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한꺼번에 읽지는 말고 생각나는대로 조금씩 읽으려 한다.

1) 169쪽 : 그 범인은 옥대인의 혼인을 앞둔 딸 용이였다. --> 범인은 혼인을 앞둔 옥대인의 딸 용이였다.

 : 한국어에서 관형어는 일반적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체언을 꾸민다. 적어도 그럴 가능성이 가장 많다.  '옥대인의 혼인을 앞둔 딸'이라고 하면 혼인을 하는 주체가 옥대인이라고 잘못 이해되기 쉽다. 굳이 '옥대인의 혼인을 앞둔 딸'이라는 어순을 고집하고 싶으면 옥대인의 다음에 쉼표를 넣어 '옥대인의, 혼인을 앞둔 딸'이라고 쓰면 어떨까? 

 : '그 범인은' 에서도 그냥 '범인은'이 더욱 자연스럽다. 명사에 관사(정관사, 부정관사)가 붙지 않는 한국어의 경우에 '지시성'이 아주 강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라는 지시사는 안 쓰는 것이 좋아 보인다.

2) 95쪽 : 의심에 의심에 거듭하며 -->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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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5-28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앍었는데 이런 오류는 모르고 넘어갔는데..잡으셨네요.
 

 

글쓰기의 즐거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4월

 

 

올해들어 내가 알라딘에서 서재질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글쓰기'이다.  잘 쓰기 보다는 못 쓰지 않기 위해서라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글쓰기 하는 법'을 알려 주는 책을 극도로 피해 왔다. 그저 다독, 다작, 다상량의 고전적인 방법으로 무식하게 하려고 했다.  이번이 첫번째 일탈이다.

요즘 지분거리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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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5-27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권다 첨보는 책이군요.

진주 2006-05-28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를 잘 하려면,
그저 매일같이 한 편 씩 수필 비스무레한 잡글이라도 써야한다고 주장하는 바이옵니다^^;
(타지마할님이야 다독은 이미 하시는 분이시니, 어때요? 1200자 분량의 생활문 한편씩 써 보심이..<--요거 숙제로 내드릴까요?

타지마할 2006-05-28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다작은 당연히 좋은 글쓰기의 기본이겠지요. 근데 그게 참...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지음 / 책벌레 / 2000년 4월

 

 

아주 오랫동안 보관함에 있던 책인데 강유원의 <공산당선언>에 나오는 몇가지 과제 중 하나를 하기 위해 구입하다. 책도 다 살 때가 있나 보다.

강유원의 과제물 바로가기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883728

 

글쓰기의 즐거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4월

 

 

알라딘 夜시장에서 겁나게 싸게 팔길래 그냥 사 버렸다. 지금 보고 있는데 인물과 사상사의 책들은 확실히 디자인 면에서는 좀 모자란다. 종이도 아주 얇고 뭐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내용은 좀 더 두고 보아야겠다

 

완역 옥루몽 
남영로 지음, 김풍기 옮김 / 그린비 / 2006년 5월

 

 

운좋게(정말 운이 좋은 건 지는 좀 더 지나 봐야 된다) 서평단에 뽑혀 받은 책이다.  시간을 내어서 천천히 읽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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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라주미힌 > [손석춘칼럼] 권력 넘긴 노무현의 독재권력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 노무현 대통령의 고백이다. 대통령에게 과연 권력이 있는가. 묻는 사람도 무장 늘어간다. 기실 그는 오래전에 권위를 잃었다. ‘비판언론’만이 아니다. 노 대통령을 시들방귀로 여기기는 유행이다.

‘개혁’이란 말도 조롱받는다. 대체 집권 종반을 맞기까지 뭘 했는가. 비판이 쏟아진다. 집권세력 일각에선 원인을 헌법에서 찾는다. 현행 헌법에서 대통령에게 권력이 있느냐고 되술래잡는다.

과연 그러한가. 천만의 말씀이다. 현행 헌법으로 그의 전임자들은 역사적 평가를 받을 일을 하나씩은 했다. 김대중 정권은 6·15 공동선언을 내왔다. 노 대통령과 여러모로 닮은꼴인 김영삼 정권조차 ‘하나회’를 숙정하는 ‘위대한 결단’을 내렸다. 더러는 권력기관 민주화를 노 정권의 치적으로 내세운다. 아니다. 권력기관은 물론 관료사회를 개혁해야 마땅한 순간에 손을 놓았을 뿐이다. 아니, 놓쳤다.

정작 문제는 권력을 놓친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정반대다. 바로 그 지점에서 노무현의 독재는 시작한다. ‘노무현의 독재’란 말은 결코 형용모순이 아니다. 대통령 노무현은 지금 이 순간 독재자의 길로 뚜벅뚜벅 걷고 있다.

청와대가 발끈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대통령은 저 오월의 민주투사들을 기리며 말했다. “생각과 행동이 아직도 반독재 투쟁의 시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과시라도 하듯 까닭까지 밝혔다. 지금은 지도자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란다. “그것은 무소불위의 독재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이란다.

곧추 보기 바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어떻게 강행되고 있는지를. 대통령의 ‘정치적 감’으로 공화국의 운명을 욜랑욜랑 결정했다. 그뿐인가. 오월의 평택에서 군인이 민간인에게 곤봉을 휘두르며 추격했다. 그것이 독재가 아니라면 무엇이 독재인가. 오월의 투사를 폭도로 몰아친 그 언론이 살천스레 을러댄다. 피투성이로 얻어맞은 시민을 ‘반미 좌파’란다. 더 ‘엄단’하란다. 심지어 발포하지 않았다고 국방부를 훌닦는 자칭 ‘우익’도 있다.

기막힌 일이되 한국 민주주의의 엄연한 현주소다. 노 대통령은 두 김씨를 거치며 정착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마치 자신의 치적처럼 생색낸다. 게다가 국가운명을 좌우할 결정에 대통령 자신이 절차를 무시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밀어붙인다. 대안이 있느냐고 되레 눈 홉뜬다. 대안? 호도하지 말기 바란다. 한-미 관계는 지금 상황도 하나의 대안이다. 굳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노 대통령은 언죽번죽 충고도 했다. “아직도 권력자의 얼굴만 쳐다보는 그 시대의 낡은 사고가 남아 있다면 이제 버려야 한다.” 옳다. 권력자의 얼굴만 쳐다볼 때가 아니다. 권력의 잘못을 바로잡을 때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게 아니다. 노 정권은 시장에 넘긴 권력을 철저히 대변한다. 휘두른다. 시장의 철권, 그것이 노 정권의 본질이다. 신자유주의 독재정권이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독재이기에 지자체 선거 참패는 벅벅이 필연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가 아직도 자신의 정권이 지닌 독재의 성격을 파악 못한 데 있다. 딱한 일이다. 그의 참모들 가운데도 분별이 뚜렷한 사람들은 이미 떠났거나 배제되고 있다. 남은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평택 미군기지로 줄달음치는 독재자 노무현이다.

그래서다. 저무는 오월에, 그 핏빛 깃발 아래 찬찬히 묻는다. 신자유주의 독재권력, 노무현 정권을 어찌 해야 옳은가.

기획위원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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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에로이카 > [한겨레신문] 김기원, 재벌이냐 외국자본이냐

이러한 류의 글을 읽을 때 드는 느낌은 늘 용두사미라는 거다. 재벌이냐 외국자본이냐라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구도는 잘못됐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맞다. 그런데.. 그러구 나서.. 결론은 기본에 충실하자는... 좋은 대기업을 키우고 좋은 외국자본을 유치하자는... 황당한 얘기를 해댄다. 케인즈주의는 국가사회주의와 더불어 자본성악설 취급을 받고, 작금의 신자유주의처럼 극단적 근본주의로 간주된다. 물론 좋은 게 좋은 거지만, 굳이 그 말하려고 이런 글을 쓸 필요가 있나 싶다. 그저 양자택일 허구론에서 그치고 말 뿐, 그 이상의 뭔가는 없다. 역사는 상상력을 제약하기도 하지만, 역사를 무시하고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 좋은 기업과 좋은 외국 자본이 공공성 확보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아무래도 회의적이다. 뭐 좀 근사한 생각하는 양반들 없나?  

 

재벌이냐 외국자본이냐 / 김기원

세상읽기
한겨레
»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바야흐로 재벌과 외국자본의 수난시대다. 현대차 총수가 구속되었고, 두산 총수는 재판을 받고 있고, 삼성 총수도 언제 불려갈지 전전긍긍이다. 그런가 하면 론스타의 한국대표가 조사를 받았고, 외환은행의 웨커 행장은 일주일 출근을 저지당했다. ‘세금폭탄’이 투하된 외국계 펀드도 여럿이다. 한국경제를 지배하는 듀엣의 갖가지 비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고나 할까.

사태가 이쯤 되면 “재벌이든 외자든 모두 ‘자본’이므로 악이다”는 ‘자본성악설’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본을 타도하려는 이런 관점은 “재벌이든 외자든 모두 ‘자본’이므로 선이다”는 ‘자본성선설’과 마찬가지로 시대착오적이다. 그리고 “외자는 ‘외국’ 자본이므로 재벌보다 좋다”는 외환위기 직후 풍미했던 ‘외자 우상숭배론’이나 그 반대로 “외자는 ‘외국’ 자본이므로 재벌보다 나쁘다”는 최근 부상한 ‘외자 마녀사냥론’이라는 양극단의 오류도 다를 바 없다.

재벌과 외자는 우리에게 일자리와 생산물을 제공한다. 하지만 황제경영 아래 나라를 멋대로 주무르는 재벌도 있으며, 허술한 한국경제를 공략해 부동산 투기꾼처럼 폭리를 챙기는 외자도 있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재벌과 외자의 긍정적 효과를 최대화하고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는 일이다. 재벌체제를 개혁하고 외자를 주체적 선별적으로 활용하는 게 바로 그런 길이다.

그런데 소버린파동 때처럼 재벌과 외자가 충돌하는 경우엔 어찌해야 하나.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난감해한다. 재벌의 행태는 괘씸하지?그렇다고 알토란 같은 우리 기업을 외국에 넘겨주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식이다. 재계는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낡은 재벌체제를 고수하려고 안간힘이다. 미꾸라지는 자신의 적인 메기가 옆에 있어야 긴장해서 잘 큰다는 ‘메기경영론’을 떠들다가 메기, 곧 공격적인 외자의 그림자가 겨우 보일 뿐인데도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물론 죽을지 모르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총수의 경영권이다.

우리의 군사정권은 북괴의 남침위협을 독재의 구실로 삼았다. 그런데 그랬더니 오히려 북한을 우상숭배하는 주사파가 자라나고 남한체제가 더 흔들렸다. 그러다 사회가 민주화되자 주사파는 맥이 빠지고 북한과의 교류가 늘면서 남침위협 운운은 ‘잠꼬대’가 되었다. 재벌체제도 다를 바 없다. 외자의 위협을 빌미로 재벌체제를 고수하면 할수록 기업은 위태로워진다. 부패하고 무능한 총수 탓에 기업이 도산해 대우차처럼 결국 외자에 넘어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최근 뉴라이트가 민족주의를 짓밟고 극우 국가주의로 치달리는 한편에서 이렇게 민족주의를 악용하는 사이비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진보를 내세우는 듯한 일부 인사마저 여기에 가세한다. 총수의 세습적 경영권을 안정시켜주고 싶어 온갖 머리를 짜내고 있는 것이다. 경영권을 안정시켜주는 대신 기업에서 세금을 더 거두자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주장을 펼친다. 세금 증대는 차라리 노사관계 개혁과의 타협대상이다. 공익재단을 경영세습에 써먹게 하자는 발상은 또 무엇인가. 공익재단이 총수의 사익재단인가.

경영이 과도하게 불안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이들이 외치는 식으로 경영권을 안정시키는 것은 무책임한 황제경영으로 돌아가고, 그리하여 기업과 나라경제를 망치는 사술이다. 정공법은 한국의 기관투자가, 우리사주조합 및 개인의 지분을 늘려 이들이 외자의 투기적 공격은 저지하되 부패하고 무능한 총수는 교체하는 것이다.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재벌과 외자에 엄정하고 공정한 규율을 적용하고 재벌개혁에도 박차를 더할 때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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