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울 만큼 배웠고, 해볼만큼 사회생활을 해 본 내노라 하는 여자들이 집안에 들어앉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좋은 엄마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가, 나의 시어머니가 그러했듯 어머니로서의 미덕은 희생과 봉사이니, 나도 그런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젊은 엄마들이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다. 그런 그녀들은 이미 재능이 너무 뛰어나 와이블로거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며 바느질과 요리, 인테리어 리폼에 프로폐셔널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실로 그녀들의 재능은 옹색하게 자기 집만 반짝이게 하기엔 너무 아쉬운 것들이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발표하고자 블로그라는 매체를 선택했고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하며 지내는 파워풀한 엄마입니다. 라는 것을 지상에 공표하고 나섰다. 혹자는 와이블로거에서 시작해 진정한 프로의 길에 입문하여 경제적인 이익 창출에도 성공하였다. 대부분의 와이블로거는 이러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지도 모르겠다. 그녀들은 요리블로그를 모아 책을 내거나 인테리어 리폼 기술을 가지고 잡지에 기사가 실리거나 리폼 교실을 운영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자랑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들이 블로그를 굳이 운영하며 자기의 사생활을 드러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살림의 달인 마샤 스튜어트 이후, 살림의 달인들이 대한민국에도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과 남편을 위한 살림의 달인이라고들 하지만, 과연 그녀들이 가족을 위해 그런 기능들을 익히고 있는가는 의심해 볼만한 여지가 있다.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을 감추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일거리를 만들고 스스로를 분주하게 만들어 집안에서도 충분히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역할론과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그녀들은 옹색한 아파트 베란다에서 톱질을 하고 먼지를 날린다.  

또래 친구들 중 인터넷 블로그 시스템을 잘 활용하고 있는 동기들은 대부분 음식을 한 사진이나, 뭔가를 꾸며낸 사진들을 전시하고 아이들의 사진으로 블로그나 싸이홈피의 메인사진을 장식하고 있다. 감정의 이입. 자신이 창조해 낸 창작물에, 자신이 창조해 낸 아이들에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여하고자 하는 안타까운 노력들이 보인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하는 이데올로기는 가부장제에서 비롯된다.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직업에 성실하며 부인의 내조는 이제 더 이상 그림자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창조성을 필수로 한다. 살림과 가사노동에 영 취미가 없는 여자들은 또 다른 컴플렉스에 시달리게 된다.  또한 남성들은 좋은 엄마가 집안에서 대단한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사이 가정 외부에서도 대단한 창조력을 발산해 막강한 재력을 구축해야 한다. 좋은 엄마 이데올로기는 모두를 죽이고 있다.

집안에서 하는 가사노동은 대부분 본인이 아니어도 해결될 수 있는 무방한 것들이기도 하지만 혹은 본인이 아니라면 제대로 되지 않는 난해한 것들이기도 하다. 주방은 주부의 전적인 독립공간이자 작업/직업 공간으로 모든 물건은 그 주인의 동선에 따라 맞추어져 있다. 남의 집에 가서 쉽사리 요리를 해 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과학적 동선 설계는 고난도의 테크닉엔 끼지도 못한다. 뛰어난 창작물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가정주부는 그저 평범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좋은 엄마 이데올로기는 아이의 유아기와 아동기에는 가사일과 발전된 가사의 형태로 발현되지만 아이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좋은 엄마들은 성적이 좋은 아이와 특목고를 갈 수 있는 아이의 엄마, 영어를 잘 하는 아이의 엄마 이데올로기로 변질된다. (최근 모 영어학습지에서 아이가 영어를 잘하면 엄마가 자랑을 할 수 있다는 논리로 광고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누가 엄마들의 가치를 이런식으로 매김하고 있는가.  

어미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아비로서 살아간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기본적인 아이의 욕구를 해결해 주고, 무엇을 더 해 줄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는 "상실"이 찾아왔을 때 아이가 어떻게 세상에 적응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풍요로운 시대속에 살고 있으므로, 풍요의 시대는 곧 상실의 시대이므로.  

지금 - 여성으로서의 자아가치의 창출은 식민지 근대의 신여성론 보다 못하다. 여자들은 자아를 찾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 뭔가를 만들어 내어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동정론에 가까워지고 있다. 살림을 못할 수도 있고 하기 싫을 수도 있다. 각자의 분야는 모두 다르다. 모든 엄마가 희생과 봉사의 엄마로 살 수는 없다. 조금은 이기적인 엄마들이 결국은 이타적인 삶의 말년을 보낼 수도 있다.  

왜 명절이 되면 온 집안 식구들이 모여 집안에서 해 낸 음식을 먹어야 하는가, 음식을 하기 싫은 어머니가 가장으로 있다면 그 집은 시켜먹은 음식으로 명절을 지내서는 안되는가? 모든 어머니가 홍어회를 썰고 조기찜을 해 내고 사골국물을 우려낸 떡국을 끓여내야 하는 것은 성문법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만들어 낸 관습법에 지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성문법보다 관습법이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아이가 출생하면서 부터 젊은 엄마들은 병원에서 마련한 모유수유실에서 엄마가 미안해 라는 말로 아이와 대화를 시작한다. 뭐가 미안한가. 인간의 욕망에 기초하여 출산을 한 것이 왜 아이에게 미안한 일이 되는가. 네가 다른 엄마를 가졌더라면 희생과 봉사로 무장한 엄마로 살았더라면 아이는 더 편안한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게 싫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네 운명이라고 아이에게 왜 당당하지 못할까.  

 지금의 젊은 엄마들이 좋은 엄마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부모 봉양을 모토로 삼지 않을 지금의 어린 아이들이 자라나서 세대간의 갈등은 훨씬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아이들은 형제가 적고 우리들은 오래 살 것이다. 아이 한 명이 6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시작되면 세대간의 갈등은 극에 달할 것이다. 좋은 엄마로 늙어가기 위해서는 늙어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자존심과 경제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식은 스물이 되기도 전에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시작한다. 그 때 되어 절대 후회하지 말고 배은망덕하다 하지 말고 배신감을 느끼지 않아야 할 방법을 지금부터 수련해야 한다.  

루소가 말했다. 배은망덕이라 함은 그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분명히 어떤 댓가를 바랬기 때문이라고. 아무 댓가없는 희생과 봉사가 과연 있는가, 배은망덕이라는 것이 성립하는가에 대해서 루소는 물었다. 세상에 배은망덕이라는 것은 없을 지도 모른다. 조금은 이기적인 삶 - 나는 좋은 엄마 보다 좋은 사람이길 원한다는 욕망이 결국 말년엔 가족들의 속 뒤집지 않는 좋은 엄마의 기억으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필수조건일지도 모른다. 

 PS. 

이글을 쓰고 난 뒤 알라딘 메인을 보니 남편을 사로잡는 101가지 요리라는 책이 오늘의 반값이다. 합의하에 결혼했으면 됬지, 매번 남편을 위해 시어머니의 요리솜씨를 모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먹기 싫으면 사먹고 들어오든지!  

혼자 놀고 즐기겠다고 귀가시간이 습관적으로 늦는 남편이 있다면 더 이상 같이 살 필요가 없지 않을까. 먹고 살겠다고 늦는 것과 이기적으로 놀고 즐기겠다고 늦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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