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주의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분홍주의보
엠마 마젠타 글.그림, 김경주 옮김 / 써네스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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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 다가오던 순간을 기억하느냐고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너무 아련해서 기억조차 희미하다고 답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가끔은 그 순간들이 애틋하게 느껴져 다시 한 번 내 인생에 그런 일은 찾아오지도 않을 것이고 찾아와서도 안되지만, 다시 한 번 감정들을 꺼내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 때 썼던 일기장들을 다시 꺼내 보면서 매만져 볼 수 있다면, 하다가도 아- 그 일기장들은 남편이 볼까봐 몰래 숨겨두느라 친정에 남겨두고 왔지 하며 혼자 큭큭 대고 웃곤 하는 것이다.  

서른 중반을 넘긴 아줌마에게 분홍주의보란 오래된 일기장을 다시 꺼내보는 느낌이었다. 사랑이 다가오는 것은 그렇게도 설레이고 불안하고 견딜 수 없는 것들이었는데, 책을 읽고 넘기면서 나는 오래된 노래를 다시 듣는 것만 같았다. 그 때 그가 녹음해 주었던 음악테이프를 다시 꺼내 듣는 느낌. 사실 얼마 전 길을 지나다 그가 녹음해 주었던 테잎 속에 있던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걸음을 멈췄었다. 나는 20여년 전으로 돌아가 아주 잠깐 동안 가슴이 설레였다. 그 사람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결혼이라는 걸 하고 한 사람의 아내로 살겠다고 법적으로 도장을 찍고 난 다음에 설레이는 감정은 위험한 감정이 될 것이니 아예 마음속에 다시는 똬리를 틀지 못하도록 못 박아 놓은 상태. 20대의 치열했던 순간마다 다가왔던 그 사랑들에 대해서 나는 회의적이다. 나는 그들을 정말 사랑했던가.   


분홍주의보는 20대의 사랑이 아닌 좀 더 순수했던 10대의 사랑을 노래한다. 기억하는가. 그 사람의 모습을 본 것 하나 만으로 하루가 충만해 지던 그 시절의 사랑을, 그 사람의 목소리 한 번 들은 것으로 하루 종일 머릿속에 종이 울리던 그 순간 말이다. 이제는 그런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아이들이 커 나가면서 내가 겪었던 사랑의 설레임으로 열병을 앓는 것을 지켜봐야 할 나이가 되었지만, 분홍주의보는 좋은 책이었다. 아줌마라면, 혹은 아저씨라면. 이제 마지막 사랑의 열차에 오른 사람이라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붉어지는 얼굴을 애써 감추어 가며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겨볼 수 있는, 그런 책이다. 
  

2010.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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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꾼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재필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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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은 인간의 마지막 보루라는 생각을 한다.  

막다른 곳으로 몰렸을 때 에라 모르겠다. 하고 모든 것을 걸어 보는 것. 그게 구석에 몰린 인간의 습성이 아닐까. 이 책은 도스트예프스키의 자전적 중편소설로 유명하다.  

     
 

 (중편이라 하지만 열린 책들의 판형과 촘촘한 자간으로 이루어진 270페이지는 사실 중편이라고 보기엔 약간 무리가 있지 아니한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ㅎ 한국소설과 러시아 소설이 분량은 그 차원이 약간 다른 거 같다. 사다 놓은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 두께의 위압감에 짓눌려 시작도 못하고 있으므로..고요한 돈강은 또 어떠한가 말이다)

 
     

평생 도박빚에 시달렸다는 도스트예프스키의 자전적 소설. 이 책은 노름꾼들이 왁자지껄 모여서 베팅을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한 청년이 도박에 의존하게 되는 분열적인 양상을 그려낸 소설이다. 도스트예프스키와 인간성 분열과 이중성은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 영국/프랑스/폴란드/러시아 등의 다양한 인종이 등장하고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이 선명하게 등장하여 이해가 쉽다.  

접근하기 어려운 소설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쉽게 읽히며 그리고 재미도 있다. 죄와벌에 비하면 많이 가볍다고 느낄 만큼. 다 읽고 나서의 여운이 길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도박으로 치닫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기에 좋은 소설임을. 굳이 나같은 인간까지 거들필요는 없을 것 같다.  

수없이 많이 나와 있는 논문과 해설과 분석들이 있을터이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그런 평론들을 참조하시고 내가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생각보다 읽기 쉬우니 읽어보세요> 라는 말이라는 것.  ㅋ

2010.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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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의 재구성 - 쓰레기통에서 다시 집으로, 생명을 되찾은 물건이야기
연정태 지음 / 리더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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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의 재구성은 재활용품 디자이너인 연정태씨의 글이다.  

그가 직접 만든 가구들과 재활용건축물등의 재구성-탄생의 과정을 담고 있고 사진컷도 풍부해 직접  따라해 볼 마음이 나기도 한다. 책의 말미에는 적당한 에세이를 담아 재활용디자이너로 일하는 그의 철학을 엿볼 수도 있다.  

내가 이 책을 사게 된 이유는, 뭔가 상큼한 아이디어를 엿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에는 쓰레기가 넘쳐나고 재활용 쓰레기를 몰아서 버리는 날인 목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파트 단지는 한 판의 전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금요일 낮이 되면 엄청난 크기의 덤프트럭이 몰려와 그 쓰레기들을 담아간다. 수없이 내버려지는 물건들, 그 물건들은 모두 정말 버려져야만 하는가. 과연 다시 태어날 수는 없는가. 작가는 이런 물건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 일으키는 호모파베르이다.  

리폼이나 DIY가 각광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실 만드는 것보다 경제적인 이유에서건 기술적인 이유이서건 그냥 하나 사는 게 낫지 - 하는 물자 풍족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있고. 버려지는 것들이 아깝다. 그런 것들을 실력부족으로 재탄생 시킬 수 없다 한들, 작은 아이디어라도 얻을 수 있다면 버려지는 물건들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라도 갖게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버려진 삽으로 만든 수도꼭지 가림막이 인상적이었다. 쓰레기에 대한 사진 작업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소중한 의미를 부여해 주는 책이 되기도 했다. 우리 주변에 버려지는 물건들, 그 물건들을 다시 한 번 바라보는 눈길. 그 것만으로도 세상이 조금 달라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2010.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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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 그리고 책과 함께 만난 그림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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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런 책들을 좋아한다. 미술사에 대한 거창한 분석말고 적당한 에세이와 적당한 설명이 곁들여진 책. 게다가 이 책은 미술에 대한 이야기와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버무려져 있으니 이보다 내 구미에 맞아 떨어지는 책을 찾을 수 있을까.  

묵직한 책들을 읽다가, 혹은 의무감에 읽어야 하는 책들을 읽다가 나는 이런 책들을 꺼내 읽는다. 서점에 들르면 주저없이 한 권씩 사들고 돌아오는 책들은 대개 이런 책들이다. 무거운 책들은 고심을 하고 리뷰를 읽고 독서의 순서를 정해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해 읽는 반면, 서점에 가서 가져 오고 싶은 책들은 이런 책들이다.  

이 책은 책과 함께 만난 그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79년생이자 조선일보의 기자로 일하고 있는 저자 곽아람이 기억하고 있는 책들과 그 책들에 대한 상념과 그리고 그 책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그림들을 한 편씩 실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부터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에 이르기까지 그 장르도 다양하고 그리고 모나지 않았다.  

하루 저녁 느슨한 자세로 앉아 이 책을 읽으며 쉴 수 있었다. 뭐가 어찌됬건간에 나에겐 좋은 휴식이 되어주는 책이었다. 다음 번에 또 미술에 대한 휴식같은 책을 고르라면 그녀의 다른 책도 또 읽어보리라 생각하면서.  

2010.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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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이화경 지음 / 뿔(웅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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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한 문장, 긴 호흡, 살떨리는 묘사등이 이 소설의 백미이다.  

한국엔 주목받는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고, 출판시장에서 그들의 사사로운 에세이까지 찾아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에 반해 그냥 사장되고 묻혀지는 작가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올해는 그런 작가들의 책을 찾아 읽겠다고 생각하자 마자, 이화경이라는 낯선 이름의 작가의 <꾼>이라는 소설이 나에게 주어졌다.  

<꾼>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던 전기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김흑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어붙인 젊은 전기수가 사랑에 빠지고 그리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는 이야기. 별의 별 이야기를 다 겪고 별의 별 이야기를 해주던 젊은이의 이야기.  

문장은 아름답고 호흡은 길고, 조선의 고즈넉한 안타까움이 소설 여기저기에 배어나온다. 그게 이 소설의 매력이다. 소설은 정조의 이야기와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도한 노옹의 이야기와 전기수인 김흑의 이야기인 세 가지의 축을 따라 이어지는데, 마지막의 마무리를 염두에 둔다면 김흑의 이야기의 비중이 오히려 적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클라이막스가 너무 뒷부분에 치우쳐져 있어 긴박감이 조금 떨어지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한 번 읽어볼만한 문장들이 가득하므로 그정도의 단점은 서사라는 장르에 좀 더 가까운 이 소설의 흠이 되기엔 어려울 터.  

재미있게 읽었다. 낯선 이야기들을 낯익게 그리고 농밀하게 펼쳐준 작가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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