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옥스퍼드 Intro 1
사이먼 블랙번 지음, 고현범 옮김 / 이소출판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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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입문서적을 한 권 봐야겠다 싶어서 고른 책이다.

옥스퍼드 철학사전의 저자인 사이먼 블랙번은 캠브리지 대학의 철학교수인데, 이 책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기 위한 교재로 적합한 책인듯.

책은 지식, 마음, 자유의지, 자아, 신, 추리, 세계, 무엇을 할 것인가, 등 총 8장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각의 내용들은 서양 철학 데카르트로부터 시작하여 흄를 기본 뼈대로 삼아 로크나 라이프니츠등의 각 철학자들의 이론을 넘나들고 있다. 어느정도 철학에 대한 상식이 있거나, 혹은 깊이있게 공부하기에 적당한 책인듯. 도서관에서 빌려다가 한 번 쓱 읽고 말기엔 부적절한 책임에 틀림없다. 이런 책은 사실 펴 놓고 옆에 노트도 놓고 공부를 하면서 보거나 아니면 줄이라도 좍좍 그어가면서 읽어야 하는데, 빌려온 책이라 그게 쉽지 않으니.. 아쉬웠다.

 

매우 어려워 보이기도 하지만 집중해서 읽어야 그 가치가 발휘되는 폭넓은 서양철학의 입문서라고 할까? 철학이라는 과목자체가 우리 일상과 너무나 멀게 느껴지지만 꼭 그렇지많은 않다는 것을 다양한 실례를 들어 얘기해주고 있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지식이나 신, 자유의지등에 대한 개념을 폭넓게 이야기한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실재적으로 관심사를 두고 있다는 것의 의미와, 그 무게가 실린 관심사가 변화되는 이유등을 매우 논리정연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그러니까, 줄을 그어가며 정확하게 의미파악을 하고 공부를 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철학입문서라는 것. 번역을 맡은 고현범씨도 대학철학교재로 손색이 없는 책이라 하셨으니.. 그냥 쉽게 읽기 보다는 서양철학과 논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진중하게 선택해야 할 책.

 

물론, 이정도책까지 교양서적으로 읽고 싶은 사람에게는 절대 말릴 수는 없겠지만.

나는, 내가 왜 이 책을 읽었는가 후회가 조금 들었다. 사람마다 필요한 책은 모두 다르니까.

 

2006.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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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대가들 - 역설과 위트, 논리와 상상력의 39가지 철학우화
로베르토 카사티.아킬레 바르치 지음, 이현경 옮김, 김영건 추천 / 열대림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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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논쟁의 대가들이라고 해서 역사적으로 논쟁을 잘 했던, 한 마디로 말빨이 좋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쉽게 착각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실존했던 인물들의 어떤 논쟁의 역사를 이야기 한 것이 아니고, 논쟁을 벌이는 불특정한 인물, 익명의 가공인물을 통하여 대가들이나 펼칠법한 논쟁을 풀어주고 있다.

 

이 책은 철학서적이고, 그 중에서도 논리학에 가깝다.

쓸모없는 학문이라고 여겨지는 철학의 대중화를 위해 만들어진 책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39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에피소드들은 이탈리아의 일간지 "라 스탐파"에 실렸던 내용들이라고 한다.

 

정말, 우리가 생각했을 때, 쓸데없는 것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어떻게 확인하는가? 촉감으로? 거울에 비춰봤을때? 그렇다면 거울에 비춰본 나는 좌우가 바뀌고 있는데, 그 좌우가 바뀐 내가 나와 동일한 인물이라는 것은 어떻게 증명하는가? 나의 의식은 어디까지인가? 의식을 잠재우고 기억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시간의 기준은 무엇인가? 1월 2일에 태어난 사람은 지역에 따라 그 날짜가 달라질 수 있는데, 그렇다면 뉴욕에서 1월 2일에 태어난 아이와 파리에서 1월 2일에 태어난 아이는 생일이 같은가 다른가.

 

어떻게 보면 논리학이라는 것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핑계로 나 역시 중국에서 학부 공부를 할 때 내 짧은 중국어로는 도저히 논리학을 패스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하면, 그 존재와 언어는 불가분의 관계로서 어쩌면 언어가 존재하지 않으면 한 존재도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매우 난해한 문제가 나타난다.

 

이 책은 39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언뜻 보기엔 매우 쉽게 읽을 수 있을 듯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술술술 읽고 책을 덮으면 그만인 책들이 있는 반면, 한 꼭지 읽고 한 박자 쉬고 생각을 해야하는 책들이 있다. 어차피 독서라는 게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방법으로 남의 생각들을 엿보고 훔쳐내는 것이라면, 이런 책들은 그 생각들을 빌려 또 다른 생각을 창조해내지 않으면 완전한 독서로 이루어지지 않는 책일 게다.

 

요즘 쟁점이 되고 있는, 논술교재로서 매우 좋을 듯 하다. 대학생들의 논리학 스터디 교재로서도 손색이 없을 듯하고.

누군가에게 논술을 다시 가르치게 된다면 한 권 구비해두어야 겠다 싶은 책.

 

2006.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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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구스따보의 바보 일기
또노 지음, 유왕무 옮김 / 예림기획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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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금 생소한 이름의 작가와 제목인 이 책은 스페인의 풍자/해학작가인 또노라는 작가의 작품을 번역한 것이다.

고운 삽화도 함께 들어있는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철학동화라는 이 이야기는 매우 쉽게 읽히면서도 한 박자씩 쉬고 읽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구스따보라는 꼬마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그의 눈으로 비춰본 어른들의 세상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과 어이없는 부조리한 것들로 가득차 있다. 구스따보는 모든 것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매일 매일의 세상에 접근해나간다.

학교 선생님들은 뭔가를 가르쳐주지는 않고 계속해서 묻기만 한다는 둥, 흑인을 왜 흑인이라고 부르는지, 키가 작다고 왜 무시를 하는건지, 등등, 읽으면서 큭, 하고 웃게 되기도 하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기도 하는 책이다.

타이틀에 걸린 내용처럼 정말 8세부터 88세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내용이라,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읽어도 될 듯. 그러니까 .. 가정에 하나정도 있다면 화장실에 비치해놓고 식구들이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이라고 할까.

 

작가의 독특한 시선 -예를 들어 트럼본은 정말 이상하게 생겼어 - 라든가, 그럴싸한 말로 아이를 유혹해놓고 결국 논리성에서 부족하여 얼버무리고 마는 구스따보 주변의 어른들은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서 해학이 넘친다.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두고 두고 읽어도 좋을 만한 책.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읽는다면 좋을 것 같다.

 

2006.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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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기행 1 청소년 현대 문학선 12
신경림 지음, 이보름 그림 / 문이당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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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빌리던 날 그 옆에 붙어있어서 눈여겨 보았던 책이다.

아니나 달라, 그 책에서 "신경림 시인의 민요기행을 읽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내가 봤던 판본은 굉장히 깨끗한 것이어서 2000년도 이후에 출간된 것 같았는데 어찌된 일일까 했다. 이번에 빌려온 민요기행 1.2권은 알고 보니 1980년대에 신경림 시인이 한길사에서 펴냈던 것을 청소년이 읽기 좋게 다시 쓴 책이라고 책머리에 밝히고 있다. 어느정도의 편집을 거쳤는지 원판본을 읽어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적당한 삽화와 널직한 자간, 그리고 두 권의 책으로 나온 것으로 보아 조금 쉽게 편집되었거나 청소년이 읽기 부적당한 것들은 조금 빼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민요란 것이 뭐 노동요만 있을라고. ㅎ 남녀상열지사만큼 재미난 것은 없을 것인데 말이다. 아쉽게도 문이당 판본에는 상렬지사에 관련된 민요는 거의 없다.

 

신경림 시인은 1984년에 민요 연구회를 결성하였다고 한다. (책 뒤 작가 약력에 있다) 그리고 1989년까지 의장으로 활동하였고, 1985년에 한길사에서 민요기행 1권을 발간했고, 1989년에 역시 한길사에서 민요기행 2권을 내놓았다. 신경림 시인의 시 중에 내가 참 좋아하는 목계장터나 새재, 등을 보았을 때, 역시 신경림 시인은 돌아댕기기 좋아하는, 그리고 우리 산천과 민중의 삶의 모습에 흠뿍 빠져있는 시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시인을 찾아서와 같은 책도 기획하여 내놓는, 항상 낮은 곳으로 임하려 노력하는 양반인 것이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민요를 찾아 다닌 신시인의 기행문이다. 전문적으로 민요를 분석하고 연구한 책이라고 보기보다는, 민요를 찾아서 산넘고 물건너 다니다가 실패도 했고 그 동네에서 누구를 만났고, 그 동네의 분위기가 그랬고 노래를 아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는데 없었고, 굿 구경을 했고, 갑자기 누가 소를 몰아달라 해서 소를 몰기도 했고, 동네 동제를 구경했고, 그 동네 사람들이 외지인이라고 별로 안 좋아하는것 같기도 했고, 하는 이야기들을 시인의 겸허한 시선으로 주저리 주저리 풀어주고 있다.

 

책은 강원도부터 진도, 대부도, 지리산, 제주도, 충청도 중원까지 우리의 산천을 누비고 누벼, 이 좁디 좁은 나라에 이다지도 다양한 지방색이 남아있을 줄이야 싶은 이야기들로 그득하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좁은 나라인가는, 조금 커다란 나라에 살다 오면 확실히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중국 대륙에서 4년 반을 지낸 나는 주말에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려고 해. 라고 하면 그 가까운 곳이라는 게 기차로 7시간, 혹은 기차로 4-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어서 우리나라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물리적 시간으로 5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놀라기도 했었다. 이 좁은 나라에도, 산이 있고 물이 있어서 지역마다 그 풍습이 모두 다르고, 우리는 또한 대부분 서울 근교에 몰려 살고 있어서 지방에 얼마나 재미난 것들이 살아있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오래전 소백산에 갔다가 그 아랫동네 허름한 빵집에서 동행들과 끼니를 때웠던 생각이 났다. 그 어색하던 지방도시의 풍경과 냄새와 길목들이, 가득가득 밀려와서, 나는 이 땅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하노라고, 고작 4년 반을 살아온 나라에 대해서 그다지도 많이 알고 싶어서 이리저리 묻고 뒤져보고 해서 아는 척을 했으면서 나를 낳고 기룬 이 땅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대체 무엇이냐고 스스로를 타박하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민요의 참맛을 알게 되었어요.라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민요기행의 주목적은 오래된 노래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고 그저 이 땅에 남아있는 노래들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정처없는 발길과 만남이 주된 목적이었는 듯 싶다. 책을 읽으면서 정악과 산조를 들었다. 그리고 벅스 뮤직에서 한달 이용권을 끊어서 이광수의 진도아리랑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 것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고 반성했다. 그리고 이 책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깨끗하다는 것이 또 슬펐다. 책을 읽다가 남편에게 "이 책은, 잘 안 빌려가나봐. 책이 너무 깨끗해."라고 했더니 "좋겠네."하던 남편은 자기가 읽던 책을 내리고 내 책을 물끄러미 보더니  "아마 그 책은, 니가 처음 빌려본 책인 것 같다. 도서관 생긴지도 얼마 안 됐는데." 라고 했다.

 

이 책을 반납하면서 그동안 몇 명이 이 책을 빌려갔었냐고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나도, 나의 아이를 위해서 좀 더 이 땅에 대해서, 이 땅에 남은 것들에 대해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책과 함께 채록된 민요 CD가 함께 발매되었더라면 정말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남았다.

이제 그 모든 것이 다 사라지기 전에 누군가 그 일을 해야할터인데 하는 생각과, 어쩌면 이미 늦은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함께 했다.

 

2006. 11. 19.

 

+민요기행을 읽으면서 적당한 국악앨범을 더 사려고 리브로를 뒤졌더니 국악은 "월드뮤직"이라는 장르구별로 들어가 있고 클래식은 당당히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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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전집 2
버지니어 울프 지음, 정명희 옮김 / 솔출판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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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The HOURS 라는 영화를 정말 재밌게 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그 영화를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Michael Cunningham 이라는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지만, 그 모티브가 바로 달러웨이 부인이었고, 그 영화에는 버지니아 울프와 달러웨이 부인을 읽고 있는 미국의 가정주부와 달라웨이부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클로리사라는 여자가 등장했다. 그 영화의 모티브가 된 소설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 또한, 거의 10년이 된 세월이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아직도 완독하지 못한 나의 죄책감을 조금 얇은 책으로 달래보려는 욕심이 함께 이 책을 고르게 했다.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서 아는 바는, 그저 그녀가 인물은 좀 아니었다는 것과 (아마 니콜 키드만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매우 혁신적인 소설가였다는 것과 자기만의 방을 주장한 여자였다는 것과, 뭐 .. 그 정도.

 

아무튼, 그 이름만으로도 사실 적잖이 부담스러운 소설가임에는 틀림없다.

버지니아 울프는 저널리스트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매우 지적인 환경에서 학교교육보다는 요즘 말하는 홈스쿨링으로 공부를 한 케이스이며, 집안분위기에 힘입어 사촌들과 함께 불룸스 베리 클럽이라는 사교클럽(지적인 모임이었겠지만)을 만들어 그 지성을 더욱 키워나갔다고 한다.

그녀가 문학계에 주목을 받은 이유는 새로운 소설형식을 도입했다는 것인데, 댈러웨이 부인의 전작인 제이콥의 방에서 처음 시도하였고, 그 형식의 완성을 본 것이 바로 이 작품 댈러웨이 부인이라고 한다.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되도록이면, 하루정도 온전히 시간을 비워놓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치우는 것이 현명하다. 소설은, 댈러웨이 부인이 꽃을 사러 가는 아침시간부터 그녀가 벌이는 저녁의 파티가 끝나는 시점까지, 단 하루동안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그 하룻동안의 이야기 사이에 등장하는 적지 않은 인물들의 내면까지 꼼꼼히 묘사를 하고 있는데, 문제는 우리가 고등학교때 배운 시점이라는 체계에 극도의 혼란이 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문학시간에 배운 소설의 구조는 늘, 전지적 작가 시점, 1인칭 시점, 3인칭 시점등으로 정확하게 나뉘어 있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 구조가 파괴되어버렸다. 소설은 작가가 이야기를 했다가 댈러웨이 부인이 자기 이야기를 했다가 3인칭이 되었다가 전지적 작가시점이 되었다가 리차드가 자기 이야기를 했다가, 피터가 자기 이야기를 했다가, 말하자면, 음.. 어떤 관찰자가 하나 있거나 혹은 영화를 찍는 카메라가 있다고 치면, 그 카메라의 시선에 따라서 화자와 서술자가 계속해서 교체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만일 단 한 줄이라도 맥을 놓고 글자만 읽었다가는 지금 누구 이야기를 읽고 있는지 길을 잃게 되며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손으로 글자를 되짚어가며 읽어야 한다. 만일 이게 대여한 책이 아니고 구입한 책이거나 혹은 스터디 교재로 사용을 한다면 연필을 들고 괄호와 따옴표를 쳐가며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극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간혹 그 극도의 집중력이 때로는 머리를 얼마나 상쾌하게 해주는지, 버지니아 울프의 능수능란한 변장술에 빠지다 보면 뇌속에서 무슨 물질이 팍팍 나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찌릿찌릿한 마력에 빠지게 된다. 아름다운 문장이며, 구체적인 수사법들, 감각과 차원을 초월한 비유들의 향연이 마치 댈러웨이 부인이 준비하는 파티처럼 요란하게 펼쳐진다. 소설의 내용 역시 어느 한 순간 스쳐갔던 두 사람을 기둥 두개 기본 골조로 세워놓고 그 두 인물의 이야기가 날줄과 씨줄로 엮여서 결국 한 정점에서 우연찮게 그리고 매우 사소하게 교차된다. 그리고 그 교차는 마치 수평선 둘이 죽 이어지다가 한 점에서 만나고 그리고 다시 제 갈길을 가는 것처럼 그렇게 흩어져 버린다.

 

매우 일상적인 이야기, 우리는 매일 매일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19세기 영국의 고위층, 흡사 버지니아 울프 자신 주변의 이야기일 수도 있었을 법한 배경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폭풍같은 심리변화를 집요하게 풀어낸 이야기, 글을 읽다보면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기도 하지만, 가만히 스스로를 들여다보라. 우리 하루 사이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며 얼마나 많은 상상을 하는지. 우리도 가만히 길을 걸어가다가 생각만으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지 않는가.

 

버지니아 울프의 이름이 왜 그리도 유명했던가를 확실하게 깨닫게 해준, 기가 막히게 매력적인 소설. 이제 드디어 10년 묵은 그녀의 소설 『세월』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2006. 11. 17.

 

<첨부>The Hours Review

 



 

2002년 미국 / 감독: Stephen Daldry / 
출연: Nicole Kidman .... Virginia Woolf 
Julianne Moore .... Laura Brown 
Meryl Streep .... Clarissa Vaughan 
Stephen Dillane .... Leonard Woolf 
Miranda Richardson .... Vanessa Bell 
John C. Reilly .... Dan Brown 
Jack Rovello .... Richard Brown 
Ed Harris .... Richard 
Allison Janney .... Sally Lester
Claire Danes .... Julia Vaughan 

도데체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겠다고 사람들이 말하던 the HOURS,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은 이 영화의 주축이 버지니아 울프라는 점에 기인한다. 
서울에서 상해까지 끌고 온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the Years)"이라는 책은 이제 몇 년만 있으면 내 손에 들어온 지 10년이 되어갈텐데, 아직도 나는 첫 장도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화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닌 Michael Cunningham 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고, 이 영화의 주축은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인 MRS. Dalloway 라는 작품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1923년 영국의 한 시골마을에서 소설을 쓰고 있고, 줄리안 무어인 로라 브라운은 1951년의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주체할 수 없는 소외감과 우울증속에 이 소설을 읽고 있다. 하원의원 댈러웨이의 부인 클라리사가 꽃을 사러 가는 1923년 6월 런던의 어느 목요일 아침부터 그 날 밤 연회에서 총리를 전송하고 옛날의 애인과 친구들이 남아 있는 연회좌석으로 돌아올 때까지 12시간 동안 등장하는 중심인물들의내부의식을 집중적으로 묘사하였다는 소설 Mrs. Dalloway처럼 2001년 미국의 뉴욕에서는 메릴스트립분의 클라리사(소설속의 주인공과 동명이다.)는 스스로 Mrs. Dalloway가 되었다는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1923년의 버지니아 울프는 언니가 집에 오기로 되어있고, 로라 브라운은 남편의 생일 케잌을 만들어야 하고 클라리사는 에이즈에 걸린 옛 애인의 파티를 준비해야 한다. 
세 명의 여자는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서 공통적으로 아침을 맞이하며 세수를 하고 꽃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녀들에겐 파티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 
 이 세명의 여자에게 이어지는 공통점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Mrs. Dalloway 라는 소설인데, 1923년의 버지니아 울프는 파티의 주인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정도로 소설창작에 집중해 있고, 1951년의 로라는 감당할 수 없는 소외감과 우울증으로 그 행복해 보이는 여성의 모든 조건을 가지고서도 자살을 시도한다. 2001년의 클라리사는 동성애인과 함께 살고 있고, 파티의 주인공이 될 옛 애인은 에이즈에 걸려 모든 창문을 막고 천장이 떨어져 나간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 건물에 살고 있다. 

배경이 봄이건 여름이건 겨울이건 이 세 여자의 모습은 음침한 공기와 눈이 부시기만 한 햇빛속에 공존하며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영화는 매우 적절하게 세 주인공에게 이야기를 분배하여 지루하지 않은 연출력으로 영화를 강하게 이끌어나간다. 아무 상관이 없어보이는 세명의 여자는 하나의 이야기로 통일되어 뭉뚱그려지고 삶에 직면하는 일과 여성이 느끼는 행복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불러 일으킨다. 

 세 주인공과 리차드 역의 에드 해리스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며 이 배우들이 한 명이라도 빠졌다면 영화의 힘은 반의 반으로 삭감되었을 것이 뻔할 만큼 배우들의 연기는 소름끼치게 대단하다. 

특히 인공성형코를 붙이고 전혀 아름답지 않은 모습으로 출연한 니콜 키드만이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행복은 무엇인지, 삶은 무엇인지, 그리고 41년 주머니에 돌을 넣고 아름다운 유서를 써놓고 사랑을 말하며 자살한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이유는 무엇인지..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 파티를 열어야 하는 여자들은 늘 행복한 안주인인 것인지..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자들의 또 다른 이야기인 the hours는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한 번쯤 삶에 대해 고민해 보고 내가 직면해야 할 현실이 무엇인가로 일기장을 채워봤던 사람이라면 눈물을 흘리면서 빠져들 수 있는 멋진 작품이다. 

2003.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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