 탑승한다고 합니다.

 그 외 민간어린이집  

보육비 278,000원  

특별활동 및 재료교구비 1개월 100,000원 (6개월 선불) 

입학금 50,000원  

앨범 및 추가 비용 적잖이 약 100,000원 정도 소요  

보육시간 12시간. (오전 7-8시부터 오후 7-8시까지 가능한 곳도 있음) 

월평균 400,000원 가량  

 

현재 다니고 있는 놀이방은 월 327,000원을 내고 있습니다. 어린이집은 연령이 낮을 수록 보육료가 비싸기 때문에 내년이 되면 5만원 정도가 저렴해지죠. 그나마 어린이집은 정부 보조금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4세부터 대부분의 어린이집들이 특별교육을 실시합니다. (오르다, 가베, 하바 등 교구 활동과 원어민 및 일반 영어 외부강사를 초빙하여 운영하는 영어교육등) 

 아이 아빠는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저희가 중산층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유치원 보육료를 받아들고 나니, 우리는 중산층에 못 미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1년이면 거의 600만원 정도가 소요되는데, 경기도 안 좋은탓에 유치원 교육은 내년이나 후년으로 미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에서 다들 유치원은 비싸다고 하길래 얼마나 비싸길래 그러는가 했더니 결국 이런 결과로군요.  

외국계 놀이학교나 영어유치원은 아예 알아보지도 못했습니다. 관악구인 경우 지역 특색상 조금 저렴한 편이라 월 600,000원 선이라고 하더군요.  

같은 단지에 사는 맞벌이 부부중에 쌍둥이를 가진 부부가 있습니다. 이 집은 일체의 정부 보조금 혜택은 없고, 저소득층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 엄마는 일이 즐거워서 사회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보육비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더군요.  

대부분 형제를 키우는 집들은 큰 아이가 5-6살이 될 때까지 무조건 버티기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저희가 형편이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도 부담이 되는데, 정말 생활이 어려운 분들은 엄두도 못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치원 세 군데를 다녀와서 허망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상대적 빈곤감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번 달을 끝으로 아이 놀이방을 그만 보내고 집에서 데리고 있기로 했습니다. 현재 저는 사이버 대학에서 공부 중이었는데, 그 공부를 포기(연기)하기로 했고, 아이의 육아에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이러면서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논의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영재반 전문 학원을 다닌 아이들만 영재반에 뽑힐 수 있는 식의 제도가 지속된다면, 애 데리고 산으로 들어가야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내내 씁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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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강남구청 역에서 점심약속이 있다. 

 남편은 9시 반쯤 출근을 했고 10시 반에서 1시 반 사이에 온다는 택배는 정확하게 10시 30분에 도착을 했다. 나는 어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으므로 생략하고 아침설겆이를 마치고 아이를 보행기에 태운채 옷을 갈아입고 구두를 신을 요량으로 스타킹을 신었다. 세수를 하고 렌즈 세척제를 사는 것을 자꾸 잊어서 렌즈를 세척할 수 없으므로 안경을 그냥 쓰고 나갈 생각을 하고 스킨을 바르고 수분크림을 바르고 아이크림을 바르고 SPF 30이라는 크림을 바른다.  

아이는 아까 세수를 시켰고 손과 발도 닦았다. 얼굴에 크림을 발라주고 벌겋게 건조해서 일어난 부분에 새로 산 비싼 크림을 더 덕지 덕지 발라줬다. 아이의 기저귀와 물티슈와 가제수건과 수유패드와 구강티슈는 언제나 가방에 상비되어 있고 나는 지갑과 아이의 모자와 카메라와 지하철에서 아이가 잠들었을 때 읽을 내일이면 도서관에 반납해야 하는 책을 한 권 가방에 넣는다.

아이의 옷을 벗기고 기저귀를 갈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아이가 입을 두툼한 카디건도 가방에 넣고 무릎담요도 돌돌 말아 가방에 넣고 빵빵하나 어깨끈은 애매하게 짧은 가방을 준비하고 아이를 안고 띠로 졸라맨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창문을 닫고 현관앞에서 열쇠를 챙기고 유모차를 들고 문을 닫고 좁디 좁은 문앞 현관에 서서 문을 잠근다. 구두를 신으면 키가 갑자기 커지기 때문에 계단 아래가 잘 보이지 않는 위험함이 있다. 아이를 안았을 때 내 발끝은 잘 보이지 않는다. 계단 한 칸 한 칸은 그야말로 낭떠러지와 같다. 그 계단을 나는 한 참 내려가야 한다. 우리집은 7층의 고도를 지닌 5층에 있다. 엘리베이터는 커녕 유모차를 들고 내려가기도 좁은 계단과 계단 뿐이다.

집앞에서 운 좋게 택시를 바로 잡아타서 트렁크에 유모차를 싣고 근처 지하철역까지 간다.

손주가 10개월이라던 택시기사아저씨는 친절하게도 트렁크에서 유모차를 꺼내주셨다.

나는 아이를 안고 유모차를 들고 지하철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을 두 번 돌아 개찰구가 나오고 개찰구를 지나 또 계단을 내려간다. 유모차를 들고. 아이를 안고, 가방을 들고.

승강장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기다린다. 지하철이 오면 유모차를 들고 가방을 들고 아이를 안고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 안에 사람이 적지 않아 마땅한 공간을 찾기가 어려웠으나, 노약자 석이 없는 열차의 끝자리쯤에서 유모차를 펴는데 그 쪽에 서 있는 등산복 차림의 여편네들은 발끝하나 비켜주지 않았다. 유모차를 펴고 가방은 바닥에 내려놓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있는데 건너편 노약자석에 버젓이 앉아있던 양복입은 젊은 남자가 자리를 양보해준다. 그는 자리를 양보해주기 위해 거기에 앉았던 걸까. 아무튼, 나는 아이의 유모차를 나를 보게 돌려놓고 아이와 눈을 맞춘다. 내 옆에 앉은 할머니는 나의 아이를 보고 "네가 꽃이다"라고 말하며 계속 아이와 눈을 맞추고 웃어준다. 자리를 양보했던 남자는 몇개월이냐고 묻고 아이의 볼을 살짝 만져본다.

나는, 고운외모가 사람의 심성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나의 아이는 모든 사람들이 보고 웃어주고 예뻐해주며 감탄한다. 모두들, 아이를 보고 귀엽다 예쁘다. 라고 말을 해준다. 아이는 자기를 보고 인상을 쓰거나 미워하는 사람을 아직 만나본 적이 없다.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모르지만. 호감가는 외모를 가진 사람은 아무래도 유리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갈아타는 역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수역에서 내려야 할 것을 이촌역으로 착각했고 다행히 이촌역에는 개찰구까지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잠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채로 다시 이수역으로 돌아갔다. 예전엔 이수역에서 7호선을 갈아타려면 두 번의 엘리베이터로 끝났던 것 같은데 뭔가 잘못되었는지 내가 길을 잃은 것인지, 이번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수번씩 갈아타야했고, 배낭여행할 때 10시간동안 쉬지 않고 달리던 버스가 펜스도 없는 낭떠러지 산길에서 트럭을 추월하며 달리던 것처럼, 나는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쉼호흡을 했다. 다시 아이를 일으켜서 안고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유모차에 가방을 던져놓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기를 몇 차례 반복하여 나는 무사히 7호선으로 갈아탔고 강남구청역에서 내렸다.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다시 나는 아이를 안아올리고 유모차를 접어야 하나 망설이던 차에, 꼭 희정이의 남자친구처럼 생긴 총각이 나를 힐끗힐끗 바라보더니 들어들이겠다고 하며 번쩍 유모차를 들어 환한 출구까지 올려주었다. 그 청년은 여자친구를 거기서 만나기로 했는지 유모차를 들 때는 혼자였는데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한 머리긴 여자의 어깨위에 팔을 두르고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강남구청역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하였는데 식당의 통로가 매우 좁아 동행이 아이를 안고 나는 유모차를 들어 올려 사람들이 다리 사이를 비켜가며 식당의 안 쪽 방으로 들어갔고 밥을 먹는 내내 답답한지 보채는 아이를 외면하고 내내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나와 길을 건너 스타벅스에 들어갔는데 뭔가에 성질이 난 바리스타라는 알바생이 내가 주문한 까페모카 두 잔과 에스프레소 두피오를 찍다말고 사라져버렸으며 그는 우리가 내내 앉아있는 동안 커피 수저를 거칠게 두들겨 저자가 지금 단단히 뭔가에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렸다. 

 스타벅스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고 나온 나는 동행에게 아이를 안게 하고 나는 가방을 유모차에 얹은 채 계단을 두 바퀴 돌아 개찰구로 내려갔고 개찰구에서 아이를 안아 띠로 묶고 유모차는 동행에게 들게 하여 승강장까지 내려갔다. 동행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릴 예정이었고 나는 다시 이수역으로 가야했다. 지하철이 들어왔고 동행은 고속버스터미널역에서 먼저 내렸고 나는 이수역에 내렸는데 이번에도 아까처럼 반복된 길을 다시 걸어야했다. 키가 작은 할머니 두 분이 4호선 갈아타는 길을 물어서 나도 4호선을 갈아타야 하니 이쪽으로 가시면 된다고 했다.

할머니 둘에게 방향을 알려드리고 나는 내 갈길을 갔는데 이번에는 아이가 잠이 들어 다시 안아올렸다가는 심하게 보채며 울 듯 하여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에스컬레이터를 타기로 대단한 결심을 하였다. 한 번 시도를 했다가 다시 에스컬레이터에서 급하게 내리고 다시 숨호흡을 고른 채 인적이 드물어진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나는 뒤로 돌아서고 아이의 머리를 아래쪽으로 향하게 하여 거꾸로 든 채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으며 다시 올라가야 할 때도 아이의 발을 위로 향하게 하여 아래쪽에서 내가 유모차를 받쳐든 채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보기에는 매우 쉬워보였겠지만, 등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수번의 에스컬레이터 타기로 나는 마치 밤늦게 도착한 둔황역에서 2시간동안 가로등 하나 없는 자작나무길을 달리던 택시안의 어둠속에 다시 들어온 것 같았다. 

 이수역 4호선 승강장에는 창동역에서 사상사고가 있어서 사당행 열차는 늦게 들어온다는 메세지를 전했고 아까 그 할머니 두 분도 옆에 서 있었다. 그 양반들이 나보고 어디로 가느냐 물었고 그 분들은 사당으로 간다고 했다. 다시 이촌역으로 가서 루브르 박물관전을 볼까 했던 고민은 오이도행 열차가 너무 빨리 들어온 탓에 그냥 접었다. 그리고 나는 지하철을 타고 인덕원 역에서 내려서 아이를 다시 안고 유모차를 이번엔 접어 어깨에 메고 가방을 메고 한참을 한참을 걸어서 안양방면 버스 정류장쪽으로 나왔다. 버스 정류장이 눈에 보였고 그 전에 가판대가 하나 있었는데 목이 매우 말랐으나, 음료수를 하나 사면 그 역시도 짐이 될 것이라서 참았다. 택시를 탈까 하다가 오늘의 에스컬레이터 전을 기억하며 버스를 타겠다고 다짐했고 집근처 버스 정류장에 가느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대답한 버스기사의 버스를 탔다. 나는 한국에 들어온 이래 내내 이런식으로 버스를 타고 다니고 있다. 번호는 외우지 못하고 있다. 왜 버스 번호를 외우지 못하는가는 나도 모르겠는데, 수도권 도시라 그런지 11-1이 있으면 11-5까지 있는데다가 그중 일부는 빨간색 파란색으로 구분되어져서 너무나 어렵다. 게다가 버스는 그 번호를 기억했다가 늘 잊어버린 후에 다시 탈 기회가 생기므로.

아까 한 대는 집근처에 가지 않는다고 하여 보내고 집근처에 갈 것으로 기억되는 버스기사에게 방향을 물어 올라탔다. 버스카드로 버스비를 내고 2인용 자리에 앉아서 옆에 가방과 유모차를 세워두었다. 아이는 창밖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안양시내로 들어왔을 때 라디오에서는 원미연의 "이별여행"이 흘러나와서 나는 아이에게 조용히 그 노래를 불러주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가사는 꽤 많았다.

버스에서 내릴 때 같이 내리는 50대 아주머니가 계속 나를 흘끗거리며 도움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미소를 건넸고 나는 괜찮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버스에서 내려 유모차를 펴고 아이를 다시 유모차에 태워 정류장 앞 슈퍼에서 콩나물과 바지락, 오렌지 주스 하나를 사서 아이의 유모차 아래짐칸에 싣고 오는 길에 바람이 많이 불어 낙엽이 휘날렸는데 아이가 그걸 보고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아이에게 모자를 씌우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 로 시작하는 가을이라는 동요와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 를 부르고 나니 집앞에 도착했다.

유모차를 밀어 올려 1층 현관에 들어와서 아이 유모차의 짐칸에 실린 슈퍼의 까만봉지를 꺼내고 가방을 꺼내들고 아이를 안아서 띠로 묶고 유모차를 접고 어깨에 메고 계단을 한참 올라 집에 도착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오늘 아침 티비프로에서 은행의 친절에 대해 이야기 하자 어제 거래은행에서 밥먹었냐는 인사를 세 번이나 들었다면서 사무실 이전식때 꼭 불러달라고 지점장이 그러더라는 남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그 은행에 가면 어깨에 띠를 멘 아줌마가 되도록 창구로 가지 않고 기계에서 일을 해결하도록 유도당한다고 말을 했던 것까지 자꾸 떠오른다. 남편의 그 얘기는 오늘 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내내 떠올랐다. 계단을 오르는 내내 떠올랐다. 그리고 예전에 엄마는 은행에 가지 않고 지점장이 가게로 찾아왔었다는 얘기를 왜 하지 못했는가 내내 후회하고 있다. 하루종일. 
 

2006. 11.  

(이 때 내 아이는 약 7개월쯤 되었을 때다. 워낙에 몸이 좋으시어;; 당시 11kg 정도 나갔었다.) 

 

 

당시 내가 외출할 때마다 가지고 다니던 유모차와 아이의 모양새,  그리고 저 뒤에 있는 기저귀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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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로 서른 다섯이 된다.  그리고 가정주부이며, 아이의 엄마이고, 프리랜서 아닌 프리랜서 형태의 웹마스터 일을 종종 한다. 원격대학의 학생이기도 하고, 아직은 그래도 뭐든지 할 수 있는 나이이긴 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서른 다섯에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들이 몇가지 있다. 그런 것중에 몇 가지는 다시 스무살로 돌아가 탱탱하고 젊은 몸을 가지고 피나는 연습을 해서 가수가 되는 일뿐만이 아니다.  

서른 셋정도를 넘기면서, 나는, 아 - 내가 의사가 되었더라면 참 좋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의 병을 고친다는 보람과, 그에게 옳은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의 역할과, 치열하고 바쁘고 긴장된 일상이 내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인간군상을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매력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공감하면서 내 인격도 함께 부쩍부쩍 살 찔 수 있는 계기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언젠가부터 의술이나 약물치료, 혹은 한의학계통에 대해서 내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형태의 의사이든, 내가 의사라는 직업군에 속해있었다면 이렇게 방황하고 헤매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올해로 나는 서른 다섯이 된다. 의사라는 직업은 스무살이 되기 전에 인생의 방향을 잡아 10년 이상의 정규교육을 받아야지만 자격취득이 가능한 일이다. 내가 오늘부터 수능을 준비한다고 치자. 1년만에 합격을 한다고 하면 서른 여섯에 의과대학에 입학해서 마흔여섯이 넘어 전문의가 될 수 있다. 과연 내가 10년을 투자할 만큼, 그 직업이 간절한가. - 그것은 또 그렇지 않다.  

이미 나는 의사가 아닌 삶을 삼십년 넘게 살아왔고, 의사가 아니더라도 잘 살고 있으므로, 가끔 개인적인 호기심 충족을 위해 의학관련 기사를 보고 약을 받아오면 약물검색 싸이트를 뒤져보거나 약상자의 성분들을 혼자 뜯어보고 가까운 의료계 지인들에게 이런 저런 의학 상식을 물어보고 의학이나 건강에 대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잘 살고 있다는 말이다. 하얀 거탑이나, 뉴하트 같은 의학드라마가 뜰 때 미친듯이 몰입하고 그에 관한 자료까지 섭렵하는 것으로 충분히 바쁘다.

의사와 같은 전문직종은 스무살이 되기 전에 그 꿈을 확립했어야 하는 일이다. 정규교육을 받고 그 직업으로 가는 길이 너무나 험난하기 때문에 젊은 열정이 아니라면 쉽게 시작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그래서 오늘 내 주변을 살짝 원망해본다. 왜 그 때 아무도 나에게 의사가 되어볼 생각은 없냐고 묻지 않았을까. 특히, 외할아버지가 의학공부를 하셨다면서! 엄마는 왜! 나에게 단 한 번도 묻지 않았을까. 하긴, 그 때 나의 어머니는 나의 진로에 대해서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았다.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고 무엇이 너에게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얼토당토 않게 수녀나 경찰이 되는 건 어떠냐고 했었다. (이건 정말 자식을 몰라도 한 참 모르는 일을 넘어서서 자식의 특성을 모두 무시해 버린 처사다. 나는 제복을 증오하는 사람이라 고등학교를 졸업한 바로 그 날 집에 돌아와 교복을 가위로 아주 잘게 쪼게 버린 사람이다.)그리고 그 때 이과반 열풍을 몰았던 선생들은 왜 아무도 나에게 너는 수학을 잘 못하긴 하지만 이과쪽 적성도 있는 것 같다고 아무도 사려깊게 관찰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을 해 본다.  

모든 것은 본인의 결정이다. 그러나 스무살이 되지 않은 젊은 피가 평생의 결정을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는가. 다양한 직업군을 제시하고 네가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하며 밥벌이를 해야하는데, 올바른 직업관이란 이런 것이고 너 자신은 바로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너의 적성은 내가 관찰한 바로는 이러저러한 경향을 많이 띄고 있는 듯 하다. 라고, 왜 단 한 사람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루소의 에밀을 읽다보니, 에밀이 너무 부러워졌다. 이렇게 사려깊고 충실한 철학자를 (일부의 부족한 점은 일단 차치하고), 에밀이라는 학생을 교육시키는 데 온 힘과 정열을 다 바치는, (그게 그 교사의 인생의 큰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런 지도자 밑에서 성장하는, 청년의 에밀 (지금 15-20세 부분을 읽고 있다.)이, 참으로 부러웠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랬을 것이다. 부모들은 원치 않는 밥벌이를 의무감으로 다해왔고 자식들은 운좋으면 좋은 선생님이 멋진 진로를 방향잡아주었을 지도 모르고, 형제들은 알아서 툭탁거리며 자랐다. 부모들은 늦게 들어와 지친 육신을 잠시 누이는 데 바빴으며, 자식들은 그런 부모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일찍 자고 착하게 굴어야 했다. 개성 따위는 개나 줘 버려라. 일단은 밥이 문제였다. 특히나 심한 컴플렉스로 자기 자신을 위장하며 살아왔던 나같은 부류의 인간들은 자신감과 오만으로 똘똘 뭉쳐 있었기 때문에 다들 나는 무엇을 해도 잘 할 것이니 상관하지 않겠다는 어른들이 많았다. 아니 ㅡ 그 무엇을 조금이라도 제시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하고 나는, 오늘 아주 대놓고 그 때의 내 주변을 모두 타박해 보는 것이다.  

나는 이제 학부모가 될 것이고, 나의 아이는 별 다른 일이 없는 한 무럭 무럭 잘 자라날 것이다. 아이는 언젠가 나처럼 선택해야 할 것이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워질 것이다. 그 때, 내가 올바로 아이에게 어떤 길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 어미는 오늘도 고군분투 서른 다섯 인생의 중간쯤에서 - 나 자신을 다시 후벼파고 쪼개보고 있다. 내 아들도 언젠간 나에게 물을 것이다. 엄마, 엄마는 내가 뭐가 되었으면 좋겠어? 라고. 그 때 응 엄마는 어릴 때 과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서른이 넘어서는 의사가 되고 싶더라. 라고 하지 말고, 현명한 답변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은 어차피 죽음으로 완성된다는 것도 아이에게 잘 말해 줄 수 있어야겠다.  

서른 다섯에 수신(修身)이 무엇인가를 배운다. 수신을 이루지 못하면 제가(濟家)를 이루지 못하고 제가를 이룬다는 것이 바로 육아(育兒)이며 교육(敎育)이라는 것을, 내가 얻지 못했던 인생의 가이드를 내가 이루어 볼 차례가 되어버렸다. 누군가의 말대로 우리는 인생이 무엇인지 대충 알게 되면 어느새 서른 다섯을 넘겨버리고 난 다음 이다. 나도, 결국 그렇게 되었다.  

2009.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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