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눔 씨키. 너 한 벙 마즈까?" 아이가 입을 앙다물며 나에게 삿대질을 한다. 허리를 굽히고 팔다리에 힘이 한껏 들어가 있다. 아이는 내가 이놈의 새끼. 너 한 번 맞을까?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민망해졌다. 아이는 상황극을 스스로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저것이 바로 협박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이가 화가 난 걸 알아채고 꼭 안아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매 번 그렇지 못하다. 아이는 자주 화가 나고 자주 답답하다.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답답하고 제가 키가 작아서 엄마가 닿는 곳에 닿지 못해서 답답하고, 리모콘 조작을 할 수 없어서, 마우스 조작을 할 줄 몰라서 답답하고, 글자를 다 몰라서 답답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 수 없어서 답답하고 엄마에게 꼭 뭔가를 해달라고 말을 해야만 해서 답답하다. 아빠도 누나도 주로 집에 없어서 섭섭하고, 기차의 연결고리가 자꾸 빠져서 화가 난다. 그건 고장난 거라고 거듭 설명을 해도 아이는 끝까지 연결을 해보려고 억지를 부린다.

놀이터에서 다른 친구들이 시비를 걸거나 제가 타고 싶은 순서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운다. 엄마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길 바라고 있다. 제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것에 대해 화를 낸다. 언젠가 모든 일을 제 스스로 다 할 수 있게 되면 속이 시원해질까?




지난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78년도에 찍은 나의 사진을 들여다 본다. 내가 37개월일때의 사진이다. 사진속의 나는 아이와 똑같이 무릎을 꿇고 식탁의자에 앉아 제 컵에 혼자 우유를 따르고 있는 새초롬하고 하얀 여자 아이였다. 아이가 나만할 때 나는 어떤 아이였는지를 돌이켜 본다.

내 소꿉장난에 흙이 묻는 게 싫어서 아이들과 놀지 않았고 혼자 집에서 가위질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으며 집안에서만 놀았다. 혼자 구슬치기를 하고 미니카를 가지고 놀고 가끔 독수리 오형제를 보았다. 엄마가 가게에 나가면 나는 혼자 20원을 들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자동차가 지나가면 벽으로 마구 뛰어가 몸을 딱 붙이고 섰는 일을 반복하면서 동네 문방구에 가서 종이인형을 샀다. 그리고 하루 종일 종이인형을 오리며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은 사실 길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기억속엔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렸다고 새겨져 있다. 엄마는 주로 소파에서 나에게 조용하게 말을 하다가 졸았고 곧 잠이 들었다. 나는 발치에 앉아서 바람이 흔드는 흰색커튼 사이로 들이치는 햇빛을 구경하며 종이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그 날 산 종이인형은 그 날로 죽었다. 라면박스 하나 가득 매일 매일 산 종이인형들이 옷을 찾을 수 없어서 시체가 되었다. 다음 날이면 나는 새 종이인형을 살 수 밖에 없다고 우겼다. 나는 매일 외로웠고 조금은 우울했다. 뭐든지 내가 하려고 했고 내가 발돋움을 하고도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아서 화가 났다.

앞 동 사는 지혜네 집에 종이인형을 사러 가자고 초인종을 눌렀다가 지혜 아빠에게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넌 매일 종이인형을 사니?

나는 그 다음날부터 혼자 종이인형을 사러 갔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 잘 먹는다고 엄마에게 칭찬을 받았다. 아빠는 안방에서 장부를 정리하며 담배를 피우다가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때리기도 했다.




아이는 지금,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친구들과 부딪치는 일을 싫어하고 수퍼나 문구점, 서점에 가서 뭔가 하나씩 사들고 오는 것을 좋아하며 집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해가 지면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보는 일을 좋아하고 매일 TV를 보고 은하철도 999노래를 열심히 연습한다. 혼자 펜으로 고래를 그리고 고래가족을 그린다. 그게 고래라는 건 나와 아이만 알아본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네 살짜리 이하나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너도, 많이 외롭고, 힘들겠지. 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 인생을 반복하는 일이다. 서른 다섯해를 고스란히 다시 살아가는 일이다.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내가 아니지만 나는 그 시절을 오롯이 다시 받아내어야 한다.

오늘은 잠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사이 엄마가 보고 싶다며 엉엉 울었다. 그동안 참았던 분리불안증세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 같다. 물을 달라고 하더니 배가 부르다고 하고 물을 달라고 하더니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고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가 당황스러워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변덕을 부린다며 화를 내고 있었다. 방으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자 아이가 갑자기 책을 읽어달라며 동화책 한 권을 끄집어냈다. 연필세밀화가 아름답게 그려진 흑백의 차분한 그 동화책을 소리내어 읽다보니 화난 목소리로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토끼의 목소리도 내어야 하고 산양할아버지의 위엄있는 목소리도 내어야 했다. 교활한 여우의 목소리도 내어야 했다. 아이는 붉어진 눈가를 잊었는지 금새 배시시 웃는다. 나도 아이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슬며시 웃었다.



며칠 후면 주문한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가 올 것이다. 아이는 벌써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이는 엄마 나 자전거 좀 타고 올께 하고 혼자 현관문을 열고 나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엄마, 나 혼자 여행 좀 다녀올께 하고 큰 가방을 메고 집을 나갈 지도 모르겠다.



2009.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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