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미래를 위해 일하는 엄마가 되라
레기네 슈나이더 지음, 김순화 옮김 / 글담출판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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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아, 이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 아이를 낳기 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내 동생은 작년에 태어난 제 조카(내 아들)를 보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에 결심을 하고 있다. 물론, 그 결심이 언제까지 갈 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아이에 따라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는 이제 16개월을 지난 아들덕분에, 아들이 깨어있는 시간엔 이제 겨우 설겆이를 하고 밥을 차릴 수 있을 뿐이다. 그 역시, 아이가 TV화면에 현란하게 돌아가는 CF들을 보고 있을 때나, 뽀로로와 노래해요라는 뮤직비디오를 볼 때 뿐이다.

그 동안 내가 책을 읽고 이런 페이퍼를 쓰고 싸이를 관리하고 하는 모든 것들은 다 아이가 잠 잘 때 이루어진 일들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다. 아이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보살피고 붙잡고 먹이고 씻기고 해야 하는 존재다. 물론 우리도 그렇게 자랐겠지만, 처음 엄마가 된 사람들에게는 정말 정신없는 일이다.

아이는 가만히 있는 물체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명인지라,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하고 연습하는데, 그 일들은 숙달되지 않은 존재의 미숙한 움직임들이라 엄마는 늘 두 눈을 부릅뜨고 아이를 지켜보고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미숙한 존재는 크게 다치거나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초보엄마들은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가 다칠까봐, 아이가 아플까봐, 어느선까지 지켜주고 어느 선까지 방치해야 하는지 그것은 세월이 켜켜히 쌓여 경험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맞벌이를 강요하면서도 육아는 아직도 엄마의 몫으로 놓여있다. 요즘은 맞벌이를 하는 엄마들이 많아져 놀이방이나 어린이집과 같은 보육시설과 양가의 할머니들중 여유가 있는 분들이 그 육아를 맡기도 하지만, 항상 엄마가 돌보지 않은 아이는 문제아로 성장한다는, 편협한 시선들이 사회에 깔려있다. 그 시선에 동참하면서 읽었던 책이 얼마전에 읽었던 "3살까지는 엄마가 키워라"라는 책이기도 했다.

 

그로 인해 맞벌이를 하는 엄마들이나, 자신의 생활을 찾으려는 엄마들은 이기적인 사람이나 어미로서의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게 되고,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나오는 아이가 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게 된다. 아동심리학과 발달과정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면서 점점 엄마들은 다시 집안으로 들어앉아 아이를 돌보는 일이 최고의 일이라고 자신을 추스리면서 멍하니 아이와 함께 TV를 보고 시간을 보내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엄마가 된 세대들은 가만히 앉아 아이가 낮잠을 자는 동안 나물을 다듬고 남편의 와이셔츠를 다리는 것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세대들이 아니다. 세상은 변했고, 삼시세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며 사회에 나가 치열한 전쟁을 치루며 직업을 갖는 것보다 가사에 열중하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한 일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은 간결하게 말해, 가사와 육아에 집중함으로 인해 피로를 느끼는 엄마들이나, 직장을 가지고 있거나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가사와 육아의 일정부분을 포기함으로 인해 죄책감을 갖는 엄마들을 위로해주는 책이다.

저자는 교육학, 사회학, 신문방송학 석사를 가진 자유기고가 신문기자로 그 동안의 많은 인터뷰와 사회적 통계와 연구들을 가지고 엄마들을 위로한다. 꼭 당신이 그렇게 붙들려 있지 않아도 아이는 잘 자랄 수 있다고.

그렇다고 아이를 방치해도 아이는 잘 자랄겁니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보육시설이나 위탁인을 설정할 때의 꼭 취해야 할 주의점, 그리고 직장을 가진 엄마들 밑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순기능들을 이야기 해준다. 성취감이 있는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더 잘 자라고 독립적일 수 있으며, 늘 잔소리만 하고 아이들만 바라보는 전업주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오히려 더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요지다. 간단히 말해,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고 부인이 행복해야 남편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사람마다의 개인차를 인정하고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 행복한 여자는 그러한 생활속에 행복을 느끼며 오히려 육아와 가사에 집중하고 가사분담이 이루어지는 민주적인 가정을 얻게 되어 소위 요즘 말하는 "알파걸"로 자녀가 자랄 수도 있지만, 가사와 육아에 매인 것을 불행해 하며 늘 우울증에 빠져있는 전업주부 밑에서는 아무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란 존재는 생후 8개월 이후부터 5명 이상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자기 안에 정리할 수 있는데, 그 위탁보육자들이 고정적일 때, 일관성이 있을 때, 아이들은 오히려 더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업주부인 것을 최대의 행복으로 여기며 그에 집중하는 행복한 엄마라면 아이들은 당연히 잘 자랄 것이다. 그러나 직장여성인 것을 행복으로 여기며 늘 에너지가 넘치는 엄마라면, 엄마가 잠시 자리를 자주 비운다 하여도 아이들은 역시나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전업주부 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최근들어 직업란에 주부라고 적어넣기는 하지만 내가 전적으로 가사와 육아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남편의 회사업무를 간간히 돕고, 끊임없이 책을 읽고 내가 이뤄야 할 먼 목표에 대해서 차근차근 준비를 해 나가고 있다. 취미인 사진찍기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해나가고 있고 지난 학기에는 중도포기하게 되긴 하였지만 학교 공부도 진행하였다. 만일 내가 이 책을 조금 더 먼저 읽었거나, 내 아들이 남들에게 쉽게 맡길 수 있는 성향을 지닌 아이였다면 나는 학업을 연기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아이가 매우 활달하고 기운도 좋고 고집도 세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많이 먹고 안아달라 업어달라를 요구하는 아이라 아이를 잠깐씩 맡아보는 사람들 모두 지쳐 나가 떨어지는 그런 성향의 아이인지라, 적절히 고정적으로 위탁을 맡길 곳이 없어서 나는 내가 진행하던 일의 일부를 연기하기고 결심했다. 그러나 아이를 관찰하면서 이 아이에겐 또래집단과 사회성을 키우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엄마가 데리고 집안에서만 있는 것보다 놀이터에 나가 다른 아이들과 부딪치고 싸움도 하고 공격도 당하고 울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 내 아이는 나와 함께 비가 오는 날까지도 외출을 하며 지내고 있고, 나는 서서히 지쳐가 건강에 이상이 오기 시작하기까지 했다.

 

많은 사람들이 어미니까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은 사실 그렇지 않은 편이 많다. 다들 지 새끼니까 피가 땡겨서 정성스럽게 키운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나로서는 아이가 태어난 다음날에서야 아이를 처음 만났고, 아 모성애라는 것은 자연적으로 생긴다기 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커지는 것이라는 걸 느꼈다. 낳은 정은 아예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고 해도 하루 24시간 1년을 붙어있다보면 정이 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발생하지 않을 수가, 과연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엄마들은 모성애라는 신화를 스스로 창조해 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그것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너희는 이래야 한다"라는 것이 아닐까.

 

나도 직업을 가진 엄마 밑에서 자랐고, 주변의 많은 친구와 선후배들이 그렇게 자랐다. 그들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나, SOS24에 출연할 만큼 심각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고 누구보다 잘 자라고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했고, 나 역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은 충분히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아이를 가진 엄마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사회는 강요하고 있다. 

 

사람이 사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 각자가 생각하여 가장 행복한 길이 최선일 것이다.

갈등하고 있는 엄마들이라면,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사실 나도 비슷한 고민을 했을 법한 지인에게서 선물을 받은 책이기도 하다. 나도 이 책을 읽고 나니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없이 많은 아기엄마들이 떠올랐다.

책을 읽지 못할 엄마들을 위해 이 책을 읽고 내 나름대로의 요약을 아래에 덧붙인다.

 

1. 행복한 엄마가 최고다.

전업주부이건 직장맘이건, 스스로 행복한 길을 택하라. 직장이 싫고 아이와 가정에 있는 것이 좋다면 과감히 포기하라. 집안에 있는 것이 우울하고 불행하여 자꾸 아이에게 짜증을 부리게 된다면 자아실현을 할 방법을 하루빨리 찾아라.

 

2. 아이를 과감히 맡겨라.

갓난 아기도 괜찮다. 아이는 적응 할 수 있고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놓은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규칙적인 위탁과 고정적이지 않은 위탁인은 아이의 정서를 방해할 수 있다. 엄마와 비슷한 육아방침을 고수 할 수 있는 위탁인을 선정하고 맡기는 시간역시 규칙적으로 정하라.

 

3. 아이와 기쁘게 헤어져라.

아이를 맡기면서 눈물을 쏟는 엄마의 감정은 아이도 고스란히 받는다. 두려움에 떨지 말고, 엄마는 곧 돌아온다고 아이의 눈을 보고 말하며 기쁘게 헤어져라. 아이도 가끔은 야단치는 엄마 말고 다른 사람과 놀고 싶기도 할 것이라고 생각하자.

 

4. 위탁인을 더 좋아하면 좋은 현상이다.

놀이방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르는 것이 죄책감을 갖지 마라. 그만큼 아이가 위탁장소나 위탁인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5. 당신의 이기적 자아실현은 분명히 좋은 점이 많다.

당신이 바빠짐으로 인해 가정은 민주적이 될 것이다. 아이들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게 되고 남편은 양말짝을 벗어 아무데나 벗어놓지 않을 것이다. 아들들은 그것을 보고 배워 사랑받는 남편이 될 수 있고, 딸들은 성역할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알파걸이 될 수 있다.

당신 역시 행복해 질 수 있다.

 

6. 스스로 원하는 길을 생각하고 선택하라.

에너지가 넘치고 성취도가 놓고 늘 즐겁고 자신감 있는 엄마가 되어, 아이와 있는 압축된 시간을 200%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라. 어쩔 수 없다, 는 핑계는 더이상 대지 말고 어찌해야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생각하자.

 

2007. 7. 3.

 

+ 책 선물해주신 예영님,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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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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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동안의 몸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 내지 못할진대, 땅 위로 뻗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리.



저자의 하는 말이라고 제목이 붙은 서문에 있는 글귀다.

김훈의 칼의 노래를 기억한다면, 그 문체와 서정성, 그리고 작가가 깊이 이해한 그 옛 사람들의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남한산성 역시 그러하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필독소설 외에, 내가 진정으로 좋아했던 작가는 신경숙이었다. 그녀의 섬세한 문체와 소설 제목처럼 깊은 슬픔을 끌어올리는 그 문체에 반했고 일기장에 그녀의 문체를 흉내 낸 글들을 숱하게 적었었다. 이제, 나는 칼의 노래 이후 김훈의 문체에 빠져들었다. 간결하고 단호하나, 때로는 그 긴 호흡들, 그리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그 옛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문체, 어떤 평론가가 말하길 그의 문체가 가장 잘 살아있는 작품이 칼의 노래와 바로 이 남한산성이라고 하는데 나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한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다. 인조반정으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인조, 명에게 예를 표하던 작은 나라의 임금은 대륙의 바람에 휩쓸려 청을 섬기지 않겠다는 의사에 분개한 청나라의 침입에 강화도로 피난을 가려 하였으나, 그 역시 청의 침입으로 이루지 못하고 현재의 송파구에 위치한 남한산성에 피난 아닌 피난을 하게 된다. 겨울, 그 해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고 성안에는 50일간의 식량뿐이었다 전한다. 이 소설은 그 남한산성 안에서 버티던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한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을 지킬 수 있다는 선문답 같은 화두를 안고 소설은 시작한다. 그 안에서 백성들은 주렸고 대신들은 치욕스러웠다. 왕은 떨어지는 꽃잎처럼 가련했다. 왕은 결국 삼전도 (송파나루부근 현재의 잠실대교 정도의 위치)에서 청의 칸에게 예를 표하고 엎드려 절을 한다. 칸은 그를 어여삐 여겨 조선팔도를 초토화시키지 않고 조용히 돌아간다. 그들의 항복을 안고 의기양양하게.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였을까를 생각했다. 소설속의 말들은 모두가 헛헛하였고, 눈물이 치밀어 올랐으나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오래도록 이생강류의 산조를 들었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그들은 모두 고통받았다. 이름없는 백성들도, 말로써 정의를 논하려는 대신들도, 최고의 자리에 앉은 왕역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 하는 그들은 모두 고통스러웠다.

책을 덮으며,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 하는 지금의 백성들을 떠올렸다. 어울리지 않는 요식업계에 뛰어들어 3년째 고전을 면치 못하나 잘 버티고 있는 지인도 생각났다. 우리는 모두 버티고 있지 않는가, 결국 어찌되었던 성문이 밖에서 열리거나 안에서 열리거나 그 성문이 열리고 냉이가 지천에 피어나는 봄이 오길 바라면서 우리는 모두 버티고 있지 않은가.

고립된 그 겨울의 노래는 그렇게 스산했다. 
 

2007.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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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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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은 소설가다. 그 이전에 기자였건 어쨌건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김 훈은 진정한 소설가로서이지 기자로서의 그의 글은 단 한 줄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각종 문학상에서 상을 받았던 그의 소설들이 참 좋았다. 그가 쓴 단편소설 “화장”은 정말, 아, 나이 먹은 소설가, 그 인생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었고 이어 읽었던 칼의 노래에서는 땀흘리는 소설가의 노동을 알았다. 구절 하나 하나 뚝뚝 땀이 떨어지는 듯 꽃이 떨어지는 듯 했고, 그 소설의 첫 구절이었던,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라는 구절을 수십 번 곱씹었다. 그의 소설 “개”에서는 늙어가는 남성성을 그리워하는 작가를 만났다. 그리고 그의 소설 “남한산성”이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 하여 그 책을 사놓고, 그리고 일전에 사 두었던 이 책을 먼저 읽었다. 밥벌이의 지겨움.

뭐 해 먹고 살지 걱정이다.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돈 버는 것도 지겹다 라고들 많이 얘기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냐는 것이 우리들의 밥벌이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밥을 벌어먹기 위해서, 혹은 밥을 벌어 먹이기 위해서 거리로 나서고 그 모든 수모를 수고라고 위장하여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간다.

설마 우리가 밥만 벌고 있는가, 아니 이제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은 아득히 멀어 보이기도 한다. 물론, 아직도 먹고 사는 것이 걱정인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살기가 많이 좋아져, 끼니를 걱정하는 일은, 그래도 우리 부모세대보다 많이 적어졌다. 밥, 은 단순히 음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말하는 것일 게다. 좀 더 윤택하게 살기 위해,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꾸역꾸역 일을 하고 노동을 해야 한다. 그 지겨움에 대해서 김훈이 뭔가 멋진 이야기를 해 줬기를 바랐건만.

이 책은 두, 세쪽 가량의 아주 짧은 작가의 에세이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 에세이들은 설령 화장실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넘길 만큼 가벼워 보일 수도 있으나, 가만히 숨을 고르고 읽다보면 이 양반, 참 정성이 넘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 책에서 밝혔듯이 굳이 아직까지도 육필 원고를 고집한다고 하는데, 그 육필의 힘이 무엇인지, 이 짧은 글들 속에서도 살갗에 닿을만큼 느낄 수 있다. 그저 가볍게 블로그에 씨부리는 것처럼 지껄여 책을 내놓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나 김훈의 글은 달라서, 읽다가 아, 내가 딴청을 하고 있구나 반성하고 각잡고 다시 읽게 되는 그런 힘이 있다. 그는, 적당히 살았고 (48년생, 우리 모친과 동갑) 세상에 적당히 실망했으며, 그러면서도 아직도 에너지가 넘쳐 흐른다. 이것이 그가 오십넘어 펜대를 잡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기운일 것이다. 아니면 그는 내가 오십만 넘어봐라, 하는 마음으로 죽기살기로 밥을 벌다가 날 잡아잡숴하며 엎어져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힘이 넘치고 그래서 열심히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육십이라는 나이는 이제 애매한 나이가 되었다. 직장에서 밀려나 밥을 벌지 않아도 되지만, 노인정에 가 앉아있을 수는 없는 나이. 일부는 손주들을 봐주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가만히 앉아서 밥상 받아먹기는 조금 민망해하는 아직 건강한 나이, 그 나이에 김훈처럼 숨겨두었던 칼을 꺼내서 쓱쓱 갈아 써내려 간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값진 것인가.

장대하거나, 거창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으나, 김훈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들어볼 만한 이야기들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왜 이 양반의 타령을 듣고 있나 싶었으나 책을 덮으면서 김훈의 다른 출판물들을 기웃거리는 나는 또 무엇인가. 그게 바로 김훈의 힘인가?

2007.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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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 옛이야기를 통해서 본 여성성의 재발견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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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 중에 여성의 일곱가지 콤플렉스라는 책이 있었다. 그 책은 내가 여성학이라는 관점과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대략 알 수 있게 해 준 최초의 여성성에 대한 서적이었다. 이 책은 그 책을 아직 잊지 못하는 내가 다시 한 번 숨어있는 여성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고 싶어 택한 책이라 하겠다. 여성성만을 문제 삼자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혹 여성성에 대해서만 궁금했던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양성인데, 남성의 경우 무의식 내에 존재 하는 여성성을 아니마(anima)라고 하고 여성의 경우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남성성을 아니무스(animus)라고 한다. 이러한 내면의 이성성은 내면의 감정, 느낌, 혹은 감각과 열정, 무드, 직관력에 포함된다고 한다. 이러한 내면성을 이 책에서 저자 고혜경은 수많은 꿈들과전래동화들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녀가 이야기 해주는 전래동화는 심청, 콩쥐팥쥐, 해님달님, 나무꾼과 선녀, 공주와 바보 이반, 연이와 버들소년, 머리 아홉 달린 거인 등, 한국의 전래동화(민담) 다섯가지와 서양의 전래민담 2개를 가지고 계모와 처녀성, 어머니의 모습, 할머니의 상징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봤다. 흑설공주 이야기를 읽고 난 뒤, 선녀는 죽었다 깨나도 선남이 될 수 없는 나무꾼을 견디지 못해 떠났을 것이며, 이몽룡은 한양에 본처를 두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 따위 말이다. 이러한 나의 시나리오는 그저 엉뚱한 상상에 지나지 않지만, 이 책의 저자는 심리학적 관점에서 차근차근 실례와 꿈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친절한 상담을 해주고 있다. 그런 이유로, 자기의 정체성과 여성성, 자주 꾸는 알 수 없는 꿈에 대해서 궁금했던 사람에게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라 하겠다. 아버지를 향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의 상황은 과연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심청의 이라는 성씨는 인당수와 같은 암흑의 인생을 상징하기도 하며, 자식을 보듬고 보듬던 해님달님의 어머니는 결국 호랑이를 아이들에게로 인도하는 아이러니에 빠지며, 과거를 잊지 못하던 나무꾼과 선녀는 더 이상 결혼생활을 영유할 수 없어 파경을 맞은 것이며, 계모가 어린 계집아이가 가진 생명력을 질투하는 일부 여성의 원형이라는 것까지 흥미진진한 해설들과 중간 중간 곁들여지는 심리학 적 꿈해몽이 아주 일품이다.

신화학 박사이자 꿈 분석가인 고혜경씨는 신화로 읽는 여성성과 신화로 읽는 남성성이라는 책을 번역했는데, 그녀의 꿈이야기와 신화이야기 속으로 다시 한 번 들어가 내 자신의 내면을 캐내어 보고 싶은 저자를 만났다.



2007.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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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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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씩 물어본다. 너는 자장면 한 그릇만한 소설을 쓰고 있느냐?

너는 네 소설로 단 한 번이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맛있고 풍요롭게 해 준 적이 있느냐?"

"나는 이 소설을 두 번 썼다. .. 어쨌든 처음 것보다는 두 번째 것이 조금 낫다. 하지만 이 소설이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소설을 다 썼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일 년간 무수한 내부 검열관들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내가 진이 다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이 소설에 관해 내 체력은 바닥이다."

 

언젠가, 한 소설가가 한 말을 늘 생각한다.

글을 쓰는 서재의 창가에 늘 한 그루의 나무가 보인다고. 그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들어 책을 내야 하는데, 그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을 글을 써야겠다고 늘 다짐한다고.

 

작가 김언수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프라이데이와 결별하다로 등단했다. 그리고 이번엔 이 책으로 5천만원 고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후기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그리고 분수도 모르고 덜컥 상까지 받아버려서 이제 빠져나갈 구멍도 없고, 귀싸대기 맞을 각오도 되어 있다며, 돈주고 사는 책에 대해서 기탄없는 독자들의 욕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많이 두려워 하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KBS TV의 책을 말하다에서였다.

최근엔 매회 3권의 책을 추천하는데, 이 책은 김갑수라는 문학평론가와 영화배우 오지혜씨가 나온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른 한 명의 패널은 죄송스럽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김갑수라는 낯선 평론가를 기억하는 것은 그가 이 책을 읽고 매우 충격을 받았다는 듯한 이야기를 했었고, 작가가 야비하고 비열한 인상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고 했기 때문이다. 어이없게도 제작진은 그 자리에 작가를 초대해놓고 있었고 작가는 마치 퇴근길에 오뎅 하나 사 먹고 방송국 방청객 알바를 하기 위해 앉아있는 사람같은 모양새로 거기에 앉아서 김갑수의 평을 모조리 들은 셈이다. 그의 인상은 그냥 회사원 같았다. 별로 재미없는 직장에서 시간을 때우다 온 사람처럼 가방을 메고 있기까지 했던 것 같다.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공대리처럼 말이다. 할 일 없는 직장에 그래도 매일 매일 출근하면 월급은 주니까. 하는 자세로 살고 있는 사람같은 인상.

 

최근의 소설은 낭만주의가 다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김언수의 캐비닛은 얼마 전에 읽은 워싱턴 어빙의 "립 밴 윙클"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소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세상에 신종족이 나타난다. 손에서 은행나무가 자라고 입속에 도마뱀을 키우고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3년이라는 세월이 없어졌거나 매 주말마다 도플갱어를 화장하러 가는 살아남은 샴쌍둥이 자매등, 온갖 기괴한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허름한 13호 캐비닛에 들어있다. 주인공은 그들의 기록을 읽고 그들과 전화통화를 하고 그들과 상담을 하고 술을 한 잔 마시기도 하고 섹스를 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매우 특이한 사람 같지만 또 전혀 그렇지 않기도 하다.

 

책장도 아니고 서랍장도 아니고 매우 부실해 보이며 인테리어라는 단어을 모욕하는 듯이 생긴 것이 캐비닛이다. 그 캐비닛에 세상의 비밀이 들어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캐비닛이라는 장소 안에 들어있는 철저한 구라덩어리다. 소설이라면 이 정도 구라를 떨어도 되지 않을까 한다. 정말 이 소설은 사기꾼의 최고봉이 오른 자가 썼을 법한, 초 낭만주의 상상의 결정체이다.

거짓말을 끊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시사프로를 본 적이 있다. 거기에 나온 한 사기범은 자기는 한 마디 문장을 시작하면서 걷잡을 수 없은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꾸며진다고 했다. 자기는 죄값을 치루고 나와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이 작가도, 어쩌면 그정도의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근래에 읽은 한국소설중에 제일 재미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캐비닛 어때? 라고 물어본다면, 오나전 짱이지. 라고 대답하고 싶다.

물론 이 캐비닛은 재미뿐만 아니라 그 속에 숨어있는 메세지와 메타포도 매우 많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는다. 작가는 소설가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정확하게 주제파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소설가는 구라쟁이다. 세상을 설교할 필요도 없고 설득할 필요도 없다.

그저 허풍이나 떨면서 글로서 허영을 표출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은 것이 세상의 모든 증상과 현상에는 다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으니까. 어떤 부분을 어떻게 편집해 내느냐 하는 것이 소설가의 자질이다. 어떤 자들은 김언수를 이 시대의 새로운 괴물같은 작가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얼굴을 봐버렸기 때문에 괴물같은 작가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그저 그는 괴물같은 세상에 시류에 잘 적응한  또 한 명의 심토마일것이다.

 

분명히 외계인은 존재할 것이다. 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에 푹 빠질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와 이게 영화로 만들어지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라고 나처럼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게 영화가 된다면 봉준호나 박찬욱이 손을 대야 할 것 같은데, 그들은 이미 다른 사람이 한 이야기로 뭔가를 만들 것 같지는 않다.

 

"이 저열한 자본주의에서 땀과 굴욕을 지불하면서 힘들고 어렵게 번 돈으로 한 권의 책을 샀는데 그 책이 당신의 마음을 호빵 하나 만큼도, 붕어빵 하나만큼도 풍요롭고 맛있게 해주지 못한다면 작가의 귀싸대기를 걷어올려라."라는 작가 후기, 그는 자본주의를 잘 알고 있는, 세상을 잘 알고 있는 작가 같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일부러 심사평을 읽지 않았다. 그가 받았을 5천만원이 내심 부럽기도 하지만, 귀싸대기를 올려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대신 김언수라는 이름을 들으면 그냥 혼자 킥킥 대고 웃을 것이다. 뭐 박민규를 생각해도 그렇긴 하지만.

 

2007.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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