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기행 1 청소년 현대 문학선 12
신경림 지음, 이보름 그림 / 문이당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빌리던 날 그 옆에 붙어있어서 눈여겨 보았던 책이다.

아니나 달라, 그 책에서 "신경림 시인의 민요기행을 읽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내가 봤던 판본은 굉장히 깨끗한 것이어서 2000년도 이후에 출간된 것 같았는데 어찌된 일일까 했다. 이번에 빌려온 민요기행 1.2권은 알고 보니 1980년대에 신경림 시인이 한길사에서 펴냈던 것을 청소년이 읽기 좋게 다시 쓴 책이라고 책머리에 밝히고 있다. 어느정도의 편집을 거쳤는지 원판본을 읽어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적당한 삽화와 널직한 자간, 그리고 두 권의 책으로 나온 것으로 보아 조금 쉽게 편집되었거나 청소년이 읽기 부적당한 것들은 조금 빼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민요란 것이 뭐 노동요만 있을라고. ㅎ 남녀상열지사만큼 재미난 것은 없을 것인데 말이다. 아쉽게도 문이당 판본에는 상렬지사에 관련된 민요는 거의 없다.

 

신경림 시인은 1984년에 민요 연구회를 결성하였다고 한다. (책 뒤 작가 약력에 있다) 그리고 1989년까지 의장으로 활동하였고, 1985년에 한길사에서 민요기행 1권을 발간했고, 1989년에 역시 한길사에서 민요기행 2권을 내놓았다. 신경림 시인의 시 중에 내가 참 좋아하는 목계장터나 새재, 등을 보았을 때, 역시 신경림 시인은 돌아댕기기 좋아하는, 그리고 우리 산천과 민중의 삶의 모습에 흠뿍 빠져있는 시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시인을 찾아서와 같은 책도 기획하여 내놓는, 항상 낮은 곳으로 임하려 노력하는 양반인 것이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민요를 찾아 다닌 신시인의 기행문이다. 전문적으로 민요를 분석하고 연구한 책이라고 보기보다는, 민요를 찾아서 산넘고 물건너 다니다가 실패도 했고 그 동네에서 누구를 만났고, 그 동네의 분위기가 그랬고 노래를 아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았는데 없었고, 굿 구경을 했고, 갑자기 누가 소를 몰아달라 해서 소를 몰기도 했고, 동네 동제를 구경했고, 그 동네 사람들이 외지인이라고 별로 안 좋아하는것 같기도 했고, 하는 이야기들을 시인의 겸허한 시선으로 주저리 주저리 풀어주고 있다.

 

책은 강원도부터 진도, 대부도, 지리산, 제주도, 충청도 중원까지 우리의 산천을 누비고 누벼, 이 좁디 좁은 나라에 이다지도 다양한 지방색이 남아있을 줄이야 싶은 이야기들로 그득하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좁은 나라인가는, 조금 커다란 나라에 살다 오면 확실히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중국 대륙에서 4년 반을 지낸 나는 주말에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려고 해. 라고 하면 그 가까운 곳이라는 게 기차로 7시간, 혹은 기차로 4-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어서 우리나라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물리적 시간으로 5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놀라기도 했었다. 이 좁은 나라에도, 산이 있고 물이 있어서 지역마다 그 풍습이 모두 다르고, 우리는 또한 대부분 서울 근교에 몰려 살고 있어서 지방에 얼마나 재미난 것들이 살아있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오래전 소백산에 갔다가 그 아랫동네 허름한 빵집에서 동행들과 끼니를 때웠던 생각이 났다. 그 어색하던 지방도시의 풍경과 냄새와 길목들이, 가득가득 밀려와서, 나는 이 땅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하노라고, 고작 4년 반을 살아온 나라에 대해서 그다지도 많이 알고 싶어서 이리저리 묻고 뒤져보고 해서 아는 척을 했으면서 나를 낳고 기룬 이 땅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대체 무엇이냐고 스스로를 타박하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민요의 참맛을 알게 되었어요.라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민요기행의 주목적은 오래된 노래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고 그저 이 땅에 남아있는 노래들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정처없는 발길과 만남이 주된 목적이었는 듯 싶다. 책을 읽으면서 정악과 산조를 들었다. 그리고 벅스 뮤직에서 한달 이용권을 끊어서 이광수의 진도아리랑을 들었다. 우리는 우리 것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고 반성했다. 그리고 이 책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깨끗하다는 것이 또 슬펐다. 책을 읽다가 남편에게 "이 책은, 잘 안 빌려가나봐. 책이 너무 깨끗해."라고 했더니 "좋겠네."하던 남편은 자기가 읽던 책을 내리고 내 책을 물끄러미 보더니  "아마 그 책은, 니가 처음 빌려본 책인 것 같다. 도서관 생긴지도 얼마 안 됐는데." 라고 했다.

 

이 책을 반납하면서 그동안 몇 명이 이 책을 빌려갔었냐고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나도, 나의 아이를 위해서 좀 더 이 땅에 대해서, 이 땅에 남은 것들에 대해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책과 함께 채록된 민요 CD가 함께 발매되었더라면 정말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남았다.

이제 그 모든 것이 다 사라지기 전에 누군가 그 일을 해야할터인데 하는 생각과, 어쩌면 이미 늦은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함께 했다.

 

2006. 11. 19.

 

+민요기행을 읽으면서 적당한 국악앨범을 더 사려고 리브로를 뒤졌더니 국악은 "월드뮤직"이라는 장르구별로 들어가 있고 클래식은 당당히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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