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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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문명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는 그의 비판의 메시지가 이번엔 인류의 육식문화에까지 이르렀다. 건강을 위해서는 육식보다 채식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들어보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사회문화적인 요소를 조목조목 나열한 이는 아마도 제레미 리프킨 하나 밖에 없을 듯 하다.미국 개척 과정에서 발생한 인디언에 대한 백인의 핍박 역사는 소에 의한 버팔로의 멸종과 너무도 흡사해 보였다. 게다가 수많은 인구가 여전히 가난과 기아로 허덕이고 있는 이 시점에도 소를 위해 무수히 많은 곡식들이 재배되고 수출되고 있다는 사실은 어딘가 모르게 모순인 듯 하다.

과거 백정 등에 의해 자행되었던 소 도축 과정 속에서 인류는 살생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기에 많은 의식을 행해야만 했던 것과 달리 현대 사회에서 소의 도살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일지라도 소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목격하지 않는다. 소의 무게를 증가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만이 인간에게 주어진 유일한 업무가 아닐까 싶었다. 기기에 의해 부위별로 잘려지고 포장되어 나오는, 절대 소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하나의 ‘상품’을 인간은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스웠던 것은 작업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권이나 작업환경의 개선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노동의 종말’을 통해 이야기했던 일자리의 감축으로 인한 실업 현상 속에서 낮은 임금은 일자리를 보전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문제시될 수 없을 듯 했다. 즐거움에 노동을 즐기는 것이 아닌, 그저 살기 위해 일하는 그들의 모습은 즉각적인 부정부패와도 직결되지 않을까 싶다. USDA에 의한 엉터리 검사 과정은 쇠고기를 즐기는 수많은 미국인들과 전세계인들의 건강에 대한 ‘나 몰라라’식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메탄과 오염물질을 만들어내고 목초지를 망가뜨리는, 환경 전체에 걸쳐 악영향을 주는 소를 그토록 신봉(?)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처음에는 참 의야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때론 부패하고 각종 오염물질에 의해 오염되고 더 나아가 쥐나 그 외의 설치류들과 엉키고 섥힌 그 고기가 권력과 힘, 부를 상징하는 아이러니함이 녹아 있었다. 겉은 바싹 타고 속에는 여전히 피가 흥건히 고인 쇠고기를 씹음으로 인하여 인류는 자신의 남성다움을 과시할 수 있었고, 그것은 직접적인 권력과도 이어지는 듯 했다. 식탁에 쇠고기가 올라오지 않는다고 아내를 구타한 몇몇 남성들의 이야기는 가정 내에서 평등한 관계로서 아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아내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남성의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인류의 계속되는 진보를 위해, 인류가 살아갈 ‘지구’라는 환경 터전을 위해 육식의 종말은 분명히 필요한 일이라고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은 부담스럽게 마저 들린다. 이미 너무도 오래전부터 고기에 길들여져 있는 동시에 부의 상징으로서 쇠고기를 찾는 인류이기에, 그 연결고리에 대한 근본적인 끊음 없이 육식의 종말을 주장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어거지가 될 수도 있을 듯 하다. 난 오히려 중심성의 원리를 부정하고 여성적인 것, 기존에 중요하다 여겨지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페미니즘적 시각이 이러한 그의 주장을 북돋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경험 등에 주의를 기울이는 과정 속에서 인류는 그 적용 범위를 동물에게까지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와 동물의 공존에 대한 물음은 그 과정 속에서 해결될 수 있을 듯 하다. 그것은 지금 현재 존재하고 있는 육식문화가 지닌 권력구조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 될 것이며, 더 나아가 북반구 몇몇 부자들을 위해 자신들의 땅에서 물러나야만 했던 제3세계인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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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13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